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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촌보다 좋은 이웃

나는 미국이 좋다. 편하다. 낯설고 물 선 이국 땅도 맘 붙이니 덜 외롭다. 고향은 유년의 추억을 실어 나르는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크고 아름답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아 있는데/ 아니 도대체 왜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요 (중략) 하루가 지나가도/ 아무리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는데 왜’-던(DAWN)의 ‘호랑나비’중에서.     맑은 봄날, 황토 길 따라 아른거리던 아지랑이는 내 얼굴을 기억 하고 있을까.   낙동강 하류를 굽이 돌아 옆길로 빠진듯한 냇가에서 해가 비슬산 너머로 빠질 때까지 동무들과 놀았다. 머슴애는 팬티만 입고 여자애들은 내복을 걸치고 물장난을 쳤다. 발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백사장은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삼만이 아재가 짚을 꼬아 그네를 묶어준 수양버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양철 지붕을 얹은 가게는 라면을 판다. 목젖까지 서늘하게 적셔주던 수박을 매달았던 깊고 차갑던 우리집 우물은 콘크리트로 덥힌 지 오래다. 발 뒤꿈치 들고 아! 하고 소리 지르면 우물 속에 어른거리는 내 얼굴이 작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간절한 만남과 사랑의 실체가 없는 고향은 망연한 그리움일 뿐, 빛 바랜 일기장 속에 유년의 추억은 향수로 흩어진다.     이웃집에 슬픈 일이 발생했다. 그저께 밤, 앞집에 앰뷸런스와 소방차, 경찰차까지 총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함부로 근접 못하고 옆집 아저씨와 지켜보며 애를 태웠는데 아침에 모시고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브라이언 가족은 나의 소중하고 절친인 이웃이다. 친구나 자식보다 더 가깝고 필요한 사람이다. 기계나 컴퓨터는 물론 간단한 살림 도구까지 조립이 불가능한 기계치 몸치로 나는 명성이 자자하다. 아들이 대학간 뒤에는 제 컴퓨터로 원격 조절해 문제를 해결해 주더니 장가가 애 둘 뒷바라지 하느라 제 코가 백자라서 남보다 더 요원한 사이가 됐다.     ‘앓느니 죽는다’는 각오로 홀로서기에 진입, 키 보드 이것저것 함부로 누르며 극한 생존대결의 길로 들어섰다. 근데 심각한 문제 발생! 20년 늙은 사업용 메인 컴퓨터가 폭파(?) 됐다. 그동안 몇 번 죽었다 살았다 하더니 드디어 사망에 이르렀다.   새 컴퓨터 구입해도 문제는 30000여개가 넘는 미술 작품과 30년 묵은 고객 명단, 포토샵과 기타 파일 등등을 복원하는 일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대장정이다.     ‘뒷간에 빠졌다 나와도 장미꽃 향기 난다(fell in the outhouse came out small like roses)’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록이다. 나의 친절한 이웃 사촌이 컴퓨터 전문가라니! 이틀 만에 새 컴퓨터로 교체하고 모든 파일을 복구 했다. 위기 상황에도 자존심 지키는 것은 필수, “컴맹이라도 난 그림은 잘 그린다”며 작품 두 점을 선물했다. 가는 정이 없으면 주는 정도 사라진다. 초상집은 먹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 소문난 요리 집 치킨 윙 50개를 주문 배달했다.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는 우리집 드라이브 웨이 눈도 치워준다. 집 앞을 왔다갔다 하면 눈치 채고 두 이웃이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서툴었던 내 동작도 유연해지고 어눌했던 언어도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정 붙이면 모든 것들이 정겨워진다. 내 청춘과 장년을 송두리채 바치고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이젠 방황하지 않는다. 내 땅 남의 땅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는다. 지구는 둥글고 하나다. 고향은 아련한 추억으로, 그리움은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달하게 혀끝을 적신다. 사촌보다 자식(?)보다 더 좋은 이웃을 사랑하며 매일 미국을 배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촌 이웃 이웃 사촌 우리집 우물 옆집 아저씨

