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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아시아 여성으로도 최초 수상

소설가 한강(사진)이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지 8년 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수상자로 한강의 이름을 호명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을 쓴 작가라고 소개했다.     아시아 여성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24년 만이다. 〈관계기사 3면〉   한강은 유려한 문장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일찍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그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작가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중 1993년 ‘문학과사회’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했다.   2005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발표한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멀리하는 주인공을 통해 욕망과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맨부커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4년 발표한 '소년이 온다'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역사의 한 가운데 선 개인의 고통과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에 이은 또 한 번의 ‘한국인 최초’ 타이틀이었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한강은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꼽혀 왔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의 여성 작가가 수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중국의 찬쉐 등과 함께 주요 후보로 거론됐다.   매츠 말름 노벨상 종신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작가의 “역사의 상처와 직면하고 인간 삶의 부서지기 쉬움을 노정한 강렬한 시적 산문”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말름 위원장은 또 1시간 전 수상자 통보 전화에서 한강은 “다른 날처럼 보낸 뒤 막 아들과 저녁을 마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강은 이날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작가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한강은 앞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Thanks!?Thanks! Thanks!(감사 감사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올해까지 총 117차례 수여됐으며, 상을 받은 사람은 121명이다. 한강은 여성 작가로서는 역대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아시아 국가 국적의 작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이영희 기자김대중 노벨문학상 노벨문학상 수상 이상문학상 수상작 국제상 수상자

2024-10-10

“고원 선생의 문학적 지평 확산”…13회 고원문학상 수상작 선정

고원기념사업회(회장 정찬열)가 주최하는 제13회 고원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작으로 시 부문 이월란 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시산맥), 수필 부문에서는 공순해 수필집 ‘울어다오’(에세이문학출판부)가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초기에는 시 부문에서만 수상자를 냈지만 5권의 고원문학전집 중 절반이 넘는 3권이 산문집일 정도로 고원 선생은 산문문학에서도 탁월한 선구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시와 수필 두 부문에서 선정해 고원 선생의 문학적 지평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월란 시인과 공순해 수필가는 198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80년대 후반기에 삶의 터전을 미주대륙으로 옮겼지만, 그 이전 시대처럼 모국을 향한 애틋한 향수나 궁핍했던 성장시대의 추억담을 금과옥조로 삼지 않는다.     두 수상자의 작품은 60여 년 전에 미주에 첫발을 디뎠던 고원 선생의 창작방법론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또 작품 기법에서 감각적인 표현과 삶의 현장성에 대한 밀착도를 높여 독자들에게 한결 친밀하게 다가섰다.     수상 소감에서 이월란 시인은 “척박한 땅에서 이민 문학을 시작하신 고원 선생의 뜻을 기려 문학 사업을 이어가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더 좋은 글을 써서 이민 문학과 미주 문학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공순해 수필가는 “뉴욕문학동인회에서 고원 선생이 발간한 해외문학울림을 만났다”며 “고원문학상이 제정되고 13년이 흐른 지금 문학상을 받게 되어 감동의 울림이 더욱 깊다”고 밝혔다.     고원문학상은 고원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계승하고 발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의:(714)530-3111 이은영 기자고원문학상 수상작 고원문학상 수상작 고원문학상 수상자 고원 선생

2024-10-06

홍혜진 디자이너, 뉴욕 디자인 분야 활약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혜진(사진) 디자이너가 ‘에스와이피 파트너스(SYPartners)’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가 ‘2024년 웨비 어워드(2024 The Webby Award)’ 수상작 후보에 올랐다.   ‘웨비 어워드’는 뉴욕의 ‘국제 디지털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IADAS)’가 매년 9개 분야에 걸쳐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국제적 명성의 상이다.   홍 디자이너는 맨해튼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모션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한 후, 뉴욕에서 비주얼 디자이너 겸 모션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홍 디자이너는 ‘아마존(Amazon)’ ‘버라이즌(Verizon)’ ‘뉴욕 공영 라디오방송’ 등을 고객(클라이언트)으로 두고 있는 디자인회사 ‘아이볼 NYC(eyeball NYC)’의 아트 디렉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홍 디자이너는 ‘애플(Apple)’ ‘스퀘어스페이스(Squarespace)’ ‘그랩잇(Grabbitt)’ 등을 고객으로 둔 ‘DIA 스튜디오(DIA Studio)’에서 핵심 디자이너를 맡았고, 현재는 구글, 트위터, 나이키, IBM, 마스터카드 등 미국 유수의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프로덕션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발휘하며 톱 디자이너로서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히 최근 홍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애니메이터로 ‘에스와이피 파트너스’와 함께 한 ‘파워, 러브, 리더십(Power, Love, Leadership)’ 프로젝트가 ‘2024년 웨비 어워드’ 수상작 후보로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박종원 기자홍혜진 홍혜진 디자이너 '2024년 웨비 어워드(2024 The Webby Award)' 수상작 후보 2024년 웨비 어워드 에스와이피 파트너스

2024-09-24

본지, 소수계 언론상<에스닉 미디어 어워드> 2년 연속 수상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미주중앙일보가 소수계 언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지난 27일 에스닉 미디어 서비스(EMS)가 주최한 ‘2024년 에스닉 미디어 어워드(Ethnic Media Award)’에서 한인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로써 본지는 지난해 어워드에서 3개 부문(해설 보도·탐사보도·보도사진)의 상을 휩쓴 이후 2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관계기사 2면〉   EMS는 이날 오후 7시 새크라멘토 다운타운 셰라톤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본지의 ‘LA 홈리스 비상사태 선포 6개월 진단’ 기획 보도를 정치와 공공분야 개혁 부문의 최우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본지  편집국 사회부 소속의 최인성, 김형재, 장수아 기자가 기획하고 취재한 ‘비상사태 진단’〈2023년 6월 13일자 A-1면·6월14일자 A-3면·6월15일자 A-3면〉 기사는  LA시와 카운티의 홈리스 구제를 위한 비상사태 선포 등 특단의 대책 마련에도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부가적인 문제들이 부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동시에 관련 기관에 홈리스들의 취업과 일상 복귀를 돕는 섬세한 접근과 방식이 더 필요하다는 제안을 담아 한인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특히 홈리스를 밀착 취재해 그들이 현재 실질적으로 원하는 내용과 상황을 심층 보도함으로써 공공 기관과 커뮤니티의 현실 이해도를 높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EMS 어워드 심사위원회는 시상식에서 “300여 매체들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면서 “주옥같은 기획과 방송으로 상의 품격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총 9개 부문에 베트남, 중국계, 일본계 등 다양한 매체들이 수상했다. 리틀사이공TV는 커뮤니티 안의 LGBT 현황을 분석한 다큐멘터리로 ‘가주 인권 투쟁’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샌디 클로즈 EMS 대표는 수상식에서 “열악해지고 있는 소수계 언론 환경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를 움직이고 정부와 단체들에게 정책 제안에 여념이 없는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낸다”며 “오늘 여기 모인 매체와 기자들의 열정을 많은 독자가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가주 지역 소수계 언론들과의 소통과 진흥을 위해 조직된 비영리 ‘에스닉 미디어 서비스’는 매년 어워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가주법무부 장관과 재무장관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드러냈다. 총 250여 명이 소수계 언론사와 각종 매체 대표와 기자들이 참석해 26일부터 이틀 동안 성황을 이뤘다.   장열 기자어워드 미디어 에스닉 미디어 소수계 언론 최우수 수상작

2024-08-29

‘K-헬스’ 이끄는 바디프랜드, 8년 연속 CES 참가

    헬스케어로봇 기업 바디프랜드(대표이사 지성규·김흥석)가 ‘로보틱스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제품들을 앞세워 오는 9일부터 12일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 참가한다.     안마의자 업계 최초로 8년 연속 CES에 참가하고 있는 바디프랜드는 매해 CES에서 연구개발(R&D)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한 혁신 제품을 선제적으로 선보이면서, 안마의자를 넘어선 헬스케어로봇으로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바디프랜드는 이번 ‘CES 2024’ 참가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헬스케어로봇 기업으로서 최첨단 기술역량을 드러낼 계획이다.   ‘헬스케어로봇’은 좌우 두 다리부가 개별적, 독립적으로 구동되어 코어 근육의 스트레칭과 이완 효과를 제공하는 특허기술 ‘로보틱스 테크놀로지(Robotics Technology)’를 기반으로, 사용자 생체정보를 감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마사지 프로그램(주무름, 두드림, 지압 등)을 자동 제공하는 제품군을 지칭한다.     2022년 바디프랜드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첫 헬스케어로봇 ‘팬텀로보’ 이후 작년 ‘팔콘’과 ‘파라오로보’, ‘퀀텀’ 등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글로벌 시장 보급에도 속도를 올리고 있다.     특히, 글로벌 안마의자 기업 10여 곳에 ‘로보틱스 테크놀로지’ 라이센싱 계약을 통한 헬스케어로봇 기술 수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바디프랜드의 헬스케어로봇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해외 주요 기업들의 각축전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디프랜드는 이번 CES 2024에서 헬스케어로봇 기술의 핵심인 ‘로보틱스 테크놀로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신제품을 비롯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제품들까지 총망라해 총 12종의 제품을 전시한다.   이번 ‘CES 2024’에서 바디프랜드 부스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VCC) 내 핵심 전시공간인 ‘센트럴 홀’에 112평 규모로 마련된다. 부스는 센트럴 홀 메인 통로에 위치해 더욱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스에는 ‘CES 2024’ 혁신상 수상작인 ▶팬텀네오를 필두로, ▶퀀텀 ▶파라오 로보 ▶팬텀 로보 ▶팔콘 등 ‘로보틱스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헬스케어로봇 전제품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아울러 진일보한 기술로 무장한 마사지체어(▶메디컬팬텀 ▶다빈치 ▶에덴 ▶카르나),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마사지소파(▶파밀레 ▶아미고), 마사지베드(▶에이르) 등 바디프랜드의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간판 제품은 단연 ‘CES 2024’ 혁신상 수상작 ‘팬텀 네오’다. ‘헬스케어로봇’으로서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팬텀네오’는 바디프랜드 전작인 ‘메디컬 팬텀’과 ‘헬스케어로봇’ 제품군의 장점만을 결합해 헬스케어 기능을 극대화시킨 역작이란 평가다.   헬스케어로봇으로서 첨단 기술력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팬텀 네오’를 향한 현지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7일 진행된 CES 언베일드(Unveiled) 행사에서 ‘팬텀 네오’를 향한 현지 미디어의 긍정적인 반응은 K-헬스케어로봇 기업의 저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바디프랜드 관계자는 “최근 5개년 간 무려 1000억 원에 가까운 과감한 연구개발비 투자로, 헬스케어 기술력과 혁신적 엔지니어링이 집약된 ‘로보틱스 테크놀로지’ 제품 라인업을 늘려나가는 데 힘쓰고 있다”며 “특히 이번 ‘CES 2024’에서는 바디프랜드만의 독자영역인 ‘헬스케어로봇’ 제품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했으며, 글로벌 시장에도 해당 제품들을 올해 빠르게 보급해 헬스케어 시장의 판도를 바꿔나갈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바디프랜드 바디프랜드 CES 참가 K-헬스 바디프랜드 헬스케어로봇 기업 바디프랜드 지성규 대표이사 김흥석 대표이사 바디프랜드 CES 2024 헬스케어로봇 팬텀로보 팔콘 파라오로보 퀀텀 혁신상 수상작 ‘팬텀 네오’

