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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 한국을 만나다’

      코리안커뮤니티센터(이사장 김태환)와 서재필기념재단(회장 최정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소장 강임산)가 함께하는 '미국 속 한국을 만나다’ 필라델피아 역사탐방 프로그램이 다음달 진행된다.     내달 4일 오전 9시, 코리안커뮤니티센터  주차장서 집합해 대형버스 차량으로 출발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5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의 달(Asian Pacific American Heritage Month)’을 맞아 워싱턴DC와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운영한다.     올해 첫 탐방지는 미국 한인 이주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도시인 필라델피아를 탐방한다. 구한말 서재필과 이승만의 주도로 1919년 ‘제1차 한인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으며 서재필의 선전 홍보 활동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미 전역에 확산시킨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서재필기념관을 비롯해 리틀극장, 독립기념관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어 필라델피아에서 출발하는 워싱턴DC 탐방 프로그램은 내달 24일(토) 오전9시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1200 W Cheltenham Ave, Philadelphia, PA)에서 출발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주워싱턴총영사관, 링컨기념관 등 워싱턴DC 일대 한인 문화유산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탐방 프로그램 참가비는 무료, 점심식사가 제공되며 선착순 접수를 받고 있다.    문의: 202-577-3284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미국 한국 필라델피아 역사탐방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주워싱턴총영사관 탐방 프로그램

2024-04-25

[LG전자 LA BI센터 탐방] '투명' 문 들어가니 의료 특화 제품 한눈에

자동문이 스르륵 닫히자 평범한 유리인 줄 알았던 창에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화려한 문양이 나타났다. 순간 곳곳에서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LG전자가 자동문 세계 1위 업체 아사 아블로이와 손잡고 55인치 투명 올레드 사이니지를 활용해 만든 자동문이다.   ▶ “의료용 특화” … LA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센터   LA의 금융·관광 지구인 벙커힐 지역에 위치한 LG전자 비즈니스 이노베이션 센터(BIC). 신원 확인 후 16층에 올라가자 704㎡ 규모에 로비, 간호 공간, 교실, 창작 스튜디오, X-레이실, 수술실 등 다양한 버티컬(산업별 고객군)에 특화된 13개의 전시 공간이 펼쳐졌다.   BIC는 고객이 LG전자의 기업간거래(B2B) 제품과 솔루션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LG전자는 LA를 비롯해 시카고, 애틀랜타, 워싱턴DC, 뉴저지 등 주요 도시에서 BIC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LA BIC는 BS사업본부의 미국 헤드쿼터가 있는 시카고에 이어 쇼룸 규모가 2번째로 크다. 2022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고객사 200여곳 1000여명이 방문했다.   최철 LG전자 미국법인 사이니지 솔루션 사업실장은 “(LA가 속한) 가주는 미국 내 중요한 메디컬·헬스케어 시장으로, 주요 병원과 글로벌 의료기기 제조사의 본사와 연구소가 위치하고 있어 LA BIC는 병원용 솔루션에 특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실, 입원실 등으로 꾸며진 공간에는 디지털 엑스레이 검출기, 수술용·진단용·임상용 모니터 등 의료용 모니터와 방역 로봇인 LG 클로이 UV-C봇이 공간 맞춤형으로 꾸며져 LG전자가 선보일 차별화된 의료 솔루션을 예고했다.   로비 공간에는 163·136형 초대형 마이크로 LED 사이니지 ‘LG 매그니트(MAGNIT)’를 비롯해 원하는 만큼의 곡면을 줄 수 있는 커브드 올레드 사이니지, 투명 올레드 사이니지 등 LG전자의 차세대 디지털 사이니지가 전시돼 있었다.   최 실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집에서 쓰는 TV나 모니터와 똑같은 제품일 수 있겠지만, 일일이 꼼꼼하게 소프트웨어부터 솔루션까지 버티컬에 맞게 특화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충전기 공략   전시장 한쪽에는 올해 북미 시장에 판매할 11킬로와트(㎾) 완속 전기차 충전기도 전시돼 있었다.   전기차 충전기 사업은 LG전자가 미래 비전인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 달성을 위해 꼽은 미래 성장 동력의 중요한 한 축이다.   LG전자는 최근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연 1만대 이상 생산 규모를 갖춘 전기차 충전기 생산 공장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LG전자의 첫 전기차 충전기 해외 생산 공장으로, 연내 175㎾ 급속 충전기, 350㎾ 초급속 충전기 등을 추가로 생산할 계획이다.   앞서 장익환 LG전자 BS사업본부장(부사장)은 지난 11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에서 브리핑을 갖고 “호텔과 병원, 쇼핑몰 등 다양한 B2B 고객을 가지고 있는데 굉장히 많은 버티컬 사업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잘 준비한다면 B2B 시너지를 내며 빠른 시일 내에 조 단위 사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부사장은 “최근 전기차가 주춤하는 이유는 충전 인프라 문제”라며 “충전 인프라가 빨리 깔리면 원래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5월 미국 에너지부(DOE) 발표에 따르면 미국 내 공공 전기차 충전소는 약 14만개다. 현재 미국 내 판매된 전기차 대비 충전기 보급 비율은 약 18대 1 정도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수준(10대 1)에 미치지 못한다.   텍사스 공장을 가동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선 LG전자는 북미 고객의 페인포인트(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가 고장률인 점에 착안했다.   장 부사장은 “인수했던 국내 회사의 불량률을 조사하니 높게 나와 아예 올스톱하고, 재작년 말부터 LG전자의 품질과 개발 인원이 투입돼 개발을 새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LG전자의) 서비스와 애프터서비스(AS)망은 확실히 잘 구축돼 있고, 품질 보증 체계도 잘 돼 있다”며 “이 부분이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이며, 급속 충전기에 집중해 경쟁력을 올려 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시장 진출 계획 등에 대해서는 “초기 라인업을 하는 부분에서 중국 전기차 충전 부품 쪽 인프라를 활용할 계획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파워모듈을 내재화하는 등 중국 업체와 확실히 차별화하겠다”고 설명했다.LG전자 LA BI센터 탐방 의료 제품 의료용 특화 사이니지 솔루션 의료용 모니터

2024-01-17

대학 탐방은 꿈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직접 들으면 학과 현실 파악할 수 있어

대학 탐방은 꿈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직접 들으면 학과 현실 파악할 수 있어       해를 거듭할수록 대입 경쟁이 치열 해 진다는 뉴스가 이어지는 있는 가운데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앞으로 자녀가 다니며 공부하고 자신을 개발할 대학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학생들 또한 자신이 진학할 대학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는 하지만  사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진학할 학교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하는 것을 본다.  막연한 꿈을 확실한 목표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 대학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고, 거기에 맞춘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하나씩 착실히 이뤄질 때 그 목표는 현실이 될 것이다.  자신이 지원할 대학에 대해 사실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확신에 찬 지원 에세이를 쓰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미국대학 지원자들이 자신이 입학하기를 원하는 미국 대학으로 캠퍼스투어를 가고 있다.     ▶지원할 대학 직접 경험하라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실제 캠퍼스를 방문해보면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배움을 갖게 된다. 자신이 지원할 대학이라면 가능한 직접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만일 시간이나 비용이 부담이 된다면 가장 가까운곳 몇 곳이라도 좋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왜 그 대학에 진학을 하기 원하냐는 질문에 무슨 말로 설득력 있게답할 수 있겠는가.     유펜대학을 방문했을 때였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을 만나 이 대학에 진학한 것에 대해 만족하냐는 질문을 했다. 뜻밖에도 그 학생은 ‘다시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창업과 재무가 분리되어 있는 대학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을 가겠다’라고 답변했다.  유펜 대학이라면 경영학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곳이라 자세한 프로그램을 확인해 보지 않고 선택했는데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질문을 했던 학생은 지원 전 얼마나 자세히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고 선택해야 하는지를 피부로 배웠다.  또 함께 스외츠모어대학을 직접 방문했던 학생들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공부하던 지금까지의 학교 생활과 반대되는 궁금한 것들을 파고 공부하는 그 대학의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학문을 추구하기 위해 즐겁게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대학에 대한 설레는 기대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입학처의 공식 입학 설명회 참여하라   모든 대학은 입학처에서는 그 대학을 지원하기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어드미션세션을 제공하여 그 대학 혹은 단과대학의 특 장점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소단위 그룹으로 나눠 학교의 곳곳을 다니며 각 장소별로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는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 대학의 웹사이트를 통해 방문 일정을 예약할 수 있으며, 입학처에 자신이 이 대학을 방문했던 기록을 남기기 위해 등록을 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입학처 방문을 마친 후에는 담당자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정보를 받을 수 있어 후에 궁금한 점을 물어볼수도 있다.     많은 대학들이 이제는 특정 전공이나 관심 분야에 포커스를 맞춘 캠퍼스 투어를 운영하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이 정해진 학생들이라면 직접 강의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 이런 경험은 대입 지원서에 꼭 제시되는 ‘왜 우리 대학에 지원했는가’ ‘우리 대학의 미션이 당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의 에세이 주제에 자신만의 특색있는 답변을 준비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현실적인 신중한 선택     결혼을 할 때 내 인생의한 개의 소중한 결혼 반지를 끼워줄 반려자를 찾기 위해서 데이트를 하며 상대를 잘 알고 선택하는 경험이 중요 하듯이 자녀들이 인생에 중요한 성장과 변화를 가져다 줄 대학 선택을 위해 지인들의 평가, 신문, 방송에만 의존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가족이 함께 직접 경험할  기회를 만들 것을적극 추천한다.   ▶문의:(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구체화 대학 대학 지원자들 대학 탐방 대학 선택

