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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애시당초’는 없는 말

“애시당초 금연은 안 될 일이었어” “끼니를 거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시당초 무리였다.”     위에서처럼 일의 맨 처음을 나타낼 때 ‘애시당초’라는 말을 쓴다. ‘애시’와 ‘당초’가 만나 ‘애시당초’가 된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애시’는 ‘애초’의 사투리이므로 ‘애초’라는 말을 써야 한다. ‘애시당초’ 역시 ‘애당초’가 맞는 말이다.   ‘애당초’는 ‘애시’와 ‘당초’가 아닌 접두사 ‘애-’와 ‘당초’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당초(當初)’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나타내는 말로 “일이 당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풀렸다” “그의 본심이 어디 있는지는 당초부터 알 만한 것이었다” 등처럼 쓰인다. 이 ‘당초’에 ‘맨 처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애-’가 붙어 ‘애당초’가 됐다. 즉 접사 ‘애-’를 붙여 ‘당초’의 뜻을 한 번 더 강조한 말이 ‘애당초’다.   ‘애당초’는 “그 일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끝까지 해낼 각오가 없으면 애당초 시작하지 마라” 등과 같이 사용된다. 줄여 ‘애초’로도 쓸 수 있다.     비슷한 말로 ‘애저녁’이 있다. 그러나 ‘애저녁’도 ‘애시당초’와 마찬가지로 표준어가 아니므로 ‘애당초’로 표기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생각 자체

2024-04-17

[삶의 뜨락에서] 남의 말 빌린 생각

봄꽃이 만발한 센트럴파크가 그리웠다. 14년 전 베를린 마라톤을 함께 하였던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2시간 전에 나와 센트럴파크 한 바퀴를 돌았다. 레이스가 있는 날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이 뛰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파크에는 수선화, 개나리, 목련, 진달래도 피었다. 수선화는 영양이 풍부하고 햇볕을 받아 꽃송이가 뉴저지에서 본 것보다 크고 싱싱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스치면서 이곳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좋겠다를 연발하면서 2시간을 달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개인 사정이 있지만 일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 은퇴하고 즐기는 친구, 암 투병으로 고생했는데 건강한 얼굴을 보여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센트럴파크가 그립고 오늘 만발한 꽃 이야기를 하는데 시큰둥하게 여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보다 남들이 하는 말, 또 남들이 했던 오래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읽고 기사를 본다. 아니면 구글에서 검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계속 느끼고 생각하고 뭔가를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지는 것은 우리의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인가. 마찬가지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본능적인 것으로서의 감정의 내용이란 나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체득한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그렇다고 말하거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것인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대체로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나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느낀 것을 그대로 느끼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생각하며 그들이 말하는 대로 좇아 말한다. 우리의 감정이나 사고나 언어에서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이고 세상의 평준화된 소문들이다. 내가 매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으로 채워진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감정과 사고와 언어가 남에게서 오고 남이 한 것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조잘거리는 데 그친다면 그의 삶은 허깨비고 거죽이며 껍데기가 아닌가.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신의 고유한 감정과 사고와 언어로 이뤄진다. 그런데 매일 매 순간 느끼는 것이 남을 따라 한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남의 생각을 베낀 것이라면 빌려온 감정과 사고가 따른 사람의 언어로 채우고 있다면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살아 있되 남의 삶 허울뿐인 껍데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만의 고민과 사연과 곡절이 휘발된 삶이 진실하긴 어렵다. 인간다운 삶은 각자가 마땅히 자기의 삶을 사는 데 있다. 그 삶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와 언어를 갖는 데서 시작된다.   암 투병 하는 친구가 커피 한 모금 마시면서 우리를 울렸다. 아들이 결혼하여 같이 살다 새살림을 차렸는데 매일 밤 베개가 흥건히 젖을 만큼 울었다고 했다. 왜 자식이 가정을 가지면 기쁘고 홀가분하던데 뭐가 그리 서럽고 그립고 아쉬워서 울었을까. 그녀는 아들이 남편 겸 아들 겸 친구같이 지냈는데 그게 무너진 것 같았고 금세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며 한 달에 2000달러씩 생활비를 현금으로 준다고 해서 모인 친구들이 입을 딱 벌렸다. 남의 말이 아니고 빌린 생각이 아닌 실화를 듣고 우리 모두 감동했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생각 수선화 개나리 베를린 마라톤 2000달러씩 생활비

2024-04-11

[문화산책]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이라는 낱말을 한자 말 ‘생각(生覺)’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뜻밖에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은 본디부터 우리 토박이말이었다. 학자들의 설명을 빌리면, 우리말의 깊은 뜻에 관심이 없던 시절, 한자와 한문에 얼까지 빼앗긴 사람들이 그렇게 적어서 착한 사람들을 속였고, 그런 시절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아직도 ‘생각’을 한자 말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뜻에 가까운 한자로는 사(思), 상(想) 등이 있다. 사고(思考), 사색(思索), 사상(思想), 사유(思惟), 사변(思辨), 명상(冥想), 묵상(默想) 등 사(思)를 풀어보면 마음(心) 밭(田)이다. 우리 마음의 바탕을 말한다.   우리 겨레는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사람의 속살인 마음은 ‘느낌’과 ‘생각’과 ‘뜻’의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생각은 마음의 한 겹인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처럼, 하염없이 흔들리면서도 생각을 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계가 “생각 같은 골치 아픈 건 우리가 다 해드릴 테니, 편안하게 즐기시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처럼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현대인이다”라고 선언하고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용건은 되도록 짧고 삼빡하게 처리하고, 긴 글은 아예 읽지 않는다. 눈 아프고 골 때리는 책은 뭐하러 읽나, 편안하게 들으면 되지…. 간단히 검색만 하면 만사 해결인데 뭐하러 사색을 하며 궁상을 떠나? 글쎄? 정말 그런가?   생각은 마음의 한 갈래다. 따지고 보면, 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이다. 머리 숙여 감사할 일이다. 영어의 ‘Think’라는 낱말이 한 글자 다른 ‘Thank’와 이웃사촌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마치 ‘Present’가 현재라는 뜻이면서 선물이라는 뜻인 것과 비슷하다.   이어령 선생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덮어놓고 살지 말라”라고 대답했다. 대충 살지 말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덮어놓고 살지 말라”는 말씀은 예술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품을 열심히 하되 덮어놓고 하지 말고, 깊이 생각을 거듭하면서 그리고, 쓰고, 연주하고 그래야 마땅하다. 그래야 감상하는 사람도 깊게 생각을 하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보고 듣고 느끼면 된다는 말씀은 그만하시라.   물론, 작업 중에는 생각 따위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작품에 열중하다 보면, 몰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하고 거룩한 경험이다. “뜻이 앞서면 뜻이 죽는다”는 판소리의 명언을 되새긴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예술작업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상상력이다. 손과 마음을 이어주는 상상력은 예술의 생명인 동시에 우리 인류의 미래를 건강하게 열어줄 원동력이기도 하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사람만이 가진 아름다운 힘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구 위 최강자가 된 이유가 상상력과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 그를 통해 수만 수억의 개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멋진 상상의 세계를 펼쳐낼 수 있을까? 남이 해놓으면 마지못해 구경은 하겠지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생각 생각 따위 속살인 마음 우리 마음

