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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복식 부기’ 한번에 이해하기

단식부기는 한번의 거래를 한번만 기록하는 것이다. 돈이 들어왔으면 더하고, 돈이 나갔으면 빼준다. 단식부기의 대표적인 것이 가계부다. 작은 사업체의 금전출납부도 똑같다. 가계부에는 돈이 들어오면 수입이라고 쓰고, 들어 온 금액을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 잔액에 새로 들어 온 금액을 더해준다. 만일 돈을 썼다면, 어떤 용도로 썼는지 내용을 적고 금액을 적는다. 그리고 이 금액은 빼 준다. 이렇게 계속 적어 내려 가다 보면 언제든지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잔액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은행 통장도 단식 부기로 기록한다. 돈이 들어오면 입금된 날자와 금액을 적고 더해준다. 출금이 되면 날자와 금액을 적고 빼 준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날, 내가 가진 잔고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식부기”는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취약점은 스스로 검증 기능이 없고, 수작업을 많이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계속 나열만 하다 보니 혹시나 나중에 수중에 가지고 있는 현금 잔액이 맞지 않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면 모든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점검을 해야만 한다. 가계부만 해도 거래가 많지 않으니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커다란 기업의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 백 가지 거래가 발생한다. 또한 단식부기는 현금거래만을 기록한다. 하지만 기업은 현금은 변화가 없지만, 내용상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기록을 해야만 하는 거래가 있다. 그래서 조금 더 과학적인 기록의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복식부기는 단식부기와 달리 한가지 사건을 두 번 표시한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사용하는 “복식부기”는 14세기경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처음 사용하던 방법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이 방법은 쉽지도 않고 완벽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도 전세계 기업들은 대부분 이 방법으로 기업의 거래를 기록한다. 우리는 “회계”를  “비즈니스 언어”라고 부른다. 기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비즈니스 언어를 배워야만 한다. 비즈니스 언어가 바로 회계이고 그 문법이 바로 복식부기이다.     “복식부기”는 어떤 사건의 원인을 한 줄에 표시하고, 결과를 다른 한 줄에 기록을 한다. 원인과 결과를 다른 말로는 조달과 운용이라고 말을 한다. 자원을 어떻게 구하는 지를 조달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금을 어떻게 썼는지를 운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조달을 먼저 기록하고 운용을 다시 기록한다. 모두 두 번을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100불을 투자하여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자. 단식부기에서는 투자금 100불이라고 한 줄로 적는다. 하지만 복식부기에서는 투자금 100불이라고 원인을 한번 적고, 현금 100불이라고 그 결과를 또 한번 적는다. 창업자가 100불을 투자하여 회사에 현금이라는 형태로 100불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 회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중에 100불을 받기로 한다. 단식부기에서는 아직 이 돈을 받지 않았으니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돈을 아직 못 받았으니, 현금에 100불을 더해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복식부기에서는 먼저 “매출”이라는 원인으로 100불을 기록한다. 돈이 생긴 원인 또는 자금 조달의 이유를 적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외상매출금”이라는 명목으로 100불을 한번 더 기록한다. 물품을 판매한 원인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현금 대신에 외상매출금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가 바로 운용이 되는 것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복식 현금 잔액 비즈니스 언어 변호사 공인회계사

2024-04-18

[글마당] 하와이는 멀었다

나는 미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하와이에 여행 가려고 했다. 하와이가 뉴욕에서 유럽 가는 것보다 거의 두 배나 걸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가기를 미루다가 미국 생활 43년 만에 갔다. 남편이 이민 오던 1970년대는 하와이에서 입국 수속하느라고 공항에 잠깐 머물렀다고 한다.     온 세상을 쑤시고 다닌 곳 중에서 하와이 날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비가 잠시 뿌리다 그친 말끔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 이사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하와이 언어는 폴리네시아어로 현재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암기력이 없는 나로서는 하와이어로 써진 길 이름을 읽기도 외우기도 힘들었다. 와이키키 해변도 듣던 소문과는 달리 별로다. 물가도 비싸다. 살짝 좋았다가 ‘뉴욕이 최고지’ 하면서 마음 접었다.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크루즈를 탔다. 올 적 갈 적 거의 10일 정도 망망대해에 떠 있었다. 유럽 크루즈 여행처럼 자고 나면 내리지 않아도 바다에 떠 있는 동안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려고 탔다. 그런데 웬걸! 파도가 너무 세서 배가 부서지는 소리를 계속 냈다. 어쩐지 식당 들어가는 입구에 생강 캔디를 내놓을 때부터 뱃멀미는 시작했다. 승객들은 패치를 붙이고, 푸른 사과를 먹고, 크래커를 먹으며 벌벌 기다시피 다녔다. 언젠가 본 안소니 퀸이 나오는 흑백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풍랑을 뚫고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뱃속에서 이리저리 쏠리는 정신 나간 승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크루즈 좋아하다가 바닷물 속에서 죽는 것 아니야?”     남편에게 말하는 순간, 식당 접시들이 떨어지고 구조원들이 넘어진 노파 주위에서 웅성거렸다. 파도와 발란스를 맞추기 위해 춤을 추지 않으면 걷기 힘들었다. 다행히 매일 추던 춤솜씨로 나는 잘 돌아다녔지만, 노인네들이 엎어지고 쓰러지고 룸으로 음식을 배달해 먹었다. 나도 몸이 하도 들썩거려 자꾸 토하려고 했다. 오피스에서 약을 받아먹고 수영장에 올라갔다. 배 중간에 자리 잡고 선탠하며 낮잠을 네다섯 시간씩 잤다. 물론 밤에도 잠이 쏟아졌다. 하와이 가까이 가자 파도가 줄었다. 파도가 줄자 흔들리는 요람이 멈춘 듯 너무 잔잔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육지를 밟아도 몸이 흔들거렸다. 돈 내고 쌩 고생하다니!     하와이에서 그냥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부부도 정 힘들면 여행을 포기하고 비행기로 돌아오려고 했다. 세상만사 다 겪은 대다수 노년 승객은 그 와중에도 느긋했다. ‘모진 역경을 견디어 온 이민자인 우리가 포기할 수야 없지’라고 마음먹자 편해졌다. 하와이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멕시코를 거쳐 롱비치로 돌아왔다.     ‘두 다리 성할 때 돌아다녀야지’라며, 쏘다니는 나와는 달리 외국인들은 다리가 성치 않아도 용감하게 여행한다. 부부가 한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다른 한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밀고 끌고 다니는 노인들도 있다. 함께한 세월이 65년 된 부부도 있지만, 네 번째 결혼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점잖고 스윗하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 말고도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산다. 나는 그들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이수임 화가·맨해튼글마당 하와이 하와이 여행 하와이 언어 하와이 날씨

