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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직결된 행위…무슬림 한 달간 금욕 생활

종종 인간은 종교를 통해 육신의 본능을 제어한다. 이는 인간이 신에게 철저히 종속된 존재임을 인지하고, 육체의 쾌락을 통제해 신앙의 깊은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열심이다. 현재 무슬림은 이슬람의 성월인 라마단(3월 10일~4월 9일)을 보내고 있다. 이 기간 무슬림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을 한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고 성관계 등 행동에도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감내한다. 과연 인간은 일시적인 금욕 행위를 통해 종교가 내포한 영원의 세계에 닿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무슬림들의 라마단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이슬람의 토대는 코란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예언자 무하마드에게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첫 계시를 줬다.   무슬림은 금식의 행위를 통해 이를 기념한다. 그 기간을 라마단(Ramadan)으로 일컫는다.   라마단은 ‘불에 탄다’는 의미다. ‘라미다(Ramida)’에서 파생했다. 이 기간에 금식을 통해 죄를 불에 태워 없애겠다는 종교적 다짐이 담겨있다.   개신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구원은 행함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예수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대속의 개념을 믿고 고백할 때 비로소 은혜로 받는 게 구원이다.   반면, 이슬람은 다르다. 믿음과 행함으로 살다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구원의 여부가 결정된다.     무슬림에게 믿음은 6가지다. 알라, 천사, 경전, 선지자, 숙명,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이다.   여기에 행함이 있어야 한다. 5가지다. 금식, 성지순례, 기도, 구제, 고백이다.   라마단은 행함의 요소 중 하나인 금식에 집중하는 기간이다. 단순한 금식, 금욕이 아니다. 그들에겐 구원과 직결된 행위다.   개신교는 이 기간 무슬림을 자극하는 행위 등 자제를 촉구한다. 그만큼 무슬림에겐 민감한 시기다.   가능하면 침도 삼키지 않고 향수 등도 뿌리지 않는다. 그 시간에 코란을 읽고, 기도에 매진한다. 욕구를 억제하고 알라를 더 깊이 아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다.   전국 최대 개신교단인 남침례교(SBC) 산하 국제선교위원회(IMB)도 ‘기독교인이 라마단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라는 글을 게재했다.   IMB 마이크 에덴스 목사는 “개신교의 금식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십자가 사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의 행위는 구원을 받는 데 있어 그 어떤 것도 더하지 못한다”며 “단, 무슬림에게 금식은 복종, 행위 등을 통해 (신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에덴스 목사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영적인 것에 대해 대화할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개신교 측에서 대화의 기회로 삼자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슬림은 라마단 기간에는 모욕을 당해도 같은 방법으로 모욕을 주지 않는다. 구제 행위를 중시하기 때문에 도와주고 용서하는 데 힘쓴다. 이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 안다면 열린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율법 학자들이 정한다. 이슬람력 8월의 종료와 함께 새달의 개시를 알리는 초승달을 육안으로 관측해 발표하면서 날짜가 정해진다. 즉, 라마단은 초승달이 떠오른 것이 확인되는 순간 다음날부터 시작된다. 한 달 뒤 초승달이 다시 떠오르면 라마단은 끝난다.     무슬림은 내부적으로 라마단 기간을 통해 결속을 다진다. 이 기간에는 전 세계 모든 무슬림이 금식을 추구한다. 형제애를 느끼고 모두가 알라 앞에서 평등하다는 의식을 되새긴다. LA한인타운내 버몬트 애비뉴 인근 이슬람 사원에도 라마단 기간 동안 수많은 무슬림이 드나드는 이유다.     이스라엘 정부조차도 라마단 기간을 인정한다.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 중심부에는 ‘황금 사원’이 있다. 이곳은 이슬람의 3대 성지중 하나다. 무슬림은 황금 사원 장소를 무하마드가 하늘로 올라간 자리로 믿고 있다. 이로 인해 특히 라마단 기간만 되면 수십만 명의 무슬림이 황금 사원을 찾는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라마단 기간 무슬림 기도자들의 방문을 허용키로 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황금 사원 주변에 수천 명의 경찰도 배치했다. 전시 중에 자칫 이슬람의 성지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동의 화약고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 라켈라 카람손 대변인은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 내 모든 장소에서 종교의 자유를 강력히 보호하겠다”고 발표했다.   라마단의 마지막 날은 ‘Eid al Fitr(이드 알 피트르)’라고 불린다. 금식을 끝내며 축제를 벌이는 날이다. 이날은 무슬림에게는 종교적 명절과 같다.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무슬림 공동체만의 기쁨을 누린다.   반면, 라마단은 올해 기독교의 사순절 기간과 일부 겹쳤다.   김종일 아신대(ACTS) 중동 연구 교수는 칼럼을 통해 “라마단은 전 세계 십수억 명이 넘는 무슬림의 명절 기간”이라며 “그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분명 필요한 부분이며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 없이는 지혜롭고 올바른 복음 전파가 어렵다”고 조언했다.   한편, 세계기독교연구센터(CSGC)에 따르면 무슬림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억 명에 이른다. 세계 전체 인구의 약 25% 정도다. 오는 2050년에는 28억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퓨리서치센터도 2010~2050년 사이 무슬림 인구 증가율은 무려 73%로 크리스천 증가율(35%)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무슬림 라마단 금식 구원 금욕 사순절 LA 로스앤젤레스 미주중앙일보 장열 종교 이슬람 이슬람 사원

