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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사순절의 선물, 후배들의 치사랑

대학 후배들과 저녁을 먹었다. 권오문이 오랫동안 진행하던 치아 임플란트 공사가 끝나 외식을 할 수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김진은 붉은 장미 12송이의 화려한 꽃다발을 내 가슴에 안기면서 초장부터 나를 들뜨게 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내 나이에 연하남(?)에게 꽃다발을 받는 건 근사한 팩트다. 진짜 감동은 권오문이 아내가 챙겨준 밑반찬들을 한 가방 가득, 내가 들 수 없을 정도로 그득 챙겨온 일이다. 돼지감자, 깻잎 장아찌는 직접 마당에서 재배한 것이고, 마늘장아찌와 고추장, 참기름, 들기름, 볶은 참깨, 고춧가루는 서울서 공수해온 것, 거기다 직접 담은 매실청과 우엉차까지 얌전하게 포장해서 보낸 아내가 “모두 건강식이니 이것들 드시고 선배님 건강해지시라”고 했다며 덕담까지 얹어 신나게 전한다. 권오문은 코로나로 몬태나 있을 때도 콩나물 콩과 함께 이런 밑반찬들을 잔뜩 보내줘서 얼마나 요긴하게 먹고,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이날 끝까지 맘껏 먹을 수 있던 비싼 갈비는 이종률이 샀다. 이종률은 “선배님, 말씀만 하세요, 언제든 모시겠습니다”는 후배, 내 안부를 물어오는 (권오문 빼고) 유일한 후배다.  
 
이들은 맥주와 소주를 마시면서도 화제가 모두 대학 얘기뿐이었다. 한국서 하는 대학 평가에서 우리 대학이 4위라든가 지난달에는 2위였다든가 하면서, 대학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다. 대학 동문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잘 나가는 동문 선후배들의 얘기도 끝이 없다. 하긴 이들은 우리 대학 뉴욕동문회의 기둥들이다. 두 사람 모두 회장을 역임했고, 권오문은 영원한 이사장으로 동문회를 위한 봉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사순절을 보내며 유난히 후배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순절은 절제와 극기를 실천하며 조용히 묵상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기로 삼아왔다. 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로 무력해지거나 가라앉으려던 자아를 움트는 새순들처럼 봄의 입김에 청정한 기압으로 쏘아 올려 자신도 새로 거듭나는 시간인 까닭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유형무형의 제약들로부터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무겁고 진중하기만 했던 사순절을, 예수님의 고통을 나눠 받으려고 의식적으로 엄숙해지려고만 했던 사순절을,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쁨의 기간으로 맞고 있다. 신앙적으로 그게 맞고 틀리고는 모르겠고, 이젠 고통이라는 게 축복이라는 걸 너무 잘 이해하니까 고통마저도 감사하게 받게 되었다면 설명이 될까.  
 


혹자는 할 일 없이 살 때, 해야 할 모든 것을 하게 되고, 바라는 것을 버리면 바라는 것이 우리를 찾아오며 그것이 바로 삶의 신비로운 비밀, 엄청난 공덕이라고 한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 그냥 그 느낌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대학 동문회를 위해서 별 공로도 없는 선배임에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후배들의 정도 그래서 더 진하게 체감된다. 이것은 한국인의 정, 그 무한한 정일 터. 아직도 대학 시절의 치기를 즐기는 후배들의 치사랑이 정답기만 하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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