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문예마당] 무언의 가르침

  오랜만에 신문에서 훈훈한 기사를 읽었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에 놓인 시주함에 누군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27년 전 그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치려 했던 사람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어린 소년이 시줏돈을 훔치러 갔다 스님에게 들켰던 모양이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IMF 외환위기 시기라 사찰의 시주함이 털리는 일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편지는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습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 통에서 돈을 꺼냈습니다. 약 3만원 정도로 기억납니다”로 시작됐다. “그런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글 말미에는 “곧 아기가 태어날 거 같은데 아기에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 스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주함을 도둑질하다 스님에게 들켰지만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간 그 소년은 그날의 일을 혼자 간직한 채 예비 아빠가 된 것이다. 그리고 27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아 시주함에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은 것이다.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때 소년의 어깨를 잡았던 스님은 지금도 자장암에 있는 현문 스님이라는 분이다. 현문 스님은 “그 무렵 IMF로 사람들이 너무 힘든 것을 알았기에 소년을 그냥 보낸 후 그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날 ‘사건’은 소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편지에 쓴 걸 보면 스님의 무언의 큰 가르침이 소년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것 같다. 만약 스님이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면 그는 세상을 원망하며 더 깊은 범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현문 스님은 손편지에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돌아온 감동적인 사연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불에 등장하는 장발장과 미리엘 신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리는 일곱명의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돼 19년 감옥살이를 하며 세상을 증오한다. 가석방 후 이리저리 떠돌게 되지만, 전과자인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는 없었다. 마침내 미리엘 주교가 그를 받아들여 숙식을 제공하는데 장발장은 성당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병사들에게 붙들린다. 장발장을 끌고 온 병사들에게 주교는 자신이 은식기를 주었다며, 오히려 장발장에게 ‘은촛대는 왜 그냥 두고 갔느냐’고 말했다. 이후 장발장은 선한 삶을 추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는 타임(TIME), 라이프(LIFE),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같은 영어 잡지와 영어 신문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상대의 전신인 고상 출신인 아버지가 어쩌다 그렇게 영어에 심취하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당시 인텔리들은 서구 문물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였다. 아버지는 가끔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지?” 라고 물으셨다.  나는 ‘그랑프리’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래도 아는 척하며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얼버무렸다.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 영어를 잘하시는 아버지가 왜 내게 그것을 물으셨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얼른 내 방에 들어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grand prize) 라는 것을 알고는 무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와 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배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영자 신문을 불쑥 내밀면서 한 기사를 번역해 보라고 하셨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버지가 또 나를 테스트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낑낑대며 번역을 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내심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했지만 그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부드러운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궁색한 여자가 남편 덕에 여왕처럼 호화롭게 사는 여고 동창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그것이었다. 여학생 때는 학교라는 울타리와 동일한 교복으로 인해 친구들 간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이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특히 여성은 결혼을 잘하고 못함에 따라 인생행로가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딸에게 그런 여자의 운명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무언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지식과 깨달음을 얻고는 했다.       노자에 나오는 ‘불언지교(不言之敎)’는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는 뜻이다. 소년이 시주함의 돈을 훔치려 했을 때 스님이 소년의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어 제어한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 때문인지 그 마음은 다 헤아리고 있다. 그러니 못 본 것으로 해 두마. 그러나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   용서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시 스님이 베푼 무언의 가르침과 용서가 자칫 빗나갈 뻔한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현문 스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가르침 무언 시절 아버지 영어 신문 그날 스님

2024-10-10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삶” 강조

지난 22일 시카고 불타사 보현 관음절에서는 해남 대흥사 상월 보선 스님의 주관 아래 수계법회가 열렸다.     법회에 앞서, 시카고 중앙일보는 지난 20일 보선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님의 시카고 첫 방문 소감과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스님은 수계의 의미에 대해 “수계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맹세”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 수계법회를 통해 불자들에게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으로 오계(五戒)를 들었다. 스님은 오계가 불교 수행의 핵심이라며, 이를 통해 불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계는 불살생계(생명을 죽이지 말라). 불투도계(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불사음계(성적으로 깨끗한 삶을 유지하라). 불망어계(거짓말을 하지 말라). 불음주계(과음을 삼가라) 등이다.   또 스님은 삼취정계(三聚淨戒)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섭선법계, 섭중생계, 섭률의계의 실천이 불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인 이민자들에게 특히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으며,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오계와 삼취정계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하 반야 바라밀의 수행을 통해 고통의 세계에서 행복의 세계로 넘어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불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웃과 더불어 하나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가 하나라는 인식을 통해 다툼과 괴로움이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보선 스님은 시카고에 대해 “공업도시라서 공장만 많을 줄 알았는데, 도시가 매우 발전되어 있고, 건축물들이 아름답고 호수와 어우러진 야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Luke Shin이웃 시카고 보선 스님 시카고 중앙일보 이번 수계법회