2024-04-0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말의 뼈, 생각의 뼈

꽃잎이 피어나던 날 꽃잎이 떨어지던 아픈 날도   다만 눈을 들어 바라볼 때 볼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귀 기울일 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그 길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숨 쉬는 순간 동안만의   설렘이었다는 것을       맞아, 그것은 굳이 기억해 내지 않아도 코끝이 찡하게 오는 것이지 세상은 아마 모를 거야 그렇게 깊은 것인 줄 마음 깊이 새겨진 화석인 줄 몸 속 세포들이 때 되면   자석같이 살아나 때도 없이 당겨지는 힘 막을 수 없지 멈출 길 없지 먼 산 나무숲을 바라만 보았지 그림자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 같은 말의 뼈, 생각의 뼈 . . . 따듯한 그리움이지   창문을 통해 아침 햇살이 따갑게 쪼인다. 눈살을 찌푸리고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려는 마음을 접고 눈길을 아래로 옮긴다. Deck 앞 넓은 연못에 햇살이 비쳐 잔잔한 물결이 설렌다. 작은 오두막 창가에 앉아 Aldo Leopold의 에세이와 함께 엮은 사진첩을 보고 있자니 보라의 하늘이 연분홍의 하늘로 넘어가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이 내려와 춤추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의 우아한 들녘, 여러 색의 조화로운 들꽃들이 춤추듯 펼쳐진 Leopold의 정원과 커피 내음이 풍기는 창가로 몰려오는 이 아침의 설레임. 이 겹쳐오는 감흥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동트기 전, 해지기 전 삼십 분 전의 기적 같은 풍경은 신의 손끝에서만 만들어질 작품일진대 마주하고 있는 터질듯한 가슴은 또 어찌해야 할지.   시간은 흐르고 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꼭 사람을 멀리 보내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아름다움이란 멀리 꿈속 같은 아련함에서 찾지 말지니 발끝에 닫고, 손끝에 만져지는 그 순간에서 찾을진 데 우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꿈꾸며 살아왔는지. 돌아서려는 따뜻한 그리움을 오래 간직하려 손바닥만 하게 남은 온기를 가슴에 담고 넘어가는 노을에 눈길을 주다 보면 와락 밀려오는 낙엽 같은 외로움이 흔들리며 하루가 지는 어둠 속으로 내리기도 했다.   Wisconsin 대학의 교수이자 자연환경가, 에세이스트, 사진작가였던 Aldo Leopold 의 〈Sand county Almanac〉의 화보 속으로 걸어본다. 새벽 산책을 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기록한 책이다. 책의 첫 장을 여는데 새벽의 신비로움이 다가온다. 3월 새벽바람이 상쾌하게 코끝에 전해온다. 말년에 닭장을 개조한 오두막에서 Wisconsin Sand County의 자연을 담은 12달의 화보와 야생의 자연을 사랑한 잔잔한 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생의 아름다움을, 땅과 인간의 생명 공동체로서 문화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로 땅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고결함을 지키는 것임을 담아내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자연 속으로 돌아간 Aldo Leopold의 명복을 빈다.   삼월의 들녘은 아직 기지개를 켜지 못한 생명들이 흙더미를 밀고 나오는 중이어서 푸석한 흙들을 밟으며 가면 발자국 뒤로 아작하는 아픈 소리가 따라온다. 깨어야 하고 눈 떠야 하기에 잠깐의 아픔은 참아야 하리. 견뎌야 하리라고 말해주지만 상대는 봄의 새싹이나 움트는 꽃눈에게보다도 견디지 못하고 참아내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에게로 향하는 게 맞는 말이 된다. 오늘도 입 밖으로 내뱉은 수도    없이 많은 말들. 흩어지고 사라져 기억도 못 하는 단어들. 그 단어, 말들이 단단해져 뼈가 생기고 힘살이 붙어 명명되는 말의 뼈, 생각의 뼈, 단단하고 따뜻한 그리움이라 말해도 좋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생각 자연환경가 에세이스트 aldo leopold wisconsin sand

