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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자극 과잉시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곳곳 확성기에서 정신과 응급상황을 외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숨 가쁘게 “코드 그린!” 소리친 후 병동 번호를 알린다. 평온한 목소리로 전해주면 안 될까. 하기야 그러면 아무도 급히 반응하지 않을지도 몰라.   꽃을 뜯어먹으려는 사슴이 앞뜰을 침범하는 순간 “어이!” 하며 곱게 의사를 전달하면 싹 무시당한다. “야!” 하고 고함을 질러야 후다닥 도망간다. 사슴도 정신병원 의사들도 경미한 자극에는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다.   ‘sensory overload’, 하면 얼른 귀에 들어오는 말을 놓고 사전은 감각과부하(感覺過負荷)라 묵직하게 해설한다. 참 뻑적지근한 한자어다. 자극이 지나치면 금세 접수할 수 있지만 낮은 목소리는 신경계통에 등록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약물의 복용량도 마찬가지. 과량은 극심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소량은 무효하다. 생물체는 사슴이건 사람이건 늘 예민한 상태를 넘나든다.   세포는 생존을 위하여 세포막으로 외부 물질을 차단한다. 우리 몸을 감싸고 보호하는 피부, 도둑의 접근을 사전에 방지하는 집의 담과 벽, 자외선을 막아내는 선글라스도 같은 이치. 또 있다. 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자폐증 환자의 심리적 폐쇄 상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선, 기타 등등, 예를 들자면 부지기수다.   외부자극은 그렇다고 치자. 내부자극은 어쩔 것인가. 아무리 잠을 청해도 말똥말똥한 정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어떤가. 환자들이 세션 도중에 고막을 울리는 환청 증세를 어떡하겠는가. 한 정당(政黨)을 밖에서 치고 들어오는 외부자극도 벅찬 실정에 내부적 갈등이 불철주야 일으키는 자극 과잉, 소위, 당의 내부가 ‘찢어지는’ 현상을 무슨 수로 대처할 것이냐.   2024년 3월 16일 오하이오주 한 국제공항 선거유세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왈, “내가 낙선되면 나라가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다”라 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피바다’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 곧잘 쓰던 말이라서 귀에 익숙해진 아주 자극적인 표현이다.   ‘몹시 슬프고 분하여 나는 눈물’이라고 사전이 풀이하는 ‘피눈물’도 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키울 때 ‘피땀’을 흘려 키운다. 핏빛 노을! 갓난아기를 ‘핏덩어리’라 일컫는 말 습관. 아무래도 우리는 피를 좋아하는 족속인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문명의 혜택이 잉태해 놓은 부작용, 이를테면, 과속으로 질주하는 컴퓨터의 작동 장애, 도로공사 굴착기의 소음, 낙엽 치우는 장비가 뇌를 뒤흔드는 굉음, 앰뷸런스의 경적, 와이파이 접속이 불량한 스마트폰을 입에 대고 목청을 높이기, 등등, 과잉자극에 시달리다가 21세기 지구촌 인류의 중추신경에 굳은살이 박힌 것은 아닌지 몰라요.   ‘Chinese water torture’이라는 말이 있다. ‘이마에 물을 떨어뜨려 정신이 돌게 하는 고문’이라는 뜻. 그 유래에 대하여 위키피디아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오시닝(Ossining)의 ‘Sing Sing Prison’에서 1860년에 찍어 놓은 사진이 섬찟하다. 사람 이마에 차가운 물방울을 불규칙적으로 오래 떨어뜨려 환청, 망상, 현실감각 상실을 일으킨다는 기록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표현은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수적천석(水滴穿石)과 연관을 맺고 있다. 돌은 뚫릴지언정 사람처럼 광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물방울 같은 경미한 자극에도 홀까닥 넋이 빠지는 호모사피엔스에게 달려드는 과잉자극의 끝은 어디인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과잉시대 자극 자극 과잉 사슴도 정신병원 정신과 응급상황

2024-03-19

'한국어 진료' 정신과 전문의 태부족…타운내 한인의사 10명도 안돼

한국어가 가능한 정신과 의사가 부족하다. 이는 정신 건강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한인들이 언어 문제로 인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UCLA보건정책연구소(소장 니네즈 폰세)는 29일 아시안아메리칸태평양계연합(AAPI)과 공동으로 한인 등 미국 내 아시아계의 정신 건강 문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본지는 보고서 내용 중 한인만 추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 성인(18세 이상) 5명 중 1명(18%)은 정신 건강 상담 또는 치료 등이 시급하다. 이는 아시아계 평균 응답 비율(16%)을 상회한다.   한인 청소년(12~17세)의 상황은 더 시급하다. 응답자 중 29%가 정신 건강 치료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신과 상담은 언어가 중요하다. 미세한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고, 소통을 할 수 있어야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LA지역에서 한국어로 정신과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의는 조만철, 수잔 정, 김자성 박사 등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타 진료 과목보다 정신과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한인가정상담소(KFAM) 제니퍼 오 부소장은 “정신과 상담 자격증을 소유한 ‘전문 간호사(NP)’들을 합하더라도 LA 한인타운에서 한국어를 하는 정신과 전문의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우울증과 불안증 등 정신건강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언어 문제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한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언어 문제는 UCLA 보건정책연구소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 연구소의 니네즈 폰세 소장은 “특히 가주 지역 한인 인구의 거의 절반이 영어 구사 능력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신과 치료는 문화적 개념과 언어의 뉘앙스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주류 의료진은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공감대 형성이 제한적이라서 한인들의 정신적 고통을 잘못 진단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한인 정신과 전문의를 찾지 못할 경우 한인들은 불가피하게 비영리 단체가 제공하는 상담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영리 상담 기관의 예약도 쉽지 않다.   일례로 한인가정상담소의 경우 예약을 하면 평균 4~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한인들은 그사이 문제가 더 악화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정신 건강 문제가 심화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하는 한인들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인들은 공급 부족으로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타운 내에서 40년간 활동 중인조만철 정신과 전문의는 “한인 2세들이 한인타운 내에 병원을 차렸다가 문화 차이, 한국어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주류로 나가는 모습도 번번이 봤다”며 “한인사회 내 단체들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소수계 또는 교외 지역의 의료인 부족 사태를 외국계 의사로 충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신과 의사를 수혈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외국의대졸업자교육위원회(ECFMG)의 최신 자료(2022년 기준)를 살펴본 결과, 미국에 진출한 외국계 의사 중  정신과 전문의는 3%에 불과하다. 한국 국적의 정신과 전문의는 3% 중에서도 극소수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한인 의대생들이 정신과를 선택한다 해도 결국은 언어와 문화 차이에 따른 문제가 있다.   의대 진학 컨설팅사인 STEM 리서치 폴 정 박사는 “상담을 해보면 한국 문화와 언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한인 2세, 3세 의대생을 찾기가 어렵다”며 “통계만 놓고 보면 전문 분야로 정신과를 선택하는 비율은 높아졌지만 이러한 현상이 한인과 같은 한국어권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한인의사 한국어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상담 정신과 치료