2024-09-23

40일간 1만마일…길에서 길<道>을 찾다

지명 스님에게 여행은 수행이다.   구름 따라 물 따라 미대륙을 돌아다닌다. 자연과 인간 세상을 직접 마주하고 깊이 관찰한다. 불교 용어로 풀자면 ‘만행(萬行)’ 중이다.   지난 16일 LA 반야사(주지 현철스님)에 잠시 들른 지명 스님을 만났다. 다시 떠날 채비를 갖춘 스님에게 만행의 순간들을 물었다.   지명 스님은 빈손이다. 가진 게 없다는 건 착시일 뿐이다. 여행 중 느낀 공포는 실체를 보게 했다.   지명 스님은 “처음 여행을 하는데 어느 순간 낯선 곳에서 갑자기 차량과 여행용품 등이 털리진 않을까 두려웠다”며 “순간 내가 얼마나 잃을 것이 많길래 이런 공포를 느끼는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행은 지난달 5일 LA에서 시작됐다. 약 40일간 워싱턴, 유타, 오리건, 캐나다 서부 등을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반야사는 일종의 베이스 캠프다. 그간 달린 거리만 1만2000마일이다. 잠시 차량 등을 정비하고 다시 만행의 길로 나서기 전이다.   지명 스님은 고승이다. 한국의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의 주지를 지냈다. 지금은 법주사에서 참선을 지도하는 ‘조실’이다. 승려들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다.   그런 고승이 고난을 마주하겠다며 만행의 길을 택했다. 그것도 광활한 아메리카대륙을 말이다. 길 위에 고난은 늘 있다.   지명 스님은 “다니다 보면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따라다니기 마련”이라며 “작게는 흔한 화장실조차 때론 찾는 게 어렵고, 넓은 땅을 다니다 보면 길을 헤매기 일쑤”라고 말했다.   만행의 길을 자처한 지명 스님도 현실과 마주한다. 한번은 규정 위반인지 모르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차박을 하다 공원 직원에게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낯선 길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경험들이다. 깨달음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모든 여행의 순간이 수행인 이유다.   왜 미국을 만행의 장소로 택했는지 물었다. 그는 한국보다 더 넓은 땅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지명 스님은 “소승의 유한한 목숨이 무한한 대자연의 생명을 마주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삶의 경계를 느낀다”고 답했다.   두 눈에 담은 세상을 혼자만 간직하는 건 도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스님이자 동시에 여행 유튜버다. 만행의 매 순간을 유튜브(채널명 Jm S)에 올리고 있다.   지명 스님은 “이번 여행이 가능하게 차량 지원 등으로 도와준 이들이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며 “그들에게 대자연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드리고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잠은 주로 차에서 잔다, 통조림, 견과류, 맥반석 계란 등 최소한의 식량으로만 허기를 달랜다. 그 가운데 유튜브는 게을리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만큼 타인에게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효율적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편집도 스스로 한다. 가끔 샤워나 빨래 등을 위해 머무는 모텔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여행 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상에는 늘 대자연의 절경과 만행길 가운데 겪는 번뇌, 깨달음 등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여름의 수행 기간은 하안거, 겨울은 동안거다. 이 시간을 제외한 ‘해제 기간’이 되면 지명 스님은 만행을 떠난다.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한 적도 있다. 지난 2004년의 일이다.   이때 지명 스님은 4개월간 9000마일이 넘는 거리를 ‘바라밀다(완전한 상태)’라는 이름의 요트로 바다를 건넌 적도 있다. 당시 큰 파도들 역시 지명 스님에게 공포와 깨달음을 동시에 안겼다.       지명 스님은 “아무리 큰 파도가 치고 폭풍이 온다 해도 모든 것은 반드시 지나간다”며 “이를 이겨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불경기라고 입을 모은다. 살기 어렵다는 푸념이 곳곳에 가득하다. 지명 스님은 “언젠가는 분명히 지나갈 일”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7일부터 다시 떠났다. 대자연을 향해 만행의 여정을 시작했다. 앞으로 한 달간 캐나다 퀘벡 등을 비롯한 동부 지역을 여행한다. 만행의 여정이 끝나면 다시 LA로 돌아와 귀국할 예정이다.     지명 스님은 운전대를 잡고 자연과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만행의 길 끝에는 늘 깨달음이 기다린다. 여행의 참 맛이다.  최준호 기자 choi.joonho1@koreadaily.com지명스님 미대륙 지명스님 미대륙 태평양 횡단 지명 스님

