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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정치: 악연 혹은 필연?

    최근 반유대주의 (antisemitism) 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해 미국 대학가에 칼바람이 불고있다.  반유대주의를 지지 하는 것 또한 교육기관에 속해있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일수 있다는 몇몇 대학총장들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매우 거세다.    그로 인해 최근 유펜 (University of Pennsylvania) 총장은 모교 고액기증자들의 반발에 힘입어 사퇴했다.    하버드 총장 역시 비슷한 처지로 인해 사퇴 하였다. 교육기관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에 위치해 있는 대학기관의 수장으로서 정치적인 압박과 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표현의 자유 혹은 표현의 다양성을 지킨다는 게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크게는 무언 (無言) 혹은 소극적인 긍정이 부정으로 인식된다.   라틴어 diversus 에 어원을 둔diversity (다양성) 라는 단어는inclusion (포함/소속감)이라는 단어와 함께 크게 교육이라는 맥락 안에서 단골 단어로 쓰인다.  세부적으로 보면 한 교육기관 (예컨데 대학교)이 내세우는 교육철학 혹은 비전안에서 반복적으로 앞서 언급한 키워드를 내세운다.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 관점으로 보았을때, 크게 미국에서 가장 많이 내세우고 좋아하는 키워드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영화 혹은 매체에서 여러 다양한 인종, 출신을 반영하기위해 그리고 한 인종만 혹은 다수의 인종만을 위한 정책을 하지 않기 위해 미국 사회 곳곳에서 diversity & inclusion을 외친다. 특히 교육기관에서 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이른바 슬로건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을 넘어 잭팟 처럼 까지 받아들여지는 이 키워드는 더욱 더 빛이 난다.    미국 대학에서 특히나 좋아하는 이 키워드 diversity & inclusion. 학업 내 외 적으로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나만의 아이디어 혹은 주장이 최고가 아니라는, 다른 누군가의 주장도 나의 주장만큼 혹은 나의 주장보다 더 타당할수 있다는, 한 문제에 대해 여러 답이 있을수 있다는, 완전한 혹은 변하지 않는 관점 및 사상 보다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discussion을 통해 현실적인 중도를 함께 갈구 및 고찰(考察)하는 과정. 이러한 가치있는 교육활동들이 앞서 언급한 키워드 안에서 가능하다. 아니 그 키워드 안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그 키워드는 학생들에게 자유를 준다.    생각의 자유. 사상의 자유. 믿음의 자유. 발언의 자유. 교육이라는 반물질적인, 대학교라는 물질적인 큰  틀 안에서 학생들은 자유롭고 자유로워야만 한다.     비지니스 측면에서 보았을때, diversity & inclusion은 표현의 자유 그 이상이다.  좋은 마케팅 수단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모든 나라에 있는 대학기관이 어느정도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의 대학기관은 대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운영된다.    학생 한명 한명이 수입원으로 적나라하게 계산되고, 대학은 그 돈으로 더 좋은 기숙사, 연구실, 강의실, 뛰어난 운동선수들 그리고 더 저명한 교수들을 초빙하기 위해 힘쓴다. 자본주위 경제체제 안에서의 대학교육은 철저히 자본이라 쓰고 자본이라 읽는다.    더 비싸게 부를수 있는, 더 많은 “큰고기들” 혹은 International students (외국/유학생들)를 유치하기 위해 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키워드 외에 더 효과적인 문구가 있을까? International students 와 더불어 고액 기부자들 또한 또 다른 중요한 수입원이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돈을 무기로 이들은 한 대학교의 핵심 비전 그리고 철학을 수정 혹은 부정하거나 더 나아가 짓밟기까지 한다. 한 기업에 큰 돈을 투자한 갑질하는 Investor와 하나 다를게 없다.   세상에는 서로 섞이지 말아야 할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육과 정치가 아닐듯 싶다.    정치적 이념에 쏠려 돈을 무기로 교육의 핵심비전, 철학 및 다른 중요한 교육가치들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될것이다. 반유대주의를 비판하고 그에 맞서 투쟁하라는 말은 곧 반유대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부정하라는 말과 같다.    한 인종을 위해 다른 인종이 희생양이 되는 이런 딜레마 같은 상황. 현실적인 더 나은 방안, 공공의 이익, 다양성의 존중보다는 개인적인 혹은 한 집단의 이익, 탐욕을 전제로 하는 이러한 당파싸움은 정치판에서만 보고싶다.    교육과 정치 교육과 정치 키워드 diversity 정치적 이념