2024-03-18

[수필] 렌터카

지난가을 한국여행을 다녀왔다.  둘째 딸 부부가 한 학기 안식년으로 한국을 간다기에 우리 부부도 동행했다. 코로나 탓에 6년 만에 형제자매 친지들을 만났다. 조금씩은 변했지만 건강하게 사는 그 자체로 감사하고 반가웠다. 여행 기간을 2주로 잡았기에 계획대로 바삐 움직였다. 노래 가사처럼 서울, 대전, 광주, 임실, 보성 등을 점만 찍고 다녀야 했다.     이번 여행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떠날 때 자식들과 굳게 약속했다. 나이도 있고 오랜만에 가니 길도 많이 변해 운전이 위험해서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짐을 간단히 하려고 신경을 썼지만 반갑다고 주고받는 선물은 여행 동안 큰 짐이 됐다.     사위가 미국인이라 대전에 갈 때는 KTX를 이용했다. 발전된 한국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서울역 광장 계단을 올라야 했고 기차 플랫폼까지는 내려가야 했다. 가방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렌터카 생각이 간절했다. 애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대전을 떠나 호남 지방을 갈 때는 차를 빌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딸 부부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틀 후 딸은 우리를 전송하러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고속버스와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일렀다. 그런다고 했지만 남편과 나는 이미  렌터카를 예약했기에 미리 부른 택시를 타고 도망치듯이 렌터카 회사로 향했다. 딸과 사위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은 더 힘들 것 같았다. 우리 사정을 말로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걱정만 더 할 것 같아서 비밀로 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여직원 두 사람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반기며 설명을 잘 해주었다. 특히 내비게이션 사용법은 몇 번이나 반복해 일러주었다. 남편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너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놀랄 정도였다.       차 트렁크에 가방 두 개를 넣고 자잘한 짐들을 뒷 의자에 놓고 우리 부부는 먼저 기도를 드렸다. 절대자의 도움이 절실했다. 몸이 편하니 마음도 즐거웠다. 휴게소마다 들러 국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오후 1시쯤 사촌 시숙께서 정성껏  관리하신 임실 시댁 선산에 도착했다. 술잔을 올리며 그분들의 삶을 기렸다.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점만 찍고 다음 장소로 또 이동해야 했다. 시어머님과 큰형님, 사촌 형님께서 왜 그렇게 총총 가느냐고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다. 속으로 “해 있을 때 가려고요”라고 답하며 광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친절하고 낭낭한 목소리는 여행길을 즐겁게 해주었다.     순창, 담양 등의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운 조국의 시골 마을이다. 고추장, 떡갈비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광주에서 5시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부지런히 달려 4시 반쯤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두 동생과 함께 약속된 음식점에서 여고 동창들을 만났다. 여고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도 두 명이나 있었다. 마치 매일 만난 친구처럼 격이 없었다.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모두가 편안한 모습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고향인 보성 득량으로 향했다. 두 동생을 차에 태우고 고향산천을 달리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여전히 내비게이션 아가씨는 낭낭한 목소리로 길을 안내했다.     산소에 가기 전에 고향에 오면 항상 들리는 꼬막 정식을 먹으려 벌교를 찾았다. 대충 지리를 아는 터라 들판만 건너면 되리라고 아무 의심도 없이 내비게이션 아가씨 말대로 들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길이 없어졌다. 큰 도로에서 200미터는 족히 들어온 후였다.  자세히 보니  양쪽으로는 수로가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후진해야 했다. 남편은 창을 열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어 뒤를 보며 후진을 했다. 차바퀴가 자꾸 난간으로 갔다. 두 동생과 나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 뒤에 서서 “핸들 돌리지 말고 고개 내밀지 말고 백미러만 보고 내가 손짓하는 대로 내 말을 잘 듣고 따라서 와라”고 했다. 남편은 고집이 있는 터라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잘못하다 양쪽 수로에 바퀴가 빠지면 일이 복잡해지니 내 손짓만 믿으라고 했다.     우리 부부가 서로 소리를 지르니 막내는 놀라 아무 말 못 하고 난감해하는데 다른 동생은 멀리 앉아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결국 남편은 내 손짓과 말을 들으며 무사히 후진에 성공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웃던 동생이 “언니, 요즘 내가 웃음을 잃었다고 의사도 친구들도 걱정했는데 드디어 오늘 웃음을 찾았네”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치유를 주시려고 그런 고통을? 동생이 다시 웃게 됐다니 무얼 더 바라리.      2박 3일의 성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아무 탈 없이 차를 반납했다. 미국에 있던 큰딸이 전화로 칭찬했다. 대중교통 잘 이용한다고. 나는 더듬거리다가 고백했다. 차를 빌렸다고. 그리고 서울행 고속버스 안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짐 없는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영희 / 수필가수필 렌터카 렌터카 회사 렌터카 생각 내비게이션 아가씨