2024-08-25

[문예 마당] 진짜 나를 찾기

  최근 법정 스님이 창설한 시민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진짜 나를 찾아라’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법정 스님의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스님이 생전에 강조한 절제, 친절, 공생 등 삶의 자세를 담고 있다. 자기 존재를 깨닫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 것을 강조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법정 스님의 어록에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친절에는 한도가 없다. 무한히 펴서 쓸 수 있는 우물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옛날과 달라서,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온다”  “삶은 미래가 아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등 현대인에게 맑고 향기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이 많다. 곱씹을수록 깊은 의미가 우러나는 말들이다. 이 책을 읽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나의 내면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병적으로 수줍음이 많았다. 체육 시간이면 무릎 위로 껑충 올라간 ’부루마‘라는 체육복을 입어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체육 시간이 정말 싫었다. 또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남이 원하는 나로 살아왔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려 애쓰며 거절할 줄을 몰랐다. 친구가 영화 본 이야기를 하면 나도 본 영화임에도 안 본 것처럼 끝까지 들어주고, 학교 준비물을 이미 샀음에도 친구가 함께 가자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갔다. 그러니 자연히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로 산 셈이다.   서울의 변두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학교는 명문 여학교였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부자와 권력자의 딸들이 많았다. 여러 면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학생들 틈에서 점점 기가 죽었다. 시간표에 따라 가방을 싸야 하는데 매일 같은 책을 넣고 다니다 담임선생에게 들켜 교무실로 불려가 매를 맞기도했다. 학교 다니기가 싫었다. 꿈 많은 여학교 시절을 책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우리 시대부터 대학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미국의 SAT 같은 국가고시를 보고 그 성적으로 대학을 들어가야 하는데 시험 보는 날 토사곽란으로 시험을 망쳤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가게 됐다. 대학생활에 재미를 못 붙여 학교 배지도 안 달고 다니며 수업엔 빠지기 일쑤였다. 3학년 때였다. 채플 시간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와글와글 떠들어 대니 김옥길 총장이 설교를 멈추고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 줄 모르십니까? 밖에서는 그 자리에 앉고 싶어도 형편이 안 돼서 울고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라며 언성을 높이셨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식으로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낭비했다.     결혼해서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낳았다. 말썽꾸러기들과 지내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다. 하루는 손님이 다녀간 후, 큰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왜 목소리가 두 개야?” 어느 것이 내 진짜 목소리인지 나도 모르겠다.     50세 가까이 돼서 남편을 따라 LA로 가게 되었다. 새로운 삶을 자신감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LA에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예쁘고 유명한 친구가 있었다. 여고 동창에 대학 동기, 같은 과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냈다. 그녀 역시 나의 존재감을 잃게 하였다. 남들은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르는데 왜 자존감이 떨어지고 행복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평범한데 내 주위엔 이상하게도 예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항상 나보다 예쁘고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니 스스로에 만족할 수 없었다.  사소함과 평범함의 가치를 몰랐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은 한 정신과 의사의 특별한 행복론이 담긴 책이다. 환자 중에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없음을 깨닫고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해결책을 찾으러 진료실 문을 닫고 여행을 떠난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한 여정이다. 꾸뻬씨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행복의 진리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그의 여행 수첩에 담긴 행복에 대한 첫 번째 처방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꾸뻬씨가 여행 중에 만난 노승은 “첫 번째 실수는 행복을 목적이라고 믿는 데 있다. 종종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고 목표로 삼지만,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삶을 즐기고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라고 말했다.   어쩌다 60세가 넘어 등단하게 됐다. 교보문고 신간 코너에 내 에세이집 '내 욕심마저 훔쳐간 도둑'이 마침 새로 출간된 김형석 교수의 '100년을 살아보니',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인 '고양이'와 나란히 전시된 걸 보고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삼성동 코엑스몰에 갔다가 우연히 그곳 관광명소인 '별마당 도서관'에 내 책이 진열된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에세이집 출판 후 친구, 지인들의 격려가 나에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각자 타고난 그릇이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 자기 분수를 깨닫고 현재에 충실한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 말년에 그토록 열등감에 시달리며 다니기 싫어했던 여학교로부터 모교를 빛낸 동문에게 주는 '영매상'을 받았다. 졸업생은 누구나 탐내는 명예스러운 상이다. 내가 누리는 복의 작은 부분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행복해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나는 모르고 살아왔다.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진짜 나'가 아닌 '가짜 나' 즉 타인이 원하는 것들만 추구하며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읽은 글이 떠오른다. “무엇이 되든지 자기가 되라. 남의 것을 주워 모으는 모자이크 인생을 살지 말라. 너만의 장인이 되라.”   배광자 / 수필가문예 마당 수필 행복 여행 법정 스님 여학교 시절

2024-06-13

전 불교 중앙 박물관장 탄탄 스님

    조계종 불교 중앙 박물관장, 연예인전법단장 등을 역임한 탄탄 스님이 김용하 몽고메리 한인회장과 함께 본보를 찾았다.     탄탄 스님은 "10여년 전 워싱턴에서 살아가며 인연 맺은 지인들과 반가운 만남을 갖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김용하 회장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찾는 막역한 사이"라며 스님을 소개했다. 이들은  "종교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으로서 맺은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라며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탄 스님은 이번 방문 동안 동포들이 마련한 '삼일절 기념식' 등에 참석하며 "한인사회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예전에 만났던 많은 분들이 이제 '시니어'로 활동하는 데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꼈다" 고도 이야기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인 사회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면서 "워싱턴 지역에 '불교 소사이어티'를 조직해 종교간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실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탄탄 스님은 '시인'이자 '작가'로 다수의 저서를 발간 했으며, 현재 용인대학교 동양무예학과 객원교수, 동국대 대학원 객원교수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박물관장 불교 탄탄 스님 불교 중앙 박물관장 연예인전법단장

