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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우리는 삶을 얼마나 너절하고 변변찮고 형편없이 영위하고 있는가! 우리 중 대체 누가 이 대가가 하듯 신과 숙명 앞에 나설 수 있을까. 저렇게 탄원과 감사를 외치며, 뼈저린 존재를 내세워 저렇게 위대하게 항거하면서. 아,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하리라. 다른 모습이어야 하리라. 좀 더 하늘 아래 나무 아래 거해야 할 것이며, 좀 더 묵묵히 혼자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음악 애호가였고, 문학에도 음악이 주요 키워드였던 헤르만 헤세의 음악 글 모음집이다. 인용문은 에세이 ‘고음악’의 일부. 외딴 시골집에 사는 그가 비 오는 저녁 도시의 고음악회를 다녀온 얘기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미지와 풍경, 스토리를 떠올리는 헤세는 그 음악적 인상을 풍부한 언어로 눈에 선하게 옮겨놓는다.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느긋하게 마지막 비탈을 올라 모두가 자고 있는 집에 들어서니, 느릅나무가 창문 너머 말을 걸어온다. 이제 나는 기쁘게 쉬러 간다. 다시 한동안 삶을 살아가며 그 운명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으리라.”   헤세에게 음악은 ‘순수한 현재’이자 ‘미적으로 지각 가능하게 된 시간’ ‘순간과 영원의 동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문장으로 읽는 책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음악적 인상 풍경 스토리

2024-10-09

[리얼 시니어 스토리] “세계 최고의 시설서 훌륭한 공연 선사해요”

한인 사회보다 홈리스들에게 훨씬 유명한 사람이 울타리 선교회 대표인 나주옥 목사다. 나 목사는 ‘에스더 나’라는 영어 이름보다 홈리스 세계에선 ‘홈리스들의 마마’, ‘도넛 레이디’로 더 알려져 있다. 알게 모르게 LA의 홈리스를 먹여 살리고 있는 나주옥 목사를 만났다. 나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홈리스’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주옥(사진) 목사는 1944년생이고 올해로 팔순이다. 나주옥 목사가 이끌고 있는 울타리선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홈리스 구호사역을 들어보면, 그의 꾸준함과 사고의 전환에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가 미국에 유학온 것이 40세가 훨씬 넘었기에 막상 목사 안수를 받은 나이는 55세나 된다. 한국으로 치면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할 나이라서 그의 표현대로 늦깎이다. 그래서 목사 안수식은 1999년 2월에 열었지만, 그는 교회를 개척하거나 기존 교회에서 들어가 목회를 하지도 않았다.     1999년 7월12일 선교단체로 울타리선교회를 열었다. 다만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선교회가 아니고 불쌍하고 가난한 홈리스를 위해서 시작했다. 울타리 선교회를 시작하고 초점을 두었던 사역은 현실적으로 홈리스를 돕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단체라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배고픈 홈리스의 고통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바로 홈리스들이다. 단어 그대로 홈리스는 집이 없으니 부엌도 없고 냉장고도 없다. 바로 먹을 것만 필요하고 냉장-냉동된 음식 재료는 쓸 데가 없다. 그래서 집이 있는 사람과 달리 그날 먹을 식품을 구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얘기가 있듯이 홈리스는 '하루 얻어 하루 먹는다'. 미국에겐 잉여식품이 많다. 멀쩡한 음식인데도 생산업자가 유통기한에 근접하면 과감하게 폐기한다. 나주옥 목사는 이 점에 착안했다. 잉여 식품을 대신 받아서 배고픈 홈리스들에게 나눠 주고자 했다.     첫 사역은 라면 사역이었다. 나 목사는 농심지사에 찾아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홈리스들에게 사발면(컵라면)을 나눠주고자 부탁했다. 하지만 라면은 워낙 수요가 많은 상품이고 며칠 둔다고 상하는 식품이 아니어서 돈을 주고 샀다. 일부 기부도 해줬지만 농심이 현지 라면 공장의 문을 열 때까지는 현금을 주고 도매가로 구입해서 다운타운 한 구석에서 물을 데워 라면을 나눠줬다. 물론 라면 구입 비용은 후원자들이 도와서 가능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13년간을 하루에 150개씩 사발면을 나눴다.     두번째 사역은 진짜 잉여식품이 필요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넛인 '크리스피 도넛'이 잉여식품이 됐다. 이 도넛은 생산된 날까지만 판매하고 다음날에 모든 도넛을 폐기한다. 그래서 나 목사는 매니저를 설득해서 다음날 새벽에 전날 팔고 남은 도넛을 받아서 홈리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2003년 1월부터 시작된 이 사역은 지금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매일 제공하던 도넛 회사가 다른 구호단체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울타리선교회에게는 주3회로 줄었을 뿐이다. 한번에 150더즌을 받는다.   나 목사는 "처음에는 잉여식품을 받으러 가거나 요청할 때 조금 주눅이 들었다. 돈을 내지 않고 받아 오는 것이 민망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당당해졌다"고 밝혔다.   "만약에 그들이 주는 많은 도넛을 내가 먹거나 되판다면 주눅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홈리스의 식량 사냥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먹거리인데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먹어봐야 하루에 한 더즌을 먹을 수도 없고 뒀다가 먹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도넛을 받아다가 배달하는 사역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진심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홈리스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그에게 마더스데이 카드를 전달해 주는 홈리스도 생겨났다. 또한 교회는 개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목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2007년 2월부터 한인타운 애덤스 길의 오래된 교회를 빌려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울타리선교교회'를 시작했다.     나 목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목회는 못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도넛 분배를 계속하면서 홈리스들에게도 그들만의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들이 우리 교회라고 부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예배를 보는 교회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잉여식품을 나눠주기 위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음식을 실어 나르는 와중에도 나 목사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한 석사 학위를 받은지 20년만인 201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홈리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가 됐다. 이제까지 홈리스를 구호하겠다는 사람이나 단체는 많았지만 그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나주옥 목사는 흔하지 않은 '홈리스' 박사가 된 것이다.   나 주옥 목사가 한인사회에서 유명해진 것은 크리스피 도넛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기금 모금 음악회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울타리선교회가 오는 21일  오후7시 다운타운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제 25회 연례 기금 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 울타리선교회에서 월트디즈니에서 갖는 7번째 음악회로 올해도 지휘자 김용제 씨가 음악 감독을 맡아 한인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사한다.   나주옥 목사는 "홈리스 구호를 위해서 많은 후원과 기부를 받았는데 울타리선교회에서 마땅히 보답할 길이 없었다"면서 "이왕 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면 수억 달러를 들여 건축해서 객석 어디에서나 똑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훌륭한 장소에서 공연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이번 음악회 개최에 대한 취지를 설명했다.   나 목사는 "그동안 디즈니홀에서 음악회를 개최할 때마다 한인타운에서 개최하면 대관료가 절약돼서 더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가장 좋은 음악 시설에서 수준 있는 음악을 선사하고 싶었다. 또한 한인타운에서 개최할 때보다 경비가 더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더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후원 문의: (213)819-3300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선사 공연 목사 안수식 홈리스 세계 홈리스 구호사역