2024-03-07

[중앙칼럼] ‘마음건강’ 찾으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 ‘문화충돌’을 겪는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체화한 성인일수록 그 파장은 크다.  ‘진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정답은 없다’며 배운 척 열린 자세를 보여도, 막상 새로운 세상에 던져지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현실 자각 타임, 일명 ‘현타’가 덮친다.   미국에 정착하면서 ‘내가 믿고 중요시했던 삶의 기준이나 가치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강렬했다. 위기감이라는 표현을 설렘과 기회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당시 느낀 문화충돌은 거부감과 두려움이 먼저였다. 한국에서 청년기까지 보낸 소위 ‘토종 코리안’으로서 인식 전환이 쉽지만은 않아서다.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반문한다. 그동안 ‘참’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깨지면 혼란스럽다.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칠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볼지 고민한다.     미국에서 성공의 기준, 행복의 기준, 삶의 기준 등 그 가치와 의미는 개인마다 다르고 제각각이다. 사생활 존중과 개성 중시는 일상이다. 이런 자세는 구성원 대부분 공유하는 가치다. 사회 전반에 인간 존엄 중시, 민주주의 시스템 수호의  분위기도 공고하게 깔렸다.   한인은 물론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도 미국의 특징으로 ‘여유와 자유’를 꼽는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한 한국의 집단주의,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 익숙한 영향인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삶과 비교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남보다 경제적으로 앞서려는 욕망을 떨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모습에 대해 가주한인심리학회 저스틴 최 전 회장은 “한인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도 한국의 문화적, 정신적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특별한 모습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인에게 익숙한 ▶성공 지상주의와 치열한 경쟁 ▶경제적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을 의식하는 체면 중시 문화는 한인 사회의 빠른 성장과 정착이라는 효과도 낳았다.     하지만 이민자로서 경제적 어려움이나 고립감에 휩싸일 때면 ‘극단적 선택’ 등 한인 특유의 모습도 나타난다.  LA카운티정신건강국의 김재원 정신건강 트레이닝 코디네이터는 성공지상주의와 타인을 의식하는 삶의 자세가 정서적으로 매우 위험한 ‘칵테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캘리포니아 공공보건국과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집계한 자살 통계는 한인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최근 5년 동안 가주 한인 자살률은 가주 전체 자살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비슷한 문화권인 중국계, 일본계 등 다른 아시아계 자살률과 비교해도 두 배나 높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경제적)성공 강박과 실패 두려움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 ▶이민사회 폐쇄성 ▶외로움과 고립감 ▶가치공유 부재 ▶세대 간 인식 대물림 등이 한인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본지의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응한 2명 중 1명은 지난 1년 동안 죽고 싶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봤다고 답했다. 이 중 215명은 경제적 문제,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 고립감 등 외로움, 가족 간 불화, 실연 또는 대인관계를 이유로 꼽았다.   이 정도면 한인들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호소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만큼,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경제적 성공만이 정답이 아니고, 체면 중시보다 본인과 가족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홀로 모든 어려움을 떠안고 가려는 자세를 버려보자. 이민자로서 각자의 생활여건에 만족할 줄 아는, 미국식 개방적 사고가 때론 여유와 즐거움도 준다. ‘표현’에 인색할 필요도 없다. 마음이 아프면 가족과 친구에게 기대도 된다. 누군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그 사람의 ‘정서적 지지그룹’이라는 자부심으로 따스함도 내보이자.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마음건강 생각 한인 자살률 가주한인심리학회 저스틴 김재원 정신건강

2024-02-27

[오늘의 생활영어] that brings back memories; 옛날 생각이 나게 하네요

(Matt is talking to his friend Dave … )   (맷이 친구 데이브와 얘기한다 …)   Matt: Hey Dave come take a look at my new car.   맷: 데이브 와서 내 새 차좀 봐.   Dave: (looking at Matt's car) New car? You mean old car. That's a 1957 isn't it?   데이브: (맷의 차를 보며) 새 차라니? 오래된 차겠지. 그거 1957년생이지 안그래?   Matt: Yes it is. And it's in cherry condition.   맷: 그래. 게다가 상태도 아주 깨끗하잖아.   Dave: You must have paid a mint for it.   데이브: 돈 아주 많이 줬겠네.   Matt: Not really. I bought if off a man who is retired and he didn't want it anymore.   맷: 그렇지도 않아. 은퇴한 사람한테 샀는데 더이상 갖고 싶지 않았대.   Dave: 1957! That brings back memories.   데이브: 1957년이라니! 옛날 생각 나는군.   Matt: It does doesn't it? The early years of rock and roll.   맷: 정말 그렇지? 로큰롤 전성시대의 초기.   Dave: And life was a simpler time.   데이브: 삶이 훨씬 더 간단했지.   Matt: The world has changed since then hasn't it?   맷: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어 그렇지?   Dave: It sure has.   데이브: 정말.     ━   기억할만한 표현     * it's (or something) is in cherry condition: (구어체) 아주 좋은 상태 깨끗한 상태     "Wow look at that old bicycle. It's in cherry condition."     (와 저 오래된 자전거 좀 보세요. 상태가 아주 좋은데요.)   * to pay a mint for it (or something): 돈을 많이 주고 사다     "He paid a mint for his wife's ring for her birthday."     (그는 아내 생일 선물로 반지를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 a simpler time: (삶이 덜 복잡했던) 간결했던 (단순 순수) 시대     "Life is so complicated these days. I remember a simpler time when I was a kid."     (요즘은 삶이 아주 혼잡합니다. 제가 어릴적에는 훨씬 단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오늘의 생활영어 memories 옛날 옛날 생각 back memories 친구 데이브

2024-02-20

[기고]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생각의 변화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중대한 도전에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에도 목적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 본인이 갖고 있는 지위나 경력만으로는 계속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아 한다. 따라서 스스로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신념의 문제다. 변화의 방향과 결과에 대한 믿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도전하는 자세와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기존과는 다른 참신한 생각을 하고 균형 감각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성장하려면 상상력을 계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배움과 많을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넷째,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남다른 세계관과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접 만남이 어려우면 책을 통해서라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로부터 새로운 사고와 성장 방법,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은 개인의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변화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또한 새로운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게 한다. 혁명은 한 가지 생각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변화를 망설이거나 희망을 갖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생각만 하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인용한 ‘완전한 기회’란 어떤 혼란도 없이 팽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에는 인간관계, 경력, 진로, 건강 등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많다. 만약 현실에서 당면하게 되는 다양한 도전들의 극복을 원한다면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이를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타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이 있거나 고립된 느낌을 가진 상황에서 기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이런 경우 먼저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한다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술가이자 강연가로 유명한 조슈아 베커는 생각을 바꿔야 탈피를 하듯 생활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즉,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몸무게를 줄이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목적은 보기 좋은 체형을 만들기 위해, 혹은 건강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해결 방법은 식단 조절과 운동 등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성공 여부는 본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만족감을 느끼며 실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가 불만스럽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각을 바꾸고 지금의 상황을 새롭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금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금연을 생각한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금연에 성공하려면 생각을 바꾸고 끊임없이 이를 자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기천 / LA 카운티중소기업자문관기고 아인슈타인 생각 금연 문제 성장 방법 문제 해결