2024-01-07

재외동포청,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발표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이 선정됐다. 14개국에서 33개 작품이 선정된 가운데 미국에선 12명이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재외동포청은 14일 제25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성인 시 부문에선 미국 동포인 이병석의 ‘아버지 도날드’가 대상을 차지했다. 단편소설 대상은 차준희(중국)의 ‘노강(怒江)’이 받았으며 수필 부문 대상은 김태진(파나마)의 ‘오늘도 맛있게’에 돌아갔다.   청소년 글짓기는 초등 부문 손한빛(미국)의 ‘할머니와 나의 한글 공부’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중고등 최우수상은 주희(독일)의 ‘다름을 낭독하다’가 선정됐다.   이밖에 미국에선 성인 시 부문 ▶가작 조현숙 ‘그곳에는’이 뽑혔다. 단편소설 부문은 ▶우수상 이강천 ‘일곱 빛깔 무지개’ ▶가작 심재훈 ‘강물 속의 반지’가 이름을 올렸다.   체험수기 부문은 ▶우수상 안미혜 ‘꽃핀’ ▶가작 스캇 리 ‘코로나 후유증’이,  수필 부문은 ▶우수상 조사라 ‘거미의 집’ ▶가작 백경혜 ‘친정’·임하나 ‘꽃 파는 남자’ 등이 수상했다.   청소년 부문에선 중고등 글짓기 ▶우수상 한태일 ‘나의 한국어 학습과 체험’ ▶장려상 김주환 ‘나는 미국인 한인 교포 2세 김주환 Samuel입니다’가 선정됐다.   미국 게인스빌한국학교는 한글학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35개국에서 279명이 707편을 응모했다.   심사위원들은 “재외동포 문학도의 거주 권역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리스트로서의 성격이 더해져 재외동포문학상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 많았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연말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 진행하며 수상작품집은 다음 달 중 배포될 예정이다. 이하은 기자 lee.haeun@koreadailyny.com미국 재외동포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중고등 최우수상 우수상 한태일

2023-11-14

이병석 '아버지와 도널드' 시 부문 대상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에 미주 한인 이병석 씨의 '아버지와 도널드'가 선정됐다.   재외동포청(청장 이기철)은 전 세계 재외동포 작가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으로 33편을 선정해 14일 발표했다.   재외동포청은 전 세계 재외동포의 문학적 감성과 향수 및 정체성을 고양하기 위해 매년 공모를 하고 있다.   단편소설 부문 대상에는 중국동포 차준희 씨의 '노강(怒江)', 수필 부문은 파나마 거주 김태진 씨의 '오늘도 맛있게'가 뽑혔다.   중고등부 글짓기 부분 최우수상은 주희(독일)의 '다름을 낭독하다', 초등부 글짓기는 손한빛(미국)의 '할머니와 나의 한글 공부'가 차지했다.   한글학교 특별상은 미국 게인스빌한국학교, 독일 프랑크푸르트한국학교에 돌아갔다.   이번 공모에는 35개국에서 707편의 작품이 응모했고, 미국,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등 14개국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재외동포 문학도의 거주 권역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 지구촌 세계시민의 성격도 가미해져 동포 문학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이기철 청장은 "지난 25년간 동포사회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대표적인 공모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수상자들이 문단에 진출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글 문학 창작활동이 동포들의 정체성 함양과 내국민의 이해 제고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연말에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 진행된다. 수상 작품집은 12월 말에 발간해 배포한다.이병석 아버지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재외동포 문학도 단편소설 부문

2023-11-14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에 이병철씨

재외동포청이 14일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14개국에서 33개 작품이 선정된 가운데 미국에선 12명이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성인 시 부문에선 미국 동포 이병석 씨의 '아버지 도날드'가 대상을 차지했다. 단편소설 대상은 차준희(중국) 씨의 '노강(怒江)'이 받았으며 수필 부문 대상은 김태진(파나마) 씨의 '오늘도 맛있게'에 돌아갔다.   청소년 글짓기 초등 부문은 손한빛(미국)의 '할머니와 나의 한글 공부'가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중고등 최우수상은 주희(독일)의 '다름을 낭독하다'가 선정됐다.   이밖에 미국에선 성인 시 부문 가작에 조현숙 '그곳에는'이,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에 이강천 '일곱 빛깔 무지개' 가작에 심재훈 '강물 속의 반지'가 이름을 올렸다.   체험수기 부문은 우수상 안미혜 '꽃핀' 가작스캇 리 '코로나 후유증'이,  수필 부문은 우수상 조사라 '거미의 집' 가작백경혜 '친정'·임하나 '꽃 파는 남자' 등이 수상했다.   청소년 부문에선 중고등 글짓기 우수상한태일 '나의 한국어 학습과 체험' 장려상 김주환 '나는 미국인 한인 교포 2세 김주환 Samuel입니다'가 선정됐다.   미국 게인스빌한국학교는 한글학교 특별상을 받았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35개국에서 279명이 707편을 응모했다. 심사위원들은 "재외동포 문학도의 거주 권역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리스트로서의 성격이 더해져 재외동포문학상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 많았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연말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 진행하며 수상작품집은 다음 달 중 배포될 예정이다.   이하은 기자 lee.haeun@koreadailyny.com 미국 재외동포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 발표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중고등 최우수상

2023-11-14

막판 대반전도 못 바꾼 음란한 자본주의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 (Ruben Ostlund) 감독의 전작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201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은 ‘부조리한 남성’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3월 27일 거행되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지난해 5월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확실시되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제치고 이 영화가 수상작으로 선정, 발표되자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사회 풍자성이 강하고 대중성보다는 아트하우스 청중을 지향하는 외스틀룬드 감독의 작품 성향이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기대된다.     러시아 무기상을 비롯, 상상을 초월하는 부호들이 호화 크루즈에 오른다.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모델 야야(찰비 딘)와 그의 모델 남친 칼도 홍보용(?)으로 초대된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선장 토마스(우디해럴슨)의 지휘 아래 요트 항해에 들어간다.     그러나 선장과 무기상이 술에 취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설전을 벌이면서 크루즈가 전복되고 그중 일부가 무인도에 남겨진다. 전복된 것은 크루즈뿐만이 아니다. 크루즈에서의 갑과 을의 서열도 뒤바뀌어 버린다. 화장실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이 재빠르게 생존자 그룹의 권력을 장악한다. 물고기를 잡고 불을 지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 애비게일은 구명정 안에 자신의 개인 침대를 마련하고 칼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성을 상납(?)받는다. 야야의 질투심이 유발되고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영화는 계급평등론과 마르크스주의를 숨기면서 진수성찬을 즐기고 섹스를 탐닉하는 자본주의의 사치와 음란한 삶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외스틀룬드 감독이 사용하는 풍자의 노골적인 방식은 종종 관객의 시각을 불편하게 한다. 정교하게 연출된 그의 세계관에서 자본주의의 부유한 향락은 음란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가 돈이 썩어 나는 ‘갑’들에게 던지는 조롱과 비난은 한동안 가난한 ‘을’들에게 보상심리를 제공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역대급 대전환은 절망에 가깝다. 무인도가 결국은 어느 부호의 휴양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부유할 뿐 무능한 백인들의 타락을 그대로 흉내 내던 애비게일은 어떤 길을 택하게 될까. 필리핀 배우 드 레온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서 제외된 것은 유감이다. 그녀는 칸영화제 기간 내내 연기상 유력 후보로 언급됐었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자본주의 대반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황금종려상 수상작 작품상 감독상

2023-02-03

해외문학상 시 부문 대상 나두섭 시인

올해 제24회 해외문학상 대상 시 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나두섭씨의 ‘설렘의 간격’, ‘그대 생각’, ‘희망’ 등 세 편이 선정됐다.     소아과 의사로 은퇴한 나두섭 시인은 2016년 '미주 크리스찬문학' 신인상 수필 당선, 2017년 ‘해외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부모의 마음’이 있다.     나시인은 “유서 깊은 해외문인협회 대상을 받아 더 큰 의미를 가진다”며 “이를 기반으로 더 높고 완벽한 수준으로 도달하라는 격려로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번 해외문학상 심사는 해외문학상을 제정한 조윤호 해외문학 발행인과 배미순 시인, 김희주 시인이 심사를 맡았다.     조윤호 시인은 “‘설렘의 간격’은 탁월한 은유법의 함축적 언어의 표현으로 서정시의 빼어난 우수작”이라고 심사평을 밝혔다.     소설부문 수상작은 최문항씨의 ‘외톨이 몽두’, 신인상에는 시 부문에 조희영씨, 수필 부문 문경구씨가 선정됐다.     전 세계 대표 시인들과 시작품을 교류하는 해외문학(발행인 조윤호) 제26호가 출간됐다. 이번 호에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 시인 48명의 한영시가 실렸다.     해외문인협회(회장 나두섭)는 오는 29일 오전 11시 30분 가든 그로브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한인회관에서 해외문학 제26호 출판 기념회와 제24회 해외문학상 대상, 작품상, 신인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한편, 해외문인협회는 해외문학 신인문학상 작품을 공모한다.     시·시조 5편, 수필 2편, 단편소설 원고지 70장, 문학평론 원고지 70장, 번역 문학은 기성 문인의 시 5편을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원고마감은 10월 말까지이며 당선자는 개별 통지된다.     ▶문의: (562)650-0608 글· 사진=이은영 기자해외문학상 부문 해외문학상 대상 이번 해외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작

