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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영어] 꺾이지 않는 마음

언어 학습에는 동기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영어를 잘하면 좋겠지만 외국인과 일하는 것도 아니고 해외에 자주 가지도 않는데 영어가 필요하긴 한 걸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어떤 분야든 최신 핵심 정보는 영어로 유통되므로 전문분야의 자료를 얻고 나누는 데 요긴합니다. 영어를 알면 누구나 많은 이슈에 대해 시각을 넓힐 수 있어요. 이를테면, “A라는 물질이 불면증에 좋대”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한국어만 가능하면 홍보성 글을 볼 가능성이 크지만 영어로 검색하면 훨씬 많은 전문적인 자료를 볼 수 있죠.   둘째, 점차 세계가 좁아져서 비대면으로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가 늘었습니다. 화상회의에 참석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듣게 될 경우 보통 영어로 하죠. 이를 계기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저도 외국인 학생들과 인터넷으로 전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즐기는 많은 매체의 원본이 영어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영화, 유튜브가 대표적인데 원어로 들으면 작품의 참맛을 느낄 수 있고 이면의 비유와 상징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죠.   넷째, 영어는 세상과 함께 호흡한다는 자신감을 줍니다. 장년층도 영어를 매개로 자녀나 손주 세대와 더 잘 소통하게 되고 해외 직구나 여행을 할 때 마음이 가볍죠. 외국인 친구 사귀는 즐거움과 다른 문화에 대해 배우는 기쁨도 배가되고요.   영어를 다시 시작해 득이 됐다는 분들이 많아요. 저의 지인 K가 겪은 일을 소개할게요. 한번은 외국인 직원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구구절절 변명하기에 이렇게 말해줬대요. “I don‘t think so. That’s why you are there!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래서 - 그런 일 하라고 -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살짝 된장 발음이지만 사이다 발언을 하고 나니 기분 좋았답니다. 필요한 말은 하고 살아야지요.   저는 영어를 다시 시작하려는 분들이 편히 배울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잘 배우지 못했다면 마음 편히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죠. 최신 연구 성과를 적용해 성인을 위한 효율적인 과정이 개발되도록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면 어떨까요?   지난 1년간 별별영어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영어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invincible spirit)을 응원할게요. 멋지게 영어를 구사하며 더욱 자신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마음 보통 영어 외국인 학생들 외국인 친구

2023-01-11

[별별영어] 영어도 월드컵 시대

풋볼(football)과 사커(soccer), 어느 쪽이세요? 1860년대 영국에서 공을 손으로 들고 뛰는 럭비(rugby football)와 구분하려고 발로 하는 새 방식에 soccer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어순을 바꾼 연맹의 이름 ‘association football’의 association에서 앞뒤를 자르고 ‘-er’를 붙인 것이죠.   그런데 정작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남미에선 이걸 안 쓰고 football이라 합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만 그들이 만든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 등을 football로 부르며 이와 구분하려고 soccer를 쓰죠. FIFA의 두 번째 ‘F’도 football입니다.   영어가 널리 퍼지면서 단어뿐 아니라 소리와 문장구조 등 모든 영역에 차이가 생겼죠. 월드컵을 접하며 세계의 다양한 영어 말소리도 들리시는지요?   우선 지역 차가 큽니다. 영국영어도 잘 안 들려요. 어떤 분은 영국인이 스케줄(schedule)을 ‘셰줄’, 핫(hot)을 ‘홋’으로 발음해 혼란스러웠대요. 제 친구는 호주TV에서 비오는 장면에 ‘세븐 다이즈’라 해서 ‘홍수로 일곱 명이 죽었나?’ 했는데, 7일간(seven days)의 비 예보였대요. 뉴욕을 관광하던 호주인에게 언제 왔나 물었더니 “투다이(today)”라고 해 죽으려고(to die) 왔다는 줄 알았다는 농담도 있죠.   한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필리핀 등 영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지역은 현지어와 섞인 독특한 영어를 사용합니다. 싱가포르에선 “Now what time?” 하며 중국어 어순을 따르고, 인도영어는 혀끝을 뒤로 말아 발음해 알아듣기 어렵죠.   게다가 같은 지역내라도 민족에 따른 차이도 큽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와 히스패닉계의 영어, 영국의 서인도제도 출신과 인도계의 영어가 독특하지요.   다양한 영어를 접할 때는 이와 결합한 편견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컨대 만화영화 ‘라이언킹’에서 악당 스카는 영국영어, 하이에나 떼는 아프리카계 영어를 사용하는데 미국 표준어와 다르면 나쁘다는 생각을 조장하죠. 모든 언어는 그 자체로 체계가 있고 유용하므로 언어 간 우열은 없다고 봅니다.   영어가 세계로 퍼지니 다양한 영어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지역과 민족에 따른 차이에 흥미를 갖는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죠? 축구를 뭐라 부르든 지구촌이 하나 되어 즐기듯이요.   나아가 한국인 특유의 영어에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다양한 영어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편견에서 자유로울 때 모두가 당당하게 소통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월드컵 영어 아프리카계 영어 영어 말소리 영어 하이에나

2022-12-12

[별별영어] 내 영어는 수능까지만?