2024-03-11

[열린광장] 사순절과 함께오는 소망

올해 사순절(Lent)을 맞이했다. 우리 육신의 삶이 한계가 있음을 재인식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출발하게 된다.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신앙여정 중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선택하는 기간이다. 광야 길에 명상이란 그늘에서 쉬는 것이라기보다 천로역정을 가면서 목적지를 다시 바라보는 모습일 것이다.     성서 역사상 바울 사도는 신약성서의 절반을 기록하는 데 사용 받은 사도 아닌가. 그뿐 아니라 사도 중에서 교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는 자아상을 말할 때 오히려 이렇게 그린다. “나는 죄인 중 가장 큰 죄인이라. 오직 주께서 나를 충성되이 보시고….”  뜻밖의 신앙고백이다. 자신의 재능과 업적을 말해주기 바라는 현대인의 안목으론 마음 깊이 와 닿는 영성이다.   사순절 기간을 기회로 삶의 목적지를 다시 바라보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 기간은 수 세기 동안, 주께서 친히 고난받으신 것을 현대인도 그 의미를 담아 각자 삶의 상황에서 자원하여 성찰의 자세를 점검하는 시간이라 하겠다.  그런 후 다가오는 ‘고난주간(Passion Week)’에 주께서 친히 지신 십자가와 나 자신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면서 자아상을 재인식하는 절기라 하겠다.   돌아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미국에서만 90만 명의 시니어가 생명을 잃었다. 전체 희생자 4명 중 3명이 시니어였다. 시니어에 대한 관심과 의학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 사순절의 안목으로 성찰해 봄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돌봄과 영적 지혜를 더 할 것이다.   우리의 순례 여정에서 만나는 상실과 슬픔, 생로병사의 필연적 만남이 별다른 아픔과 의미가 없다면 현대인을 위한 사순절의 의미도 크지 않다. 하나 삶에 별다른 아픔이 없고, 또한 그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 천로역정에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축복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병원 목회에서 수많은 임종 환자를 만나 위로하며 기도할 때, 그분들에게서 배운 교훈은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환자는 생로병사에서, 아픔과 슬픔 중에도 자신은 사랑받는 자, 그리고 용서받은 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사순절과 함께 오는 소망이 감사하다.  주님의 고난에서 현재의 나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소망을 발견한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겠느냐고 낙심할 그때 사순절은  특별한 회심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     올해 사순절에 우리 모두 삶의 여정에서 새로운 소망을 경험하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 교수열린광장 사순절 소망 사순절 기간 올해 사순절 그때 사순절

