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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시 같은 말

“아, 광합성 충전하시는군요.”   회사 점심 자투리 시간에, 볕 좋은 현관 앞 난간에 기대 서 있는 나를 보고 젊은 직원들이 말했다. 볕 쬐기를 우리는 일광욕이라 하는데 요즈음은 광합성 충전이라고 말하나 보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은 정말 기지가 넘친다. 또 준말이 넘쳐나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고, ‘생선’은 생일 선물이라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준말은 유행을 타는 한때의 슬랭도 아닌 것 같다. SNS 시대의 흐름 따라 말의 표현도 디지털화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관망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말의 의미가 훼손된 것 같아 마뜩잖다. 준말이 표현의 자유라 해도, 자유에는 책임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더 빠르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라 해도, 우리 삶의 기본인 말의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 이런 생각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꼰대의 외곬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별수 없다. 준말이 일상화된 신세대 화법을 따라 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고수할밖에.   ‘고전(classic)이 왜 고전이랴? 구식과는 차별되는 것으로 지켜내고 싶은, 언제까지나 좋은 것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라는 글이 떠오르며 준말의 대세가 비단 나 혼자만의 우려가 아닌듯하여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말은 곧 인격의 표현이자 그 시대 사회 풍조를 나타낸다. 우리 문화는 가까운 사이라도 적절한 예의를 갖춰 말하는 예절을 중시했다. 말의 절도가 미치는 품격이 삶의 품격으로 이어진다는 것의 가르침이다.    막내가 청소년기 때의 일이다. 아들에게 별스럽지 않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돌아온 대답이 불손한 듯해 당황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엄마에게 그런 언사를 쓸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런데 엄마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했다는 아들의 대답은 참담한 충격이 되어 엄마로서 나의 언사를 돌아보게 했다. 그날을 계기로 아들에게 하는 말은 외마디 외침조차 다듬으려 노력했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된 아들이 얼마 전 “엄마가 하는 말은 모두 시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예찬에 내가 제대로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너무 감동을 주는 칭찬이었다. 엄마로서의 인생 전반에 대한 귀한 찬사가 아니겠는가. 엄마 말을 시로 듣는 우리 아들이야말로 시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석양이 장관을 이룬 하늘을 보며 아들은 “노을 낀 하늘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 아들이 갑자기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당장 시야에 들어온 하늘을 가리켜 ‘노을 낀 하늘’이라 가르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형용구의 서정적 느낌이 한국말 초보인 아들에게 제대로 전달 될까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아들은 오래전 배운 어구를 이렇듯 멋지게 적용한 것이다. 아마도 그 말과 함께 그때의 풍경과 정취까지 아들 기억에 아름답게 간직되었나 보다.     한마디 고운 말이 심겨져 고운 말의 꽃을 피운다. 보라!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운 말을 품고 있다.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은 우리 몫이다. 이영신 / 수필가이 아침에 오래전 아들 아들 기억 우리 아들

2024-04-18

한인 엄마, 아들 죽인 펜타닐과 싸움 나섰다

펜타닐 때문에 아들을 잃은 한인 여의사가 약물 진단 키트 개발에 나서 화제다.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는 최근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에서 의사로 활동 중인 지니 정씨의 사연이 게재됐다.   정씨는 “펜타닐은 모두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며 빛과 같았던 내 아들 ‘태선’이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했다”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고 전했다.   피부과 의사인 정씨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동료 의학자들과 함께 펜타닐 검출 테스트 기기 개발에 나섰다. 테스트 기기의 명칭은 아들의 이름(잭슨 태선 레든·사진)을 딴 ‘Taesun(태선)’으로 정했다.   아들인 태선씨가 펜타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건 19세였던 지난 2020년이었다.   럭비를 좋아했던 태선씨는 켄터키 대학 재학 중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콜로라도 대학으로 편입이 확정된 상태였다.   정씨는 “콜로라도로 오기 전날 작별 인사를 하러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어떤 약을 받아서 먹었는데 거기에 다량의 펜타닐이 함유돼있었다”며 “펜타닐은 냄새나 맛 등이 전혀 없어 외관상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약물 테스트를 하지 않으면 함유 여부를 확인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어야 했던 정씨는 의사로서 펜타닐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의학자들과 휴대용 펜타닐 검출 테스트기 개발을 위해 고펀드미 등을 통해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정씨의 개발팀은 이미 지난해 8월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로부터 의료 서비스 개발 부분 스타트업 업체 중 한 곳으로 선정돼 1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26일 현재 고펀드미에서는 2만 달러 가까이 모금이 이루어진 상태다.   정씨는 “젊은 층을 상대로 약물 교육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개발하는 키트가 그들에게 일종의 안전망이 되길 바란다”며 “펜타닐 진단 키트는 연말 내로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현재 젊은 층 사이에서 펜타닐 오남용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펜타닐은 주의력 결핍 치료에 쓰이는 애더럴, 신경안정제인 자낙스 등의 형태로 만들어져 청소년 사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부모들은 자녀에게 “밖에서 친구나 모르는 이가 주는 ‘타이레놀’도 복용하면 안 된다”고 교육할 정도다.   한편, 펜타닐 오남용으로 인한 사망은 지난 10년 동안 약 4배나 폭증했다.     지난 2021년의 경우 전국에서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8만411명)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사자의 10배가 넘는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최대 50배, 모르핀보다 100배 강하다. LA통합교육구의 알베르토 카발로 교육감은 청소년들의 펜타닐 문제를 두고 “그야말로 재앙이자 전염병 수준”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펜타닐 아들 펜타닐 문제 펜타닐 오남용 펜타닐 진단