2022-10-09

단편소설 대상 이수정씨…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자 발표

제24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대상에 중국동포 주양수 씨의 '치매꽃'이 선정됐다.   재외동포재단은 이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 재외동포의 문학적 감성과 향수를 고양하는 '제24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40편을 선정해 23일 발표했다.   시 부문 우수상에는 독일에 거주하는 유한나 씨의 '한 장의 결혼사진', 재미동포 고안 씨의 '구두'가 뽑혔다. 단편소설 부문 대상에는 재미동포 이수정 씨의 '타이거 마스크', 일반 산문 부문 대상에는 카자흐스탄 동포 전옐레나 씨의 '뿌리 깊은 나무처럼'이 각각 선정됐다.   중고등부 글짓기 부문 최우수상은 최찬아(카자흐스탄)의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다', 초등부 글짓기는 주세아(러시아)의 '나는 카잔카'가 차지했다.   한글학교 특별상은 중국 상해포동한국주말학교, 러시아 카잔볼가한글학교, 카자흐스탄 알마티토요한글학교에 돌아갔다.   동포재단은 4월 22일부터 6월 20일까지 약 2개월 간 작품을 공모했고, 총 43개국에서 802편의 작품이 응모했다고 설명했다.   심사위원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문학성이 뛰어난 다수의 작품이 응모됐을 뿐만 아니라 재외동포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 많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성곤 동포재단 이사장은 "이 문학상은 24년의 역사와 많은 동포의 높은 관심 속에서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했다"며 "내년에는 더 의미 있는 문학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연말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 진행한다. 수상 작품집은 11월쯤 책.전자책으로 발간해 배포할 계획이다. 수상작은 재외동포재단 자료실(research.korean.net)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자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작 재외동포재단 자료실

2022-09-25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장려상] 동창(同窓)