2023-04-08

11학년생 5월부터 시니어 대입 준비 시작해야

희망대학 10개 정도 선정 에세이 구상은 여름부터   액티비티 포기 아직 일러 대학 탐방 시간낭비 조심   5월에는 시니어들이 대거 졸업한다. 이제부터 11학년생이 최고 학년인 시즌이  시작됐다. 자녀들에게는 백투스쿨하는 8월 중순에야 12학년 생활이 시작되지만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12학년이 5월부터 시작된다. 바로 5월1일을 기해서 모든 시니어들은 자신이 진학할 학교를 확정해서 대학에 통보를 완료한 상태로 12학년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지막 AP시험을 마치고 기말고사만 마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제 5월이 시작됐는데 이미 12학년이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AP시험 준비는 마쳤을 상황이고 기말고사도 곧 지나간다. 그러면 6월이다. 이는 방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6월에 가서 뭔가를 준비한다고 나서는 자녀를 두고 봐서는 안된다. 아주 특이한 경우, 자녀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6월 본격적 대입 시작: 희망대학 찾기   봄 학기를 끝내면서 자녀의 계획표에는 없겠지만 대입 과정이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희망 대학 선정작업부터다. 이제까지 대학 선정과 관련된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이 드림 스쿨, 매치 스쿨, 세이프티 스쿨로 나누는 것이다. 진부한 측면이 있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가주 출신을 기준으로 따져보자. UC 9개 캠퍼스를 보면 자녀들의 GPA와 교내 등위로 대략 맞춰볼 수 있다. 버클리인지 LA인지 혹은 머시드에서 데이비스까지 세워볼 수 있다.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명문 사립대학과 리버럴 아츠 칼리지까지 꼽아 볼 수 있다. SAT점수도 참고해볼 수 있다. 대학 입시에서 대학 선정은 현실이다. 너무 높은 목표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합격 가능한 대학을 알아봐야 한다.   대입 컨설팅 전문가들은 "희망 대학은 대략 10개의 학교로 줄이는 게 좋다"며 요령을 설명한다. 우선 "가능하다면 합격이 가능할 것같은 대학을 50%쯤 잡고 아래 위로 드림스쿨과 세이프티 스쿨을 선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원서는 결국 20개를 쓴다지만 그래도 10개로 압축하는 게 좋다.   물론 치열한 입시 경쟁이 매치 스쿨이 매치되지 않고 세이프티 스쿨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입시 관련 업계의 최근 입시 결과에 따른 분석이다. 그래도 계획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과정과 결과가 다르다. 드림 스쿨을 50%쯤 잡고 그 중에서도 난이도를 정해서 목표를 정하는 게 왕도다.     ▶여름방학에만 할 수 있는 것: 캠퍼스 투어   희망 대학 중 몇 곳을 여름방학에 캠퍼스 투어로 직접 방문하는 것이 좋다. 모든 대학에 갈 수는 없더라도 일부라도 가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가주 출신이라면 가까운 UC계열 대학과 옥시덴탈 칼리지, LMU, 페퍼다인, 캘텍에 가 볼 수 있다. 물론 자녀의 희망 리스트에 있는 곳이어야 한다. UCLA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성적인데 탐방에 나서는 것은 아쉽지만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부모 중에는 자녀의 동기부여를 위해서 탐방을 강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11학년에서 12학년에 다가서는 시점에서의 동기부여는 의미가 없다. 동기 부여는 9학년이나 10학년에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자녀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면 전체 입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LA인근 지역에 대한 탐방이 끝나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대학에도 방문한다.아울러 시간과 재정적 여유가 있다면 동부에 있는 대학에도 탐방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대학에는 교문 앞에도 가지 않는 게 좋다. 시간낭비다.   예를 들어 동부 대학중 자녀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가본다. 만약 NYU에 관심이 있다면 가족 여행으로 뉴욕을 택하고 그 일정 중 하루를 NYU에서 머무는 것으로 계획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학교를 가봐야 배우는 것도 있고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 그저 가족들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 보스턴의 대학을 찾아가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름방학에 해야 하는 것: 에세이 쓰기, 추천서   희망 대학 선정과 아울러 여름방학에 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에세이 쓰기다. 공통지원서에는 공통 에세이와 학교마다 추가 서류, 추가 에세이가 있다. 희망 대학에 맞춰서 주제를 미리 파악하고 여름방학에 대략 작성해 놔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름방학에 미리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부모가 아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대입을 앞둔 부모라면 여름방학의 에세이 작성을 꼭 기억해야 한다.   또한 추천서를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지도 여름방학에 생각해 둬야 한다. 누가 자녀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추천서를 써 줄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막상 8월 개학 후에는 이런 작업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누구나 추천서 써줄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너무 늦은야때는 없다: 과외 활동   12학년을 앞둔 시점에서 엑스트라 커리큘러 액티비티 즉, 과외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 학생들의 얼굴과 경험이 모두 다르듯이 상황이 다를 수 있다.   12학년이 되는 여름방학에 시작한 과외활동이 입학사정관에게 깊은 인상을 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3~4년간 내내 해온 액티비티에 점수를 더 준다. 하지만 3년간 해온 액티비티가 2개 뿐이고 몇 칸이 남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빈 칸보다는 한 줄이라도 적어 넣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1만 달러를 내고 스탠포드대학에서 운영하는 서머캠프에 참가하는 것이나 친구들과 간단한 등산 클럽, 하이킹 모임 만들어서 이를 써넣는 것이나 한 줄 채우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3개가 다른 액티비티라고 해도 입학사정관 입장에서는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러니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이런 저런 것이라도 시도해서, 비록 훌륭하지 않더라도 빈 칸으로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 주말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어떤 봉사를 하고 그것이 1주일에 한 번 씩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입학 사정관들은 이런 것이 별다른 봉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하지 않고 빈칸으로 비워두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빈칸 채우기용 '엑스트라' 액티비티도 에세이에 남기면 된다. 에세이 쓸 때 반영할만한 활동으로 여름방학에 열심히 노력하도록 독려하는 게 좋다. 곧 12학년이 된다고, 과외 활동이 적다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UC대학들만 해도 과외활동을 변별력에 넣는 경우가 많다.     ━   알면 도움되는 교육용어     ▶CollegeBoard(칼리지보드)=전국적인 차원에서 적성검사와 학습성취도 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 기관으로 비영리 회원제 협회로 4200군데에 달하는 각급 학교, 칼리지, 대학, 교육관련기관이 회원이다. 대학 표준시험인 SAT 및 PSAST/NM-SQT, CLEP, AP 등을 주관한다. 웹사이트: www.collegeboard.com   ▶Community College(커뮤니티 칼리지)=주정부가 운영하는 2년제 대학으로 인근 주민과 학생에게 기초 학문과정, 기술 과정, 평생 학습과정을 제공한다. 학비가 저렴하고 입학이 쉽다. 고교생들이 고교에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AP과목 대신에 수강한다. 2학년을 마치고 4년제 타대학으로의 편입하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티 칼리지 연합회에 따르면, 미국내 커뮤니티 대학수는 1200여 개로 전체 대학의 46%에 달한다. 장병희 기자학년생 시니어 대학 입시 희망 대학 대학 탐방