2024-02-29

"한인사회 정신건강 돌보겠습니다" 정신건강 증진 비영리단체 'PEACE' 출범

한인 A씨는 치매가 의심되는 노모와 검사를 받아보려 병원을 방문했지만, 인지 능력 검사가 온통 영어로 된 탓에 제대로 된 판정을 받기가 어려웠다.  "일일 연속극의 배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에도 한국 문화가 익숙지 않은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가정 내 불화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인 B씨는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아예 병원을 찾지 않는다. 의료보험이 없어 경제적 부담이 큰 점도 치료의 문턱을 높힌다.   아시아태평양계(AAPI) 이민자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지난 3일 출범한 비영리단체 P.E.A.C.E.(이하 피스)는 이민사회의 이런 문제점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피스는 조지아주 내 한인 대상 정신과 치료를 지원하는 최초의 단체다. 정신과 전문의, 사회복지사, 대학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설립했다.       데이빗 김(한국명 김대수) 대표는 "일생 동안 겪은 이민 경험은 개인 또는 집단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긴다"며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한인의 삶을 연구함과 동시에,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정신과 치료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심리치료사인 김 대표는 노크로스 소재 상담교육연구소 라이스(R.I.C.E.)를 11년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사회에 다가가는 비영리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우선 비용이 많이 드는 정신과 상담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석사 학위 상담사만 하더라도 평균 시간당 250달러의 상담비가 든다. 시간당 600달러를 요구하는 전문의도 많다"며 비싼 상담료로 인한 장벽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단체는 우선 5만 달러 이하의 연소득자를 중심으로 무료 상담을 늘려갈 계획이다.     한인 이민자들의 특수성을 상담에 녹여내는 것도 중요하다. 출범식에 참석한 심영례 조지아 귀넷 칼리지 심리학 교수는 한인 사회의 세대 구분이 심리 상담에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을 1세대로 보는 미국사회의 분류법과 달리, 한인들의 경우 개인의 이민 시점을 기준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후 성인기를 지나 이민한 이들을 1세대로 보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에 이민 온 세대를 가리켜 '1.5세'라고 일컫는 것도 한인사회만의 특징이다. 심 교수는 "집단마다 정체성과 가치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민 역사를 잘 이해하고 세대마다 상담법을 달리하는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윤준 조지아주립대(GSU) 사회복지학 교수 역시 "이민자의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은 이주 국가에서 경험한 차별과 부당 대우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인 1세대는 2세대에 비해 차별 경험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세대간 차이점을 분석했다. 또 1세대의 경우, 이미 학습된 가부장제와 위계질서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약점으로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크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인 커뮤니티의 비영리 복지단체 대부분이 종교적 성격을 띠는 데 반해, 피스는 종교와 거리를 둘 방침이다. 김 대표는 "기도 등 개인의 헌신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종교기관의 남성 중심적 문화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모범적 삶과 개인 수양을 강조하는 문화가 오히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피스는 홈페이지(aapi-peace.org)를 통해 상담 신청을 받는다. 무료 상담 지원 외에도 올해 4차례의 설명회를 개최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정신건강 실태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비영리단체 조지아 정신과 치료 정신과 상담 정신과 전문의

2024-02-05

[잠망경] 심리치료

‘…상징의 의미를 아무리 건드려 보아도/ 상징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을/ 뒤늦게 전해드립니다/ 상징은 상징끼리만/ 오래 내통해 왔음을/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사고현장’ 이라는 내 시의 일부다.     나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정신과 의사를 ‘약사(druggist)’라 부른다. ‘druggist’라는 앵글로색슨어는 ‘pharmacist’라는 라틴어보다 소탈하게 들리지만, 길거리 마약도 ‘drug’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되도록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정신과 의사를 ‘psychotherapist’라 한다. 약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지만, 심리는 추상적인 컨셉이다. 약을 신봉하는 의사를 ‘유물론자(materialist)’, 심리치료를 추구하는 의사를 ‘유심론자(mentalist)’라 부르면서 유사시에 처방을 내리는 유심론자임을 나는 자처한다.     언어 감각이 뛰어날수록 심리치료가 유효하다. 전혀 그렇지 못하면 처방전을 쓴다. 어린이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어른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에 적합하다는 것.    심리치료에 몰두한다. 환자가 꿈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해서 턱을 어루만진다. 지난밤 꿈이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로 그 ‘소원성취’의 좋은 본보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뛸듯한 기쁨과 아픈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을 공유한다.  환자가 꿈의 상징성을 스스로 감지하고 자기 꿈을 해석한다. 상징의 범위는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단무의식’ 또한 간간 등장한다.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동창생이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거나 비를 피하여 캄캄한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꿈들.   당신은 프로이트의 명언을 들먹인다. “때로 시가는 단지 시가일 뿐이다.” 그리고 ‘시가=남근의 상징’이라는 판박이 공식을 비판하려는 눈치다. 우리의 초롱초롱한 의식, 어렴풋한 잠재의식, 캄캄한 무의식, 무심코 내뱉는 언어 속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상징의 내막, 영원불멸의 예술작품에 내재한 저 무수한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나는 반박한다. 한두가지 예외 때문에 전반적 통계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러나 세상과 인간을 만질 수 있는 물체로 보는 유물론자들을 어찌 무마할 수 있을까.   1977년에 하버드 의대가 꿈에 대한 논문, ‘활성-합성 이론(Activation-synthesis Theory)’을 발표했다. 우리가 깊은 잠을 잘 때 뇌 속에서 활성화되는 전기현상을 대뇌피질이 인위적으로 해석해서 창조하는 합성체가 꿈이라는 것. 꿈은 꾸며낸 스토리라는 것.   2010년 위스콘신 의대가 ‘꿈꾸기와 뇌’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외친다. “결론적으로, 꿈의 의식은 깨어 있는 의식과 아주 비슷하면서, 의지, 자아 인식, 성찰, 숙고, 무드, 기억과 흥미진진한 차이점이 있지만, 각 개인의 꿈에는 많은 다양성이 있다.” 꿈=생시. 삶=꿈.   2014년 대학 동기 여럿이 하와이 여행을 간다. 화산의 지열이 수증기처럼 솟아오르는 마우이 섬에서 사진을 찍는다. 10년 전, 어제, 지금, 나는 꿈을 꾼다. 내일이라는 꿈을 꾸며낸다. 내 옛날 시 ‘사고현장’만큼이나 생생한 꿈을 연출한다. 하나의 상징으로 남기 위한 꿈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심리치료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정신과 의사 위스콘신 의대

