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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歷知思志)] 해리 왕자의 ‘스페어’

영국에서 요즘 가장 화제인 책은 해리 왕자가 쓴 『스페어(Spare)』다. 출간 첫날인 1월 10일(현지시간) 40만 부가 팔렸다. 이는 비소설 부문 역대 1위 기록이라고 한다. 이 책의 인기 비결은 상당한 수준의 폭로 덕분이다. 자신의 성생활이나 마약 경험뿐 아니라 아버지인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의 재혼이나 형 윌리엄 왕세자와의 물리적 충돌 등을 상세하게 담았다. 가족에 대한 공격적 내용이 적잖다. 이런 의도는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스페어’는 ‘대체재’ ‘예비’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해리는 자신의 존재가 형 윌리엄의 비상시를 대비한 대체품 같은 대우를 받고 자랐다고 토로했다.   장자 상속제는 동아시아뿐 아니라 유럽 왕족이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맏이 외에는 스스로 기회를 창출해야 했다. 사제가 되어 종교계 지도자가 되거나 신대륙 개척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근대 이전엔 스페어들에게도 기회가 적잖았다. 예를 들어 조선 27명의 왕 중에서 정상적으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변수가 적어져 장자 외에 왕위가 돌아가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또한 과거처럼 종교계나 신대륙을 도모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해리 왕자는 왕실 이야기를 팔아서 부를 창출하는 스페어의 현대적 모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스페어 해리 해리 왕자 장자가 왕위 종교계 지도자

2023-02-01

[역지사지(歷知思志)] 포트 와인

 세계에서 와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 답은 미국이다. 지난해 국제와인기구(OIV)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33.1mhl(밀리언헥토리터, 1mhl=1억 리터)를 소비해 프랑스(25.2mhl)보다 많았다. 1인당 소비로 따지면 달라진다. 1인당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신 나라는 포르투갈이다. 국민 1명당 51.9리터의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포트(Port) 와인으로 더 많이 알려진 포르투(Porto) 와인을 생산한다. 달고 높은 도수(18~20도)가 특징인 포트 와인의 탄생 배경에는 백년전쟁이 있다. 백년 전쟁의 패배로 영국은 수백 년 간 보유했던 프랑스 내 영토를 잃게 됐다. 그중에는 와인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가 있었다. 와인을 가져올 대체지가 필요했던 영국이 눈을 돌린 곳은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였다. 그러나 포르투에서 실은 와인들은 영국에서 뚜껑을 연 순간 식초가 되어 있었다. 저온 보관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찾아낸 해법은 주정강화였다. 도수 높은 브랜드를 섞어 변질을 막을 수 있었다. 덕분에 다른 와인과 차별화되는 특징을 갖게 됐다.   최근 중국의 시장과 노동력을 잃을 경우 경제에 닥칠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그러나 포트 와인의 탄생처럼 역사는 결핍에서 도전과 혁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세계에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포트 와인 포트 와인 지난해 국제와인기구 1인당 와인

2023-01-25

[역지사지(歷知思志)] 온난화의 역설

“강원도 간성의 바닷물이 6월에 얼음이 얼어 종이처럼 두꺼웠다.”(‘숙종실록’ 35년 1월 10일)   17세기는 소빙기의 절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다가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소빙기는 밥상도 바꿔놓았다. 추위와 함께 수온이 내려가면서 대구·청어 같은 한류성 어종이 크게 늘어났고 서식 범위도 확장됐다. 이전엔 동해안 북쪽에서나 발견되던 명태가 전국 모든 바다에서 나타나 해마다 수천석씩 잡혔다. ‘땔나무처럼 많아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소빙기의 축복’이라고 할 만한 역설이다.   올겨울도 어김없이 이상 기후가 이슈다. 북미는 강추위로 얼어붙었다.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고 있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한다. 반면 유럽은 연일 따뜻한 겨울이 화제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은 13~14도, 폴란드 바르샤바는 19도를 기록했다. 유럽의 온난화는 각종 발전소가 파괴되어 전력 공급이 어려운 우크라이나엔 큰 위안거리다. 당초 가스관을 잠가 유럽을 굴복시키려던 푸틴의 구상도 좌절됐다.   ‘동장군(冬將軍)’은 19세기 초 러시아에 쳐들어갔던 나폴레옹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후퇴했던 데서 유래된 단어다. 동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히틀러로부터 러시아를 구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동장군이 전선에서 이탈했다. ‘소빙기의 축복’처럼 ‘지구 온난화의 축복’이라고 회자할 듯싶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온난화 역설 지구 온난화 폴란드 바르샤바 한류성 어종

