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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조성진 그리고 김환기, 베토벤, 모네

오랜만에 Chicago downtown Michigan 거리에 왔다. 젊은 시절 이 거리를 걸으며 미래를 꿈꾸었던 곳. 크리스마스트리에 전등이 켜지고 캐럴이 은은히 들려왔었다. 거리를 걷다 말고 마천루 빌딩 숲에서 불 켜진, 혹은 꺼져있는 창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나랴.’ 김환기 화백의 점들로 찍힌 그림이 오버래핑 되던 시간이었다. 그의 뉴욕 유학시절, 점 하나에 찍힌 그리움, 점 하나의 사랑, 이별, 아픔, 견딤의 삶들이 절로 이해되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거리를 다시 걷고 있다.   Chicago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하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회에 왔다. 빈 곳을 찾아볼 수 없이 좌석이 차고 무대 위에는 악기의 음을 튜닝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upper level balcony left side F21 좌석에 앉아있다. 시카고 심포니의 ‘Musica Celestis’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곡은 String만을 위한 특별한 곡이다. 그러기에 여느 오케스트라 곡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숨소리마저 멈춘 높고 큰 공간 속에 바람이 불어오듯 부드럽고도 아픈 서막이 열리고 있다. 황량한 광야를 걷고 있는 사람의 등 뒤를 밀고 가는 바람. 격렬한 바람에 밀려 한참을 밀려가다 멈춰 선다. 물결 같은 잔잔한 울림이라고 해야 할까? 멀리 먼동이 트듯 천상의 음률이 들려오는 듯하다. 터지는 박수소리에 멈추었던 호흡을 길게 내쉬어본다.   무대 앞부분이 내려가고 길이가 긴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앞자리 바이올린 1주자가 일어나 전체 튜닝을 한음으로 짧게 한다. 홀을 가득 채우는 박수소리와 함께 조성진이 무대로 오른다.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이내 자리에 앉는다. 지휘자 Gemma New의 손끝을 타고 베토벤의 피아노 콘서트 No.3 연주가 시작된다.     연이어 조성진의 물 흐르듯 감미로운 연주가 이어진다. 현악과 관악이 주고받으며 펼쳐지는 연주를 끌고 가는 피아노의 음률은 마치 구슬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때론 바위 같은 묵직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눈을 감는다. 넓은 연회장이 펼쳐지고 미끄러지듯 남녀 한 쌍의 춤사위가 나비처럼 나른다. 건반을 누르는 상체의 힘으로 몸이 잠시 허공에 들린다. 지휘자의 어우르는 손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손과, 7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멤버의 각각의 손들이 만들어낸 소리. 심장 박동이 마구 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을 때였다. 작곡가가 청력을 잃었다면 그의 생명은 이미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로 작곡된 피아노 콘서트 No. 3는 청력 상실이라는 좌절을 딛고 자신만의 심오한 작품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결과 탄생하게 되었다.     인상주의, 빛의 화가 모네는 말년에 거의 사물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약해졌었다. 모네의 정원엔 연못이 있었고 수란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모네는 그 시기에 250여 연작의 수란을 그렸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The Water-Lily Pond는 거의 실명 상태에서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베토벤의 청각 상실과 모네의 거의 볼 수 없던 시각으로 희대의 작곡과 명작이 탄생된 것은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긴 뼈를 깍는 창작 활동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의 Standing Ovation 끝에 앵콜송, Moonlight가 연주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열광하는 팬들은 그가 떠난 무대를 향해 오랫동안 박수로 그를 열광했다.     2시간에 걸친 공연은 막을 내렸다. 공연장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름. 김환기, 조성진, 베토벤 그리고 모네. 미시간 거리에는 잔잔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조성진 김환기 피아니스트 조성진 피아노 연주회 당시 베토벤

2024-02-12

[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거장의 연륜이 주는 감동!

