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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아시안 유권자, 여전한 언어 장벽

뉴욕시 아시안 유권자 3명 중 1명은 여전히 투표소에서 언어 장벽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시안아메리칸법률교육재단(AALDEF)이 발표한 '2024 아시안아메리칸 출구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선거 당일이었던 지난 5일 뉴욕·뉴저지 등 10개주 아시안 유권자들이 보고한 투표소 관련 어려움 중 3분의 1은 '언어 접근성 문제'였다.     먼저 조사에 참여한 아시안 유권자 중 15%는 '영어를 잘 못하거나 전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74%는 '투표 시에 통역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17%는 '이번 선거 당시 투표소에 통역사가 없었다'고 전했다. 또 82%는 '번역된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26%는 '이번 선거에서 번역된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투표소에서 '언어 장벽'과 관련해 보고된 사건의 대부분은 뉴욕시와 필라델피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시 아시안 유권자 27%가 '투표 시에 언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중 23%는 '이번 선거 당시 투표소에 통역사가 없었다'고 전했다. 10%는 '투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투표소에 동행했다'고 밝혔으며, '투표소 현장에서 공식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67%였다.     또 언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유권자 중 39%는 '투표소에 번역된 투표용지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즉 상당수가 투표소에서 언어 지원 서비스를 받고는 있지만, 여전히 언어 서비스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베서니 리 AALDEF 사무총장은 "영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이민자 유권자들에게는 언어 서비스 지원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들 중 상당수는 투표소에서 통역 서비스나 번역된 투표용지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시안 유권자들의 대선 투표 양상을 살펴보면, 뉴욕시에서는 아시안 유권자 54%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40%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투표했다. 연방상원의원 투표에서는 뉴욕시 아시안 유권자 61%가 민주당에, 31%가 공화당에 투표했으며, 선거 당시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상위 3개 이슈는 ▶경제·일자리 ▶낙태 ▶공공 안전인 것으로 파악됐다.     뉴저지주의 경우 아시안 유권자 절반(50%)이 해리스에, 43%가 트럼프에 투표했으며,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는 58%가 민주당에, 32%가 공화당에 투표했다. 뉴저지주 아시안 유권자들의 상위 이슈 3개는 ▶경제·일자리 ▶낙태 ▶민주주의였다.   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아시안 유권자 아시안 유권자들 언어 장벽과 뉴욕시 아시안

2024-11-12

[우리말 바루기] ‘~와의’ 표현

다음 중 적절한 표현을 고르시오.   ㄱ. 중국과의 경기에서 이겼다.   ㄴ. 중국과 경기에서 이겼다.   ㄱ에 나오는 ‘~과의’가 일본식 표현이므로 ‘ㄴ.중국과 경기’가 맞다고 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의’가 일본식 어법에서 온 것은 맞다. 일본식 이중조사인 ‘~との’를 그대로 옮기면 ‘~과의’가 된다. 우리말에선 과거에는 쓰지 않던 표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의’가 일본식 표현이므로 ‘의’를 빼고 ㄴ처럼 ‘중국과 경기’라고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중국과 경기’는 불완전한 표현이다. ‘중국과 벌인 경기’처럼 서술어를 첨가해야 온전한 말이 된다. 그러다 보면 말이 길어진다.   그렇다 보니 훨씬 간결한 ‘중국과의 경기’ ‘노조와의 협상’ 같은 ‘~과의’ ‘~와의’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 간결성을 이길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도 이런 현실을 인정해 ‘~와의’ 표현을 사전에 올렸다. ‘의’의 용법 가운데 ‘저자와의 대화’란 예문을 들어 놓았다. 국어원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인접 언어는 서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타 언어의 영향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일본어의 영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과의’ ‘~와의’ 표현을 써도 된다.  정 이 표현이 내키지 않는다면 ‘ㄴ. 중국과 경기’가 아니라 ‘중국과 벌인 경기’라고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표현 인접 언어 용법 가운데

2024-10-31

“젊은 사람이 더 낫다”…연령차별 한인 이겼다

동료들의 노골적인 연령차별 언사를 듣고 회사에 개선책을 요구했다가 해고된 한인 여성이 2년간의 법적 싸움을 벌인 끝에 이겼다.〈관계기사 4면〉   관련기사 연령차별 없는 수평적 문화 구축해야 박순이(가명·60·여)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Wrongful Termination)’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박씨가 다니던 회사는 지난 6월 박씨의 불법 해고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금을 지급했다.   박씨는 지난 2022년 6월 사이프리스 소재 건강보조식품 한인 유통업체 N사가 연령차별을 문제 삼자 본인을 해고했다며 오렌지카운티 수피리어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박씨는 소장에서 회사와 고용주 신모씨가 회의시간에 동료 이모씨 등이 본인에게 “나이가 많아 보인다”, “왜 은퇴하지 않나”, “회사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연령차별적인 말을 했지만,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씨는 총무국 책임자인 박씨가 직원 채용 절차를 진행할 때 “젊은 사람이 더 낫다”, “고용주는 나이 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을 채용하지 말라”는 등 노골적으로 연령차별 단어를 써가며 박씨를 암묵적으로 모욕하고 업무도 방해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고용주 신씨 등에게 이에 대한 개선조치를 요구했지만, 되레 고용주 신씨는 박씨를 해고했다고 소장에 명시했다.   연방 공정고용기회위원회(EEOC)에 따르면 정부는 1967년 제정된 ‘연령차별금지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AEDA)’에 따라 직장에서 고용주 등이 40세 이상 직원을 대할 때 연령을 이유로 차별대우나 해고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은 회사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당 직원을 놀리거나 모욕주는 행위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한인회사는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연령 차별행태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회사들은 주로 한국의 ‘정년퇴직 문화’를 이유로 들어 나이 많은 직원을 압박하고 있다.     N사와 고용주를 소송한 박씨도 총무국 매니저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쫓겨난 사례다.     주찬호 변호사는 “대부분 회사가 나이 많은 직원을 압박할 때 나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일부 한인회사는 ‘업무성과가 안 좋다, 일을 너무 느리게 한다’ 등 나이를 적용할 수 있는 멘트를 계속한다. 해당 직원은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코너로 몰아 쫓아내려고 하는구나’라고 느껴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주 변호사는 이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 해고사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회사 측이 의도적으로 나이를 차별해 쫓아냈다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회사를 상대로 합당한 배상을 받고 싶어 소송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힐링캘리포니아 8 인트로 연령차별 한인 일부 한인회사 연령차별 언어