2023-01-11

[역지사지(歷知思志)] 탕웨이

역사에서 네덜란드는 ‘강소국’이라고 불린다. 신생국에다가 국토나 인구 규모가 주변국에 비해 작았지만, 17세기에는 잉글랜드와 해상권을 다툴 정도로 막강한 저력을 과시했다. 적극적인 해외진출로 아시아 해외 교역망을 손에 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부와 문화를 갖춘 유럽 제1의 도시였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제국의 미래’에서 ‘관용’을 강조하면서 네덜란드가 17세기에 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른 배경을 설명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에라스무스는 유럽 최초로 종교적 관용을 주창해 관용적 토대를 다졌다.   지난 25일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탕웨이가 ‘헤어질 결심’으로 해외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한국어로 “이거 너무 좋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탕웨이는 영화 ‘색·계’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 등으로 중국에서 활동이 어려워졌고, 한국에서 연기를 이어왔다.   최근 아시아 각국이 각종 시위로 소란스럽다. 중국·홍콩·이란 등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오랫동안 이어진 자유에 대한 억압과 그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발이 묶인 제2, 제3의 탕웨이가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꽃을 피우기를 기대한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탕웨이 청룡영화상 시상식 종교적 관용 관용적 토대

2022-11-30

[역지사지(歷知思志)] 국가(國歌)

2019년 12월 18일 부산에서 열린 홍콩과 중국의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경기에서 홍콩 응원단이 일제히 야유를 보낸 뒤 등을 돌렸다. 킥오프 직전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연주된 순간이었다. 그해 11월 홍콩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에 참여한 학생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1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이란의 월드컵 축구 조별리그 B조 경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영국 국가가 나오자 잉글랜드 선수들은 힘차게 따라불렀다. 그러나 이란 국가가 나오자 이란 선수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최근 이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를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9월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대생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됐다가 사망하자 이란 곳곳에서는 항의 시위가 벌어져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국가(國歌)에 대한 침묵이나 야유는 최소한의 저항으로 간주된다. 실탄이 발포되는 이란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를 대표해 나온 이란 대표선수들의 이런 행위는 큰 용기를 낸 셈이다. 11명 선수들이 보여준 무언의 항의는 전 세계의 눈과 귀를 이란으로 향하게 했다. 2020년 중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의용군 행진곡’을 모독할 경우 징역 3년형 또는 5만 홍콩달러(약 868만원) 벌금형에 처한다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란의 미래는어떻게 될까.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국가 반정부 시위 대규모 반정부 동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2022-11-24

[역지사지(歷知思志)] 가이 포크스

매년 11월 5일 영국의 곳곳의 밤하늘은 불꽃으로 수놓아진다. 이른바 ‘가이 포크스의 밤(Guy Fawkes Night)’ 행사다. 가톨릭 신자였던 가이 포크스는 신교도인 국왕 제임스 1세와 정치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영국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면서 미수에 그쳤다. 영국 정부는 국왕이 무사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 가이 포크스가 체포된 11월 5일을 기념하게 했고, 사람들은 이날 불꽃을 쏘아올리거나 가이 포크스 인형을 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이 포크스는 조롱의 대상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로 점차 재조명받게 됐다. 20세기 들어 그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문학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영화로도 각색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무정부주의자 V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나와 상징성이 강화됐다. 그의 가면은 반정부 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다만 실제 가이 포크스의 행적을 보면 자유·탈권위 등과는 거리가 있는 보면 자유·탈권위 등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열렬한 가톨릭교도였던 그는 스페인-네덜란드 전쟁에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군을 도와 신생 독립국이자 신교도 국가인 네덜란드를 공격했다. 그런점에서 보면 그의 이미지는 윤색된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대변해줄 상징에 목말랐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유성운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가이 신교도인 국왕 네덜란드 전쟁 반정부 시위