2024-02-09

[우리말 바루기] ‘애시당초’는 없는 말

연초에는 많은 이가 새해 다짐을 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 제대로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결국 실패하면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겠다. “애시당초 금연은 안 될 일이었어” “끼니를 거르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시당초 무리였다” 등처럼 자신의 의지가 약함을 지적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일로 돌리기 일쑤다.   이럴 때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애시당초’다. 위에서처럼 일의 맨 처음을 나타낼 때 ‘애시당초’라는 말을 쓴다. ‘애시’와 ‘당초’가 만나 ‘애시당초’가 된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애시’는 ‘애초’의 사투리이므로 ‘애초’라는 말을 써야 한다. ‘애시당초’ 역시 ‘애당초’가 맞는 말이다.   ‘애당초’는 ‘애시’와 ‘당초’가 아닌 접두사 ‘애-’와 ‘당초’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당초(當初)’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나타내는 말로 “일이 당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풀렸다” “그의 본심이 어디 있는지는 당초부터 알 만한 것이었다”등처럼 쓰인다. 이 ‘당초’에 ‘맨 처음’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애-’가 붙어 ‘애당초’가 됐다. 즉 접사 ‘애-’를 붙여 ‘당초’의 뜻을 한 번 더 강조한 말이 ‘애당초’다.   ‘애당초’는 “그 일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끝까지 해낼 각오가 없으면 애당초 시작하지 마라” 등과 같이 사용된다. 줄여 ‘애초’로도 쓸 수 있다. 우리말 바루기 새해 다짐 생각 자체

2024-02-0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홀로 키를 잰다

나홀로 키를 잰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에 빠진다. 모든 것이 공평하고 높낮이가 없으면 잘 났다는 착각도, 무시 당한다는 비참한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자괴감은 자신을 낮추고 자책하는 대 비해 우월감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낫다고 생각하는 감정이다.     도토리는 키 재기를 안 하지만 사람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키 재기 한다. 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하고, 참깨가 길다느니 짧다느니 치수를 잰다.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에겐 기 죽어 꽁지를 낮추지만, 서로 비슷한 수준이거나 정도가 고만고만 하면 깔고 뭉개서라도 고지 탈환을 꿈꾼다. 졸부는 졸부끼리,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끼리 키 재기 한다. 진짜 부자는 키 잴 필요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부자 티가 난다.   개똥철학의 달인이신 어머니는 오빠가 동네 애들과 싸우면 종아리를 때렸다. “싸움은 위를 쳐다보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배울 것이 있다.”며 끼리끼리, 비슷한 수준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은 쓸모가 없는 시간 낭비라는 깊은 가르침이다.   나이 탓인가. 해가 바뀌자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새해 운수에 귀를 쫑긋 세운다.     마음에 송송 구멍이 난 때문일까. 몇 주째 한파에 눈과 비가 쏟아져 태양 본 적 없어 우울증에 걸렸나. 가슴 떨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 찬란했던 청춘의 날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절망,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오늘을 지키기도 힘들다는 무기력함, 어떤 사람들에겐 사는 것이 죽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리저리 시작도 꼬리도 없는 불안한 생각에 젖어 새해 한 달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하릴없이 집구석을 돌아다녔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단편소설의 대가 현진건 ‘운수 좋은 날’의 명대사다.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김첨지는 열흘 넘게 돈 구경을 못한다. 아프다며 나가지 말라는 아내를 뿌리치고 집을 나선 김첨지는 많은 손님을 받아 큰 돈을 벌지만 내내 불안감에 시달린다. 집에 들어가기 불편해서 선술집에서 친구 만나 술을 마시고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설렁탕 국물을 사 들고 집을 들어서는데 아내는 죽어 있다.     김첨지는 운명에 얽매어 산다. 가난과 질병, 하층계급의 비극적인 삶은 돈으로도 극복이 안 된다. ‘행운의 상승과 함께 불운의 상승’이라는 대립병치구조를 통해 우리들이 가장 행복했던 날에도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는 섬뜩함이 도사리고 있다.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시작조차 두려운 공포에 시달린다. 20년 넘게 쓴 칼럼 정리해 출판사에 보내야 하고, ‘Color is My Life’ 자서전 집필, 전시회 준비도 해야 하는데 한 달째 땅 집고 허우적거린다. 개구리 헤엄치며 아무리 용을 써도 물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내 코가 열자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쓸 것은 많은데 쓰지 못하고, 그릴 것은 많은데 물감을 입히지 못한다. 피노키오처럼 거짓을 입에 달고 살 수 없다.     거인들 앞에 서면 여전히 난장이다. 봉우리가 똑같이 높은 산은 없다. 스스로 키를 잴 시간이 왔는지 모른다. 갈 길이 높고 험한데 멈춰 서서 타인과 키 재기를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더 이상 애창곡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를 부르며 못다한 사랑의 편린을 그리워하지 않겠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도 어디까지 날아가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생각 때문 새해 운수 설렁탕 국물

2024-02-06

[우리말 바루기] 그분, 이분, 저분

‘그분’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대명사다. 한 단어이므로 ‘그 분은’ ‘그 분이’ ‘그 분들’처럼 띄면 안 된다.   ‘이분’과 ‘저분’도 마찬가지다. 각각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높여 이르는 삼인칭 대명사로 붙이는 게 바르다. 접미사 ‘-들’이 결합한 형태인 ‘그분들’ ‘이분들’ ‘저분들’ 역시 붙여야 한다.   ‘몇분’ ‘어떤분’은 한 단어가 아니다. “몇 분이나 오셨습니까?” “밖에서 어떤 분이 찾으시네요”와 같이 띄어야 한다. 이때의 ‘분’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의존명사다. 꾸며 주는 말이 앞에 놓인다. 높이는 사람을 세는 단위일 때도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참석자는 총 네 분입니다” “두 분이 이곳을 방문하셨어요”처럼 사용한다.   ‘환자’에 ‘분’을 붙여 높여 부를 때도 의존명사로 생각하고 띄는 경우가 많다. “환자 분들이 뭘 궁금해하시나요?”와 같이 띄면 안 된다. 이때의 ‘-분’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앞말에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였다. ‘환자분’ ‘친구분’ ‘남편분’ ‘산모분’처럼 앞의 명사에 붙인다. ‘분’은 명사 뒤에선 접사로 기능한다.   ‘분’이 의존명사일 때는 앞말과 띄고 접사일 때는 앞말에 붙이면 된다. ‘이분, 저분, 그분’의 경우는 하나의 단어이므로 항상 붙여 쓴다.우리말 바루기 이분 의존명사로 생각 삼인칭 대명사 이분 저분