2024-06-30

[리얼 시니어 스토리] 중소기업 경영합리화 위해 한국 첫 MBA 도입

한인 올드타이머들이 한인타운 건설에 큰 공로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중에 이민와서 이들이 만들어 놓은 타운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터전을 좀 더 서쪽에 했으면 좋았다거나 더 북쪽으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리가 최적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여튼 역사의 한순간에 있었던 한인 올드타이머 중 한 사람인 이재권 미주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장을 만났다.   이재권 회장은 서울대 행정학과 56학번이다. 4.19가 지난 1961년2월에 졸업했다. 운이 좋아서 1년 반 짜리 군대를 다녀왔다. 법관시험도 봤지만 하늘에 뜻에 따라 떨어졌고 이듬해 있었던 공무원 시험에서 공무원이 됐다.   "성적이 좋으면 희망 부서로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상공부를 희망했습니다."   상공부에는 2명이 배정됐고 청년 이재권은 중소기업과로 발령이 났다. 당시 중소기업 육성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품은 중소기업과는 협동조합법을 제정했다. 그 다음 중소기업 경영합리화 작업이 필요했다.   "그 옛날에는 전부 주먹구구로 했잖아요. 첫 데이터도 없고 주먹구구로 했는데 경영 합리화 시켜야 되겠다는 것이 상공부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미국식 MBA(경영학석사)과정에 착안했다. 당시에는 상학과는 있었지만 경영학과, 경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다. 학부보다는 대학원에서 운영해야 하는데 이 회장이 졸업한 서울대 보다는 당시에 기업경영연구소를 운영하던 고려대가 알맞은 것같았다. 고려대 측은 처음에는 상공부의 권유에도 고사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정부 지원금을 줄이겠다고 으름짱을 놨다. 지원금을 몰아주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설득은 통했고 연구 과정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첫 MBA과정의 시작이다.     "대학 측은 등록학생이 아무도 없어서 망할까봐 두려워했던 겁니다."   이재권은 첫 학생으로 자원했다. 이 회장이 고려대 교우인 이유다. 당시 MBA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니 학생 모집이 쉬울 리가 없다고 예상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학교 측에 20명을 보장하고 시작했다. 막상 프로그램을 알리니 학생이 160명이 등록했다. 비록 연구 과정이었지만 5.16이후라서 군대에서 정부로 넘어온 군출신들이 대거 등록했다. 이듬해부터는 서울대, 연세대도 과정이 개설됐다. 어차피 때가 되면 MBA과정이 개설되겠지만 청년 공무원 이재권이 1호 학생이 되면서까지 강권했던 덕분에 그 시기가 당겨졌고 이후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3곳의 '인기 있는 과'가 있었다고 한다. 재무부에서 은행을 관리하던 과, 내무부에서 행정을 관리하던 과, 나머지 하나는 상공부에서 수입을 관장하는 수입과다. 이 회장은 법무관실을 거쳐 수입과에 들어가 과장까지 했다. 외화가 부족하던 시절이니 모든 수입은 상공부 수입과의 승인을 거쳐야 가능했다. 외국산 제품을 수입만 제대로 해도 사업이 되던 시절이므로 수입 승인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었다. 당연히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언제나 공무원들은 부패의 꼬리를 달고 사는데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은 그 것이 또 어려움이다.   한번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중장비 수입과 관련해 몇 달이 걸리는 승인을 하루만에 해결했다. 국가적인 사업이므로 담당자인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앞장서서 처리했던 것, 그런데 수 개월 후 중앙정보부 남산으로 불려갔다. 새벽부터 오후 8시까지 긴 조사 끝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당시 차관, 장관했던 박충훈씨는 이런 청년 공무원 이재권을 눈여겨 봤음은 나중에 알게 됐다.   결국 이민 온 처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많은 사람이 계속 다녔으면 최소한 국장이나 차관보 이상을 했을 터인데 왜 그만뒀냐는 질문을 많이 해온다고 한다.   1970년 수출진흥과에서 오사카 엑스포를 참가해 수출 진흥을 위해서 총력전을 펼 때였다. 여러 유관부처를 팀장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실무 책임자인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행사를 마칠 때까지 묶어두고 엑스포가 끝나서야 한달짜리 휴가를 내줬다. 이민에 앞서 큰 계기는 3개월 짜리 호주 연수 덕이었다. 세상을 크게 보는 큰 시야를 갖게 됐다. 특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아웅다웅 할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의무 근무 연한인 3년을 끝으로 바로 사표를 냈다.   1973년에 미국으로 왔다. 사표 수리가 안됐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다. 마침 무역회사 주재원이 돼 해외 수출을 위해서 일했다. 무역회사가 문을 닫고 부동산 브로커로 변신했다. 거의 50년이 됐기에 같은 시절 부동산 브로커를 했던 사람들이 모두 타계하여 현재 액티브한 한인 최고령 부동산 라이선스 소지자가 됐다.   LA한인사회가 LA한인회관을 구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때 마침 무역협회장이 예전에 상공부 장관으로 모셨던 박충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LA를 방문했다. LA에서 만난 예전의 상사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한인회관 역할론과 중요성에 대해서 듣고 박 대통령의 결심에 힘을 보탰다. 결국 박 대통령이 5만달러, 무역협회가 10만달러를 냈고 그때까지 모았던 일부 자금과 융자로 30만 달러짜리 한인회관을 세울 수 있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의 청렴결백과 신뢰가 LA한인 회관을 세우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2004년 드디어 은퇴를 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캠핑을 좋아했는데 이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마침 매물로 나온 여행용 RV가 캠핑할 수 있는 RV파크를 샀다.  LA한인타운에서 북쪽으로 1시간 40분거리에 있는 피라미드 레이크 인근이다. 175에이커나 되는 곳에 121곳의 사이트를 갖고 있다. 클럽하우스와 수영장, 배구장, 농구장, 세탁 시설 등이 완비돼 있다. 일종의 리조트 성격으로 캐빈도 있다. 팬데믹 전에는 윤동주 문학의 밤 행사를 17년간 개최했다.   이 회장은 또한 한국과 협력해 미국에서 탈북자 난민신청법 캠페인을 펼쳐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북한 탈북자를 말만이 아닌 실제로 도운 인물이다.   2017년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을 맞아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를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5천년의 가난을 벗게 해준 대통령입니다. 기념 우표를 비롯해 기념 사업이 많았는데 마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취소했죠. 그래서 민간 차원에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뜻이 맞는 몇 사람과 시작했지만 해마다 5.16과 11.14(박대통령 생일)를 기본으로 2번의 행사를 개최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 전역의 한인 인사들이 참가해 '박정희 역사 탐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박 대통령과 관련된 생가, 묘지, 기념관 등 18곳을 방문하는 행사를 6일에 걸쳐서 갖기도 했다. 그는 온갖 이권을 놓고 다툼했던 정치권을 바로 앞에서 봤기 때문에 더욱 청렴하고 사심이  없었던 박 대통령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북한 경영합리화 청년 공무원 청년 이재권 이재권 회장

2024-06-02

처음부터 나만의 스토리 생각하고 시작해야

특별활동(Extracurricula)은 학생 개인적 성장과 혜택을 제공함과 동시에 대학 합격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학 입시기준은 더 이상 GPA나 시험 점수와 같은 학업적 성취도에만 비중을 두지 않는다.   주변 커뮤니티와의 교류, 성장 발자취와 이력 등을 통해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에 충분히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인재인지를 평가한다. 다시 말해 대학은 지원자가 대학 캠퍼스 생활과 커리큘럼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짜인 커리큘럼 밖에서 독립적인 학습동기, 포부, 자질이 있는지, 그리고 그 학습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확인한다.   ▶특별활동이란   정규 교육과정 외에 추가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특별활동이라고 한다. 특별활동은 나의 헌신, 사회적 기술 또는 주도성을 요구하고 나의 우선순위 분배와 시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강조될 때 입시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대표적으로 학교 클럽, 디베이트, 스포츠, 오케스트라 활동 등을 떠올리지만, 특별활동은 매우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개인적인 취미활동 또는 아르바이트도 전체적인 입시 맥락에서 나의 배경에 따라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름방학 대학 수업 이수, 인턴십, 각종 경시대회 준비 및 해외 유학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대학 입학사정관(특히 명문대)은 학교 밖에서 지원자가 얼마나 주도적, 그리고 계획적으로 관심분야를 개발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특별활동들의 연속성과 깊이를 눈여겨본다.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잠재능력까지도 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지원하고자 하는 전공과 연결이 되며 깊이 있는 특별활동 이력을 쌓아 나만의 고유한 ‘hook’이 있는 스토리가 어떻게 만들어질지를 염두에 두고 특별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지원서에 서술하게 될 특별활동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대입 계획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자기 중심적 활동이고 하나는 주변 커뮤니티가 중심적 활동이다.   목표 대학 입학사정 기준과 희망 전공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특별활동을 균형 있게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두자.   ▶자기중심·커뮤니티 중심 활동   레주메와 입시 스토리를 지원 대학에 맞도록 구상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균형 잡힌 업적들과 자신만의 해석을 녹인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자기중심적 특별활동은 한 분야 안에서 심층 있고 동급생들에 비해 더 난이도가 높은 기술 또는 교과과정을 이수 및 취득해 나의 학문적 발전에 중심을 두는 활동들을 가리킨다.   반면, 커뮤니티 중심적 특별활동은 창의적으로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활용해 나의 성장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여러 커뮤니티의 발전과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활동을 가리킨다.   앞서 서술했듯이, 두 가지 유형의 활동들을 나의 배경과 목표에 맞도록 균형 있게 이루어내는 것이 핵심이며 한쪽으로만 치우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기 계획이 필요하다.   특별활동의 선택은 중요하다. 이상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가지 않은 활동을 발굴해 수행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볼 것을 조언한다. 명문 대학들은 지원자가 실제 생활에 적용 가능한 기술과 이론들을 배우고 개인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의도한 전공 분야를 뛰어넘길 기대한다. 내 주변에 변화를 만들었는지,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발전을 했는지, 자신의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났는지, 또는 지역사회 봉사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을 보여주었는지 등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화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화학 클럽에 가입 또는 창설을 하고, 로컬 대학에서 화학 과목을 추가로 수강하고, 연구소에서 봉사 또는 인턴 활동을 한다면 내 개인적인 학업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재능을 미래에 어떻게 활용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모습도 비추어줄 수 있으므로 명문 대학에서 원하는 인재상으로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명문대에서 법학 예비 과정(Pre-Law Track)을 밟고 싶다면 법률 리서치 프로젝트와 글쓰기, 법률 사무소나 법률 클리닉에서 인턴십을 통해 특화된 특별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필요한 준비성과 동기를 부여하는 실무 기술과 경험을 쌓는 활동으로 나만의 특별활동 레주메를 구상하는 방법이 또 다른 예이다.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특별활동은 다각적 입시 과정에서 강력한 원서와 명문대가 요구하는 인상적인 프로필을 개발하는 데 필수이다. 실제로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일부 명문 대학에서는 특별활동과 리더십 경험이 GPA 및 SAT 점수와 같은 다른 주요 입학 기준과 동일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더불어 대부분 우수 학교의 입학사정관은 내가 처한 환경에서 필수적인 활동(아르바이트 또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사 도움)을 성실히 이행하는 학생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향도 있음을 참고하자.   명문대를 포함한 많은 대학들은 지원자가 한 가지 열정에만 한정되거나 학업적 심화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예를 들어, 과학에 깊은 관심이 있는 동시에 영화 제작 및 감상을 좋아한다면 각본, 연출, 국제 영화 경연대회, 환경 과학 기금 마련을 위한 나만의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해 볼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활동 또한 큰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대학은 평가한다.     대학 입학사정관은 지원자가 이룬 특별활동을 의미 있는 개인적 성장과 전문 능력 구축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특별활동을 결정할 때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지침을 소개한다.   ◇지속성=테마 간의 연결고리가 없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산발적으로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는 대신, 한 가지 유형의 활동을 고수하도록 하자.   ◇열정=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해 특별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관심도에 따른 결과물을 토대로 나의 동기, 포부 또는 캐릭터가 반영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리더십 및 주도성=활동과 커뮤니티 내에서 리더의 자질을 계발하자. 다른 리더, 공동 리더 및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는 참여자로서 능동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하자.   ▶문의:(323)413-2977, www.iantedu.com 그레이스 김 대표원장 / 아이앤트 에듀케이션스토리 생각 특별활동 이력 대학 입학사정관 대학 입시기준