2024-01-22

[기고] 난상토론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의 발달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며 AI 규제 관련 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연방상원은 지난 9월 13일 AI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주요 IT 기업의 CEO와 AI에 반대하는 노동연맹(AFL-CIO) 및 영화협회, 작가협회, 미국교사연맹과 인권 단체, 비영리 단체 관계자 등 총 22명이 참석해 60여명의 상원의원과 비공개 난상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상원은 난상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행사 후 인터뷰를 통해 참석자 전원이 AI 규제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AI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문명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회의로, 역사에 남을 회의”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난상토론 방식을 통해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좋은 예가 될 듯하다.   어떤 이슈이든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 보니 주장이 엇갈려, 공동체에 갈등과 불신이 조장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각자의 고정관념이 수반되면 더욱 그렇다. 타협을 모르는 고정관념이 옹고집으로 표출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골이 깊어지고 거리감을 두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이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요즈음 한국 정치가 그렇다. 절대다수를 앞세운 야당의 행태를 보면 공감이 간다. 야당의 일방적인 당론이 작용하면서 국회에서의 진지한 토론이 실종됐다. 국민 여론은 안중에도 없는 막무가내식 정치 행태는 문제가 있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앞세우지만 진정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혼란스럽다.   더 큰 문제는 중요한 정책이 목적에 따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널 때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념이 개입되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진다.     한국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이곳 한인 사회도 이념의 분리로 인해 서로 적대시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념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크기에 서로 적대시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바람직한 진보와 보수라는 정책적 이념이 아니라 사상적 이념이 정착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미국에 사는 동포는 사상적 이념을 뛰어넘는 진정한 진보와 보수로 나아갔으면 한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보라. 각 당의 생각과 방법은 달라도 목적은 국가의 안위와 번영이기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가. 한인 사회도 사상적 이념을 떠나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는, 갈등과 분열이 아닌 통합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조국을 사랑하며 국가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평화통일을 염원하기에 말이다.   무엇이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인지 난상토론을 통해 한마음, 한뜻을 이루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역할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때다. 한국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과 달리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사상적 이념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 한, 모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원하기에 더욱 토론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다. 모두 자랑스러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이기에 분열이 아니라, 토론문화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편이 아니겠는가.   연방상원이 AI의 문제점을 놓고, 난상토론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듯 한인 사회도 하나로 통합되는 토론문화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난상토론 난상토론 방식 비공개 난상토론 사상적 이념