2024-01-31

[잠망경] 심리치료

…상징의 의미를 아무리 건드려 보아도/ 상징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을/ 뒤늦게 전해드립니다/ 상징은 상징끼리만/ 오래 내통해 왔음을/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2001년 본인 시(詩), 「사고현장」         나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정신과 의사를 ‘druggist, 약사’라 부른다. ‘druggist’라는 앵글로색슨어는 ‘pharmacist’라는 라틴어보다 소탈하게 들리지만, 길거리 마약도 ‘drug’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되도록이면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정신과 의사를 ‘psychotherapist’라 한다. 약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인 반면, 심리는 추상적인 컨셉이다. 약을 신봉하는 의사를 ‘유물론자, materialist’, 심리치료를 추구하는 의사를 ‘유심론자, mentalist’라 부르면서 유사시에 처방을 내리는 유심론자임을 나는 자처한다.     언어 감각이 뛰어날수록 심리치료가 유효하다. 전혀 그렇지 못하면 처방전을 쓴다. 언어가 미숙한 어린이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어른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에 적합하다는 것.   심리치료에 몰두한다. 환자가 꿈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해서 턱을 어루만진다. 지난밤 꿈이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로 그 ‘소원성취, wish fulfillment’의 좋은 본보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뛸듯한 기쁨과 아픈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을 공유한다.     환자가 꿈의 상징성을 스스로 감지하고 자기 꿈을 해석한다. 상징의 범위는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이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단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ness’ 또한 간간 등장한다. 도무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동창생이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거나 비를 피하여 캄캄한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꿈들.   당신은 프로이트의 명언을 들먹인다. “때로 시가는 단지 시가일 뿐이다, Sometimes a cigar is just a cigar.” 그리고 ‘cigar=symbol of phallus, 시가=남근의 상징’이라는 판박이 공식을 비판하려는 눈치다.   우리의 초롱초롱한 의식, 어렴풋한 잠재의식, 캄캄한 무의식, 무심코 내뱉는 언어 속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상징의 내막, 영원불멸의 예술작품에 내재된 저 무수한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나는 반박한다. 한두가지 예외 때문에 전반적 통계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러나 세상과 인간을 만질 수 있는 물체로 보는 유물론자들을 어찌 무마할 수 있을까.   1977년에 하버드 의대가 꿈에 대한 논문, ‘Activation-synthesis Theory, 활성-합성 이론’을 발표한다. 우리가 깊은 잠을 잘 때 뇌 속에서 활성화되는 전기현상을 대뇌피질이 인위적으로 해석해서 창조하는 합성체가 꿈이라는 것. 꿈은 꾸며낸 스토리라는 것.   2010년 위스콘신 의대가 ‘꿈꾸기와 뇌’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외친다. - “결론적으로, 꿈의 의식은 깨어 있는 의식과 아주 비슷하면서, 의지, 자아인식, 성찰, 숙고, 무드, 기억과 흥미진진한 차이점이 있지만, 각 개인의 꿈에는 많은 다양성이 있다.”(본인 譯) 당신과 나의 ‘깨어 있는 의식’은 꿈이다. 꿈=생시. 삶=꿈.   2014년 대학 동기 여럿이 하와이 여행을 간다. 화산의 지열이 수증기처럼 솟아오르는 마우이(Maui) 섬에서 사진을 찍는다. 10년 전, 어제, 지금, 나는 꿈을 꾼다. 내일이라는 꿈을 꾸며낸다. 내 옛날 시 ‘사고현장’만큼이나 생생한 꿈을 연출한다. 하나의 상징으로 남기 위한 꿈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심리치료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집단무의식 collective 정신과 의사

2024-01-23

의료계 거센 반발에 '비대면 처방 제한' 없었던 일로

지난 1일부터 조지아주에서 규제 약물에 대한 '비대면 처방'이 일부 제한되며 의료계 일각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 4일 이에 대한 규제를 다시 완화했다. 규제 약물이란 흔히 위험하거나 중독성이 강한 약물을 뜻하며, 진통제,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치료제 등을 포함한다.   조지아 의료위원회(GCMB)는 규제 약물을 처방받기 위해서 비대면 진료가 아닌 직접 병원에 찾아가야 한다고 팬데믹 이전 지침으로 환원, 올해부터 적용했다. 변경된 지침이 너무 빨리 적용됐다는 점, 특히 정신과 의사 및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점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애틀랜타 저널(AJC)은 이번 이슈를 소개하며 "의료위원회가 규제를 완화한 것은 특히 정신과 의사들의 항의에 따른 것"이라며 GCMB는 오는 5월 1일까지 문제를 재검토하고 규정을 명확히 할 것이라고 4일 보도했다.     에모리병원의 조셉큐벨스 정신과 전문의는 빠르게 내려진 완화 조치를 반기며 "내 환자들은 주 전역에 살고 있어 처방전을 받기 위해 대면 진료를 하는 것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변경된 규정이 모호했는데, 다시 완화되어 다행"이라고 신문에 전했다.     비대면 진료는 팬데믹 기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병원 방문이 어렵고 간호 인력이 부족해 특히 정신 건강 분야에서 비대면 진료 및 처방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지아처럼 정신과 전문의가 적은 주는 여전히 비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가 높다. AJC는 "조지아주 90개 카운티는 정신과 의사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대면 처방이 편리할 수 있으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팬데믹 중 처방이 쉬워지면서 오피오이드 등 마약 중독이 급증했으며, '온라인 정신건강 진료' 시장에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이 몰려 단순히 환자 치료 목적이 아닌 비즈니스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지아 의료위원회에 소속된 매튜 노먼 정신과 의사는 "의료계 전반이 오피오이드를 과도하게 처방하여 멍든 상태였다. 오피오이드를 처방받기 전 직접 검사를 받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리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AJC에 전했다. 윤지아 기자비대 처방 정신과 의사들 완화 조치 처방 금지

2024-01-04

백악관 공인 예술대회서 한인 고교생 최종후보에

문학과 예술에 소질 있는 고교생들을 발탁하는 '2024 전국 영아츠(YoungArts) 경연대회'에서 한인 고교생이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유일하게 최종 우승 후보자 중 한명(Winner with Distinction)으로 선정됐다.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청소년 정신건강을 주제로 단편영화를 제작한 장인성(캐년 크레스트 아카데미 11년ㆍ사진)군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장 군은 9000명의 지원작품 중 700명의 합격자로 선정됐고 그 중에서도 '탁월한 우승자(Distinction)' 100명에 발탁됐다.   지난 1981년 설립된 내셔널 영아츠재단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백악관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예술대회인 만큼 청소년 부문에서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공신력을 자랑한다. 이번에 수상한 장군의 영화는 9분 길이의 다큐멘터리로 "이겨낸 (Weathered)"이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세 명의 고등학생이 자신들이 겪었던 멘탈헬스 문제를 밝히며 그것을 극복한 과정을 인터뷰한 것이 주 내용이다.   장군은 "이 영화를 통해 보통의 십대들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정신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또래 학생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영상을 제작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장군의 작품은 영화적 예술성뿐 아니라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 윤혜진씨는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접근 같은 눈높이에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보는 이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점검해 보게한다"고 평가했다.     장군은 내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플로리다에서 개최되는 영아츠 주간에 참가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미 대통령이 인정하는 예술 학자(U.S. Presidential Scholar in the Arts)로 선발될 자격을 얻었다. ▶장인성군 영상: https://youtu.be/ZI7CcH-c4xs 서정원 기자예술대회 최종후보 한인 고교생 소아청소년 정신과 영화적 예술성