2024-04-05

한인 5060, 언어장벽·생활비 부족 어려움

미주 지역 한인 50·60세대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정보 부족과 충분치 않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한인커뮤니티재단(KACF)과 아시안아메리칸연맹(AAF)이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축약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 미주 지역 한인 5명 중 2명(40%)만이 주택 비용을 비롯한 식비, 의료 비용 등 ‘현재 수입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하다’고 답했다.   반면, 절반 이상은 현재의 소득 수준이 ‘약간 충분(33%)’ 또는 ‘충분하지 않다(28%)’ 고 응답했다.   재정적 문제를 호소한 한인들에게 따로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금전적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렌트비(44%)’를 꼽았다. 이어 식비(29%), 의료비(25%), 교통비(11%) 등의 순이다.   50대 이상 한인 중 절반 이상(58%)은 실버타운, 시니어 아파트 등에서 생활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   시니어 아파트나 관련 시설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단연 ‘비용(33%)’이었다. 그 외에는 ‘가족과 가까운 곳(18%)’, ‘친구’ ‘음식(각각 17%)’등이 뒤를 이었다.   50대 이상 한인들은 의료 서비스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언어 장벽(41%), 정보 부족(35%)을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간병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관련 서비스를 요청하거나 받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정보 부족(43%)과 언어 장벽(42%)을 꼽았다.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요인에서도 언어 장벽(12%)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다수의 50대 이상 한인들은 일상활동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82%)에게 보조를 요청하고 있다. 또, 가족과 가까이 사는 것이 매우 중요(67.3%) 또는 약간 중요(24.8%)하다고 답했다.     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나 프로그램 정보(중복응답 가능)를 주로 가족 또는 친구(55%), 신문 등 언론 매체(42%) 등을 통해 얻고 있다.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다수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대중교통 이용의 편리성과 관련해 매우 편리(7%) 또는 다소 편리(25%)하다는 답변은 절반도 안 됐다.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족 이유로는 ‘버스나 전철역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40%)’이라고 답했다.     만성질환(중복응답 가능)과 관련해서는 콜레스테롤(44%)과 고혈압(40%)을 꼽았다.     반면, 50대 이상의 한인들은 독립적인 삶에 익숙한 경향을 보였다. 응답자 중 74%의 한인들이 ‘일상생활을 스스로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2명 중 1명은 외출하는 게 육체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다(50%)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LA, 뉴욕, 시카고, 휴스턴, 워싱턴DC, 뉴저지, 샌프란시스코 등 7개 대도시에 사는 한인 819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인커뮤니티재단측에 따르면 설문 조사 참가자 중 절반은 50~64세, 나머지는 65세 이상이다. 이에 따라 보고서에서 명시한 ’한국계 미국인‘ ’노인‘ ’중장년층‘은 모두 50대 이상을 일컫는다.  조사는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진행됐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언어장벽 생활비 이상 한인들 언어 장벽 의료 서비스

2024-04-04

[우리말 바루기] ‘그치?’는 틀린 표현

상대방의 공감을 유도하며 되묻는 언어 습관을 지닌 사람이 많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말끝마다 “그지?” “그죠?” 혹은 “그치?” “그쵸?”를 덧붙이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맞춤법상 올바른 표현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그지’ ‘그치’는 ‘그렇지’를 줄여 쓴 표현이다. ‘그렇지’는 ‘그렇다’를 활용한 표현인데, ‘그렇다’는 ‘그러하다’가 줄어든 말이다. 결국 ‘그러하지→그렇지→그지/그치’가 된 셈인데, ‘그지’는 ‘그렇지’에서 ‘렇’이 통째로 빠진 형태다. ‘그치’는 ‘러’가 빠지고 받침으로 쓰인 ‘ㅎ’과 뒤에 오는 ‘지’가 결합해 거센소리인 ‘치’로 변한 모습이다.   ‘그렇다’는 ‘그렇고, 그렇게, 그러니, 그런, 그러면’ 등과 같이 활용된다. ‘그렇다’는 ㅎ불규칙용언으로, 활용할 때 어간인 ‘그렇-’에서 ‘ㅎ’이 불규칙적으로 탈락하기도 하지만 ‘렇’이 통째로 사라지진 않는다. 다시 말해 ‘그지’나 ‘그치’와 같이 줄어들 수 없다. ‘그죠’와 ‘그쵸’도 마찬가지다. ‘그러하죠→그렇죠→그죠/그쵸’가 될 수 없다. ‘그렇죠’가 ‘그죠’나 ‘그쵸’로 줄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지/그치’ ‘그죠/그쵸’는 ‘그렇지’ ‘그렇죠’로 표기해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표현 언어 습관