영숙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제 막 영숙을 보내고 탁자를 정리하던 미옥은 서둘러 소파 사이사이에 손을 넣어보았다. 소파 왼쪽 팔걸이 틈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미옥은 틈새로 손을 겨우 밀어 넣어 휴대폰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막 받으려는데 전화가 끊겨버렸다. '아들. 부재중 전화 1통'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서둘러 쫓으면 영숙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영숙은 기분 좋게 미옥과 한잔하겠다고 가게 앞에 차도 두고 오지 않았던가. 버스 정류장까지는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하니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쫓아가면 금세 영숙이 보일 것이다. 미옥은 부랴부랴 한 손엔 영숙의 휴대폰을 챙겨 들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낮에는 가을볕이 눈부시게 빛난다 싶었는데 밤이 되자 겨울의 문턱에 선 듯 찬 바람이 오롯이 미옥의 몸을 감아 올랐다. 역시 겉옷을 입고 나올 걸 그랬어. 미옥은 두 팔을 서로 포개어 가슴께를 덮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붉게 타오르는 일본단풍나무 집도 지나고 바람에 살랑이는 미송나무와 히말라야 삼나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산책로도 지났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미옥의 숨소리도 점점 더 가빠지고 있었다. 이제 곧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인데 여전히 영숙의 옷자락도 보이질 않다니 미옥은 영숙의 걸음걸이가 이토록 빨랐었나 싶어 놀라고 있었다. "아얏!" 살짝 올라가는 시늉만 하는 언덕길이었는데도 너무 서둘렀는지 미옥은 발목을 접질린 것 같았다. 미옥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살폈다. 오래된 슬리퍼가 문제였다. 며칠 전 오른쪽 밑창이 사 분의 일 쯤 떨어져 나가고 있던 것을 손질해 놓지 않았더니 고르지 않은 길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미옥의 발목이 살짝 부어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가는 영숙을 놓쳐버리겠다 싶어 미옥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쾅!!' 아스팔트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고무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하게 진동했다. 큰길가 쪽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미국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함께 기다리던 동양인 청년은 큰길가 쪽으로 퉁겨지듯 달려나갔다. 미옥의 발목이 욱신거렸다. 속이 뭔가 모를 불안감에 울렁거려 숨이 찼다. 오른쪽 슬리퍼를 자리에 그냥 버려둔 채 절뚝이는 걸음으로 큰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이 금세 몰려들었고 누군가는 911에 신고를 하는 것 같았다. 점점 큰길 쪽으로 다가서니 사람들 틈새로 붉은 피가 뿌려진 까만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나뒹구는 빨간 에나멜 구두 한 짝이 보였다. 미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수술 대기실에 앉았다. 전광판에 영숙의 이름이 영어로 떠 있었다. 'Landers Young S' 옆 의자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던 여자아이가 미옥을 이상하게 훑어보았다. 얇은 연갈색 티셔츠에는 화려한 데이지꽃이 색깔별로 화사하게 그려져 있었고 영숙이 준 갈색 냉장고바지는 처연하게 늘어져 있었다. 거기다 삼선 슬리퍼는 왼쪽만 한 짝 걸쳐져 있고 오른쪽 발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발목까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여자아이가 미옥의 등을 살짝 두 번 두드렸다. 미옥은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내려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Are you okay? (괜찮아요?)" 미옥은 아이를 향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미옥은 그제야 자신의 손에 쥔 영숙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얼마나 꼭 쥐고 있었던지 손바닥이 다 하얗게 되었다. '아! 영숙이 아들.' 미옥은 언젠가 동부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던 영숙의 아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소식을 아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영숙의 휴대폰은 미옥의 손에 있었고 그 아들에게서 오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었다. 미옥은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아들. 통화연결 중...' 통화연결음은 마치 미옥의 숨소리처럼 비슷한 박자로 뛰고 있었다. "헬로우? 엄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굵직한 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남자는 서툴지만 영어 억양이 느껴지는 발음으로 정확히 '엄마'라고 불렀다. 미옥은 한 손으로 마이크 쪽을 감싸 쥐며 천천히 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숙의 아들은 긴 한숨을 내쉬며 때때로 '예스' '오케이' 정도의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비행기 표를 구해 최대한 빨리 가겠다며 미옥에게 영숙을 부탁했다. '땡큐' 하며 끊는 남자의 목소리는 다소 격한 슬픔의 감정을 힘겹게 누르고 있는 듯했다. 미옥과 영숙이 처음 만난 것은 두 달 전 한인 마트에서였다. "카드 좀 다시 해 보시겠어요?" 캐쉬어가 좀 피곤하다는 기색을 비치며 미옥에게 말했다. 하지만 카드 기계가 다시 성난 경고음을 내었을 때 미옥은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자 잠시만요. 다른 카드로 한번 해 볼게요. 이게 왜 안 될까 모르겠네?" 미옥은 서둘러 지갑을 열어 다른 카드를 찾았다. 하지만 있을 리 없었다. 카드빚을 쌓지 않겠다는 신조로 살았던 남편이 겨우 데빗카드만 하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눈동자가 시선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지갑을 뒤지고 있는 미옥의 손도 눈에 띌 정도로 흔들렸다. 그때 데빗카드가 미옥의 흔들리는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미옥의 자존심도 함께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카드를 주우려는 미옥의 손 앞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나이든 손이 불쑥 들어왔다. 미옥보다 먼저 카드를 주운 사람은 미옥의 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한 손님이었다. "어머 너 미옥이 아니니?" "네? 누구..." "나야 영숙이! 어머 일단 반가운 건 나중에 하고. 저기요! 제 친구 카드가 지금 뭐가 문제가 좀 있나 본데 제 것과 같이 계산해 주세요." '영숙이? 그런 친구가 있었던가?' 미옥은 재빨리 머릿속 옛 기억들을 뒤져 '영숙' 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영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영숙이 올려놓은 소갈비 한 팩과 애플 망고 한 상자가 미옥의 것들과 함께 계산되었다. "어머 얘 오랜만이다. 어쩜 이리 하나도 안 변했니 너는?" "어? 어... 그래. 영숙이라 그랬나? 미안한데 내가 나이가 드니 기억이 잘 안 나서...우리가 언제 친구였더라?" "초등학교 동창이잖아 우리. 사실... 그럴 만도 하지. 나 얼굴에 손 좀 댔거든." 영숙은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미옥과 같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젊어 보였다. 목과 손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지만 얼굴엔 팔자 주름도 없고 이마를 굵게 패는 가로 선도 보이지 않았다. 피부도 어찌나 고운지 부잣집 사모님 태가 났다. 이 낯선 땅에서 이런 돈 많은 친구 하나 어디 없나 생각했던 옛날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 미옥은 당혹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오늘 너무 고마워. 내가 나중에 꼭 갚을게." "얘는 무슨 친구 사이에 별소릴 다 한다. 이렇게 오랜 친구를 만난 것도 늙어서 행복인데 말을 꼭 그렇게 섭섭하게 해야겠니? "하지만 그래도..." "됐어 얘! 하여튼 너무 반갑다 친구야." 영숙은 미옥의 손을 꼭 쥐었다. 미옥은 좀 어리둥절했지만 타국에서 만나는 오랜 친구는 처음인지라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것도 제법 부자인 것 같은 친구이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집으로 돌아와서 주머니 속에 있는 종이쪽지를 꺼내었다. 영숙이 준 자신의 연락처였다. 미옥은 소파에 기대 누워 쪽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영숙 영숙? 영숙..." 미옥은 영숙의 이름을 입을 열어 여러 번 불러보았다. 자꾸 부를수록 친근해지는 이름이었다. 정말 친했던 친구 같았다. 어떤 친구였을까? 반을 호령하던 반장? 아니다. 그렇게 유명한 애 같았으면 분명 기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키가 작고 존재감도 없던 조용한 친구? 그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미옥도 학창시절 내내 키가 작아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누구일까. 남편이 떠나고 처음이다. 마음이 무언가에 대해 기대감으로 가득 차는 것은. 사별 후 하루하루가 참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미옥의 삶에 또 다른 의미가 생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미옥은 좀 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데빗카드가 안 된 것은 아마 통장에 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옥은 삼 개월 전 남편과 사별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떠난 남편은 미옥의 모든 것이었다. 믿을만한 자식도 하나 낳아 놓지 못하고 나이가 들었다. 주위에서는 인공수정도 입양도 권하였지만 남편은 미옥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였다. 미국 이민 올 때도 그러했다. 나만 믿으라 큰소리치던 남편 뒤를 따라 낯선 시애틀 땅에 발을 들였다. 물론 시누님께서 이민 초기에는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지금은 치매로 인해 양로원에 계시다니 조카들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이 좋았다. 그 그늘은 안전했고 편안했다. 그렇게 체크 쓰는 것부터 은행 일 운전까지 모든 걸 남편이 홀로 감당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남편이 떠나고 나니 미옥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차를 팔아 장례를 치렀다. 운전을 못 하니 차는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당장의 생활비를 대었다. 하지만 그간 이것저것 정리할 일들이 많아 은행 잔고 확인을 못 한 것이 화근이었다. 또한 그다지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통장이 바닥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의 주 수입원은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이 전부였다. 모아둔 돈도 없는 이민 생활에 통장이 바닥나는 것은 오늘 뜬 해가 내일도 다시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기댈 언덕도 없는 환갑의 아무 기술도 없고 영어도 잘 못 하는 여자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그때 좀 전에 만난 영숙이 떠올랐다. 순간 '영숙이 어쩌면 남편이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영숙이 더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영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가 길고 참 조용했었던.... 미옥은 다음번에 영숙을 만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일자리 알선을 좀 부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블라인드 사이로 기분 좋게 아름다운 노을이 거실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미옥은 오늘이 정말 낭만적이고 행복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눈을 지그시 감아 내렸다. 다음날 미옥은 영숙에게 전화를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니까 미옥이 네 말은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어떤 쪽으로 찾고 있는데?" "특별히 뭐 그런 건 없어. 그냥 아무거나." "음… 아! 나 다니는 병원 사무직원 구한다던데 거기 소개해 줄까?" "아 그건 내가 영어를 잘 못 해서… …" "그러면… 아! 네일샵 일을 배워볼래? 자격증 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던데." "코 앞에 글자도 잘 안 보이는데 그런 게 가당키나 하겠니?" "아 그렇구나. 그럼 뭘 해 보지? 그래. 일단 네가 잘 하는 게 뭔지 이야기해 봐. 잘 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 그 쪽으로 일을 알아볼 거 아니니." "글쎄… 내가 잘 하는 거라… …" 미옥은 영숙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라 영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살면서 무언가 절실히 해 보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그늘이 너무 편해서였다. 