2023-12-26

[열린광장] 정신과 병동

현대사회는 통제되지 않는 정신병동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의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건,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부모까지 살해하는 일, 실직으로 인한 보복 범행, 청소년 자살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상태다.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지속할 것이다.     병원 응급실을 통해 정신과 병실에 입원하는 사람의 10% -30%는 약물 중독에 의한 정신 착란 증세로 인해 난폭해지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우울증 환자, 자살 위험 환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처가 있을 경우에는 외과 병실에 다량의 약물을 복용했을 때는 내과 병실에 입원했다 정신과 병실로 옮긴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이에 대한 치료비를 줄이고 있어 이런 숫자는 감소하고 있다.   강제 입원 환자의 70%는 피해망상증을 가진 정신질환자들로 남을 해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경우다. (청소년 병동의 70%는 자해나 자살 시도)     피해망상증은 여러 가지 정신 질환에서 나타난다. 첫 번째가 ‘피해망상 성격 장애’다.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 타인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입원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번째는 ‘망상병의 피해망상형’이다. 이들은 단순히 피해망상만 있으며, 그 망상 외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주로 혼자 살며 큰 문제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낸다.     세 번째는 ‘조현병의 피해망상형’이다. 주로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피해망상 증상을 보이며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폭력성을 나타내며 보통 한 명, 또는 그와 관련된 두세 명을 공격한다.   네 번째가 조울증과 과대망상, 피해망상을 합친 경우다. 이런 환자는 여러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과거 총기를 난사해 33명을 살해한 조승희도 조울증과 피해망상, 과대망상이 합쳐진 경우다.     정신과 환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폭력적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어 정당방위 차운에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자기를 감시하고, 간섭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한다면 얼마나 무섭고 화나고 괴롭겠는가. 밤마다 우주벌레가 와서 자기 눈을 파먹는다고 호소하던 피해망상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그는 지속하는 환각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몇 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정신과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자기와 남을 파멸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다. 정신과 질환의 위험성을 알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끄는 시민 의식,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강제 입원 치료도 가능하게 하는 법적 뒷받침, 그리고 치료비에 관한 정부와 보험 회사의 협력 등이 필요하다. 남을 해하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정신병에 대한 이해와 협조, 대책이 시급하다.   의료인으로서 정신질환자로 인해 피해를 본 분들과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책임감도 느낀다. 난폭한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정신병동에 함께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정신과 병동 정신과 환자 정신과 병실 정신과 질환

2023-12-17

재미시인상에 이원택씨…정신과 전문의…"큰 영예"

1987년에 창립된 재미시인협회(회장 고광이)가 지난 2002년부터 매년 필력이 뛰어나고 시문학의 향상을 위해 노력한 시인을 1명씩 선정해 시상하는 제21회 재미시인상에 이원택(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이 시인은 2007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만화경-요지경-무아경-혼미경-신비경-분광경'의 문집과 글쓰기 지침서인 'Meta-writing'을 출간했고 2012년엔 '달-흙-홍시' 등으로 서울문학인 및 '아지트-낡은책상-생일'등으로 한국 문인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2018년 미주 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시인은 번역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2021년에 '미한 변형사전'을 출간했고 2022년 '미한원형사전'에 이어 내년 1월 중으로 '영한지구촌사전' '영한신세대사전' '기초스페인어사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이원택 시인은 "시인으로서 큰 영예를 얻었다"며 "더 정진하여 좋은 작품을 내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사전의 과학화와 문학화에도 힘을 더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시상식은 오는 16일(토) 오후 4시 로텍스호텔에서 열리는 재미시인협회 송년회에서 갖는다.  주소는 3411 W. Olympic Blvd LA(로텍스 호텔)이다.재미시인상 이원택 정신과 전문의 이원택 시인 재미시인협회 송년회

2023-12-06

대만계 사업가 찰리 쟁, 한미가정상담소에 10만불 기부

대만계 사업가 찰리 쟁 자이온 엔터프라이즈 대표가 한미가정상담소(이하 상담소, 이사장 수잔 최, 소장 유동숙)에 거액을 기부했다.   쟁 대표는 지난 18일 어바인의 OC뮤직홀에서 열린 상담소 후원의 밤 행사에서 수잔 최 이사장에게 10만 달러 수표를 전달했다. 쟁 대표는 “한미가정상담소의 순수한 봉사 활동에 감명 받았다”라며 자신의 기부금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쟁 대표는 앞으로 1년 동안 상담소 측의 기금 모금액에 최고 20만 달러까지 매칭 펀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 100여 명의 참석자에게 박수를 받았다.   쟁 대표는 부인 링과 함께 유명 캐주얼 중식 체인 ‘픽업 스틱스’를 창업한 후 매각했다. 이후 자이온 엔터프라이즈란 부동산 개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쟁 대표 부부는 오랜 친구인 최 이사장을 통해 상담소에 관해 알게 됐다. 링은 올해부터 상담소의 이사가 됐다. 링은 여러 단체를 후원하고 있지만 이사를 맡은 곳은 상담소가 유일하다.   링 이사는 기조 연설에서 “상담소 명칭에 코리안아메리칸(한미)이 들어가지만, 상담소의 활동은 인종, 민족을 초월해 커뮤니티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라며 이사를 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영 김 연방하원의원은 오랜 기간 상담소에서 봉사해온 최 이사장과 유 소장, 연영숙 전 이사장, 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박사, 아이린 이 이사 등 10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상담소 측은 이날 레이철 배양을 비롯한 20명의 장학생에게 각 1000달러씩 총 2만 달러를 전달했다.   최 이사장은 “상담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움을 주는 많은 후원자 덕분에 발전해왔다. 고맙게도 쟁 부부가 매칭 펀드를 제공하겠다고 해 앞으로 기금 모금 활동도 강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990년 설립된 상담소는 ‘번민하는 이웃과 함께’란 모토 아래 한인 가정을 위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의학과 정신 건강 등 다양한 주제의 교육 세미나를 열고 있다. 글샘터, 미주사진클럽, 컴퓨터반, 뜨개질반, 캘리그래피반 등 한인들의 취미 생활을 돕는 사랑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 2009년 가든그로브에서 스탠턴으로 사무실(12362 Beach Blvd, #1)을 옮겼다.   기부 관련 문의는 전화(714-873-5688, 892-9910)로 하면 된다. 글·사진=임상환 기자한미가정상담소 찰리 이사장 정신과 상담소 후원 상담소 측은

2023-11-21

[오픈 업] 인간의 수명 결정하는 ‘텔로미어(Telo Mere)’