시험에 지쳐 “내 영어는 수능까지!”라고 외쳤더라도 영어를 즐겁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학습을 습득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비결이지요.   수학, 과학, 음악, 미술은 잘하는 사람과 함께 지낸다고 나도 잘하게 되진 않죠? 하지만 언어는 세상 모든 어린이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어울리기만 해도 저절로 잘하게 돼요. 그래서 언어는 ‘습득’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외국어는 그러기 어렵죠. 평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는 영어를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만 한 거예요.   이런 ‘학습’은 효과가 있긴 하지만 부작용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어가 싫어지는 게 문제죠. 그렇지만 습득과 학습의 균형을 찾으면 얼마든지 다시 재미를 붙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내게 필요한 영어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필요한 만큼 잘하면 되니까요. 불편 없이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듣기와 말하기인지, 영어로 된 전공서적을 술술 읽어야 하는 것인지, 또는 영어 강의를 수강하며 과제 작성과 발표를 할 작문과 토론 실력이 필요한지 진단해야 합니다.   듣기와 말하기는 70% 이상 들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골라 잘 들릴 때까지 반복해 듣고, ‘따라 하기(shadowing)’를 해 보세요. 아이처럼 간단한 문장부터 발음은 물론 억양까지 똑같이 흉내 내는 겁니다. 물론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더 좋지요.   읽기는 실제 기사와 책을 읽어야 하고, 글쓰기는 좋은 글을 택해 한 문장씩 두세 번 소리 내 읽어 본 후 안 보고 옮겨 쓰면 도움이 됩니다. 한 페이지쯤 쓴 후 원문과 맞춰 보면 실력이 늘어요.     단수와 복수 구분에 민감하고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지 않는 등 한국어와 다른 영어의 특징에 익숙해질 수 있죠. 관사와 전치사, 시제 같은 작은 차이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요.   한 가지 팁을 드리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동사라는 점입니다. 주어나 목적어가 될 수 있는 명사는 대상에 대한 정보만 줄 뿐이지만, 술어의 중심인 동사는 전체 상황의 골격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즉, 문장을 제대로 만들려면 동사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부하고 싶은 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겁니다. 언어는 세상을 넓게 살아가기 위한 소통의 도구라서 자신감을 갖는 일이 더 중요해요. 교실 안 시험이 끝났으니 교실 밖 진짜 영어를 만날 때입니다. 여러분의 영어를 응원합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영어 수능 영어 강의 진짜 영어 습득 방식

2022-11-24

[별별영어] 이해 부족

이태원 참사를 접하며 소통의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문화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만 시켰지 그들이 어려서부터 핼러윈을 알았고 코스프레 문화도 자연스레 접했다는 건 몰랐습니다. 한류가 알려져 좋았지만 남의 문화는 이해하지 못했지요. 10월 마지막 날이 기독교의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Saints)’s Day)’ 전야인데 일찍이 브리튼에서 살아온 켈트족의 연말 풍속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날이라서 귀신도 놀랄 복장을 하고 즐기는 축제의 날이 된 것도요. 코로나로 갇혔던 마음에도 공감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서울에 서양 귀신이 웬 말이냐고 그들을 나무랐어요.   그 기저에는 우리의 권위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문화죠. 어느 사회에나 사람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강조하는 반면 서구 사회는 평등을 지향합니다. 언어에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요.   영어는 대등하게 말하기 쉬운 언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대를 지칭하는 대명사 ‘you’이지요. 이것 하나로 친구나 선생님, 할머니와 사장님과도 편히 말할 수 있어요. 또한 대부분 서로 ‘이름(John)’을 사용합니다. ‘타이틀과 성(Dr. Smith)’ 같은 존중의 표현이 있지만 웬만하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사장과 사원도 이름을 부르며 상하관계보다 친밀함에 가치를 둡니다.   이에 비해 한국어는 서로 나이와 직위를 살펴 알맞은 호칭과 경어법을 골라 써야 합니다. 상명하복 문화 속에 말로 무수히 상처받아 본 우리에겐 영어의 친밀함과 단순성이 낯설기도 하죠.   본래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거꾸로 언어를 조율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도 합니다. 최근 IT업계와 스타트업 회사에서 시작된 서열 파괴와 호칭 평등화 움직임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지요. 요즘은 직함과 직위를 내세우는 것이 좀 구태의연해 보일 정도예요. 하지만 변하지 않은 영역이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에도요.   이름 하나로 대표되는 개인, 수평적인 관계야말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형식과 허세를 내려놓고 위계를 넘어 사람들 사이에 평등하고 진솔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진짜 소통이 이뤄지지요.   우리가 예측도 방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참사를 겪게 된 데는 그간 여러 영역에서 소통과 이해가 부족했다는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타깝게 떠나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understanding lack 코스프레 문화 상명하복 문화 호칭 평등화

2022-11-13

[별별영어] 대통령의 영어와 언어정책 (Language Planning)

외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대통령의 말은 통역을 통해야 당당하다고 여겼는데 요즘엔 직접 외국 정상들과 친밀하게 소통하길 기대하나 봅니다. 최근 유엔 총회에서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대면한 짧은 시간을 활용했어야 한다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가벼운 주제로 시작해 중요한 대화로 이어가는 비즈니스 ‘스몰 토크(small talk)’가 대세입니다. 이번엔 “Great to see you here, President Biden!” 정도면 자연스러웠겠죠? 오랜만에 만나면 “How have you been?(잘 지내셨어요?)”이라는 인사, 비행기로 먼 길을 왔다면 “How was your flight?(비행기 여행은 어떠셨어요)”라고 묻기, 평소엔 “How nice to see you!(만나서 반가워요)”, “Great weather today, isn‘t it?(날씨 참 좋죠)” 같은 얘기가 대화의 물꼬를 트죠.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색한 침묵보다 친근감을 주니까요.   사실 공직자에게 영어 능력을 요구한 지는 오래됐습니다. 공무원 시험은 물론 법조인이 되는 데도 영어 점수가 필요하죠. 두 차례 헌법재판소에 소송이 있었을 정도로 영어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입시에 뜨거운 감자였어요. 과거엔 실제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 반발이 있었지만 최근 나라의 위상이 향상되고 국제적인 교류가 늘며 영어의 필요성도 높아졌습니다.   영어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요?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효과적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험 위주로 공부하니 실제 사용이 어렵죠. 젊은이들은 평균적으로 실력이 나아졌지만 발표나 글쓰기에 여전히 자신 없어 하죠. 그렇다고 영어교육을 싹 바꾸기도, 성인에게 전면적인 재교육을 실시하기도 어려운 현실이고요.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영어가 필수적입니다. 근대에 들어 영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중 하나였던 미국이 현대의 초강대국이 되면서 영어가 세계의 통용어가 됐기 때문이죠.   핍박받는 사람들도 영어를 알면 힘을 얻는다고 ‘English Empowerment(영어를 통해 힘 부여하기)’와 ‘English for Resilience(재기를 위한 영어)’라는 용어도 생겼습니다. 우리도 어떤 목적을 위해 ‘다시’ 영어를 배워야 한다면 편하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죠.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들의 언어능력을 귀중한 자원으로 여기고 국익 차원에서 개발하는 포괄적인 언어정책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원하는 언어를 필요한 만큼 잘 배울 수 있어야 하죠.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언어정책 language language planning 영어 점수 영어 능력