2024-02-27

[열린광장] 광야 여정 가는 모습

삶의 여정을 가는 각자 모습이 소중하다. 누가 대신 갈 수 없는 고유한 여정이다.  해마다 자신의 여정을 잠시 돌아보게 되는 사순절(The Lent)이 얼마 전 시작됐다. 이 시작을 알리는 예식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이라 명명한 데는 그 의미가 함축적이다. 소유와 안락을 목표로 걸어가던 삶의 시간을 잠시 놓아두고, 마치 재를 머리부터 온몸에 뒤집어쓰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가장 낮은 자세로 내려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병원에서의 이 상징적 기도예식은 메디칼 케어팀의 특징을 고려해 참여하게 된다. 근무팀이 바뀌는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부터 채플린의 순회 스케줄이 짜인다. 스피리추얼 케어를 담당하는 채플린 오피스는 각 층에 도착하는 예정시간을 알리고, 오후 마지막 모임은 환자가족과 응급환자 케어로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을 위해 채플모임으로 예식을 마친다.     직원들을 위한 ‘재의 수요일’ 예식은 먼저 헬스케어 전문인으로서 환자를 돌보는 특별한 소명을 돌아보고 감사한다. 그리고 본래 재와 흙에서 생명의 호흡을 얻어 시작된 이 삶의 의미를 기억하고 다시 재와 흙으로 돌아갈 삶의 여정 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긍휼의 언약을 간구한다. 이 기도회 마침은 준비한 재를 참석한 직원들의 이마에 묻혀주는 것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도 삶의 여정을 겸허히 마음에 새기게 하는 예식이다.     사실  40일 동안의 사순절 기간은 더 넓은 시각도 갖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 보여진다. 우리 주변과 커뮤니티, 넓게는 후손들이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는 이타적 시간이 될 수 있다.     지난 3년여 기간의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또한 여전한 인종차별주의, 자원봉사 가치의 약화, 사회정의 부재, 의료 불공정, 총기폭력, 식품 윤리, 전쟁과 재난,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같은 공동과제 해결을 위한 기도와 관심의 리셋도 가능하다. 우리 후손들의 안락한 삶의 영위 여부가 현세대의 커뮤니티 의식과 관심에 달려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재와 흙으로 상징되는 사순절이지만 결국은 개인이나 인류가 목말라 하는 미래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하고 그에 따른 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예식의 의미가 매우 깊다.  철학자 솔엔 키르케고르가 던지는 질문과 연관된다. “당신의 삶의 기초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자문하게 하는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질문 아닌가. 사순절은 각자 삶의 여정 가운데 주어지는 마음의 리셋 기회라 하겠다.     기원전 6세기경 쓰인 한 시편의 울부짖음과 찬미를 통한 그 여정의 소리를 들으니 맥박이 요동하듯 한다. “주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간구할 때 들으셨도다.”   이민자로서 걸어가는 이 곤고한 광야 여정에서, 지금 어디쯤 있던지, 각자 형편대로 40일의 리셋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함께 ‘재의 수요일’ 시선을 통해 실존적 모습과 약속의 언약을 동시에 보며 여러분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언약으로 풍성해지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 미주장신 교수열린광장 광야 여정 여정 가운데 상징적 기도예식 사순절 기간