지난해 12월에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두 개의 연주회에 갔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슈만 콘체르토 협연에 이어 LA 필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했고, 그 다음 주에는 역시 LA 필과 베토벤 교향곡 3번과 6번을 연주했다. 프로그램만 봐도 만만치 않다. 곡을 잘 안다고 해도 하루에 다 소화해서 듣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거장도 피하지 못하는 세월이다. 지팡이를 짚고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며 지휘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조성진이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어 말러 교향곡에서 거장의 지휘봉은 별로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가도 필요하면 벌떡 일어설 듯이 온몸을 들썩이며 혼신의 힘으로 단원들을 이끌었다. 솔직히 내가 이제까지 본 LA 필 최고의 무대였다.     말러 교향곡 1번은 바이올린이 먼저 잔잔한 물결처럼 시작하고 곧이어 오보에가, 그리고 마치 세상 만물이 순서대로 소생하듯 모든 악기가 어우러진다.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말러의 일생을 생각하면 서정적이어서 더 슬프고 가슴을 울리는 곡이다. 특히 3악장에서 사용한 보헤미안 민요는 즐거워서 가슴 아프다. ‘끌림 없이 엄중하고 신중하게’라고 지시된 이 3악장에는 미국에선 ‘Brother John’으로, 한국에선 ‘학교 가는 길’로 개사 된 세계적인 동요가 헝가리풍 춤곡 같은 멜로디로 무척 우울하게 연주된다. 이 멜로디는 아침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고 죽은 동생을 보며 말러가 떠올렸던 노래였다. 아직 어렸고 또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말러에게 동생의 죽음은 깊은 상처를 남겼을 거다.   전원 교향곡에 이어 영웅 교향곡을 지휘한 날은 더 감동이었다. 메타는 단원들과의 교감부터 객석으로의 전달까지 모두 함께 즐기는 연주를 선사했다. 한 번에 두 곡의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메타를 처음 본 건 1984년도 뉴욕 필과 세종 문화 회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했을 때였다. 젊은 시절의 메타가 무대에 오를 땐 마치 성난 사자와 같았다고 지휘자 정명훈이 회상했듯이 10대에 난생처음 화끈한 클래식 무대를 접했던 기억이다. 약 10년 후 일본에서 인터뷰한 후 오찬에 초대받아 만났을 땐 다정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위대한 거장의 인상이었다. 그리고 50대가 훌쩍 넘어 두 연주회로 다시 만난 메타는 단원을 지배하지도 않았고 청중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말러와 베토벤이라는 거장의 곡들을 현존하는 레전드 거장이 지휘했지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다. 예전엔 그의 연주를 다 받아들이기 벅찰 만큼 위대했다면 이젠 드디어 만끽하게 되었다. 누구나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무대를 선물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노년이 된 거장의 진수를 발견했다.   손영아 디렉터 / 비영리 공인기획사 YASMA7손영아의 열려라 클래식 거장 연륜 레전드 거장 베토벤 교향곡 전원 교향곡

2024-01-07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바쿠스’ 된 베토벤

베토벤은 모두 아홉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중에서 교향곡 제7번은 다른 교향곡과 성격이 좀 다르다. 너무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다. 마치 베토벤이 넥타이를 풀어놓고 쓴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인류애와 평화라는 숭고한 메시지를 담은 '합창교향곡'의 탄생을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였을까. '합창교향곡'과 같은 걸작의 작곡에 돌입하기 전에 그렇게 엄청나게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의 방출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청중들은 베토벤이 술에 취해서 이 곡을 작곡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특히 이 곡의 4악장을 들어보면 이런 반응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악장은 첫 소절부터 너무나 산만하게 비틀거린다. 교향곡이라기보다 악기들이 제멋대로 연주하는 난장판과 같은 인상이 강하다.   사람들은 이 곡을 가리켜 베토벤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베토벤이 자기는 인류를 위해 향기로운 술을 빚는 바쿠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교향곡은 취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의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이런 식의 해방구는 있었다. 아무리 규율이 엄격한 사회에도 인간의 삶에 숨통을 트여주는 욕망분출의 창구는 늘 있었다. 멀리 그리스에서도 아폴로 신이 멀리 다른 나라를 시찰하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디오니소스 신을 불러다 한바탕 흐드러진 축제를 벌이곤 했다. 이 축제가 연극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감정을 마음껏 방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예술을 낳았고, 이 예술이 인류를 살맛 나게 만들었으니 자유니 욕망이니 향락이니 하는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만은 아니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 교향곡 제7번 디오니소스적인 측면 비운 사이