2024-10-14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언어는 늘 변한다. 그러면서도 늘 동시대 언중과 소통이 가능하다. 늘 변하면서도 늘 소통 가능한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는 개인 차원에서도 늘 변한다. 어린 시절의 내 언어와 현재의 내 언어는 전혀 다르며 앞으로의 언어도 달라질 것이다. 어릴 때 나의 말소리와 현재, 미래의 음성은 차이가 있다. 귀여운 목소리와 쉰 목소리가 같을 수 없다.     사용하는 어휘도 다르다. 어휘의 양과 질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릴 때 내가 사용한 어휘의 총량과 현재, 미래의 어휘량은 다르다. 지금 쓰고 있는 어휘를 어릴 때는 쓰지 않았던 경우가 많으며, 지금 쓰고 있는 어휘를 앞으로 계속, 자주 사용할지는 알 수 없다. 자주 쓰는 표현, 자주 쓰는 문법도 달라지고, 유행하는 새로운 말 등 계속해서 개인의 언어는 달라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언어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늘 변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모여산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라는 말은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를 보면 ‘사회(社會)’인데 여기서 사(社)는 토지의 신을 의미하며,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소사이어티의 번역어로서 ‘사’를 택한 것은 ‘축제, 제사’를 위해 모여있는 인간의 모습을 ‘사회’의 모습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제사는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도의 정신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제사에는 감사, 경배, 용서 등의 다양한 감정과 행위가 동반되었다. 이 속에서 조화와 협조가 필요하고, 그때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이 힘이 발휘한다.   따라서 언어는 사회 속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 된다. 함부로 바뀌어서도 안 되고, 나만 바뀌어서는 안 되는 모순적 관계다. 사실 이는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만 빠르게 변해서는 안 되므로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하나가 아니다. 내가 머물고 활동하는 사회와 다른 사회는 항상 소통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서로 떨어진 사회일수록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변화의 결과도 다르다. 지역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또한 공유한 집단에 따라서도 언어는 달라진다.   계층이나 계급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도 시간에 따라 언어가 변한다. 그 속도와 형태는 지역과 계층 또는 둘의 합 속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 변화의 모습을 살피고, 변화하기 전의 상태를 거슬러 오르는 것을 통시적 연구, 역사언어학이라고 할 수 있다. 통시는 기본적으로 둘 이상의 시기를 전제로 한다. 조선시대의 언어가 현대에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연구하면 통시적 연구이다. 신라시대의 언어와 고려시대의 언어와 조선시대, 현재의 언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연구하면 통시적 연구인 것이다. 종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엄밀히 말해서는 정확한 한 시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시기가 있다고 가정하고 연구하는 것을 공시적 연구라고 한다. 16세기, 17세기 등등은 각각 공시적이고, 현대어 역시 공시적이다. 수많은 공시가 모여서 통시가 된다. 달리 말해 수많은 공시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 통시적 연구이다. 역사언어학은 수많은 공시의 묶음을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꼭 여러 언어를 비교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언어학이 비교언어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언어를 통시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언어의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그 꼭짓점을 찾다 보면 서로 관계있는 언어를 만나게 되고, 그 언어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변화 양상을 찾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언어학은 비교언어학이 된다. 비교언어학은 그 시작점이 역사언어학일 수밖에 없다. ‘비교’는 같은 계통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며, 같은 계통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변화과정을 논하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변한다. 언어는 변화 속에서 소통하며, 소통 속에서 변화한다. 역사언어학은 공통점을 찾는 과정이며, 우리가 서로 관련 있음을 찾는 과정이다. 언어의 형태, 음운, 의미의 변화를 살피면서 인간의 기원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고, 변화의 자유로움을 찾기도 한다. 언어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 역사 계통 언어 언어 사이 그때 언어