2024-03-2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양파 한 뿌리의 선행

‘옛날 못된 할머니가 살았는데, 죽고 나서 보니 착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에, 악마들은 할머니를 불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래도 이 할머니의 수호천사는 뭔가 구제할 거리가 없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단 하나의 선행을 기억해 내고는 하느님께 고했다. 할머니가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 여인에게 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양파를 가지고 가서 할머니가 양파를 붙잡고 나오게 하라. 만약 불바다에서 나오면 천국으로 가지만, 양파가 끊어진다면 불바다에 남게 되리라.”     수호천사가 내민 양파를 붙잡고 할머니가 조심조심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죄수들이 할머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구!” 할머니는 죄인들을 발로 걷어 찼다. 그녀가 이 말을 하기 무섭게 양파는 뚝 끊어져 버리고 할머니는 불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트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물욕과 색욕의 상징인 아버지와 삼형제 그리고 서자인 막내 아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욕망과 구원의 장엄한 대하드라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선과 악,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문학사에 빛나는 거대한 서사시다.   하느님은 ‘양파가 끊어지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양파 한 뿌리는 천국행 보증수표가 아니다. 신의 은총은 수용하는 자의 결단에 따라 달라진다. 천사는 불바다로 떨어진 할머니를 두고 ‘눈물을 흘리면서’ 떠난다. 수호천사가 지옥으로 간 할머니를 구해주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에 대한 연민이다.   여기에는 자업자득,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간의 법칙은 작용하지 않는다. 연민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하늘나라에는 연민이라는 아름다운 법칙이 존재한다. 연민(Compassion)은 고통을 함께 하다는 뜻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 21절 예배당에서만 주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거룩함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단테의 지옥에는 여러 가지 죄목들을 저지른 자들이 가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지옥은 ‘선행을 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가게 된다.   ‘단 한 번의 선행’도 하지 않은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양파 한 뿌리’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양파 한 뿌리는 구원과 희망을 단서가 된다.   베드로 전서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고 적고 있다. 믿는 자는 거룩한 척 하지 말고 생활에서 실천하라는 뜻이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허상이다.   ‘양파 한 뿌리’는 구원에 이르는 참모습이다. 작지만 소중한 믿음이 천국길에 오른다. 할머니는 양파 한 뿌리로 은총을 샀다고 생각했다. 신은 딜을 하지 않는다. 단지 은총을 부여할 뿐이다.     할머니의 가장 큰 죄는, ‘나’와 ‘너희들’ 간에 선을 긋고 자신만이 선택 받았다는 교만과 단절이다. ‘선택 받은 인간’이라는 믿음이 교만이 되지 않도록 영혼이 백합처럼 순수한 부활절 맞으시길!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양파 뿌리 천국행 보증수표 자업자득 인과응보 막내 아들

2024-03-26

“숨진 모친 자연사 가능성 높아”

지난달 29일 50대 한인이 모친을 살해하고 극단선택을 한 사건〈본지 3월 8일자 A-3면〉이 알려진 것과 달리 모친은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7일 LA경찰국(LAPD) 토니 임 공보관의 “정황상 아들 김건호(58)씨가 모친 김옥(85)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는 발표에 김씨가 모친을 살해하고 극단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을 관할하는 올림픽경찰서 존 램바티 LAPD 수사관은 “지난달 발생한 모자 사망 사건에서 아들은 극단선택이 맞지만 모친을 살해하지 않았다”며 “타살이나 공격 흔적은 없고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약물 과다복용 확인을 위해 LA카운티 검시소에서 시신 독극물검사가 진행 중이다”고 덧붙였다.     김옥씨의 정확한 사망 경위에 대한 알려진 바가 아직 없다. 폐쇄된 공간인 집 안에서 사건이 발생해 경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들 김씨의 자살 동기도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램바티 형사는 “유서나 자살 노트가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며 “생활고로 비관했다는 것 역시 추측일 뿐이지 정확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한편, 램바티 형사에 따르면 자살한 김씨가 아파트 보안 카메라에 마지막으로 찍힌 건 지난달 22일이다. 이후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인 29일까지 집 안팎으로 출입한 사실이 없다. 일주일 사이 집 안에서 두 모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김경준 기자 kim.kyeongjun1@koreadaily.com자연사 모친 자연사 아들 모친 김옥 자살 동기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주 한인

2024-03-10

"모범 경찰, 자상한 아들로 기억하겠습니다"