2022-05-08

사계절 온화한 태평양 '서핑의 메카'

북미를 3년 넘게 구석구석 다니고 있다. 도시를 지나지만 번잡하지 않은 시골에 머무른다. 자연은 안식과 심연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넓은 북미대륙의 자연풍경은 동서를 가르는 로키산맥을 기준으로 확연히 틀린 경치가 펼쳐진다. 로키산맥 동쪽으로는 대평원이 펼쳐지고 특징없는 잔잔한 산들과 남쪽으로는 대지가 이어진다. 동부를 끼고 있는 대서양 바다는 냉냉하고 밋밋하다. 반면 안개에 쌓인 태평양 바닷가는 아련해 동양화 화폭같이 아름답다. 서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풍경이 장관이지만 동부는 신대륙 개척과 오늘의 미국을 일궈낸 역사가 볼거리다. 많은 민족들이 이민와 섞여사는 미국의 도시와 마을은 개성이 뚜렷하다. 서해안은 동해안보다 개척이 늦고 정착한 다양한 민족과 날씨의 영향으로 동부와는 문화의 차이가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스페인 식민지였고 멕시코의 영토였기에 서해안의 남서쪽 지역은 히스패닉 문화가 강하다. 서해안 도시는 인구가 많은데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집중해서 살고 있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과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이 유명한 문화 중심지이다. 서해안은 또한 미국 내 녹색 도시의 비율이 비례적으로 높아 자전거 타기 및 유기농 농사와 같은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프랑스 작가 기욤 페이는 캘리포니아와 유럽을 비교하면서 캘리포니아는 "비정통성, 히스테리컬 한 땅(지진), 동서문화의 조화의 장소, 끊임없는 소용돌이의 현장, 끊임없는 유행의 리듬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했다. 태평양 북서부, 포틀랜드와 시애틀은 모두 세계의 커피 수도로 간주된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에서 시작 되었지만, 두 도시는 소규모 커피 로스터와 독립 커피숍으로 유명하다. 북서부의 문화는 특히 바다, 숲, 산과 비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이런 영향은 많은 양질의 도서관과 서점(Powell's Books와 Seattle Central Library )과 "친환경적 환경과 영혼"을 가지고 있게 했다. 태평양 해안가 도시와 마을들은 다양한 개성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70마일 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몬트레이만 북쪽에 아름다운 해안도시 샌타크루즈가 나온다. 1760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신성한 십자가'라는 의미의 샌타크루즈라고 지명이 붙여진 곳이다. 샌타크루즈는 사계절 온화해 겨울에도 서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미본토에서 처음으로 서핑의 역사가 시작된 서핑의 성지이다. 1885년 3명의 하와이 왕자 형제인 조나 (Jonah), 데이비드 (David)와 에드워드 카와나나코아(Edward Kawananakoa))가 고향의 바다를 그리워하며 서핑을 하다 서핑을 전수했다. 이후 하와이 출신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이며 전설적인 서핑 선수인 듀크 카하나모쿠가 샌타크루즈에 정착하며 서핑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백 년 전에는 세계 최초의 서핑박물관(Santa Cruz Surfing Museum)이 해안가 등대 1층에 세워져 서핑의 메카가 되었다. 박물관에는 카하나모쿠가 만든 최초 서핑 클럽의 역사도 볼 수 있다. 1963년 비치보이스(Beach Boys)가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한 경쾌한 리듬의 'Surfin' USA'. 노래 가사에도 샌타크루즈가 나온다. 샌타크루즈는 1927년에 현지 신문이 그 별명을 지은 후 "서프 시티(Surf City)"라는 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샌타크루즈는 서핑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면서 샌타크루즈 비치 보드워크(Santa Cruz Beach Boardwalk)가 생기고 도시가 유원지화 됐다. 또 이곳은 고래들의 이동 통로여서 대왕고래, 귀신고래, 흑고래 등 다양한 고래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샌타쿠르즈 해안에는 파도의 높이에 따라 자기 실력에 맞게 파도타기를 즐기는데 서핑 박물관 앞 해안가 포인트 샌타크루즈(Point Santa Cruz)가 서퍼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다. 높은 파도를 가르며 공중 회전을 돌고 점프를 하며 빠른 속도에서도 안정적으로 몸의 균형을 잡아가는 서핑을 보노라면 마치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의 야구경기를 관전하듯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하다.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도는게 파도타기 관전이다. 알림=지난 3년여 동안 연재해 온 '신현식의 대륙탐방'이 이번 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2019-09-24

거칠지만 멋진 풍경…카우보이 영화 단골 촬영지

1610년 미 대륙에 영국인 이민자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기 이민자들이 해안가에 마을을 만들고 농경지를 경작하며 정착에 성공했다. 이민자가 증가하자 내륙으로 땅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땅을 두고 아메리칸 인디언과 이주민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1620년부터 1890년 사이에 백인 정착민(white man)과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 사이의 정복 전쟁을 미국 인디언 전쟁(American Indian wars)이라고 한다. 1800년대에는 미국 인디언 전쟁이 대규모로 커졌으며 인종 청소, 학살 등으로 표출되었다. 1890년 12월 29일 큰발 추장(Big Foot)은 자신을 따르는 350여명의 수족 인디언들과 함께 운디드 니 크릭 근처의 라코타 족 파인 릿지 인디언 보호구역(Pine Ridge Indian Reservation)으로 이동했다. 제임스 포사이스(James William Forsyth)대령이 지휘하는 제7기병대 500여명이 항복한 인디언들을 무장해제하던 중 한 인디언이 저항했다. 포위하고 있던 미군들은 인디언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무기를 가지고 있던 인디언들은 반격을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비무장의 인디언들 까지 사살되었다. 이 사건으로 큰발 추장을 비롯 노인, 여자와 어린아이 146명이 사망하고 5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군은 25명이 숨지고 39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미국은 운디드 니 전투(Battle of Wounded Knee)라고 표현하고 인디언들은 학살(massacre)이라고 주장한다. 미군은 운디드 니 전투를 인디언과의 마지막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대평원 평정의 대미를 장식했고 미대륙에 평화가 찾아왔다. 서부가 안정이 되고 미국은 넓은 국토와 풍부한 천연자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미국은 부국이 되고 국민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1872년 인디언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은 윌리엄 프레데릭 코디(William Frederick Cody)가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Buffalo Bill's Wild West Show) 공연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1872년 시작한 와일드 웨스트 공연은 수백 명의 카우보이, 인디언, 기병대원들이 배우로 나와 서부 개척시대의 모습을 재연했다. 영화가 나오기 이전의 대규모 공연으로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 들어 토머스 에디슨 등 세기의 발명가들에 의해 영화 영사 장치가 발명되고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서부개척사는 극적이며 흥미진진해 무수한 서부극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디언을 물리친 미국인의 개척정신을 그린 서부극은 1914년 '대열차 강도'를 시작으로 미국영화의 독점적인 장르로 발전해 나갔다. 서부극 전문 거물급 감독 존 포드의 '포장마차'(1939), '황야의 결투'(1946) 등이 유명하며 1952년 게리 쿠퍼가 주연한 '하이눈'이 서부극의 고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부영화는 1960년대 들어 서부개척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인디언 학살을 반성하는 아서 펜 감독의 '작은 거인'(1970), '솔저 블루' 등의 서부극이 제작되기도 했다. 서부 영화에는 눈 덮인 산과 바위, 사막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어울어진다.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에 걸쳐 자리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유타주 남동부의 모압(Moab), 와이오밍주 티턴 산맥(Teton Range), 유타주 캐나브(Kanab), 캘리포니아주 앨라배마 힐스(Alabama Hills) 등에서 촬영을 했다. 서부영화 제작자들은 1920년부터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동북쪽으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mountain range)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론 파인(Lone Pine) 마을 주변 앨라배마 힐스(Alabama Hills)에서 400개 이상의 풍경을 찍었다. 지금도 이지역에서 영화와 자동차 광고를 촬영한다. 론 파인 휘트니 포털 로드(Whitney Portal Road)를 타고 서쪽으로 2마일 가량 이동하면 무비 로드(Movie Road)를 만나는데 영화를 찍었던 장소를 둘러볼 수 있고 마을에는 서부영화 박물관(Lone Pine Film History Museum)이 있다. 2006년 개장한 서부영화 박물관은 서부 영화 장르와 관련된 다양한 컬렉션을 수집, 보존 및 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서부영화 박물관 중 하나인데 미국의 개척시대 역사도 엿볼 수있는 곳이다.