호주 남쪽에 있는 타스메니아(Tasmania)섬의 첫 거주자는 영국에서 온 죄수들과, 이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공기 맑고, 물이 깨끗한 곳으로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불랙번은 이 섬에서 태어났다.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프랑스 과학자인 마담 퀴리의 자서전에 심취했다. 그녀는 멜번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예일대 포스트닥 2년 과정을 마친 후 UC버클리를 거쳐, 샐크 인스티튜트(Salk Institute)에서 오랜 시간 연구에 힘썼다.     그러다 블랙번은 인간의 세포 염색체 끝에 텔로미어(Telo Mere)가 있다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세포들은 계속 분열을 하는데, 분열 때마다 염색체 꽁무니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다하면 생명체도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재면, 그 생명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은 생존 기간도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녀는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텔로머레이즈(Telomerase) 라는 효소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녀도 존경하던 퀴리 부인처럼 2009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텔로미어의 길이에 영향을 끼칠까? 이에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사회·경제적 상황,운동, 체중, 흡연 등이 관계가 있다고 한다. 섭취하는 음식물도 영향을 준다. 완두콩이나 병아리콩 같은 콩과 견과류, 해초,과일, 낙농제품 등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유지해주는 반면, 술, 붉은 고기, 가공육 등은 길이를 줄인다고 한다. 즉 햄,베이컨 등의 ‘서양식 식단’ 보다는 채소, 과일, 생선,견과류 뒤주의 ‘지중해식 식단’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비타민 C와 E가 많은 음식과 운동을 권고한다.     필자가 특히 흥미 있게 본 것은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길이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명상은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어나게 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1946년 ‘건강’의 정의를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 사회적 웰빙(well-being) 상태’라고 했다.     셀리그만은 1990년에 건강한 심리적·사회적인  요인으로 정신적 탄력성(  Resilience), 낙천주의( Optimism), 사회적 관계( social engagement) 등을 꼽았고, 이것이 성취된 경우, 주관적인 행복감은 물론, 몸도 건강해져 수명이 연장된다고 발표했다.     미 정신과 학회 회장인 제스트 박사도  “앞으로 정신과 의사의 역활은 정신병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웰빙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정신의학(Positive Psychiatry)’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텔로미어같은 생물학적 지표들이 손상을 입게 된다.     성공적인 노화는 삶의 의미나 목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 PTSD)’가 있던 사람도 대인 관계의 친밀성,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경험 등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 이뿐인가. 조현병(과거 정신분열증) 환자들도 약물 복용과 본인의 의지로 호전될 수 있다.       미국의 질병예방센터는 성인의 운동량을 다음과 같이 권유한다. 적어도 30분 간 중간 강도의 운동(빠르게 걷기 등)을 일주일에 3-5회 할 것,근력 운동도 일주일에 2-3회 할 것, 그리고 매일 스트레칭을 할 것 등이다. 그런데 한인 등 소수계 시니어들의 운동량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에 좋은 것은 두뇌에도 좋다’는 말은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운동을 통해 뇌세포 생성, 텔로미어 길이 연장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된다.     필자는 문득 최근 모교 의대학장인 이은직 교수의 신념에 찬 포부를 상기해 본다.  새로운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통한 연구자를 육성해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꿈의 메시지를.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텔로미어 수명 텔로미어 길이 정신과 의사 경제적 상황운동

2023-10-05

[오픈 업] 인간의 수명 결정하는 ‘텔로미어(Telo Mere)’

호주 남쪽에 있는 타스메니아(Tasmania)섬의 첫 거주자는 영국에서 온 죄수들과, 이들을 감시하는 군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공기 맑고, 물이 깨끗한 곳으로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불랙번은 이 섬에서 태어났다. 조부모와 부모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프랑스 과학자인 마담 퀴리의 자서전에 심취했다. 그녀는 멜번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예일대 포스트닥 2년 과정을 마친 후 UC버클리를 거쳐, 샐크 인스티튜트(Salk Institute)에서 오랜 시간 연구에 힘썼다.     그러다 블랙번은 인간의 세포 염색체 끝에 텔로미어(Telo Mere)가 있다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세포들은 계속 분열을 하는데, 분열 때마다 염색체 꽁무니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다하면 생명체도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재면, 그 생명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은 생존 기간도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녀는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 텔로머레이즈(Telomerase) 라는 효소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그녀도 존경하던 퀴리 부인처럼 2009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텔로미어의 길이에 영향을 끼칠까? 이에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사회·경제적 상황,운동, 체중, 흡연 등이 관계가 있다고 한다. 섭취하는 음식물도 영향을 준다. 완두콩이나 병아리콩 같은 콩과 견과류, 해초,과일, 낙농제품 등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유지해주는 반면, 술, 붉은 고기, 가공육 등은 길이를 줄인다고 한다. 즉 햄,베이컨 등의 ‘서양식 식단’ 보다는 채소, 과일, 생선,견과류 뒤주의 ‘지중해식 식단’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비타민 C와 E가 많은 음식과 운동을 권고한다.     필자가 특히 흥미 있게 본 것은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길이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명상은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어나게 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1946년 ‘건강’의 정의를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 사회적 웰빙(well-being) 상태’라고 했다.     셀리그만은 1990년에 건강한 심리적·사회적인  요인으로 정신적 탄력성(  Resilience), 낙천주의( Optimism), 사회적 관계( social engagement) 등을 꼽았고, 이것이 성취된 경우, 주관적인 행복감은 물론, 몸도 건강해져 수명이 연장된다고 발표했다.     미 정신과 학회 회장인 제스트 박사도  “앞으로 정신과 의사의 역활은 정신병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웰빙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정신의학(Positive Psychiatry)’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텔로미어같은 생물학적 지표들이 손상을 입게 된다.     성공적인 노화는 삶의 의미나 목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 PTSD)’가 있던 사람도 대인 관계의 친밀성,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경험 등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 이뿐인가. 조현병(과거 정신분열증) 환자들도 약물 복용과 본인의 의지로 호전될 수 있다.       미국의 질병예방센터는 성인의 운동량을 다음과 같이 권유한다. 적어도 30분 간 중간 강도의 운동( 빠르게 걷기 등)을 일주일에 3-5회 할 것,근력 운동도 일주일에 2-3회 할 것, 그리고 매일 스트레칭을 할 것 등이다. 그런데 한인 등 소수계 시니어들의 운동량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에 좋은 것은 두뇌에도 좋다’는 말은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운동을 통해 뇌세포 생성, 텔로미어 길이 연장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된다.     필자는 문득 최근 모교 의대학장인 이은직 교수의 신념에 찬 포부를 상기해 본다.  새로운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통한 연구자를 육성해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꿈의 메시지를.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텔로미어 수명 텔로미어 길이 정신과 의사 경제적 상황운동