2022-10-23

[별별영어] 여왕의 영어 (Queen‘s English)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설을 들어보셨는지요? 흔히 접하는 미국식 영어와 상당히 다릅니다. 영국은 여러 민족이 만든 긴 역사 속에 지역방언과 사회계층방언이 발달했어요. 상류층은 런던을 포함하는 동남부의 말에 기반한 특정한 말투를 쓰는데 이를 RP라 부릅니다.   RP는 Received Pronunciation의 준말로 왕에게 ‘수여받은’ 발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숙학교로 진학하는 상류층의 교육 전통과 관련 있어요. 해리 포터가 11세에 호그와트에 갔듯이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은 이내 학교에서 RP를 익히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지역의 색채가 줄어들죠. 왕실의 말투는 RP의 정점이고요.   여왕의 영어엔 여러 특색이 있습니다. 우선 모음 뒤의 ‘r’을 발음하지 않기(‘car’는 ‘카아’[kaː]로), ‘house’의 이중모음 ‘아우’를 ‘아어’ 정도로 약화하기, ‘white’ 등 단어 말미의 ‘t’ 소리 분명히 내기 같은 RP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즉위 당시와 최근 연설을 비교하면 구강의 앞부분을 좁게 사용하는 보수적인 RP에서 좀 더 구강을 넓게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만 대중에게 다가가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흥미로운 것은 ‘very’ 등 모음 사이의 [r]을 혀끝으로 입천장을 살짝 쳐서 내는 여왕의 발음입니다. 이는 RP보다 스코틀랜드 영어에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거든요.   여왕은 런던이 아니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곤 했던 스코틀랜드의 별장에서 서거해 비행기로 운구됐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여왕이 이곳에서 서거한 사실은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군주제 폐지와 더불어 분리 독립을 추구하던 곳이 조용하니 말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시기가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이름이 같은 엘리자베스 1세가 세운 대영제국이 차츰 해체됐는데 여왕이 평화를 우선시했기에 존경받았지요. 윈스턴 처칠의 예언이 맞았어요. 그는 “영국의 역사는 대대로 여왕의 재임 시기가 좋았다”며 젊은 여왕의 즉위를 반겼거든요. “Famous have been the reigns of our queens. Some of the greatest periods in our history have unfolded under their sceptre. (우리 여왕들의 통치가 유명합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시기 중 일부가 그들의 지휘 아래 펼쳐졌지요.)”   전통에 따라 관 위에 두었던 왕관(crown)과 지휘봉인 홀(sceptre)이 내려지며 여왕의 시대가 막을 내렸네요. RP는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english queen 엘리자베스 여왕 스코틀랜드 영어 우리 여왕들

2022-10-10

[별별영어] 빨랫줄 위의 잔소리

 언젠가 에든버러에서 만난 웨이트리스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은 실수를 하고선 “Every time! Not without a single mess!(늘 그래.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지)”라며 자책했거든요.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해서 무의식에 새겨놨을까? 엄마일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한편 저 자신은 아이들에게 어떤 잔소리를 각인시켰을까 돌아보며 부모 노릇이 쉽지 않음을 새삼 느꼈지요.   그곳을 떠나 더블린 공항에 내리자 뜻밖의 광경과 마주했습니다. 공항의 긴 복도에 빨랫줄이 그려져 있고 거기 널린 각양각색의 티셔츠 그림 위로 부모의 잔소리가 쓰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나씩 읽는데 어쩜 우리가 하는 말과 그리 비슷한지요.   깜짝 놀란 건 “I hope someday you have children just like you.(꼭 너 같은 애를 낳아 키우기 바란다)”였고 “Do you think that money grows on trees?(돈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아니)”는 “땅 파면 돈이 나온다니?”의 영어 버전 같았어요.   똑같은 것으로 “방이 꼭 돼지우리 같구나(Look at your room! It looks like a pigsty!)”와 “잘못했다고 해(Say you‘re sorry!)”도 있고, “아닌 건 아니야”는 “What part of no don’t you understand?(아니라고 했는데 뭘 이해 못 해)”로 비슷했죠.   문화가 달라 살짝 다른 잔소리도 있었어요. “If you don‘t clean your plate, you won’t get any dessert!(접시를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디저트는 없어)”, “Beds are not made for jumping.(침대는 점프하라고 만든 게 아니야)”처럼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하는 “라떼는 ~”도 약간 달랐죠. “When I was your age, I was lucky if I got a jam sandwich.(내가 네 나이 땐 잼 바른 빵 하나만 생겨도 행운이었지)”예요.   부모들에겐 보편적인 심리가 작동하나 봅니다. 보통 화가 나면 자식의 이름을 정식으로 부르잖아요? “한oo!” “김oo!”하고요. 그들도 그래요. “Justin David Clifford!” “Anita Price!” 하는 식이죠. 별명도 모자라 ‘귀요미, 이쁜이, Honey, Sweetie, Pumpkin’ 하며 다정하게 부르다가 성까지 넣어 풀 네임을 부르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뜻이지요.   본래 잔소리란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요? 부정적인 말은 참거나 눅눅한 빨래처럼 햇볕에 뽀송하게 말려서 해야겠어요. 가볍게 말해서 같이 웃고 넘길 정도로요. 말은 생각을 반영하지만 일단 하고 나면 생각에 영향을 주니까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빨랫줄 잔소리 justin david 부모 노릇 더블린 공항

2022-09-05

[별별영어] 언버스데이(Unbirthday)