2023-03-07

[뉴욕의 맛과 멋] 사순절의 선물, 후배들의 치사랑

대학 후배들과 저녁을 먹었다. 권오문이 오랫동안 진행하던 치아 임플란트 공사가 끝나 외식을 할 수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김진은 붉은 장미 12송이의 화려한 꽃다발을 내 가슴에 안기면서 초장부터 나를 들뜨게 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내 나이에 연하남(?)에게 꽃다발을 받는 건 근사한 팩트다. 진짜 감동은 권오문이 아내가 챙겨준 밑반찬들을 한 가방 가득, 내가 들 수 없을 정도로 그득 챙겨온 일이다. 돼지감자, 깻잎 장아찌는 직접 마당에서 재배한 것이고, 마늘장아찌와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볶은 참깨, 고춧가루는 서울서 공수해온 것, 거기다 직접 담은 매실청과 우엉차까지 얌전하게 포장해서 보낸 아내가 “모두 건강식이니 이것들 드시고 선배님 건강해지시라”고 했다며 덕담까지 얹어 신나게 전한다. 권오문은 코로나로 몬태나 있을 때도 콩나물 콩과 함께 이런 밑반찬들을 잔뜩 보내줘서 얼마나 요긴하게 먹고,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이날 끝까지 맘껏 먹을 수 있던 비싼 갈비는 이종률이 샀다. 이종률은 “선배님, 말씀만 하세요, 언제든 모시겠습니다”는 후배, 내 안부를 물어오는 (권오문 빼고) 유일한 후배다.     이들은 맥주와 소주를 마시면서도 화제가 모두 대학 얘기뿐이었다. 한국서 하는 대학 평가에서 우리 대학이 4위라든가 지난달에는 2위였다든가 하면서, 대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다. 대학 동문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잘 나가는 동문 선후배들의 얘기도 끝이 없다. 하긴 이들은 우리 대학 뉴욕동문회의 기둥들이다. 두 사람 모두 회장을 역임했고, 권오문은 영원한 이사장으로 동문회를 위한 봉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사순절을 보내며 유난히 후배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순절은 절제와 극기를 실천하며 조용히 묵상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기로 삼아왔다. 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로 무력해지거나 가라앉으려던 자아를 움트는 새순들처럼 봄의 입김에 청정한 기압으로 쏘아 올려 자신도 새로 거듭나는 시간인 까닭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유형무형의 제약들로부터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무겁고 진중하기만 했던 사순절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눠 받으려고 의식적으로 엄숙해지려고만 했던 사순절을,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쁨의 기간으로 맞고 있다. 신앙적으로 그게 맞고 틀리고는 모르겠고, 이젠 고통이라는 게 축복이라는 걸 너무 잘 이해하니까 고통마저도 감사하게 받게 되었다면 설명이 될까.     혹자는 할 일 없이 살 때, 해야 할 모든 것을 하게 되고, 바라는 것을 버리면 바라는 것이 우리를 찾아오며 그것이 바로 삶의 신비로운 비밀, 엄청난 공덕이라고 한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 그냥 그 느낌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대학 동문회를 위해서 별 공로도 없는 선배임에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후배들의 정도 그래서 더 진하게 체감된다. 이것은 한국인의 정, 그 무한한 정일 터. 아직도 대학 시절의 치기를 즐기는 후배들의 치사랑이 정답기만 하다. 이영주 / 수필가뉴욕의 맛과 멋 사순절 선물 대학 동문회 대학 후배들 선물 후배들

2022-04-22

[살며 생각하며] 사순절에 떠나는 천로역정 3

지난 회에 이어 천로역정의 나머지 이야기다.   ‘아름다운 궁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주인공 크리스천을 기다린 곳은 ‘겸손의 골짜기’였다. 여기서 ‘아블루온’이란 악룡에게 무시무시한 불화살의 공격을 받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이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정, 올가미, 귀신, 괴물들을 만나지만 주의 권능에 힘입어 용케 피한다. 그런 뒤 광야 저쪽 야트막한 언덕에서 앞서 걸어가던 ‘신실’이란 친구를 만나 같이 걸으며 염려, 고통, 여러 유형의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광야를 거의 다 지날 무렵 순례 초기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던 ‘전도자’를 만나 고난의 순간들을 하소연하지만 전도자는 오히려 “아무런 고통 없이 순례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제 광야를 벗어나면 원수들이 죽일 작정을 하고 덤벼들 테고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믿음의 피’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는 무서운 예언을 남긴 채 떠난다.   전도자와 헤어진 두 사람은 이제 광야 끝자락에 위치한 ‘허영의 도시’ 에 이른다. 이 도시는 수천 년 전부터 집, 토지, 지위, 명예, 진주, 보석 같은 허영물을 전시하고 순례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허영 명품에 조금의 관심조차 기울임 없이 갈 길만 재촉하자 상인들은 ‘입은 모양새나 말씨가 전혀 다르다’며 시비를 걸어 싸움을 유발한 뒤 관가로 끌고 가 ‘폭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겼다. 결국 ‘신실’은 사형 언도와 함께 죽임을 당하고 크리스천만 살아 홀로 걷다 ‘소망’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이후 두 사람은 탐욕, 구두쇠, 돈, 데마에 이어 ‘소금기둥이 된롯의 아내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뒤 그림처럼 아름다운 ‘생명수강’ 도착, 모처럼 긴 휴식을 취한다. 그런 뒤 길을 잘못 들어 ‘절망의 거인성’에서 ‘의심의 감옥’에 갇혀 자살을 종용받지만 품속에 있던 ‘약속의 열쇠’로 감옥 문을 열고 나와 ‘기쁨의 산’에 이르게 된다.   이 산에서 두 사람은 지식, 경험, 경계, 성실 같은 네 목자로부터 풍부한 영적 지식과 경계의 교훈을 얻지만 ‘미혹의 땅’에서 ‘무지’를 만나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또 ‘마법의 땅’에서는 미혹에 빠져 잠시 영적으로 혼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담대히 모든 유혹과 혼란을 극복한 뒤 순례길 마지막 안식처 ‘뿔라의 땅’에 입성, ‘주의 신부’ 된 기쁨과 함께 ‘주의 만찬’에 초대되어 떡과 잔을 나눈다. 그리고 저 멀리눈 앞에 펼쳐진시온의 언덕을 바라보며 새 힘을 받아 성문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죽음의 강’조차 가뿐히 건넌다. 그리고 빛나는 영들(천사)의 환영 속에 당당히 천성에 입성하는 것으로 천로역정의 대단원은 막을 내린다.   2000년 전 예수는 죽임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에 입성, 어제 ‘성금요일’ 밤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오늘 유대교 안식날, 실패자의 모습으로 무덤에 갇혀 지냈다. 그리고 3일만인 내일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사실 천국은 ‘크리스천’ 같이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의 공로로 가는 곳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작가 존 번연은 천로역정을 통해 좁은 문이나 십자가보다는 ‘허례와 위선’ 같이 넓고 평탄한 길만 탐하는 오늘날 우리 신앙 자세를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천로역정 사순절 주인공 크리스천 광야 끝자락 광야 저쪽