2024-03-05

[삶의 향기] 세상은 아름다운 꽃밭이다

산색은 벌써 가을을 머금었다. 밤나무 아래 이른 밤송이가 떨어져 뒹군다. 갈색빛 작은 밤송이를 두 손으로 잔뜩 쥐어들고 횡재했다는 표정을 짓는, 산책길에 동행한 대중들 덕에 한참을 웃었다. 아침이면 산안개 가득하고 낮에는 햇볕이 따갑다. 덕분에 나무와 곡식 열매가 익어간다. 텃밭 가꾸는 손길이 분주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입안 가득 향기를 담아주었던 채소를 뽑아낸 자리에 배추·무·상추·시금치·고수 등 가지가지의 가을 씨앗을 뿌렸다. 할 일을 마친 듯 개운하다.   여름철 학생에게는 방학이 있고, 직장인에게 휴가가 있다. 산중 절에서도 뭔가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여, 매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삐 지내고 있다. 사람들과 솔바람을 나누고, 모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텅 빈 마당을 선물하기 위해서이다.   쉴 틈 없이 뛰어다닌 뒤에 맞이하는 나의 9월은, 그래서 할 일을 해 마친 고승의 마음마냥 자유롭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부지런히 정리하다가 문득 돌아보니, 지난여름에 만난 사람 모두가 내게 스승이었고 부처님이었다.   들어오는 생각 때문에 괴롭고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던 시간으로 충분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연민하는 감정, 내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라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정 나는 누구인가!’ ‘이제까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왔는가?’(김○○)   온갖 갑옷 속에 갇힌 내 모습을 보았다. 저 단단한 갑옷 속에 있는 ‘본래 고요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찾고 싶다. 다시 수많은 생각 속에서 헤매고 싶지 않다. 이제 살고 싶다. 슬픔이 계속 찾아오더라도 위로하고 그런 나를 살피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서운하다고 힘들다고만 했는데 모두 감사하다. 내가 만든 틀 속에서 생각해왔구나, 자각하며 살아야겠다.(한○○)   금강 스님께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실 때, 스님께서 일러주신 말씀, “나의 본래 마음아, 참 곱기도 하구나! 안녕? 그때야 수줍게 숨어있던 나의 본래 마음이 인사를 합니다”가 떠올랐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본래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지혜를 얻고 자비를 실천하며 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세상에 도움 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 것입니다.(최○○)   나의 룸메이트는 자식을 잃었다. 그녀의 아픈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룸메이트인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애도와 그 치유 과정을 공부한 내가 그녀의 아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나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수행의 여정을 지켜보며 오히려 그녀가 나를 돕고 있다는 걸 알았다. 최선을 다해 아픔을 직면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의 덜 익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삶과 생명에 대한 이해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손○○)   부처님은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보고 대하라고 가르치셨다. 화엄경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완전한 지혜와 자비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달마 대사는 “성인과 중생은 동일한 참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고, 혜능 대사는 “그대의 본래성품은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가르쳤다. 이렇듯 눈 밝은 선각자는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의 바탕인 완전한 근본성품을 본다.   누군가가 나를 볼 때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온전한 존재로 있는 그대로 보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불안한 눈빛을 거두고,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눈빛을 거두고, 나의 겉껍질인 게으르고, 욕심부리고, 질투하고, 짜증을 내는 마음마저도 따뜻한 자비의 마음으로 감싸주며 “너의 본마음은 밝고, 청정하고 지혜롭다”고 확인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신라 의상 스님은 화엄경 60권을 배우고 ‘화엄일승법계도’라는 한 장의 그림에 덧붙인 210자의 ‘법성게’를 지었다. 우주만물은 서로 조화롭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무한히 돕고 있다는 법계연기설과,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며 모든 중생 이대로가 완벽한 부처라는 불이중도의 깨달음이 법성게에 담겨 있다.   법성게의 첫 구절 ‘텅 빈 우리의 마음과 우주는 원만하고 조화롭다. 그 모든 현상은 움직임 없이 본래대로 고요하다’는, 깨달음의 눈으로 본다면 개개인이 부처이고 우주 전체가 진리의 몸이라는 가르침이다.   과거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이었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이 부처님이며, 내일 만날 사람도 부처님이라면, 모든 만남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 벅차게 기다려질까. 이런 마음으로 꾸려가는 삶의 모든 행위는 조화롭고 완전하다. 또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그대로가 큰 꽃밭(世界一花)이다. 금강 스님 / 중앙승가대 교수삶의 향기 꽃밭 가을 중생과 부처 본래 마음 금강 스님

2023-09-10

[마음 읽기] 고갱의 그림 ‘우리는 누구인가’