2022-11-02

[역지사지(歷知思志)] 찰스 3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자 영국에선 찰스 왕세자가 호칭을 바꿀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찰스’라는 호칭이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는 이유에서다. 찰스 1세는 영국 왕으로서 유일하게 처형됐고, 찰스 2세는 문란한 사생활과 의회와의 불화로 부정적 평가가 많다. 새 국왕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라는 이름 중에서 선택이 가능했다. 선례가 있다. ‘알버트 프레드릭 아서 조지’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할아버지 조지 6세도 알버트라고 불렸지만, 왕위에 오르면서 호칭을 조지로 바꿨다.     영국 왕실에서는 명예롭지 못한 왕의 호칭을 피하는 전통이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예시는 존 왕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던 영토를 모두 상실했고, 내정도 실패했다. 리처드라는 호칭도 리처드 3세 이후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조카들을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새 국왕은 한때 조지 7세가 거론됐지만, 결국 찰스 3세를 선택했다. 60년 넘게 ‘찰스 왕세자’로 불려온만큼 호칭 변경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사실 찰스 3세든, 조지 7세든 그것은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존경받은 이유가 단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호칭이 같아서만은 아니었듯이 말이다. 그가 가장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은 ‘찰스’의 부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선왕이 남긴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유산이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여왕과 호칭 알버트 프레드릭 호칭 변경

2022-09-21

[역지사지(歷知思志)] 김시민

에도 시대 일본에선 ‘모쿠소 호간’이라는 괴물이 일본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모쿠소’는 임진왜란에서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에서 유래된 단어다. 당시 진주 목사였기 때문이다. (김시덕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   김시민 장군은 일본에 악몽 같은 존재였다. 1592년 가을, 전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초조해진 왜군은 진주성을 치기로 했다. 진주성은 일본이 장악한 경상도 남부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의 거점이었다. 즉, 이곳을 함락하면 손쉽게 호남까지 뻗어갈 수 있었다. 1592년 10월 일본군은 진주성에 3만 명을 투입했다.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은 3000여명.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육로를 통해 호남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했고, 조선은 곡창지대인 호남 내륙을 보호했다. 충무공의 해군도 후방의 위협을 덜고 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한산’의 누적 관객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충무공과 임진왜란 관련 서적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다루는 대중문화에서 충무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에선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내세운 뮤지컬 ‘해밀턴’이 큰 히트를 했다. 그는 미국 건국의 주역이면서도 그동안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 등에 비해선 주목을 덜 받아왔다. 임진왜란은 7년간 동아시아를 흔든 대전이었다. 조명받을 만한 인물이 과연 ‘한 명’뿐일까.역지사지(歷知思志) 김시민 김시민 장군 호남 내륙 임진왜란 관련

2022-08-17

[역지사지(歷知思志)] 폭염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유럽 곳곳에서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 언론에서는 올 7월이 1757년을 넘어설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1757년 7월은 유럽 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된 해다. 가장 심한 폭염을 겪은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1757년 7월 파리의 평균 기온은 섭씨 25도. 역대 최고 기록이다. 그다음은 역시 폭염으로 유명한 2006년 7월의 섭씨 24.8도다. 파리만큼은 아니었으나 역대급 더위로 비명을 지른 영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당시 무더위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작가 호레이쇼 월풀은 “유리잔의 4분의 3이 뜨겁다”며 “향후 몇 년간 올해(1757년) 여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서 무더위와 관련해 인상적인 언급을 많이 남긴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다. 『난중일기』에서다. 1594년은 인내심으로 유명한 그도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더위가 쇠라도 녹일 것 같다”(7월 28일·양력) “바다의 섬도 찌는 듯하다(7월 31일)”고 토로했다.   지난 2월 한국기상학회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나온 기상자료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거의 매일 일기를 남긴 1593일 중 무려 1551일을 날씨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해전사뿐 아니라 기후사에도 자취를 남기게 됐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폭염 유럽 역사상 역대급 더위 이순신 장군