2023-10-02

[오픈 업] 한국 교정행정에도 정신과 진단 도입을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기에서 33세 조 모 씨가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조사 과정에서 “제 모든 게 예전부터 안 좋았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등 낮은 자존감을 보였다고 한다. 그가 소년 시절에만 14번이나 체포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는 잘못된 행동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가 끊임없는 문제 행동으로 인해 삶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배우지 못했다면 성인이 된 후의 삶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극에 이르면 술이나 마약에 취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문제를 외부의 잘못으로 생각해 남을 해치기도 한다. 또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지만 타인에 의해 숨지는 방법을 찾는 부류도 있다.   참전 경험이 있는 정신과 의사 메닝거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세 가지 욕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죽고 싶은 욕망이고 두 번째는 죽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세 번째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살인자 조 모 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주위 분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반응은 ‘인간말종( bad seed)’, ‘사이코패스’, ‘사회의 쓰레기’ 등 다양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나에게 이런 진단(?)은 별 의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과거력을 가진 사람 중에 미리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 예방이 가능하니 말이다.   1920년대 미국 사회는 큰 진통을 겪고 있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거리에 버려진 청소년이 넘쳐났고, 여성 행방 운동과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들이 통과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청소년 법원 판사의 주장이 관심을 모았다. 이 판사는 범죄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무관심, 혹은 가정 파괴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니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정신과적 치료를 받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판사는 법원 옆에 ‘청소년 정신과 치료 클리닉’을 세웠다. 형벌보다는 원인을 규명해 치료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 최초의 이 소아 정신과 치료소 이름은 판사의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주요 도시 의과 대학 내 정신과에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가 생겼다.   조 모 씨의 경우, 열네 번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누구라도 그의 의학적 또는 정신과적 감정을 의뢰했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진단은 주의산만 및 행동 항진증이다. 이는 부모나 조부모의 유전 인자의 영향이 큰 것으로  한국인의 13%에서 발견되는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한국 의료공단 자료에 따르면 진단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를 받지 못한 90%는 문제아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을 미워하고, 서툰 인간관계로 인해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또 어린 나이에 발발하는 정서불안장애( 우울증이나 조울증)문제다. 청소년기의 우울 장애는 ‘가면우울증(masked depression)’ 이라는 말처럼 어른들의 증상과는 나타나는 모습이 딴판이다. 이들은 “지루하다”, 귀찮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많이 먹고, 많이 자며 부모와 언쟁을 하려 든다. 이들은 전두엽의 성슥이 늦어서인지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고민을 말로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 감정이 앞서니 문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능 발달 정도나 주의산만증, 정서와 행동 조절 장애  등 몸과 마음의 문제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면 진단이 가능했을 터이고, 치료에 합당한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끼?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 문제 청소년들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도움을 줘야 한다. 그 길만이 이들의 범죄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교정 행정 개선을 위해 한국정부에 범죄자의 심리적·사회적·정신적 검사를 하고, 진단에 적합한 조기 치료를 권장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교정행정 정신과 청소년 정신과 정신과적 치료 정신과적 감정

2023-08-21

[오픈 업] 도움 요청은 부끄러운 일 아니다

십여년 전 미국 의과대학생들이 공부하는 정신과 교과서를 읽다 깜짝 놀란 내용이 있었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과거에는 간혹 리투아니아가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 십여년 간은 한국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의과대학 동기 내과 의사로부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빨리 유튜브라도 시작해서 한국의 정신과 환자들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심한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조언하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화를 내며 거부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각종 정신질환에 대해 올바른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던 필자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률은 연간 10만명 중 26명꼴로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필자는 더 늦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2022년 9월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권고한 필자의 친구 내과 의사에게 화를 냈다는 의사를 갈아치워 버리겠다고 위협했다는 어느 부모님 같은 분들을 위해서였다.   현재 필자가 진료하는 사무실을 찾는 한인 아동,청소년, 성인의 반 이상은 주의산만증 환자들이다. 많은 분이 우울과 불안, 학업, 결혼 생활 등에 대한 문제들을 동반하고 있다.     주의산만증 환자의 지능은 일반인과 다름없다. 게다가 이들은 '상자 밖의 생각( out-of-box thinking)'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의산만증 유병률을 약 13% 가량 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인의 주의산만증 유병률이 7.5%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필자의 환자 가운데 학교에 술을 가져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마시다 적발돼 정학 처분을 받은 9세 한인 소년이 있었다. 학교 측의 정신과 치료 요구로 필자를 찾은 그 소년은 진단 결과 주의산만증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소년의 아버지에게도 주의산만증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소년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예민한 감정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아이들의 두뇌에는 '거울 신경 세포(Mirror Neuron)'들이 있어서 부모 등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특성이 있다. 9세 소년도 아버지의 행동을 따라 한 것이었다. 조절 능력이 부족해 느끼는 대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 소년은 이후 약물치료 등에 잘 적응해 집중력과 감정 억제 능력을 키워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만약 이 소년이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 국민의료 공단 기록에 의하면 진료 환자의 10%가 주의산만증 진단을 받았지만, 그중에 약물 치료를 받는 환자는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마 치료를 받지 않은 나머지 90% 가운데 상당수는 대인 관계와 사회 적응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알코올중독, 범죄, 자살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 50명 중 한 명꼴이라는 양극성 질환 (조울증)도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조증 증상이 일주일 이상 있었다면(병원에 임원하면 더 짧은 기간)이는 제1형이고, 약 4일간 경조증을 경험했다면 제2형 양극성질환으로 진단된다. 이 질환 환자의 자살 확률은 각각 28%, 33%로 높은 편이다.       그런데 양극성 질환 환자들은 우울한 경우에만 전문가를 찾는 특징이 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하루 3시간의 수면만으로도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이들은 판단력 손상으로  경제적 손실이나 불법적인 성적 행동 가능성으로 강제 입원이 필요할  때가 많다. 또 우울 증상 이외에 극심한 불안과 분노로 고통을 받고, 이를 잊기 위해서 술이나 마약에 중독되기 쉽다.   병의 정도가 심할수록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하게 되어 의사나 약물치료를 거부한다.     이민자들의 자살률은 새로 정착한 나라가 아니라 떠나온 조국의 자살률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즉, 미주 한인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의 영향이 크다.     필자는 한민족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어려서부터 과도한 음주의 위험성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 주의산만증이 의심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진단을 받고,약물치료를 비롯한 심리적, 환경적,영적 치료를 해야 한다. 셋째, 양극성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셀프-헬프 그룹(self-help group) 등을 통해 양극성 질환자들에게 자살만이 ‘도움을 요청하는(cry for help)’ 방법이 아님을 알려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요청 주의산만증 환자 주의산만증 유병률 정신과 환자들