2024-01-30

[삶의 뜨락에서] 우물이 있던 마을

지금은 상수도의 발달로 우물을 거의 찾을 수 없지만 우물은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김유신 장군 집에 있던 우물은 재매정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궁궐에서 궁녀들이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는 숱한 비화가 전해지는가 하면, 민가에서는 아낙네들이 우물가에서 동네 쑥덕공론을 일삼기도 했다.     시인 윤동주는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라고 했다. 시인이 들여다본 우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절망하는 청년들의 표상으로 볼 수 있으며, 윤동주의 이 ‘자화상’은 다른 시들과 함께 일제 경찰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시인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27세로 옥사하고 만다.     이렇듯 우물은 실생활에서 사라져도 이미지는 문학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 井底之蛙)’나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본다(坐井觀天)’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물이 없어짐과 함께 우물이라는 말도 사어가 되지 않고 격언을 통해 의미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우물은 한정된 공간에서의 견문이 넓지 못함을 비유함으로써 젊은이들이 도시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필연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성장기에 공부하러 또는 살아갈 방도를 찾아서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왔지만 잘 살든 그렇지 못하든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사람들은 동심이 자라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마을 한가운데 있어서 두레박을 사용해서 물을 퍼 올리는 큰 우물이었는데 흰옷 입은 여인들이 그 주변에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다른 하나는 읍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에 있던 골맥이 샘이다. ‘골맥이’란 마을의 수호신을 나타내는 말인데 논둑길을 따라가면 시멘트와 돌로 둘러싸인 둥그런 샘이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 올리는 높지 않는 우물이었는데 항상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고여있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설날이 지나 정월 초이틀 이후 새벽 3~4시쯤 골맥이 샘으로 가 새로 고이는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도 하셨단다.  그리고 맑은 물을 물동이 담아 이고 논둑길 제방둑길을 걸어오셨다고 한다. 머리에 고드름이 내리고 흰 한복 치마저고리는 얼음으로 버석거렸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몸도 녹이지 않은 채 병풍을 친 소반에 정화수 올려놓고 정성스레 기도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별이 담긴 물을 이고 걸어오신 새벽의 얼음길은 내가 세상의 어려운 길을 지날 때마다 귀중한 자양분으로 작용한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가끔 찾아가 산 복숭아꽃이 분홍으로 번지는 산과 들을 거닐기도 하고, 눈이 내리는 마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조상님들이 실천하시며 베풀어주신 가르침은 우물 안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내 정신의 깊은 원천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권정순 / 전직교사삶의 뜨락에서 우물 마을 우물안 개구리 마을 한가운데 시인 윤동주

2023-01-19

[이 아침에] 한 해의 마지막에 전하는 ‘감사’

선생님. 안부조차 드리기 민망한 한 해였습니다.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 올리는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올해는 성탄절 카드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암담한 것들 뿐이어서 백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인사말 대신합니다.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으로 겪은 고통과 참담한 이별은 익숙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사는 게 여전히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하얗게 웃는 이웃을 만나면 ‘해피 할러데이’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고 싶어 ‘그리움’ 대신 ‘행복’이란 단어를 일기장에 적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좀 참고 견디면 끝이 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운전에 젬병인 저는 터널 속을 달리면 반대편 오는 차에 부딪힐까봐 불안에 떨고 좁은 2차선 도로를 잘못 짚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까봐 손에 땀을 쥐며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견디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여정인데도 계속 어둡기만 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일까요. 희망은 빛바랜 마른 꽃잎처럼 부서져 가루로 흩날립니다.     가족과 부모,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작별 인사도 못하고 생이별 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었고 사업체와 가게를 문 닫고 학교를 못간 아이들은 친구 없이 외톨이가 됐습니다. 교회도 못나가고 한국 사람 안 만나고 이웃과 대화도 없어 반벙어리가 됐습니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는 단어가 줄고 한국말로 떠들던 수다도 맞장구쳐 줄 친구 없어 나홀로 외롭게 지냅니다.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두 살 때 홀로 되신 어머니는 고된 밭일로 몸살이 나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아스피린 두 알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아파도 끙끙대지 않으셨고 슬퍼도 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숨은 어머니 것이 아니라 두 생명의 목숨줄이었으니까요.     요즘은 사는 게 두렵습니다. 나이 탓인가요.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설교 듣고 철학자의 깨달음을 갈구해도 구멍난 마음의 바닥에는 어둠이 깔립니다.     어릴 적 우리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아버지는 새로 지은 본채에 하루도 못살고 피란 가고 그 집은 공산당 사무실로 쓰다가 중공군이 후퇴하며 집을 불살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새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터 비워두고 임시 거처를 지은 탓에 우물이 부엌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져 새집을 영영 짓지 못했습니다.     죽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실낱 같은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은 용솟음칩니다. 희망은 깊은 샘물처럼 바닥을 뚫고 차오릅니다. 생의 바닥이 갈라져 맑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해도 ‘희망’이란 단어는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합니다. 살아있다는 이 찬란한 축복! 슬픔은 뼈를 이지러뜨리고 절망은 살을 깎아내립니다. 아무도 행복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끄나풀 놓을 때까지.     하찮은 일도 소중하게 붙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새 날을 기쁨으로 맞길 바랍니다. 절망과 싸우며 견디기 위해,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이기희 / Q7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감사 어머니 목숨 새해 인사 우리집 우물