매일이 생일인듯 특별한 기분일 수 있을까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선 가능합니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아시죠? 만화영화 버전의 한 대목을 소개할게요.   양복 입은 ‘3월 토끼(March Hare)’와 ‘이상한 모자 아저씨(Mad Hatter)’가 예쁜 주전자들을 채우며 파티를 열어요. 지나가던 앨리스가 생일이냐고 묻자 그들은 정색하며 말합니다.   “Statistics prove that you have one birthday. Imagine! Just one birthday every year! Ah, but there are three hundred and sixty-four unbirthdays. Precisely why we’re gathered here to cheer. (통계에 따르면 너에겐 한 번의 생일이 있지. 상상해봐, 해마다 단 하루의 생일이라니! 하지만 364일의 비생일이 있네. 바로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여 축하하는 거야.)”   이 장면은 디즈니 영화사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소설의 후편에 있는 이야기를 신나는 노래 ‘The Unbirthday Song’과 함께 수록해 알려졌어요.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A very merry unbirthday to you(생일이 아닌 날 축하해요)!”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죠? ‘unbirthday’는 흔히 보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말로 ‘비(非)생일’인데, ‘-이 아닌’ 즉, 부정의 의미인 접두사 ‘un-’은 ‘unhappy(불행한)’나 ‘untrue(진실하지 않은)’처럼 형용사와 자주 결합하지 명사와는 거의 결합하지 않잖아요? 이 접두사는 동사와도 결합하는데 이때는 부정이 아닌 ‘역으로’라는 의미죠. 예를 들어 ‘undo(원상태로 되돌리다),’ ‘unwind(감은 것을 풀다)’처럼요. 그러나 ‘un-’이 명사와 바로 결합한 경우는 ‘unrest(불안정)’같이 흔히 쓰지 않는 단어 하나를 겨우 떠올릴 수 있는 정도예요. 즉, 아무 단어에 접사를 붙인다고 새로운 단어가 되진 않는 거죠.   물론 일반적인 방식을 벗어나면 주목을 끕니다. 1970년대 세븐업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장악한 음료 시장에 ‘uncola’라는 신조어를 내세워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각인시켰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지만 이처럼 관행을 깨는 일이 가능해요. 언어의 생명력은 사용자들의 창의성에 의해 빛을 발하고 예술가가 만든 독창적인 말은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해줍니다.   어쩌면 캐럴은 ‘unbirthday’를 통해 생일에만 축하받는 것이 서운했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 아닐까요? ‘비생일’을 축하하자는 말은 우리의 매일 매일이 축복받아 마땅하다고 일깨워 줍니다. 혹시 오늘이 ‘언버스데이’인가요? 행복한 날 보내세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unbirthday unbirthday song 루이스 캐럴 단어 하나

2022-06-29

[별별영어] 영국과 잉글랜드

손흥민 선수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EPL)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엔 지역별로 리그가 많더군요. ‘잉글랜드’는 어디이고 영국을 일컫는 다른 이름 ‘UK’ ‘브리튼’과 어떻게 다를까요?   브리튼(Britain)은 섬 이름입니다. 브리튼 제도에서 가장 커서 ‘그레이트 브리튼’이라고도 하죠. 이 섬엔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동부 ‘잉글랜드’와 서부 ‘웨일스’, 그리고 북부 ‘스코틀랜드’가 있어요. 즉 잉글랜드는 브리튼의 중원입니다. 두 번째 큰 섬 아일랜드는 1922년 독립했지만 북부는 영국령이지요. 그래서 영국의 국명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예요. 줄여서 UK죠. 미국의 국명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과 비슷하죠? 그런데 미국이 각 주의 독립성을 존중해 복수형(states)을 쓰는데 비해 영국은 한 명의 군주가 다스리는 형식을 강조해 단수형(kingdom)을 쓰네요.   잉글랜드는 ‘앵글족(Angles)의 땅’이란 뜻입니다. 앵글로 색슨이라는 민족명이 익숙하죠. 앵글족과 색슨족(Saxons)은 지금의 독일 북부에 살던 게르만 민족으로 4~5세기에 걸쳐 브리튼으로 이주했어요. 이들이 오기 전 이 섬의 원주민은 켈트족(Celts)이었습니다. 한때 로마군에 점령당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떠난 후 서로 싸웠어요. 남쪽의 켈트족은 북쪽 켈트족을 막기 위해 게르만 용병을 불렀지만 그들이 비옥한 브리튼 섬을 탐내 점차 대규모로 쳐들어오자 서쪽 늪지와 북부 산악지대, 바다 건너로 도망가지요. 바로 영국에서 잉글랜드를 제외한 지역들입니다.   켈트족은 언어도 아주 달랐어요.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있지만 후손들은 영어를 쓰는데 그중엔 알아듣기 힘든 방언도 있어요. 영국인들이 처음 만나면 출신지를 묻고, 축구 리그를 따로 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가끔 독립을 거론하는 것도 이런 역사 때문입니다.   어쨌든 영국은 여러 민족들을 연합한 후 근대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고, 그들이 식민지로 개척했던 미국도 개성이 다른 지역들을 연합해 현대의 강대국이 됐어요. 이처럼 ‘연합한다(unite)’는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나 봅니다. 손흥민 선수도 잉글랜드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과 연합해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네요. 앞으로도 멋진 소식 보내 주리라 기대합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브리튼 제도

2022-06-15

[별별영어] 유에프오(UFO)

비행접시 보신 적 있으세요? 지난달 17일 미국 의회가 관련 청문회를 열었죠. 그런데 ‘미확인 비행 물체(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 대신 ‘미확인 공중 현상(UAP, 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쓰더군요.   최근 머리글자를 딴 새 단어들이 자꾸 생겨납니다. 이들은 읽는 방법에 따라 ‘이니셜리즘(initialism)’과 ‘애크로님(acronym)’ 두 가지로 나뉘죠.   이니셜리즘은 알파벳을 하나씩 읽습니다. 현금자동입출금기 에이티엠(ATM, automated teller machine)이 대표적이네요. 다양한 용어들이 요약되는데 한때 우리 정치인들(DJ, JP, YS)의 약칭에 썼고 본래 무엇인지 알쏭달쏭한 뮤직 그룹 이름(SES, HOT, BTS)에도 많지요.   반면 애크로님은 알파벳을 보통 단어처럼 읽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와 중증호흡기증후군을 일컫는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처럼요. 심지어 레이저(laser,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and radiation)처럼 소문자로도 쓰니 축약어란 걸 잊기도 해요. 스파이더맨의 특수 안경 EDITH는 여자 이름 같지만 ‘Even Dead I’m The Hero(난 죽어서도 영웅)’라는 토니 스타크의 유언이라죠. 우리도 이 방식으로 몰카(몰래 카메라)나 깜놀(깜짝 놀람)같은 신조어를 만듭니다.   두 가지가 다 될 경우도 있어요. 즉, aka(also known as, 또한 ~로 알려진)는 ‘에이케이에이’와 ‘아카’, lol(laugh out loud, 큰 소리로 웃다)은 ‘엘오엘’과 ‘롤’을 다 씁니다. 원조 아이돌 그룹 god를 ‘지오디’로 읽는지 ‘갓’으로 읽는지에 따라 세대구별이 된다는 농담도 있죠.   축약어가 늘어나는 것은 줄임말의 언어적 실용성이 높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개딸(개혁의 딸)’ 같은 결과물은 조금 불편하기도 합니다. 물론 새 축약어 중에 ‘베프(베스트 프렌드)’처럼 멋진 말도 있지만요.   UFO, 아니 UAP는 스코틀랜드 호수에 산다는 공룡 같은 ‘네씨(Nessie)’와 네바다 사막에 추락했다는 머리 큰 외계인과 더불어 어린 시절 저의 최애 미스터리였어요. 이들이 자연 현상이나 착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요? 참, 우리가 쏘아 올릴 달 탐사선 ‘다누리’는 어떤 신기한 소식을 전해와 아름다운 새 단어를 만들게 할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유에프오 ufo 미확인 비행 미확인 공중 현금자동입출금기 에이티엠