2023-11-20

[디아스포라 시선] 한미동맹 70주년 (1)-이념 초월한 서사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관련 행사가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미국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군사와 안보 중심으로 시작된 양국의 관계는 이제 경제, 과학, 문화, 공공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 흔적이 드러난다.   ‘헤로니모’, ‘초선’ 등 다큐멘터리를 통해 해외 한인의 존재와 그들의 이야기에 천착해온 필자는 여러 관련 행사에 때로는 청중으로, 때로는 발표자로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기념일과 관련해 어떤 ‘서사’를 통해 그 날을 기억하는지 묻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무엇이 그 기념일을 의미 있게 하는가?     필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부모님과 많은 친구가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가 공고해지는 것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미동맹 70주년’ 행사들에 등장하는 지배적인 서사에 주목해 본다. 그 서사는 6·25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한 미국의 희생적 공로와 공산주의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미국의 경제·안보적 지원에 힘입어 급속한 발전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에 초점을 둔다.     분명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서사다. 이런 국가 중심적 서사에 필자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동일한 서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그 선택적이고 불완전한 논리, 그리고 철학적, 도덕적 빈약함에 대해 반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의문은 지성을 낳는다는 어떤 어르신의 말씀처럼 비판적 사유를 통해 국가적, 이념적 프레임 이상의 서사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프린스턴 대학에서 진행된 행사에 초청된 몇몇 교수는 한미동맹 70주년에 대한 사유는 1953년부터가 아닌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1882년부터 1950년까지 ‘또 다른’ 7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6·25 이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을 언급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 통치를, 미국은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과 한반도 통치를 용인했던 역사를 상기시킨 것이다. 성급한 가치판단을 경계하고 국익과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가변적이고 복잡한 국제관계의 성격을 인지해야 함을 꼬집은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혈맹과 국가적 발전은 숭고한 것이지만 2023년 현재 만약 한미동맹의 근간을 이르는 대서사가 ‘반공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이념적 틀에 갇혀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외교·정치적 수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시대를 살아가는 양국 국민의 지적 사유와 시대적 고민의 수준에는 부합하지 못할 것이다. 혹자는 미-중 간 새로운 냉전 분위기가 고조되는 등 차가운 국제관계 현실에서 무슨 순진한 사고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초월적인 서사를 상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과거 이념대결의 승리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는 인류애와 보편성에 기반을 둔 서사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 서사를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에서 발견한다. ‘디아스포라’란 ‘재외동포’를 지칭하는 학문적 용어로 과거에는 팔레스타인 외의 지역을 유랑하던 유태인들을 지칭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국 밖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의미한다.     필자는 이 개념을 단순히 지리학적 의미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인문학적으로 적용해보고자 한다. 즉, 필자가 정의하는 ‘디아스포라’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인 동시에 ‘다양한 이들이 모인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이방인적, 혼합적, 소수자적 시선과 정체성’이다.     만약 우리가 한미동맹의 서사를 이념이 아닌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아니면 200만 명이 넘는 재미 한인들의 역사와 이야기, 그들의 사유 방식에서 모색해 보면 어떨까.     필자는 ‘한미동맹 70주년’의 대서사를 한인 이민자들의 존재 방식이라는 창조적 시각으로 사유해 보고자 한다.   ▶전후석 -UC샌디에이고, 시라큐스 법대 졸업 -뉴욕주 변호사 -다큐멘터리 헤로니모(2019), 초선(2022) 제작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한미동맹 이념 한미동맹 70주년 올해 한미동맹 국가적 이념적

2023-07-30

[독자마당] 굴욕외교,실익외교

요즘 한국에서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한 찬반논란이 분분하다. 반대하는 측에선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가 당했던 참혹한 고통과 치욕에 대해 이제까지 일본으로부터 그에 합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많은 국민의 반일감정이 여전함에도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저자세로 굴욕외교를 펴고 있다며 반발하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에선 과거는 기억해야 하지만  국익을 위해 선별 대응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 옹호한다.   이는 우리가 선택하게 될 방향에 따라 국익이 좌우되기에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다. 지금의 국제정치는 전통적 우의나 정치적 이념 등을 넘어 자국 이익이 우선 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우방이며,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이어서 상호 간 소원해질 수 없는 관계임이 현실이다.  그런데 지난 세기 겪었던 아픔의 상처를 지금까지 치유하지 못하고 거리를 좁힐 수 없다면, 양국 간 국익에 큰 손실이 생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용서는 상대적 자신감에서 가능하며, 이는 굴종이나 패배가 아닌 진정한 승리이다.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패악은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외세의 압력, 간섭에 맞서 주권을 지켜내지 못했던 처지도 짚어 봐야 한다. 과거에 얽매여 밖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간과해서 취해야 할 일들을 놓친다면, 우리가 입을 피해는 미래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한국은 경제력 면에서 세계 10위 권에 드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 자신감과 대승적 관용으로 묵은 앙금을 털어내고 당당히 국제무대의 주역으로 올라서야 할 때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마당 굴욕외교실익외교 자부심 자신감 상대적 자신감 정치적 이념

2023-04-23

[독자마당] 사제의 정치 참여

한국은 광화문 촛불 집회를 통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어 등장한 정부는 적폐 청산을 앞세우는 등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다.     이에 실망한 국민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검찰 출신의 대통령을 뽑았고 이제 취임 7개월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취임이 얼마 되지 않은 대통령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있어 나라가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 같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종교인들의 지나친 정치 참여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광화문 촛불 집회에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참석하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란 문구와 함께 대통령 전용 비행기 추락을 풍자한 만화를 인용하며 추락을 바란다는 노골적인 표현을 한 성공회 신부도 있었다. 이같은 행동은 사제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그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성직자는 제사장과 같은 의미로 우리는 사제(Priest)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을 돌보는 목자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적 이념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사제는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굳게 믿으며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따른 순교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사제는 신자들이 어떠한 현세적인 어려움과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게 이끌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세상의 어떤 유혹도 이기고 자비의 삶을 살아 다른 이들과 화해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도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살도록 해야 한다. 훌륭한 사제는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열정을 다할 의무가 있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도와 말씀들을 가슴에 안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임순 / 토런스독자마당 사제 정치 정치 참여 정치 경험 정치적 이념