2019-09-17

강제수용된 일본계 11만 명의 흔적

에드거 케이시(Edgar Cayce)는 미국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 20세기 최고의 예언자로 불린다. 그는 1929년 대공황을 예견했고, 1935년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일본이 함께 손잡고 세계2차대전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2차대전 이후 유대인의 이스라엘 탄생과 광우병, 소련 해체를 정확히 예언하는 등 인류의 운명에 관한 수많은 예언을 했다. 그리고 대량살상용 미사일이 LA를 겨냥해 극동지방에서 발사 된다고 예언 했다. 대량살상용 미사일이 LA를 겨냥해 북한에서 발사됐다. 미국의 강력해진 제재와 경제적 파탄, 선제공격 가능성으로 국가 존속의 절대절명 위기에 처한 북한이 미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 공격을 한것이다. 그러나 미 본토에서 27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미국의 대공방어 미사일이 이를 요격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미국은 전시상태를 발령함과 동시에 LA를 중심으로 미 전역에 흩어져 체류하는 한국인 영주권자, 학생, 주재원, 여행자에게 수일내 미국에서 강제출국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인 시민권자 한인들을 오지의 집단수용소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가상의 이야기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약 11만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했다. 일본인들은 일찌기 하와이로 이민와 성공적으로 정착을 했고 1900년대 초에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농업을 했다. 일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성공해 나갔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볼모가 된 일본계 미국인들은 전쟁과 무관한 선량한 미국시민들이었다. 같은 시기 적대 국가였던 독일계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감시를 했을뿐 집단 강제수용은 하지 않았다.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수용한 것은 어떻게 보면 미국 백인에 의한 동양인 인종차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면 특정 민족이나 인종, 새로운 이민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박해한다. 미국 역사상 차별과 천대받은 대상들은 흑인노예, 미국원주민, 동양인이다. 미국은 1800년대 미시시피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들을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킨 전력이 있다. 지금도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인종차별적 정책과 발언을 스스럼없이 한다. LA를 출발해 캘리포니아 내륙을 종단하는 395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 데스 밸리 서쪽입구 마을 론 파인(Lone Pine)이 나오고 16마일 더 올라가면 2차대전시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했던 지금은 국립사적지가 된 만자나 강제소용소가 나온다. 만자나는 LA와 캘리포니아 출신 일본계 미국인 1만여명을 집단수용했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이후 1942년 2월 23일 일본 잠수함이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나타나 사격을 가하고 사라지자 서부해안 방어를 위해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 일본인들을 우선 강제수용했다. 약 11만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10곳에 나눠 수용했다. 서부지역 방위사령관인 존 드윗 장군이 이 지역 일본인들이 폭동과 사보타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방부에 보고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42년 5월 3일 서부지역 방위사령관인 존 드윗의 포고문이 발표되었다. "5월 9일 정오까지 모든 일본계는 정부에서 지정한 장소로 집합할 것. 이 시간부터 일본인들은 주거를 옮기는 것을 금함. 소지품은 1인당 트렁크 2개만 가능. 나이프와 포크, 숟가락, 접시, 컵, 밥그릇, 냄비 등을 지참할 것." 만자나에 강제수용된 일본인들은 비좁은 수용소 생활보다 한여름에 화씨 110도 이상 오르는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겨울의 추위에 고생했다. 인권은 상상할 수 없는 단어였다. 일본인들은 만자나 강제수용소에 1945년 11월까지 약 3년간 갇혀 지냈다. 수용소에서 멸시를 받으며 살고 있던 일본계 미국인 청년 1200명이 미군에 자원입대해 이탈리아에서 전공을 올렸다. 당시 LA에 살던 한국계 미국인 김영옥은 442연대 100대대의 작전장교(김영옥 대령은 미군 최초 동양인 출신 전투부대 대대장이었고 한국전에도 참전한 전쟁 영웅이다)로 일본인들을 이끌고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만자나 수용소는 1972년에 캘리포니아주 사적지로 지정이 되고, 1988년 미국정부는 당시 강제수용되었던 일본인들에게 1인당 2만 달러씩 보상했다. 1992년에 부시 대통령은 '일본인 강제수용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며 미국 국민을 대표해 공식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만자나는 한국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시기 한국을 식민통치했던 일본이기에 감정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번영을 걱정하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로서 한번 쯤 들러봐야 할 곳이 아닌가 싶다.

2019-09-10

'성이란 무엇인가'…뮤지엄에서 답을 찾다

세계인이 뒤섞여 사는 도시 뉴욕은 세계의 중심지 답다. 약 17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인구의 36.7%가 외국 태생이고 지배적인 국적은 없다. 한인도 14만명 정도가 뉴욕시 전역에 흩어져 산다. 전철을 타보면 영어는 온데 간데 없고 전세계 다양한 민족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인종이 섞여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팅 팟'(Melting Pot)을 실감한다. 길을 나서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수많은 인종들과 그들이 가져온 생활과 문화의 산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수백 년 전에 이민 온 사람과 몇 달 전에 이민 온 사람, 오늘 도착한 관광객이 섞여 사는 곳이 뉴욕이다. 이렇게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민족이나 다른 문화를 자연스레 수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뉴욕에선 주민이나 여행객 사이에 이질감이 없다. 이런 요소들이 용광로 도시 뉴욕의 특징이고 매력 아닌가 생각한다. 뉴욕은 수많은 인종 만큼이나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다. NY.COM에 따르면 뉴욕시 5개 자치구(맨해튼, 퀸스, 브롱스, 브루클린, 스탠튼아일랜드)에는 총 83개의 박물관이 있으며 맨해튼에만 32개의 박물관이 있다. 위키피다아 뉴욕시 박물관 목록에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같은 대형 박물관에서 부터 개인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조그만 전시관, 유대인 박물관, 중국 박물관 같은 민족 박물관과 비영리 아트 갤러리, 아트 센터 등 230여개의 각종 박물관을 열거해 놨다. 뉴욕을 찾는 수천만 명의 관광객들이 순례지처럼 방문하는 곳이 맨해튼 5대 박물관이다. 센트럴파크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있고, 서쪽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1870년 만들어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전 세계의 예술 작품 200만개 이상을 소장한 세계 최대 규모다. 5번가(5th Ave)를 따라 82가에서 110가 사이 '뮤지엄 마일'(Museum Mile)에 9개의 박물관이 있다. 뉴욕의 5대 박물관 중 하나인 구겐하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센트럴파크 서쪽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외국인들도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피카소, 달리, 마네, 모네, 마티스, 폴락, 워홀 등 문외한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MOMA(Museum of Modern Art)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다. 항공모함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인트레피드 해양 항공우주 박물관(Intrepid Sea, Air and Space Museum)을 포함해 뉴욕의 5대 박물관이라고 한다. 맨해튼에는 이렇게 대규모의 유명한 박물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내 곳곳에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들이 산재해 있다. 섹스 박물관(Museum of Sex)도 그중 하나다. 맨해튼 한인타운이 있는 32가에서 동남쪽으로 서너블럭 내려가면 2002년 10월 5일 개장한 '섹스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만 18세 이상의 성인만 입장할 수 있다. 1층은 기념품 가게로 각종 성과 관련된 기구, 기념품, 서적 등을 판매한다. 2층부터는 전시장이다. 전시실에는 각종 그림과 사진 그리고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부부, 친구, 애인들이었다. 오히려 여성 관람객이 많은 듯했다. 이 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19세기부터 1990년대 초까지 유흥가로 사창가, 술집 및 댄스홀 등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다. 섹스 박물관 전시품들은 유능한 학자, 예술가 등이 제공하는 1만5000개의 유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인간의 섹슈얼리티의 역사, 진화 및 문화적 중요성을 보존하고 제시하며 다양한 문화, 시대 및 미디어의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며 금기시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구 컬렉션 외에도 액션 섹스 앤 모션 이미지, 만화책, 동물의 성생활, 로봇 등 박물관의 수집은 자체 연구와 현대 미술의 추상적 개념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한다. 섹스 박물관은 뉴욕 대학의 성 연구 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Human Sexuality), 뉴욕 공공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과 공동 연구를 한다. 섹스 박물관 행사는 뉴욕타임스, 뉴요커와 같은 간행물에 정기적으로 다루어지며 CNN, NBC의 여러 프로그램에 소개 되기도 한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터부시하는 성행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식을 얻게 하는 독창적인 곳이다. 인간에게 섹스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섹스를 해왔고 할 것인가? 섹스는 종족 번식 외에 인간다움을 증명하는가? 안전한 섹스는 무엇인가? 해법을 찾을수 있는 곳이다.