태풍이 가고 습습한 법당에 향과 초를 켜놓고 고요히 앉아본다. 거센 비바람에 온몸을 흔들던 처마 끝 풍경처럼 어수선했던 마음을 따라가니, 거기 의문 하나가 남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라는.   그러다 문득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고갱의 작품이다. 오래전, 인생을 논하며 한 스님이 내게 이 그림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 기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인생의 흐름을 묻게 하는 명작이다.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이어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작품 제목을 왼쪽 맨 위에 적어 놓았다. 나이 불문하고 모두가 느낄 만한 인생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그림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을 찾아보며 다시 또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 서 있을까?   어릴 땐 하루가 왜 그렇게 길던지 시간이 안 가서 강가의 해지는 노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인생이 짧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변한 건 젊어서는 남이 내게 준 상처를 곱씹으며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살고 싶다.   출가자든 아니든 방향만 다를 뿐, 인간의 욕망에는 쉼이 없다. 가끔 자신은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세속적 잣대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진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초월한 듯 살아도 결국 그 이면에는 명예를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에서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살펴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얼마나 휘둘리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하고 불온한 감정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돌아보면 그런 어리석은 마음작용이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밀어냈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게 하고, 외면하고 회피하도록 말이다.   중국 당나라 때, 배휴(裵休)라는 불심 깊고 학식도 뛰어난 관리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절에 찾아왔다. 마침 그 절에는 돌아가신 옛 고승들의 초상화를 모신 작은 법당이 있었다. 배휴는 법당을 안내하는 주지 스님에게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한 주지 스님은 뒷방에서 참선하는 스님을 불러와 배휴를 응대하게 했다. 그때 등장한 뒷방 스님이 바로 황벽 선사다.   선사가 오자 배휴가 다시 물었다. “스님, 영정은 여기 있는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그러자 황벽 선사가 호령하듯 말했다. “배휴여! 그러는 당신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에 배휴는 대답하지 못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힘은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힘이며, 근원적인 것을 꿰뚫어 핵심을 파악하는 안목이다. 배휴가 자기 깐에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으나, 황벽 선사는 배휴가 서 있는 자리를 외려 꿰뚫어 되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은 지금 어디 머물러 있느냐고.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객관화하여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은 쏙 빠져버리고 객관적인 척 남 이야기만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당연히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장년이 되면 주위의 친지들이 죽는 것을 보며, 부모도 친구도 이런저런 사유로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점차 자기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면서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기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그건 그렇고, 요즘엔 인공지능 얘기가 부쩍 많이 들린다. 뭣 모르는 내게는 AI가 주는 편리함보다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크다. 왠지 보이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 그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피동적으로 주어진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주는 공포감이다. 무력감과 소외감마저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나를 추동하는 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인가?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노예처럼 살아갈 것인가?   이제 우리 다시 한번 차분히 살펴보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나의 행동양식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 자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일 년 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이다.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오늘’이야말로 사랑하고 믿고 행동하고 살아가기에 최적의 날이다.” 달라이라마 존자의 말씀처럼,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고갱 그림 스님 영정 뒷방 스님 오래전 인생

2023-08-18

"괴로움 갖고 살지, 없이 살지 전적으로 내 선택"

괴로움은 마음의 작용이다. 육체의 작용은 통증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최근 한국 서울 강남구 선릉로 성암아트홀에서 200명을 대상으로 법륜 스님(사진)을 초청, '삶이 너무 버거워요. 스님, 어떡할까요?'란 주제로 대담과 즉문즉설 행사가 진행됐다. 객석에서는 수시로 웃음이 터졌고, 청중의 질문과 스님의 해법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많았다.   '법륜 스님에게 마음을 묻다'는 마음을 주제로 사회자(백성호 종교전문기자)의 즉문에 법륜 스님이 즉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마음공부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괴로움은 마음의 병이다. 첫째 내가 괴롭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이게 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둘째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셋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게 치료다. 넷째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게 마음공부의 근본 원리다. 세상만사도 마찬가지다. 갈등이 있으면 그걸 알아차리고,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제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법륜 스님은 "혼자 살아 외로워서 괴로운 사람이나 결혼해서 갈등으로 괴로운 사람이나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괴로운 사람이나 괴로움은 다 똑같다"며 누구나 괴로울 수 있다고 했다.     "괴로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혹은 전생에서 온 것도 아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운 걸 직시하면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 원인을 놓아버리면 괴로움 없는 상태가 된다. 누구나 괴로울 수 있지만, 누구나 안 괴로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중을 쭉 둘러보던 법륜 스님은 "괴로움을 가지고 살지, 괴로움 없이 살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이다"고 말했다.   또 마음공부를 할 때는 자신의 실질적인 삶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륜 스님은 "'공부 따로 생활 따로'라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건 생각으로 하는 공부를 하니까, 삶의 괴로움이 없어지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뭘 괴로워하느냐를 가지고 공부하면 생활과 마음공부가 따로 갈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사회자는 법륜 스님 저서에 있는 한 구절을 낭독했다.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허우적대지 말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주워오라. 어차피 장가간 김에, 어차피 자식 낳은 김에, 어차피 부도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라."   법륜 스님은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다. 그걸 알아차리면 단박에 깨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륜 스님은 괴로움과 깨달음을 꿈에 비유했다.     "꿈에 강도를 만나서 쫓기면 두렵다. 그런데 누가 도와주면 고맙다. 강도를 피했다고 안도한다. 이게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위로다. 그런데 눈을 딱 뜨면 어떤가. 그냥 꿈이다. 원래 강도도 없고, 고마울 일도 없다. 괴로움과 깨달음은 이런 거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는 독자와 청중이 건네는 삶의 다양한 문제들이 펼쳐졌다. 법륜 스님은 하나씩 짚어가며 이치가 담긴 해법을 풀어냈다. 스님이 건네는 유머와 청중의 폭소, 이어지는 크고 작은 깨달음으로 강연장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법륜 스님은 "이미 튀어나온 화는 방법이 없다. 화를 낸 것에 대한 과보를 받아야 한다. 죄지어놓고 모두 천당 가겠다는 건 나쁜 심보다"라며 "다만 화를 낸 뒤에라도 알아차리면 도움이 된다. 바로 사과할 수도 있다. 그럼 다음부터는 화가 탁 올라올 때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럼 멈출 수가 있다. 쉽게 가라앉을 수가 있다. 만약 또 화를 내버렸다면 빨리 사과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이외에도 힘겨운 가정사와 아이 교육 문제, 우연ㆍ필연ㆍ카르마(업 혹은 습관) 등 삶의 다양한 물음들이 쏟아졌다.     "법륜 스님께서는 출가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나요?"라는 질문도 나왔다.     법륜 스님은 "청소년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무엇이든 탐구하고 연구하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 저는 옮고 그름의 잣대가 강했다. 이런 성질 때문에 아마 명대로 못 살았을 확률도 높다"며 "불교 공부를 하면서 서로 다른 걸 이해하고 포용성이 생겼다. 이런 걸 많이 봐주는 힘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베트남.태국.라오스.튀르키예.시리아 등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두 달간 돌면서 난민촌과 재해 구호지역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벌이다 막 귀국한 법륜 스님은 이날 여독도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청중의 절박한 즉문에 일일이 마음을 담아 지혜의 즉설을 꺼냈다.   백성호 기자   ☞법륜(法輪) 스님은   1953년 울산 출생, 1969년 불가에 입문했다.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1988년)해 수행지도를 통한 구호 및 사회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2002년)을 비롯한 민족화해상(2007년) 포스코청암상(2011년) 등을 수상했다. 그의 즉문즉설(卽問卽說) 강연은 즉석에서 바로 묻고, 바로 답한다. 법륜은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할 때 정확한 물음과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   7년 전 LA 찾은 법륜 스님의 조언   "한인들 제 3의 정체성 갖고 살길"   법륜 스님은 지난 2016년에 LA를 찾았다.   당시 미주중앙일보에서 열린 강연회를 앞두고 본지는 법륜 스님과 인터뷰를 가졌다. 본지 2016년 9월22일자 A-2면〉   당시 법륜 스님은 미주 한인들에게 '희망'을 강조했었다.   법륜 스님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절망한다"며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건 가능성이고, 그 가능성을 인식하면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삶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법륜 스님은 "뜨거운 컵을 들고 있다면 '뜨겁다' 하지 말고 그냥 놓으면 되는데, '어떻게 놓아야 하는데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며 "놓는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뜨겁긴 한데 갖고 싶으니까 못 놓을 뿐이다. 욕심을 버려야 산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미주 한인들을 향해 "'나는 한국말도, 영어도 못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인으로서 미국에 산다는 '제3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열 기자괴로움 전적 법륜 스님 살길 법륜 당시 법륜