2022-11-29

[김형석의 100년 산책] 왜 지금 다시 자유민주주의인가

자유민주주의! 항상 사용하는 말이면서도 생활화된 관념이거나 정치적 체온을 느끼는 개념은 못되고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때부터 쓰였으나 공산주의와 상치되는 정치이념으로 부각되었을 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이념으로 받아들이고 6·25전쟁을 치르면서 자유민주국가의 주역을 담당했던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을 수용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다. 그 방향과 과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계의 실정이다.   자유민주의 정신적 전통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때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기독교 정신이 남겨준 휴머니즘과 새로 탄생한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의 후예로 태어났다. 그 정신을 모체로 두 갈래의 사회적 영역의 대조적 구분을 만든 것이 영국 중심의 경험주의와 유럽 대륙의 관념지향 사상이다. 두 전통 모두 장단점은 있다. 영국 경험주의가 추구하는 실용적 가치는 정치 경제의 장점을 택했고, 대륙의 관념주의는 정신문화의 우월성을 창출했다. 인문학적 성과는 대륙이 선도한 셈이나, 정치 경제적 발전은 영국이 영도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마르크스 공산주의가 등장했으나, 영국에서는 현실에 입각한 공리주의 정신이 열매를 맺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탄생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경험주의 현실의 사회가치를 발전시켰다. 가장 많은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을 정치적으로 개발한 결과가 의회민주정치라는 세계정치사의 큰 흐름을 발전시켰다. 처음으로 민주주의 정치 방향을 제시하였다. 미국 같은 나라가 대통령제를 추가했으나 여전히 민주정치를 위한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경제적 민주정신은 어떠했나. 국민이 자율적으로 생산방법의 개선을 쌓아가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이론을 현실화하였다. 그런 공리주의 정신은 국민생활의 휴머니즘과 인간(국민을 포함한) 목적관과 일치되는 세계사의 바른길이었다.   제2의 유럽이라고 볼 수도 있고, 영국 본점의 지점으로 출발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미국이 그 뒤를 계승하였다. 미국의 정신적 탄생은 200여년 전이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을 받아 성장한 것이다. 문화면에서 본다면 영어문화권의 세계화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는 영국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대통령 중심의 행정부를 강화해 국가 성장을 촉진하는 데 비중을 추가했다고 보면 좋겠다. 그러나 경제면에선 유럽이나 영국과 다른 독자적 방향과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여건이 판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그 초창기의 경제현상을 자본주의 경제라고 지칭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원의 개발과 소득을 소유하는 체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가’를 경제의 척도로 여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유체제는 국가체제로 보거나 사회의 공동발전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자본가들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자산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사회의 공유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발전적 개념을 느끼면서 소유체제가 공유체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번지는 사회주의 경제관의 영향은 물론 경제 혜택은 소유가 아닌 공유체제에서 유지된다는 변화를 수용한 것이다.   역사를 거듭하는 동안에 19세기 후반부터는 공유체제가 다시 기여체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정치는 정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며 교육과 문화는 전문가들이 아메리카를 위해 봉사하듯이, 기업인들은 경제적 가치와 결실을 창출해 그 혜택을 국민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본주의는 곧 종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경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관과 이념으로 정착시켰다. 20세기에서 현재까지 미국만큼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가 없었을 정도이다. 무엇이 그 역사적 변화를 가능케 했는가. 좁은 의미의 경제이론이나 정책보다는 경제 휴머니즘의 혜택이다. 경제가치를 소유에서 공유체제로, 다시 인도주의적 기여체제로 탈바꿈해온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경제적 가치와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기여 봉사하려는 정신이 지속하는 동안은 자본주의라는 명칭은 바뀌어도 경제의 생명력은 약화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었다.   개인과 자유는 한 뿌리의 두 가지   미국의 자유·민주정신을 우리는 뒤늦게 피상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후진국과 선진국도 경제적으로는 아메리카의 정책을 뒤따르고 있다. 무엇이 그 원동력이 되었는가. 미국인은 자유라는 개념을 많이 쓰지 않는다. 개인과 자유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두 개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속에 자유가 잠재해 있고 자유는 더 많은 사람을 위한 필수관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현재까지의 미국은 그 정신을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정치 경제적 성장을 가능케 한 사상이 실용주의 철학이다. 공리주의에서 태어난 방법론인 셈이다. 더 많은 국민이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찾아 누리기 위해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이다. 그 핵심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와 같은 투쟁이 아니다. 대륙 국가들이 택하는 토론도 아닌, 대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찾아 협력 실천하자는 방법이다. 그 성공을 위해 교육제도와 내용을 개혁했다.   한때 우리는 그 방법을 새 교육이라고 수용했다. 정치사회의 다수와 미래를 위한 객관적 가치의 추구인 것이다. 지금 정치계에서 중도노선이라든지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길이 그 방향과 방법이다. 모든 선입관념이나 고정이념을 버리고 미래의 국민 다수를 위한 정치 경제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 나가는 정신이다. 그 주체는 창조적 자유이고 근거와 목표는 휴머니즘(인간애)의 정신이다. 지금 우리가 선택 추진시키고 있는 자유민주정신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자유민주주의인가 르네상스 정치 경제적 경제적 민주정신 자유민주주의 이념