2024-03-12

[우리말 바루기] ‘메우다’와 ‘메꾸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식당, 공연장을 꽉 메운 팬들의 환호…. 어떤 장소를 가득 채우다는 의미로 ‘메우다’ 대신 ‘메꾸다’를 써도 될까? “광장을 가득 메꾼 인파”와 같이 표현하면 안 된다. ‘메운’이라고 해야 바르다. “공연장을 꽉 메운 팬들의 환호”도 ‘메꾼’으로 바꿀 수 없다.   ‘메꾸다’가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일까? 과거에는 그랬다. ‘메우다’만 사전에 올라 있었으나 언어 현실을 반영해 2011년 8월 별도의 표준어로 추가됐다. 표준말이 됐지만 ‘메우다’와 뜻이 똑같지 않고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메꾸다’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흙으로 구덩이를 메꿔라” “빈틈없이 공란을 메꾸느라 혼났다”처럼 뚫리거나 비어 있는 곳을 막거나 채우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를 ‘구덩이를 메워라’ ‘공란을 메우느라’로 바꿔도 된다.   시간을 적당히 또는 그럭저럭 보내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관에서 빈 시간을 메꿨다” “무료한 시간을 메꾸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와 같이 쓰인다. 이 역시 ‘빈 시간을 메웠다’ ‘시간을 메우려고’처럼 표현할 수 있다.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채우다고 할 때도 ‘메꾸다’를 사용한다. “적자를 메꾸기 위해 애썼다” “업체들이 손실을 메꾸려고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못 거뒀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메우기 위해’ ‘메우려고’로 바꿔도 무방하다.   어떤 장소를 가득 채운다고 표현할 때만 ‘메꾸다’가 아닌 ‘메우다’를 쓰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식당 공연장 가지 의미 언어 현실

2024-02-28

요리…음식에 사랑을 쓰다

프랑스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근대 베트남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흥의 최근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음식은 하나다. 음식에 대한 욕구, 배고픔은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와 사랑을 하나로 ‘조리’하는 영화 ‘테이스트 오브 싱스’는 19세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그의 연인 유진(쥘리에트 비노슈)의 사랑 이야기다.     도댕이 주최하는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 풍경을 스케치하는 38분 동안의 오프닝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평가하는 이 초반부의 오랜 조리 시퀀스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도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 해 보인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나도 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면.   그러나 관객은 곧 영화가 후각 자극의 이면에 ‘관계’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화면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이 영화가 음식들의 층 위에서 말하고자 함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도댕과 유진은 20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댕이 유진에게 구혼을 하는 장면이 있고 유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들만의 사랑의 밀어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도댕은 가끔씩 기절하는 유진의 건강이 우려스럽다.     주방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휴식을 취하는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의 방문. 유진은 그와 함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지금의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한다. 도댕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언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이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프랑스적 감성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도댕과 유진은 그 사랑을 요리로 표현한다.     도댕이 오직 유진만을 위해 요리하는 후반부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란 안 흥 감독은 은유와 상징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는 감독이다. 정물의 정직함을 믿는 그는 종종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유진은 가고 없다. 그녀가 없는 주방 공간에 도댕과 유진이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들이 메아리쳐 온다. 진정한 요리의 미학은 음식의 맛에 있지 않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음식 사랑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영화 언어 지난해 칸영화제

2024-02-09

[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의 언어

눈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날씨 중 가장 감각적인 날씨다. 만질 수 있고 뭉칠 수 있다. 밟을 수 있고 그 위에 누울 수 있다. 냄새를 맡고 먹어볼 수도 있다.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자국눈은 금세 사라지지만, 깊게 쌓인 길눈은 단단하게 굳어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눈다리가 된다. 싸락싸락 내린 쌀알 같은 싸라기눈은 사박사박 쉽게 밟고 걸어갈 수 있지만, 발등이 빠질 정도로 내린 발등눈은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푹 빠진다. 고체였다가 액체가 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쌓이기도 한다.   우숙영 『산책의 언어』   아무 데나 펼쳐진 페이지부터 읽으면 된다.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 날씨와 계절, 시간 등 자연에 대한 짧은 글이 담백하다. 매 장 뒤엔 어휘 사전도 실었다. 윗글만 해도 ‘자국눈’ ‘길눈’ ‘발등눈’ 같은 처음 들어본 우리말이 아름답다.   저자는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나무와 꽃,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가난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자연에 대해 풍부한 언어를 갖게 된다는 건, 세상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갖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책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꽃 사진을 찍다 ‘너도 나이 들었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친구의 말대로 이제야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꽃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계가, 나와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라면서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조각이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발견한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확장이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산책 언어 동물 날씨 계절 시간 어휘 사전도

