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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촌보다 좋은 이웃

이기희

이기희

나는 미국이 좋다. 편하다. 낯설고 물 선 이국 땅도 맘 붙이니 덜 외롭다. 고향은 유년의 추억을 실어 나르는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크고 아름답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아 있는데/ 아니 도대체 왜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요 (중략) 하루가 지나가도/ 아무리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는데 왜’-던(DAWN)의 ‘호랑나비’중에서.  
 
맑은 봄날, 황토 길 따라 아른거리던 아지랑이는 내 얼굴을 기억 하고 있을까.
 
낙동강 하류를 굽이 돌아 옆길로 빠진듯한 냇가에서 해가 비슬산 너머로 빠질 때까지 동무들과 놀았다. 머슴애는 팬티만 입고 여자애들은 내복을 걸치고 물장난을 쳤다. 발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백사장은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삼만이 아재가 짚을 꼬아 그네를 묶어준 수양버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양철 지붕을 얹은 가게는 라면을 판다. 목젖까지 서늘하게 적셔주던 수박을 매달았던 깊고 차갑던 우리집 우물은 콘크리트로 덥힌 지 오래다. 발 뒤꿈치 들고 아! 하고 소리 지르면 우물 속에 어른거리는 내 얼굴이 작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간절한 만남과 사랑의 실체가 없는 고향은 망연한 그리움일 뿐, 빛 바랜 일기장 속에 유년의 추억은 향수로 흩어진다.  
 
이웃집에 슬픈 일이 발생했다. 그저께 밤, 앞집에 앰뷸런스와 소방차, 경찰차까지 총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지 함부로 근접 못하고 옆집 아저씨와 지켜보며 애를 태웠는데 아침에 모시고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브라이언 가족은 나의 소중하고 절친인 이웃이다. 친구나 자식보다 더 가깝고 필요한 사람이다. 기계나 컴퓨터는 물론 간단한 살림 도구까지 조립이 불가능한 기계치 몸치로 나는 명성이 자자하다. 아들이 대학간 뒤에는 제 컴퓨터로 원격 조절해 문제를 해결해 주더니 장가가 애 둘 뒷바라지 하느라 제 코가 백자라서 남보다 더 요원한 사이가 됐다.  
 
‘앓느니 죽는다’는 각오로 홀로서기에 진입, 키 보드 이것저것 함부로 누르며 극한 생존대결의 길로 들어섰다. 근데 심각한 문제 발생! 20년 늙은 사업용 메인 컴퓨터가 폭파(?) 됐다. 그동안 몇 번 죽었다 살았다 하더니 드디어 사망에 이르렀다.
 
새 컴퓨터 구입해도 문제는 30000여개가 넘는 미술 작품과 30년 묵은 고객 명단, 포토샵과 기타 파일 등등을 복원하는 일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대장정이다.  
 
‘뒷간에 빠졌다 나와도 장미꽃 향기 난다(fell in the outhouse came out small like roses)’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록이다. 나의 친절한 이웃 사촌이 컴퓨터 전문가라니! 이틀 만에 새 컴퓨터로 교체하고 모든 파일을 복구 했다. 위기 상황에도 자존심 지키는 것은 필수, “컴맹이라도 난 그림은 잘 그린다”며 작품 두 점을 선물했다. 가는 정이 없으면 주는 정도 사라진다. 초상집은 먹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 소문난 요리 집 치킨 윙 50개를 주문 배달했다.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는 우리집 드라이브 웨이 눈도 치워준다. 집 앞을 왔다갔다 하면 눈치 채고 두 이웃이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서툴었던 내 동작도 유연해지고 어눌했던 언어도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정 붙이면 모든 것들이 정겨워진다. 내 청춘과 장년을 송두리채 바치고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이젠 방황하지 않는다. 내 땅 남의 땅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는다. 지구는 둥글고 하나다. 고향은 아련한 추억으로, 그리움은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달하게 혀끝을 적신다. 사촌보다 자식(?)보다 더 좋은 이웃을 사랑하며 매일 미국을 배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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