2024-01-30

[사진의 기억] ‘어린이’라고 쓰고 ‘희망’이라고 읽는다

그 많던 아이들이 다 어디 갔을까. 그 시절엔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딜 가나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새들의 합창 같았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쳐 부를 때까지 해가 저물도록 뛰어노는 아이들로 골목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더구나 겨울방학이다! 방학식을 마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음박질치는 이 아이들의 해방된 장난기가 곧 온 동네를 활기차게 휘저을 것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가정에 아이들 네댓 명은 보통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사오십 년, 혼자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다정한 호칭은 무용해졌다. 아울러 과꽃이 피면 유난히 과꽃을 좋아하던 시집간 누나를 그리워하고, 뜸북새 울면 서울 가서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던 오빠를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과꽃’이나 ‘오빠 생각’ 같은 동요는 아주 오래전의 정서가 되었다. “둘만 낳자”가 “하나만”으로 바뀌고 농담처럼 “한 집 걸러 하나씩”이 회자 되더니 급기야 학교도 동네 골목도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저출산의 서슬에 화들짝 놀라 “동생 낳아주기” 캠페인을 벌이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엄청난 반전이다.   사실 아이들이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서 비록 고난 속에서라도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자체가 자연스러운 삶인데, 우리가 편의적인 잣대로 너무 성급하게 다음 세대를 재단해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완전히 뒤집힌 정책이 과거 우리의 결정이 얼마나 앞을 내다보지 못했는가를 말해준다. 어린이가 희망인 이유는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라지면 학교도 사라지고 교사도 사라지고 꿈이 사라진다. 한겨울 추위에 가방도 없이 책보를 끼고 다녀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던 아이들. 지금 사진 속 이 아이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때 길 위에서 만난 거침없고 해맑던 아이들을 소환해본다. 김녕만 / 사진가사진의 기억 어린이 희망 동네 골목 오빠 생각 언니 오빠

2024-01-28

[이 아침에] 공룡을 만들다가 든 생각

펜데믹 동안 집에 있는 무료한 시간에 뜨개질을 했다. 목도리, 가방, 수세미 등 큰 기술이 필요치 않은 소품들이었다. 아들아이에게 목도리와 수세미를 나눠줬더니 내가 뜨개질에 큰 취미가 있는 줄 알고 아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쥬라식 파크(Jurassic Park) 공룡 뜨기 세트가 왔다.   난감했다. 단순한 시간 보내기용 취미에 의미 부여할 일이 아닌데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갖은 공룡 인형이라니 말이다. 며칠째 뜨기 안내 책자만 들여다보고 머리 아파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했다. 잘 되고 있느냐고. 뭐라도 하나 만들어 보여줘야 될 입장이 되었다.   티라노사우루스, 블라치노사우루스, 딜로포사우루스 공룡 이름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그 인형들을 만들라니. 곰곰 생각하다가 무서운 쥬라기 공원 공룡보단 아기공룡 둘리 같은 귀여운 공룡을 만들기로 했다. 유튜브 한국 채널을 선생님 삼아.   가분수의 공룡을 만들어 머리통과 몸에 젓가락으로 솜을 밀어 넣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공룡. 통통한 공룡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오래전 남편의 유학생 시절, 유학생 부인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아 인형 만들던 추억이 소환되었다. 산타 인형 뱃속으로 솜을 넣었던 기억, 토끼털로 수염과 옷 가장자리 장식 붙이던 기억, 산타 자루에 넣는 손톱만 한 선물을 포장하고 가는 끈으로 묶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일을 주던 인형작가가 디테일에 뛰어난 한국 여성들 솜씨에 감탄하던 생각도 났다.   한국의 예전 달동네에서 하던 가내수공업을 멀리 미국까지 와서 하던 억척 부인들. 대학 선후배 이거나 고교 선후배이기도 했던 그녀들 덕에 남편들이 맘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념품 가게에서 팔리는 컬렉션용 산타 인형들을 보면 비싼 가격이 그럴만하다고 생각된다. 그 어려웠던 공정을 알기에. 이런 인형 만들기 경력직인 내가 공룡에 꼬리와 팔다리를 붙이고 등과 머리에 뿔도 붙이니 그럭저럭 귀여운 공룡이 탄생하였다. 아들네에 아기가 생긴다면 첫 장난감으로 줘야겠다.   공룡 연구로 흰머리가 더 센 느낌이 들어서 공룡은 한 마리로 마감하기로 했다. 올해가 청룡의 해라며 이왕이면 청룡도 하나 만들어보지? 남편이 옆에서 말하길래 손사래를 쳤다. 청룡은 공룡보다 더 길고 구불거리며 산발한 뿔에 긴 수염, 불도 입에서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여의주를 물고 화룡점정도 찍으려면 조수가 있어도 못 만들 일이다. 공룡이건 청룡이건 용은 사양하련다.   그리고 아들아 이런 말 하긴 쑥스러운데 앞으로 저런 선물은 싫어, 차라리 현금으로 주면 어떨까? 아니면 이 나이 되니 먹는 선물도 좋아.   누가 대신 말해 줬으면 좋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공룡 생각 공룡이건 청룡이건 아기공룡 둘리 딜로포사우루스 공룡

2024-01-23

[우리말 바루기] ‘생각지’?, ‘생각치’?