순찰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한 LA경찰국(LAPD) 소속 한인 경관 고 니콜라스 이(한국명 이정원)씨의 10주기 마지막 추모행사가 열렸다.     7일 LAPD가 주관한 행사는 글렌데일 포리스트론 묘지에서 가족, 친지, LAPD 소속 경관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톨릭 추모 연도(위령 기도)가 진행됐다.   생전 할리우드 경찰서 소속이었던 고 니콜라스 이 경관은 10년 전인 2014년 3월 7일 베벌리 힐스 지역에서 순찰을 돌던 도중 대형트럭이 순찰차를 덮치는 교통사고를 당해 순직했다.   그는 대한장의사 대표 이흥재(75)씨와 마당국수를 운영하는 이정자(71)씨 부부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부인과 딸 둘이 있다.   이날 유가족들은 올해 10주기를 끝으로 고 이 경관의 추모 행사는 마지막이라고 발표했다.     아버지 이흥재씨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저희 아들을 기억해주시고 추모행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송구스러운 마음에 공식 행사는 올해까지만하고 다음해부터는 가족끼리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 경관은 1988년 LAPD 제복을 입고  2014년까지 16년간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2014년 3월 7일 베벌리힐스 로마 비스타 드라이브와 로버트 레인 교차로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던 트럭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이 경관의 차량과 정면 충돌했다.     동승했던 여성 경관과 트럭 운전사도 큰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당시 신참 훈련담당(training officer)이었던 이 경관은 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3개월이 된 신참 여성 경관과 함께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관의 오랜 친구인 LAPD 토니 임 공보관은 “당시 과도하게 실린 적재물로 인해 트럭이 주택가에서 통제력을 잃으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면서 “좋은 친구이자 누구보다 커뮤니티를 위해 열정 넘치게 일했고 모범을 보였던 훌륭한 경관이었다”고 그를 기억했다.     이날 어머니 이정자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엄마를 참 잘 따랐던 아들이다. 당시에는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며 “그래도 남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아들이 좋은 곳에 갔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잊지 않고 아들을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경관이라고 아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경찰 모범 저희 아들 소속 경관 여성 경관

2024-03-07

[아름다운 우리말] 고통과 기쁨

불교에서 깨달음의 길로 ‘사성제(四聖諦)’를 이야기합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바로 그것입니다. 삶에서 고통이 쌓이면 고통을 없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을 보이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면서 사성제를 다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내 상태에 따라 공부의 깨달음은 달리 다가옵니다. 이번에 사정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성제의 고(苦)는 다시 사고팔고(四苦八苦)로 나뉩니다. 우리의 고통을 네 가지 혹은 여덟 가지로 나누는 것입니다. 네 가지 고통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이고 여덟 가지 고통은 여기에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불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를 듭니다. 팔고에 해당하는 네 가지 고통을 보면서 금방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고통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원증회고와 애별리고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고통인 원증회고는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입니다. 생각만 해도 괴로운 일이나 삶의 대부분의 고통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에 만나고 싶은 사람만 있다면 하루하루가 천국입니다. 기독교에서 너희 안에 천국이 있다는 말은 바로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우리들 사이에 천국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지위가 올라가고 세상과 넓게 만나다보면 정도는 다를지 모르나 원증회고의 세상입니다.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애별리고는 애당초 사랑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별의 고통도 없습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별의 고통은 상존(常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할 수는 없는 겁니다. 특히 외국에 사는 사람이나 외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별리고의 고통은 항상 느끼는 일입니다. 또한 애별리고의 가장 큰 고통은 죽음의 이별이니 언젠가는 다가오는 일입니다.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원증회고와 애별리고의 두 고통을 보면서 저는 회(會)와 별리(別離)를 바꾸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기쁨과 싫은 사람과 헤어지는 기쁨으로 말입니다. 물론 싫은 이가 적어서 싫은 이와 헤어지는 기쁨마저 적어진다면 더 좋겠지요. 싫은 이를 줄이는 노력, 사랑하는 사람을 늘리는 노력은 중요한 수행입니다.   옛이야기에 소금장수 아들과 우산장수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소금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햇볕 쨍쨍한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엄마의 마음일 겁니다. 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 오는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 때문에 웃음이 나고, 맑은 날에 소금장수 아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기 바랍니다. 같은 사건이어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고통을 줄이고 기쁨이 커지는 겁니다.   허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저는 싫은 사람 만나는 일을 날마다 걱정합니다. 또한 저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에 슬퍼하고, 잘된 자식보다 힘든 아이에 온통 마음이 쓰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사실 아픈 손가락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게 부모입니다. 아픈 아이가 있는데 잘된 아이 때문에 기뻐할 수만은 없겠지요.   고통이 많기는 하지만 그게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고통이 많기 때문에 반대로 기쁨도 많아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통이 없다면 기쁨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파하고 기뻐하는 인간이라는 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고통과 기쁨은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고통 기쁨 가지 고통 우산장수 아들 소금장수 아들