2022-06-08

[별별영어] 애플(apple)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미국에는 기념일 대신 선생님께 사과를 드리는 풍속이 있어요. 개척시대에 선생님의 생계를 돕던 데서 시작되었다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선생님을 위한 카드나 컵에는 여전히 사과 문양이 들어가지요.   왜 하필 사과일까요? 성경에 나온 ‘금지된 과일(the forbidden fruit)’이 사과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선악과가 과연 사과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렇게 인식되면서 사과에 양면성이 생겼습니다.   긍정적으로는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분별력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지혜와 연결됩니다. 바로 선생님의 사과로 배움과 교육을 상징하지요. 게다가 뉴턴이 중력의 원리를 깨닫는 데 사과가 등장해서 이 측면이 강해집니다.   부정적으로는 인간이 몰래 신의 뜻을 거스르게 한 유혹을 상징해요. 남자 목에 튀어나온 후두연골 부분을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고 부르는 것도 그 흔적이라는 뜻입니다.   사과는 건강에 이롭지만 죽음의 유혹이기도 해요. “매일 사과를 먹으면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An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는 미국 속담이 있지요. 이때 ‘an’과 ‘a’로 굳이 하나라는 수를 표현하고 마을에 의사가 한 분 있던 시대라서 ‘the’를 사용해 서로 아는 바로 그 의사라고 나타낸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편 백설 공주를 죽일 뻔한 독이 든 사과와 앨런 튜링이 삼킨 사과는 죽음의 매개체죠.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은 당시 영국서 불법이던 동성애로 화학적 거세를 받은 뒤 독을 주입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어요.   요즘은 사과하면 스티브 잡스가 세운 아이폰과 맥북 만드는 회사가 떠오르죠? 애플이라는 회사명은 짐작과 달리 튜링과 관련이 없답니다. 한 입 베어 먹은 무지개 사과 로고는 체리 같은 과일과 헷갈리지 않게 한 디자인 장치라네요. 다만 영어로 ‘한 입(bite)’과 ‘컴퓨터 메모리의 단위 바이트 (byte)’가 동음어라 재미있어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도 있죠. 스피노자 혹은 루터가 거론되지만 누가 한 말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해요. 여기서 사과의 긍정적인 의미는 더 깊어집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이어 스승의 날이 있다는 것은 우리 문화의 특별한 점 같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가족만큼 큰 인연이며 삶에 전환점이 된다는 의미겠지요. 여러분의 기억에 남은 고마운 선생님은 누구신가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애플 apple 무지개 사과 사과 문양 컴퓨터 메모리

2022-05-18

[별별영어]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부활절이 지났습니다. 영어로는 이스터(Easter)라고 하는데 앵글로 색슨족이 섬기던 봄의 여신 Eostre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되지요. 이 말보다 부활의 의미가 더 담겨 있는 것은 달걀인 것 같습니다.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된 이유는 겉으로 봐선 느껴지지 않지만 안에 생명력이 잠재해 있기 때문인데요, 달걀껍데기가 빈 무덤을 상징한다는 해석과 역사적인 배경도 있습니다. 오래전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함께하는 의미로 40일간 절제하고 마지막 일주일은 철저히 한 끼를 굶는 금식을 했지요. 그동안 닭장에 달걀이 쌓이자 마지막 날 삶아서 나누고 함께 깨뜨리면서 부활을 축하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흘린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물들였는데 점차 다양한 색깔과 정교한 장식으로 바뀌었지요.   그래서 부활절에 어른들은 서로 삶은 달걀 꾸러미를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예배 후 교회 정원에 숨겨 둔 달걀을 찾게 하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달걀 찾기(egg hunt)에는 곧 토끼와 초콜릿이 더해졌어요. 토끼는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는지라 새 생명의 상징이고 달걀 숨기는 역할을 맡아 재미를 더합니다. 초콜릿은 달고 부드러워 서양의 기념일마다 등장하는데 달걀과 토끼 모양으로 만들기 쉬워 인기예요.   영어로 ‘토끼’는 ‘래빗(rabbit)’이 먼저 떠오르지요? 이것이 일반적인 명칭이고 야생토끼 ‘헤어(hare)’도 있지만, 부활절 토끼는 ‘버니(bunny)’라고 부르는 어리고 작은 토끼입니다. 큰 쥐(rat)와 생쥐(mouse)를 구분하듯 크기와 느낌이 다르죠. 귀여운 ‘Easter bunny’는 병아리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이런 풍속에 따라 ‘Easter egg’에 부차적인 뜻이 생겨났습니다. 즉, 색칠한 달걀처럼 ‘두터운 화장을 한 얼굴’, 혹은 에그 헌트의 달걀처럼 ‘숨겨 놓은 뜻밖의 재미’를 뜻하게 된 것이죠. 부활절 카드에 찾고자 하는 것을 꼭 찾으라며 “해피 서칭(Happy Searching)!”이라 적기도 해요.   부활은 봄과 만나 희망의 축일이 됐습니다. 혹시 어린 시절 부활절 달걀을 받아 본 기억이 있으신지요? 예쁘게 칠한 달걀이 안겨 주는 풍요로움과 달콤한 초콜릿 달걀을 찾아내는 기쁨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얼마 전 교황께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선물한 초콜릿 달걀 역시 전쟁의 공포를 딛고 일어서라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희망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행복한 날 보내세요.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이스터 easter happy easter 해피 이스터 부활절 토끼