2022-04-15

[살며 생각하며] 사순절에 떠나는 천로역정 2

천로역정(天路歷程)이란 ‘천국 가는 여정’이란 말로 원제목 The Pilgrim’s Progress(순례자의 전진)보다 우리에게 더 이해하기 쉽고 익숙한 제목 같다.   시작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꿈속에서 책(성경)을 통해 사는 도성이 곧 멸망(장망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친척, 친구들의 조롱을 뒤로한 채 남루한 옷차림으로 무거운 짐(죄)을 지고 동조자 ‘유유부단’과 함께 천성을 향해 떠나는 장면이다. 여정의 첫 난관인 ‘낙심의 늪’에서 허우적대지만 ‘도움’이란 사람을 만나 탈출한다. 이후 ‘유유부단’은 되돌아갔고 홀로 남은 크리스천은 우연히 만난 ‘세속현자’를 통해 ‘도덕마을의 준법선생’을 만나면 구원에 이르는 쉬운 길을 알려줄 것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그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러 시내산 높은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떨어져 나오거나 불같은 것이 자기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오히려 등의 짐이 더 무거워 옴을 느끼고 고민한다. 이때 ‘좁은 문’으로 가면 살길이 열릴 것이라고 훈계해주었던 ‘전도자’가 다시 나타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일러준다. 그의 말대로 좁은 문을 두드렸고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설명자의 집’으로 들어가 특별한   시청각교재, 즉 ‘목자의 상’ ‘비질하는 하인과 물뿌리는 소녀’ ‘정욕과 인내’ ‘불을 끄려는 마귀와 기름 붓는 그리스도’ ‘철창 속 타락자’와 같은 방을 경험한다.   좁은문을 지나 ‘구원’이라고 쓰인 담장 길을 따라 걷다 꼭대기에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뿐인데 놀랍게도 어깨의 무거운 죄의 짐이 스스로 풀려 무덤 입구로 굴러떨어져 다시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어 ‘세 천사’가 나타나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며 걸치고 있던 누더기를 벗기고 깨끗한 새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또 이마에 표를 달아준 뒤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면서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제시하라고 알려주었다.   아! 하며 황홀한 기쁨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걷는 가운데,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자는 우매, 나태, 거만들을 지나 ‘허례와 위선’이란 두 사람을 만나 동행한다. 이들은 좁은 문과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담을 넘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곤경의 기슭’이란 곳에서 또다시 쉬운 샛길만 탐하다 파멸에 떨어져 죽고 나 홀로 ‘곤고의 언덕’을 오르다 정자에 놓인 긴 의자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다.   잠에서 일어나 ‘곤고산’ 꼭대기에 도달하였으나 ‘두루마리’를 잠자는 동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석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다시 내려가 두루마리를 찾은 뒤 ‘아름다운 궁전’이란 곳에 도달하였지만 궁전 앞을 막아선 ‘두 마리의 사자’를 보고 잠시 놀라 망설이자, ‘각성’이 ‘목줄에 매인 사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어 담대히 궁전에 들어간다. 기쁨으로 그곳에 머물며 삼손, 기드온 및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기록들을 읽으며 앞으로 닥칠 고난을 대비하여 ‘방패’ ‘투구’ ‘검’ 등으로 무장한 뒤 떡과 포도주를 선물 받는다.   여기까지가 순례길의 반 정도다. 이제 고난의 십자가와 부활, 목표했던 천성에 입성할 기쁨과 환상의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천로역정 사순절 주인공 크리스천 문과 십자가 하인과 물뿌리