2024-10-1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 가을엔

이 가을엔 / 처음 듣는 언어를 배우려 하오 / 서로 다른 몸짓으로 / 움직이는 나무 그늘 아래 / 열병을 앓으며 붉어지려 하오 / 가까이 바라보는 계절 속에서 /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여린 색들을 잃은 후 / 잘리고 떨어진 자리마다 / 검고 딱딱한 살이 돋고 /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 답답한 우울을 벗으려 하오 // 이 가을엔 / 푸른 잎 흔들며 이별을 물어오는 / 가을 숲으로 떠나려 하오 / 매달려 흔들린 시간보다 더 아픈 / 영원으로 맞닿은 노스텔지어 / 붉어지는 계절이 지나는 하늘 가득 / 긴 꼬리 태우는 별똥별 여운 / 빛나지 않음으로, 잊혀져야 하는 / 빠르게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에서 / 작은 일도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쳐 / 되는 일임을 배우려 하오 // 이 가을엔 / 꽃 피우고서도 한참 지난 후에야 / 열매 맺는 과일나무처럼 / 두 번의 생명을 한 계절에 피우고서도 / 붉은 마음 장렬하게 토하는 / 삶의 뒤안에서 너 하나만을 위해 / 하늘 언어로, 붉게 물든 온몸으로 / 긴 여행을 떠나려 하오       가을이 오는 언덕에는 벌써 황톳빛 갈대가 바람에 온몸을 잔뜩 누입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을 향기는 코끝을 스쳐 잠긴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지난 계절의 더위와 끈적이던 피부의 물기를 단번에 증발해 줍니다. 생각하기 싫었든 아니 생각나지 않았든 잃어버린 기억의 순간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 잠깐 내린 비로 하늘은 까마득히 높아지고 하늘하늘 흔들리는 나무의 잎들은 아침 햇살에 눈부십니다. 맑고 깨끗해진 거리의 잔디와 가을 국화와 코스모스도 한결 푸르게 살아납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말끔히 얼굴을 씻은 호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호수에 비칩니다. 호수를 돌아 나지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여린 노란색으로부터 진홍의 열정, 타오르는 듯 붉은 단풍까지 물들기 시작한 언덕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숲은 아름답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숲의 겸허한 마음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나무는 정직합니다. 속살까지 시원해지는 아침 바람은 나뭇잎의 색깔을 바꿔놓습니다. 봄날 피어날 연두의 새잎을 위해 붉게 익어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알고 사람보다 먼저 행동합니다. 사람보다 먼저 깨어나 가을비를 맞고, 사람보다 먼저 익어갑니다. 앙상해진 나무, 잎을 떨군 자리마다 검고 딱딱한 잎눈을 만들고, 가지의 어딘가엔 꽃눈을 만들어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숨겨진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물을 찾아 잔뿌리를 내리고 마른 줄기에 수분을 공급합니다. 어느 봄날 연둣빛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지금 당장 결말을 지어야 편안한 사람의 생각보다 깊고 뜨겁습니다.     이 가을엔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 합니다. 모든 일을 빠르게 결정지으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불평 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언덕 나무를 찾아가 배우려 합니다. 별똥별의 긴 꼬리가 사라지는 밤하늘을 봅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안다고 말하는 오류를 벗고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는 빈들의 기적, 뿌리를 기억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있기에 당신이 있고, 내가 없다면 당신도 없다는 내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숲을 찾아가 무리 지어, 혹은 외로이 자신을 드러내는 들꽃을 만나보겠습니다. 이 가을엔 사람의 언어보다 땅의 언어,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싶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당신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을 가을 향기 가을 국화 하늘 언어

2024-10-07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적합한 언어 한글, 해례본에서 그 비밀을 찾다”

 한글 창제 581주년을 맞아 달라스 한인문학회(회장 김양수)가 특별한 강좌를 개최했다. 달라스 한인문학회장을 지낸 바 있고 교육학 박사이자 포트워스 한글학교 교장, 포트워스 교육청 장학사를 역임한 방정웅 박사가 ‘훈민정음 해례본과 한글의 비밀’을 주제로 강연을 한 것이다. 조시 랜치 레이크 도서관(Josey Ranch Lake Library)에서 지난 15일(일) 오후 2시에 열린 특별강좌에서 방정웅 박사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는지 강좌에 참석한 문학회 회원들에게 설명했다. 방정웅 박사는 ‘훈민정흠 매니아’로 평가받는 문학인으로, 특히 해례본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방정웅 박사는 “세계에는 많은 문자가 있지만 한글처럼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거나 백성을 위해 일부러 만든 문자는 없다”며 “더욱이 문자를 해설하는 책, 즉 해례본을 만든 것도 세계 최초의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설명했다. 방정웅 박사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을 제정해 해마다 세계 문맹퇴치에 공이 큰 이들에게 상을 주고 있다”며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벨상 수상자, 기업 최고경영자 등 많은 이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 한글의 세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글의 구성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무선 전화의 천지인 자판이 국제 전기통신연합(ITU)의 국제 표준으로 승인을 받은 것은 한글의 과학성과 기술성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니 채 기자인공지능 적합 언어 한글 달라스 한인문학회장 포트워스 한글학교

2024-09-17

[아름다운 우리말] 학문행과 색독과 체서의 세상

학문행(學問行), 색독(色讀), 체서(體書)라고 글자를 쓰고 보니 전부 다 빨간 줄이 나옵니다. 모두 사전에는 없는 말이라는 뜻이겠죠. 사전에 없는 말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이 중에서 학문행과체서는 제가 만든 말이니 사전에 없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색독이라는 표현은 불교책에서 본 단어입니다. 기술적인 단어는 사전에 무척 많은데, 종교의 어휘는 매우 부족한 느낌을 받습니다.   학문행은 보시다시피 학문이라는 말에 행을 붙였습니다. 학문(學問)을 글을 배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의 한자어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주로 이야기하는 학문은 배우고 묻는다는 뜻입니다. 배우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학문이 아닙니다. 늘 물어야 학문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 물을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몰라서 물을 수도 있고, 토론하기 위해서 물을 수도 있습니다. 궁금함이나 호기심, 답답함은 모두 학문의 감정입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물음이 많아집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동전 양면과 같습니다. 아는 게 많아지면 모르는 것도 많아집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저는 학문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고 묻는 것은 실천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실천은 개인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실천은 서로 통합니다. 개인적 실천이 사회적인 경우도 있고, 사회적인 실천이 개인적 실천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운 것을 알고 행하지 않는다면 배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문에서 수많은 거짓을 봅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려면 실천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을 저는 학문행이라고 부릅니다. 배우고 묻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행해야 합니다. 학문행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바랍니다.   언어교육을 보면 언어를 배우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도구로 사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도구라는 말은 사용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길 찾고, 물건 사고, 자기 소개하는 등 언어가 사람 간의 소통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소통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는 그 이상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언어 소통의 가장 큰 가치입니다.   읽기 교육의 방법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고, 마음으로 읽는 방법은 불교에서는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한 가지를 더 덧붙입니다. 바로 색독입니다. 색독은 깨달음의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은 바를 실제로 몸으로 행동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독(體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은 책이 많을수록 행동할 게 많아집니다. 실천해야 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많이 읽고, 단순히 골방에 앉아있어서는 안 됩니다.   쓰기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베껴 쓰기, 요약하기, 일상 쓰기, 설명하기, 주장하는 글쓰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의 마지막 단계도 역시 몸으로 글쓰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몸으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이 쓴 글대로 행동하려고 애쓰는 겁니다. 그러려면 글에 거짓이 없어야 할 겁니다. 오랜 시간의 고민과 번민과 반성과 환희가 포함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글대로 살 수 있습니다.     말하기와 듣기도 마찬가지겠지요.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고, 사용하는 것은 도구의 기능을 넘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입니다. 언어교육의 관점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체어(體語)와 체문(體問)도 새로운 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온몸으로 말하고, 온몸으로 듣는 겁니다.  조현용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학문행 모두 학문 언어 소통 모두 사전