2023-07-10

[마음 읽기] 더 열심히 웃어야겠다

얼마 전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수덕사에 다녀왔다. 평소에 모시던 도신 스님의 수덕사 주지 취임식이 있었다. 도신 스님은 ‘노래하는 수행자’로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은 여덟 살 나이에 수덕사로 입산해 인곡당 법장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그동안 정규 앨범 발매는 물론 많은 공연을 하셨다. 스님은 시를 창작하고, 또 등단한 후 시집도 발간하셨다. 나는 스님의 시편을 읽을 때마다 범종 소리가 울려 퍼져오는 것을 느꼈다.   취임식에서 덕숭총림 방장인 달하 우송 대종사의 법문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감명적이었다. 스님은 절의 주지 소임이 “문수보살의 큰 지혜, 보현보살의 큰 행원으로 마당을 쓸고, 설거지하고, 웃어주고, 손을 잡아 주는 데에 솔선수범하는 것이 주지의 일입니다.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일이 주지의 역할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수행자가 사는 곳은 지심(至心)이라고 강조하셨다.   주지의 소임 자리가 낮은 곳에 있고, 보살피고 모시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요, 수행자의 본분은 더없이 성실하고 또 한결같은 일심(一心)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 말씀이 주지 소임을 시작하는 도신 스님에게 들려주는 당부이지만, 참석한 대중 또한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가해와 하대가 빈번한 이 세태에 울리는 경종으로 여겨졌다.   도신 스님의 시 가운데 ‘꽉 찬 빈 그릇’이라는 시가 있다. ‘그때도/ 여름이었어/ 비도 내리고// 쌀이 귀하던 시절/ 그게 들어온 거야// 노스님 밥 지어/ 동자들과/ 공양했는데// 노스님은/ 숟가락 소리만 컸어// 빈 그릇을/ 꿀밥처럼 드신 거지// 노스님 가시고/ 삼십여 년/ 쌀밥 보니 눈물 나네// 동자들/ 쌀밥 먹이고/ 누룽지 긁으셨대/ 참 나// 그 사랑 때문에/ 함부로 못 살았어/ 그럴 수밖에…’   이 시는 노스님의 일화를 시로 쓴 것일 텐데, 쌀이 귀하던 때에 절에 쌀이 들어와 밥을 지어 어린 동자들을 먼저 먹이고 자신은 누룽지를 긁어먹어 허기를 해결한 노스님의 그 모습이야말로 바로 하심(下心)의 구현이요, 또한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귀한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나는 도신 스님을 뵐 때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듣게 된다. 가령 스님께서는 “여기 빈 잔이 있다고 하면, 그걸 바람으로 채우면 굳이 비우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나 물질이나 욕심으로 채우면 그걸 비워야 빈 잔이 됩니다. 비울 일이 없어야 잠도 깊이 잡니다. 또 마음이라는 것도 그래요.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불이 잘 붙습니다”라고 어느 날에 내게 일러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서 무욕과 허심, 호의와 관대함, 그리고 고요하게 제어한 마음을 지니는 것에 대해 여러 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궁리했다. 아마도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은 분노가 많은 사람, 덜 유연한 사람, 어떤 여지가 적은 사람, 자기중심의 아집이 많은 사람,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한 사람은 대개 그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태우게 될 것이다. 마음을 태우므로 스스로 자초하여 불행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화를 내는 일에 대해 불교에서는 한순간 화를 내게 되면 마음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며 각별히 경계한다. 마음이 바짝 마른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도신 스님은 최근에 첫 산문집을 펴내셨다. 산문집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긴 시간을 거쳐 웃는 것을 익히고 닦았습니다. 드디어 내가 웃자 나무들이 춤을 추었습니다. 아무리 두터운 어둠일지라도 내가 웃으면 그곳에 반짝이는 별이 생깁니다. 별은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워 어둠을 소멸시켰습니다. 아, 내가 웃어야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웃어야 별이 빛난다는 문장은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웃는 사람이 되고, 내가 웃는 사람이 되면 관계하는 존재도 함께 웃는 존재가 된다는 뜻일 테다.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알되 내가 이 생명 세계 존재의 안락과 행복을 보호하고 가꿔야 한다는 뜻일 테다. 인용한 문장에서도 드러나 있는 것처럼 도신 스님은 웃는 연습을 할 것을 자주 강조하신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의 마음일세.” 불교의 말씀 가운데 나는 이 말씀을 특별하게 좋아한다. 이해하기로는 쉽지만,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거리에 내걸린 연등을 바라보면서 겸손하게 모든 존재를 대하고, 다른 생명의 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워본다. 생활하면서 웃는 연습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문태준 / 시인마음 읽기 주지 노스 도신 스님 주지 소임 말씀 가운데