2024-01-31

통화 중 실시간 통역…삼성, 첫 AI폰 공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을 품은 갤럭시폰으로 반격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7일 북가주 샌호세에 있는 SAP센터에서 갤럭시 S24 시리즈를 공개했다. 지난해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19.4%를 기록해 애플(20.1%)에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집계가 나온지 하루만이다.   공개 전부터 주목을 받은 온디바이스 AI 기능은 갤럭시 S24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다. 데이터를 클라우드(서버)에 보내지 않고 기기에서 바로 AI가 연산을 처리하기 때문에 처리 속도가 빠르고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 서비스를 쓸 수 있다. 개인정보 보안에 유리하다. 실시간 통역, 메시지 번역, 사진 편집 제안, 영상 슬로우 모션 재생 등에 AI 기능이 적용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AI로 모바일 소통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다”고 표현했다.   갤럭시 S24에선 기기에 내장된 AI가 앱 같은 역할을 한다. 통화중 실시간 AI 통역 기능은 별도 앱을 다운받지 않아도 한국어·영어·스패니시·중국어 등 13개 언어 통역을 바로 지원한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모든 기록이 자동 삭제돼 외부 유출 가능성을 차단했다. 상대방 단말이나 통신사와 상관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 가능하다.     기존에 쓰던 문자·카카오톡·텔레그램 앱에 AI가 적용돼 13개 언어로 메시지를 번역할 수도 있다. 문장 스타일을 바꾸거나 철자·문법 오류 수정도 AI가 해준다. 삼성 노트 앱에서 글을 번역·요약 정리해주는 ‘노트 어시스트’와 녹음한 음성을 글로 변환해 요약해주는 ‘텍스트 변환 어시스트’ 기능도 추가됐다.   구글과 협업한 ‘동그라미 검색(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도 눈길을 끌었다. 웹 서핑을 하거나 인스타그램·유튜브를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화면에 동그라미를 그려 앱 이동 없이 바로 검색할 수 있다. 생성 AI가 정리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추가로 대화하듯 검색할 수도 있다. 다만 이 기능은 인터넷 연결은 필요하다.   갤럭시 S24에선 카메라 성능도 대거 업그레이드했다. 2, 3, 5, 10배 줌을 모두 광학 수준의 고화질로 제공하는 ‘쿼드 텔레 시스템’을 시리즈 최초로 탑재했다. 전작 갤럭시S23울트라와 같은 100배 줌을 제공한다. 다만 AI를 활용해 화질을 대폭 개선한 덕분에 어두운 밤에 줌 기능을 써도 흔들림 없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 편집 기능도 AI를 활용해 공을 들였다. AI가 사진을 분석해 맞춤형 편집 도구를 제안하는 기능과 갤러리 내 영상을 꾹 누르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는 ‘인스턴트 슬로모’ 기능이 새로 생겼다. 또 ‘생성 AI 편집’을 사용하면 AI로 잘려나간 배경화면을 채워넣어 사진을 편집할 수 있다. 생성 AI로 만든 모든 이미지에는 ‘워터마크’가 자동 표기된다.   6.8인치로 화면이 가장 큰 갤럭시 S24 울트라 모델엔 AI 사용성 극대화를 위해 퀄컴의 갤럭시용 스냅드래곤8 3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했다. 기본(6.2인치)과 플러스(6.7인치) 모델은 삼성이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2400을 탑재했다.     출시 가격은 기본형이 256GB 기준으로 859.99달러며 플러스와 울트라 모델은 512GB 기준으로 각각 1119.99달러, 1419.99달러다. 오는 31일부터 전 세계 시장에 순차 출시한다.  갤럭시 삼성 실시간 통역 언어 통역 실시간 ai

2024-01-17

정부 지원 한국어 서비스 10여곳뿐

한인이 다수 거주하는 LA카운티지역 내에서 공공 기관 및 주류 비영리 단체가 제공하는 한국어 서비스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LA카운티내 한인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이는 각종 혜택을 받는 데 있어 한인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LA카운티정신건강국(LACDMH)과 한인 비영리 단체 ‘굿라이프케어리소스센터’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LA카운티 메트로 4지구 내에서 정신 건강, 정부 지원, 상담, 의료 혜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기관 및 비영리단체는 총 380곳(2023년 기준)이다.   이중 최소 1회 이상 한국어 통역 또는 한국어 자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은 109곳이다. 전체 기관 중 약 28%만이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범위를 비영리 단체로 좁힐 경우 한국어 서비스 제공 단체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조사를 진행한 굿라이프케어리소스센터 김효철 대표는 “정부 관련 기관을 제외하고 비영리 단체만 살펴보면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10여 곳으로 전체 기관 중 3% 정도에 불과하다”며 “LA카운티가 아무리 많은 자원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해도 언어 지원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면 한인 등 소수계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LA카운티 메트로 4지역은 LA한인타운인 미드-윌셔 지역을 비롯한 다운타운, 웨스트레이크, 보일 하이츠 등을 포함한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웃케어클리닉(KHEIR),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한인가정상담소, 한인타운노동연대(KIWA)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주류 단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한인 비영리 단체 한 관계자는 “LA의 경우 소수계의 증가로 언어 서비스 제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어 자료에는 오역도 많고 통역원도 풀타임이 아닌 경우가 많아 연결도 어렵기 때문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현실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생활에 도움되는 정보가 많아도 정작 한인들이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일례로 현재 LA카운티 메트로 4지역에는 LA가톨릭 자선 단체(catholiccharitiesla.org)가 있다. 공과금 재정 지원, 정부 제공 무료 의료 서비스 신청 안내, 교통비 지원, 기저귀 제공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임에도 스패니시만 제공할 뿐 한국어는 없다.   발달 장애인 가족이 있는 김현경(45·LA)씨는 “주류 사회에서는 꽤 많은 지원 기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 같은 소수계는 정보가 부족해서 실제 어느 단체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며 “설령 지원 기관을 안다 해도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서비스를 받기란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LA지역에서는 적격 가구를 대상으로 집 전화 및 휴대폰 할인 요금 정보를 알려주는 ‘캘리포니아 라이프라인 프로그램’도 있다. 이 단체는 현재 한국어 상담 전화(866-272-0354)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 한인들의 이용률은 낮다.   이 프로그램 관계자는 “생활보조금(SSI)을 받는 한인들이 많아 대부분 적격 기준이 될 텐데 이 서비스를 아는 한인들은 많이 없는 것 같다”며 “한국어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기준에만 부합한다면 한인들이 이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LA카운티정신건강국과 굿라이프케어리소스센터는 조사 데이터를 취합해 최근 ‘메트로LA 4지구 정보 제공 안내서’도 발간했다. 총 288페이지로 각 기관 및 단체에 대한 역할, 웹사이트 주소, 전화번호 등을 담았다. 안내서는 굿라이프케어리소스센터(213-820-8855)로 연락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서비스 한국어 한국어 서비스 언어 서비스 한국어 자료

