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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자극 과잉시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곳곳 확성기에서 정신과 응급상황을 외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숨 가쁘게 “코드 그린!” 소리친 후 병동 번호를 알린다. 평온한 목소리로 전해주면 안 될까. 하기야 그러면 아무도 급히 반응하지 않을지도 몰라.
 
꽃을 뜯어먹으려는 사슴이 앞뜰을 침범하는 순간 “어이!” 하며 곱게 의사를 전달하면 싹 무시당한다. “야!” 하고 고함을 질러야 후다닥 도망간다. 사슴도 정신병원 의사들도 경미한 자극에는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다.
 
‘sensory overload’, 하면 얼른 귀에 들어오는 말을 놓고 사전은 감각과부하(感覺過負荷)라 묵직하게 해설한다. 참 뻑적지근한 한자어다. 자극이 지나치면 금세 접수할 수 있지만 낮은 목소리는 신경계통에 등록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약물의 복용량도 마찬가지. 과량은 극심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소량은 무효하다. 생물체는 사슴이건 사람이건 늘 예민한 상태를 넘나든다.
 
세포는 생존을 위하여 세포막으로 외부 물질을 차단한다. 우리 몸을 감싸고 보호하는 피부, 도둑의 접근을 사전에 방지하는 집의 담과 벽, 자외선을 막아내는 선글라스도 같은 이치. 또 있다. 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자폐증 환자의 심리적 폐쇄 상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선, 기타 등등, 예를 들자면 부지기수다.
 


외부자극은 그렇다고 치자. 내부자극은 어쩔 것인가. 아무리 잠을 청해도 말똥말똥한 정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어떤가. 환자들이 세션 도중에 고막을 울리는 환청 증세를 어떡하겠는가. 한 정당(政黨)을 밖에서 치고 들어오는 외부자극도 벅찬 실정에 내부적 갈등이 불철주야 일으키는 자극 과잉, 소위, 당의 내부가 ‘찢어지는’ 현상을 무슨 수로 대처할 것이냐.
 
2024년 3월 16일 오하이오주 한 국제공항 선거유세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왈, “내가 낙선되면 나라가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다”라 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피바다’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 곧잘 쓰던 말이라서 귀에 익숙해진 아주 자극적인 표현이다.
 
‘몹시 슬프고 분하여 나는 눈물’이라고 사전이 풀이하는 ‘피눈물’도 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키울 때 ‘피땀’을 흘려 키운다. 핏빛 노을! 갓난아기를 ‘핏덩어리’라 일컫는 말 습관. 아무래도 우리는 피를 좋아하는 족속인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문명의 혜택이 잉태해 놓은 부작용, 이를테면, 과속으로 질주하는 컴퓨터의 작동 장애, 도로공사 굴착기의 소음, 낙엽 치우는 장비가 뇌를 뒤흔드는 굉음, 앰뷸런스의 경적, 와이파이 접속이 불량한 스마트폰을 입에 대고 목청을 높이기, 등등, 과잉자극에 시달리다가 21세기 지구촌 인류의 중추신경에 굳은살이 박힌 것은 아닌지 몰라요.
 
‘Chinese water torture’이라는 말이 있다. ‘이마에 물을 떨어뜨려 정신이 돌게 하는 고문’이라는 뜻. 그 유래에 대하여 위키피디아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오시닝(Ossining)의 ‘Sing Sing Prison’에서 1860년에 찍어 놓은 사진이 섬찟하다. 사람 이마에 차가운 물방울을 불규칙적으로 오래 떨어뜨려 환청, 망상, 현실감각 상실을 일으킨다는 기록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표현은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수적천석(水滴穿石)과 연관을 맺고 있다. 돌은 뚫릴지언정 사람처럼 광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물방울 같은 경미한 자극에도 홀까닥 넋이 빠지는 호모사피엔스에게 달려드는 과잉자극의 끝은 어디인가.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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