2024-05-21

[리얼 시니어 스토리] ‘은퇴는 남얘기’ 무주에 연수원 짓고 희망 나눠

시니어라는 나이대는 대부분 은퇴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스티브 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시니어가 돼서야 훌륭한 업적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비즈니스를 일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젊은 시절 성공한 사람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브 김 이사장은 젊은 시절 사업도 성공하고 시니어가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성공이 결코 행운이나 누군가의 큰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그의 실력과 능력이 원동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인사회에서 유명한 골프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데 이어 가족을 위한 패밀리 리조트, 이번에는 한국에서 주목을 끌만한 일을 벌였다. 혹시라도 지루하게 살고 있을 지 모를 시니어 동료 시민들의 영감을 일깨우고 있다.   '아시아의 빌 게이츠'로 불렸던 벤처기업가 스티브 김(74·사진)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이 골프장 사업에 이어 호텔사업에 뛰어든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한국 무주에서 또다른 프로젝트로 주목을 끌고 있다.     1990년대 벤처기업 자일랜사를 프랑스 기업에 매각하고 2007년 한국으로 돌아갔던 김 이사장이 샌타클라리타 지역의 36홀 골프장을 인수한 것은 2017년이다. 공동 투자자들이 사업성이 없다고 물러나면서 홀로 경영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물부족으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우물을 파고 36홀에서 9개홀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경영에 나섰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폐쇄한 9홀 자리에 호텔을 짓는 아이디어를 실행한 것. 이는 벤처기업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스티브 김 이사장의 저변에 깔려 있던 혁신의 혼이 일깨워진 결과였다.     김 이사장은 호텔 건축을 벤처기업처럼 시작했다. 우선 건축설계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윌셔에 '원스톱디자인'이라는 또 다른 벤처기업을 세웠다. 컴퓨터 디자인에 능한 고수를 영입해 '명소 만들기' 작업에 나섰다. 그가 한국과 미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기에 남들과는 다른 설계가 가능했다. 그가 의사결정에 직접 나서 복도의 높이, 문짝의 길이와 모양, 온갖 가구들을 정했고 이는 3D그림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호텔은 380개의 객실과 이중 50~60개는 빌라를 갖춘 곳이다. 호텔방이지만 카지노를 위한 라스베이거스식의 한 칸짜리 방이 아니고 가족 휴식이 가능한, 리조트에 맞는 450스퀘어피트 정도 되는 규모다. 하지만 알려졌다시피 샌타클라리타 시정부가 그의 계획안을 거부했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막았다. 자기 땅에 정식 허가를 내서 제대로 짓겠다는데 시정부가 막아선 것이다. 당시 시정부를 상대로 2억5000만 달러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큰 장애물을 만났지만 베테랑 벤처기업가인 스티브 김 이사장은 달랐다. 그가 벤처기업가로 많은 칭송을 받았던 점은 첫번째 벤처와 두번째 벤처를 경영하면서 총 15년 60분기 동안 항상 이익을 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다른 대안을 찾았다. 건축 팀원들과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 즉, 기존 설계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 짓는 것을 고려했다. 마침 와이너리로 유명한 테미큘라 지역에 좋은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역 정부와 접촉해 그들이 원하는 사양을 기존 계획에 맞췄다. 샌타클라리타 1호점은 소송까지 가고 있지만 테미큘라 2호점은 2024년 5월 청문회를 거쳐 곧 삽을 뜰 계획이다.     2호점 착공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사이 김 이사장은 의료 검진을 받으러 한국에 갔다가 자신이 세운 꿈희망드림재단을 위한 연수원을 짓기로 결정했다. 팬데믹으로 한국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왔던 것이 아쉬웠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을 바로 쓸 수 있게 됐다. 자신이 세운 건축설계 사무소의 3번째 작품으로 연수원을 짓게 된 것.     "서울에 마땅한 땅이 없어서 전국의 폐교를 조사했더니 37곳이 나왔습니다. 무주에 3천평짜리 폐교터가 있어서 허가를 받아 지난 1월부터 짓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폐교의 현황을 파악하던 중 마침 전북 무주군에 10년 전에 폐교됐고 현재는 무주군에서 소유하고 있던 부지를 발견했다. 2023년 6월, 군수와의 면담을 통해 계획을 전달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구체적인 설계와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무주군에 제출했다. 무주는 처음 가본 곳이지만 재단이 찾은 부지는 고속도로에서 내리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무주 구천동으로 유명한 무주는 산과 강이 어울어진 곳으로 해마다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임도 새롭게 알았다.     덕유산에 이미 조성된 무주스키장은 오래 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매년 9월에 열리는 반딧불 축제에는 4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전국에서 몰려온다. 가을 단풍을 보기위한 등산객들을 포함해서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테미큘라 리조트와 같은 160개의 객실과 큰 부페 레스토랑, 10개의 교실, 큰 행사장을 갖춘 지상 4층 규모의 연면적 4000평에 달하는 연수원이 들어선다.     청소년들이 리더십 교육을 받고 호텔 수준의 시설에서 머물며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사, 공무원, 중소기업 등의 직원들이 워크샵을 위해 머물며 휴식과 재생산을 통한 좋은 추억을 남길 것을 기대한다. 대규모 행사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초대한 음악회, 공연 및 강연 등을 수시로 개최할 수 있다. 1호점이나 2호점은 건축이 끝나는 대로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겨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3호점인 무주 연수원은 재단이 직접 나서서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하고 구체적인 부분에 참여함으로써 훨씬 의미있고 좋은 사업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주 드림센터는 수익창출이 우선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비용대비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다시 찾고 싶은 명소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전에는 재단의 교육프로그램을 위해서 강사들이 전국 이곳 저곳을 다녀야 했지만 연수원이 완성되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2박3일간 숙식을 같이 하면서 꿈과 희망, 미래를 함께 그리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1000만달러가 훨씬 넘게 들어간다. 이전에 재단에 출연해 놓은 자산의 투자 이익이 건설비용을 상당수 충당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서 매년 200만달러씩을 사용했는데 연수원에서 손익분기점만 맞추면 현상유지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재단이나 갖고 있는 자산을 죽기전에 좋은 곳에 쓰게 됐다"면서 "많은 사람이 싸고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수원 건축은 10월말에 완공될 것으로 보이지만 테미큘라 2호점, 샌타클라리다 1호점도 포기하지 않았다. 원래 벤처기업들이 기존의 법제와 관습, 관행을 뚫고 극복해서 이뤄내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뼈속까지 벤처기업가인 스티브 김 이사장은 꼭 이뤄낼 것을 자신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남얘기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베테랑 벤처기업가인 벤처기업가로 명성

2024-05-05

“미국, 위대한 컴백 스토리 쓰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7일 국정연설에서 법인세 인상·부자증세 등 중산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각종 경제이슈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집권 1기 동안 이룬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는 동시에, 집권 2기 청사진을 제시하며 11월 대선에서의 한 표를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진행된 1시간 8분간의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가장 위대한 컴백 스토리를 쓰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위기에 처한 경제 상황을 이어받았지만, 이제 미국 경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준"이라며 "인종간 부의 격차는 20년 만에 가장 적고, 인플레이션율은 9%에서 3%로 떨어졌으며 계속 하락세"라고 말했다. 그는 "전임자(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를 포함한 역대 행정부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 제조업 부흥) 정책에 실패했지만, 이제는 반도체·자동차 분야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가 잡히면 모기지 금리도 낮아지겠지만,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겠다"며 첫 주택 구입자에게 최대 1만 달러(2년간 월 400달러) 수준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현행 15%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최소 21%까지 올려 연방 적자를 수조 달러 줄이는 방안, 저소득층을 위한 세금 감면조치도 동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부유층에 최소 25%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미국인 약 400만명의 학자금 대출 부담을 줄였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오는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리턴 매치'가 확정된 만큼, 핵심 지지층인 중산층의 표심에 호소하기 위해 각종 경제 이슈를 꺼내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여성의 임신 6개월까지 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 재작년 대법원에서 폐기된 데 대해 "미국인들이 만약 내게 '선택의 권리'를 지지하는 의회를 만들어 준다면 나는 '로 대 웨이드'를 이 땅의 법률로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 정책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조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거론하며 "나는 이민자들을 악마화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에 입국한) 가족 구성원을 떼어 놓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불법이민자 유입을 줄이는 국경통제 강화 법안은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대 때문에 의회에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미국 스토리 컴백 스토리 불법이민자 유입 도널드 트럼프

2024-03-08

[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란 환상 깨야

지난 1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4에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이 참가해 화제가 됐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열기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중요한 자원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많지 않은 한국이지만 인적 자원이 풍부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타트업 세상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주에 거주하는 한국계 인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 전역 곳곳에서 스타트업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 이들을 돕는 유명한 멘토가 한기용(UpZen 대표ㆍ55)씨다. 그가 최근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스타트업을 2개나 성공시킨 그의 스토리는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막 시니어가 돼 은퇴는 이르지만 2모작에 나선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며 주류 사회에서 스타트업 멘토로 활약하고 있는 커리어 코칭 기업인 업젠의 한기용 대표가 지난 2월 '실패는 나침반이다'(부제 50대 개발자의 실리콘밸리 회고록)라는 책을 한국에서 출간했다. 지난 30년 간 스타트업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했다. 멘토가 많지 않은 한국 스타트업 분야에서 많이 읽히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까지 겸비한 잘 알려진 멘토다. 그에게 멘토링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굳이 IT업계가 아니어도 매우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SNS인 링크드인(linkedin.com/in/keeyonghan/)에서 '멘토링 이야기'라는 100회짜리 연재 글을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 멘토로 멘티그룹을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전공을 살려 데이터 엔지니어링 라이브 강의도 했다.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90년대 초반 한국의 IT업계는 물론 이후 미국의 IT업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해가 된다. 또한 그의 데이타베이스 하둡에 관한 책은 대학 전공 교과서가 될 정도였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한기용 대표가 서울대에 입학한 해는 1989년이다. 당시에는 의예과, 물리학과, 컴퓨터공학과 등 세 학과가 이과계열에서 톱을 다투던 시절이다. 의대에 가라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며 재수 끝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관심도 없는 의대를 가지 않은 것이 개인적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사실 학교보다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다른 분야도 모두 그렇습니다."   오히려 2학년에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실에 드나들면서 업계에서 실무 경험을 갖고 학위를 위해서 돌아온 선배들과 컴퓨터 바이오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 선배들의 박사 논문 주제인 인공신경망을 익혔고 영문 윈도에서 구동되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에도 참여했다. 결국 이것이 인연이 돼 서울대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거기서 윈도 프로그래밍을 개발하다가 삼성전자까지 취직해 5년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병역도 특례로 마쳤다.   지금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대기업을 다닌다면 1등 신랑감이라서 주위의 부러움을 살만한 데도 그는 꼭 좋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간다면 7년을 낭비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면서 "미국에 빨리 왔거나 중소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멘티들과 나누는 조언은 이런 경험에서 나온다.     '대기업이 네 커리어를 완성시켜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그의 조언은 계속된다. '네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묻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안전한 선택을 강요 받는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필요하지도 않은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차세대에게 시키는데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공부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든다는 것이다. 무언가 막히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멘토링을 하면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을 공부하면 미래가 준비가 되냐고 물어옵니다. 그런데 세상이 항상 공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수능이나 학력고사처럼 주제와 과정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험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죠. 또한 성공한다고 해서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시험 공부하듯이 몇 년간 취업 준비해서 네이버나 삼성전자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커리어가 완성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기성세대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한 단계 더 나가면 결국 의사가 되면 된다고 결론 짓기 쉽다"며 "간혹 40대 중반인 똑똑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 멘토링 신청을 받는다. 자신들이 해보니까 재미가 없고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어서 크게 방황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현장 교육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한 대표도 31세에 미국에 왔는데 처음에는 이런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다양성이 있고 질문을 장려한다는 것은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 작은 회사 중심으로 '남의 행복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일했고 2곳의 스타트업 성공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곳은 폴리보어(Polyvore)로 야후에 M&A로 팔렸고 다른 한 곳은 온라인 강의 사이트인 유데미(udemy)로 나스닥에 상장됐다. 물론 그 전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3곳은 망했는데 그래서 안목도 생기고 결국은 확률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5곳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계속해서 도전하는 게 중요하고,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과 문화가 좋은 회사를 골라야 됩니다." 덕분에 40대 후반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가진 경험을 후배들하고 공유해야겠다고 싶었고 특히 한인계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지역 한인 과학기술창업자 모임인 베이에어리어K그룹에 참여해 이사장까지 맡았다.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그는 이제 다른 의미의 2모작을 통해 또 다른 모멘텀을 보며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기업인 업젠을 창업했고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 고민 중이다. 그의 커리어가 첫 10년은 윈도 프로그래밍, 다음 10년은 검색, 최근 10년은 데이터 일에 몰두했기에 이제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해 볼 생각이다.  "사실 저는 꿈이 없던 사람입니다. 50세가 넘어서 생긴 꿈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일단은 누가 됐건 만난다. 그가 얻을 게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대학생이 와서 만나자고 해도 응한다. 사람이 괜찮고 이야기했을 때 무엇인가 배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계속 만난다.     한 대표는 이미 IT분야에서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컴퓨터공학과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이미  비트교육센터에서 강의했는데 소프트웨어 지식을 쉽게 설명해 풀어가는 스킬이 이때부터 시작돼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비주얼 C++'과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집필했다. 당시 방대한 윈도 프로그래밍 방법을 쉽고 간단하게 풀어쓴 덕분에 많은 컴퓨터 공학 관련 학부의 대표적인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외 저서로 '한번 더 생각한 비주얼 C++와 MFC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한번 더 생각한 윈도우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클릭하세요 닷넷 API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프로그래머 그들만의 이야기 집필 (영진)', 'Do it! 직접 해보는 하둡 프로그래밍(이지스퍼블리싱)' 등이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 환상 한국 스타트업 스타트업 멘토 윈도 프로그래밍