2021-12-3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선생님. 그간 평강하세요. 안부 조차 드리기 민망한 한 해였습니다.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 올리는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올해는 성탄절 카드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암담한 것들 뿐이여서 백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인삿말 대신합니다. 지난 이년 동안 팬데믹으로 겪은 고통과 참담한 이별은 익숙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사는 게 여전히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하얗게 웃는 이웃을 만나면 ‘해피 할러 데이즈’라고 인삿말 건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고 싶어 ‘그리움’ 대신 ‘행복’이란 단어를 일기장에 적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좀 참고 견디면 끝이 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운전에 젬병인 저는 터널 속을 달리면 반대편 오는 차에 부딪힐까봐 불안에 떨고 좁은 이차선 도로를 잘못 짚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까봐 손에 땀을 쥐며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견디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여정인대도 계속 어둡기만 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일까요. 희망은 빛바랜 마른 꽃잎처럼 부서져 가루로 흩날립니다. 가족과 부모,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작별인사도 못하고 생이별 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었고 사업체와 가게를 문닫고 학교를 못간 아이들은 친구 없이 외톨이가 됐습니다. 교회도 못나가고 한국사람 안 만나고 이웃과 대화도 없어 반벙어리가 됐습니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는 단어가 줄고 한국말로 떠들던 수다도 맞장구 쳐 줄 친구 없어 나 홀로 외롭게 지냅니다.   ‘산사람은 어떻게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두 살 때 홀로 되신 어머니는 고된 밭일로 몸살이 나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아스피린 두 알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아파도 끙끙대지 않으셨고 슬퍼도 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숨은 어머니 것이 아니라 두 생명의 목숨줄이였으니까요.   요즘은 사는 게 두렵습니다. 나이 탓인가요.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설교 듣고 철학자의 깨달음을 갈구해도 구멍 난 마음의 바닥에는 어둠이 깔립니다.     어릴 적 우리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아버지는 새로 지은 본채에 하루도 못살고 피난 가고 그 집은 공산당 사무실로 쓰다가 중공군이 후퇴하며 집을 불살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새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터 비워두고 임시 거처를 지은 탓에 우물이 부엌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져 새집을 영영 짓지 못했습니다.   죽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실낱 같은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은 용솟음칩니다. 희망은 깊은 샘물처럼 바닥을 뚫고 차오릅니다. 생의 바닥이 갈라져 맑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해도 ‘희망’이란 단어는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합니다. 살아있다는 이 찬란한 축복! 슬픔은 뼈를 이지러뜨리고 절망은 살을 깎아내립니다. 아무도 행복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끄나풀 놓을 때까지. 하찮은 일도 소중하게 붙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새해 새 날을 기쁨으로 맞으시길 바랍니다. 절망과 싸우며 견디기 위해,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 어머니 목숨 새해 인사 우리집 우물