2024-09-02

[삶의 뜨락에서] 폭력의 언어

18년 전쯤 된 것 같다. 댈러스를 방문했을 때 The Fifth Floor Museum(5층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생소한 이름의 박물관에 의아해했다. 1963년 11월 John F Kennedy 대통령 저격 현장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부인 재클린 여사와 함께 오픈카를 타고 Dealey Plaza를 지나고 있었다. 이때 인근 빌딩 5층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리 하비 오즈월드가 교과서를 저장하고 있는 5층 건물 창을 통해 쏜 총알이었다. 케네디는 머리에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박물관에는 당시 비극을 말해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암살 동기, 배후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었다.     언젠지는 기억이 나지 않은데 워싱턴DC 방문 중 Ford’s Theatre(포드 극장)을 찾았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 극장에서 Our American Cousin이라는 연극을 보고 나오다 발코니에서 John Wikes가 쏜 총을 맞았다. 저격범은 남북전쟁 후 노예해방을 단행한 링컨을 저주한 사람이었다.     1981년 로널드레이건 대통령은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연설을 하고 나오다 힌클리 주니어가 쏜 총을 맞았다. 대통령은 심각한 부상을 당해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열흘간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미국 역사를 보면 이 밖에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시어도르루스벨트 대통령 등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암살됐거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범행동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주’가 극단적인 폭력을 일으키게 했을 것이다.   폭력은 그들이 외친 마지막 언어, 메시지였다. 지난 토요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총을 맞았으나 하늘의 도움인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저격범은 20살 청년, 동기는 아직 모호하고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총알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연설 중 밀입국자 숫자 차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가 피를 흘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모습을 잡은 이미지는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성조기기 펄럭이는 파란 하늘, 어떠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트럼프는 별난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물의(Controversy)를 일으키며 살아왔다. 이 나라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갈라져 있고 이런 극단적인 사건에도 큰 인식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석 달 반 동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모두 지금은 극단적인 선거 운동을 피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막판으로 갈수록 온도는 상승할 것이다.   11월 5일 밤을 상상해본다. 어차피 바이든, 트럼프 둘 중 한 사람은 패배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상하원이 어떻게 될지도 의문이다. 현직은 큰 실책이 없는 한 재선됐다. 바이든이 첫 번째 토론에서 처절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을 보였고, 트럼프 암살시도라는 악재를 이기고 승리한다면 기적이다. 두 번의 탄핵, 검찰에 기소돼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이 또한 기적이다. 아직 이야기는 진행 중이다. 클라이맥스가 이어지고 스토리는 결론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과정이 너무 길어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언젠가 결론에 도달할 것이지만 스토리가 그때끝날지 의문이다. 언어의 폭력, 총탄의 메시지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기다려 봐야겠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폭력 언어 대통령 트럼프 케네디 대통령 로널드레이건 대통령

2024-07-16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로 보는 세상

우리가 언어를 보는 관점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언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학설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가 많습니다. 사고가 먼저인지, 언어가 먼저인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논의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논제입니다.     인간은 모두 개인입니다. 각각 따로 살고, 따로 보고, 따로 냄새 맡고, 따로 듣고, 따로 느낍니다. 당연히 우리는 주관의 세상을 삽니다. 우리는 나 아닌 사람의 세상을 모르고, 나 아닌 사람의 감각을 모릅니다. 우리는 마치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듯하나 우리는 다른 이의 경험을 직접 공유한 적이 없습니다. 서로 어떻게 보고 듣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느끼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본 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쌍둥이 사이에도 똑같이 감각을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내 감각은 나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주관의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객관의 세상을 꿈꿉니다. 왜냐하면 주관의 세상에서는 소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모르는데 소통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공감이나 동감이나 동정은 다 하나가 되자는 표현입니다. 내 속 깊이에 있는 그 무엇이 그의 속 깊은 곳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이심전심의 세계는 주관과 주관의 소통을 깊이 보여주는 경지입니다.   모두 서로 다른 주관으로 살아간다면 소통은 어렵습니다. 상대의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언어는 주관을 객관화하는 장치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색을 볼지 모르지만 파란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 사이에도 차이가 있겠으나 우리는 그 차이마저 지우고 하나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은 같은 곳, 같은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이 흰색이고, 하늘이 파란색이고, 불이 붉은색임을 압니다. 저는 언어는 우리 주관이 약속한 객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어는 소통의 도구입니다. 화자의 머릿속에 있는 주관적 개념을 언어라는 청각영상을 통해서 구체화, 객관화합니다. 그러면 그 객관화된 언어는 청자의 머릿속에 다시 개념으로 주관화합니다. 언어가 없다면 객관적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언어에는 분명하고도 깊은 골짜기가 놓입니다. 서로 이해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언어가 다르면 머릿속 개념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어느 언어에서나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한 세계라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도 맞는 말입니다. 우리말의 푸른색과 영어의 푸른색은 다릅니다. 우리말의 ‘춥다’와 태국어의 춥다는 느낌이 다를 겁니다. 세상은 그대로 존재하는 듯이 언어로 본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지기도 합니다. 언어로 본 세상은 곳곳마다 변화합니다. 언어는 우리 마음과 마음을 이어줍니다. 이심전심이 있다면 그것은 언어의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언어를 떠나야 마음의 세상이 오는 것처럼 말하지만 언어의 세상이야말로 공통의 세상이고 소통의 세상입니다.     언어가 또 다른 언어를 만나는 순간은 늘 흥미롭습니다. 개인 간의 언어가 만나고, 사회 간의 언어가 만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만나 서로의 특별함에 놀라고 기뻐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모르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보고 있는 겁니다. 언어가 사고이고, 사고가 언어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 주관적 개념 주관과 주관 머릿속 개념