2019-09-03

상상과 현실 사이…사막속 '외계인 메카'

어렸을 적 국민학교도 다니기 전이었다. 동족상잔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재건이 가속을 내던 시절이었다. 먹을게 모자라 동회 앞마당에는 미국의 원조식량인 옥수수와 분유를 배급받기 위해 긴줄을 서야했고 학교에서는 결식하는 애들이 많아 점심시간에 옥수수빵을 나눠줬다. 거칠고 딱딱한 옥수수빵의 구수한 냄새는 일품이었다. 이때 기억으로 미국에서도 가끔 콘브래드를 사먹지만 그때 맛을 찾을 수 없다. 어른들은 명절이고 생일이고 모이면 술안주로 육이오 전쟁(한국전쟁) 얘기를 했다. 연세드신 분들은 피난생활의 애달픔을, 전장에서 살아남은 큰형이나 삼촌들은 총알과 폭탄이 빗발치던 절대절명의 순간들을 얘기했다. 야간 매복작전에 인민군이 뒤에서 덮쳤지만 구사일생한 친척 형은 지금도 누구든 무엇이든 등뒤에 있는 걸 두려워했다. 늘 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거나 했다. 나는 전생에 전장 경험이 있었는지 얘기만 들어도 전쟁은 공포스러웠다. 밤에 쌕쌕이 비행기가 멀리 지나가도 전쟁의 두려움으로 얼굴을 이불에 파묻으며 공포를 달랬다. 다시 전쟁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는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로는 전쟁공포증이 희미해졌다. 오히려 1, 2차 세계대전 비사, 태평양전쟁(미국과 일본의 전쟁), 한국전, 월남전 등 세계의 분쟁, 전쟁사를 책과 영화로 섭렵했다. 인간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였다는 것을 각인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민족간의 갈등과 분쟁으로 잔인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민족과 종교와 이념을 내세운 국수주의자와 독재자, 극소수 이익집단의 이기를 위해 분쟁을 일으킨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력을 장악하고 대중을 선동해 자신들만이 선택 받았다고 주장하고 쇠뇌하는 것이다. 국론이 분열되고 결집력이 약한 후진 민족이나 작은 나라는 물리적, 경제적으로 지배 당한다. 군사력과 경제적 강자만이 생존하는 양육강식이 적자생존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2017년 나사(NASA)는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높은 지구와 매우 흡사한 크기의 행성 10개를 발견했다. 반신반의하던 UFO와 외계인의 실체, 외계인의 지구침투가 염려된다. 21세기 세계 최강의 국력을 가진 미국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비밀과 극비장소들이 많다. 일반인들에 공개되지 않는 비밀들은 대개 국가안보나 세계평화를 가장하고 숨겨져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서쪽으로 120마일 가량 떨어진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51구역(AREA 51)이라는 1급 비밀 군사기지가 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그룸 호수 공군기지(Groom Lake Air Base)다. 서울의 두 배에 육박하는 시설이 구글 맵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접근, 촬영, 취재금지가 되어 있는 삼엄한 곳이다. 51구역 군사기지는 외계인이나 UFO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며 지구에 추락한 UFO 잔해를 보관 중이거나 외계인과 공동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확인 할수 없는 얘기들이 떠돈다. 이 지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UFO같은 정체불명의 발광 물체가 출몰하거나 의문의 굉음이 울린다고 말한다. 세계 도처에서 UFO와 외계인을 만났다는 수많은 기록과 증언들이 있다. 선사시대 벽화에도 UFO와 외계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현재의 인류의 기술력으로도 만들어 낼수 없는 대규모이거나 정교한 고대 유물이 많다. 불가사의한 유물들은 외계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았거나 외계인들이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 했거나 지배했을 증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2010년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가 다큐멘터리 '스티븐 호킹의 우주'(Stephen Hawking's Universe)를 만들며 외계인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침팬지가 양자이론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의 뇌로 생각할 수 없는 지능적인 생명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 사는 인간을 만나러 오는 외계인을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에 비유했다. 인디언들에게 외계인 격인 콜롬부스가 인디언들을 살상하고 문명을 파괴 했듯이 외계인의 지구 침략은 재앙일수 있다고 경고했다.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는 외계인과 어린이들이 우정어린 교류를 하는 친근한 이미지의 외계인을 그리기도 하고, 외계인의 지구침략을 영화로 만들어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네바다주 51구역 그룸 호수 공군기지는 철저한 보안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공군기지는 U-2 정찰기나 SR-71 블랙버드, F-117 스텔스기 등 미군의 최첨단 무기를 극비리에 테스트하는 곳이라고 한다.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해 95번 국도를 타고 데스 밸리 방향으로 가면 아말라고사 밸리(Amaragosa Valley)가 나온다. 이곳이 그룸 호수 공군기지로 가는 사막교차점이다. 이곳에 '51구역 외계인 센터(Area 51 Alien Center: 2711 US-95, Amargosa Valley, NV 89020)'라는 곳이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막길을 수십마일 운전해 간 보람도 없이 51구역 외계인 센터에 들어가는 순간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다. UFO와 외계인을 캐릭터화해 각종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상점 겸 음식점이었다. 지구인들이 우려하는 만큼 UFO와 외계인에 대한 지식과 대처법을 배울 수 있는 외계인 박물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9-08-27

