고국 품으로 가는 '구국의 혼'…'일왕 나무 그늘'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유해 한국 봉환
독립 유공자 최종 승인
박 선생의 유해는 현재 일본계가 다수 안장돼 있는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본지 7월 3일 A-1면>
한국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지난 2일 열린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최종심에서 박희성을 6급 독립유공자로 최종 승인했다.
이번 승인안은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쯤 공식 발표될 예정이며 박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주어지게 된다.
이 후 유족의 신청 절차를 밟아 빠르면 오는 9월 그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봉환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국가보훈처측은 해외 안장 선열 유해 봉환은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관계 규정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미포상자인 박 선생의 유해 봉환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박 선생이 6급 독립유공자로 최종 승인이 남에 따라 유해 봉환 문제는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박 선생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프리랜서 언론인 한우성씨는 "지난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를 집중 취재하면서 박 선생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그늘에 묻힌 영웅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박 선생의 유족을 찾아 유해 봉환에 대한 위임장을 받았고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의 첫번째 프로젝트로 유해 봉환 작업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광복회장을 지낸 김우전 한국광복군동지회 고문과 긴밀히 협력해 지난해 11월 18페이지 분량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보훈처에 제출했다"며 "앞으로 남은 절차들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선생은 1896년 황해도 태생으로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8년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
이어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에 입교 1921년 비행사가 됐으며 임시정부는 박 선생을 비행장교로 임관시켰다.
하지만 박희성은 비행시험 중 기체사고로 추락해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1937년 LA에서 병사했다.
곽재민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