2024-07-07

비영어권 시민, 뉴욕시 서비스 이용 어렵다

#. 뉴욕시 빌딩국(DOB) 퀸즈보로오피스. 건물주나 주택 소유주가 개조 작업을 할 때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곳이지만, 이곳은 영어 이외의 언어 서비스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번역된 문서도, 통역 서비스도 없어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뉴요커는 이 오피스에서 서비스를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 맨해튼과 퀸즈에 자리잡고 있는 뉴욕시 스몰비즈니스서비스국(SBS) 비즈니스솔루션센터와 커리어센터. 이곳은 언어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센터에서 제공하는 다른 언어는 대부분 스페인어였다. 다른 언어로 설명을 듣거나 서비스를 받으려면 통역 서비스를 별도로 요청해 기다려야 한다.   뉴욕시정부 기관들 중 시민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의 언어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지역매체 더 시티(The City)가 뉴욕시장실 산하 이민서비스국(MOIA)이 공개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도한 데 따르면, 지난해 시정부 기관 서비스센터의 절반 이상이 뉴욕시 조례 30호(Local Law 30)를 위반했다. 조례 30호는 시정부 기관이 한국어를 포함해 뉴욕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10개 언어로 문서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통역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뉴욕시는 미스터리 쇼퍼를 활용, 뉴욕시 전역의 서비스 센터 148곳의 언어 접근성을 비밀 평가해 결과를 공개했다.     공개된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조사한 서비스 센터 중 40%에선 영어 외 문서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미스터리 쇼퍼들이 직접 접촉한 결과, 조사 대상 서비스센터 중 4분의 1은 통역 서비스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스마트폰 번역 앱 등을 사용했는데, 번역의 질이 매우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평가다.   일부 서비스센터는 영어나 중국어 문서를 제공하고는 있었지만,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뉴욕시 기업윤리위원회(BIC) 라이선스유닛, 시 소방국(FDNY) 공공기록센터, 시 인적자원관리국(HRA) 비즈니스링크, 시 행정심판청문사무국(OATH) 등 네 곳에서만 한국어 문서를 제공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인들에게 중요한 성인 대상 보건센터나 시 교통국(DOT) 인스펙션담당 부서, 메디케이드 오피스 등에서는 다른 언어서비스 제공이 부실했다.     문제는 낮은 언어접근성에 대한 지적은 수차례 있었지만, 이에 대한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서비스국 역시 조사 권한은 있지만, 후속 조치를 할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중국 비영어권 뉴욕시 스몰비즈니스서비스국 일부 서비스센터 언어 서비스

2024-06-20

[우리말 바루기] ‘파토’?, ‘파투’?

무언가 일이 잘못되는 경우 ‘파토’가 났다는 말을 많이 쓴다. “약속이 파토 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파토를 놓았다” “결혼이 파토가 났다” “여자친구가 파토를 냈다” 등처럼 쓰인다.   이렇게 사용되는 ‘파토’는 표준어일까? 자주 쓰는 말이라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표준어가 아니다. 표준어는 ‘파투’다. ‘파투’는 한자어로 깨뜨릴 파(破)와 싸움 투(鬪)로 이뤄져 있다. 직역하면 싸움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즉 싸움판이 깨져서 무효가 된다는 의미다.   정확하게는 화투 놀이에서 무언가 잘못돼 판이 무효가 되는 것, 또는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화투의 장수가 부족하거나 순서가 뒤바뀔 경우에 일어난다. 이러면 무효가 되므로 화투를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 한다.  이것이 점차 일이 잘못돼 흐지부지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됐다.   따라서 앞의 예문은 “약속이 파투 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파투를 놓았다” “결혼이 파투가 났다” “여자친구가 파투를 냈다” 등으로 고쳐야 한다.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는 “실생활 언어 습관을 보면 ‘파투 나다’보다 ‘파토 나다’의 빈도가 훨씬 높다고 생각되는데 ‘파토 나다’가 표준어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올라 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언중에게 쓰임이 많은 표현이라고 해서 무조건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파토’는 ‘파투’의 잘못이므로 ‘파투’로 표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파토 화투 놀이 판이 무효 실생활 언어

2024-05-14

[우리말 바루기] ‘그닥’은 ‘그다지’로

날씨가 급격히 더워져 친구와 새 옷을 사러 갔다. “이 옷 어때?”라는 물음에 “그닥 별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은 이가 이처럼 ‘그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보니 ‘그닥’이 표준어이며, ‘그다지’의 준말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닥’은 말을 줄여 쓰기 좋아하는 누리꾼들에 의해 생겨난 말로, 표준어가 아니다.   입말에서는 ‘그다지’보다 ‘그닥’이 더 많이 쓰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언론 매체에서도 ‘그닥’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그닥’을 ‘그다지’의 평안도 방언인 ‘그닥지’의 준말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겨난 뒤 쓰임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통신 언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언어의 경제성이 큰 힘을 발휘하기에, 줄여 쓰는 말들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래서 ‘그닥’이 틀린 표현인지도 모르고 표준어인 ‘그다지’보다 빈번하게 쓰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생명력을 인정받아 ‘그닥’이 표준어로 등극할지도 모르지만, ‘그닥’은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우리말 바루기 통신 언어 평안도 방언인 언론 매체

2024-05-07

[아름다운 우리말] 어떻게 들을 것인가?