2023-06-26

[오픈 업] 매일 밤 가스레인지 확인하는 아이

유명 사업가 하워드 휴즈를 모델로 2004년 개봉한 영화 ‘에이비에이터(Aviator)’를 본 사람들은 주인공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문손잡이를 감쌀 휴지가 없어 다른 사람이 문을 열 때까지 초조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세균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 화장실 문을 직접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강박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1~2%는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아이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하는데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일생 어려움을 겪게 되며 자살 유혹을 받는 경우도 많다.   강박 장애에는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있고, 두 가지를 모두 가진 환자도 있다. 강박 사고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충동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현상이다. 또 이런 생각을 완화하기 위해 강박 행동을 하게 된다. 강박 행동은 손 씻기, 정리정돈, 확인 등을 반복하거나 숫자 세기,기도, 단어 암기 등의 정신적 행위로 강박 사고를 예방하려는 행동 등이다. 이런 행동이 하루 한 시간 이상 계속되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를 권한다.     과거 필자는 7세 남아를 치료한 적이 있다. 아무 문제가 없던 소년은 몇달 전부터 밤마다 부엌의 가스레인지 잠금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후에는 현관문이 잘 잠겨있는지, 1층과 2층의 창문들도 확인한 후에야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부모님이 설명해도,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소년은 늦잠을 자게 됐고 지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수업 시간에는 조느라 성적도 많이 떨어졌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것은 가족력이 중요하다. 소년의 엄마가 다음의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저는 3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모두 끝냈더니 의사가 더는 암세포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고, 재발할까 두려웠어요.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 바닥에 누워 스스로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면 가끔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도 잊을 때가 있었어요.”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유전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다. 어머니를 동료 성인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게 한 뒤, 소년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소년의 일과 스케줄을 만들었다. 우선 아무리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기상 시간은 일정하게 지키도록 했다.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학교 수영팀에 넣어 방과 후엔 매일 수영 연습을 하도록 했다. 주말에는 태권도 도장에 가 무술을 배웠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는 아빠와 함께 ‘꺼진 불도 다시 보자’와 ‘형사와 도둑’ 게임을 했다. 소년이 가스레인지를 확인한 후에 아빠가 다시 점검해 잘 잠겼으면 소년에게 스티커를 주고, 제대로 잠겨 있지 않으면 스티커를 빼앗아 오는 방식이다. 스티커 5개가 모이면 주말에 맛있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줬다. 창문 조사도 이런 방식으로 하니 재미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필자의 편지를 본 학교의 상담 선생님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우선 처방한 약물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신속히 간호사에게 보내 도움을 받도록 했고, 상담 선생님과의 면담도 승낙했다.   소년에게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정의 하나인 플루옥세틴( Fluoxetine)을 처방했다. 약물은 소량에서 시작해 차차 용량을 늘리며 변화를 관찰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학교와 태권도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등 생활에 활기가 찾았다.   남성 강박 장애 환자의 25%는 1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해 보라. 어떤 환자들은 틱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야단을 치면 스트레스 때문에 틱장애는 더 심해진다. 부모님들이 이해하고 의사와 협력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가스레인지 확인 가스레인지 잠금 정리정돈 확인 정신과 의사들

2023-04-19

교도소 수감 3개월만에 빈대 뒤덮여 사망

라숀 톰슨(35)은 플로리다 출신으로, 2019년 조지아텍 캠퍼스 무단 침입 혐의로 기소, 2020년에는 한 여성에게 침을 뱉은 혐의 등의 경범죄로 기소됐다.    지난해 6월 조지아텍 경찰은 애틀랜타 미드타운에서 노숙하던 톰슨을 발견하고 그의 과거 전과를 확인 후 그를 풀턴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했다.     3개월 후인 2022년 9월 톰슨은 정신병동에서 빈대(bed bug)에 뒤덮여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톰슨의 유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현재 이 사건은 세계 각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톰슨이 당초 감옥이 아닌, 정신과 치료가 절실했다고 분석했다.     연방 법원에서 감옥 및 교도소의 의료 서비스를 모니터링하는 호머 벤터스 박사는 애틀랜타 저널(AJC)에 "감옥에 들어가면 실제로 필요한 정신과 치료뿐 아니라 꼭 필요한 의료 케어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조지아 애드보커시 오피스(GAO)'의 데본올랜드 법률 담당자는 "정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변호하거나 가족과 소통도 힘들어 보석으로 풀려나기 어렵다"며 시설에 있는 동안 상황이 악화되어 형량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17년 법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감옥 수감자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 또 2022년 조지아 형사 사법 조정 위원회 연구에 의하면 주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자 중 정신 질환자의 비율이 비수감자 중의 비율보다 두 배 많으며,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의 수감 기간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두 배 이상 길다.   테리 노리스 조지아 셰리프 협회 디렉터는 AJC에 "셰리프들은 교도소 내 의료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서도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톰슨의 형제인 브래드 맥크레 씨는 톰슨이 풀턴 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톰슨은 약간의 정신 건강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노력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패트릭 라뱃 풀턴 셰리프국에 따르면 이들은 톰슨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교도소의 정신 건강 부서에 직원을 추가하고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감자 600명 이상을 다른 카운티로 이송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셰리프국은 "톰슨의 죽음은 더 나은 정신 건강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윤지아 기자교도소 정신 정신 질환자 정신과 치료 정신건강 서비스

2023-04-18

[수필] 미한 변형사전 펴낸 정신과 의사

얼마 전 소포상자를 받았다. 나의 신간 수필집을 보내드렸더니 답 선물로 온 것이다. 언젠가 문학지에서 광고를 보면서 한권 사려고 하던 참이었다. 2021년에 출간된 1236쪽의 영어사전을 펼치니 이원택 박사의 ‘여는 글’과 ‘닫는 글’이 앞뒤 쪽에 실려 있다. 한글표기로 발음기호를 넣었기에 한국어를 알면 누구나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간편하게 단어 하나에 해석도 하나씩이다. 그의 정성에 너무 놀라 축의금을 보내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개정판 대형사전을 올해 봄에 출판하려 하니 그때 한권 사달란다. 자랑스러워 곧 예약금을 보내야겠다.     뒤쪽에 실린 글에는 “영어가 뭐길래… . 뿌리째 뽑을 수도 없고 한번 흔들어 볼까나! 알려면 배울 수밖에 없다.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편자(이원택)는 수필가의 손으로는 말을 그리고, 시인의 마음으로는 말을 삭히고, 평론가의 눈으로는 말을 저울질하고, 번역가의 발로는 말을 공굴림하고, 의사의 머리로는 말을 가려낼 수 있도록 그동안 내공을 쌓아 왔노라”라고 편찬의 동기를 첨부해 두었다.   또한, 사전의 단어들은 등급을 매겨 놓았다. 예를 들면 ‘수’는 한국어로 대체 할 수 없기에 꼭 영어로 써야 할 말이다. 마지막 등급인 ‘가’는 영어로 쓰지 말아야 할 말이다. 한국에서 27년 미국에서 46년을 살아온 재미동포의 애국심에서 만들어진 사전. 특히 편자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이 사전을 헌정하고 싶어 수년을 걸려 만들었다 했다. 나도 하루에 열 개씩 공부해 볼까. 해외 동포의 가정마다. 대한민국의 한 가정에 한권쯤은 가족이 함께 보는 사전으로 나는 간곡히 추천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수년 전 문학인들 모임에서, 또 그분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만나고는 뵙지를 못했다.   만화경(2007년), 요지경(2008년), 무아경(2009년), 혼미경(2011년), 신비경(2013년), 분광경(2018년), 안경너머로 세상을 엿보는 작가의 유머스럽고 코믹한 6권의 경시리즈이다.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메타 라이팅’은 63권의 참고 서적을 뒤 부록에 실어 놓아 논문 수준의 걸작임을 알 수 있다. 최근 나는 요지경 책을 다시 읽었다. 작가의 세월만큼이나 나의 눈이 너그러워져서인지 지난번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거나 얼굴이 붉으락 거리지는 않았다. 능청스럽게, 노골적이고 솔직한 저자의 다양한 어휘들에 나는 킥킥거리기도, 하하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그의 저서들에 빠져 버렸다. 박식한 그의 견해들은 나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주기도 하고 배움을 주기도 했다. ‘분광경’과 ‘메타 라이팅’은 붉은 색연필로 줄을 그어가면서 정독했다. 분광경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평론 수필, ‘소크라 테스의 고별사’도 독자에게 사유의 시간을 유도했다.   그는 개성이 뚜렷한 천재 예술가이며, 인간의 혼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육자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왔다. 경복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와 의사가 되었다. 힘들고 가난했던 그 시절의 우리 이야기가 재미나는 어휘로 저서마다 실감 나게 적혀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고국에 남은 어머니(현재 97세)와 동생들을 걱정하는 장남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나이다.   어릴 적 꿈이 소설가였다는 이원택 박사. 경복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가을이 주는 것’ 이라는 제목의 시로 입선이 되며 일찍이 문학에 두각을 보였다. 당시의 시를 읽어보면 요즈음 말로 애늙은이라고 할까. 미래의 가을 인생을 바라보는 문학적 영감은 절대 예사롭지 않았다. 한때는 행복한 결혼도 해보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한 그의 인생사. 그의 저서들을 통해 꾸밈없는 그의 일생을 음미하며 때론 가까이서 위로하지 못해 문우로서 조금 서글프다.   경복의 40회 자랑스러운 동창들과 친구를 사랑하는 우정의 불길. 그래서 오랜 세월 해외에서 살아가는 그가 더 외로워서 낭만적인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일까. 지금도 끊지 못하는 담배(백해무익)를 입에 물고 고뇌를 하면서 스스로 컴맹타령 하는 작가, 이원택 박사. 나도 그랬듯이 책을 편집할 때까지 태평양 너머에서 일일이 감수해야 하니 매우 머리 아픈 작업이었다. 타자를 치는 일도 비서가 해야 한다니 비서가 아프면 또 날짜가 지연된단다. 답답한 우리의 인생사가 그렇다. 그래도 그의 유별난 즐거운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의 늦가을 여생에 신의 축복이 듬뿍 내리시기를. 최미자 / 수필가수필 변형사전 정신과 정신과 의사 이원택 박사 개정판 대형사전