2022-04-18

[별별영어] 헝가리 공주

 고전으로 손꼽히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는 사회적 방언을 실감 나게 보여 줍니다. 1900년대 초 같은 런던에 살면서도 계층에 따라 말이 달라 서로 소통하기조차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오드리 헵번(사진)이 연기한 일라이자는 길에서 꽃을 팔며 하층민의 말 코크니(Cockney)를 사용하는데 극장 앞에서 우연히 만난 음성학자 히긴스 교수가 자신의 발음을 형편없다고 지적하자 다음 날 그를 찾아갑니다. 말씨를 바꾸고 꽃집을 차려 성공하고 싶다고 하죠.   우여곡절 끝에 히긴스의 맹훈련은 성공합니다. 코크니의 여러 특징 중에  today를 ‘투다이’로 발음하는 것이 알려져 있죠. 그는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처럼 ‘에이[ey]’ 음이 많은 문장을 무한 반복하라는 등 갖가지 훈련을 시켜요. 결국 일라이자는 무도회에서 완벽한 상류층 언어를 구사해 정중한 대접을 받습니다. 귀족들은 그녀를 ‘헝가리 공주’라고 짐작하는데, 이 대목이 흥미롭죠. 왜 하필 헝가리 공주일까요?   헝가리에는 여러 언어를 쉽게 배우는 언어천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인의 대다수인 마자르족은 동양인에 가까운 외모에 우랄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유럽의 언어는 대부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만 헝가리어는 먼 동양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동서양의 이질적인 문명이 교차했던 지역이라 그런지 헝가리뿐 아니라 주변의 동유럽 국가 사람들 대부분이 외국어를 쉽게 배웁니다. 서양은 물론 동양의 언어도요. 동유럽인 교수들은 전 세계 어디서 학회가 열리든 2주 전쯤 현지 언어를 미리 익힌다며 공부해요. 큰 용기를 내서가 아니라 교양인으로서 당연하다 여기면서요.   최근 러시아의 침략 때문에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우크라이나인들도 동유럽인답게 외국어 구사력이 뛰어납니다. 이들은 슬라브족이고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만 아마 적극적으로 이민족들과 소통한 조상들의 유전자가 남아 있나 봅니다.   옛날에는 전쟁을 통해 동서양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졌지만, 21세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마음 아프지요.   기필코 조국을 지켜내겠다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거나 전장에 남은 이들과 피난길에 오른 이들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전쟁이 얼른 끝나 동유럽인들이 빼어난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소통하며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별별영어 헝가리 공주 헝가리 공주 상류층 언어 언어 능력

2022-04-11

[별별영어] 스프링(spring)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스프링(spring)’ 하면 저는 봄과 함께 용수철이 떠올라요.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에 나오는 새끼돼지 윌버(Wilbur) 때문이죠.   윌버는 사람들이 자신을 ‘spring pig’라고 부르자 용수철처럼 점프를 잘한다는 뜻으로 알았지만 이내 ‘봄에 태어난 돼지’로 크리스마스 전에 햄과 베이컨이 된다는 뜻임을 알게 돼요. 겨울에 눈을 못 본다니 슬픈 데다 농장 주인이 훈제 하우스에 대해 말하자 기절하고 맙니다. 그런 그에게 헛간 문틀에 사는 거미 샬롯이 친구가 되어 주고 돕겠노라 약속해요. 똑똑한 샬롯은 윌버를 칭찬하는 말을 거미줄로 써서 사람들의 주목을 끕니다. 인기가 높아지면 살 수 있을 거라면서요.   첫 번째가 ‘some pig’입니다. 그런데 some을 ‘몇 개의’ ‘어떤’ ‘불특정의’ ‘별것 아닌’ 정도의 뜻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게 왜 칭찬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spring에 ‘봄’ 말고도 ‘튀어 오르다’ ‘용수철’ ‘샘물’ 같은 의미가 있듯이 some에는 반어적으로 생겨난 ‘멋진, 굉장한’이라는 의미도 있거든요.   이렇게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지면 ‘다의어(polysemous word)’라고 부릅니다. 의미상 관련 없는 단어들의 소리가 같다면 ‘동음어(homonym)’라고 하고요. 예를 들어 ‘야구 방망이’ bat와 ‘박쥐’ bat가 동음어죠. 얼핏 spring도 의미들 사이에 관련이 없는 동음어 같죠? 하지만 봄에 새싹이 나니까 솟아난다는 의미가 있고 어원을 공유하므로 다의어입니다.   다의어와 동음어는 어느 언어에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많은 단어가 다의어이며 동음어도 꽤 있죠. 저는 안중근 의사의 직업이 의사인 줄 알았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의로운 일을 한 의사(義士)’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醫師)’처럼 한자어 단어에 동음어가 많지요   다의어와 동음어는 오해를 일으키거나 농담의 소재가 되곤 하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대부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의어 store가 동사 ‘저장하다’인지 명사 ‘가게’인지는 앞뒤를 살펴보면 알 수 있죠. 우리말의 다의어 ‘머리(신체부위, 지능, 머리카락)’나 동음어 ‘배(신체부위, 교통수단, 과일)’도 맥락을 통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 수 있고요. 그래서 외국어를 잘하려면 하나의 단어가 다른 뜻을 갖거나 소리만 같은 다른 뜻의 단어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스프링엔 우리도 발에 스프링을 단 듯이 신나게 뛰어 볼까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스프링 spring spring pig 안중근 의사 의미상 관련

2022-03-28

[별별영어] 프레지던트(president)