언어를 가르치다 보면 듣기는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단지 기능의 문제로 비추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정확히 들을까에 관심이 집중되는 겁니다. 발음도, 내용도, 의미도 정확한 듣기를 위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어에서 듣기는 기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듣기를 기능에서 태도로 옮겨오면 듣기는 그대로 깨달음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듣기만큼 중요한 일이 없는 셈입니다.   인간의 언어 습득은 시작이 듣기입니다. 수없이 많은 듣기가 반복되고 나서야 말하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듣기는 태어나서야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뱃속에서도 듣고 또 듣습니다. 엄마의 소리를 듣고, 아빠의 소리를 듣고, 주변의 축복을 듣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뱃속의 듣기는 귀한 기억으로 무의식 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수많은 듣기 과정을 통하여 아이는 발음을 구별하고, 의미를 습득합니다. 듣는 것은 그래서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렇게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마음이 느껴지고, 들었을 때의 환희가 전해집니다. 여시아문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부러운 말입니다. 성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만큼 큰 축복이 있을까요? 듣고 깨달은 이를 성문승(聲聞僧)이라고 하는데, 부러운 이들입니다. 기독교 성경이나 논어, 맹자에서는 들었다고 하지 않고, 말했다고 표현합니다. 예스러운 말투로 ‘가로되,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말했다는 표현을 달리 말하면 들었다는 말입니다. 말은 듣는 게 중요하고, 어떤 말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말, 즉 선언(宣言)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할 겁니다. 스승을 찾아 불원천리(不遠千里) 가기도 하고, 산속을 헤매기도 합니다. ‘선생’은 찾아가서 들을 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호칭에 선생이 붙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귀한 일입니다. 예전의 경전들은 모두 성인의 말씀을 듣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말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날에는 귀한 말을 들으려면 우선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승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일 겁니다. 마음자세가 듣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맹자 공손추 상’에 나옵니다. 맹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남이 그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려주면 기뻐했다고 합니다. 쉬운 경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禹) 임금은 선한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좋은 말을 듣는 자세인 것입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이는 스승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절을 해야 하는 겁니다. 듣기의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듣기의 마지막 단계는 순(舜) 임금이 보여줍니다. 맹자에서는 순 임금은 더 위대하여 선을 남들과 함께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남을 좇고, 남의 좋은 점을 받아들인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군자는 다른 사람이 선행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듣기는 들은 내용을 남과 함께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시작이라면, 들은 선한 말을 남과 함께 실행하는 것, 남에게 선행하게 해 주는 것이 듣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기도 결국은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서서 나누는 것입니다. 아무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기뻐하고, 절하며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것은 그저 내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듣기가 곧 실행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듣기 과정 언어 습득 논어 맹자

2024-04-28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복식 부기’ 한번에 이해하기

단식부기는 한번의 거래를 한번만 기록하는 것이다. 돈이 들어왔으면 더하고, 돈이 나갔으면 빼준다. 단식부기의 대표적인 것이 가계부다. 작은 사업체의 금전출납부도 똑같다. 가계부에는 돈이 들어오면 수입이라고 쓰고, 들어 온 금액을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 잔액에 새로 들어 온 금액을 더해준다. 만일 돈을 썼다면, 어떤 용도로 썼는지 내용을 적고 금액을 적는다. 그리고 이 금액은 빼 준다. 이렇게 계속 적어 내려 가다 보면 언제든지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잔액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은행 통장도 단식 부기로 기록한다. 돈이 들어오면 입금된 날자와 금액을 적고 더해준다. 출금이 되면 날자와 금액을 적고 빼 준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날, 내가 가진 잔고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식부기”는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취약점은 스스로 검증 기능이 없고, 수작업을 많이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계속 나열만 하다 보니 혹시나 나중에 수중에 가지고 있는 현금 잔액이 맞지 않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면 모든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점검을 해야만 한다. 가계부만 해도 거래가 많지 않으니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커다란 기업의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 백 가지 거래가 발생한다. 또한 단식부기는 현금거래만을 기록한다. 하지만 기업은 현금은 변화가 없지만, 내용상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기록을 해야만 하는 거래가 있다. 그래서 조금 더 과학적인 기록의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복식부기는 단식부기와 달리 한가지 사건을 두 번 표시한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사용하는 “복식부기”는 14세기경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처음 사용하던 방법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이 방법은 쉽지도 않고 완벽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도 전세계 기업들은 대부분 이 방법으로 기업의 거래를 기록한다. 우리는 “회계”를  “비즈니스 언어”라고 부른다. 기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비즈니스 언어를 배워야만 한다. 비즈니스 언어가 바로 회계이고 그 문법이 바로 복식부기이다.     “복식부기”는 어떤 사건의 원인을 한 줄에 표시하고, 결과를 다른 한 줄에 기록을 한다. 원인과 결과를 다른 말로는 조달과 운용이라고 말을 한다. 자원을 어떻게 구하는 지를 조달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금을 어떻게 썼는지를 운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달을 먼저 기록하고 운용을 다시 기록한다. 모두 두 번을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100불을 투자하여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자. 단식부기에서는 투자금 100불이라고 한 줄로 적는다. 하지만 복식부기에서는 투자금 100불이라고 원인을 한번 적고, 현금 100불이라고 그 결과를 또 한번 적는다. 창업자가 100불을 투자하여 회사에 현금이라는 형태로 100불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 회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중에 100불을 받기로 한다. 단식부기에서는 아직 이 돈을 받지 않았으니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돈을 아직 못 받았으니, 현금에 100불을 더해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복식부기에서는 먼저 “매출”이라는 원인으로 100불을 기록한다. 돈이 생긴 원인 또는 자금 조달의 이유를 적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외상매출금”이라는 명목으로 100불을 한번 더 기록한다. 물품을 판매한 원인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현금 대신에 외상매출금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가 바로 운용이 되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복식 현금 잔액 비즈니스 언어 변호사 공인회계사