2024-02-25

선천적 복수국적 이탈 3월31일 마감…2006년생 남성 신고 대상

2006년생인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 중 한국 병역의무 면제와 복수국적 포기를 희망할 경우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국적이탈 신고 기한을 놓칠 경우 36세까지 국적이탈이 어렵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출생자 는 태어날 당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일 경우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병역의무 징집대상이다.   이에 따라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은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 전에 ‘국적이탈 신청’을 해야 한다.     국적이탈 신고는 ‘출생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함께 취득한 복수국적자가 외국 국적을 택한다’는 의사를 법무부 장관에게 신고하는 절차다. 국적이탈 신고를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재외공관에 방문해야 한다. 15세 미만의 경우 법정 대리인이 필요하다.   특히 2006년생 남성 중 국적이탈 신고 희망자는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신고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LA총영사관 측은 예년에 적용했던 3월 31일까지 ‘국적이탈 선 방문접수 후 서류제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적이탈 신청 서류 10가지 중에는 ‘신청자 부모의 한국 혼인신고, 신청자 한국 출생신고, 가족관계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신청자 중 일부는 부모가 미국에서만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는 혼인신고 및 자녀 출생신고를 하지 않기도 해 서류 작업에만 긴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신청자의 부모가 미국에서 이혼한 경우 서로 연락이 끊겨 애를 먹기도 한다.   지난해 아들의 국적이탈 신청을 한 최모씨는 “미국에서 남편과 이혼했는데 한국 서류상으로 혼인신고, 아들 출생신고, 이혼절차를 한 뒤에야 아들 국적이탈이 가능했다”며 “서류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고 복잡했는데 총영사관 등은 어쩔 수 없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LA총영사관은 웹사이트(overseas.mofa.go.kr/us-losangeles-ko/index.do)로 국적이탈 신고에 필요한 내용과 서류 등을 안내하고 있다.     한편 한국 법무부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제때 국적이탈을 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예외적 국적이탈허가 대상은 선천적 복수국적자 중 ▶국적이탈을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외국에서 출생하고 계속 외국에 주된 생활 근거를 두고 ▶6세 미만의 아동일 때 외국으로 이주한 이후 계속 외국에 거주한 사람이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복수국적 선천 선천적 복수국적자 국적이탈 신고 아들 국적이탈

2024-01-23

[이 아침에] 여자친구

8살에 미국에 온 준이가 지난가을에 대학생이 되었다. 처조카인 준이가 우리와 살게 된 사연은 매우 갑작스럽고 슬픈 일 때문이다. 11년이나 지난 일이다. 어느 날 새벽,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늘 불길하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라 서울에 사는 처남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처남은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 후, 준이는 미국에 와서 우리와 살게 되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내게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꼬마 녀석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하고 잔소리해 대는 나이 많은 고모부와 살며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한국에 가고 싶다는 투정 없이 힘든 세월을 잘 견디어 주었다.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 인사만 겨우 익힌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곧 친구들을 사귀고, 2년이 지나니 내 도움 없이 숙제도 혼자 해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학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에세이를 읽기도 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전철을 타고 집에 다녀갔다. 겨울 방학 때도 전철을 타고 오면 토요일 아침에 집 근처 노스리지 역에서 픽업을 하기로 했는데, 금요일 저녁 전화가 왔다. 친구 차를 타고 밤에 온다고 한다. 좀 늦을 것 같다고 해서, 집 열쇠를 문 앞 깔개 밑에 넣어두고 잤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일이 있어 집을 비우고 둘이 아침을 먹는데, 준이가 머뭇머뭇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어젯밤에는 친구 차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 어머니가 데려다준 것이라고 한다.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학교 근처가 집이라고 한다. 괜찮다고, 아침에 전철을 타고 가면 된다고 했는데, 극구 우기며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 어머니의 의도를 알 것도 같다. 이놈이 어디 사는지 확인도 할 겸, 1시간 남짓 차를 타고 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겸 해서 차편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는 같은 기숙사 동에 산다고 했다. 준이는 이제까지 여자친구는 사귀어 본 적이 없다. 아, 이놈도 이제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이미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된 세 아들은 모두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라고 소개를 받았던 기억은 한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연애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주고 설명해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겪어 보아야, 아,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그것도 잠시 들 뿐이다. 쉽게 잊히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랜 세월 아쉬움으로 남는 사랑도 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도 있다.     그런 사랑을 하기에는 이제 늦은 나이가 되고 나니, 가슴 졸이고 실연에 절망하기도 했던 그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좀 더 과감히 멋진 사랑을 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준이에게는 축하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꼰대의 충고도 해 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나. 그 나이에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해.”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여자친구 여자친구 어머니 초등학생 아들 학교 근처

2023-12-27

아들 살해 혐의 한인 가족 민사소송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수감된 그레이스 유(한국이름 유선민.36)씨의 가족이 사법당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가족 측은 유 씨에 대한 구속수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7일 그레이스 유 구명위원회는 뉴저지 주정부와 버겐카운티 검찰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뉴저지에서 민사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김동민 변호사가 무료로 유 씨를 대리하기로 했다.   유 씨의 가족과 김 변호사는 지난 4일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에 위치한 김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확정했다.   유 씨는 지난해 5월 3일 뉴저지주 리버엣지 지역 주택에서 생후 3개월 된 아들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검찰은 유 씨가 아들을 수차례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유 씨는 지난해 초 쌍둥이 아들 2명을 출산했다. 3개월 뒤 쌍둥이 중 1명은 자택에서 호흡곤란을 겪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3일 뒤 사망했다. 검찰은 아이 부검 결과 두개골과 갈비뼈에서 골절이 발견했다며 유 씨에게 1급 살인혐의를 적용했다. 기소된 유 씨는 아들 살인 혐의를 부인했지만, 보석 없이 1년 6개월째 구속된 채 수사를 받고 있다.       유 씨의 부모는 쌍둥이 중 숨진 아들은 평소 저체중과 호흡곤란에 시달렸고, 현재까지 사망의 직접적인 증거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뉴저지 한인사회도 유 씨 구명위원회를 구성해 유 씨 석방과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동민 변호사는 “직접 유 씨를 만나보고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유 씨를 구속한 건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며 “유 씨가 다른 자식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합당하지 않은 절차인 데다 가족에겐 큰 슬픔을 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대리하는 한편 내년 초로 예정된 형사재판 관련 증거 확보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하은기자 lee.haeun@koreadailyny.com민사소송 아들 아들 살해 한인 가족 쌍둥이 아들