2024-03-03

[커리어 준비하기] 성공에는 익숙함 벗어나는 용기 필요…무모함 아닌 대담함 과소평가 말아야

청년들이 진로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기술에 대해 계속되는 이 연재 시리즈에서 우리는 청년들의 자신감, 비판적 사고 및 의사소통 기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글은 중요하지만 종종 과소평가되는 기술인 대담함을 집중 조명해보고자 한다.   ▶대담한 행동의 힘   역사는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진부한 표현이 아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든 독특한 진로를 선택하든, 용감하게 앞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은 종종 혁신과 성공에 앞장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올바른 균형 잡기   그러나, 대담하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은 아니다. 장단점을 신중히 생각하고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성공적인 위험 감수자는 상황을 살펴보고 득과 실을 이해한 다음, 가능한 이익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결정한다.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보를 얻고 사려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위험과 보상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위험이 실제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좋은 가능성과 나쁜 가능성을 모두 현실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잘 생각해보면, 많은 위험이 보이는 것만큼 무섭지 않으며 잠재적인 이익이 위험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실패보다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결정에 대담한 접근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청년들은 “만약에”를 최소화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대담한 태도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기   자부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정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단순한 좌절이 아닌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한다. 모든 성공 스토리는 실패를 담고 있으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실패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면 위험 감수를 성공을 향한 필수 단계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   ▶대담한 위험 감수자들의 사례를 통해 배우기   위험 감수에 있어 대담함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대담함이 어떻게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같은 획기적인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J.K. 롤링은 유명한 작가가 되기 전에 수많은 거절을 겪었다. ‘해피 포터’ 시리즈에 대한 그녀의 대담한 끈기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을 이끌었다.   ▶청년들에게 대담한 의사 결정의 기술 가르치기   청년들이 대담함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영역을 탐색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대담함과 잠재적인 결과에 대한 인식의 균형을 잡도록 한다.   ◇장단점을 따져보도록 하여 잠재 위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과감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고방식을 기르도록 가르친다.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담한 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두 공유하여 모든 경험에서 얻는 배움의 가치를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청년들의 대담함을 기르는 것은 개인적, 직업적 발전에 중요하다. 이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은 성취감을 주며 성장 지향적인 삶을 보장한다.   ▶문의:(949)630-8729   www.lacareercoaching.com 제임스 박 대표 / LA 커리어 코칭커리어 준비하기 과소평가 대담함 대담함 과소평가 위험 감수자들 성공 스토리

2024-01-01

[시 선] ‘환경미화원’ 오타니

“반 고흐의 그림을 본 적 있는가.(Did you see Van Gogh paint?)”   1995년 8월 14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커버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야구담당 기자 톰 버두치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이 투수의 피칭을 보는 것이 값진 일이라고 소개했다. 주인공은 바로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렸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그렉 매덕스였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2023년. 버두치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선수야말로 (치고, 던지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야구선수’다.”   버두치가 말한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는 최근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초대형 계약을 맺은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다.   오타니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길을 가는데 쓰레기가 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쓰레기를 못 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아닌데 이걸 왜 주워야 하지.’   그런데 오타니는 다르다. 운동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주워서 휴지통에 버린다. 오타니는 말한다. “나는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다. 남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것이다.”   오타니는 최고의 투수인 동시에 최고의 타자다. (오른손) 투수와 (왼손) 타자를 겸업한다는 뜻에서 일본에선 ‘이도류(二刀流)’, 미국에선 ‘투웨이(two-way)’로 불린다. 기량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마운드에 오르면 시속 161㎞의 강속구를 던진다. 타석에선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다. 키가 1m93㎝인데 발도 빠르다. 도루도 20개를 넘는다. 이걸 한 시즌에 동시에 해내는 선수가 바로 그다. 그래서 오타니야말로 역대 최고의 선수를 뜻하는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타니가 29세 나이에 ‘역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비결은 뭘까. 당연히 이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걸출한 실력 덕분이다. 그런데 가장 큰 비결은 따로 있다. 그의 기량이 초현실적이라면 그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야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수도승 같은 극도의 절제가 오타니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겸손하면서도 성실한 자세, 불굴의 의지가 그의 무기다. 이걸 다 갖췄다니, 한마디로 그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다.   오타니가 15세 때 ‘만다라트(만다라+아트)’ 계획표를 만들었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계획표를 만들면서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실천 과제까지 빼곡히 적어 넣었다.(만다라트란 1970년대 일본의 경영연구소가 고안한 습관 관리표다. 이 계획표가 불교의 만다라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만다라트라고 불린다.)   오타니는 체력·정신력과 함께 ‘인간성’과 ‘운(運)’도 목표 달성을 위한 8가지 항목 중 하나로 봤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행운이 따라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타니는 열다섯 살 때 이미 깨우쳤다. 보통 소년이라면 중2병이 절정에 달할 나이에 성공을 목표로 이런 작은 일까지 챙겼다. 즉, 오타니는 사람의 ‘운’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다.   행운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타니가 내린 결론은 교실 청소에 앞장서고, 어딜 가든 쓰레기를 줍는 것이었다. 인사를 잘하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도 운을 불러들이기 위한 그의 전략이었다. 이런 구도자 같은 생활이 몸에 밴 사람에게 마약이나 음주·흡연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그런데 천하의 오타니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팀의 우승이다. 최근 나온 책 『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이재익 지음, 도도서가)의 문구가 눈에 띈다.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마이크 트라웃과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오타니는 2018년부터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선수 두 명을 데리고도 소속팀 LA 에인절스는 가을야구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야구는 선수 개개인보다 팀 의존도가 높은 스포츠다. 이 점에서 야구와 인생은 무척 닮았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다. 그 흔한 사랑도, 싸움도, 치킨집도 혼자서는 못한다.” 정제원 / 한국 문화스포츠디렉터시 선 환경미화원 오타 커버 스토리 야구 역사상 선수 개개인