글을 쓰면서 늘 헷갈리는 것이 ‘생각지/생각치’와 같은 경우다. 어느 쪽이 맞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발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읊어봐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하지’가 줄어들 때 ‘-지’가 되느냐 ‘-치’가 되느냐의 문제다. ‘-하지’ 앞이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를 따지면 된다. 목청이 떨려 울리는 소리가 유성음이고,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고 내는 소리가 무성음이다.   ‘-하지’ 앞이 유성음(모음이나 ㄴ, ㄹ, ㅁ, ㅇ)일 때는 ‘ㅏ’만 떨어져 ‘ㅎ+지=치’가 된다. ‘흔치, 간단치, 만만치, 적절치, 가당치, 온당치’ 등이 이런 예다.   ‘-하지’ 앞이 무성음(ㄱ, ㅂ, ㅅ)일 때는 ‘-하지’가 줄어들 때 ‘하’ 전체가 떨어지고 ‘지’만 남는다. ‘넉넉지, 익숙지, 거북지, 답답지, 섭섭지, 떳떳지, 깨끗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은 ‘-하다’ ‘-하게’ ‘-하도록’ ‘-하건대’가 줄어들 때도 마찬가지다. ‘다정하다→다정타’ ‘간편하게→간편케’ ‘흔하다→흔타’ ‘이바지하도록→이바지토록’, ‘참석하기로→참석기로’ ‘생각하건대→생각건대’ 등으로 적어야 한다.   유성음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센소리가 나므로 크게 헷갈리지 않는다. 무성음인 ‘ㄱ, ㅂ, ㅅ’ 뒤에선 거센소리가 아닌 ‘지’ ‘게’ ‘다’ ‘기’ 등으로 적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헷갈리면 줄이지 말고 ‘생각하지’ ‘익숙하지’ ‘넉넉하지’ 등처럼 온전하게 ‘-하지’ 형태로 적는 것도 방법이다.우리말 바루기 생각

2024-01-2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감미로운 낭만을 위하여

눈이 온다 또 온다. 얼마나 오래 올 건지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창 밖을 바라본다. 눈이 오면 제 꼬랑지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려고 마루는 앞마당을 뛰어다녔다. 삼만이 아재는 마당에 수북한 눈을 모아 동네에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든다. 옥이언니는 당근으로 코를 만들고 숯덩이로 눈을 그렸다. 손재주가 좋은 아재가 사랑채에 엮어 매단 강냉이를 낫으로 다듬어 입을 만들면 눈사람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강냉이 낱알들이 눈사람의 이빨처럼 햇볕에 반짝였다.   리사는 눈만 오면 윈트 원더랜드(Winter Wonderland)라고 좋아한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담장 아래 쌓여 수정처럼 반짝이는 눈을 보며 손뼉을 친다. 겨울왕국에 나오는 공주가 되어 꿈과 환상의 나라로 빠져든다. 기분 좋은 날은 종이 왕관을 쓰고 엘사가 부른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를 흥얼거린다. 동생 안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마법을 감추며 숨어살던 엘사가 지난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표방하는 노래다.     ‘Let it go, let it go / Can’t hold it back anymore (중략) / Turn away and slam the door(떨쳐버릴 거야, 떨쳐버릴 거야. 더 이상 감추고 살 순 없어 / (당당하게) 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릴 거야)’ 마법에 걸려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을 향해 부르는 엘사의 노래는 콤플렉스를 감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면 미래로 갈 수 없다.     온종일 두 뺨이 빨개져서 주먹만 한 눈뭉치로 눈사람 만드는 리사를 보며 오늘 하루 온갖 시름 눈 속에 묻고 나 홀로 낭만(浪漫)에 젖기로 한다.     ‘굿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중략) /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중략)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을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중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콧등이 빨게 지도록 하루 종일 함께 걸은 남학생 생각이 난다. 연모를 눈치챈 친구가 첫눈 오는 날 견우직녀가 만날 까치다리를 놓았다. ‘첫눈 오는 날 경북대 뒷산, 가 보면 누군지 안다.’ 이 쪽지를 가슴에 품고 눈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실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검정색 교모 쓴 얼굴 하얀 그 남학생을 만나러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쏜살 같이 달려갔다. 그 때는 핸드폰도 없어 연락 불통, 어른들 눈에 띄면 “어린 것들이 공부나 하지”라는 훈계 받는 시절. 뒷산은 황무지처럼 넓었다. 얼굴은 아리송한데 저 멀리 눈밭을 헤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얼굴. 할 말도 없고 물을 말도 없어 그냥 하루 종일 걷기만 했다. 도시의 끝에서 수성못 끝까지 수십 번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헤어질 시간!  집까지 오자 돌연 물었다. “의대에 합격했는데 해양선을 타고 싶어. 네가 원하면 해양선 안 타고 의대에 갈 거야’라고 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눈치 없는 내 대답! 첫눈 오는 날의 내 첫사랑은 그 길로 파토가 났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남학생은 마도로스가 됐다.   겨울왕국의 안나의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에 울라프는 “괜찮아, 내가 아니까, 사랑은 누군가를 너보다 먼저 두는 거야.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 멋진 대답을 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몰라서 걸어온 그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 아파도 너무나 아파/ 사랑은 또 무슨 사랑’ 윤수현의 노래 ‘꽃길’을 시로 읊으며 눈 내리는 날의 감미로운 낭만을 접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낭만 아재가 사랑채 남학생 생각 엘사의 노래