2023-05-21

[기고] 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2년 7월, 해남 땅끝 미황사에서 ‘청년출가학교’라고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때 나는  스님·금강 스님과 함께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얼마 전, 청년출가학교 때 함께했던 한 청년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청룡암에 찾아왔다. 그리고 청하기를,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스님, 주례를 좀 서주세요”했다. 장례식장도 아니고 결혼식장에 와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직 젊은 독신 비구니에게, 뭐? 주례를?   순간 결혼식장의 아찔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위에서 다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달리 먹는 수밖에.     “그래 뭐, 생각해보니 독신 비구니 스님이라고 장례식만 가라는 법은 없지, 결혼식에도 가서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언약을 보증하는 증명법사가 되어주면 좋지. 아니, 이참에 그냥 주례 전문 스님으로 나서볼까?”   드디어 지난 일요일 신랑 신부 못지않게 긴장한 상태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가기 전 머릿속을 헤집던 아찔한 풍경도 지금은 행복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아마 남은 생 동안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때때로 기도할 것이다.     그간 주례를 약속한 후 일생 관심 밖이던 ‘결혼’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얼마나 많은 이유로 헤어지는지, 왜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쉽게 하는지, 독신이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에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겠다 하니,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     출가하겠다는 여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90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여자가 일생 독신으로 산다고 하면 뭐 크게 하자 있는 사람이겠거니 할 정도로 섬뜩한 선입견이 주변에 수시로 작동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야 주변 반응이 그나마 괜찮다. 결혼적령기의 남녀는 서로 합의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젠 비혼이건 독신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된 듯하다.   사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이제 다 성인인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삶에 끼어들거나 간섭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결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라서 이제는 ‘결혼적령기’라는 말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절에 오시는 보살님들도 자식들이 나이는 상관없으니 언제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편하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바람보다도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첫 주례 기념으로 오늘은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일까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아득히 먼 시간부터 서로를 그리며 찾아와 이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면, 수천생의 인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담아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정성으로 대하십시오.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생 온화한 부부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기고 결혼 사실 결혼적령기 순간 결혼식장 스님 주례

