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해전까지…거장 리들리 스콧이 돌아왔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군
<4> 글래디에이터 2
막시무스 아들 루시우스도
노예 전락 뒤 검투사 영웅
역사·허구 섞은 비장미 재현
주연 폴 메스칼·덴젤 워싱턴
웅장한 배경·장엄 서사 위에
꽉 짜인 카리스마 액션 펼쳐
전편을 감상한 관객들은 막시무스와 루실라의 어린 아들 루시우스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속편 ‘글래디에이터 2(Gladiator 2)’는 막시무스의 아들 루시우스의 이야기다.
전편에서의 영웅 막시무스(러셀 크로)가 콜로세움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릴 적 어머니 루실라(코니 닐슨이 같은 역을 다시 연기한다)에 의해 누미디아(알제리)로 보내진 루시우스(폴 메스칼)는 강철 같은 몸을 지닌 건장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다. 아내 아리사트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말이 적고 침울하다. 그는 로마로부터 이 해안 도시를 방어해야 한다.
한편 로마는 쌍둥이 형제 게타와 카라칼라 황제가 다스리고 있다. 그들은 1편에서 보았던 최악의 폭군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를 둘로 나누어 놓은 듯 사악하고 무자비하며 가학적이다. 코모두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숭이를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정도. 너무 많은 권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들은 정복과 향락에 만족하지 않고 철없는 어린 애들처럼 검투사 노예들의 목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로마 제국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황제로 책봉된 마크리누스는 권력욕이 강하고 교활한 정치인의 표본이다. 그 자신 노예 출신이었지만 노예와 무기 거래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몰락이 임박해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로마의 황제 자리를 노린다.
로마에 입성한 루시우스는 오로지 생존하기 위하여 사나운 개코원숭이와 코뿔소 그리고 콜로세움이 물에 차면 들어오는 식인 상어 등의 야수들과 싸움을 거듭하며 살아남는다. 루시우스의 점점 더 거세지는 분노는 상대방의 솟아오르는 피로 분출된다. 군중들은 루시우스의 용맹에 열광한다.
루시우스는 점차, 지금은 아카시우스 장군의 아내가 된 루실라가 자신의 어머니이고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직한 신하, 전장의 뛰어난 전략가, 콜로세움의 전설적 검투사 막시무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카시우스와의 피 말리는 격투 끝에 콜로세움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의 아버지 막시무스가 그랬던 것처럼.
‘글래디에이터 2’는 성공적인 속편이라 할 수 없다. 24년 전의 원작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속편이라기보다는 전편의 리메이크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너무 느린 진행에 대본도 전작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 왔다. 특별히 전쟁 장면의 CGI(Computer Graphic Imagery)는 강렬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진수라 할 수 없다.
스콧은 실재했던 역사의 한 장에 상상력으로 접근한다. 역사 왜곡이라는 표현은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영화를 허구의 예술로 보는 스콧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건 역사의 재해석이 아니라 허구적 판타지다. 2000년작 ‘글래디에이터’ 는 코모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실존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데 반해 정작 주인공 막시무스는 허구적 캐릭터였다.
전편에 비해 영화가 지닌 결함에도 불구하고 ‘글래디에이터 2’는 2025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니될 것이 확실하다. 최고의 SF 영화 ‘에이리언’(1979), SF 판타지 ‘블레이드 러너’(1993), 페미니즘 로드 무비 ‘델마와 루이스’(1993), 전쟁영화 ‘블랙 호크 다운’(2002) 등의 작품들에서 보았듯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간 사회의 폭력적 본능이 유발하는 ‘충격’이다.
전편에서 우리는 충격적 ‘지옥’을 보았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공화주의자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코모두스에게 살해당하면서 로마는 질투의 화신 코모두스가 지배하는 지옥으로 바뀌어 갔다. 영웅 막시무스도 코모두스가 다스리는 그 지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전편의 그 충격적 주인공은 코모두스였다.
속편에 실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충격의 부재다. 특히 코모두스의 ‘카피캣’인 쌍둥이 황제의 가벼움이 영화의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그들의 비열함에는 내면 깊은 곳에 출렁이는 코모두스의 질투와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글래디에이터’는 호아퀸 피닉스라는 배우의 광기를 세상에 알린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코모두스 역으로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떼어 내고 주인공 막시무스 역의 러셀 크로에 견줄만한 존재감으로 대중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러셀 크로의 카리스마와 호아퀸 피닉스의 광기는 가고 없지만, ‘글래디에이터 2’는 여전히 거장 리들리 스콧의 영화이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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