2024-04-18

[글마당] 하와이는 멀었다

나는 미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하와이에 여행 가려고 했다. 하와이가 뉴욕에서 유럽 가는 것보다 거의 두 배나 걸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가기를 미루다가 미국 생활 43년 만에 갔다. 남편이 이민 오던 1970년대는 하와이에서 입국 수속하느라고 공항에 잠깐 머물렀다고 한다.     온 세상을 쑤시고 다닌 곳 중에서 하와이 날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비가 잠시 뿌리다 그친 말끔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 이사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하와이 언어는 폴리네시아어로 현재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암기력이 없는 나로서는 하와이어로 써진 길 이름을 읽기도 외우기도 힘들었다. 와이키키 해변도 듣던 소문과는 달리 별로다. 물가도 비싸다. 살짝 좋았다가 ‘뉴욕이 최고지’ 하면서 마음 접었다.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크루즈를 탔다. 올 적 갈 적 거의 10일 정도 망망대해에 떠 있었다. 유럽 크루즈 여행처럼 자고 나면 내리지 않아도 바다에 떠 있는 동안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려고 탔다. 그런데 웬걸! 파도가 너무 세서 배가 부서지는 소리를 계속 냈다. 어쩐지 식당 들어가는 입구에 생강 캔디를 내놓을 때부터 뱃멀미는 시작했다. 승객들은 패치를 붙이고, 푸른 사과를 먹고, 크래커를 먹으며 벌벌 기다시피 다녔다. 언젠가 본 안소니 퀸이 나오는 흑백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풍랑을 뚫고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뱃속에서 이리저리 쏠리는 정신 나간 승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크루즈 좋아하다가 바닷물 속에서 죽는 것 아니야?”     남편에게 말하는 순간, 식당 접시들이 떨어지고 구조원들이 넘어진 노파 주위에서 웅성거렸다. 파도와 발란스를 맞추기 위해 춤을 추지 않으면 걷기 힘들었다. 다행히 매일 추던 춤솜씨로 나는 잘 돌아다녔지만, 노인네들이 엎어지고 쓰러지고 룸으로 음식을 배달해 먹었다. 나도 몸이 하도 들썩거려 자꾸 토하려고 했다. 오피스에서 약을 받아먹고 수영장에 올라갔다. 배 중간에 자리 잡고 선탠하며 낮잠을 네다섯 시간씩 잤다. 물론 밤에도 잠이 쏟아졌다. 하와이 가까이 가자 파도가 줄었다. 파도가 줄자 흔들리는 요람이 멈춘 듯 너무 잔잔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육지를 밟아도 몸이 흔들거렸다. 돈 내고 쌩 고생하다니!     하와이에서 그냥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부부도 정 힘들면 여행을 포기하고 비행기로 돌아오려고 했다. 세상만사 다 겪은 대다수 노년 승객은 그 와중에도 느긋했다. ‘모진 역경을 견디어 온 이민자인 우리가 포기할 수야 없지’라고 마음먹자 편해졌다. 하와이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멕시코를 거쳐 롱비치로 돌아왔다.     ‘두 다리 성할 때 돌아다녀야지’라며, 쏘다니는 나와는 달리 외국인들은 다리가 성치 않아도 용감하게 여행한다. 부부가 한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다른 한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밀고 끌고 다니는 노인들도 있다. 함께한 세월이 65년 된 부부도 있지만, 네 번째 결혼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점잖고 스윗하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 말고도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산다. 나는 그들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이수임 화가·맨해튼글마당 하와이 하와이 여행 하와이 언어 하와이 날씨

2024-04-05

한인 5060, 언어장벽·생활비 부족 어려움

미주 지역 한인 50·60세대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정보 부족과 충분치 않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한인커뮤니티재단(KACF)과 아시안아메리칸연맹(AAF)이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축약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미주 지역 한인 5명 중 2명(40%)만이 주택 비용을 비롯한 식비, 의료 비용 등 ‘현재 수입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하다’고 답했다.   반면, 절반 이상은 현재의 소득 수준이 ‘약간 충분(33%)’ 또는 ‘충분하지 않다(28%)’ 고 응답했다.   재정적 문제를 호소한 한인들에게 따로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금전적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렌트비(44%)’를 꼽았다. 이어 식비(29%), 의료비(25%), 교통비(11%) 등의 순이다.   50대 이상 한인 중 절반 이상(58%)은 실버타운, 시니어 아파트 등에서 생활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   시니어 아파트나 관련 시설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단연 ‘비용(33%)’이었다. 그 외에는 ‘가족과 가까운 곳(18%)’, ‘친구’ ‘음식(각각 17%)’등이 뒤를 이었다.   50대 이상 한인들은 의료 서비스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언어 장벽(41%), 정보 부족(35%)을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간병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관련 서비스를 요청하거나 받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정보 부족(43%)과 언어 장벽(42%)을 꼽았다.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요인에서도 언어 장벽(12%)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다수의 50대 이상 한인들은 일상활동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82%)에게 보조를 요청하고 있다. 또, 가족과 가까이 사는 것이 매우 중요(67.3%) 또는 약간 중요(24.8%)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나 프로그램 정보(중복응답 가능)를 주로 가족 또는 친구(55%), 신문 등 언론 매체(42%) 등을 통해 얻고 있다.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다수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대중교통 이용의 편리성과 관련해 매우 편리(7%) 또는 다소 편리(25%)하다는 답변은 절반도 안 됐다.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족 이유로는 ‘버스나 전철역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40%)’이라고 답했다.     만성질환(중복응답 가능)과 관련해서는 콜레스테롤(44%)과 고혈압(40%)을 꼽았다.     반면, 50대 이상의 한인들은 독립적인 삶에 익숙한 경향을 보였다. 응답자 중 74%의 한인들이 ‘일상생활을 스스로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2명 중 1명은 외출하는 게 육체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다(50%)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LA, 뉴욕, 시카고, 휴스턴, 워싱턴DC, 뉴저지, 샌프란시스코 등 7개 대도시에 사는 한인 81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인커뮤니티재단측에 따르면 설문 조사 참가자 중 절반은 50~64세, 나머지는 65세 이상이다. 이에 따라 보고서에서 명시한 ’한국계 미국인‘ ’노인‘ ’중장년층‘은 모두 50대 이상을 일컫는다.  조사는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진행됐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언어장벽 생활비 이상 한인들 언어 장벽 의료 서비스