2023-11-20

[음악으로 읽는 세상] 톨스토이와 베토벤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첫 악장의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으! 이 소나타는 정말 너무 무시무시합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나오는 주인공 포즈드니세프의 대사다. 그는 아내가 투르하체프스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던 장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크로이처 소나타’는 무시무시한 음악이다.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상처받은 영혼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더블 스토핑으로 느릿하게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이 음악은 섬뜩한 광기를 드러내고 있다. 듣는 사람의 감성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리며 질주하고 탄식한다.   포즈드니세프는 투르하체프스키가 음악을 통해 자기 아내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증오와 질투를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음악의 최면적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두 사람의 이중주를 지켜보면서 마치 불륜 현장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은 신성한 결혼의 법칙을 무시하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처럼 폐부를 찌르는 바이올린 소리는 비명을 지르며 주인공의 복수심을 부추겼다. 질투심에 눈먼 주인공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베토벤의 음악이 문제였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와 같은 자극적인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음악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우려가 있다면서 베토벤의 음악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며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베토벤 음악의 최면적인 힘에 섬뜩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톨스토이 베토벤 베토벤 음악 크로이처 소나타 바이올린 소리

2023-11-06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베토벤의 머리카락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살아있을 때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했다. 청력 상실과 더불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 우울증에 시달렸다. 툭하면 화를 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절망에 빠진 베토벤은 한때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그가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 앞으로 쓴 유서에는 이런 절망감이 잘 나타나 있다.   “오! 너희들은 내가 적대적이고 고집이 세고 차갑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고 다니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느냐? 너희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게 된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절망적인 병에 시달려 왔다. 이제는 병이 낫는 것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 정열과 활기에 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을 피해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베토벤을 절망에 빠뜨렸던 병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선천적으로 이상한 성격을 타고 난 것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1999년, 미국 시카고의 한 연구소가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정상인의 100배에 해당하는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베토벤이 만성복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음악가로서 필수적인 감각인 청력까지 잃은 것이 어쩌면 납 중독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자기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평생 고통에 시달렸을 베토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유서를 썼을까. 그게 납 중독 때문이었다니 그의 일대기를 읽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다 나오는 시대이니 가능한 일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머리카락 베토벤 작곡가 베토벤 소화불량 우울증 감각인 청력

2023-10-23

[이 아침에]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속으로

몸의 면역이 떨어지면 기웃거리던 오만 병균의 공격이 시작된다. 백혈구가 싸워 이겨야 하는데 나도 힘없이 쓰러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병원 한번 안 가고 잘 지냈는데, 7년 만에 감기에 걸렸다. 한 달 이상 지독한 기침으로 고생했다. 전업주부가 된 이후 아파 누우면 정말 서글퍼진다. 입맛에 맞는 식당도 찾기가 어렵다.  입이 쓰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으니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한국으로 역이민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살다 가고 싶다.   세상의 어떤 영웅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나도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 몸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별 잔병치레 없이 살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주신 자연 음식이 몸의 면역력을 키워준 덕분인 것 같다.     다행히 기침은 잡았으나 목이 붓고 열이 나 조금 고생했다. 아파서 누워있다 보니 얼마 전 딸과 함께 갔던 베토벤 음악회가 떠오른다. 음악회가 열린 곳은 샌디에이고만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공원에 세워진 조개 모양의  ‘래디 셸(Rady Shell)’ 음악당이었다. 2021년 여름에 첫 연주를 했지만, 드디어 간 것이다. 샌디에이고 심포니의 스페셜 섬머 나이트 행사 특별무대가 열린 곳이다.     고국으로 역유학을 갔던 딸이 돌아와 정착하면서 다시 우리 집의 문화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제대로 여행 한 번 못 가고 집안일에 묻혀 삭막한 미국생활을 하는 엄마를 측은해 하던 딸이 베토벤의 밤으로 초대해준 선물이었다.     오버튜, 서주가 끝나고 중국 청년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교향곡 4번에 이어 교향곡 3번인 에로이카, ‘영웅’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나도 귓병으로 몇 년째 고생하고 있어서인지 베토벤의 음악이 왜 그리 슬퍼질까.     ‘에로이카’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베토벤은 1804년 프랑스 혁명 당시 나폴레옹을 흠모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12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나폴레옹도 독재자에 불과했다며 실망한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영웅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며 작곡 동기를 바꿨다고 한다.   베토벤 초창기의 곡들은 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후 교향곡, 영웅부터는 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었고 10여 년 동안 명작들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는 난청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한 것을 보면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신의 가호도 있었나 보다.     그의 위대한 음악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나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투병 중인 모든 이들에게 베토벤의 음악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베토벤처럼 스스로 의지와 용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화로나마 친한 친구에게 눈물 흘리며 신세타령을 했더니, 그녀의 따듯한 위로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 죽을 끓여 먹게 만들었다.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베토벤 교향곡 베토벤 음악회 베토벤 초창기 이후 교향곡