2023-12-07

[이 아침에] 땅 위의 위로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낸다고 3박 4일 빌린 맘모스 빌리지의 콘도에서 하룻밤만 자고 내려왔다. 호흡곤란이 와서 한숨도 못 잤다. 고산병이었다. 몇 년 전 수술 직후 약한 몸으로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루 정도 지나면 적응된다는데 고통의 밤을 다시 견디기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 하산했다.   마침 둘째 날 아침 스노보드를 타던 남편도 과하게 욕심을 내다가 타박상을 입어 갈비뼈에 통증이 왔다. 의좋게 내려올 수 있어 덜 미안했다. 아들 내외와 후배 내외의 근심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평소 잘 맞지 않는 우리 부부인데 나는 고산병으로 호흡이 어렵고 남편은 갈비뼈 통증으로 호흡이 어렵다니 하이파이브를 해도 좋을 만큼 반가워서 웃었다. 살다가 이렇게 맞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아들이 8살 때부터 맘모스 스키장에 드나들었으니 햇수로는 30년이다. 남편과 아들은 해마다 연 회원권(Year Pass)까지 구입해 자주 드나들고, 아들은 방학 땐 맘모스 스키장에서 알바를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연습하러 오던 올림픽 영웅 클로이 김의 어린 시절도 옆에서 봤다. 평창 올림픽 땐 클로이 김을 응원하러 전지적 팬의 시점으로 한국도 다녀왔다.   이런 즐거운 추억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조종하는 세스나를 타고 스키장 인근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 비행장에 내렸다. 갈 때는 무사했는데 돌아올 땐 강풍으로 프로펠러가 활주로 가장자리에 있던 사인 박스(sign box)를 치는 사고가 났다. 비행기는 보험으로 수리했고 다친 사람도 없는 사고였지만 그 안에 타고 있던 내게는 큰일 날뻔한 비행사고 아닌가? 그 뒤로는 맘모스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별로 가고 싶지가 않은 장소가 되었다.   아마 이번에 호흡이 어려운 것도 몸의 컨디션에 정신적인 것도 합쳐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휴가를 망치고 돌아와 주일이 되어 교회를 가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계속 머리가 아파 남편만 혼자 가게 되었다.   종일 약 먹고 누워있는데 교회에 다녀온 남편이 돈을 건넨다. 좋아서 벌떡 일어났는데 많지 않은 액수다. “애걔 이게 뭐야?” 큰돈이 아니라 살짝 실망했더니 사연인 즉, 교회의 J권사님이 당신이 아파 교회에 못 왔다고 하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얼른 나으라고 주시더란다.   순간 마음이 바뀌어 뭉클해졌다. 85세인 권사님의 마음이 마치 우리 엄마 같아서. 30달러에 아픈 머리가 씻은 듯 나았으니 역시 나는 물욕에 어두운 세상적인 사람 맞다. 산에서 얻은 병이 땅에서 돈으로 위로받았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고 점잖은 노인이 되려나. 어느새 배달 맛집 리스트를 뒤적이는 나.이 아침에 이정아 수필가 맘모스 스키장 맘모스 빌리지 아들 내외

2023-11-29

[종교와 트렌드] 하마스 전쟁과 아킬레우스의 분노

일리아드(Iliad)는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하는 그리스 최고 영웅 서사시이다. 10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의 51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노래한 것으로 그리스의 장군인 아킬레우스가 중심이 되어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비극을 다뤘다. 이 책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책의 시작도 분노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연합군을 이끌던 탐욕스런 미케네 왕 아가멤논이 자신의 여자 노예를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는 분노했다. 트로이 전쟁에서 호메로스가 냉정하고 명확하게 탐구한 것은 인간의 분노였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분노'라는 말을 작품의 첫 단어로 선택한 것이다. 조그만 분노의 불씨가 연속 반응으로 다른 분노를 낳고 점점 겁잡을 수 없는 복수혈전의 고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분노한 영웅이 전장에서 발을 빼자 승세가 트로이아 쪽으로 기울고 그리스 군대는 위기에 내몰린다. 무수한 동료 전사들이 죽어갔다. 그러던 중 자신을 대신해 전장에 뛰어든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죽고만다. 슬픔과 분노에 찬 아킬레우스의 복수혈전이 시작된다. 마침내 적장 헥토르를 죽이고 만다. 그의 화는 헥토르를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헥토르의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친구의 무덤 주위를 돌고 돌았다. 아들의 시신을 성벽 위에서 지켜보는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의 마음은 찢어졌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한밤중 적진을 뚫고 아킬레우스의 군막을 찾는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두 손에 입맞추며 시신 양도를 호소한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시오"라고 하자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마음이 풀어진다. 그리고 장사하도록 시신을 놓아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이와 같지 않나. 오랜 분쟁의 역사를 통해서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책임이든 희미해지고 분노가 악순환 된다. 이번에 하마스가 무차별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다. 그 잔인성에 혀를 두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어떠한가. 하마스 공격의 몇 배, 수십 배로 갚아준다. 악이 악을, 분노가 분노를 낳는 순간이다.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도 나중에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세계는 전쟁 중이다. 그동안 평화가 지속하였던 세상은 끝난 것 같다. 세상은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더욱 극단적이다. 사람의 생각하는 지성이 없어지는 시대다. SNS나 유튜브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극단적인 이념들로 사람들이 충돌한다. 사랑과 평화가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기본 디폴트값이 악이라고 본다. 그나마 종교로 선해질까 말까하는 노력도 이제는 극단적인 종교주의로 세상이 병들어 가고 있다. 누가 분노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누군가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종교충돌, 문명의 충돌, 이념의 충돌은 더 심해질 것이다. AI 가 우리를 더욱 길들일 것이다. 이 와중에 깨어서 주절이 주문 외우는 기도만이 아니라 세상을 읽고 희망과 길을 제시하는 종교가 필요할 때이다.   jay@jnbfoodconsulting.com 이종찬 / J&B 푸드 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아킬레우스 하마스 아들 아킬레우스 맹장 아킬레우스 하마스 전쟁