2023-12-27

[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성공 교훈 친지·후배에 알리려 자서전

"무엇을 해서 성공했다고? 이런 질문에 10분 이상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자서전을 하나 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남가주에서 고속필름처리 기계 제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명선 '휴스터 피어리스76' 이사장이 지난 10월 자신의 자서전 '성실: 아메리칸 드림의 여정(Sincerity)'을 출간하게 된 이유다. 현재 이 자서전은 한국의 유명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서전 출간은 그의 성공에 대한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다.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지인들과 후배들에게 남기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동문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성공 비결로 독자들에게 '성실'과 '진실'을 전달한다. 그는 "미국에선 특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며 "적당히 하려 하기보단, 진실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은퇴 후 서울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고교 동기나 지인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등 떠밀려 시작한 일이지만 무사히 마무리돼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모교 행사인 '서울고 졸업 65주년' 모임에 배포하기 위해서 4월 말부터 시작해 서너달이 걸렸다. 지난 10월 150여명의 동기들에게 나눠줬다. 평소에 틈틈이 정리했던 것을 소개하니 고교 동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심지어 밤을 새워서 읽었다는 친구도 나왔다.     이런 호응은 사실 예상됐는지도 모른다. 당초 '자비 출판'으로 출간을 맡은 출판사에서 대표가 직접 전화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원래 친구들과 친지, 후배들에게 전달할 요량으로 시작한 출간에 뜻밖에도 출판사가 일반 출판을 하자는 것이다. 책 편집을 맡은 편집자가 작업을 하다가 감동했고 이런 훌륭한 내용은 일반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책이 생각보다 두꺼워요. 진실과 진심을 담다가 보니 길어져서 출판사에서 나중에 80페이지를 줄였을 정도"라며 "어린 시절 연애 얘기도 들어 있는 등 세세하게 진짜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던 것이 이런 반응을 얻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유학 초기 가난을 버텼던 시절부터 34년간 회사를 경영하던 시기에 걸쳐  기록된 에피소드들도 수록됐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을 회사에 고용해 그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챙겨준 일화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물론 책을 쓰는 것이 전문이 아니므로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협업한 것이 주효했다. 작가는 그의 정리 안된 글을 줄기부터 정리해 줬고 문법, 맞춤법까지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39년생인 이 이사장은 이미 은퇴한 상태다. 회사에는 한달에 한 두번 방문하고 있다. 골프는 진심이어서 매주 3~4번 라운딩하며 피트니스에서 땀도 흘려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의 버켓리스트는 구체적이다. 골프 성지로 발상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코스에서 라운딩했고 남극, 크루즈로 104일간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 3대 폭포인 이과수(남미), 나이애가라(미국), 빅토리아(아프리카)를 모두 방문했다. 애리조나 세도나에서 1만피트까지 올라가는 풍선 여행도 했다. 그는 "젊어서 10대 버켓리스트를 설정했는데 모두 완수했다"고 말했다. 부인 헬렌(1941년생)과 2남(제임스, 에드워드) 1녀(모니카)를 뒀다. 자녀들에게 그는 "공부도 잘했고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며 "비즈니스의 성공도 좋지만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 년전 그가 80세가 넘어서 매각 오퍼를 많이 받은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당시 젊은 CEO를 영입할지, 매각할지 고민했었는데 큰 아들 제임스가 승계하기로 스스로 결심해 기뻤다고 말했다.     한편 이제까지 3명의 보스를 만났고 매 순간 그들의 장점만을 배워 발전했다. 그 3명의 보스가 항상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3번째 보스는 나중에 회사가 성장했을 때 은퇴한 그를 초빙해 프레지던트로 3년간 모셨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중2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는데 그것들 모두를 실현시켰다"며 "앞만 보고 뛰었지만 크게 후회하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큰 세계관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상대 상학과 58학번으로 1966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USC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MBA 취득 후 공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를 받은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특수 마이크로 필름과 고속현상기계 제조에 특화돼 있는 기계 제작 회사 '휴스턴 피어리스'를 인수해 '휴스턴 피어리스 76'를 설립했다. 원래 이 회사는 1930년대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설립했으나 1970년대 부실화돼 매물로 나온 것을 이 이사장이 근무하다가 소액 투자로 인수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편 그의 자서전 '성실'은 한인타운 반디서점(213-739-8107)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자서전 자서전 성실 친지 후배들 성공 비결

2023-12-24

[콜로라도 한인합창단] 연말 캐롤 공연 성료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지휘자 김태현, 단장 손순희)이 지난 12월 3일 일요일 오후 6시 베다니 루터란 교회의 펠로우십 홀에서 크리스마스 연주회를 가졌다. 이번 연주회는 작년에 이어 캔들라이트(Candlelight) 공연으로 기존의 클래식 콘서트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다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신선하고도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해 주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 참석한 관객들은 1000여 개 촛불이 장식 된 공연장에 입장하면서부터 티와 쿠키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로맨틱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즐기며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오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크리스마스 글로리아〉로 막을 올렸다. 이어 콜로라도 한인합창단 현악 챔버 앙상블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영화 여인의 향기 주제곡을 연주했다. 또, 단원인 장석우씨가 첫번째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이끌어갔으며, 〈쟝 라신느의 찬가〉, 〈크리스마스 소원이 이루어지길〉, 오미경씨의 리드로 〈천사 찬송하기를〉를 합창했다. 두번째 크리스마스 스토리는 로스 지현씨가 구성했다. 자신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눈 뒤 겨울왕국 주제가를 플룻 연주, 김태현 지휘자의 리드로 〈저들 밖에 한 밤중에〉를 합창했다. 무대는 〈메시아 크리스마스 모음곡〉과 〈그를 거룩하신 이름을 송축하라〉 등의 곡으로 마무리되었다.       손순희 단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번이 18번째 할러데이 연주회이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하고 후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불이 켜져 있는, 촛불의 의미는 평화, 희망, 기적, 감사, 사랑 등 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러분들은 할러데이 시즌에 촛불을 어떤 의미로 간직할지  궁금하다. 하나님의 의미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오늘 무대를 위해 수고한 소프라노 우경혜 씨를 비롯한 여러 단원들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공연을 마치고 김태현 지휘자는 “이번 공연은 기획할 때부터 경직된 분위기를 배제하고 싶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생활하고 고생해 온 관객들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었고, 배려하고 싶었다. 캔들라이트 공연은 포근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시즌에 잘 어울린다”면서 “우리의 삶은 외롭고 떨리며 불안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으로 사랑을 위해 노래한다. 우리는 떨리고 두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노래의 비행을 시작한다. 남은 2023년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무대에서 감동을 드리고, 여러분들의 삶에 용기와 위로와 힘이 되고자 하는 합창단이 되겠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합창단은 준비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1 천개의 촛불을 준비해 공연장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들었고, 관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쿠키와 티를 별도로 담아서 선사했다. 손순희 단장은 “매번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나면 뿌듯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10월 한국전 정전 70주년 기념음악회연주회를 마치자마자 연습에 돌입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모든 대원들이 열심히 해주었다” 면 서 “동포사회의 많은 관심으로 인해 합창단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동포사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고 전했다. 한편, 콜로라도 한인합창단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720-205-1332로 하면 된다.                           박선숙 기자콜로라도 한인합창단 연말 캐롤 크리스마스 연주회 크리스마스 스토리

2023-12-08

[UC지원 마무리 점검사항] 극적 스토리 보다 이겨내며 배운 것 알려야

사립대학들의 조기 전형 지원이 일단 마무리 됐고 UC지원 마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일부 학생은 이미 지원서를 거의 마치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조기 접수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UC는 워낙 많은 지원자가 있어서 접수 전에 면밀히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몇 가지를 따져봤다.     어느 집이나 12학년 자녀들의 대입 지원서 작성에 부모가 참여하기가 어렵다.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자녀가 보여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지원서 작성을 자녀에게 맡겨두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흘려 듣지 않는 것이 좋다. 형이나 누나, 오빠, 언니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촌, 혹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구비 서류가 제대로 갖춰지면 마감일인 30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늦어도 1주일 전에는 접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실제로는 성적이 UC기준에 도달해야 정상적으로 입학 사정이 이뤄진다. UC지원 최소 요건은 가주 거주 학생은 A-G 15개 과목 영역을 이수하되 GPA가 3.0이상, 타주 및 외국인 학생은 최소 3.4이 필요하다. 이외 전 학년 성적표, AP시험 점수 기록, 개인 또는 부모의 연소득, 소셜 번호, 시민권자 여부 등 신분 상태 정보가 필요하다.   지원서는 온라인으로 접수하지만 제출에 앞서 서류를 먼저 프린트해서 읽어보는 것이 좋다. 지원서 하나에 9개 캠퍼스 모두에 전달되는 만큼 내용을 꼼꼼히 읽고 틀린 글자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UC계 9개 캠퍼스의 지원서는 하나지만 지원하는 캠퍼스별로 수수료를 낸다. 또한 같은 UC지만 전공과 입학 사정 기준이 다르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접수 번호는 이메일로 받게 된다. 합격 여부는 내년 3월1일부터 31일 사이에 캠퍼스별로 통보된다.     ▶신입생 심사 과정은 '포괄적 심사(Comprehensive Review)' 방식이다.   각 캠퍼스는 지원서에 적힌 모든 정보를 사용하여 학생의 학업 및 개인 성취도를 평가한다. 학생 개인의 기록을 통해 학교 성적과 학년 석차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 외의 리더십, 지적 호기심, 창의력 등도 파악한다. 지원서는 1명 이상의 평가자들이 13개 항목에 대해 상세히 평가한다.     ▶UC가 지적하는 13개 평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이수한 UC 인증 아너 과정에 대한 추가 점수를 포함한 모든 AG 과정의 학업 성적 평균(GPA).(2)최소 A-G 요구 사항을 초과하는 과목의 숫자, 내용 및 성적. (3) UC 승인 아너 및 AP 과정의 숫자와 성적. (4) 학년중 상위 9%에 속하는지 여부 (5)진행 중인 12학년 과목의 종류와 숫자, 난이도. (6)고교에서 제공되는 수업 기회와 학업 성취도 정도. (7) 하나 이상의 아카데믹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 (8)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하나 이상의 특별 프로젝트에서 뛰어난 성과. (9) 최근 GPA와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교과 과정에서 눈에 띄는 향상된 학업 성취도. (10) 시각 및 공연 예술, 커뮤니케이션 또는 운동 분야 등 특정 분야의 특별한 재능, 업적 및 수상, 다른 언어로 입증된 서면 및 구두 능력과 같은 특별한 기술; 집중적인 연구 및 다른 문화 탐구와 같은 특별한 관심 분야; 중요한 지역 사회 봉사 또는 학생회에 대한 중요한 참여와 같이 리더십에 대한 특별한 약속을 보여주는 경험; 또는 캠퍼스의 지적 활력에 기여하려는 학생의 약속을 보여주는 기타 중요한 경험이나 성취. (11)고교 커리큘럼에서 또는 특수 학교 행사, 프로젝트과 연계하여 수행되는 특별 프로젝트 완료. (12) 학생의 인생 경험과 특별한 상황을 고려한 학업 성취도. (13)학생의 고교 및 거주지 위치.     ▶각 캠퍼스 웹사이트에 소개된 주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1)UCLA: 문과대학 지원자 전공은 심사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공대/응용과학 단과대학 지원자 심사는 수학과 과학에 중점을 둔다. 간호대 지원자는 수학과 과학은 물론 추가 서류가 요청된다. 예술및 건축대, 음대, 영화필름TV대학 심사는 포트폴리오, 오디션에 중점을 둔다. (2)UC샌디에이고: "두려움이 없는 혁신가를 찾는다." 음악, 연극, 무용, 시각예술 지원자는 포트폴리오/오디션이 필요할 수 있다. (3)UC샌타바버러: 문과대학은 무용, 음악연주 전공 이외 지원자는 전공 선택은 고려되지 않고 추가 지원이 불필요하다. 공대의 경우 2지망이 어려우므로 문과대학내에서 선택해야 한다.크리에이티브스터디대학은 추가 지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4)UC어바인: 학업 성적 만큼 다른 정보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5)UC데이비스: 입학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전공보다는 관심 있는 전공에 지원하는 것이 좋다. 첫 선택이 어려울 것을 대비해 2지망(alternative) 전공도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6)UC샌타크루즈: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은 첫 선택이어야 한다. 고급 고교수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요구되며 선발되지 않은 경우 다른 전공으로 2지망 합격될 수 있다.     ▶교육 전문가인 김소영 게이트웨이온라인스쿨 디렉터는 몇 가지를 더 조언했다.   지원서에 적은 각종 과외 활동이나 수상 경력이 정확한지 확인해야 한다.자녀 중 상당수가 자신이 열심히 참여했던 과외 활동, 수상 내역 등을 대강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녀에게 내역을 적으라고 맡겨두면 날짜나 행사 내용, 주최자가 누구인지 적지 않고 대강 쓰기 쉽다. 대학은 지원서에서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지원자가 고교 시절 어떤 활동에 열정을 가지고 얼마나 참여했는지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결과를 이루어냈는지 알 수 없다. 자녀가 지원서에 적은 활동 내역과 수상 기록은 반드시 자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부모와 학생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에세이다.UC는 8개 주제 중에서 4개를 골라 각 350자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공통지원서는 7개 주제 중에서 하나를 골라 650자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김소영 디렉터는 어려움을 극복한 했다는 주제 (UC는 5번째, 공통지원서는 2번 째)는 가급적  피할 것을 권했다. 실제로 지원서에서 묻는 내용은 '자신에게 버거울 수 있는 일에 도전한 일이 있는가,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는가' 라는 것이지만 많은 학생이 이를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낸 것을 묻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17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가정의 한인 2세 학생에게 가장 힘든 일이라면 궁핍했거나, 체육 활동중에 부상했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많이 아팠다거나 하는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지만 전국적으로는 이런 주제를 쓰는 학생 중에는 고아가 됐거나, 전쟁 난민이 되었거나, 부모와 노숙을 했거나 하는 등은 더 극적인 경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 디렉터는 "지원서 에세이에는 대학이 굳이 알 필요 없는 자신의 약점을 알리기 보다는 자신의 장점, 좋아하는 일, 남에게는 생소한 취미를 통해 학생의 개성을 알려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고교 생활 중에 했던 과외 활동 하나를 골라서 그로 인해 학생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했으며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얘기하고 과정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도 더 좋다고 강조했다. 장병희 기자UC지원 마무리 점검사항 스토리 극적 지원서 작성 대입 지원서 지원서 하나