2023-03-30

‘현대인의 정신 건강’ 세미나

한미가정상담소(소장 유동숙, 이사장 수잔 최)가 내달 8일(토) 오전 11시~오후 1시까지 스탠턴 사무실(12362 Beach Blvd, #1)에서 ‘현대인의 정신 건강’ 세미나를 연다.   정신과 의사이자 연세대 의대 동기 동창인 수잔 정, 조만철 박사가 50년 임상 경험을 통해 정신 건강을 적절히 유지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다.   정, 조 박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정신병의 적절한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임상, 거시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또 이런 요소들이 개인의 건강, 가족 간의 관계, 사회 내 인식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정 박사(소아 정신과의)에 따르면 자살한 이들의 70~80%는 조울증이나 우울증, 주의산만증 등의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한다.   정 박사는 “당뇨병이 췌장의 질병인 것처럼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두뇌라는 장기의 질병이다. 우울증, 조울증, 주의산만증 등은 당사자나 부모의 잘못이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많은 이가 세미나에 참석해 주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를 돕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조 박사(일반 정신과의)는 현대인의 정신 건강이 역사상 최악의 수준이라며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박사는 세미나에서 정치 지도자의 정신병적 요소로 혼란과 고통을 받는 시민과 국가들의 사례, LA보건국과 경찰의 정신 건강 관련 정책과 치료 현황 등에 관해 설명할 예정이다.   또 ▶우울증, 정신 착란증(마약 복용 시 포함)에 의해 일어나는 폭력, 살인 예방책 ▶노인성 기억 장애와 우울증 ▶제2의 4·29 폭동 예방 및 4·29 희생자들의 정신적 피해 보상 요구 등에 관해 강연한다.   문의는 전화(714-892-9910)로 하면 된다.현대인 세미나 정신 건강 정신병적 요소 소아 정신과

2023-03-22

[오픈 업] 매일 밤 가스레인지 확인하는 아이

유명 사업가 하워드 휴즈를 모델로 2004년 개봉한 영화 ‘에이비에이터(Aviator)’를 본 사람들은 주인공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문손잡이를 감쌀 휴지가 없어 다른 사람이 문을 열 때까지 초조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세균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 화장실 문을 직접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강박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1~2%는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아이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하는데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일생 어려움을 겪게 되며 자살 유혹을 받는 경우도 많다.   강박 장애에는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이 있고, 두 가지를 모두 가진 환자도 있다. 강박 사고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충동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현상이다. 또 이런 생각을 완화하기 위해 강박 행동을 하게 된다. 강박 행동은 손 씻기,정리정돈,확인 등을 반복하거나 숫자 세기,기도, 단어 암기 등의 정신적 행위로 강박 사고를 예방하려는 행동 등이다. 이런 행동이 하루 한 시간 이상 계속되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를 권한다.     과거 필자는 7세 남아를 치료한 적이 있다. 아무 문제가 없던 소년은 몇달 전부터 밤마다 부엌의 가스레인지 잠금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후에는 현관문이 잘 잠겨있는지, 1층과 2층의 창문들도 확인한 후에야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부모님이 설명해도,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소년은 늦잠을 자게 됐고 지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수업 시간에는 조느라 성적도 많이 떨어졌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강박 증세를 보이는 것은 가족력이 중요하다. 소년의 엄마가 다음의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저는 3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모두 끝냈더니 의사가 더는 암세포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고, 재발할까 두려웠어요.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 바닥에 누워 스스로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면 가끔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도 잊을 때가 있었어요.”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유전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다. 어머니를 동료 성인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게 한 뒤, 소년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소년의 일과 스케줄을 만들었다. 우선 아무리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기상 시간은 일정하게 지키도록 했다.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학교 수영팀에 넣어 방과 후엔 매일 수영 연습을 하도록 했다. 주말에는 태권도 도장에 가 무술을 배웠다.     매일 저녁 식사 후에는 아빠와 함께 ‘꺼진 불도 다시 보자’와 ‘형사와 도둑’ 게임을 했다. 소년이 가스레인지를 확인한 후에 아빠가 다시 점검해 잘 잠겼으면 소년에게 스티커를 주고, 제대로 잠겨 있지 않으면 스티커를 빼앗아 오는 방식이다. 스티커 5개가 모이면 주말에 맛있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줬다. 창문 조사도 이런 방식으로 하니 재미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필자의 편지를 본 학교의 상담 선생님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우선 처방한 약물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신속히 간호사에게 보내 도움을 받도록 했고, 상담 선생님과의 면담도 승낙했다.   소년에게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정의 하나인 플루옥세틴( Fluoxetine)을 처방했다. 약물은 소량에서 시작해 차차 용량을 늘리며 변화를 관찰했다. 소년은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학교와 태권도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등 생활에 활기가 찾았다.   남성 강박 장애 환자의 25%는 1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해 보라. 어떤 환자들은 틱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야단을 치면 스트레스 때문에 틱장애는 더 심해진다. 부모님들이 이해하고 의사와 협력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가스레인지 확인 가스레인지 잠금 정신과 의사들 제때 치료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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