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사랑해, 내친구 게일”
부르짖는 내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떠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국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그녀는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내 일생에서 가장 귀한 친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게일을 선택할 것이다. 게일은 나의 친구이자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던 특별한 것이었다. 그녀와 나는 신앙이 같다는 이유로 대화가 통해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게일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걱정하는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함께 기도하며 위로해 주던 친구였다.
병세가 위중해진 아버지를 뵙기 위해 한국 방문을 계획할 때였다. 그녀는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국에 가라고 했다면서, 동행을 제안했다. 물론 본인의 여행 경비는 본인이 부담하겠다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흑인인 그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에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너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러 가는 것”이라는 게일의 말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버지께 연락을 했더니 “나야 와주면 고맙지”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한국에 갔다. 그녀는 폐암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아파할 때마다 아버지 방으로 가 환부에 손을 얹고 정성으로 기도했다. 아버지도 게일을 무척 좋아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녀가 신은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보셨는지 새 양말도 꺼내 주시고 손도 잡아주시며 무척 예뻐하셨다. 그녀의 사랑에 감동하신 아버지는 그녀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셨다.
하지만 한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게일과 나는 함께 한국을 다녀온 후 더 가까워져 그녀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는 등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다.
어느 날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게일의 이름을 대면서 빨리 병원으로 와 달라는 전화였다. 나는 남편과 함께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게일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었다.
그녀는 혼수상태였음에도 내 목소리를 듣고는 눈을 떠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 한마디 나눠보지 못하고 게일은 삼 일 만에 하늘나라로 이사를 했다. 그녀가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알았지만 심장병까지 앓고 있는 것은 몰랐다. 그녀가 떠난 후 그녀의 아들과 병원 동료들 몇 명이 함께 그녀의 유품 정리를 도와주다 발견한 병원 진료 카드를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그녀가 사용했던 침대는 누가 버린 낡은 소파 쿠션 3개를 붙여놓은 것이었다. 옷장에도 내가 선물로 준 옷 몇 벌과 유니폼 몇 개가 전부였다. 그녀는 번 돈을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대신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과 홈리스들을 위해 모두 사용했다. 홈리스들에게 음식도 만들어 주고 재봉도 가르쳐 주는 등 본인이 소유한 물질과 시간을 모두 어려운 이웃들과 나눴다. 그녀는 봉사하는 삶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준 성경에 나오는 ‘도르가’와 같은 귀한 여인이었다.
아들 외에는 유가족이 없는 그녀를 위해 근무하던 병원에서 조촐하게 장례식을 치렀다. 동료들과 함께 그녀를 추모했다. 게일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려 추모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소중한 가족 한 사람을 잃은 것 같은 슬픔과,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며 선행과 나눔을 실천했던 그녀의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베풀었던 선행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성경 다니엘서 12:3 절을 천천히 읽어주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그녀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마지막 인사였고 소원이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셨던 천사였다. 나는 그녀가 천국에서 나의 아버지와 반가운 재회를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때때로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지날 때, 또 마음이 힘들고 울적할 때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녀를 불러본다. 그녀가 언제나 그랬듯이 다정하게 웃으며, 또다시 나에게 말한다. “앨리스, 너는 참 바보 같아(Alice, you are so silly….)”
사랑해, 그리고 보고 싶다, 잊지 못할 나의 영원한 친구 게일.
앨리스 박 / 은퇴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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