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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이기희

이기희

선생님. 그간 평강하세요. 안부 조차 드리기 민망한 한 해였습니다.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 올리는 마지막 글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올해는 성탄절 카드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암담한 것들 뿐이여서 백지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 인삿말 대신합니다. 지난 이년 동안 팬데믹으로 겪은 고통과 참담한 이별은 익숙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사는 게 여전히 무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하얗게 웃는 이웃을 만나면 ‘해피 할러 데이즈’라고 인삿말 건넵니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 껴안으며 다시 행복하고 싶어 ‘그리움’ 대신 ‘행복’이란 단어를 일기장에 적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때만 해도 좀 참고 견디면 끝이 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운전에 젬병인 저는 터널 속을 달리면 반대편 오는 차에 부딪힐까봐 불안에 떨고 좁은 이차선 도로를 잘못 짚어 콘크리트 벽에 부딪힐까봐 손에 땀을 쥐며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포의 순간을 견디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은 어둠과 빛이 교차되는 여정인대도 계속 어둡기만 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너무 오래 헤맨 탓일까요. 희망은 빛바랜 마른 꽃잎처럼 부서져 가루로 흩날립니다. 가족과 부모, 자식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작별인사도 못하고 생이별 했습니다. 직장과 집을 잃었고 사업체와 가게를 문닫고 학교를 못간 아이들은 친구 없이 외톨이가 됐습니다. 교회도 못나가고 한국사람 안 만나고 이웃과 대화도 없어 반벙어리가 됐습니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는 단어가 줄고 한국말로 떠들던 수다도 맞장구 쳐 줄 친구 없어 나 홀로 외롭게 지냅니다.
 
‘산사람은 어떻게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가 두 살 때 홀로 되신 어머니는 고된 밭일로 몸살이 나면 하얀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아스피린 두 알로 사투를 벌였습니다. 아파도 끙끙대지 않으셨고 슬퍼도 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목숨은 어머니 것이 아니라 두 생명의 목숨줄이였으니까요.
 
요즘은 사는 게 두렵습니다. 나이 탓인가요.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두렵습니다. 성경 읽고 찬송가 부르고 설교 듣고 철학자의 깨달음을 갈구해도 구멍 난 마음의 바닥에는 어둠이 깔립니다.  
 
어릴 적 우리집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아버지는 새로 지은 본채에 하루도 못살고 피난 가고 그 집은 공산당 사무실로 쓰다가 중공군이 후퇴하며 집을 불살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땅에 새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터 비워두고 임시 거처를 지은 탓에 우물이 부엌 속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후 뇌일혈로 쓰러져 새집을 영영 짓지 못했습니다.
 
죽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실낱 같은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은 용솟음칩니다. 희망은 깊은 샘물처럼 바닥을 뚫고 차오릅니다. 생의 바닥이 갈라져 맑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 해도 ‘희망’이란 단어는 심장의 박동을 뛰게 합니다. 살아있다는 이 찬란한 축복! 슬픔은 뼈를 이지러뜨리고 절망은 살을 깎아내립니다. 아무도 행복을 앗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끄나풀 놓을 때까지. 하찮은 일도 소중하게 붙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버리고 새해 새 날을 기쁨으로 맞으시길 바랍니다. 절망과 싸우며 견디기 위해, 사랑한다 그리웠다 말해주세요.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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