100년 전 광석타운이 이젠 '유령타운'으로

그가 한 번 노하시니, 땅은 뒤흔들리고, 하늘 기초도 뒤틀리며 흔들렸다. 코로는 연기를 내뿜으시고, 입으로는 불을 토하시며, 숯불처럼 모든 것을 살라버리셨다. 그는 하늘을 밀어 젖히시고, 검은 구름 위에 내려 서시며 거룹을 타고 날으시고, 바람 날개를 타고 내리덮치셨다. 몸은 어둠으로 감싸시고, 비를 머금은 구름을 두르고 나서시니, 그 앞에선 환한 빛이 터져나오며 짙은 구름이 밀리고, 우박이 쏟아지며 불길이 뻗어났다. 지극히 높으신 이, 야훼께서 천둥소리로 하늘에서 고함치셨다. 번개는 번쩍번쩍, 화살을 마구 쏘아대시어 원수들을 흩어쫓으셨다. 야훼께서 한 번 호령하시니, 바다 밑바닥이 드러나고 그의 콧김에 땅의 기초가 드러나는데··· ? 구약성서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이 글은 당시의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한 모습이다.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B.C.1400년경에 크레타 섬 북쪽 12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산토리니(Santorini), 현재 티라(Thira)섬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켰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화산 폭발은 산토리니 섬을 중심으로 에게해의 섬들과 크레타 섬이 붕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더 에번스(Arthur Evans)에 의해 크레타 섬 발굴이 시작되고 미노아 문명의 실태가 점차 밝혀졌다. 도자기, 벽화 등 수준 높은 물건들이 출토되었고 전성기에 인구가 5만 명에 달하는 지중해 동부 최대의 도시였음을 추측하고 있다. 철학자인 플라톤이 약 2500년전에 저술한 '크리티아스'에서 지상낙원 사라진 아틀란티스를 상세히 소개했다.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플라톤의 이야기는 모두 상상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고 플라톤이 살아 있을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학자들은 산토리니 화산 폭발에 파묻힌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을 하룻밤새 재난으로 대양 속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의 창이라고 조심스런 가설을 내기도 한다.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에 실재하였으며 유럽보다도 큰 대륙이었고 그들의 역사는 기원전 20만 년 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문명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전자공학은 극한까지 발달했었는데 아틀란티스가 멸망한 것은 레이저 광선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에너지원이 폭발해 초고대 문명은 흔적도 없이 바다로 사라져버렸다고 전한다. 지구 46억년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보면 인류 24만년 역사는 30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지구의 미스테리는 무궁무진 할수 있다. 지금도 아틀란티스의 이야기는 공상과학 소설, 영화, 문학의 소재가 되고 있다. 우리는 도시를 덮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고층건물들 아스팔트 도로 수많은 자동차와 문명의 이기들을 당연하게 접하며 살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다큐멘터리 영화 '인류 멸망 그 후(Life after people)'를 봤다. 인류가 사라지고 서서히 변해가는 지구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괴된 텅빈도시가 정글로 변해가는 모습은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죽음의 계곡으로 향하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 동쪽 입구 사막에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유령도시가 있다. 유령도시 라이오라이트(Rhyolite)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 마일 떨어진 불프록 힐스(Bullfrog Hills)에 있다. 1904년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금보다 광석 매장량이 많았다. 샘플로 채취된 광석이 당시 가격으로 톤당 3000달러 정도의 값어치를 가졌고 현재 시가로 톤당 7만8000달러라는 높은 가격이었다. 순식간에 불프록 광산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불과 1년후 1905년에 라이오라이트의 인구가 2500명이 되었다. 1907년에는 무려 6000여 명으로 인구가 불어나며 콘크리트 도로가 건설되고 전기, 수도의 공급과 전화와 전신시설, 경찰서, 소방서, 학교, 기차역, 철도화물 창고, 세 곳 이상의 은행, 주식교환소, 오페라 하우스, 병원, 공용 수영장, 교회같은 시설들이 들어서고 일간지와 주간지를 발행하는 언론사도 보유한 활성화된 타운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영화는 얼마 가지 못했다. 1908년, 광산의 가치가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 일부 투자자들이 영국으로부터 광산전문가를 초빙해 조사를 했다. 광산전문가의 비관적 평가에 광산의 값어치는 급격히 감소했다. 1911년에는 유리,도자기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이 지역 주요 광물인 유문암(Rhyolite)마저 매장량이 줄자 급기야 광산이 문을 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 사람들이 떠나며 그동안 건설되었던 많은 시설들은 근처의 비어티(Beatty)로 이전을 하게 되었고 라이오라이트는 순식간에 유령 마을로 전락하게 되었다. 도시나 마을도 흥망성쇠가 있어 부흥하기도 하고 망해 없어지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도시가 만들어져 6년여 만에 사라져버린 경우는 라이오라이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엔 영원한게 없다. 우리는 이땅을 잠시 빌려 살다 떠나는 유한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사막에 뼈대만 남아 황량한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거리를 걸었다. 1907년 7월 4일 시간을 고정해 놓은 안내판 사진속 희망에 젖어 이 길을 메웠던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19-08-20

사막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품고 있는 절경들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우연히 만난 어린 왕자가 사막 어딘가에 있을 샘을 찾아나섰다.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비행사는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라고 화답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내용이다. 생텍쥐페리의 잠언들은 감동으로 다가와 여운을 남기며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사막 같은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며 희망과 사랑 등 소중한 것을 망각한다. 비행사와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샘을 발견했듯이 소중한 것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메세지다. 데스 밸리는 덥고 메마르고 황량해 죽음이 연상되지만 사막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품고 있는 곳이다. 데스 밸리는 어린 왕자가 심안으로 샘을 찾듯 물질과 욕망, 이기심과 허영심에서 벗어나 겸허해질 수 있는 곳이다. 데스 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은 말그대로 극한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이 바다 해수면 보다 낮은 지역이다. 퍼니스 크릭의 샘물이 흘러 오아시스를 형성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현재도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다. 퍼니스 크릭 지역의 주요 관광지는 남쪽의 배드워터를 중심으로 179번 도로 일대와 남동쪽의 단테스 뷰(Dante's View) 중심의 190번 도로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데스 벨리 여행시 주의점과 안전수칙 1. 데스 밸리 국립공원 내 동, 식물은 물론 화석이나 돌을 가져가거나 훼손하면 자연보호법에 저촉된다. 2. 오토바이, 자전거를 포함한 모든 차량이 도로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불허된다. 3. 덥고 건조해 탈수현상이 쉽게 일어난다. 따라서 1인당 하루 1갤런의 물을 준비해야 한다. 하이킹에 나설 경우라면 보다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4. 모자와 선글래스, 여름옷과 재킷를 함께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5. 여름철 기온이 높을 때는 소금밭이나 해수면 보다 낮은 지대로 들어가지 않는게 좋다. 6. 주변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정차할때 갓길이 모래밭인 관계로 급정거는 절대 피해야 한다. 7. 길이 좁고 급커브길이 많으므로 과속은 금물이다. 4륜자동차 아니면 비포장 도로에 들어가지 않는게 좋다. 8. 에어컨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고 엔진 과열을 조심해야 한다. 엔진이 과열됐을 경우에 주차해 놓고 엔진을 켜놓은 상태에서 열을 낮추어야 한다. 9. 여행 적기는 10월에서 4월까지이다.

2019-08-13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계곡을 향해

이름도 무시 무시한 '죽음의 계곡'를 가기로 했다. 아내는 덥고 물이 없어 생명이 살수 없는 사막이 두렵다고 했다. 내키지 않는 표정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 나섰다. LA를 출발해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15번 프리웨이를 타고 북상했다. 베이커(Baker)에서 방향을 틀어 127번 국도로 접어들면 풍경은 본격적인 사막을 연출한다. 60여 마일 지나 쇼손(Shoshone) 마을에 내려 기지개를 편다. 손바닥 만한 마을의 마켓 겸 주유소는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명의 이기가 있는 곳이다. 비싼 기름값에 놀라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꾹꾹 눌러 기름을 채운다. 쇼손 마을 인근 차이나 대추야자 농장(China Ranch Date Farm)의 말린 대추야자를 한봉지 사들고 출발했다. 차창을 확짝열고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며 질리지 않는 달콤한 대추야자를 입에 넣고 운전해 간다. 쇼손을 출발해 몇마일 지나 해수면 보다 282 ft(86 m) 낮은 배드워터(Badwater Basin)와 용광로 같이 무더운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이 있는 죽음의 계곡으로 향하는 178번 도로로 갈아탔다. 60여 마일의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따라 가노라면 지형에 따라 변화무쌍한 풍경들을 만난다. 지난 겨울 데스 밸리에도 강수량이 많았나 보다. 4월들어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풀한포기 자라기 힘들것 같은 사막에 듬성 듬성 이름모를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차를 세워 풀한포기라도 밟을새라 조심조심 다가가 한참을 관찰했다. 비로서 내 아내는 활기찬 사막의 생명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경이롭게 바라본다. 호사가 있으려는지 호랑나비가 날고 노랑나비, 흰나비도 눈에 띤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볼수없는 것이 더 많다. 가시광선에 의해 볼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물리적 공간속 흐르는 시간의 단면을 보지만 나의 뇌에 기록된 잔상에는 감성과 의식의 이면이 내재 되어 있다. 어쩌면 나의 눈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에서 초자연적인 영적차원의 다른 세계도 포착했는지 모른다. 사막에 흰나비가 훨훨 날아가는 물리적 풍경에 영적 상상을 얹어 본다. 멀리 떨어져 임종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들에게 흰나비의 모습으로 환생해 애틋함을 전했던 어머니의 초자연적 현상이 겹친다. 사막의 흰나비는 그리운 어머니였는지 모른다. 데스 벨리 여행의 적기는 11월부터 4월이 좋다. 꽃피는 데스 밸리의 4월은 세상에서 제일 경이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4월중순이 되면 더워가 스물스물 땅을 뚫고 올라온다. 여름이 되면 용광로 같은 더위가 살인을 할수도 있다. 1913 년 7월 10일 오후, 미국 기상청은 데스 밸리(Death Valley)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에서 섭씨 56.9 도(화씨 134도)의 고온을 측정했다. 이 온도는 지구 표면에서 기록 된 가장 높은 대기 온도다. 데스 밸리 여러곳의 볼거리가 몰려 있고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가 위치한 곳의 지명이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이다. 데스 밸리의 배드 워터 분지 (Badwater Basin)는 북미에서 가장 낮은 해발 고도 (해발 282 피트, 86m)의 지점이다 퍼니스 크릭이 있는 배드 워터 분지는 북미에서 제일 높은 휘트니 산(14,505 피트: 4,421m)에서 동남쪽으로 84.6 마일 (136.2km) 떨어져 있으며 데스 밸리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텔레스코프 봉우리(Telescoope Peak 3,643 피트:3,366 m)사이의 협곡이다. 높은 산에 둘러쌓인 분지에 공기가 덥혀져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계속 덥혀져 용광로 더위가 되는 곳이다. 데스 밸리는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 중 제일 면적(5270제곱키로, 남한면적의 1/7)이 넓다. 1848년 갤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근처에서 금이 발견된 후 이듬해에 8만 명가량 일확의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1849년 겨울 약 100대의 포장마차가 솔트레이크 시티를 출발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1849년 12월 25일에 그 중의 한 집단이 눈덮힌 시에라 네바다 산맥(Sierra Nevada Valley)을 넘지 않고 지름길을 찾아 들어간 곳이 데스 밸리였다. 여자들과 어린이들도 포함된 이들은 데스밸리를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기진맥진한 데다 식량도 거의 떨어진 그들은 퍼니스 크리크 근처에서 야영을 했다. 스무 살인 윌리엄 맨리와 존 로저스가 도움을 구하러 2주 동안이나 걸어 로스앤젤레스 북쪽 샌퍼낸도에 도착했다. 물자를 공급받고 일행이 있는 데스 밸리로 25일만에 되돌아 왔다. 맨리와 로저스 덕분에 혼자서 야영지를 떠났던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살아남았다. 이곳을 떠나면서 한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죽음의 계곡이여 안녕(Good bye, Death Valley)"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데스 밸리에는 약 9000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쇼쇼니족 인디언(Timbisha Shoshone)들은 1000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식물들을 먹고, 그 식물들로 가재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지금도 퍼니스 크릭에 인디언 마을이 있다. 데스 밸리는 약 800만년 전에 생성된 호수에 바닷물이 증발해 소금밭이 된 평균기온이 화씨 120도를 넘나드는 척박하고 황량한 곳이지만 1000여종의 식물과 전갈 ,독거미, 방울뱀, 코요테, 매, 메추라기 도요새 등 수많은 동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경이로운 곳이다. 데스 밸리 동물들은 날씨가 몹시 덥기 때문에 주로 밤에 활동을 한다. 데스 밸리는 모짜르트의 진혼곡 같이 무겁고 어둡기 보다는 비발디의 봄같이 생명의 기운이 샘솟는 곳이다.