2022-06-24

조계종 무산 스님 다비식…"중생 없으면 부처도 필요없다" 화두 남기고 적멸

"불교는 사람을 살리는 종교" 강조 진제 종정 "걸림 없던 선지식 발자취" 지난 26일(한국시간) 입적한 조계종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霧山) 스님은 생전 자신의 장례를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마을장으로 치르라는 당부의 글을 남겼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나의 원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신신당부했다. 평생의 공력을 들인 백담사 만해마을(용대리)의 마을장이면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스님은 소탈했다. 설법전에서나 평소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무애(無碍) 도인, 격외 선사로 불린 이유다. 하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따를 수 없었다. 30일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조계종 사부대중, 수많은 불자와 정·관계 인사, 스님을 따르던 많은 문인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졌다. 3000여 인파가 몰렸다. 시대의 도인을 보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그만큼 절박했다. 이날 오전 10시 설악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흥사 설법전. 영결식은 명종, 삼귀의례, 영결법요, 헌다·헌향, 행장 소개, 영결사와 법어, 추도사, 조사, 조시의 순서로 진행됐다. 영결식을 마친 스님의 법구는 남한 최북단 사찰인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로 이운됐다. 오후 1시부터 다비식이 치러졌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이런 외침과 함께 불길에 휩싸여 걸림 없는 도인으로서 이승에서의 시간을 마감했다. 평생의 도반이자 절친이었던 화암사 회주 정휴 스님은 "스님이 남긴 공적은 수미산처럼 높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그 공덕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수행자의 하심(下心)을 보여주셨다"며 "무산당, 편히 쉬시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조계종 진제 종정은 법어에서 "설악의 주인이 적멸에 드니 산은 슬퍼하고 골짝의 메아리는 그치지 않는다"며 "무산 대종사께서 남기신 팔십칠의 성상(星霜)은 선(禪)과 교(敎)의 구분이 없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에 걸림이 없던 이 시대의 선지식의 발자취였다"고 회고했다. 생전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근배 시인은 조시에서 "그 높은 법문 그 천둥 같은 사자후를 어디서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백세(百世)의 스승이시며 어버이시며 친구이시며 연인이셨던 오직 한 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오늘의 고통, 중생의 아픔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돼야 한다." 영결식 도중 스님의 육성 법문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방영되자 식장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이근배 시인은 스님이 평소 "내가 중인가, 가짜지. 나는 낙승(落僧)"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낮추면서도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았다. 거액을 들여 조성한 만해마을을 결국 동국대에 기증하고, 만해축전을 만들어 만해상을 운영하면서도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조시인을 포함해 많은 문인이 스님을 따른 것도 "나는 통장이 없다. 중이 무슨 통장이냐"며 어려운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담사 유나 영진 스님도 "스님은 평소에 재산을 모아두는 분이 아니셨다. 있으면 있는 대로 주위분을 도와주셨다. 또 그렇게 하신 일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셨다"고 전했다. 용대리 주민과 노인회, 형편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남 모르게 내주었지만 워낙 내색을 하지 않아 주위 스님들도 내막을 자세히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스님이 평소 '살아 있는 화두'를 강조한 것도 불교가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본래면목, 뜰 앞의 잣나무 같은 화두는 1000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문답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없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없는 것과 같다. 부처는 중생과 고통을 같이해야 한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라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여야 한다는 뜻이다. 스님은 생사에 연연하지 않는 도인답게 임박한 죽음을 기꺼이 끌어안으려 한 듯하다. 대표작 선시(禪詩) 33편을 묶어 지난달 출간한 『무산 오현 선시』에는 유독 죽음에 관한 작품이 많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 수행자의 한평생도 하루살이의 하루에 불과하다는 경지를 노래한 '아득한 성자'다. 입적 닷새 전인 21일 오후, 가깝게 지내던 문인들이 찾아갔을 때 스님은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불사르겠다는 듯 이미 20일가량 곡기를 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날 스님을 만난 김지헌 시인은 "워낙 목소리가 강하고 정정해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만나뵌 지 닷새 만에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영결식과 다비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최문순 강원도지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주호영 의원, 이양수 의원, 황영철 의원, 심기준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성낙인 서울대 총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설가 조정래, 시인 오세영·김제현·김초혜·신달자·김영재·한분순·이지엽·홍성란·이홍섭·장석남·문태준·고찬규, 산악인 엄홍길씨 등이 참석했다. 백담사 측은 "이날 오후 늦게 무산 스님의 1차 사리 수습을 마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종 수습이 끝나도 몇 과를 수습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을 고려 중이다. 물질에 연연하지 말라고 했던 스님의 유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신준봉·백성호 기자

2018-06-04

대한불교 조계종 미동부 해외교구…신임 교구장에 지광스님 취임

대한불교 조계종 미동부 해외교구(이하 미동부 해외교구) 교구장에 지광스님(뉴욕원각사 주지)이 취임했다. 미동부 해외교구는 지난 1일 불광선원에서 상반기 정기총회 및 교구장 이.취임식을 열고 새 교구장에 지광스님을 선출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2년 동안 미동부 해외교구를 이끌게 될 지광스님은 이날 취임 인사에서 "뉴욕.뉴저지 불교의 포교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직전 교구장인 휘광스님(불광선원 주지)은 보스턴에 있는 문수사의 도범스님과 필라델피아 화엄사의 법장스님, 토론토에 사는 양익스님과 함께 고문 역할을 맡아 지속적으로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 교구 사무국장은 뉴욕정명사의 도신스님이, 사무주임은 박소림 보살이 맡았으며 그 외 임원진에는 변동사항이 없다고 미동부 해외교구 측은 밝혔다. 이날 총회에선 오는 5월 열리는 제30회 맨해튼 국제 봉축법요식 준비 및 행사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미동부 해외교구는 올해 행사 내용과 관련, 한국 불교를 미 주류사회에 알리는 데 더욱 충실한 행사로 준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올해는 법요.봉축 행사를 먼저 진행하고 문화행사는 마지막 순서로 간단히 진행하기로 했다. 도신 사무국장은 "지난해까지는 한국 전통 음악 공연 등의 문화행사를 가장 앞 순서로 진행해 정작 중요한 봉축법요식은 짧게 열리곤 했었다"며 "올해 행사에선 타민족 불자들도 정통 한국 불교의 의식을 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오는 9월 시작하는 2018년 추계 동부교구 불교 교양 대학은 미동부 해외교구가 공동으로 진행함으로써 내실을 기하기로 했으며 홈페이지(www.jogyeusa.org) 활성화를 통해 교구 산하단체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이날 총회엔 뉴저지원적사.뉴욕원각사.불광선원.대관음사.뉴욕정명사 등에서 총 12명의 스님이 참석했다. 최수진 기자 choi.soojin1@koreadaily.com

2018-03-05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