2023-11-12

[리얼 시니어 스토리] "제 삶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은퇴한 내과 전문의이며 가톨릭 종신 부제인 김재동씨에게 올해는 특별하다. 지난 1943년 2월 16일 전북 순창, 지리산 입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만으로 80세가 됐고 1972년 뜻하지 않게 미국으로 와서 정착한 지도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의 세 자녀가 마련한 '팔순 잔치'는 8명의 손주를 포함해 전 가족 16명이 함께 고국을 방문해  지난 4월 9일 54주년 결혼기념일에 서울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그는 이제 80세인 시니어로, 은퇴한 의사, 또한 수필가, 가톨릭 교회 종신 부제(성직자)다.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1학년인 7살때 일어난 한국 동란으로 재산을 모두 잃고 인근 광주로 피난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5.16 장학생으로 학비 걱정 없이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됐으며 미국까지 와서 40년간 위장 내과 개업의로 아픈 환자를 돌본 후 75세에 명예롭게 은퇴한 삶은 순전히 기적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선배의 소개로 이화여대 미대 출신 부인 김수현씨는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은 은총 중의 은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 과학을 공부한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외골수 삶 속에서도 폭넓은 예술과 감성의 인문학이 접목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자연, 문학과 인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폭넓은 삶의 깨달음은 좋은 인생 반려자를 통해 주어진 축복이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그는 바쁜 의사로 살면서도 문학에 열중해 책도 4권이나 출간했고 "하느님이 좋아" 가톨릭 부제로 살아온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이런 복된 결혼생활을 이웃에 전파하기 위해 최근 10여 년간 40대의 젊은 청춘을 ME(부부 사랑 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고 후속 프로그램으로 결혼 적령기 자녀를 위한 배우자 찾기 캠페인 '청실홍실운동'도 정찬열(시인)씨와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게 인생이다. 이민자로 바쁘게 살다 보니 큰 아픔도 있다.     "이민자의 첫 자녀로 태어난 큰 아들이 긴 세월 동안 남모르게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창 부모의 관심을 먹고 자라야 할 나이인 사춘기에 접한 약물로 수 년간 고생만 하다가 결국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최근 나이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이민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다. 다행히 큰 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떠났기에 영혼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 하나가 큰 위안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남은 둘째 아들과 두 딸은 큰 아들과의 '시행착오'를 통해 다행히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랐다. 둘째 아들은 내과의사가 돼 약사 배우자를 만나 두 자녀의 아빠가 됐다. 각각 카운셀러와 약사인 두 딸은 모두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 배우자들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부부의 일상은 5년전 은퇴 후 팔로스버디스로 이주하여 틈만 나면 바닷가를 거닐고 가끔 골프를 치며 건강에 힘쓰고 있다. 남은 인생을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고 있다. 은퇴 전에 비해서 시간이 많은 편이어서 읽지 못했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세상과는 유튜브나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다.     버켓 리스트는 아니지만 그의 관심사는 큰 아들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주위의 약물 중독자와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이웃과 함께 하기 위해 김영철 목사가 주도하는 '가족 정신 건강 센터'를 지원하는 일이다. 직접 겪은 아픔이기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돕고 있다.   그는 사후에 맞이할 하늘나라의 영원한 '천상영복'에 마음을 두고 있다. 신앙은 그에게 단 하나의  꿈이며 생명이고 가슴 설레이는 희망이다. 그런 꿈이 있기에 노년 생활이 더 아름답게 여겨져 오늘도 행복하다.     "꿈과 비전이 있는 한 인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하느님 은총 인간 하느님 가톨릭 부제 가톨릭 종신

2023-11-05

단 리 회장 PIMA 프로젝트<알라메다 산업단지 건설> 재조명

액티브 USA 단 리 회장이 참여한 PIMA 프로젝트가 재조명됐다.   경제전문 주간지 LA비즈니스저널(LABJ)이 PIMA 프로젝트와 단 리 회장 스토리를 지난달 30일자 1면 톱과 6면 전면에 걸쳐 사진과 함께 커버 스토리로 보도한 것.   PIMA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2월 완공된 알라메다 산업단지는 LA다운타운 인근 버논에 위치한 4개 건물, 40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차세대 산업단지다.   액티브 USA, 임팩트 매뉴팩처링, 포이트리 엔터프라이즈, 미스미 등 4개 한인 업체가 5000만 달러를 공동 투자한 PIMA 프로젝트는 지난 2012년 12.9에이커 부지 매입 후 팬데믹으로 인한 인력부족, 자재비용 증가, 환경 조사, 청문회 등 난관을 뚫고 10년 만에 완공됐다.   여러 업체가 프로젝트에 협력한 이유에 대해 리 회장은 “한 회사가 개발하기엔 너무 큰 일이었다. 당초 개발되는데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LABJ는 1989년 직물회사로 시작한 액티브 USA가 1992년 LA폭동으로 본사와 창고가 전소된 어려움을 겪었다며 현재 여성 및 주니어 의류를 생산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에 진출해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제품 100만 개를 보관할 수 있는 웨어하우스 창고 외에 패션 디스트릭트에 쇼룸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 회장의 아들이자 액티브의 영업 이사로 재직 중인 앨버트 리는 “아버지의 사업 철학에 따라 창고 공간을 매우 깨끗하고 체계적으로 조성했다”고 강조했다.   리 이사는 “자체 건물 보유 이점이 재고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며 효율적인 업무에 도움이 된다. 이 시설을 통해 회사가 향후 확장할 수 있는 옵션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알라메다 산업단지는 지난 9월 LABJ로부터 ‘2023년 최고의 상용 부동산 어워드’ 산업부문 금상을 받은 바 있다. 〈9월 20일자 중앙경제 1면 보도〉 박낙희 기자 naki@koreadaily.com프로젝트 알라메다 커버 스토리 알라메다 산업단지 pima 프로젝트 단 리 액티브 USA LABJ

2023-11-01

한인은행 직원 2887명…2.8%↓…급여 포함 인건비는 증가

한인은행들이 고금리 장기화로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경비 절감에 나서는 가운데 한인은행들의 직원 수가 전년보다 소폭 줄었다.   본지가 남가주에 본점을 둔 뱅크오브호프, 한미은행, PCB뱅크, 오픈뱅크, CBB뱅크, US메트로뱅크 등 한인은행 6곳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제출한 2023년 3분기 실적보고서(call report)를 분석한 결과, 총직원 수는 2887명이다. 이는 지난해 3분기의 2970명과 비교해서 83명(2.8%)이 적은 수치다. 한인은행 6곳 중 4곳의 직원 수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표 참조〉   이와는 반대로 오픈뱅크(+6.0%)와 US메트로뱅크(+20.9%)는 직원 수가 늘어 눈길을 끌었다.     오픈뱅크는 한인은행 중에서 처음으로 지난 8월 말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직원 수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두 자릿수 증가 폭을 기록한 US메트로뱅크의 경우엔, 강승훈 최고마케팅책임자 영입 및 SBA 융자 인력 보충 등 영업력을 강화한 데다 워싱턴주 시애틀점을 지난 5월에 오픈하면서 전체 직원 수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올 연말에는 LA한인타운 올림픽점 개점도 준비 중이다.     한인은행 6곳 중 4곳의 직원 수가 줄었지만, 급여를 포함한 인건비는 늘었다.   남가주 한인은행들이 올해 3분기까지 직원들에게 지급한 총급여는 3억263만 달러였다. 2022년 3분기의 2억8725만 달러에서 5.4% 증가한 것이다.     급여 지출 폭이 가장 컸던 은행은 직원 수가 두 자릿수로 늘어난 US메트로뱅크였다. 지난 분기보다 25.0% 더 많은 1578만 달러였다. 한미은행도 급여 지출이 두 자릿수로 늘었다. 작년 3분기 5398만 달러에서 5940만 달러로 10.0% 증가했다. 오픈뱅크는 이와 비슷한 9.2%였다.     뱅크오브호프와 PCB뱅크는 각각 4.9%와 4.2% 인건비가 늘었다. CBB뱅크는 한인은행 6곳 중 유일하게 인건비 규모가 줄었다. 지난해 3분기 2058만 달러였던 것이 지난 3분기 1695만 달러로 17.6% 나 급감했다.   한인은행 6곳의 3분기 1인당 평균 급여는 10만4825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의 9만6718달러와 비교하면 8.4% 더 많은 것이다. 은행별로 보면 평균 급여가 가장 높은 은행은 US메트로 뱅크로 11만3511달러였다. 2022년 3분기 10만9730달러에서 3.4% 늘었다.     한인은행권은 “고금리 장기화로 신규 대출이 제한적이고 예금 비용을 포함한 지출은 증가하면서 한인은행들이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며 “한 은행은 최근 두 자릿수의 감원을 진행했고 또 다른 은행은 자동차 대출 부서를 지난달로 폐지했다”고 전했다.     한 한인은행 관계자는 “영업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한인은행들은 앞으로도 허리띠를 더 졸라맬 것”이라며 “너무 경비 절감에만 초점을 맞추다간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수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한 균형 잡힌 경영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훈식 기자 woo.hoonsik@koreadaily.com한인은행 인건비 커버 스토리 pima 프로젝트 알라메다 산업단지