2019-08-06

지친 삶이 쉬는 '위로의 오아시스'

온천장 한인들이 약간의 무거운 표정으로 김씨의 트레일러 앞에 모였다. 김씨는 일주일전 몇몇 친하게 지내는 캠핑장 이웃들과 사막 오지생활을 위로하려는 듯 70마일을 달려 라스베이거스 뷔페식당을 갔다. 밥상머리에서 가슴이 답답해오며 어지러웠다. 심장병 전력이 있던 김씨는 직감적으로 심장이상을 느끼고 즉시 911에 연락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사막 온천장에서 심장발작을 겪었다면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생사를 장담할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큰도시에서 심장이상이 생긴게 천운이었다. 막힌 심장혈관에 스텐트(Stent·혈관 폐색을 막기 위해 혈관에 주입하는 것)시술을 하고 생명을 구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김씨가 아들차에 실려 테코파 온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LA집으로 가기위해 주섬주섬 짐정리를 하는 사이 사람들이 모였다. 넉살 좋은 김씨는 우수개 소리를 연발했지만 캠핑장 노인들은 그늘진 얼굴로 한마디씩 덕담을 했다. 김씨 부부가 아들차에 올라 손을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자동차는 김씨 일행을 싣고 LA를 향해 서쪽 빈도로를 달려 나갔다. 시간은 금새 김씨네 자동차를 지우고 낯익은 사막풍경을 연출했다. 4월로 접어들며 이렇게 한 늙은 부부가 캠핑장을 떠났고 인사만 나눴던 캐나다 알버타주에서 내려와 겨울을 지낸 캐나다 한인 부부는 철새처럼 말 없이 떠났다. 캐나다 부부의 웃는 모습과 꼭 닮은 순둥이 검은 세퍼트가 머리를 스쳐간다. 떠날 시기를 경고하듯 4월들어 스물스물 더위가 올라오더니 90도가 넘는 날이 이어졌다. 어제는 세찬 바람이 밤새 불더니 RV 타이어 커버를 벗겨 맨발이 되었다. 결국 타이어 커버 네짝중 한짝은 바람을 타고 사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일기예보는 다음주 사막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건너펀 RV캠핑장 박씨 부부는 겨우내 사용하던 짐을 정리하며 옮겨갈 짐을 픽업트럭에 싣고 있었다. 지나는 내게 작별 인사 대신 투박한 말투로 날씨 푸념을 했다. 이렇게 해서 길게는 서너달을 머물다 떠난다. 캠핑생활도 인생살이 같이 생기사귀(生寄死歸)다. 잠시 머물며 고단했던 삶을 돌아보고 추스리고 위로해 돌아가는 것이다. 80의 세월이 무색하게 정정한 송선생의 새벽 하이킹에 따라 나섰다. "해뜨기전 어둠이 깔린 오르막 경사진 도로를 걷는다. 사람에 놀란듯한 자동차가 속도를 줄여 지나간다. 한참을 걷다 도로를 휘돌아 메마르고 거칠어 발딛기 조차 조심스런 산길로 접어든다. 그사이 해가 뜨기 시작했는지 돌 언덕들이 다갈색을 하고 있다. 푸석한 잔돌이 박힌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가파러 숨이 턱에 찬다. 앞서가는 이는 힐끔 뒤돌아 보고 멀리 앞서 나간다. 산중턱 7부 능선에서 숨을 돌린다. 붉은 아침해를 받아 울퉁불퉁한 속살을 들어낸 '죽음의 계곡'이 멀리 시야에 들어온다. 먼산 밑에 보기드문 몇채의 사막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에 온기를 느낀다. 불빛에 생명의 향기를 그리며 안도한다. 길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정상에 도달해 반대쪽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아래 지평선에 목적지가 보인다. 잠시 돌무덤에 기대어 지나온 길을 되짚어본다. 시침마저 급했던 영원히 벗어날수 없을것 같았던 도시생활 이었다. 굴레를 이탈해 바람과 나무,물과 흙에 얹혀 살고 있다. 몸과 마음을 괴롭혔던 욕망과 갈등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불편하고 무심해서 행복한지 모르겠다. 길을 따라 간다." 우연히 한인타운 잡화점에서 테코파 김씨를 만났다.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테코파 온천은 테코파(Tecopa)는 캘리포니아 주 인요 카운티(Inyo County) 쇼쇼니(Shoshone) 마을의 남동쪽 약 9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1339 피트다. 1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테코파는 파이우트(Paiute)추장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테코파 온천(Tecopa Hot Springs)이 유명하다. 유럽 자동차 여행객들의 미국 서부 여행 필수 코스이다. 이곳에는 캠프 그라운드와 RV 파킹장이 있고 모텔도 있다. 온천장은 인요카운티에서 운영권을 임차해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캠핑이나 RV에 묵는 사람들에게는 온천장 이용은 무료다. 마을 입구에는 노천 온천탕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데 미국사람들은 남녀노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알몸으로 탕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곳에선 누드 온천이 자연스럽다. 테코파에서 쇼쇼니를 지나 몇마일 동쪽으로 가면 세계에서 제일 뜨거운 소금 사막 배드 워터(Bad Water)로 가는 데스밸리 국립공원 산길이 나온다.