2023-09-05

OC 필하모닉 창단 연주회…한인 전문 음악가 모임

한인 오케스트라 OC 필하모닉이 오는 3월 5일(일) 창단 연주회 '더 퍼스트 콘서트(The First Concert)'를 캘스테이트 롱비치의 카펜더 아츠 퍼포밍 센터에서 개최한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중 대표곡인 제5번과 7번을 연주한다. OC 필하모닉 측은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인 베토벤의 질풍노도 특징이 잘 표현된 격정적인 작품인 제5번 운명교향곡과 함께 전쟁과 고난을 격려하기 위해 작곡된 제7번 교향곡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OC 필하모닉은 음악감독인 존 이 지휘자를 구심점으로 순수음악을 통한 감동과 스토리를 표현하고 다양한 이웃들과 감동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으로 커나간다는 구상이다.   OC 필하모닉은 시니어들을 섬기는 올투게더인러브(Altogether in Love.이사장 양한나)가 펼치는 문화 사역의 일부다. 한인 전문 음악가들이 매주 모임을 갖고 한인사회를 섬김과 동시에 더 나아가 주류 음악 단체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음악 교육과 장학 프로그램 및 자원봉사를 비롯한 리더십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으며 세계 주류 음악인들과의 연대 및 협연도 추진 중이다.   ▶후원 및 티켓 문의:(213)761-2785, 이메일(OCPhilharmonic@gmail.com) 필하모닉 게시판 필하모닉 창단 창단 연주회 베토벤 교향곡

2023-02-27

[기고] 베토벤과 리히노브스키 후작

“후작님!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은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반면) 내가 무엇이든, 나는 나 스스로 이루었습니다. (당신 같은) 후작은 천명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 터이지만, 베토벤은(나는)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1806년 10월 말, 격분한 베토벤이 리히노브스키(1761~1814) 후작 면전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바흐를 연구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리히노브스키 후작과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헌정할 만큼 그에게 의지했던 베토벤의 관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날 이후 리히노브스키 후작은 베토벤에 대한 후원을 멈췄고 베토벤의 삶은 더더욱 궁핍해졌다.   베토벤의 귀족 콤플렉스가 여과 없이 드러난 이 거친 표현에서 그의 부족한 사회성이나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 심지어 오만의 극치가 읽힌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지원해온 이에게 한 말치고는 너무 심하다 싶어 다시  한번 읽다가 두 단어에 눈길이 멈춘다. ‘우연히’(durch Zufall)와 ‘스스로’(durch mich). 공작 가문의 장남으로 ‘우연히’ 태어나 ‘절로 주어진’ 리히노브스키의 부(富)와 후작이라는 신분. 평민의 차남으로 태어나 ‘스스로 이룬’ 베토벤의 예술적 성취와 명성.   이렇게 베토벤은 노력 없이 주어진 것과 노력해 이룬 것을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평민으로서의 상실감과 스스로 이룬 것에 대한 자긍심이 뒤섞인 이 말을 되뇌니 그의 말이 오만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들린다.   언제부터인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분노와 좌절을 내포한 표현을 흔하게 접한다. 이 자조적 표현을 ‘수저계급론’이라고 한다나? 어릴 적 기억 깊숙이 각인된 금도끼·은도끼와는 달리 금수저·흙수저라는 단어는 사실 좀 낯설다. 금도끼와 은도끼가 정직한 삶에 대한 ‘보상’인 반면, 금수저와 흙수저는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우연히 주어진 것’, 즉 불평등을 상징한다.   비록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을지언정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헛된 희망만은 아니었던 세대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앞에 선 세대의 금수저를 향한 시선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족을 위해 자기 삶을 송두리째 희생한 산업화 세대도, 민주화를 향해 온몸을 던진 민주화 세대도, 오늘의 MZ세대 다수가 느끼는 좌절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찼기 때문이라고, 보금자리를 마련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불공정한 제도와 부도덕한 상류층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겠지만 해결책은 묘연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MZ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을 굳건히 헤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금도끼와 은도끼는 온데간데없고 아들딸에게는 흙수저를 물렸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해 그 아픔과 좌절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캥거루족?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아이 없는 맞벌이)? 나름 합리적인 젊은 세대의 선택을 보며 그것이 적극적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불가피하게 택한 자구책은 아닌가 싶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중요한 것은 입에 물린 수저가 아니라 금도끼와 은도끼라는 충고는 너무 ‘꼰대’스러울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연히 주어진 것’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이룬 것’으로 당당히 어깨를 펴라는 말 역시 고리타분하게 들리려나? 다섯 달란트를 맡은 이와 두 달란트를 맡은 이가 이를 불려 똑같이 ‘착하고 충성되다’고 칭찬받았듯이 자신의 가치는 우연히 주어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스스로 이룬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너무 종교적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렇게 현실적 요구와 거리가 먼 ‘사고의 전환’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베토벤이 리히노브스키 후작에게 쏘아붙인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베토벤처럼 격분하지는 말고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덧붙여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덤으로 받기를….   “금수저님! 당신이 무엇이든, 당신은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반면, 내가 무엇이든, 나는 나 스스로 이루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천 명이나 있지만, 이것을 스스로 성취한 이는 나밖에 없습니다.” 전상직 / 서울대 음대 교수기고 베토벤 후작 후작 면전 반면 금수저 적극적 선택