2022-07-20

[역지사지(歷知思志)] 도버

 영국 남부 해안도시 도버는 아름다운 하얀 절벽이 펼쳐진 풍광으로 유명하다. 도버 절벽은 1억4500만년 전부터 7900만년 동안 형성된 지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당시 번성했던 삼엽충 등은 바닷속의 막대한 이산화탄소와 칼슘을 결합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보는 흰 석회암을 만들었다. 이 시기를 백악기(白堊紀)라고 부르는 이유다. 덕분에 당시 250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전까지 280ppm까지 낮아졌다. 현재의 대기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도버의 흰 절벽에는 고농도 이산화탄소가 압축돼 있다고 한다.   도버는 유럽에서 영국으로 닿는 가장 가까운 항구이자 관문이다. 영화 ‘덩케르크’에서도 도버의 하얀 절벽이 등장한다. 1940년 영국군 지도부는 이 절벽 위에 세워진 도버성 지하 벙커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당초 4만 명만 구출해도 기적이라고 했지만, 민간인 선박까지 대거 참여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33만8226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3년 전인 1927년 영친왕 이은도 도버 해협을 건너고 있었다. 순종의 소상(小祥·사후 1년 만의 제사)을 지낸 후 떠난 1년짜리 해외여행 중이었다. 귀국 후 그는 곧바로 일본 육군에 입대, 태평양전쟁 말기 육군 중장까지 지냈다. 도버의 흰 절벽에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나라를 지킨 평범한 이들과 나라를 넘긴 고귀한 이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도버 도버 절벽 도버성 지하 고농도 이산화탄소

2022-07-13

[역지사지(歷知思志)] 시계

조선 숙종은 외국에서 들어온 시계에 관심이 많았다. 청나라에서 들여온 서양 자명종을 보고는 ‘네 형상은 어찌 그리 기묘한가/ 그 만듦새 또한 기묘하다 할 만하네/ 조금의 착오도 착오도 없으니/ 오직 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는 시를 남기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숙종은 국내 생산을 지시했지만 조선 기술자들은 만들지 못했다. 이후 일본에서 서양 것을 본떠 만든 자명종을 들여오자 그 원리를 이해했다고 한다. 이때도 숙종은 시를 남겼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일본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두 갖추어져 있어 부족함이 없네/ 해와 달을 따라 운행하고/ 두 개의 추가 도우며 움직이네/ 쇠종이 시각에 따라 울리니/ 대궐에 시각을 알려주네/ 물시계를 기다리지 않아도/ 주야의 열두 시각을 알 수 있네.’   조선이 실패한 자명종 제작을 일본은 성공했던 것이다. 이것은 양국 과학 기술의 격차를 의미했다. 하지만 조선 집권층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일본 자명종에 깊은 인상을 받은 숙종도 시를 남겼을 뿐,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강조하며, 후속 움직임이 뒤따르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세계 수위이며, 우리의 주요 자산 중 하나다. 하지만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멍하니 일본의 자명종만 바라보던 조선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시계 서양 자명종 조선 숙종 조선 기술자들

2022-07-06

[역지사지(歷知思志)] 흰옷

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막 시작됐다.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이자 역사가 가장 오래된 윔블던은 규정이 엄격하기로도 유명하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모든 복장을 반드시 흰색으로 통일해야 한다. 헤어밴드부터 양말까지 예외가 없다. 윔블던 측은 복장에 과도한 상업광고가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흰옷에 대한 ‘집착’이라면 조선도 빼놓을 수 없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모두가 흰옷을 입고 다니는 것에 대해 ‘솜밭처럼 하얗다’며 흥미로워했다. 우리도 ‘백의민족’이라고 자칭하며 이 전통이 고대 부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기억은 다르다. 조선 유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흰옷을 즐겨 입는 풍습이 조선 중기 이후부터라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이전엔 붉은색 옷을 많이 입었는데, 조선 13대 국왕 명종 때 국상을 여러 번 치르자 흰옷을 계속 입게된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에 대해 “고려 사람들은 옷감에 붉은색 물을 잘 들였다”고 설명한 것도 소개했다. 이후 조선은 1906년 법령으로 흰옷 착용을 금지했지만,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처음엔 낯선 문화도 정착되면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외 마스크 착용이 완화됐는데도 좀처럼 벗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흰옷 흰옷 착용 윔블던 테니스 반면 조선시대

