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학기가 끝나 간다. 이제 2주 남았다. 학기는 끝나가는데, 그림이 늘었다는 생각보다는 자꾸 “아, 나는 그림 그리는 재능은 없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범학생이다. 수업에 빠진 적도 없고, 과제물이 늦은 적도 없다. 배운 대로, 담당 교수의 가르침대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도 학기가 끝나가는 요즘 그림이 늘었다는 느낌보다는 이것이 나의 한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만점을 받았는데, 두 번째 그림에서는 C를 받았고, 이번에 제출한 그림도 기대에 못 미칠 것 같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소재에 창의력이 없다. 교수가 정해준 틀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모두가 비슷하게 그리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 이때는 테크닉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진다. 소재를 자유로이 선택해서 그릴 때, 나는 일단 그리기 쉬운 것을 찾는다. 소재가 독창적이지 못하다. 잘 그리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제물을 마친 다음 주 수업은 학생들이 그려 온 그림을 모두 벽에 걸어 놓고 평가/토론하는 시간이다. 좋은 점, 부족한 점, 개선할 점 등을 이야기한다. 다소 그리기 힘든 소재, 독특한 소재를 선택해 그린 학생들의 작품은 할 이야기가 많다.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좋겠다는 다양한 의견들도 많이 나온다. 내가 그린 그림을 두고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모양이다. 별말이 없다. 구상이나 색상에 크게 무리가 없고, 보면 그냥 그렇고 그런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는 의견도 별로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별로 재미없는 그림이라는 의미다. 그림 공부를 하기 전에는 모르던 일인데, 좋은 그림이란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림에 빠져들어 이곳저곳을 눈으로 찾아다니며 보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느라 오래 보게 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같은 사람이라도 다음날에는 다른 이야기를 건네오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그럼 왜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할까. 아마도 그동안 살아온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31년을 공직사회에 몸담고 있었다. 상하, 좌우로 조직이 있고, 각자 정해진 역할이 뚜렷한 구조였다. 내가 살았던 사회가, 시절이 그러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있는 정서였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며, 노인은 나잇값을 해야 하는 시절을 살았다. 내가 듣는 미술 클래스의 학생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연령 차이도 많이 나지만, 배경도 다르다. 이란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를 둔 여학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가진 남학생, 70년대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누렸을 듯한 시니어, 자유로운 영혼의 여학생 등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그리는 그림에는 그런 배경과 정서가 묻어난다. 학기 마지막 과제물은 소재를 기억 속에서 찾아 그리는 것이다. 소재를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추상화풍으로 그려야 한다. 며칠째 생각을 거듭하지만 자꾸만 사실화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요즘 그림 여학생 주의력결핍 며칠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