2022-10-28

[시론] 화합과 협력의 시대를 기대하며

미주 한인사회는 지난 한국의 대선과 지방선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환호와 좌절이 교차했다. 몸은 멀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선거가 끝나면 으레 지지후보의 당락에 따라 서로간 갈등이 생긴다. 내면의 깊은 갈등이 서로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으로 표출돼, 그동안 쌓아온 친분마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따지고 보면 미국에 사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일 같은데도 말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분명한 것이 작용하고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확고한 사상과 이념 때문이다. 일반적인 이해충돌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라는 견고한 사상과 이념이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바꾼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특히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말이다. 또한 한국과 미국이 추구하는 보수와 진보개념이 다르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이 추구하는 보수는 현상 유지나 전통의 옹호 또는 점진적 개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보는 사회의 모순을 변화와 개혁을 통해 해결해 나가려는 사고방식이나 사상을 말한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이념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미국의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다원주의에서 극과 극의 양상으로 달라진다. 사상과 이념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갈라진 이념으로 남북이 분단됐고 평행선을 달리며 아픔과 상처투성인 6.25전쟁도 경험했다. 수많은 북한의 도발로 아픔과 상처도 겪었다. 근래에 그 양상이 미사일과 핵으로까지 악화되면서 양극화의 절정이 극에 달했다.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 것 같아 위태롭다.     보수와 진보의 사상과 이념 갈등이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릴 것인가. 앞으로도 서로 대치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모두가 평화통일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방법론에 있어 갈등이 양극화 되었다고 본다. 평화통일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보수와 진보가 공통분모를 찾아 서로 의견 접근을 도출해야 한다.     북한의 통일방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고 적화통일을 꿈꾸며, 호전적인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 여부가 중요한 문제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사회 발전에 모두 필요하다. 먼저 보수는 꼴통이고 진보는 종북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편협한 사고는 양극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력과 타협으로 여러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고가 생겨나야 진정한 소통을 이루며 간극을 좁혀나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며 추구하고 있기에 사상과 이념의 갈등에서 지혜롭게 벗어나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급진적 타협보다는 단계적으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간의 현 상황에서 보수가 주장하는 것과 진보가 주장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의 화합은 남북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 협력하고 상대를 존중할 때 보다 발전적인 상생의 정치도 구현할 수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동포사회도 사상과 이념의 양극화에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모두가 한민족이다. 동포사회가 하나 되어 화합과 협력의 길로 가는 대한민국을 후원해야 한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시론 화합 협력 이념 갈등 우리사회 발전 미주 한인사회