2024-01-11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기원을 묻는다

언어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100여 년 전에 파리언어학회에서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그만두기로 하였다는 인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하는 순간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허황된 논의가 됩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이니 논의를 그만하자는 것이죠. 사실 학문은 허황된 것도 문제지만, 허황되다고 논의를 그만두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언어의 기원에 관해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로는 ‘멍멍설’, ‘피피설’, ‘영차영차설’, ‘흥얼흥얼설’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들입니다. 용어는 개념을 명확히 하고, 신뢰성을 보여주는데 용어나 명칭이 우스우니 도대체 신뢰가 안 갑니다. 저는 이 용어를 다시 살피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언어 기원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멍멍설’은 ‘언어자연모방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뛰어난 두뇌와 소리를 낼 수 있는 훌륭한 발성기관이 있습니다. 이는 사고와 음성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발성 기관은 자연 소리를 모방하는 데도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인간은 새를 유혹할 정도로 새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면서 인간의 발성 기관은 정교화되고 분절음에 의한 음운의 구별이 가능해졌음을 충분히 추론 가능합니다. 많은 언어에서 의성어가 발달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 빗소리, 새 소리와 온갖 동물의 울음소리는 인간에게 수많은 자극이 되었을 겁니다. 자연소리 모방설은 추론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논의입니다.   ‘피피설’은 인간의 감정에서 시작되었다는 논의입니다. 따라서 ‘언어감정기원설’으로 명명이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이 논의야말로 현대사회에도 현대언어학에도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피설의 ‘피’는 경멸의 느낌이라는데 저는 용어를 정할 때 예를 잘못 썼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안 좋은 감정을 명명으로 삼은 겁니다. 당연히 말 그대로 감탄을 주된 예로 삼았어야 합니다. 기분 좋았을 때 내는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 오!’와 같은 표현도 좋은 감정이 표현이니 굳이 이런 방식으로 명명한다면 ‘와! 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 오, 우, 으, 이’와 같은 모음이 전부 감탄사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밝은 모음과 어두운 모음의 느낌까지 나타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감탄사에서 모음이 분화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영차영차설’은 어떤가요? 같이 일하려고 반복적으로 내던 소리라는 설명은 ‘언어노동기원설’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입니다. 소통의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개인이 아닌 집단생활에서 언어는 함께 힘을 내는 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실제로 언어는 협력의 힘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힘을 낼 때도 사용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의 소리와 함께하는 구호, 자신을 향한 다짐은 모두 힘을 줍니다. 언어노동기원설은 언어의 힘을 보여줍니다.   ‘흥얼흥얼설’은 어떤가요? 즐거움에서 언어가 시작하였다면 ‘언어유희기원설’로 명명할 수 있을 겁니다. 언어의 기능 중에서 표현적 기능, 시적 기능이 여기에 속합니다. ‘시(詩)’의 시작은 노래입니다. 노래의 가사는 그대로 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아픔을 노래하던 것이 언어의 기원이 될 수 있습니다. 청산별곡의 ‘얄리 얄리얄라셩’ 같은 노래의 후렴구나 무가(巫歌)의 소리도 여기에 속합니다. 소리를 내며 감정을 표현하였던 것이 언어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겁니다.     인간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논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의 기원을 고민하고 논하다 보면 언어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주기도 합니다. 언어는 자연과 함께합니다. 언어는 함께 일을 하며 힘을 내자고 합니다. 기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위로합니다. 언어는 그대로 인간의 삶입니다. 언어의 기원은 인간의 기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 기원 언어 기원 인간 언어 순간 언어