2023-11-27

아들 잃은 한인 엄마 "기부로 아들 기억"

‘묻지마 범죄’로 아들을 잃은 포틀랜드의 한인 김치 사업가 집안이 지역 농부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한다고 밝혀 화제다. 〈본지 2022년 11월 21일자 A-30면 참조〉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파머스 마켓에서 10년 이상 김치를 판매하며 성장해온 ‘최가네 김치(Choi’s Kimchi)’는 이 마켓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농부들의 성장을 위해 최대 1만5000달러의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지역 매체 코인6 뉴스가 18일 보도했다.       최가네 김치의 피터 최 매니저는 “가족을 잃는 비극으로 여전히 힘들었지만, 가족과 친구들, 지역 공동체의 응원을 받아 힘을 내고 다시 김치 사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며 “많은 분의 응원에 대한 보답과 나의 형제 매튜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포틀랜드 지역 파머스 마켓의 성장을 위한 ‘매튜 최 파머스 마켓 벤더 그랜트’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10월 25일 최가네 김치의 공동창업자인 매튜최(당시 33세)씨는 자신의 아파트에 침입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해 한인 사회는 물론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최 매니저는 “이번 그랜트를 통해 매튜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며 “매튜도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최가네 김치는 오는 21일(토)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파머스 마켓에서 비빔밥과 김치, 밥그릇을 판매하며 기금을 모을 예정이다.   최가네 김치 창업자인 최종숙(68)씨는 지난 2011년 오리건대를 졸업한 아들 매튜와 함께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최가네 김치는 포틀랜드 전역의 식당과 식료품점 진열대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예진 기자 kim.yejin3@koreadaily.com아들 기부로 아들 기억 아들 매튜 한인 김치

2023-10-19

"5세 자폐증 아들, 학교서 성폭행-진실 밝혀줘"

    자폐증을 앓고 있는 5세 아들이 학교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어머니가 관계당국의 보다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어머니는 약 2주 전 하교한 아들에게서 뭔가 잘못된 점을 느꼈다면서 당시 아들의 바지는 안과 밖이 뒤집어져 있었고 신발도 왼쪽과 오른쪽이 바뀌어져 신고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은 사우스 LA 소재 버드롱 애비뉴 초등학교 캠퍼스 안에서 벌어졌다고 이 어머니는 주장하고 있다.   LA 경찰국은 현재 이 사건을 접수해 수사를 펼치고 있으며 해당 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음성 메시지로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피해 학생 어머니는 더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아들이 나에게 다른 남자 아이가 바지를 내린 뒤 주요 부위를 만졌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또 가해 소년이 입으로 성적인 행동을 했다고도 덧붙였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2주 전 학교로부터 아들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며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들을 보자마자 바지와 신발이 정상적으로 착용되지 않은 것을 알아챘고 아들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학교로 다시 달려갔고 아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 측은 휴식 시간에 감독을 맡았던 담당자와 다른 교사를 불렀으나 이들은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어머니는 이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아들은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으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의사의 접근조차 꺼리는 행동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LA통합교육구 측은 해당 학교 교장이 학부모에게 보낸 메시지를 부분적으로 공개했다. 그 내용은 "관련 학생에게 일어난 문제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려줄 수는 없지만, 모든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버드롱의 모든 교직원은 학생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학부모들이 확실히 알았으면 한다"이다.  김병일 기자성폭행 자폐증 자폐증 아들 피해 아들 당시 아들