미옥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말이 없었다. 남편 생각이 났다. 언제나 자기를 아껴주고 칭찬해 주었던 그였다. "남편이 내 요리 솜씨가 좋다고는 했었지." 한참 후에 미옥이 던진 말이었다. 실로 그랬다. 남편은 외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입이 까다로웠던 그를 위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도 특별히 당부하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신혼 초기에 시어머니께 배웠던 요리솜씨가 다행히도 남편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남편은 미옥의 요리 솜씨에 항상 엄지 두 개를 치켜세우곤 했다. "남의 식당 밑에서 하는 일은 힘들텐데…" 이번엔 영숙이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뭐라고 했니?" "아니 그냥 생각 좀." 영숙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영숙은 미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걸음걸이는 매우 위풍당당하기까지 했다. 여섯 개의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2층 건물이었다. 맨 끝에서부터 테리야키 보험 사무실 그로서리 한식당 네일샵 피자집이 늘어서 있었고 위층은 콘도로 사람들이 입주해 사는 것 같았다. "여기야 미옥아. 마음에 드니?" "뭐가?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거야?" "어 저기 오시네." 한식당 문 앞에 서서 아리송한 질문을 던진 영숙은 주차장으로 막 들어오는 벤츠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는 정확히 두 사람 앞에 섰고 웬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말끔한 남자 한 명이 내렸다. "아이고 미세스 랜더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자주 찾아 주시지 않아서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김 선생은 맨날 나를 만날 때마다 그 타령이야? 내가 찾을 일 있음 꼭 김 선생만 찾는 거 몰라?" "아 요즘은 너무 조용하셔서 동부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셨나 했지요." 넉살좋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김 선생이라는 남자는 영숙을 '미세스 랜더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옥은 그 둘이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사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서 보시죠. 얘기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러자고. 미옥아. 들어가자." 영숙은 미옥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으며 방긋 웃었다. 김 선생은 두 사람보다 앞서가 한식당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 한식당은 미옥도 전에 남편과 몇 번 온 적이 있었지만 맛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집안 살림엔 소질이 있던 미옥은 요리는 좀 하였다. 친정엄마가 전라도 분이시라 솜씨가 꽤 좋았었기 때문에 그 입맛을 기억해서 그런지 남편은 언제나 미옥의 요리에 엄지를 두 개나 치켜들곤 했다. "아이고 미세스 랜더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자주 찾아 주시지 않아서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김 선생은 맨날 나를 만날 때마다 그 타령이야? 내가 찾을 일 있음 꼭 김 선생만 찾는 거 몰라?" "아 요즘은 너무 조용하셔서 동부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셨나 했지요." 넉살좋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김 선생이라는 남자는 영숙을 '미세스 랜더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옥은 그 둘이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사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서 보시죠. 얘기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러자고. 미옥아. 들어가자.” 영숙은 미옥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으며 방긋 웃었다. 김 선생은 두 사람보다 앞서가 한식당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 한식당은 미옥도 전에 남편과 몇 번 온 적이 있었지만, 맛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집안 살림엔 소질이 있던 미옥은 요리는 좀 하였다. 친정엄마가 전라도 분이시라 솜씨가 꽤 좋았었기 때문에 그 입맛을 기억해서 그런지 남편은 언제나 미옥의 요리에 엄지를 두 개나 치켜들곤 했다. “여기 요새 새 집들 많이 들어서고 있는 거 아시죠? 요 앞에도, 요 뒤에도 거의 완공해서 분양 시작했고요. 길 건너 저 빈 터 보이시죠? 앞에 써 붙인 시공사 팻말도 보이시고! 이 지역에 인구가 계속 불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요 앞길이 요새 용도가 변경되었어요. 그래서 요즘 짓는 빌딩들은 다 높이 올린다는 거 아닙니까? 저 빈 터에 들어오는 게 아파트인데 무려 6층짜리랍니다. 그래서 이곳 비즈니스들이 요새 죄다 가격이 뛰었어요!!” 김 선생은 입에 침을 튀기며 흥분해서 말했다. 뿐인가. 손을 얼마나 휘둘러대는지 미옥은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이 분이 그러니까, 이 가게 새 주인이 될 분이시라는 거죠?” “!!” 김 선생은 미옥을 바라보다가 다시 영숙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미옥의 눈동자가 커졌다. “응. 내 초등학교 동창인데, 요리 솜씨가 참 좋아. 썩히기 아까운 마음에 일단 내가 다운페이할테니 잘 좀 봐 줘. 어쨌든 홀로 사업하는 건 처음이니까, 전 주인에게 일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어 달라고 얘기 좀 해 주고.” 미옥은 둘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너무 당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가게가 내 가게가 된다니!’ 미옥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되지 않아 탁자 아래로 자신의 허벅지를 조금 꼬집어 보았다.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이 사방으로 번졌다. 꿈은 아니었다. 자기 가게가 된다고 생각하며 둘러보니, 가게가 참으로 아늑하고 좋았다. 크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주메뉴 몇 가지에 주력하면 분명 장사가 잘 될 자리였다. 새 아파트들도 많이 들어서고 있고, 특별히 이곳은 번화가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자리였다. 김 선생을 보내고나서 미옥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숙의 차를 탔다. 좀 전의 둘의 이야기를 상기하며 미옥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김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 가게는 전 주인의 건강상 이유로 급매로 나온 데다가 영숙이 다운페이를 해 주기로 얘기가 다 되어 있어 돌아오는 주에 매상점검하고, 이르면 다음 달 안에도 클로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미옥은 마음이 급해졌다. 집에 가서 오늘부터라도 당장 주력메뉴를 만들고, 소스와 밑반찬들을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숙아, 정말 고마워.” 미옥은 영숙이 자신의 수호천사가 아닐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무슨. 그런 말 마. 친구라는 것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그러는 거 아니겠니?” 또다시 영숙의 그 호탕한 웃음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미옥은 그런 영숙의 웃음소리가 참 시원하고 좋았다. “그런데, 영숙아. 우리가 몇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니? 초등학교 동창이라 그랬지?” “응?” 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미옥은 자기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자신을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미옥이 영숙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섭섭해 할만한 일이었다. ‘아차.’ 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1학년 때.” “아! 그래. 1학년 때였다. 그치? 내가 이래. 나이를 머리로만 먹었나.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큰일이다, 큰일.” 미옥은 어색한 공기를 환기시키고자 깔깔 웃으며 영숙의 어깨를 쳤다. 영숙도 그제야 같이 호탕한 웃음을 다시 웃었다. “들어와. 누추하지만.” 미옥은 들어가며 쓸어 담듯 바닥에 늘어진 빨래들을 주워들었다. 미옥의 살림살이는 단출했다. 방 한 칸짜리 아파트. 거실엔 2인용 소파 하나와 나무로 된 티테이블 하나, 그리고 기우뚱하게 서 있는 스탠드가 전부였다. 오래된 아파트 일층 코너 집이라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쪽엔 거뭇하게 카펫에 흙이 묻어 있었고, 소파 뒤쪽은 비가 많은 이 지역의 문제점을 말해주듯 곰팡이가 무늬를 이루며 벽을 타오르고 있었다. 반쯤 열려있는 방 안으로는 퀸사이즈 침대와 나이트 스탠드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부엌살림도 남편과 단둘이 살았기에 4인용 전기밥솥 하나에 월마트에서 이십 불이면 살 수 있는 커피포트, 식기 건조대에 가지런히 씻어 올려놓은 밥그릇, 국그릇이 두 개씩 포개어 있고, 숟가락 두 개에 젓가락 두 쌍만이 수저통에 꽂혀 있었다. “앉아. 커피 줄까?” “응. 그래. 다방 커피로 뜨끈하게 한 잔!” 영숙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소파에 앉았다. 이 집에 남편이 아닌 사람이 오는 것이 얼마 만인가. 미옥은 갑자기 신이 났다. 봉지 커피를 하나 뜯어 커피잔에 담고,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가끔 소파 쪽을 쳐다보니, 영숙은 거실에 걸려있는 미옥과 남편의 사진 쪽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우리 그 초등학교, 이제는 없어졌대. 알았니?” 미옥은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르며 거실에까지 들리도록 조금 크게 말했다. “그래? 왜?” “뭐 다 그런 거지. 요즘은 애들도 많이 안 낳거니와 젊은 사람들이 다 서울이나 대도시로 빠지니 별수 있겠니?” “아, 그렇구나. 아쉽다. 그래도 많은 아이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던 곳이었을 텐데...” 영숙은 매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자, 여기. 뜨거우니 조심해.” 미옥은 커피잔을 영숙 쪽으로 밀어주었다. 옛날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마음 따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없으니 미옥은 옛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갈 사람이 없었다. “아카시아 아래 앉아서 친구들과 함께 공기놀이도 하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까만 고무줄 사다 고무줄놀이도 하고...” “아카시아? 아, 그 교문 밖에 있던? 고무줄놀이할 때면 남자애들 와서 죄다 끊어놓곤 했잖니.”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청소한다고 열심히 바닥도 기어 다니고...” “그래, 맞아. 우리 선생님 예쁜 처녀 선생님이라 목소리도 참 맑았었는데.” 영숙과 미옥은 주거니 받거니 옛 추억들을 짝 맞추어갔다. 따뜻한 커피가 다 식어갈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미옥도 참 오랜만에 떠올리는 추억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천천히 떠올리니 눈앞에 그림처럼 되살아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소녀 감성이 살아나서일까? 영숙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하고 빛났다. 그때였다. 영숙의 휴대폰이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울려댔다. “여보세요? 아, 경자구나. 그런데 경자야.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지금 다른 곳에 나와 있어서… 나중에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전화할게.” 영숙은 무슨 일인지 미옥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렸다. “왜 전화 받아도 되는데. 누구?” “어? 어, 초등… 아니, 친한 교회 집사님. 급한 게 아니라 나중에 집에 가서 전화하면 돼. 걱정하지 마.” “아… 그런데 굉장히 친한 사이인가봐? 집사님이신데 ‘경자’라고 이름도 막 부르고.” “으,응. 워낙 허물없이 편해서 그냥 그렇게 불러. 교회에서는 아니고. 커피 맛있다.” “얘는. 인스턴트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네가 타 줘서 그런가 봐.” 영숙은 과한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커피를 불지도 않고 서둘러 마셔댔다. 그런 영숙을 보는 미옥은 영숙이 평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옥은 금반지와 열 돈짜리 금목걸이를 내다 팔았다. 당장 아파트세도 내야 하고, 곧 개점할 가게의 주메뉴와 밑반찬들을 미리 만들어 보며 연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히 요즘 금 시세가 좋아 그것으로 한 달 정도의 생활비가 마련되었다. 