2019-07-30

성공한 이민자 촌…매년 100만명 찾는 가주 명소

동북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는 석탄과 석유, 철광석이 매장돼 있어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1800년대에는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철강제국을 건설했다. 카네기가 만든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공장과 철도에 철강을 공급해 미국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 철강 생산의 3분의 2가 피츠버그의 제철소에서 생산됐다. 이 지역 초기 이민자들은 영국 등 앵글로색슨(Anglo-Saxons)족 출신들이었고 1800년대 중반에는 독일인과 아일랜드인이 이주해 왔다. 철강산업이 번창하자 1880년경에는 수천명의 동유럽과 남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피츠버그 제철소 노동자로 왔다. 피츠버그하면 전쟁의 지옥같은 참상과 인간성 피괴라는 전쟁 후유증을 그린 1978년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했던 베트남 전쟁 영화 디어 헌터(Deer Hunter)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에 등장하는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이민자 후손들인 피츠버그 제철공장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여느 이민자 집단처럼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사는 한동네 청년들이었다. 주인공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마을 사람들까지 전쟁의 상처에 고뇌한다는 내용이다. LA에 전세계에서 제일 큰 코리아타운이 있듯이 이민의 나라 미국은 시골, 도시를 막론하고 마치 원시 씨족사회처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모여 산다. 미국의 이민 역사는 17세기에 약 17만 5000명의 영국인이 북미로 이주를 하면서 시작됐다.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쳐 18세기까지 미국으로 온 유럽 이민자의 절반 가량은 농장의 일꾼들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북유럽, 동유럽인 순으로 유럽 이민자가 들어왔다. 북유럽, 동유럽 이민자들이 오기 전까지는 영국과 서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이민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1907년 한 해에만 무려 130만명 가까운 동유럽 이민자들이 몰려와 1910년에는 이민자 인구가 1300만명을 넘어섰다. 이민자가 급증하자 1924년 개정 이민법을 만들어 동유럽인, 유대인, 이탈리안, 슬라브 민족의 이민자 수를 제한했다. 1965년 이후에는 1882년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으로 막혔던 동양인과 남미인들에 이민문호가 개방되었다. LA에서 북서쪽으로 120마일 가량 떨어진 샌타바버러 카운티에 인구 5500여명의 소도시 솔뱅(Solvang: Sunny Field)이 있다. 솔뱅은 덴마크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덴마크 마을이다. 1800년대 말 미네소타주로 이민왔던 덴마크인들 일부가 추위를 피해 1911년 캘리포니아에 땅을 구입해 따뜻한 곳(Solvang)이라 이름짓고 덴마크인 공동체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40년대에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의 인구는 1000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덴마크인일 정도로 초기 북아메리카 식민사에서 덴마크인들의 활약은 적극적이었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의 심복이었던 한스 페비게르(Hans Christian Febiger, 1749-1796)는 덴마크계였다. 1860년부터 1930년까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덴마크인 30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덴마크의 이주민은 유타, 위스콘신, 일리노이, 미네소타,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주에 정착했는데 덴마크계 미국인 숫자는 2009년 인구조사로 151만 6126명이다. 덴마크인들은 민족성이 강해 정착하는 곳마다 루터교회와 민족학교를 세워 덴마크어를 가르치고 정체성을 확립했다. 1911년 솔뱅에도 루터교회와 민족학교를 만들어 언어와 춤과 노래 등 민족문화를 교육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민족주의가 팽배해지며 덴마크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민족주의가 수그러들면서 덴마크풍 스타일의 목조건물을 짓고 풍차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해 1년에 1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발전했다. 지금도 덴마크 타운 솔뱅 루터 교회는 크리스마스 예배를 덴마크어로 진행한다. 마을 입구에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미국 속의 유럽 덴마크 타운 솔뱅은 성공한 이민자 마을이다.

2019-07-23

캠핑카 탄생 100여년…미국인 25%가 즐긴다

미국은 캠핑문화가 발달되어있고 장비와 제반 시설도 잘되어 있다. 미국에는 1만3000개 이상의 개인 소유 RV 파크(캠핑장)와 1600개 이상의 국립, 주립 캠핑장이 있다. 미국에서 캠핑이라고 하면 대부분 캠핑카(Recreational Vehicle)나 트레일러(Trailer)를 이용한 오토캠핑을 의미한다. 캠핑카와 트레일러는 침대와 주방, 욕실이 갖춰진 움직이는 집이다. 캠핑장은 오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과 전기와 상수도를 연결하는 시설이 되어있다. 그리고 테이블,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틀(fire ring), 공동화장실, 샤워실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곳에 따라서는 놀이시설, 당구장, 수영장, 연회실 등을 갖춘 곳도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캠핑장 이용료는 보통 일주일 머물면 하루치를 빼주고 한 달이면 2주치 정도를 받는다. 6개월을 머물면 저렴하게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캠퍼들은 며칠 길게는 몇 달씩 묵는다. RV에서 사는 사람들을 풀타이머(Full Timer)라고 하는데 미국과 캐나다의 추운 지방 사람들이 겨울에 따듯한 애리조나, 플로리다 등 남쪽으로 내려와 길게는 6개월을 지내며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RV캠핑 생활을 한다. 이들을 일명 스노우 버드(Snow Bird)라고 칭한다. RV 산업협회(RV Industry Association)에 따르면 미국에서 풀타임 RV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100만 명이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RV 소유 가구의 전형적인 가계 수입은 약 6만2000달러다. 이 가족들은 RV를 사용하여 매년 평균 4주를 보내며 RV 소유주의 약 54 %가 애완 동물을 데리고 있다. 2001년 이후 미국 RV차량 가구 소유가 16% 증가했는데 RV를 구입하는 주된 이유는 가족 중심으로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다. RV휴가는 호텔, 식사, 교통비 등 전형적인 여행에 들어가는 비용이 60 % 이상 저렴하다. 미국인 5명 중 1명은 RV캠핑과 관련된 하이킹, 트레킹 휴가를 선호한다고 한다. 조리와 숙박이 가능한 캠핑카는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캠핑카의 기원은 15세기 체코의 보헤미안 지방 집시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에서 넘어온 집시들이 마차 위에 집을 얹어 놓고 살았는데 바로 이것이 캠핑카의 시초이다. 최초의 캠핑카는 1908년 한 집시가 헨리 포드에게 부탁해 포드 자동차를 개조해서 캠핑카를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사람은 헨리 포드였는데 1913년 여름휴가때 캠핑카를 만들어 떠나면서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100년 전 자동차의 대중화와 도로의 확장 탐험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정이 캠핑카의 성장을 불러왔고, RV 산업이 태어나게 되었다. 1910년 미국에는 주유소와 포장도로가 거의 없고, 고속도로도 없었지만, RV(Recreational Vehicle)가 만들어졌다. RV 산업의 탄생이었다. 캠핑카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훌륭한 밤을 지낼 수 있도록 하였고 또한 홈쿠킹(home cooking)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1930년대 만들어진 RV는 비행기에 쓰이는 알루미늄을 사용했으며 침대, 주방, 전기, 수도를 갖추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RV 산업은 이동성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증가로 번영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는 30피트의 고급스러운 모델이 등장하고 1959년에 이르러 차로 견인할수 있는 트레블 트레일러(travel trailer)가 선보였다. 수많은 오늘날의 RV제조 회사들은 1950년에서 1960년대에 생겨났다. 1970년대 이후 캠핑카는 전쟁과 평화, 호경기와 불경기, 사이버 혁명을 거치며서도 견뎌왔고 오늘날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텍사스주 아마릴로(Amarillo)시는 1950년대까지 동서를 잇는 루트 66도로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40번 프리웨이가 지나가는 중부 대평원 팬핸들(Panhandle) 지역은 석유산업, 농업, 교통의 중심지다. 교통과 물류 중심지인 이곳에 잭 시세모어 RV박물관(Jack Sisemore RV Museum)이 있다. 트렌트(Trent)와 잭 시세모어 부자가 1974년부터 RV 대리점을 하면서 30년 전에 RV박물관을 개설했다. 이 박물관에는 1935년 홀만(Holloman)박사가 제작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에어스트림(Airstream) 토피도(Torpedo:어뢰)가 전시되어 있고 현재 2대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회사로 유명한 앤하우저 부시(Anheuser Busch) 회사가 1921년 만든 램스티드 캠프카(Lamsteed Kamkar)가 전시되어 있다. 그외에도 50년대부터 70년대의 희귀하고 진귀한 캠핑카들이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매해 여행을 한다는 잭 시세모어 RV박물관장의 아들 트렌트는 "인간은 모험을 즐기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여행은 영혼을 일깨워준다. 캠핑카는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발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잭 시모어 RV박물관은 향수에 젖어 옛길을 달려보는 루트 66(Route 66) 여행에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곳이다.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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