2022-06-14

이념 공방에 '검사들의 전쟁' 시작되나

 제이슨 미야레스(공화) 버지니아 검찰총장이 북버지니아 지역 민주당 지역 검사장들을 향해 본격적인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미야레스 검찰총장은 알링턴 카운티에서 열린 보수단체 '프로텍팅 어메리칸스 액션 펀드' 전체회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북버지니아 지역 검사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더이상 (조지 소로스같은) 억만장자가 (수백만달러를 기부해) 엄격한 법집행을 원하지 않는 진보적인 민주당 검사를 선출하도록 허락할 필요가 없다"면서 "이들 검사장들은 범죄자들을 잡자마자 회전문을 통해 다시 석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티브 데스카노 페어팩스 카운티 검사장이 부하 검사에게 지시한 메모를 인용해 "그들은 법정 최저형을 피해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중범죄 적용 대신 경범죄를 적용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면서 "그들은 피고를 스무번 넘게 언급하고도 피해자는 겨우 한두번 언급할까말까했다"고 지적했다.   미야레스 검찰총장은 "이같은 일들이 지금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자행되고 있으며, 그들은 마치 검사의 역할을 범죄자의 변호사 쯤으로 간주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방식대로라면 최근 워싱턴D.C.와 뉴욕에서 노숙자를 골라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제럴드 브레바드에게 중범죄 대신 경범죄를 적용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라우던 카운티와 알링턴 카운티 검사장을 겨냥해서도 "그들은 범죄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피해자는 가장 나중에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팔리사 타하니-태프티 알링턴 카운티 검사장은 "미야레스 검찰총장의 발언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며 터무니없다"면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경계선을 넘어 전체적인 공공안전 관점에서 피해자와 피고를 포함한 커뮤니티 전체를 대상으로 공평한 법적용 시스템을 고려하는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는 개혁적인 검사장으로서, 범죄자가 댓가를 치른 다음에는 갱생의 기회를 갖도록 허락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부타 비버레이 라우던 카운티 검사장도 "진보든 좌파든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지만, 나는 스스로를 혁신적인 검사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피해자 중심적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으며 피해자 못지 않게 범죄자가 잘못을 저질렀으나 상습범이 아니며 재범가능성이 높지 않다면 굳이 형벌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야레스 검찰총장은 거짓말을 늘어놓은 셈"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러한 방법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 커뮤니티를 지키고 안정적이고도 안전한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비버레이 검사장은 "미야레스 검찰총장이나 나는 모두 커뮤니티를 지키는 사람이지만, 불행하게도 미야레스 검찰총장은 사람들 앞에서 정치를 얘기하고 있으며 일선의 검사들을 지지하는 대신 우리 모두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커뮤니티의 근간을 흔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이념 공방 카운티 검사장 지역 검사장들 비버레이 검사장

2022-03-29

다수당 바뀐 VA 의회, 이념 논쟁 격화

버지니아 주의회 다수당이 공화당으로 넘어간 후에 여야 간 이념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토드 길버트 하원의장(공화, 쉐난도우)은 지난 12일(수) 랄프 노덤 주지사의 의회 고별 연설 도중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트위터 글을 남겼다.     길버트 의장은 “노덤은 실패한 이유를 말하고 주지사 직에서 물러나고 있다. 그는 그가 읽은 소설책 ‘뿌리(Roots-미국 흑인 노예)를 바탕으로 한껏 도덕적으로 잘난 체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이제 멈추지 않는 화해의 여정을 떠났다. 토요일 취임식은 좀처럼 빨리 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덤 주지사는 2019년 모교인 이스턴버지니아 의과대학 졸업앨범에 흑인분장가면을 쓴 사진이 공개되면서 퇴임 압박을 받았다.     노덤 주지사는 애초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최근 “99% 나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노덤 주지사는 이 사건 이후 남은 임기 동안 유색인종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하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냈다.   길버트 의장은 이 점을 비꼬며 트위터에 글을 남긴 것이다.     소설 뿌리는 흑인인 알렉스 헤일리가 자신의 외가쪽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로, 1767년 감비아에서 납치되어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쿤타 킨테와 그의 후손들의 삶과 고난을 서술하고 있다. 엘린 필러-콘 전 하원의장(민주, 페어팩스)은 “길버트 의장의 트위터는 분열적이고 남에게 고통을 안기는 옳지 않은 일이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의회 흑인 코커스 소속 의원들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길버트 의장은 “내 말은 노덤 주지사에게 국한된 것”이라며 “2019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주당원들이 먼저 나서서 노덤 주지사 사퇴를 촉구한 사실을 상기해 봐야 하는데, 과연 내 발언이 비난받을 일인가”라며 반문했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다수당 의회 의회 이념 버지니아 주의회 노덤 주지사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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