2024-04-04

[우리말 바루기] ‘그치?’는 틀린 표현

상대방의 공감을 유도하며 되묻는 언어 습관을 지닌 사람이 많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말끝마다 “그지?” “그죠?” 혹은 “그치?” “그쵸?”를 덧붙이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맞춤법상 올바른 표현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그지’ ‘그치’는 ‘그렇지’를 줄여 쓴 표현이다. ‘그렇지’는 ‘그렇다’를 활용한 표현인데, ‘그렇다’는 ‘그러하다’가 줄어든 말이다. 결국 ‘그러하지→그렇지→그지/그치’가 된 셈인데, ‘그지’는 ‘그렇지’에서 ‘렇’이 통째로 빠진 형태다. ‘그치’는 ‘러’가 빠지고 받침으로 쓰인 ‘ㅎ’과 뒤에 오는 ‘지’가 결합해 거센소리인 ‘치’로 변한 모습이다.   ‘그렇다’는 ‘그렇고, 그렇게, 그러니, 그런, 그러면’ 등과 같이 활용된다. ‘그렇다’는 ㅎ불규칙용언으로, 활용할 때 어간인 ‘그렇-’에서 ‘ㅎ’이 불규칙적으로 탈락하기도 하지만 ‘렇’이 통째로 사라지진 않는다. 다시 말해 ‘그지’나 ‘그치’와 같이 줄어들 수 없다. ‘그죠’와 ‘그쵸’도 마찬가지다. ‘그러하죠→그렇죠→그죠/그쵸’가 될 수 없다. ‘그렇죠’가 ‘그죠’나 ‘그쵸’로 줄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지/그치’ ‘그죠/그쵸’는 ‘그렇지’ ‘그렇죠’로 표기해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표현 언어 습관

2024-03-12

[우리말 바루기] ‘메우다’와 ‘메꾸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식당, 공연장을 꽉 메운 팬들의 환호…. 어떤 장소를 가득 채우다는 의미로 ‘메우다’ 대신 ‘메꾸다’를 써도 될까? “광장을 가득 메꾼 인파”와 같이 표현하면 안 된다. ‘메운’이라고 해야 바르다. “공연장을 꽉 메운 팬들의 환호”도 ‘메꾼’으로 바꿀 수 없다.   ‘메꾸다’가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일까? 과거에는 그랬다. ‘메우다’만 사전에 올라 있었으나 언어 현실을 반영해 2011년 8월 별도의 표준어로 추가됐다. 표준말이 됐지만 ‘메우다’와 뜻이 똑같지 않고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메꾸다’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흙으로 구덩이를 메꿔라” “빈틈없이 공란을 메꾸느라 혼났다”처럼 뚫리거나 비어 있는 곳을 막거나 채우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를 ‘구덩이를 메워라’ ‘공란을 메우느라’로 바꿔도 된다.   시간을 적당히 또는 그럭저럭 보내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관에서 빈 시간을 메꿨다” “무료한 시간을 메꾸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와 같이 쓰인다. 이 역시 ‘빈 시간을 메웠다’ ‘시간을 메우려고’처럼 표현할 수 있다.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채우다고 할 때도 ‘메꾸다’를 사용한다. “적자를 메꾸기 위해 애썼다” “업체들이 손실을 메꾸려고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못 거뒀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메우기 위해’ ‘메우려고’로 바꿔도 무방하다.   어떤 장소를 가득 채운다고 표현할 때만 ‘메꾸다’가 아닌 ‘메우다’를 쓰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식당 공연장 가지 의미 언어 현실

2024-02-28

요리…음식에 사랑을 쓰다

프랑스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근대 베트남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흥의 최근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음식은 하나다. 음식에 대한 욕구, 배고픔은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와 사랑을 하나로 ‘조리’하는 영화 ‘테이스트 오브 싱스’는 19세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그의 연인 유진(쥘리에트 비노슈)의 사랑 이야기다.     도댕이 주최하는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 풍경을 스케치하는 38분 동안의 오프닝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평가하는 이 초반부의 오랜 조리 시퀀스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도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 해 보인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나도 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면.   그러나 관객은 곧 영화가 후각 자극의 이면에 ‘관계’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화면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이 영화가 음식들의 층 위에서 말하고자 함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도댕과 유진은 20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댕이 유진에게 구혼을 하는 장면이 있고 유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들만의 사랑의 밀어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도댕은 가끔씩 기절하는 유진의 건강이 우려스럽다.     주방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휴식을 취하는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의 방문. 유진은 그와 함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지금의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한다. 도댕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언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이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프랑스적 감성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도댕과 유진은 그 사랑을 요리로 표현한다.     도댕이 오직 유진만을 위해 요리하는 후반부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란 안 흥 감독은 은유와 상징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는 감독이다. 정물의 정직함을 믿는 그는 종종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유진은 가고 없다. 그녀가 없는 주방 공간에 도댕과 유진이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들이 메아리쳐 온다. 진정한 요리의 미학은 음식의 맛에 있지 않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음식 사랑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영화 언어 지난해 칸영화제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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