2022-06-29

[역지사지(歷知思志)] 마거릿 대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영국에서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철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비판도 거셌다. 영국 탄광 노동자 파업은 그녀의 정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였다. 대처 전 총리는 영국 탄광 산업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탄광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이로 인해 탄광 산업이 집중된 영국북부는 직격탄을 입었다. 2013년 그녀가 사망하자 일부 북부 지역에서는 축제가 열렸을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다.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된 ‘빌리 엘리어트’가 바로 1980년대 중반 영국 북부 탄광촌 더럼에서 일어난 탄광 노동자 파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처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적잖게 등장한다.     5월 4일은 대처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총리에 오른 날이다. 그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임기 동안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욕을 먹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평가가 일치한다. ‘영국병’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진단과 처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처는 선거에서 연승했고, 영국 보수당 역사상 최장수 내각을 이끌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가 어떤 처방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마거릿 탄광 노동자들 마거릿 대처 탄광 산업

2022-05-04

[역지사지(歷知思志)] 투표함

 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 선거는 전국 각지에서 부정 선거 의혹이 일었다. 서울 성동구 제12투표구에서는 야당인 민주당 측 참관인이 화장실을 간 사이 투표를 개시해버려 파문이 일었다. 야당 측 참관인은 자신이 없는 동안 투표가 진행된 것에 반발했고, 그 과정에서 투표함의 밑바닥이 열려있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야당 측 참관인은 “내가 만일 투표함의 밑바닥이 열린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반드시 무더기 표가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틀림없이 계획적인 행위”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당시 성동구 선거위원장은 “투표함이 몇 해씩 묵은 것인 만큼 혹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미 선거 전부터 투표함 바꿔치기 의혹이 떠돌아 야당 측에서는 투표함 이송 시 야당 측 호송인이 따라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중앙선거위원회(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1950년대의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유당 시절’이라는 단어에는 투표를 신뢰할 수 없는 시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선관위의 투표함 관리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는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이쯤 되면 투표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자유당 시절’에 이어 선관위의 ‘흑역사’를 추가하게 됐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투표 투표함 이송 투표함 관리 만일 투표함

2022-03-09

[역지사지(歷知思志)] 한복

 “내가 철이 나서도 조선옷을 한복(韓服)이라고 부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복(韓服)하면 어쩐지 한복(漢服)을 연상케 된다. 한복(韓服)보다는 조선(朝鮮)옷이라는 말이…역시 조선 사람에게는 조선복이 어울린다.”   1940년 2월 1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소설가 이무영의 기고 중 일부다. 당시 한복(韓服)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중국옷(漢服)과 발음이 같아 혼동될 수 있으니 ‘조선옷’으로 부르자는 것을 보면 한복(韓服)이 중국옷과 다르다는 구별도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내 소수민족 대표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자 ‘문화 동북공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중국 내 조선족을 감안하면 한복이 소수민족 의상으로 등장한 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매우 복잡한 배경을 안고 있다.   그동안 중국 측에서는 한국 사극의 한복이 중국의 ‘한푸(漢服)’를 베낀 것이라며 깎아내렸다. 한국 측에서는 이를 문화 공격으로 간주하고 날카롭게 대응했다. 중국은 문화뿐 아니라 역사와 영토 문제로도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인도·대만·일본·베트남·한국 등 중국 주변국 중에서 이런 갈등에서 비껴간 것은 과거 공산주의 형제국이던 러시아와 북한뿐이다.   아시아의 번영과 우호의 증진을 내세우는 중국에 대해 주변국의 반응은 왜 냉담한지 고민할 때가 됐다. 유성운 /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한복 당시 한복 문화 동북공정 소수민족 의상