2023-10-29

[아름다운 우리말] 옛말의 덫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인데, 속담이나 언어 표현 속에 남아있는 것을 화석화라고 합니다. ‘언어의 화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말 중에 ‘하느님 맙소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때 ‘맙소사’라는 말은 다른 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보통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옛날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언어학자에게 이런 흔적은 흥미롭습니다. 어원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언어 변화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예를 보면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표현도 현대말로 바꾼다면 ‘빼지도 박지도’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런 말이 꽤 많습니다. 언어를 볼 때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휘 중에서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 속담에 남아있거나 비유적인 표현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석까지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화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포도청의 의미를 모릅니다. 포도당과 관련이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화석이 속담 속에 남은 것이죠. 속담은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수많은 화석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긴 표현인지 이해가 갈까요? 집 천장에 쥐가 있었다고 하면 아마도 기겁을 할 겁니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어 보았어야 ‘쥐 죽은 듯이’의 느낌도 살아납니다. 한편 지금은 없는 제도이거나 명칭이어도 비교적 익숙한 경우도 있습니다. 양반이 대표적입니다. 아직도 ‘이 양반 저 양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양반은 칭찬이 아니라는 겁니다. 변한 모습으로 화석이 되어있는 겁니다. 그만하면 양반이다는 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옛말이 아직도 그때의 모습처럼, 또는 그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듯이 사용되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원의 탐구라면 옛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여행이라 하겠으나 어휘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를 이야기할 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아래고, 나머지 사람의 위에 있다는 의미이니 지금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상하관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검사를 영감이라고 하거나 대통령의 부인을 국모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모, 반역죄라는 말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왕정의 시대로 회귀한 느낌입니다.   대노나 진노와 같은 표현은 이해가 안 되는 바가 아니나 요즘에 맞지 않는 말들입니다. 사극의 말투를 현실에서 사용한다면 유머가 아닌 이상 문제가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유머도 웃겨야 한다는 전제는 있지만 말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이리 오너라~’라고 표현하면 웃길 수 있겠습니다. 만약 농담이라면 ‘통촉해 주십시오.’도 재미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옛말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언어가 화석화되는 이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석은 연구의 대상일 때 재미있습니다. 화석을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언어처럼 사용하면 과거의 덫에 갇히게 됩니다. 언어만 과거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곧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도 옛날에 머무르게 됩니다. 저는 그 점이 두렵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으로 사고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언어의 화석 중에는 아름다운 화석도 있습니다. 좋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 말속에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어원 연구를 통해서 발견하고, 이를 현재의 언중(言衆)과 나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인 언어 화석은 화석 속에 남겨두고, 깨달음과 웃음을 주는 언어의 화석은 기쁘게 꺼내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화석을 탐구하는 즐거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옛말 언어 화석 언어 표현 언어 변화

2023-10-25

[잠망경] 언어의 희롱

“대체로 언어는 진실을 감추는 도구다”라는 명언을 남긴 코미디언, 조지 칼린(1937~2008)의 ‘완곡한 표현에 대하여(On Euphemisms)’를 유튜브로 다시 본다.   전쟁 중 병사들이 겪는 신경 증상을 1차 세계대전 때 ‘전쟁 신경증(shell shock)’이라 했고, 월남전 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한다. 1920년대 초의 ‘신경증’이 반백 년 후 정신병으로 변한 것이다. 정부 지원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장님을 ‘시각장애인(visually impaired)’으로, ‘지체장애인(physically handicapped)’을 ‘신체장애인(physically challenged)’으로 호칭을 바꾸는 사태에 대하여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소리친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컨디션을 바꾸어 부르면 컨디션이 바뀐다고 믿게 됩니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 바꿈 하면 망자(亡者)의 컨디션이 바뀐다는 심리상태다.    ‘말 바꾸기 운동’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調絃病)이라 부르면서 ‘분열’이라는 불쾌한 의미를 감추는 데 성공한다. 정신분열병을 의미하는 ‘schizophrenia’의 ‘schizo-’부분은 ‘찢어지다’라는 뜻으로 ‘가위(scissors)’와 말뿌리가 같다.   조현은 줄을 고르게 조절한다는 뜻. 줄을 조절한다는 의미가 마음 줄의 긴장도를 알맞게 하겠다는 뜻인지. 느슨하게. 아니라고?   편도선염, 대퇴골절, 대장암처럼 병변(病變)을 기술하는 진단명에서 멀리 가도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무엇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진술에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엇인지를 조율하겠다는 치료 의도를 암시하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한국의 의학 수준인가.   반대로, 부드러운 표현이 강력한 표현으로 변하는 일이 정신과에서 터진다. 2023년 8, 9월에 걸쳐 월간 ‘Psychiatric Times’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톱 기사가 표지를 덮었다. 주의가 산만한 것을 정신병으로 간주하다니.   미국에서 마약이 주성분인 ADHD 약이 동이 났다는 소식! 지난 20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하는 ADHD 과잉진단의 결과로 2023년 현재 약의 수요가 미국 제약회사의 공급 능력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분석이다.   과잉진단의 가장 큰 요인은 제약회사의 약 선전에 부응하여 진단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 약이 먼저고 진단이 나중이라는 사연이며 의사들의 진단기준이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사회적인 압력도 큰 역할을 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가 ADHD 자가진단을 내리고 의사에게 약 처방 압력을 넣는 것이다. 약은 코카인과 화학성분이 매우 비슷한 중독성 각성제다.   높지 않은 지능, 아동학대, 부모의 이혼 과정 같은 이유로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서 마약 각성제를 먹는다. 그리고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성적이 뒤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부모의 강박관념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학술용어까지 써가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속으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2023년 가을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언어 희롱 전쟁 신경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마약 각성제