2021-12-28

[기고] 우물 안 개구리가 보는 세상

자기 중심적인 우리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을 자처하며 살아간다. 손님이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라는 우물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개중에는 바깥 세상에 관심이 있는 개구리도 있다. 그들은 진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를 가진 ‘이단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앞에는 바깥 세상과 통하는 문이 열려 있다.     우주 안에는 물경 1000억이 넘는 은하(Galaxy)가 있으며, 우주도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 하나가 아니고 복수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천체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오래 전에 새들백 칼리지의 김용학 교수의 글을 읽고 거짓말 같은 과학적 사실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의 은하수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최소 1000억개 이상) 태양과 같은 별(Star)이 존재한다고 한다. 각각의 별 주위에는 여러 개의 유성(Planet)이 선회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은하가 차지하는 공간은 전체 우주의 1억 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텅 빈 진공 상태라는 것이다. 북두칠성(Big Dipper)이 차지하는 공간만 해도 100만 개가 넘는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크기를 필설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실로 티끌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40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의 생태계에서 고작 몇 십 년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에 큰 의미를 부여할 여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한 예로 지구의 자전설이나 공전설을 놓고 볼 때, 역사상의 어느 특정인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언젠가는 비슷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생태계 전체의 환경이 먼저임을 말한다.     비록 우주 안에서의 존재는 이처럼 미미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어 천당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할수록 현실에서의 허무감이 더욱 증폭되어 가는 엄연한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적 고민을 하는 것을 본다. 어느 길을 가든 간에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겠다.     현대 과학이 주는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기존의 종교에 기대지 못하는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길은 자연의 품에 안겨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념적인 믿음에 대한 회의를 불식할 수 없는 한 그렇게 함으로써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보다 합리적인 믿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 여정의 종착역에 다가선 황혼 길임에도 마음이 더 없이 편안한 이유는 잔잔한 안정감을 주는 현실 감각 때문인가 보다. 자연 법칙을 믿는 마음으로 ‘세뇌’가 이루어진 덕분이라고 할까.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도 우물 밖의 미지의 세계를 보는 눈은 열려 있다.   라만섭 / 전 회계사기고 개구리 우물 전체 우주 우주 하나 현대 과학

2021-11-09

천일 기도…주민들 "생명 선물 감사합니다"