2023-09-29

[노트북을 열며] 늙는다는 특권

송편도 먹기 전인데 찬물 끼얹나 싶겠지만, 곧 연말이다.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 시간만은 평등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 글을 쓰는 기자와 읽는 당신도 곧 한 살 더 먹는다. MZ도 X세대도 늙음에선 벗어날 수 없다. 오늘로 딱 95일 남은 2023년. 추석 연휴를 보내며 잘 늙는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 어떠할까. 저출산 고령화라는 거대 쓰나미 속에서 한국의 명절 풍경도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진화 중이다. 나의 늙음을 책임질 이는 나뿐인 사회는, 공과금 명세서처럼 끈질기게 우리를 찾아올 터다.   “잘 늙는다”는 건 자주 “안 늙는다”는 것과 동의어로 취급된다. “아들이 대학생인데, 엄마 아니라 여자친구로 보인대요”라는 식의 팝업 광고처럼. 한국 밖에서도 “60세는 새로운 40세”라는 말이 나온다니, 늙음은 전 지구적 혐오 대상이자 21세기 모두의 투쟁 대상인 걸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늙어감은 특권이었다. 2020년 영국을 울렸던 영국인 엘리엇 대런이 그랬다. 암으로 죽어가던 그는 그해 9월 9일 일간지 가디언 칼럼에서 늙어감을 찬미했다. 늙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당신이 부럽고, 서로와 지구를 위해주며 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칼럼 게재일에 숨을 거뒀다.   대런은 그토록 40대가 되고 싶어했지만 정작 40~50대라는 인생의 중간지점, 중년을 맞는 건 꽤 진지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젠 전설이 된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사만다 역으로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마흔이었다는 배우 킴 캐트럴. 올해 66세인 그는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한 포럼에 출연해 “마흔이었던 때는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살아보니,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통해 성장하며 나이 먹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잘 늙는다는 것은 자신을 더 잘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나가며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대학생 아들의 여자친구처럼 보이는 외모를 돈으로 가꿨다고 해도, 기품과 체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라고 쓰면서도 그 광고를 눌러봤음을 고백한다. 부끄럽다. 늙음과 싸우느라 아등바등할 시간에 중부승모근과 내전근을 단련하고 고관절을 돌보며, 공공장소에서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진 않은지,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를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겠다. 나부터 명절을 계기로 가꿔보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 건, 늙어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니.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특권 대학생 아들 최고경영자도 국무위원장도 칼럼 게재일

2023-09-28

[오늘의 생활영어] to be on hold ; 기다리다

(Roger is on the phone at work when Jim walks into his office … )   (로저가 직장에서 통화중인데 짐이 사무실에 들어온다…)   Jim: Who are you talking to?   짐: 누구와 통화하는 거야?   Roger: The manager of my apartment. Actually I’m on hold.   로저: 우리 아파트 매니저. 실은 기다리는 중이야.     Jim: Is there a problem with your apartment?   짐: 아파트에 문제가 있어?   Roger: No. My niece and nephew are visiting me this summer and I wanted to know when the swimming pool was going to be ready to use.   로저: 아니. 우리 조카들이 이번 여름에 나를 보러 오는데 수영장이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거야.     Jim: How long is their stay?   짐: 얼마나 있다가 가는데?   Roger: They’ll be here for two weeks.   로저: 2주 있을 거야.   Jim: Is this the nephew whose name is also Roger?   짐: 그 조카가 이름이 로저라는 걔야?   Roger: Yes. My sister named him after me.   로저: 응. 우리 누나가 내 이름을 따서 지었어.   기억할만한 표현   * how long is (one's) stay?: 얼마나 오래동안 방문하실 겁니까?   Jim: "My sister is coming to see me."     (여동생이 날 보러 온대.)   Roger: "Oh really? How long is her stay?"     ( 그래? 얼마나 오래동안 방문하는데?)   *name (one) after (someone): ~의 이름을 따라 짓다     "My friend names his son after his father."     (제 친구는 아버지 이름을 따라 아들 이름을 지었습니다.)   * right you are: (당신 말씀이) 맞고 말고요     Jim: "Are you going to the beach on Saturday?"     (토요일에 바닷가에 가는 거야?)   Roger: "Right you are. I am." ( 바로 맞췄어. 가는 거 맞아.)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hold 아버지 이름 아들 이름 on hold

2023-09-26

아버지가 아들 망치로 폭행, '살인 미수' 평결

    무방비로 자고 있는 아들을 대형 망치로 무차별 폭행한 아버지가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가 확정됐다.   벤투라 카운티 검찰은 22일, 올해 42세의 앤소니 나디니가 흉기를 사용한 폭행, 영구 상해 의도 및 살해 기도 혐의와 관련해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를 평결받았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나디니는 최근 올해 24세인 아들과 재결합하고 다른 가족과 함께 시미 밸리 인근 벤투라 카운티의 한 비자치구역에서 생활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19일 저녁 두 사람은 물리적인 싸움을 하게 됐고 가족들이 말리면서 싸움이 더 악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을 참지 못한 나디니는 마침 집에 아들과 단 둘이 남게 되자 집 한편에 있던 슬레지해머(손잡이가 긴 대형 망치)를 들고 잠자던 아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아들은 이 사건으로 수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며 생사를 오락가락했으나 다행히 회생했다.   벤투라 카운티 검찰 측은 "이번 기소 확정이 피해자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절대로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배심원단의 평결이 젊은 피해자의 삶에 일말의 위안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디니는 오는 11월 1일 선고가 예정돼 있다. 그는 현재 보석금 없이 구금돼 있으며 가석방 옵션이 있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일 기자아버지 아들 아들 망치 미수 평결 폭행 영구