금가락지는 엄마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금목걸이는 죽은 남편의 것이었다. 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 마음이 편칠 않았지만, 지금 미옥에겐 방법이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것들을 내다 팔았다. 갈낙찜을 만들다 보니 남편이 생각나서 갑자기 울적해졌다. 시어머니께서 남편이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해 주셨다는 보양식이었다. 특히 일이 힘들고, 날씨가 궂어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 먹으면 뽀빠이 저리가라 할 정도의 힘이 솟곤 하였다. 미옥은 이 갈낚찜을 주메뉴로 밀기로 결정하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하늘에게 자기를 돕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밑반찬들도 평소 남편이 즐겨 먹던 것들로 준비해 보았다. 꽈리고추를 넣은 멸치볶음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그리고 미역줄거리 볶음도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좋다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상에 올렸던 것이었다. 그 외에도 담백한 감자채 볶음과 두부조림도 빼뜨리지 않고 반찬 목록에 챙겨 넣었다. 이것저것 잔뜩 연습 삼아 차려 놓고는 미옥 혼자 식탁에 앉았다. 혼자 먹는 저녁상이 꽤나 거창했다. 그것들을 먹는데, 목구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솟구쳤다. 남편 생각이 나서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편 그늘 밑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겨서라도 인공수정을 해 남편 닮은 아이라도 하나 낳아둘 걸. 미옥은 처음으로 그렇게 후회하였다. 그랬더라면 오늘같이 외롭게 이 맛있는 밥상을 대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옥은 꾸역꾸역 음식들을 밀어 넣었다. 이제는 뭐든 씩씩하게 홀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게를 개점하는 날. 미옥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과 홀을 오가며 음식과 손님을 챙기느라 바빴다. 첫날은 주메뉴인 갈낙찜이 반값이라고 광고를 낸 탓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개점 시간부터 폐점 시간까지 앉을 틈도 없이 바빴다. 더불어 영숙도 정신이 없었다. 우아하게 원피스 정장에 아들이 이번 생일에 사 보냈다는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앞치마를 둘러맨 꼴이라니. 웃음이 나오지만,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가게 문을 닫고 하루 매상을 세었다. 미옥은 지폐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침 묻혀 넘기며 매우 신이 난 표정이었다. 반값으로 팔았는데도 첫날 매상이 무려 천오백 불이 넘었다. 마음속에 기쁨의 환호성이 외쳐졌다. 이런 식이라면 영숙에게 빌린 돈도 금세 갚고,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이제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와~우리 미옥이 좋겠다. 맨날 돈 세면서 잠들겠네. 어제 돼지꿈이라도 꿨나?” “꿈꿨지. 아주 좋은 꿈.” “무슨 꿈? 똥 꿈?” “아니, 네 꿈.” 영숙은 웃음을 멈추고 미옥 쪽을 바라보았다. 미옥의 돈을 세던 손도 멈췄다. “영숙아. 내 꿈을 이루어준 것은 바로 너야. 고맙다. 친구야.” 미옥은 조용히 영숙을 끌어안았다. 영숙도 그런 미옥의 등을 따뜻하게 토닥거려 주었다. “축하파티나 하러 갈까? 샴페인이라도 하나 터뜨리자!” 둘은 영숙의 차를 가게 앞에 둔 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수술은 밤새 진행되었다. 회복실을 거쳐 영숙이 개인병실로 옮겨진 것은 다음 날 늦은 아침이나 되어서였다. 줄줄이 여러 가지 선을 달은 영숙을 보며 미옥은 다시 얼굴을 감쌌다. 어젯밤 너무 들떠 축하파티를 제안한 것은 미옥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면 영숙은 어쩌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옥은 가슴이 미어져 왔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 것 같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미옥은 그대로 두었다. 영숙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 몇 번이고 잘못을 빌고 있었다. ‘위잉...위잉...’ 그 적막함을 깬 것은 영숙의 휴대폰이었다. 미옥이 병원 안이라 진동 모드로 바꾸어 둔 것이었다. ‘이은미’ 누구일까? 순간 미옥은 급한 전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재빨리 영숙의 전화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영숙이 휴대폰입니다.” “아, 영숙이 친구인데요, 영숙이가 연락이 없어서요.” “아, 네. 사실은 영숙이가 어젯밤에 사고를 당해서 지금 시애틀의 버지니아 메이슨 병원에 입원 중이에요.” “네?! 우리 영숙이가요?” 이은미라는 영숙의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병실 호수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또다시 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또 다른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정경자’라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예전에 미옥의 아파트에 영숙이 놀러 왔을 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영숙이 당황한 듯 급히 전화를 끊었기에 미옥은 그녀에 대해 조금은 궁금했었다. “네? 영숙이가요? 아이고 우짜노, 우리 영숙이 우짜노.” “실례지만.... 영숙이와는 어떻게 되시나요?” 미옥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아, 네. 지는 영숙이 초등학교 동창인데예.” ‘초등학교 동창?’ 힘없이 내리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교회 집사님이면서 초등학교 동창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투리? 그것은 어쩐지 수상했다. 미옥은 강원도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강원도에 사는데 경상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인가 꺼림칙해진 미옥은 다시 그 ‘정경자’라는 영숙의 초등학교 동창에게 물었다. “초등학교가 어디...?” “부산 동래 초등학교인데... 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신데예?” “아...네... 저도...” 미옥은 순간 ‘초등학교 동창’이라 내뱉으려다 멈칫했다. “영숙이 친구입니다.” “아...영숙이 친구시구나. 아무튼 곧 갈게예!” 전화를 끊고, 미옥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침대 맞은편 벽면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는 필요한 영숙의 인적사항과 담당 의사, 간호사 이름들, 그리고 다양한 처치 시간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영숙의 이름 옆에 생년월일이 좀 이상했다. ‘Landers, Young S, 9/29/1954’ “1954년?!!” “어머, 너 미옥이 아니니?” 미옥은 그때, 자기 카드를 주워들며 재빠르게 카드 앞면을 훑던 영숙의 눈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왜! 영숙은 미옥에게 그리도 친절을 베풀었단 말인가! 초등학교 동창도 아니라면! 나이도 세 살이나 많았다. 미옥은 의식 없이 누워있는 영숙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영숙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영숙의 친구들 전화가 왔다. 하나같이 자동응답기처럼 똑같은 말을 하였다. 자신은 영숙의 초등학교 동창이고, 매일 전화를 해 주던 영숙이 전화를 하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라도 사투리로, 어떤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였다. “엄마!” “어머니!” 영숙의 아들과 며느리가 서둘러 병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옥은 눈물을 성급히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미옥을 보고 먼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 전화해 주신 분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님과는 어떤 사이신지...” “아, 네...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이요.” 미옥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한 후, ‘그냥 친구라고만 할걸.’하고 후회했다. 실제로 영숙은 자기 동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제는 저희가 있어도 되니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예... ” 미옥은 병실을 나왔다. 아직도 정신이 멍했다. 미옥은 복도를 꺾어 돌아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잊고 있던 오른쪽 발목이 다시 욱신거려왔다. 발목은 밤새 더 크게 부어 있었다. 응급실에 내려가서 간단한 조치라도 받고 가야지 싶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의사는 뼈에 실금이 갔다면서 신고 벗을 수 있는 간단한 캐스트를 신겨 주었다. 또한 이렇게 한 달은 하고 있어야 한다며 경고했다. 미옥은 병원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부탁해 택시를 불렀다. 버스노선도 모르니,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택시가 오기까지 로비 소파에 앉아 계속 영숙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형편상 학교를 못 다니셨다 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니... 어제 밤새 어머님 곁은 지키신 분도, 한 시간 전에 왔다 가신 분도, 지금 방금 왔다 가신 분도 죄다 초등학교 동창이시라잖요? 정말 이상하지요?” 놀라서 돌아보니, 영숙의 아들 내외가 간단한 먹거리를 사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미옥이 병실을 나온 후, 영숙의 친구들이 몇 명 더 다녀갔나 보다. 미옥은 아직도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영숙의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영숙의 아들에게 전해주고 온다는 것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들고나온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부재중 전화가 더 와 있었다. ‘투둑투둑.’ 병원 통유리창에 빗방울들이 사선을 그으며 빠르게 흘러내렸다. 드디어 비내리는 시애틀의 겨울이 시작되려나보다. 미옥은 잠시 통유리 밖을 내다보다가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네. 혹시 영숙이 초등학교 동창이신가요?” 미옥은 그렇게 휴대폰에 있는 모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똑같이 물었다. 그들은 모두 영숙을 보러 온다고 했다. ‘영숙아, 친구들이 온대. 그런데 이렇게 비가 와서 어째? 더 세차게 내려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야 할 텐데....’ 미옥은 영숙이가 깨면 친구들을 모두 불러 가게에서 첫 번째 동창회를 번듯하게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황색 택시 하나가 빗줄기 속을 달려 들어와 병원 문 앞에 섰다. -끝- --------------------------------------------------------------------------------- [수상소감] 첫 도전에 상까지 받아… 고등학교 때가 생각납니다. 글 잘 쓰는 친구가 재미삼아 쓰던 소설이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자 '나도 한 번 써 보자!' 해서 썼던 어쭙잖은 SF소설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다시 글을 쓰고 배우며 오랫동안 하지 못한 숙제같은 소설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첫 도전에 상까지 받게 되니 등 떠밀려 무대에 올라온 무명가수처럼 어안이벙벙하지만 이로써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큰 격려가 됩니다. 걸음마하는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언제나 듬뿍 사랑해 주시며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과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동창을 가장한 이웃의 선행을 그린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마켓에서 잔고가 부족한 줄 모르고 데빗 카드를 냈던 미옥은 결제를 할 수 없어 매우 당황해한다. 이때 뒷줄에 있던 영숙이 대금을 치러주면서 자신은 미옥의 동창이라한다. 그러나 미옥의 기억에는 영숙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어서 영숙은 미옥에게 식당을 차려주는등 경제적 도움을 준다. 이런 미스터리 스토리를 작가는 영숙의 교통사고를 통해 따뜻하게 처리한다. 영숙은 미옥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행을 베푼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수호천사는 있다 라는 이야기다. 문장이 세련되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당위성을 위한 장치가 아쉽다. 장려상의 이유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9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가작] 모천(母川)