본지는 지난 12일~19일까지 차드 현지에서 진행된 '제2차 소망우물 원정' 과정을 생생하게 취재하기 위해 사회팀 구혜영 기자를 특파했습니다. 한인의 사랑과 배려로 불모지에 하나씩 피어나는 소망우물이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감동의 현장을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 발걸음 모래바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표지판도 없고 길도 없다. 긴 막대기를 톨게이트 삼아 500세파씩 통행료를 받던 아스팔트 길은 이미 끊긴 지 오래다. 나귀 낙타와 뒤엉키고 역주행을 불사하며 지프로 7시간을 달렸지만 아직도 멀었다. 바퀴가 빠지길 수 차례. 124번째 소망우물이 들어설 마싸코리 출마리는 지도에도 없는 오지로 수도 은자메나로부터 약 90마일 북동쪽에 있다. 말로만 듣던 사하라 사막이 가로지르고 풀조차도 뾰족한 가시만 있는 바싹 마른 곳. 듬성듬성 진흙과 소똥을 뭉쳐 만든 집이 눈에 띄었지만 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높은 하늘과 잿빛 황야뿐이라 어디부터 마을인지 어디에 2만여 명이 살고 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염소 사체들만 언뜻 봐도 물 한 방울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길 찾는 손짓 발짓에 지칠 무렵 알리 압둘케임(45)의 말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반가운 고향 사람들의 인사에 함박웃음이 터져나온다. 땅도 파기 전인데 그는 "정녕 이날이 올 줄 알았다"라며 "슈크란"(아랍어: 감사합니다)을 쉴새없이 외쳤다. 은자메나 대학 아랍어 교수라는 타이틀도 버리고 천일 동안 마음으로 부탁했던 우물이었다. 보통 한번 거절하면 포기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두 손을 부여잡은 그가 답했다. "내가 포기하면 이 사람들은 죽어요." #. 감사기도 소망우물 공사 현장. 드르륵 귀청을 때리는 엔진음이 울리자 마싸코리 출마리 주민들은 하늘로 손을 뻗었다.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도문 속 '알라'만 이따금 들렸다. 아흔은 족히 넘어보이는 할아버지부터 거뭇거뭇 수염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소년까지 파이프 쪽으로 몸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눈물이 반짝였다. 대형 시추기계는 없었다. 갑자기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장면도 없었다. 다만 조그마한 모터로 땅을 파고 길이 3m의 가느다란 파이프를 네 사람이 박아 넣는 과정만 하루 종일 계속됐다. 사하라 사막에 쉽게 물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인부들은 "우선 지하 52m를 파보고 나오지 않으면 60m까지 시도하겠다"며 파이프를 나사처럼 돌려 박았다. 며칠 전부터 주민들이 길어온 물이 파이프를 타고 땅을 적셨다. 물러진 땅에서 금방이라도 새하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아선지 주민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파이프 공사가 한창인 곳에서 10m쯤 떨어진 나무 그늘에 마을 어르신 10여 명이 모였다. '기증자의 이름을 다시 한번 말해달라' '어디에 사는 분이냐?' 등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돗자리가 깔렸고 다들 엎드렸다. 현지 굿네이버스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물을 보내준 모든 손길에 대한 축복기도"라고 한다."생명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에게 우물은 간절한 기도문이다. #. 목마름 오후 3시. 숨만 쉬고 있어도 입안에 모래가 씹힌다. 고통 그 자체. 곧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말로 아이들의 목마름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하루 4번씩 물을 길어 나른다는 소녀들을 따라 평소 식수로 사용한다는 개울물에 따라나섰다. 마을에서 도보로 1시간 거리. TV나 신문에서 접해온 진흙탕물을 상상하며 도착한 그곳엔 물이 없었다. 색도 묽기도 이미 갯벌이다. 바닥이 드러난 개울물 한쪽에선 염소가 볼일을 보고 있고 목마른 아이들은 말리기도 전에 꿀떡꿀떡 목을 축이고 있다. 입가로 물그릇을 옮기려는 알리(11)를 붙잡자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로 "괜찮아(Fine)"라며 싱긋 웃는다.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어도 "늘 마셔온 물이에요. 당나귀랑 나랑 엄마랑…"이라며 끝내 그 물을 마셨다. 이 물을 마시고 콜레라에 걸려 사망한 아이가 벌써 여러 명이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아이의 말을 받아적는 일도 미안해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악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깔깔대며 떠드는 아이들 사이로 한 소녀가 다가왔다. 사피아(15)는 가만히 내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우물 생기면 이제 여기 안 와도 되죠?" #. 물 한 모금의 가치 이른 아침 온 동네 주민이 모였다. 전날 7시간 동안 팠던 우물이 마지막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포복자세로 엎드려 파이프를 돌리는 인부들의 모습은 너무도 진지해 말을 걸 수조차 없다. 고요한 하나 둘 셋. 파이프를 꼭꼭 잠그고 수동펌프를 누르는 손길이 꿀렁꿀렁 소리에 곧 환희로 바뀌었다. "물이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함성이 이곳저곳에 퍼졌다. 물은 앞으로 3일 동안 걸러내야 하지만 콸콸 쏟아지는 투명한 물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뛰어나가 물꼭지에 입을 댄다. "끼야 끼야" 아낙네들은 휘파람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고 청년들은 어깨춤을 추며 우물 주위를 돌았다. 한쪽에선 소망소사이어티가 준비해 간 칫솔세트를 손에 쥔 아이들이 난생 처음 맛본 치약거품에 마냥 즐거운 듯 웃고 있다. "슈크란. 이보다 큰 행복을 만나본 적 없어요." 이 눈망울을 보고 움직이지 않을 심장은 없다. 글 =구혜영 기자 사진 =김상동 남가주사진협회장 "희망 솟는 기적 목격"…원정팀, 우물 200개 목표 1주일간의 여정에는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과 굿네이버스USA 김재학 실장 김상동 남가주사진협회장 USC 영화학과 브라이언 아이비와 사라 최(21) 본지 사회팀 구혜영 기자가 동참해 사람이 만드는 기적을 마음으로 지켜봤다. 굿네이버스에 따르면 차드에 완성된 소망우물은 총 131개로 약 15만 명이 이 우물을 마시고 있다. 소망우물 프로젝트 원정팀의 이번 목표는 우물 200개다. ▶문의: (562) 977-4580 (877) 499-9898