2023-11-01

[리얼 시니어 스토리] "오를 산이 있어서 항상 행복했네"

50년이 넘는 한인타운 역사에는 다양한 업종과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있다. 비단 경제계나 정치계  인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취미나 여가 선용 분야에서 김평식(1940년생) 에버그린 클럽 초대 회장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아마도 전무후무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남가주 한인사회에는 거의 20여개의 등산 클럽이 있었다. 한국에서 산마다 등산하는 인구가 넘쳤 듯이 남가주에도 등산 인구는 많았다. 다만 한국의 산과 달라서 어디를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누구를 믿고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기에 한인들이 주축이 된 등산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것이다.     이들 등산클럽의 고조선 같은 역할을 에버그린 클럽이 맡았다. '클럽주' 김 회장이 산을 좋아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했기에 가능했다. 결국 한인들의 등산 문화를 세운 셈이다. 토요클럽, 일요클럽, 화요클럽이 구성돼 50인승 버스가 1주에 3번씩 출발했다. 매주 150명이 산을 찾았는데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선발 인원만 그런 것이지 실제 등록 회원은 500명이 훨씬 넘었다. 그래서 15인승 밴이 항상 필요할 만큼 차고 넘쳤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소송이 '잘 되던 비영리단체 등산클럽'의 발목을 잡았다. 결과는 좋게 끝났지만 상처는 컸다. 더 이상 행복하기가 어려웠던 김 회장이 물러나고 구심점을 잃은 클럽은 자연스럽게 1년만에 소유하고 있던 버스와 밴을 팔았고 수 년간 은행에 모아뒀던 회비도 조용히 사라졌다. '에버그린 클럽' 이후 여러 등산 클럽이 세워졌지만 대개 수 십명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바이칼호부터 한반도까지 펼쳐졌던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반도의 삼한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김 회장은 현재 에버그린 클럽 때와는 다른 등산과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회원들이 모두 움직일 수 있는 목적지일 필요가 없으므로 소규모로 '반갑다 친구야'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한번 출발은 13명 정도로, 매주 3번 출발도 아니고 부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김 회장'이 가고 싶은 곳을 간다. 에버그린클럽이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하게 했다면 자연은 특히 산은 항상 믿을 수 있기에 마음껏 찾는다. 최근엔 충청노인회 회원 60명과 가까운 샌타바버러를 인솔해 다녀오기도 했다.     등산 전문가로 '미국 50개 주 최고봉'을 방문하고 책까지 낸 바 있는 김 회장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우선 대륙 횡단이다. LA에서 출발해 플로리다 키웨스트를 찾았다. 25일 코스로 미국 자연을 한껏 즐겼다. 종단도  LA를 출발해 시애틀을 15일만에 갔다 왔다. 보스턴으로 날아가 메인주 대서양에서 랍스터를 즐겼다. 조지아주로 가서 테네시 멤피스를 거쳐 블루리지 파크웨이를 돌아봤다. LA에서 회원들과 버스로 갈 수 없었던 곳이다. 멤피스에서는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는 돼지갈비도 맛봤다.   그의 일상은 여느 팔순 시니어와 다르지 않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7시쯤 운동을 한다. 에코파크 주위를 2바퀴 돈다. 유튜브에서 여행과 음악 동영상을 열심히 본다.     김 회장은 건설업, 제너럴 컨스트럭션(종합건설업)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나오는 비소를 취급할 수 있는 라이선스까지 갖고 있었다. 20년간 많은 돈을 벌었고 부동산 투자도 많이 했다.     '여행의 달인' 김평식 회장도 여행에 관한 버켓 리스트가 있다. 미국의 수많은 도시를 방문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와야지 했던 곳을 혼자 가볼 생각이다. 60년 넘게 지하 탄광이 불타고 있는 펜실베이니아의 '센트레일리아'도 다시 가볼 계획이다.   최근 아들이 큰 금융회사의 사장에서 회장이 됐다. 딸도 변호사로 크게 성공했다. 자녀들에 대한 큰 바람은 없고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고마웠던 순간은 바로 에버그린 클럽 버스를 살 때다. 매번 대여를 하느니 버스를 사는게 낫다고 해서 30만달러에 달하는 새 버스 비용을 내부에서 모았다. 6명이 5만달러를 내면 2년 후 원금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정말 6명이 돈을 모아왔다. 김 회장을 믿고 여행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막상 30만불을 받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며 "각 5000불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주고 중고버스를 샀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니 자신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실감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 바로 부동산 폭락 전, 1990년대 초반 가졌던 부동산이다.   "중앙일보 건물 옆 7가일대 땅이 모두 내 소유였죠. 그런데 내 재물이 아니라는 걸 내 손에서 떠나고 난 뒤에 알았고, 이제는 아깝거나 아쉽다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그동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는데, 그냥 나를 지나간 것이지."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행복 에버그린클럽 비영리단체 등산클럽 에버그린클럽 초대 이들 등산클럽

2023-10-29

[리얼 시니어 스토리] 팬데믹…비즈니스 닫았지만 봉사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비즈니스를 닫을 수 밖에 없었지만 계기가 돼 봉사 활동에 더 진심인  사람이 바로 정종오 관장이다. 그는 1949년생이다. 두 아들을 함께 키운 부인은 지난 2010년에 별세했지만 그의 삶은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와 같은 태권도인을 걷고 있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LA에서 충효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운영했다. 큰 아들 민규는 한인타운에서 엘리트태권도센터로, 둘째 형수는 라팔마 충효태권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 관장은 이제 도장은 포기했지만 장소를 렌트해서 태권도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월수금 오후 5시부터 1시간씩 태권도를 가르치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원래 그는 태권도 사범으로 태권도를 통한 선교 활동을 원해서 1984년도에 충효태권도를 세우고 동시에 세계 선교 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이 협회를 통해 39년간 어려운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각종 선교단체에 선교 헌금을 전달했다.     또 다른 직업은 한의사다. 1986년 가주 한의사자격증을 따고 '약손한의원'을 개원해 어려운 한인 시니어들에게는 무료로 인술을 펼쳐왔다. 1991년 한의사협회 부회장 시절엔 가주 한의사 25명을 이끌고 중국 장춘 중의 대학에서 임상 실습을 다녀오기도 했다. 2021-2022년엔 가주 한인 한의사협회장을 맡기도 했고 이어서 미주 기독한의사 협회장으로도 봉사했다. 또 이민 오기 전에 일했던 대한항공 보안승무원 동료를 모아 1983년엔 모임도 만들어 역시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하루 일과는 주3회 새벽 그리피스 천문대로 올라가 정상 밟기를 한다. 1시간 걸리고 8000보쯤 걷는다. 이외 시간은 한인 사회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봉사도 하고 봉사할 일을 찾기도 한다. 정 관장은 "할 일이 있는 것은 건강과 직결된다고 믿고 있다"며 "건강을 위해서 3개월마다 보약을 먹고 있는데 벌써 30번째 먹고 있어 보약의 힘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버켓리스트가 아쉽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경제적인 한계 등으로 여행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회를 만들어 캐나다와 미국 대륙 횡단, 남미 선교 여행을 마칠 계획이다. 건강하니 문제가 없다.     지난 4월 중순 기독한의사협회 회원 20여 명과 함께 키르키스탄을 방문해 3박 4일간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귀국 길에 3박 4일간 튀르키에 성지순례도 가졌다. 튀르키에 선교사에게 지진 성금 5000달러도 전달했다. 앞으로 나바호 인디언 의료 선교를 계획 중이다.     도장을 운영하면 아무래도 매달 렌트 비용이 부담인데 클래스만 열고 있어 큰 부담이 없다. 그래서 10월부터 수요일 그룹 레슨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는 "오랜 기간 운영하던 도장을 코로나로 인해 닫아서 매우 섭섭했다"며 "하지만 지금 오히려 홀가분하고 좀 가볍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은 인생도 봉사하며 남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믿고 있다.   두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님 믿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 항상 기도하고 있다.   한편 정 관장은 "우연히 제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을 직접 들었다"며 "아마도 학부모나 여성 환자로부터 감사의 점심 대접을 받을 때가 있다. 사양하기 어려워 응하는데 자주 상대가 바뀌므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마웠던 분도 몇 분 꼽았다. 한국에서 주공 주택에 당첨돼 계약금이 필요했는데 월급의 30배나 되는 통장을 주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던 숭일중학교 교감선생님이 한 분이고 다른 한 분은  LA에서 충효태권도를 시작할 때 디파짓 2000달러를 내주신 당시 우일여행사 강우봉 사장이다. 이외 행사 때마다 도와준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아쉬운 일도 있다. 충효태권도장이 잘 될 때에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선교 장학금, 선교 헌금 등으로 많이 나눴는데 지난 2010년 작고한 부인이 당시에 "그 중에 조금이라도 가족을 위해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또한 한인 사회 행사에는 발 벗고 나서서 참가했지만 두 아들의 학교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해서 두 아들이 서운해 한 점이다.     정 관장은 앞으로 못 다한 교회 봉사, 선교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비즈니스 봉사 봉사 활동 한인 한의사협회장 라팔마 충효태권도

2023-10-15

“한인·흑인·라티노 이민 애환은 하나”