2022-02-09

[역지사지(歷知思志)] 화산

 지난 15일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해저 화산 폭발로 세계의 눈과 귀가 섬나라 통가에 쏠려 있다. 한반도 역시 화산 안전지대는 아니다.   “함경도 부령에 이달 14일 오(午)시에 하늘과 땅이 갑자기 캄캄해졌는데, 때로 혹 누른빛이 돌기도 하면서 연기와 불꽃 같은 것이 일어나는 듯하였고, 비릿한 냄새가 방에 꽉 찬 것 같기도 하였다. 큰 화로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여 몹시 무더운 기운에 사람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숙종 28년(1704년) 5월 20일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기록은 조선이 재앙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에는 그저 기이한 자연현상으로 생각했지만, 현대 지질학자들은 백두산의 화산활동으로 추정한다. 다행히 이때는 화산이 폭발하지 않아 대규모 재난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때 백두산 화산은 발해 멸망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10세기 백두산에서 거대한 화산폭발이 일어났으며, 이때를 노린 거란의 공격에 발해가 손도 쓰지 못한 채 멸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동안 치열했던 찬반양론은 얼마 전 해소됐다.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17년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해 백두산에서 채취한 각종 자료를 근거로 화산은 946년 이후 폭발했으며, 발해 멸망(926년)과는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백두산의 오랜 ‘혐의’가 벗겨진 순간이었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화산 화산 안전지대 해저 화산 발해 멸망

2022-01-19

[역지사지(歷知思志)] 금주령

 조선시대에는 수차례 걸쳐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영조 때가 가장 강력했다. “술을 빚은 자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술을 사서 마신 자는 영원히 노비로 소속시킬 것이며, 선비 중 이름을 알린 자는 멀리 귀양 보내라” (『영조실록』)   농업국가인 조선에서 금주령이 잦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흉년으로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곡물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조 32년 내려진 금주령은 10년간 이어졌다. 이전의 금주령은 1~2년에 불과했다. 10년은 흉년 같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간이다. 영조 개인의 도덕관이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조선에서 술을 근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조는 근검절약에 솔선수범한 왕이다. 83세에 사망한 그는 장수비결을 ‘채식과 소식’이라고 꼽기도 했다. 이처럼 모범을 보이고 도덕을 앞세운 것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모친은 신분이 낮은 궁녀였다.   그러나 영조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음주는 근절되지 않았다. 한양에서 밀주를 파는 공간이 곳곳에 나타났다. 관리들은 돈을 받고 뒤를 봐주거나 심지어 이들과 결탁해 뒷돈을 챙겼다. 결국 영조는 10년 뒤에 슬그머니 규제를 풀었다. 인간의 욕구나 시장을 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정자들이 흔히 범하는 착각이다. 명분만 믿고 밀어붙였다가 이전보다 악화한 결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래도 늘 반복된다. 유성운 /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금주령 영조 개인 농업국가인 조선 채식과 소식

2021-12-22

[역지사지(歷知思志)] 인삼

 인삼은 백두산, 헤이룽강 일대, 러시아 연해주 인근 및 한반도 전역에서 자란다. 흔히 고려와 조선의 특산물로 생각하지만, 만주 지역에 들어선 요나 금 같은 유목민족 국가도 인삼을 상품화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조선에 요구한 공물 목록에 금·은·종이는 있었지만, 인삼은 없었다. 만주의 특산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삼에 대한 만주족의 애착은 각별했다. 조선인이 인삼을 캐러 만주로 들어오는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항의했다.   후금(청)을 건국한 누르하치도 젊은 시절 백두산 인근에서 인삼을 캐다 팔아 기반을 마련했다. 후금에게 인삼은 명나라와 교역하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에서는 조선에 파병한 군인들을 통해 인삼 붐이 일었다. 후금은 이때 인삼을 중국에 팔아 짭짤한 이익을 거뒀다. 때마침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중국은 차와 도자기를 팔아 유럽과 일본의 은을 빨아들였는데, 이중 적지 않은 은이 만주로 흘러 들어갔다. 신생국가 후금은 이 은으로 나라를 유지하고, 군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역사 교육의 가치는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당대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돕는 데 있다. ‘인삼=고려·조선’ 같은 도식에 취해 있으면 16~17세기 만주족의 성장이나 조선과 후금의 갈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세계가 돌아가는 흐름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면 요소수 사태 같은 상황에서도 허둥거릴 수밖에 없다. 유성운 한국 문화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인삼 신생국가 후금 후금은 이때 백두산 헤이룽강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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