2023-10-06

[잠망경] 언어의 희롱

“대체로 언어는 진실을 감추는 도구다.”라는 명언을 남긴 코미디언, 조지 칼린(George Carlin, 1937~2008)의 유튜브, ‘On Euphemisms, 완곡한 표현에 대하여’(1990)를 다시 본다.   전쟁 중 병사들이 겪는 신경 증상을 1차 세계대전 때 ‘shell shock, 전쟁 신경증’이라 했고, 월남전쟁 후에는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한다. 1920년대 초의 ‘신경증’이 반백 년 후 정신병으로 변한 것이다. 정부 지원 치료를 받기 위하여.   ‘blind, 장님’을 ‘visually impaired, 시각장애자’로 ‘physically handicapped, 지체부자유자’를 ‘physically challenged, 신체장애인’로 미국이 장애인들의 호칭을 바꾸는 사태에 대하여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소리친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컨디션을 바꾸어 부르면 컨디션이 바뀐다고 믿게 됩니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 바꿈 하면 망자(亡者)의 컨디션이 바뀐다는 심리상태다.   ‘말 바꾸기 운동’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調絃病)이라 부르면서 ‘분열’이라는 불쾌한 의미를 감추는 데 성공한다‘schizophrenia’의 ‘schizo-’부분은 전인도 유럽어로 ‘찢어지다’라는 뜻으로 ‘scissors, 가위’와 말뿌리가 같다.   조현. 고를 調, 줄 絃. 줄을 고르게 조절한다는 뜻.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무대 왼쪽에서 걸어 나오기 전까지 현악기 주자들이 징~ 징~ 현을 조율하는 정황을 연상시킨다. 줄을 조절한다는 의미가 마음 줄의 긴장도를 알맞게 하겠다는 뜻인지. 느슨하게. 아니라고?   편도선염, 대퇴골절, 대장암처럼 병변(病變)을 기술하는 진단명에서 멀리 가도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무엇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진술에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엇인지를 조율하겠다는 치료 의도를 암시하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한국의 의학 수준인가.   반대로, 부드러운 표현이 강력한 표현으로 변하는 일이 정신과에서 터진다. 2023년 8, 9월 양달에 걸쳐 월간 ‘Psychiatric Times’에서 ‘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대한 톱 기사가 표지를 덮었다. 주의가 산만한 것이 정신병으로 간주하다니.   미국에 마약이 주성분인 ADHD 약이 동이 났다는 소식! 지난 20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하는 ADHD 과잉진단의 결과로 2023년 현재 약의 수요가 전 미국에 산재한 제약회사의 공급 능력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분석이다.   과잉진단의 가장 큰 요인은 제약회사의 약 선전에 부응하여 진단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 약이 먼저고 진단이 나중이라는 사연이며 의사들의 진단기준이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사회적인 압력도 큰 역할을 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가 ADHD 자가진단을 내리고 의사에게 약 처방 압력을 넣는 것이다. 약은 코카인과 화학성분이 매우 비슷한 중독성 각성제!   높지 않은 지능지수, 아동학대, 부모의 이혼 과정 같은 이유로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서 마약 각성제를 복용한다. 그리고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성적이 뒤떨어지면 큰일난다는 부모의 강박관념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학술용어까지 써가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속으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2023년 가을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언어 희롱 disorder 주의력결핍 마약 각성제 stress disorder

2023-10-03

투표용지 용어 쉬워진다…예·아니오 대신 구체적 설명

내년 대선을 앞두고 캘리포니아주가 투표용지에 쓰이는 용어를 대대적으로 손본다. 또 영어 구사가 어려운 이민자 커뮤니티를 위해 투표용지 언어 번역 검수도 시작한다.   6일 가주 상원과 하원은 유권자의 투표용지에 ‘예’ 또는 ‘아니오’ 대신 ‘법을 유지할 것’인지 ‘법을 뒤집을 것’인지 묻도록 변경하는 법안을 압도적으로 채택했다. 이 법안은 개빈 뉴섬 주지사가 서명하는 대로 발효돼 당장 내년 선거 용지부터 적용된다.   가주 의회는 법안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선택권을 ‘예’와 ‘아니오’ 만으로 제한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발의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유권자들의 혼선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을 추진한 아이작 브라이언 가주 상원의원 등 지지자들은 “발의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쓴 후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라고 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준다”며 “투표용지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쓰여야 한다. 이 법안은 유권자들에게 좀 더 권한을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투표용지에 ‘법안 유지’ 또는 ‘반대’라고 변경해 적을 경우 오히려 유권자가 헌법을 개정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가주 총무처는 이민자 커뮤니티에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번역 검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셜리 웨버 총무처 장관은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오역으로 투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며 “내년 선거에 차질 없도록 번역 과정 등도 꼼꼼히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투표용지 용어 투표용지 용어 투표용지 언어 이민자 커뮤니티