2022-04-01

[살며 생각하며] 사순절에 떠나보는 천로역정

지금 기독교력으로 사순절이다. 사순절(Lent)은 길이(Length)를 의미하는 앵글로색슨어 Lenten에서 유래한 말로 봄철 또는 봄의 기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순이란 10일이 4번 계속된다는 뜻으로 계산은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절(올해 4월 17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전 수요일(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고 의미는 인간의 죄성을 깨닫고 회개하는 가운데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의 진보를 이뤄가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며칠 전 딸아이가 12살 먹는 손녀딸이 의자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왔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왜! 했더니 읽고 있는 책이 뭔지 보란다. 잘 안 보인다고 했더니 The Pilgrim’s Progress(천로역정)이라며 지난 재의 수요일(3월 2일)부터 매일 몇장씩 읽고 있다며   대견하지 않으냐고 동의를 구한다.   사실 천로역정은 아주 오래전 교회의 추천도서라 나 자신 몇 번 읽기를 시도하였으나 너무 황당한 이야기 같아 읽다 마다를 반복하다 중간에 접었던 책인데, 5~6년 전 한국방문 길에 신앙 친구의 권유로 지구촌교회가 경기도 가평에 조성해 놓은 천로역정 체험코스를 돌며 순례자로의 인생을 성찰해 보기도 했다.   존 번연(1628~1688)의 천로역정은 유럽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명작 중 명작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닐 정도이고 지금도 기독교인이면 한 번쯤은 접해보는 도서로 프로이트는 ‘성경만 통하면 누구나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있음을 존 번연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작가 존 번연은 잉글랜드에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102명의 필그림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정착한 8년 뒤인 1628년 영국 베드퍼드(Bedford)라는 작은 마을에서 땜장이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영국은 내란에 공화정, 왕정복고, 종교전쟁 등 어렵고 혼란한 내홍의 시기라 그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원래 그는 불신자였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에서 청교도인 메리가 혼수 대신 가져온 책 중 ‘폭스의 순교사’를 읽으면서 영적 변화를 체험했고 1653년 침례교 신자가 된다. 입교 후 그는 뜨거워진 가슴을 가눌 길 없어 25세부터 5년 동안 평신도로 자유롭게 전도하고 설교하였기에 ←‘번연주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다 1661년 1월 찰스 2세의 칙령 ‘인가받지 못한 자의 설교금지령’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뒤 무려 1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때 옥바라지를 하던 부인 메리가 남편 대신판사를 만나 신랄하게 따졌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거두절미하고 흥미로운 것은 감옥이 존 번연의 신앙의 진보를 이루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12년 감옥이 그를 육신 적으로얽어맸지만 영적인 순발력은 가로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갇힘 속에서 찾은 깊은 기도와 성찰로 인해 세속화되었던 생명이 사라지고 예수 안에서 새 영이 움을 트면서 ‘명상의 유익, 신자의 행위,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를’ 등 명작을 만들었고 마침내 1667~1721년 ‘천로역정’을 집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천로역정은 나그네 인생이 장차 망할 이성을 떠나 천국에 이르는 동안 부딪히는 고난과 질고, 나락과 고통, 기쁨과 소망 등을 적절한 비유와 의미심장한 상징 등을 통해 설명하면서 소망의 천성에 입성하는 스토리로 다음 회에 대강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천로역정 사순절 천로역정 체험코스 사실 천로역정 신앙 친구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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