“한인, 라티노, 흑인사회의 이민 역사와 고민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세 개의 커뮤니티가 지나온 100년 동안의 미국 이민 역사를 소개하고 함께 이해하는 자리가 마련돼 학생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됐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7일 오전 LA한국교육원에서 200여 명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 기념 타커뮤니티와의 대화’ 행사를 열었다. 연사로는 한인사회에서는 제프 김 애너하임 통합교육구(AUHSD) 교사, 라틴 커뮤니티에서는 카탈리나 리프 이민법 변호사,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세나잇 아두마스 아프리칸 코얼리션 대표가 초대됐다.   김 교사는 한인사회의 이민 시기를 50~60년대, 70~90년대 그리고 이후로 구분해 선배들의 특징과 애환을 소개했다.   그는 “한인사 수업을 주도하면서 50~7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부모 세대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겪은 부모들을 이야기는 실제로 엄청난 것이며 여러분들이 크게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프 변호사도 “주로 국내 노동력을 위해 시작된 라틴계 이민의 역사는 200년을 넘어서면서 아픔과 고통을 여전히 품고 있다"며 “아직도 라틴계 이민자의 권리와 행복은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소개했다.   아두마스 대표는 “흑인의 개념은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개별 출신 지역을 망라해 흑인 이민자들이 이민 과정은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며 “흑인 사회는 정신 건강과 세대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한인 사회와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진행을 맡은 김도형 이경원리더십센터 소장은 학생들에게 도산 안창호, 안수산 여사, 찰스 김, 김영옥 대령 등에 대한 퀴즈를 내 관심을 유도했으며, 답을 맞춘 학생들에게 한인 사회와 인물들을 다룬 책을 나눠주기도 했다.     환영 메시지를 전한 김 총영사는 “모든 이민자 사회는 고유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오늘 세 커뮤니티가 나눌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선열들의 소중한 경험과 이를 통한 깨달음이 아닌가 싶다”며 “동시에 우리가 조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청년 여러분들을 통해 마련된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는 이경원리더십센터, 파바 월드, 라틴장애인연합회(UDLA), 한인타운청소년회관 등이 후원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이민자 스토리 라틴계 이민자 흑인 이민자들 대화 행사

2023-10-09

[리얼 시니어 스토리] "50세가 넘어 민간 군목으로 갔던 이유는"

  "지금은 한인타운이 LA의 손꼽히는 명소 지역이 됐지만 45년 전에는 정말 볼품 없는 거리였습니다. 차이나타운에 비교하기 부끄러운 그렇고 그런 거리였죠.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은 한국정부도 미국 정부도 아닌 한인들의 힘이었습니다."   한인으로 구성된 경제 단체중에서 가장 오랜 된 곳 중 하나가 바로 '봉제협회'다. 그 중요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한때 한인타운.한인사회로 들어오는 2가지 큰 '돈줄'을 시니어들의 웰페어(SSI)와 봉제분야서 벌어오는 자금으로 인정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집도 팔고 투자도 받고 해서 한인사회에서 한인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가 가능하지만 초창기 한인타운, 올드타이머들은 맨손으로 주류사회에서 돈을 벌어와 한인타운을 먹여 살렸다.   초창기 봉제협회를 이끈 인물중 한 사람이 바로 박철웅 일사회장이다.     1949년생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올드타이머가 된 덕분에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1985년 봉제협회장을 맡았다. 한인 여성들이 '밟아라 삼천리'라는 유행어가 있었듯이 누구나 이민 초기에는 봉제공장에서 포장, 실밥 뜯기 등 뒷일로 시작해 싱글 재봉틀, 오버로크, 커버 스티치까지 배워 돈을 벌었다. 다른 일에 비해서 돈벌이가 나았던 덕분에 한인들은 대졸자도 재봉틀 앞에 앉았다. 원래 손재주가 좋았기에 돈이 몰리자, 시샘하는 정부를 등에 업은 타인종들의 견제가 들어오고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서 권익단체를 만든게 '봉제협회'다.   박 회장은 그래서 돈도 벌고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30대 중반인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면서 "다운타운 라이온스클럽 회장, 평통위원 등 여러가지 기회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했다. 상훈도 따라왔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 공로상(1982), LA톰 브래들리 시장 공로상(1985)을 받았다. 협회와 한인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인들을 후원했던 덕분이다.   하지만 한인사회와 한인타운은 지켰는데 자신의 비즈니스는 그렇지 못했다.   1994년 대구에서 목사 안수(대한 예수교 장로회 경북노회)를 받았다. 1996년 남가주한인교회 담임 목사가 됐다. 2002년엔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앙 간증집도 냈다.   200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민간 군목이 됐다. 통일전망대교회와 22사단 새생명교회 담임 목사로 봉사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2011년부터 봉제 및 의류업 사업자들을 돕는 '파커 비즈니스 컨설팅'을 운영했고 2020년 팬데믹을 계기로 은퇴했다.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3마일을 걷는다. 신문을 보고 아침을 먹고 성경을 1시간 읽는다. 기도하고 평통 출신들을 모아서 만든 일사회 모임을 준비한다. 캠핑에도 진심이어서 계절마다 캘리포니아 구석구석을 누볐다.     부인(1956년생)과 1남 2녀들을 뒀다. 자녀들에게는 신앙생활을 권면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지속적으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어 교육을 강조한다. 한글과 한국어를 잘해야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진다고 믿고 있다.     1987년 제 4기 평통위원을 역임했고 2009년엔 LA평통 부회장을 맡았던 박 회장이라 세상에 바라는 것은 역시 한국의 미래다. 예전에 비해서 너무 좌우가 분열돼 있고 심지어는 좌우 모두 속에서 또 분열돼 있는 양상이어서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해야 하는데 그저 말뿐인 것같다"면서 "상대의 생각을 듣고 대화로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공통 분모는 조국에 대한 사랑인데 지켜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통합의 정신을 기조로 노력하면 결국엔 북한도 변화하고 평화통일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통일교재도 집필했다)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고 있어도 이끌어 줄 사람, 멘토가 없습니다. 이제 한인사회를 위해서 성공한 선배들이 더 많이 멘토가 되야 합니다."   막상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순간도 있게 마련. 박 회장은 "너무 일찍 성공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면서 "젊어서 또 어려서 그랬지만 너무 일찍 성공에 취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또 "인생을 길게 보고 큰 뜻을 품고 탄탄하게 세워 부를 쌓아서 도모했어야 했다"며 "세상을 너무 좋아했고 세상을 즐긴 것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후배들을 만나면 뜻을 세우고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나가라는 조언을 한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민간 군목으로 갔던 이유를 들었다.     "한국이 선교사를 해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중 하나인데 막상 한국의 농어촌에는 빈 교회가 많습니다. 미자립교회다 보니 목사가 없어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편 박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한 중앙일보 오피니언 지면에 연재중인 칼럼 등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해 출간할 예정이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민간 군목 초창기 한인타운 민간 군목 한때 한인타운

2023-10-08

[리얼 시니어 스토리] 후배 기업가 돕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AI공부

"항상 마음에 뒀던 AI공부 시작했는데 잘 익혀서 마음 맞는 후배에게 도움 주고 싶습니다."   UCLA석좌교수 출신 한홍택(1942년생) 박사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에 주식시장과 함께 시작된다. 투자한 주식과 시장의 변동을 주시하며 부인 백훈(1942년생) 여사와 1시간 정도 집 주위를 산책한다. 사는 곳이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로로는 제법 경관이 좋다. 오후 1시  주식시장이 끝나면 관리하는 웹사이트를 정리하고, AI를 인터넷으로 공부한다. 마당 손질 등 잡일을 하며 오후를 보낸다. 또 한 달에 4번 줌으로 진행하는 세미나 포럼, 과학기술 포럼, 기업 라운드테이블, 경험을 공유하며 배우는 해피아워(Happy Hour) 등에 참석할 준비를 한다.   한 박사는 "UCLA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도 계속 공부했는데 지금도 공부한다"면서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 발달돼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60학번) 졸업 후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57년 전의 일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21년 후인 1992년 남가주로 오는 동안 직장을 6번이나 옮겼다. 한 박사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이동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2번이나 집을 떠나 임시였긴 하지만 타향살이를 했다. 소위 미국에서 말하는 7년의 근지러움(Seven Year Itch)이 민망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의 변명은 가능하면 여러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또 경력과 가족에게 더 맞는 직장과 도시에서 살려고 했던 것이다.   남가주로 이사 온 후에는 UCLA 기계항공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2009년 그동안의 미국 경험을 살려 공헌할 기회가 생겨, 갑자기 한국에 나갔다가 4년 후에 돌아와 2013년 전문직에서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UCLA에서는 별 준비할 새 없이 조기 은퇴한 셈이다.   "은퇴를 하니 가장 좋은 것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남의 간섭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립연구소와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다가 은퇴하니 그동안 꽁꽁 묻혀 두었던 사업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직접 발휘하기에는 다소 늦었고, 그 대신 간접적으로 마음에 맞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그 회사의 경영을 엿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아울러 항상 흥미는 있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던 AI도 인터넷으로 배우기로 결정했고, 비영리 단체를 위해서 웹사이트와 줌을 이용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주식 투자는 앞으로 10년 후의 목표액을 세워 놓고, 얼마 전 시작한 모교와 동창회의 장학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며 "앞으로도 힘이 있는 한,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좀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AI 공부도 마음에 맞는 후배 기업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고, 웹관리는 계속할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건강해야 하니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세자녀(혜련, 혜진, 진이)들에게는 자기대로의 꿈을 마음껏 펼치며 남을 배려하고 남과 나누는 삶을 살기 바란다고 전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연속인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독재하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속히 인류 모두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마웠던 사람 일, 순간에 대한 질문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다섯분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줘서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유학을 오게 해 준 이해 박사, 학위를 받도록 도와주신 버논 뉴버트(Vernon Neubert), 월터 존제미스(Walter Jaunzemis) 지도교수, 전문 분야에서 꿈을 펼치게 해 준 스티븐 차이(Stephen Tsai) 박사, 호암상을 추천해 준 한창대 교수를 꼽았다.     한 박사는 "평범하게 산 인생이라 별로 후회되는 일은 없다"며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었을 때에도 그 때문에 배운 것이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지 자녀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한국을 나갔던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홍택 박사의 약력=경기도 광주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1964), 펜스테이트 석박사(1971, 공업역학), 미공군항공재료연구소(1972~1978), 워싱턴대 교수(1979~1986), 펜스테이트 석좌교수(1986~1992), UCLA석좌교수(1992~2009), 삼성호암상 공학부문 수상(1999).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기업가 ai공부 후배 기업가 ucla석좌교수 출신 박사 호암상

20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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