2023-09-22

[수필] 내 고향 헌팅턴비치

나의 고향은 강원도다. 그러나 난 그곳에서 여섯 살에 떠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졸업했다. 올해 강릉에 갔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100세를 넘기신 고모 한 분뿐이었다. 고모는 홀로 외롭게 살고 계셨다.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운 친구, 친지, 누구 하나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리던 진정한 고향은 어디 있을까? 미국서 온종일 한국 TV를 보며 그리던 고향산천은 어디였을까?  TV 속의 고향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친구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을 인사동 한복판에서 만났다. 점심 먹고, 차 마시고, 헤어졌다. 대학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고향은 꼭 시골이어야만 하나? 강릉은 더는 시골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 뛰놀던 친구도 없고 이름도 기억 못 한다.   1980년 9월에 네 살, 한 살짜리 딸 둘과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몬테벨로에서 헌팅턴비치로 이사를 했다. 처음 살던 그 집 근처에는 오른쪽에 중국인 부부, 왼쪽엔 일본인 부부가 살았었다. 그들은 50세가 조금 넘어 보였다. 그 당시 29세였던 나를 딸처럼 챙겨 주었다. 그러나 직장을 오렌지카운티로 옮기는 바람에 정답게 살던 인연을 2년 만에 접고 이사를 했다.   헌팅턴비치로 이사 온 다음 날 집 앞에 세워둔 차 윈도에 누군가 쪽지를 남겼다. 자동차를 옮기라는 내용이었다. 옆집 아저씨가 쓴 것 같았다. 이사 오자마자 옛 동네가 그리웠다.     헌팅턴비치는 주민의 70%가 백인이고, 백인 우월주의자도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엔 그들의 갑질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그러나 헌팅턴비치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다. 지금 이곳에 사는 한인은 통계상 1500명 정도라고 한다. 베트남계도 많아 아시안 주민 수가 늘면서 차별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내가 사는 게이트 안에도 한인이 다섯 집이나 있다. 서로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만나면 반갑게 서로 손을 흔들어 준다.   헌팅턴비치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 한국에 계신 시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남편이 임종을 보러 간 사이에 임신 사실을 알고 남편 몰래 유산을 고민했었다. 그때 아기를 돌봐줄 만한 사람도 없고 아이를 3명이나 키울 형편도 못 됐다. 그러나 친정 언니가 ‘너는 아들이 없는데 누가 아니 뱃속의 아이가 아들일 수도 있잖아?“ 하며 유산을 말렸다. 몇 개월 후에 태어난 아기는 정말 아들이었다. 그해 우리 동네에 아들이 여섯 명이 태어났다. 유치원에  갔는데 모두 옆집에서 같이 놀던 남자아이들이었다.     나도  아들 친구 엄마랑 친하게 지냈다. 그들 엄마 중 누가 아기를  낳으면 모여서 베비샤워도 해주고 여행도 같이 다녔다. 아이들 야구 원정 경기도 어울려 다니고 보이스카우트 캠핑도 따라다니며 금발의 엄마들과 몰려다녔다. 제레미는 우리 아들과 특별히 친한 친구인데 그의 엄마 데비는 나 대신 학교에서 자동차로 우리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 점심도 차려주었다. 또 제레미와 그의 동생들과 같이 놀게 하며 돌봐주다 내가 퇴근하면 아들은 걸어서 집에 오곤 했다. 지금도 페이스북 친구로 서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데비는 아직 옛날 동네에 살고 있다. 마치 고향을 지키는 충직한 소나무마냥.   옆집 베티와 제리는 우리보다 나이가 20살은 많았지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었다. 우리 집 보험이 잘못되어서 걱정하니 전화로 해결도 해주고, 어느 해 여름휴가 때 마이애미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 놓았는데 허리케인 앤드류로 인해 비행기가 못 뜬다고 연락이 왔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항은 항공료 환불이 안 된다고 하여 실망하고 있을 때 제리가 설명을 잘해 환불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제리와 베티는 나이가 70세가 넘으니 고향인 플로리다로 이사를 했다. 이사 가는 날 섭섭해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세 명의 아이들을 시간 맞춰 등교시키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뒷집에 살던 피클이란 예명의 몰몬교 신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녀가 6명이나 됐다. 아이들 중 세 명은 우리 아이들과 같은 반이어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등교를 나눠서 시켰다. 피클은 다른 금발의 엄마들이랑 차원이 다른 여자였다. 첫째 잘난 척을 안 했다. 친절하고 자유스러우면서도 겸손했다. 우린 좋은 친구가 되어서 집에도 자주 놀러 갔다. 그녀는 지금도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니던 그 동네에 가면 데비도 있고 피클도 있다.     헌팅턴비치는 이렇게 많은 추억을 나와 내 가족에게 남겼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모래사장에 가서 집도 짓고 성도 쌓았다. 파도가 밀려오면 고향 생각이 나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모든 것 다 잊고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 그러나 너무 바빠서 딴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인간의 계절이 봄에서 여름, 또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선 지금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 때가 다시 찾아온 것 같다. 가까이 지내던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간다.     그러나 나는 데비와 피클 같은 친구가 있고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가 있는 이곳에서 살련다. 사람이 모두 떠나버린 한국의 강릉이 아니라 많은 추억과 사람이 있는 이곳이 진정한 나의 고향이다. 나는 늘 바다 건너를 바라보던 내 마음을 헌팅턴비치에 앉힌다. 김규련 / 수필가수필 헌팅턴비치 고향 아들 친구 초등학교 친구 대학 친구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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