 대선이 다가왔습니다. 영어로 대통령을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본래 여럿이 모일 때 ‘앞에(pre) 앉는(sid) 사람(ent)’이라는 의미예요. ‘회의를 주재하다’라는 ‘preside’와 어원을 공유하며 ‘학생회장, 모임의 장, 사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라틴어 prae와 sidere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라틴어의 후손인 중세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1066년 영국 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자 바다 건너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이 친척으로서 계승권을 주장하며 쳐들어옵니다. 이를 ‘노르만의 정복’이라고 하는데 지배층이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로 바뀌어 200여 년간 영어가 수모를 겪지요. 그래서 게르만어 계통 언어인 영어에 프랑스어 단어들, 특히 문화와 사회제도 관련 용어가 많이 들어왔고 president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를 ‘민주주의 국가의 수반’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인들입니다. 초대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지요. 그가 맡을 새 직위의 명칭으로 극존칭 ‘highness’와 ‘excellency’가 들어간 길고 다양한 문구들이 고려됐는데 많은 사람이 숙고한 끝에 ‘선출되어 잠시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president를 택합니다. 즉, 이 단어에는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도 평등을 강조하고 부작용을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말 ‘대통령’은 한자어라서 ‘대(大), 통(統), 령(領)’이 각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지만, ‘통령’이 단어를 이뤄 근대기에 조선, 청나라, 일본에서 두루 쓰였습니다. 이는 ‘선단을 이끄는 자’ 혹은 ‘장군’을 지칭하는 관직명이었다고 해요. 여기에 ‘클 대(大)’자를 붙여 임시정부 시절부터 사용했습니다. 대만에서는 같은 직위를 ‘총통’이라 부르는데 여기에 ‘대’는 붙이지 않네요.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어원과 상관없이 ‘대통령’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 이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입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누구나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최선을 다한다면, 대통령을 ‘통치하는 큰 권력자’가 아닌 ‘우리를 대신해 잠시 나라 살림을 맡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세우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워싱턴은 연임 후 더 일해 달라는 청을 받았지만 “권력을 사랑하면 독재에 빠지기 쉽다”며 물리치고 국민에게 “지나친 당파의 대립과 권력의 집중을 끊임없이 경계하라”는 말을 고별사에 남깁니다.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 후대에 전하는 당부일 것입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프레지던트 president 초대 대통령 프랑스어 단어들 민주주의 국가

2022-03-07

[별별영어] 실수를 통해 유창해지는 영어

 제자가 전해 준 실수담입니다. 입사 초기, 외국인 고객이 하도 재촉을 해서 답신 말미에 이렇게 썼대요. “Please trust me. I am hardly working on it.” (믿어주세요. 이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쓰려 했지만 얼떨결에 ‘work hard’(열심히 일하다)와 ‘hardly work’(거의 일하지 않는다)를 착각한 거죠.   영문과씩이나 나온 사람이 너무 큰 실수를 한 건가요? 혹은 모국어가 아닌데 그럴 수 있다 싶은가요? 사실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도구이기에 평소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혀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어에 대한 일반의 기대치는 꽤 높습니다. 학교는 물론 취업과 각종 시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기 때문이겠지요. 사용할 일이 적어 애써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실력 있는 사람도 실제 영어를 써야 할 상황에선 손사래를 치며 숨어요. 창피당하거나 실망시키느니 차라리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면서요. 그러다 보면 영어가 점점 미워지죠.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영어인데 발음 좋고 어휘 풍부하고 문법도 틀려선 안 된다는 건 강박관념입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정확성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언어 지식이 적더라도 계속 오해를 사지 않을 정도라면 누구나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어요. 좀 틀리거나 어색해도 자신 있게 말하는 편이 가만있는 것보다 훨씬 낫죠.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대충만 알아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한국인은 대부분 잘 준비된 영어 화자이지만 정작 자신을 스스로 잘 인정하지 않아요. 혹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인들의 영어를 유심히 들어본 적 있나요? 실력이 모자라도 소통에 집중하는 분들이 많지요.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말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고요.   언어 사용은 맞고 틀리는 문제풀이가 아닙니다. 그러니 언어 공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 아닐까요?   코로나 시대라 대면이 어려워진 대신 클릭 하나로 정보를 만나고 외국인과 화상 회의를 하며 영어 쓸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해요. 새 학기를 맞아 어떤 이유로든 영어를 다시 손에 잡으시는 분들께 제안합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고 오직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만 장착하시길!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실수 유창 언어 사용 언어 공부 언어 지식

2022-02-27

[별별영어] 허쉬 초콜릿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2월이네요. 여러분은 초콜릿 브랜드 허쉬(Hershey)를 어떻게 발음하세요? 모음 뒤의 ‘r’을 혀를 뒤로 살짝 말며 발음하는지, 혹은 모음을 좀 늘이며 ‘r’은 생략하는지요. 모두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각각 미국식과 영국식이라고 하죠.   흔히 영국 영어는 car와 card에서처럼 모음 뒤에 나오는 ‘r’을 발음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 말은 과장된 것입니다. 표준어가 된 런던 중심의 동남부가 그렇고,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영국 내에서도 여러 지역이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와 더불어 모음 다음의 ‘r’을 발음해요. 이 차이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영어는 ‘r-없는’ 영어와 ‘r-있는’ 영어로 나뉩니다. 섞어 쓰면 이상하니까 영어 배우는 사람은 한쪽을 택하게 되지요.   허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타운에 놀이공원, 호텔과 스파, 4D극장이 있는데, 곳곳에서 베개만 한 초콜릿을 팔고, 놀이기구 탈 때마다 갖가지 샘플을 줘서 관광객들의 혼을 쏙 빼놔요. 투어버스에선 가이드가 키세스(Kisses) 모양의 가로등을 밝힌 이 달콤한 고장의 유래를 들려줍니다.   이곳은 본래 낙농업을 하던 마을로, 타향에서 사탕가게를 하던 밀턴 허쉬(Milton Hershey)가 돌아와 1883년부터 고향의 품질 좋은 우유로 캐러멜을 만들다가 유럽식 초콜릿을 접목해 밀크초콜릿 왕국을 세웠답니다. 아내와 금슬이 좋았지만 자녀가 없었던 그는 고아들이 건실한 낙농 가정에서 돌봄을 받으며 공부할 학교를 세웠어요. 지금도 빈곤층 아동을 교육하고 그들로 하여 사업을 이어 가서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영감을 주었지요.   기념관엔 타이태닉호의 티켓이 전시돼 있어 흥미롭습니다. 여행차 런던에 갔던 허쉬 부부가 승선할 예정이었지만 급한 일로 먼저 돌아와 침몰의 비극을 면했대요. 저는 그걸 보자 ‘r’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미국은 ‘r-있는’ 영어를 쓰던 이민자들이 많아 표준어가 ‘r-있는’ 영어이지만, 여기에도 ‘r-없는’ 영어가 있거든요. 영국 동남부와 학문적으로 교류했던 보스턴과 상업적으로 교류했던 뉴욕의 영어가 그렇죠. 또한 영국 대학에 자녀를 유학 보냈던 남부의 상류층과 그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영어도 ‘r-없는’ 영어입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초콜릿 허쉬 허쉬 초콜릿 밀크초콜릿 왕국 초콜릿 브랜드