2012-11-29

본지 기자 프로젝트 현장 다시 가다…한인 '우물 온정'이 차드 지도 바꾸다

아프리카의 검은 심장이 한인들의 사랑으로 다시 뛰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 소망소사이어티와 굿네이버스 USA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시작한 '소망우물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극빈국 차드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내륙국가인 차드는 극심한 식수난으로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주 한인들의 정성으로 하나둘씩 세워진 소망우물은 현재 131개에 달한다. 소망우물의 영향력은 이미 차드 전역에 퍼지고 있다. 프로젝트 초기 수도 은자메나와 습한 남부 지역에 집중됐던 우물 공사는 최근엔 사하라 사막이 지나가는 북부 오지에서도 실시되고 있다. 굿네이버스 차드 지부의 박근선 지부장은 "2주 전 세워진 북부 마싸코리 지역의 출마리 우물은 남부에 세워진 소망우물 기증자 현판을 본 한 교수가 약 3년간 매일 사무실을 찾아와 부탁을 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소망우물이 세워진 지역에는 학교와 도서관 병원 등이 들어서며 커뮤니티 발전이 이뤄지고 있어 매일 기적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우물 한 개당 설치 비용은 3200달러. 지금까지 모인 차드 소망우물 기금은 총 47만617달러다. 제2차 소망우물 원정을 다녀온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은 "깨끗한 물 한 모금이 아이들의 꿈을 책임진다. 소망우물을 통해 살아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라며 꾸준한 관심을 부탁했다. 구혜영 기자 차드는…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불린다. 아프리카 한복판에 있는 내륙국으로 바다에서 격리된 지리적 악조건과 척박한 사막기후가 나라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명칭은 '차드 공화국'. 세계 5대 극빈국으로 200여 이상의 부족이 사는 탓에 12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된다. 이슬람교가 51% 기독교가 35%다.

2012-11-29

'소망 우물'에 40만불 온정

2010년3월 미주 중앙일보 소망소사이어티(이사장 유분자) 굿네이버스 USA(회장 데이비드 스트랜드) 가 공동으로 시작한 소망우물 프로젝트에 미주 한인들의 온정이 40만달러를 돌파하며 소망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밴나이스고교 차미네이드 프레퍼레이토리고교 그라나다힐스고교 등 3개 학교 연합으로 구성된 고등학생들이 다양한 모금 이벤트 들을 통해 모은 3천300달러를 16일 굿네이버스에 전달했다. 전달식에서 학생 그룹을 이끌고 있는 데니얼 강 회장은 "아프리카의 벗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할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모금활동을 펼치겠다"고 기뻐했다. 소망소사이티 유분자 이사장은 "생명을 살리는 소망우물 프로젝트에 남녀노소가 중요하지 않다"며 "보다 많은 한인사회 구성원들이 동참해주길 당부했다. 굿네이버스USA 데이비드 스트랜드 회장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소망우물을 후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많은 분들의 도움과 희망을 아프리카에 전달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소망우물 프로젝트는 지난해 3월 아프리카 챠드에 '100호 우물'을 모두 설치한데 이어 추가로 아프리카 말라위에 한개당 6300달러가 소요되는 우물 5개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또다른 5개의 우물을 파는데 성공했다. 올해 1월부터는 다시 아프리카 챠드에 100호 우물을 설치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7월 현재 20개의 우물을 파기 위한 기금이 모아져서 모두 합쳐 130개의 우물이 지원되는 셈이다. 한편 오는 11월에는 소망우물 프로젝트 모니터링을 위한 스폰서 투어가 계획되어 있으며 신청 문의는 (877) 499-9898 또는 sponsorship@goodneighbors.org로 이메일 하면 된다. 최인성 기자

2012-07-18

북 동포 위한 '사랑의 우물파기'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가만히 둘 순 없잖아요."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어바인 지역 한인 청소년들이 우물파기 운동에 나선다. 어바인 지역 5개 교회의 청소년 그룹은 지난해 12월부터 1인당 10달러의 기부금을 모아 북한지역 우물파기 기금을 마련해 왔으며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24시간 금식을 통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금식이 끝나는 토요일(24일) 점심때에는 어바인 커뮤니티 센터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그간 금식하며 모았던 용돈을 우물파기 기금으로 헌금하는 시간도 갖는다. 동참하는 교회로는 베델한인교회 베델한인교회 어바인 온누리교회 어바인 사랑의교회 어바인 침례교회 등이 있다. 이들 교회 청소년 그룹들은 앞으로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마련된 기금을 관리할 계획으로 자세한 사역계획은 추후에 공개할 계획이다. 현재 10달러를 기부하는 학생에게는 북한의 이니셜인 'NK24'라고 쓰인 티셔츠를 주는데 청소년들은 이 옷을 입고 주변 친구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돕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의 참담한 실상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 인터넷을 통해서도 홍보에 나서며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샘 신 베델한인교회 EM담당 목사는 "각 교회 청소년부 담당 사역자들이 만나 대화를 하는 가운데 말로만 걱정할 게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시작된 움직임"이라며 "1차적으로 5개 교회가 모이게 됐고 뜻을 같이하는 교회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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