생각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영향을 받고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무엇을 보고 듣는가가 그래서 중요하건만 나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어긋난 길을 거침없이 달려왔다. 어려서부터 작고 왜소했던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날 슈퍼 앞 평상에서 수다 떨던 동네 아줌마들이 내 등 뒤에 툭 던진 말들이 화근이었다. "쟈는 워쩌자고 저리 자라덜 않는겨." "글씨 말여. 조막만 혀가지고 어데 사람 구실 지대로 허것남." "어미젖 못 먹고 자라 그러제. 지 어미젖만 묵었어도 조로콤 작든 않았을 겨." "왜 아녀 그 때 참으로 욕봤제..."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젖을 못 먹었다고? 왜? 그럼 내가 자라지 못한 게 엄마 때문이라는 거네? 어쩐지... 엄마한테 난 늘 뒷전이었어. 엄마한테 난 하찮고 귀찮은 존재였던 거야...' 땅꼬마라며 손가락질하던 친구들 그들과 다툼하고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일 작고 왜소한 외모로 인해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겪은 일들이 엄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엄마가 미워 견딜 수 없었다. 엄마 탓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덧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더더욱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산모이기에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미역국을 먹고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젖무덤을 문질러대고 있질 않은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게 산모의 본성일 터. 엄마는 왜 그랬을까. 첫 손주 유나가 태어났다. 막 태어난 아기를 안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요 설렘이다. 꼬물거리는 손과 발 미간을 찡그리다 빙그레 웃는 입술 배와 가슴을 들먹이며 색색 쉬는 숨소리 응애응애 우는 소리... 양수에 불어 주름진 얼굴조차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다. 유나에게서 인영이 보인다. 그래서 유나를 더 놓을 수 없다. 인영은 내게 꿈이요 희망이었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내게 처음으로 생긴 피붙이의 의미는 특별했다. 그날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인영도 덜 외로웠을 텐데... 그 아이가 왜 내게 그리 냉담한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쇠붙이에 부딪혀 튕겨나가는 돌멩이처럼 자꾸 튕겨져 나갔다. 동네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몸이 더 허약하고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쓰였다. 그렇다고 일일이 챙겨줄 수도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키워내려면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긴장이 풀렸는지 인영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저리 고운 얼굴에서 어찌 그런 쇠심줄 같은 고집이 나오는 걸까. 이제 화해할 때도 되었건만 도대체 곁을 주지 않는다. 저도 자식을 낳았으니 언젠간 나를 이해하겠지. 품에서 잠든 아가 볼에 입을 맞추고 인영의 이마에도 슬그머니 입술을 갖다 댄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초록서점. 그녀는 서점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주 조그맣고 귀염성이 있었다. 내가 머리를 숙이면 그녀의 오뚝한 콧날과 긴 속눈썹이 보였다. 그녀는 말을 할 때마다 머리를 뒤로 젖히며 나를 올려다보았고 그녀가 머리를 젖힐 때마다 긴 머리에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라 코를 자극했다. 기분 좋은 냄새에 끌려 초록서점에 자주 갔고 그녀의 냄새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날은 행운의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돌아가는 길에 여자 액세서리를 하나씩 샀다. 긴 머리에 꽂을 꽃 머리핀 가는 목에 어울릴 하트 목걸이 멋스런 링 이어링도 사고 엔젤 브로치도 샀다. 보석함에 행운의 증표가 하나 둘 쌓여갔다. 액세서리가 보석함에 가득 찬 날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사년 만에 결혼하고 미국에 들어왔다. 미국에 온 이후 한 번도 자기 엄마를 초대한 적이 없는데 웬일로 엄마를 초대했다. 장모님은 미국에 와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더니 유나가 나온 후로는 줄곧 아기만 안고 있다. 혜자는 죽은 아내의 간병인이었다. 혜자는 자기도 아기 날 때 어려움이 있었다며 아내에게 정성을 다했다. 막내가 태어나고 폐부종으로 호흡곤란을 겪던 아내는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아이들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혜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혜자는 아이 엄마 장례 치를 때까지만 도와주겠다고 했다. 혜자는 갓 태어난 유석을 보면 얼굴이 하회탈처럼 변했고 우유 먹일 때는 자기 자식같이 애정을 쏟았다. 유석은 뽀얗게 커갔고 유석을 끊지 못한 혜자는 우리 집에 귀한 존재가 되었다. 혜자가 백일 떡 케이크와 수수팥떡을 준비하고 과일과 한과를 수북이 쌓아올리고 실타래와 아기 앨범까지 준비해서 유석 백일 상을 차렸다. 아이들은 풍선과 꽃과 곰 인형을 준비해서 동생 백일을 축하했다. 혜자 딸 인영도 함께 했다. 흥겨운 날이었다. 잔칫상을 정리하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인영이 소파 뒤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날 혜자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냈다. 같은 지붕 아래 혜자가 있다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주방으로 향하는데 거실에 혜자가 앉아 있었다. 심장이 고동쳤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혜자가 돌아보았다. "어제 고마웠어요. 덕분에 우리 유석이 백일상도 다 받고..." "엄마가 있었음 더 잘해줬을 텐데요." "훌륭한 백일 상이었소. 혜자 씨가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줬어요." "그런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물론 알아요. 유석일 얼마나 예뻐하는지.... 그래서 더 고맙소." "부끄럽네요." 잠시 말이 끊겼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인사치레만 하는 내가 답답했다. "이만 들어갈게요. 그럼..." "저 혜자 씨!"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우리 유석이 엄마가 되어주지 않겠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 우리 유석이의 진짜 엄마가 되어달라는 거요. 오랫동안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어렵게 드리는 말씀이외다. 그간 혜자 씨를 지켜봤어요. 의도적으로 지켜본 건 아니고 그냥 봐지더라는 말이 맞겠네요. 혜자 씨를 보면서 수도 없이 생각했소. 당신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오." "보모가 되어달란 말인가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오. 내 아내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말인데... 내가 이렇게 밖에 말을 할 줄 몰라 미안하오. 언제부턴가 당신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졌어요. 당신이 집에 있다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부푼 풍선이 되었소 당신이 떠난 집은 삭풍 부는 벌판으로 변했고..." 심장이 터질듯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이 밤에 확실히 알았소. 당신과 함께 있는 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부디 곁에 함께 있어줘요.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소."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라 드릴 말씀이..."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되오. 당신 딸은 내가 자식같이 잘 키우리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주면 좋겠소." 그날 이후 혜자가 인영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기까지 석 달의 시간이 더 걸렸다. 엄마는 늘 바빴다. 엄마가 일 하러 갈 때면 나는 누군가에게 맡겨졌다. 엄마가 더 바빠졌다. 새 아빠와 새로운 형제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 아빠 집으로 들어간 후엔 엄마가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맏이인 나는 역시 관심 받지 못했다. 엄마가 새 아빠와 어린 동생들에게 살갑게 굴수록 비위짱이 뒤틀렸다. 나는 늘 혼자였고 엄마와 새 아빠와 배다른 형제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동생들은 낮에는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다가도 저녁에 새 아빠가 들어오면 일제히 새 아빠에게 들러붙어 재잘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학교 문 밖에서 기다리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아빠는 백화점에서 핑크색 원피스 블루진 바지 체크무늬 붉은 재킷 빨간 모자 핑크빛 나이키 운동화를 사줬고 뷔페식당에서 저녁 먹은 후 나를 데리고 남산에 갔다. 하얀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다. 예전엔 거인 같았던 아빠가 그날은 작고 왜소해 보였다. 왠지 측은한 느낌이 들어 많이 웃었다. 내가 웃으면 아빠도 웃고 아빠가 웃으면 내가 웃었다. 아빠와 손 흔들며 걷기도 했고 양 손 마주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흩뿌리는 하얀 꽃잎 사이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남산타워에 올라가니 눈앞에 불빛들의 광휘가 펼쳐졌다. 한강 대교와 도로의 자동차 라이트 행렬 빌딩마다 품어져 나오는 휘황찬란한 불빛들 가히 서울은 불야성의 도시였다. 아빠가 나를 사진에 담았다. 다음날 아빠는 병원에 갔다. 엄마는 얼마나 술을 퍼마셨으면 간이 작살났느냐며 통곡을 했고 아빠는 망연하게 천정만 쳐다보았다. 병원에 입원한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내 기억 속에서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새 아빠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빠. 이 말은 내겐 그리움의 단어였다.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공허의 단어요 혼자 허공에 되뇌곤 하던 단어였다. 이제 매일 그 단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유석이 새 엄마가 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빠 잃은 인영이 자기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그 슬픔을 본 후 어떻게든 아빠의 몫까지 더해 인영만은 잘 키우리라 마음을 도슬러 먹었다. 유석 아빠의 프러포즈 받고 가장 먼저 인영을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형제 여섯이 일순간 생기고 아빠도 생기는 일이었다. 내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것들을 해결해 줄 좋은 기회였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이 여섯 키우는 일에 선뜻 나설 이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다. 처음엔 완강히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형제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던 인영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인영이 웃는 횟수가 늘어났고 말수도 차차로 많아졌다. 인영이 시집가는 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실감했다. 그들이 인영과 더불어 즐거워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은 내게 큰 기쁨이다. 인영이 나를 초청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결혼할 때조차도 나대신 새 아빠나 형제들에게 기대어 결혼 준비를 했던 터였다. 인영의 출산 과정과 첫 손주 유나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유나를 안고 있으면 막 낳아서 안아주지 못했던 인영이 자꾸 생각난다. 첫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 한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나온 탓에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슬이 비쳤다. 몸 안에 둥지 틀고 자라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다. 정성스레 목욕한 후 병원을 찾았다. 진통은 밤새 계속되었다. 허공에 노란별이 번쩍였다. 시공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궁이 뒤틀렸다. 아기가 나오기 전의 긴장감은 분화구를 뚫고 화산이 폭발하려는 순간의 긴장감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 응집된 긴장감과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 힘을 다하는 아이와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내 에너지가 조탁작용을 하고 있었다. 한 생명이 탄생하려는 찰나의 숭고함이었다. 몇 겹 지방과 자궁벽에 막힌 작은 우주 속에 살던 아이가 한 뼘밖에 안 되는 길을 밤새 굽이굽이 돌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먼 시간 속 무한광속의 흐름을 업고 열 달 동안 갇혀 있던 좁은 방을 용감하게 탈출했다. 모태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 안도와 희열과 벅찬 감동을 안겨주며 신고식을 했다.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생명의 환희를 풍겨냈다. 아이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여자는 엄마로 변한다. 엄마는 생명을 품은 자다. 아기는 여자가 엄마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어미의 마음은 자식의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희락도 다 품고 가는 마음이다. 내가 엄마를 불러들인 건 어쩌면 내 아기 낳는 모습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말을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엄마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아기에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란 듯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보여주었다. 내가 얼마나 아기를 힘들게 낳았고 아기에게 어떻게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았을 것 아닌가. 엄마도 이런 통증과 온갖 섞인 감정들로 응집된 시간들을 경험했을 것 아닌가. 마음이 착잡했다. 유나에게 막무가내로 향하는 마음 찌릿찌릿 젖이 돌아 나오면 자동적으로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게 되는 이 마음. 그런데 엄마는 왜 내게 젖을 먹이지 않았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놓았던 아픈 감정들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버려진 자의 고통과 아픔이 이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분신 같은 아이에게 엄마는 왜 젖을 먹이지 않았는지 그동안은 혼자 생각하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제는 묻고 싶어졌다. 아기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내 속에서 갈등과 번민이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엄마는 너무도 평화스런 모습으로 유나를 안고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데 내 마음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인영과 엄마의 관계를 알게 된 건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다. 그녀가 왜 엄마와 의논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에게 말 못할 상처가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엄마에 관한 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그녀가 아기 낳을 때 엄마를 초청하겠단다. 비행기 표를 바로 한국으로 보냈다. 언제 그녀 마음이 변할지 몰라서다. 인영이 아기 낳은 후 아주 예민해졌다. 내가 보기엔 장모님이 최선을 다해 산모를 돌보고 아기를 챙기는데 무슨 불만이 있는지 자꾸 짜증내고 화냈다. 그녀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유나를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질 것 같은데 그녀는 왜 그리 착잡할까. 혹자가 산후우울증 같다 했다. 산후우울증(postpertum depression)은 산모의 약 10~20퍼센트 정도 발병하는데 대개 출산 후 4주 전후로 발병하고 발병 3~6개월 후면 증상들이 호전되나 치료 받지 않을 경우 증상이 일 년 넘게 지속된다고 한다. 약 85퍼센트는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원인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소들이 얽혀 일어나는데 분만 후의 피로 수면장애 충분히 못한 휴식 아이 양육에 대한 부담과 걱정 생활상의 변화 신체상의 변화나 자아 정체성의 상실 등도 병을 유발한다. 산모의 자세가 중요하고 가족의 지지 특히 배우자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영이 산후우울증이 맞는 것 같다.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낼 때 말고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사람처럼 축 쳐져 있다. 우울해 하다가 슬퍼하고 때론 무기력에 빠진 사람처럼 멍 때리고 있다. 장모님은 산모가 밤에 잠을 자야 한다며 아기를 장모님 방으로 데려가 재우지만 인영은 불면의 밤을 보내곤 한다. 인영이 화를 내는 게 차라리 낫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고 있는 건 더 마음 아프다. 처음 며칠은 정성을 다해 젖 물리고 아기를 곁에 두고 돌보는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아기에게도 소홀하고 먹는 것도 시들해지고 자꾸 눈물을 보인다. 아빠가 죽었을 때도 자기 방에 들어가 문 잠그고 이불 뒤집어 쓴 채 울음을 삼키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나를 보면 파르르 화를 내다가 금방 맥없이 앉아 있거나 혼자 훌쩍거리고 있다. 노아도 자기 아내가 심각한 감정 변화 있는 걸 눈치 챈 것 같다. "인영이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산후우울증을 앓던 산모가 아이를 창문으로 집어 던져 살해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때론 자살하는 산모들도 있다던데... 그 아이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것이 병이 되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많은 산모들이 앓는 병이래요." "산모들이 다 앓는 건 아니잖나. 왜 저런 병이 왔겠나. 다 나 때문이야." "그렇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테니 기다려 봐요."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인영이 병원에 가려고 할까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긴 해. 저 아이가 그런 일로 병원 갈 애가 아니지. 그건 내가 잘 아네." "제가 좀 더 신경 쓸게요. 엄마도 알고 계셔야 될 것 같아 말씀드린 거예요." "알겠네. 내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엄마라고 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슨 말씀이세요. 엄마가 아니면 어쩔 뻔했어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돌보는 게 어쩜 더 나았을지도 몰라. 나 때문에 저 아이가 더 힘든 시간 보내고 있을 지도 몰라."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밀고 올라온다. 엄마가 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린 손녀에게 푹 빠져 마냥 웃고 행복해하고 있었으니... 미안함과 서러움이 두루뭉수리 섞여 온 몸을 요동케 한다. 행여 그 아이 들을까 봐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는데 노아가 말없이 등을 토닥여준다. 사위 가슴에 안겨 더운 눈물을 쏟았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이 말이 엄마와의 화해를 이끌어 낸 첫 말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노아와 엄마의 대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순간 뒷목이 쭈뼛 서며 숨이 멎는 듯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많은 산모들이 앓는 병이래요." 