2022-02-14

[별별영어] 블레쓔(Bless you)!

“블레쓔(Bless you)!” 오래전 미국에서 들었던 이 구절에 대한 의문을 최근에야 풀었습니다. 블레쓔는 재채기할 때마다 들은 말인데요, 미국인들은 누가 재채기를 하면 반 박자도 쉬지 않고 재빨리 이렇게 말해 주곤 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낯선 사람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닫히려는 문을 잡아 주어 신기했어요. 실제로 미국식 예절의 기본은 서로를 되도록 평등하고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남의 재채기에까지 리액션을 해 주다니 놀라웠어요. 이 말을 안 하면 큰일 난다는 듯 꼭 했죠.   무슨 말이지? 놀리는 건가? 재채기를 흉내 내나?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은 “Thanks”라고 답하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상대방이 “Bless you”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May God bless you”를 줄인 것으로,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하라’는 뜻이래요.   이 말이 제게 마치 재채기 소리처럼 들린 이유는 bless의 /s/와 you의 /y/소리가 빠르게 말할 때 합쳐져 입천장소리인 [?]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레스 유’보다는 ‘블레쓔’처럼 들리죠. 우리말의 ‘굳이’가 ‘구지’로 발음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흔히 “Nice to meet you”와 “I miss you”의 끝부분이 ‘츄’와 ‘쓔’처럼 발음되는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대부분 “Bless you”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 정도로 알고 있지만, 기원은 다양합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 시대에 초기 증상이 재채기라고 믿었대요. 그래서 교황이 축복을 빌어 준 일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재채기할 때 심장이 멎거나 악마가 들어갈 수 있다는 미신이 있어 이를 막으려고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정작 콜록콜록 기침을 하게 되면 이 말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상하고 야박하다 싶었죠. 재채기(sneeze)엔 덕담하면서 기침(cough)은 기피하다니요!   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재채기에만 축복을 빌며 호들갑 떠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재채기 정도라면 얼마든지 건강을 기원해 줄 수 있죠. 하지만 기침하는 단계라면 덕담이고 뭐고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독한 바이러스를 나눠 갖게 되면 큰일이니까요. 의문은 풀렸지만 직접 겪어 알게 되다니 슬픕니다.   부디 코로나가 재채기 몇 번으로 끝나서 “블레쓔”라고 말하고 “땡큐”라고 답하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길어지는 코로나 터널 속에서 소망해 봅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재채기 소리 코로나 터널 덕담 정도

2022-01-31

[별별영어] 굿모닝, 비얼

 “Good morning, Bill!” 제가 중학생이 되어 처음 배운 영어 문장입니다.   이 “철수야, 안녕” 영어판 때문에 지금 이 글을 쓰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큰소리로 따라 하는데, 제 짝이 뭔가 살짝 적더라고요. 곁눈질해 보니 “굿모닝 비얼!”이었죠. ‘비얼?’ ‘빌’이 아니고? 갑자기 굿모닝도 ‘굿’, ‘굳’, ‘귿’ 중 무엇일지 헷갈렸죠. 영어를 우리말로 어떻게 적을지는 꽤 어려운 문제였어요. 한글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어떻게든 들리는 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긴 했어요.   그 시절 전 국어가 더 좋았지만 점차 언어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어 사회언어학을 전공한 후 영문과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언어학개론도 신나게 강의합니다. 영문과 필수과목인데 모든 언어의 기초를 다뤄 참 재밌거든요.   국제화와 더불어 누구나 영어를 웬만큼 해야 하는 요즘, 영어를 처음 배우던 날부터 궁금증 많던 이력을 살려 독자 여러분과 가볍게 영어 산책을 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이 학창시절 영어에 소홀했지만 이제라도 잘하고 싶은데 빠른 말소리가 들리지도 않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묻습니다. 저는 쉬운 노래부터 들어보자고 답해요. 언어의 기초는 소리인데, 두뇌를 고루 자극하는 음악을 곁들이면 소리와 쉽게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새해에 어울릴 곡을 추천합니다. 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희망을 노래한 뮤지컬 ‘애니(Annie)’ 중 ‘Tomorrow’예요. 비틀스의 Yesterday와 존 덴버의 Today만큼 쉬운데, 어제의 아픔은 잊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자고 하죠.   ‘Tomorrow, tomorrow. I love you, tomorrow. You’re always a day away. (내일. 난 내일을 사랑해. 넌 언제나 하루만 지나면 있구나.)’ 여기서 love의 첫소리는 혀끝이 입천장 초입을 딱 누르는 분명한 ‘l’로, 리을을 두 개 겹쳐 쓰고 싶은 소리예요. 반면 always의 ‘l’은 혀끝이 입천장에 닿지 않아 발음되지 않을 정도죠. 마치 milk가 ‘밀크’보다는 빠르게 발음한 ‘미역’처럼 들리는 경우와 같아요. Bill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데, 이들보다는 혀끝소리가 약간 더 납니다. 우리말의 ‘ㄹ’도 ‘달’과 ‘나라’에서 조금 다른 것처럼, 영어의 ‘l’도 나타나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소리 나지요. 이런 미세한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면 영어 말소리와 친해지신 거예요.   모두가 내일을 사랑하는 순조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굿모닝 영어 말소리 학창시절 영어 영어판 때문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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