2024-01-16

40대도 부모와 산다…신 캥거루족 증가

‘한 지붕 두세대’ 가구가 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 고금리 장기화, 고령화 등이 맞물리면서 독립을 미루는 MZ세대부터 부모와 기혼자녀가 함께 거주하는 ‘신 캥거루족’까지 생겨나고 있다.   통계는 이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센서스국 최신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의 약 20%가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즉, 28세부터 43세 사이 주민 5명 중 1명은 부모와 함께 사는 셈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동거는 부모 부양 목적과 돈 절약이라는 이해관계와 맞물린다.     기혼자인 김모(36·토런스)씨는 “회사 월급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쉽지 않아서 지난해부터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다”며 “대신 렌트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아이를 따로 맡길 필요가 없어 렌트비부터 여러모로 돈을 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서로가 ‘윈윈(win-win)’ 할 수 있어 어느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성찬(71·어바인)씨는 “은퇴 후 아내랑 너무 큰집에 살아서 허전했는데 때마침 자녀들이 힘들다고 해서 잠시 들어와 살라고 했는데 서로에게 좋은 선택 같다”며 “할일 없이 지내기보다는 손자랑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렌트비 명목으로 용돈도 받으니까 잠시 함께 사는 불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팬데믹 사태 이후 지속해서 상승하는 렌트비와 집값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임대사이트 렌트닷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전국적으로 렌트비는 약 20%가량 올랐다.   박현수(39·풀러턴)씨는 “풀러턴의 경우 현재 방 3개 주택 정도의 월 렌트비가 4000불 가까이 된다”며 “요즘은 연봉이 10만 달러라도 세금, 교육비 떼고 하면 남는 게 없어 부모님과 합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젊은 MZ세대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18세 이상의 성인이 되면 자녀의 독립심을 강조하며 분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였던 미국에서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 분석 업체 렌트카페(RentCafe)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Z세대 10명 중 7명(68%)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 보면 부모와 함께 사는MZ세대의 비율은 가주가 가장 높다. 가주 지역 Z세대 중 약 80%(111만 명)가 부모 집에 얹혀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렌지카운티 지역 레이첼박(27)씨는 “직장이 LA인데 렌트비가 너무 비싸서 독립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며 “개스값, 학자금 대출, 보험 등을 포함하면 매달 1500달러 이상 나가는데 계산해보면 LA에서 아파트를 렌트하는 것보다는 부모님과 사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당분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렌트카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중 41%는 ‘앞으로 최소 2년간 캥거루족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난해 하반기 주택을 산 밀레니얼 세대는 26%로 상반기 대비 8%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4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편, 캥거루족(Kangaroo族)은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 하고 계속 부모의 신세를 지는 20대를 의미한다. 신 캥거루족은 결혼을 했으나 주거비, 맞벌이, 육아 등으로 부모와 함께 사는 세대를 뜻한다. 사회 현상과 맞물려 이러한 신조어는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독립했지만, 다시 부모 집으로 회귀하는 젊은 직장인을 가리키는 연어족도 있다. 김예진 기자 kim.yejin3@koreadaily.com고물가 부모집 독립 생각 현재 고물가 고물가 시대

2024-01-03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뉴턴의 사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과를 꼽자면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그리고 애플 컴퓨터의 사과 등이다. 그 중에서도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과는 바로 아이작 뉴턴의 사과다.     전염병이 돌아서 학교를 떠나 고향에 내려온 뉴턴은 어느 날 우연히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바보스러운 생각을 했다. 줄기에서 끊어진 사과는 왜 하늘로 치솟지 않고 땅 쪽으로 떨어지는지 궁금했던 뉴턴은 평소 엉뚱한 짓을 참 많이 하고 살았다.     달걀을 삶으려고 끓는 물 속에 회중시계를 넣은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부엌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문에 큰 구멍,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구멍을 나란히 냈다. 당시 뉴턴은 개 두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덩치가 컸고 다른 한 마리는 작은 강아지였다. 개들이 들어 오겠다고 문짝을 긁어 대고, 또 나가려고 문을 열어 달라고 보채서 열심히 만유인력을 연구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참에 개들 마음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구멍을 두 개 내주었다.     하녀 생각에는 큰 구멍 하나만 내도 작은 강아지까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데 왜 구태여 구멍을 두 개씩이나 내주었는지 이상했다. 하녀는 그런 머리에서 나올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것은 하등 쓸 데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녀의 걱정대로 뉴턴은 만유인력의 존재는 규명했지만, 그 힘이 어디서 왜 생기는지는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인슈타인이 등장할 때까지 수많은 물리학자가 중력이 어떻게 생긴 힘인지도 모르면서 중력을 이용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었다. 뉴턴은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으며 감히 뉴턴에게 대드는 일은 스스로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무모한 경우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달랐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가 사과를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라 거대한 질량을 가진 지구가 시공간을 짓누르기 때문에 생긴 경사면에 사과가 붙잡혔기 때문이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이불 소창을 펴서 한쪽 두 귀는 시어머니가 붙잡고 반대쪽 두 귀는 며느리가 붙잡아 팽팽히 당기고 있는데 곁에서 놀고 있던 어린 손자가 농구공을 팽팽히 펴진 소창 위에 던졌다. 농구공의 무게 때문에 이불 소창은 아래로 불룩 배가 나오게 된다. 재미가 들린 손자가 이번에는 탁구공을 그 위에 던졌다. 탁구공은 농구공이 만든 경사면을 따라 빙글빙글 돈다. 만약 공기의 저항과 소창 면에서 발생하는 마찰이 없다면 탁구공은 경사면을 따라 영원히 돌 것이다. 여기서 농구공을 태양으로, 탁구공을 지구로 바꾸면 지구는 진공이어서 저항이 없는 태양 주위를 끝없이 공전할 것이다. 뉴턴은 태양의 중력이 지구를 붙잡아서 그 주위를 공전시킨다고 생각했지만, 아인슈타인은 태양의 질량이 만든 공간의 왜곡에 지구가 붙잡혔다고 보았다. 같은 상황을 서로 달리 이해했다.   우리는 사과를 보면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뉴턴의 만유인력을 떠올린다. 그만큼 뉴턴의 사과는 우리 인류의 사고 자체를 바꿔놓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든 뉴턴의 묘비명을 소개한다.     '자연의 법칙은 밤의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신이 "뉴턴이여 있어라!"라고 말씀하시자 모든 것이 밝아졌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사과 사과 세잔 사과 뉴턴 하녀 생각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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