노아가 엄마를 위로하듯 말했다. "산모들이 다 앓는 건 아니잖나. 왜 저런 병이 왔겠나. 다 나 때문이야." 가슴이 뛰며 손끝이 저려왔다. 엄마의 또렷한 목소리가 다시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돌보는 게 어쩜 더 나았을지도 몰라. 나 때문에 저 아이가 더 힘든 시간 보내고 있을 지도 몰라." 맞는 말이다. 엄마가 있으니 더 힘들다. 엄마에게 짜증부리고 화내도 마음이 풀리지 않고 내가 그럴수록 아기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싫다. 그런데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으니 알고 있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른다. 온갖 투정 다 부려도 엄마는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이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내 마음을 들킨 거다. 힘이 빠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주저앉고 싶다. 엄마가 서럽게 울음을 삼키고 있다. 내가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듯 엄마도 내 앞에서 잘 울지 않았다. 딱 두 번 한 번은 중동에서 돌아온 아빠를 몰아세우다 힘에 눌려 아빠 품속에 머리를 박게 되었을 때고 또 한 번은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술을 얼마나 퍼마셨으면 간이 작살났느냐며 통곡했다. 그 이후로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애끊는 울음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고 있다. 나는 엉거주춤 문고리를 붙들고 섰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엄마의 서러운 눈물이 내 마음의 응어리를 녹여버린 것일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이 평화로웠다. 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며 안절부절 못하는 건 오히려 엄마였다. "너 괜찮은 거니?" "응 나 괜찮아." 얼마 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대하는 건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엄만 괜찮으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아냐 엄마가 힘들지. 나야 가만 누워서 해주는 밥만 축내고 있는데 뭘." "인영아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엄마 눈에 불안의 빛이 깊어졌다. 참 묘하다. 내가 엄마를 적대시하고 표독스럽게 굴 땐 엄마 눈빛이 처연하긴 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엄마처럼 대하자 엄마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아이러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어긋나는 것일까. 서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도 죄가 되는 것일까. 엄마의 서러운 울음을 보고 눈 녹듯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응어리들이 막 끓기 시작한 죽 표면의 일렁임처럼 마음속에서 다시 일렁인다. 엄마와 나는 잘 될 수 없는 사인가 봐. 전처럼 지내는 게 어쩜 더 편할지도 몰라.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를 가혹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다. 회복을 바라지 않는 자 누가 있으랴.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진실 된 갈망이 하늘에 가 닿기까지는 그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다. 인영이 갑자기 변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변한다더니... 나만 보면 날을 세우던 아이가 소금에 푹 전 배추처럼 야들야들 부들부들해 진 게 도무지 낯설다. 다정하게 대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거대한 해일처럼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를 몰아세우고 날선 말로 아프게 하는 게 오히려 더 나았다. 좌불안석이다. 유나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붉고 주름졌던 피부가 뽀얗고 탱탱해졌다. 속눈썹은 길고 검게 자랐고 머리는 놀놀한 게 미국인의 피를 받은 표시를 냈다. 방긋거리며 웃는 모습은 제 어미 아기 때와 쏙 닮았다. 인영과 정식으로 화해한 건 아니지만 불안하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되었다. 인영이 나를 편안하게 대하는 게 내가 걱정하는 산후우울증의 심리적 기제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관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우리는 그토록 긴 세월을 힘들게 살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기쁨과 감사와 후회와 회한이 범벅이 되었다. 인영이 젖을 먹인다. 젖양이 늘어 아이가 먹고도 남아 유즙기로 짜내야 하는 판이다. 어디 저런 조그만 체구에서 젖이 흘러넘치도록 나올까. 생각할수록 감사하다. "너는 참 행복한 엄마다." "왜요?" "남들은 젖이 모자라 먹이고 싶어도 못 먹이는데 너는 젖도 많이 나오고 또 아기가 젖을 그리 쭉쭉 잘 빠니 얼마나 좋으냐." "젖이 많이 나오는 건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젖을 잘 빠니 좋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젖을 안 빠는 아이도 있나요?" 인영이 의외라는 듯 말간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그랬잖니?" "내가 젖을 안 빨았다고요?" "그래. 네가 젖을 빨지 않아 결국 젖을 먹이지 못했잖니." "그게 무슨... 엄마가 젖을 안 먹인 게 아니고 내가 젖을 안 빨았다고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아프다." 인영은 아기를 옆에다 눕힌 후 바짝 다가와 앉더니 다그쳐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 때 이야기 좀 자세히 해봐요." "젖이나 다 먹이고 말하자꾸나. 젖을 먹이다 말면 어쩌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서 내 얘기 좀 해 봐요." 유나가 옆에서 징징거렸지만 인영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그쳤다. 나는 유나를 안고 흔들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를 배고 참 행복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고아였잖아. 네 아빠 만날 때까지 혼자였단다. 그러니 뱃속에 내 피붙이가 자라고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했겠니. 막달에 배가 유난히 컸어. 사람들이 쌍둥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지." 유나가 잠들었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돌아서니 인영이 무릎을 고추 세워 두 팔로 붙들고 툭 건드리면 터질 듯 물 풍선 같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너를 낳던 날 밤 밖은 칠흑처럼 어둡고 진통은 점점 심해졌지.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았어. 집에서 멀지 않은 조산원에 용한 산파 할아버지가 있었어. 그 때가 밤 2시 경이었어. 서둘러 아기용품을 챙겨들고 조산원에 갔어. 문을 두드리니 산파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오더라. 그 밤에 일이 난 거야." 한숨이 저절로 났다. 그 끔찍했던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인영이 또 물 풍선 같은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엄마 어서......" "진통이 시작됐어. 방에 들어가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산파가 들어왔어. 얼마동안 진통이 계속 되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그 때의 감격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니.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산파가 아무래도 아기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는 거야. 쌍둥이 배 같단 소릴 듣긴 했지만 진짜 쌍둥일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인영이 침을 꿀떡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가슴에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있어서 잠시 쉬어갈 판이었다. 인영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 때는 정말 쌍둥이가 들어있는 줄 알았어. 그 순간의 느낌은 뭐랄까... 갑자기 복권을 맞은 기분이랄까. 예상치 못했던 복이 하늘에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지. 가슴이 뛰었어. 잠깐이지만 행복했다. 흐음... 산파가 잠시만 참으라 했어. 그리고 일이 터진 거야. 그 찢어지는 고통...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지."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인영의 눈에 눈물이 고이려 했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던 표정이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깨어나 보니 읍내 큰 병원이었어. 기절한 사이에 병원에 실려 온 거야." 나는 또 숨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다음 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지금까지 꺼내기도 기가 막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인영 앞에서 그 끔찍한 일을 말해야 한다니... 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큰 숨을 내리 쉬자 인영이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엄마 힘들면 지금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돼. 그냥 가만히 있어요." 어느 새 눈물이 사정없이 흘렀다. 그 때 일을 생각해도 그랬지만 인영이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있는 그 상황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 인영에게 기대어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나중에 큰 병원에서 깨어난 뒤에 들었단다. 그날 너를 낳고 아기가 또 나온 게 아니고 너를 싸고 있던 자궁이 뜯겨져 나왔다는 것을..." "악... " 인영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나는 얼른 그 아이를 안았다. 그 아이는 한참을 흐느껴 울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충격적인 사실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 내린 여린 감성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한 데 엉켜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나가 깼다. 품에 있던 인영을 떼어내고 유나에게로 갔다. 우는 아기를 고추 세워 안고 어미에게로 갔다. 인영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더듬더듬 티슈를 찾아 얼굴을 닦은 후 아기를 받아들었다. 젖이 도는지 인영이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사흘 동안 병원에 있었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을 뻔한 걸 겨우 살렸다더라. 삼일 만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네가 있었다. 사흘 동안 동네 할머니가 보리차를 끓여서 입에 떠 넣어주었다더구나. 조막만한 너를 보고 왈칵 울음이 솟구쳐 한동안 멍청이 서 있었어. 그러다 정신이 들고 보니 젖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젖무덤을 문지른 후 젖을 물렸는데 아기가 젖을 안 빠는 거야. 기가 막혔단다. 아기에게 어서 젖을 빨라고 미친 듯 소리치며 계속 젖을 물렸어. 하지만 너는 젖을 먹는 대신 울음으로 내게 대답했어. 절대 젖을 빨지 않았단다." 그 때 인영이 왜 젖을 빨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자기를 떼어놓고 여행을 떠난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엔 부모를 기다렸다. 부모가 오지 않았다. 나중엔 부모가 오면 어떻게 화를 낼까 궁리했다. 그래도 부모가 오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부모가 왔을 때는 입을 다물고 부모를 외면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기는 모든 걸 다 안다고 한다. 다만 말 못하고 표현만 못할 뿐이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아는 시기가 신생아 때라고 한다. 어쩜 어린 것이 엄마를 기다리다 엄마 젖을 그리다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젖을 빨지 않게 된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있었을까. 그래서 그 아일 생각하면 더 마음 아프다. 인영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 시선 속엔 오만 가지 감정이 녹아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결국 너는 젖을 먹여 키우지 못했고 자궁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너를 외롭게 키우게 된 거고." 인영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느라 꺽꺽 댔다. 유나는 엄마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젖을 힘차게 빨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인영은 젖을 먹이는 내내 엄마 소리를 되뇌었다. 어디 먼 데 있는 엄마를 찾는 아기처럼 흐느끼며 엄마를 찾았다. 그 흐느낌 속에 아픔과 원망과 미움과 분노와 회한과 후회와 질책과 모든 지난 시간의 감정들이 다 녹아 있었다. 유나의 수유가 끝나고 아기를 침대에 눕힌 뒤 인영은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무너져 내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인영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니다 아냐. 그건 네 잘못이 아냐." "제 잘못이에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를 그토록 깊게 오해하고 있었다니 정말 제 자신이 끔찍해요. 절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 엄마에게 용서 받을 자격도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라.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동물이란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이제라도 오해를 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니. 이 엄마가 네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더 큰 잘못이었어." "아니에요 엄마. 그동안 저 때문에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흑흑흑......" 인영은 더 이상 울음을 참지 않았다. 작고 여린 그 아이가 진동하듯 흔들며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 그날 우리 모녀가 쏟아낸 눈물은 모천(母川)이 되어 흘러내렸다. 엄마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많았다. 삼십 년 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았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깊은 산속의 옹달샘처럼 내 속에선 끊임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엄마 우리 이젠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자." "호호 그럴까.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어쩌다 우린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내가 문제지 뭐. 진즉에 엄마한테 내 고민을 털어놨으면 엄마도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을 테고 그러면 그렇게 골이 깊진 않았을 거 아냐." "글쎄 말이다. 언제 적 일이니 이게.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 네가 나를 적대감을 갖고 대하던 때가. 설마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상상도 못했다. 재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지. 먹고 살기 바빠 너를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 내 탓이야." "동네 아줌마들이 문제였어.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항상 동네 아줌마들의 이바구가 문제긴 하지. 인간이란 다 그런 거란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한번 내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게 말인데 말이야. 이솝의 주인이 이솝을 시험해 보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라 하니까 동물의 혀를 가져왔다지. 그래서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또 동물의 혀를 가져왔대. 세상에서 가장 귀하면서도 가장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게 혀라는 거야. 얼마나 상징적인 이야기니." "지혜롭게 말하고 살기가 쉽지 않아요. 말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잖아. 그 때 동네 아줌마들의 말도 문제였지만 그 말을 들은 내가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 건 더 문제였어요. 그 때 엄마한테 내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한번만 물어봤어도 그 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지 않았을 것을. 내가 엄마를 얼마나 맹렬히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몰라요. 참 어리석지요?" "넌 그 때 어렸잖니. 성격도 소심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었지. 지금이라도 이렇게 너와 잘 지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엄마는 이제 지나온 시간들은 다 잊을 거야. 지금부터 엄마와 딸의 관계가 새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 다 용서해 주세요. 이제부터 잘 할게요." "용서는 무슨 다 몰라서 그런 건데... 앞으로 잘 살자 우리." 어느 새 왔는지 노아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김 치!" ( 끝 ) --------------------------------------------------------------------------------- [수상소감] 마음 따뜻해지는 글 쓰고 싶다 관에 안치된 시신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주검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물댄다. 경계에 선 순간. 매 순간이 그렇다. 때론 명료하기도 하고 때론 안개 속인 듯 희뿌옇다. 머물 수 없어 앞으로 나가지만 시작점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한 길. 소설의 길이 내겐 그렇다. 그 길 위에서 어우러진 그 시간들 속에서 울고 웃는 우리들의 이야기 마음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소설의 길로 이끌어준 김 종광 교수님 문우 해나와 은아 사랑하는 가족들 경계에서 한걸음 뗄 수 있게 기회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리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약력: 1959년생. 한국문서선교회 편집장 지냄.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 졸업. --------------------------------------------------------------------------------- [심사평] 엄마와 딸의 오해와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엄마의 난산으로 딸은 미숙아처럼 왜소하게 자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그늘지게 살면서 잘 키우지 못한 엄마를 원망한다. 엄마는 딸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안타갑기만 하다. 결국 딸은 자신이 아이를 낳은 다음에 엄마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해피엔드의 결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화자의 시점이 엄마에서 새 아빠로 또 사위로 딸에게로 바뀌는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있어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단점이 있다. 가작의 이유이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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