2023-09-07

[빅데이터] 더 귀해지는 만남

오랫동안 공부해온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곳에서의 일정과 병행하려 시내 곳곳에 있는 공유오피스의 여러 지점에서 새벽까지 머물렀습니다. 휴대폰의 큐알코드로 회의실을 예약하고, 커피를 마시고, 자료를 출력하는 일 모두가 아무도 없는 한밤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니 자동화의 혜택은 축복과 같습니다.   10년 전, 대규모 상가 개발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된 것은 동선이 잘 발생하지 않는 음영지의 용처와 야간에 그 넓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때 제시했던 아이디어가 공유오피스나 스터디 카페였습니다. 도심의 활성화된 상권은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일하는 사람에게도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상점 구매자는 상점의 동선을 따라가지만 일하기 위해 온 사람은 그 위치가 외진 곳에 있어도 앱을 통해 손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찾는 이가 많은 곳보다 오히려 유동인구가 없는 곳을 선호합니다. 이때 제시했던 사업모델이 10년도 안 되어 자리를 잡아 저의 공부에 혜택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역시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새벽 졸음을 쫓기 위해 쇼핑몰을 산책하니 방문자가 적어 편의점마저 문을 닫았지만 광장에서 큰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가가 확인한 정체는 청소하는 로봇이었습니다. 그 넓은 공간에 몇 대의 로봇이 바닥을 닦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혹여 저와 같은 ‘사람’이 부딪혀 사고가 날까 노래로 경고하며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로봇을 바라보다 자주 가던 건물의 주차관리 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늘 가벼운 농담으로 맞아주시던 분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자동주차 관리시스템 도입으로 관리 인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공지 이후부터였습니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 주차쿠폰 제한시간보다 1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사람 좋은 아저씨였다면 “그냥 가세요”라며 너그럽게 이야기했겠지만, 기계는 추가금을 야박하게 받아갔습니다.   쇼핑몰에서 로봇을 바라보며 아저씨가 불현듯 그리워진 이유는, 규칙을 넘어 상대를 배려하는 재량의 권한을 가지지 못한 대상과의 조우에서 느껴지는 막연함이 외로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듭니다. 아이스크림, 과자 심지어 간장게장이나 갈치조림까지 무인으로 파는 점포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들은 만남을 제한하기만 할까요.   얼마 전 동네에서 강아지와 고양이의 편의점이라는 무인 상점을 보았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물건을 스스로 사러 오진 못할 테니 반려동물용품이나 음식을 파는 곳이려니 하는 생각에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게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손님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신기하게 생각하던 중, 상점에서 나온 손님이 고양이를 발견하곤 사 가지고 나온 간식 중 하나를 나눠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양이 친구는 정확히 그 점포의 효용을 이해하고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무인화의 적응은 인류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보안의 문제로 신용카드를 넣어야 입장이 가능한 이 공간에, 나중엔 고양이가 직접 목걸이에 이식된 칩으로 출입하지 않을까요. 아님 고양이 안면인식 알고리즘으로 결제까지 완료하고 집사인 주인의 계좌에서 출금하진 않을까요. 어릴 적 일이 바빠 낮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친구의 부모님이, 친구가 동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군것질하도록 한 후 월말에 갚아준 것처럼 말입니다.   후일 인공지능이 고양이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발전된다면 메뉴 선택이나 고객의 소리도 남게 될지 모른다 상상해 보다 통역의 기술이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 간의 공생을 돕는 예제가 떠올랐습니다.   최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분들이 직접 연 식당이 늘고 있습니다. 양국 교류가 빈번해지며 현지 음식을 찾는 한국 사람들도 많아지고, 이 땅에 이주해 삶의 터전을 넓히는 이들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일을 테이블마다 설치된 태블릿 시스템이 맡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뉴 설명과 선택뿐 아니라 결제까지 가능한 기계는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식당 주인도 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의 기반을 얻기 위한 노력에 큰 힘이 더하는 기술의 발전은 자원이 부족한 각자의 자립을 돕는 소중한 지원입니다.   기술은 만남을 제한할 수도, 새로운 만남을 도울 수도 있음을 쉼 없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힘든 만남을 없애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멋진 만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그 위험성과 가능성을 끊임없이 이해하고 궁리해야 할 듯합니다. 송길영 / Mind Miner빅데이터 귀해지 자동화 고양이 친구 고양이 안면인식 고양이 언어

2023-08-25

[우리말 바루기] ‘저작장애’가 뭐예요?

다음 중 음식물 씹는 것을 뜻하는 말은?   ㉠ 연하(嚥下) ㉡ 소양(搔?) ㉢ 천명(喘鳴) ㉣ 저작(咀嚼)   모두가 의학용어로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연하(嚥下)는 입속에 있는 음식물을 삼키는 동작을 가리킨다. 의학에선 ‘연하장애’란 말로 주로 쓰인다. 쉬운 말로 하면 ‘삼킴장애’다.   ㉡소양(搔?)은 ‘소양증’ 형태로 많이 사용되며, 피부가 가려운 증상을 얘기한다. 쉬운 말로 하면 ‘가려움증’이다.   ㉢천명(喘鳴)은 숨을 쉴 때 폐에서 발생하는 쌕쌕거리는 소리를 지칭한다. 쉬운 말로 바꾸면 ‘쌕쌕거림’이다.   ㉣저작(咀嚼)은 음식물을 씹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문제의 정답이다. 주로 ‘저작장애’란 형태로 쓰이는데 교합 부정, 치아 이상 등으로 음식물을 씹는 기능에 이상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저작장애’는 쉬운 말로 하면 ‘씹기장애’다.   이 외에도 고관절→엉덩관절, 심계항진→두근거림, 한선→땀샘, 객담→가래, 예후→경과,  심인성→정신탓, 경추→목뼈 등 어려운 의학용어는 무수히 많다. 이들은 전문용어이자 학술 언어로 한자어뿐 아니라 영어 등 외래어도 많다.   같은 증상이라도 낯선 용어로 얘기하면 환자들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쉬운 용어일수록 소통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우리말 바루기 저작장애 정신탓 경추 경과 심인성 학술 언어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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