2022-07-22

"천재? 저는 노력형…노력할 용기 있어 다행"

  “천재는 절대 아니고요, 전 그냥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18) 피아니스트를 만난 첫 느낌은 ‘순수함’이었다. 앳된 얼굴과 목소리 탓도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콩쿠르 우승 후 당황스럽고 심란했다는 그는, 일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절대 아니다”며 고개를 저었다.   임 피아니스트는 지난 24일 맨해튼 스타인웨이 홀에서 진행된 뉴욕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토벤 같은 분이 천재”라며 “저는 그냥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 노력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게 다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승 무대에서 ‘악마의 곡’으로 불리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해 이목을 끌었다. 그의 대담함은 결국 작은 연습실에서 보낸 고독한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임 피아니스트는 “제가 좋아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고독한 연습 시간이 가장 힘들다”며 “길을 헤맬 때도 있지만, 결국은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해법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피아니스트와의 일문일답.     -수상 소감은, 이번에 배운 점이 있다면. “입상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상을 받아서 처음에 당황을 했다. 약간 심란하기도 했다. 걱정도 되고.”   “음악을 무대에 올리기 직전까지 재검토가 수차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제 허점도 좀 찾았다.”   -피아노를 ‘평생’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사실 아직까지도 ‘평생’ 이란 확신은 안 든다. 내일 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 그렇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의 레코딩을 들었을 때 ‘나도 그분들처럼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하고 있다.”   -전공자가 아닌 부모님이지만 음악적 환경 조성을 잘 해주셨다. “금전적 지원 외엔 부모님이 항상 뒤에 빠져계셨고 강압적인 것은 아예 없었다. 사실 음악가들에겐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거의 내버려 두셨는데, 그게 가장 도움되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천재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는데 “천재는 절대 아니고,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력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게 다행인 것 같다.”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생각은 왜 했나. “어릴 때 아무것도 몰라서 ‘피아노만 치며 기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가, 시간이 흐르며 결국 음악은 상업적인 것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결론에 확신이 생겼다. 그런 것을 알게 됐을 때 굉장히 실망했던 순간이 있었고 충격이었다.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은 그런 걸 다 버리고 음악만 하고 싶다는 의미로 얘기한 것이다.”   -가장 큰 시련은. “피아니스트들이 항상 연습은 고독한 순간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시인 릴케 역시 외로움 속에서 예술 꽃이 핀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가장 힘들다. 엄청 작은 연습실, 인테리어도 없고 같은 색만 있는 곳에서 하루에 7시간은 연습하다보니 ‘이게 뭐하는 건지’라며 길을 헤맬 때도 있다. 해법은 결국 레코딩을 듣는 것. 들으면서 아, 그래도 저렇게 연주할 수 있다면 이건 별 것 아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인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한국인이라서기보다는, 그 분들 자체가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분들인데 한국인이다. 그런 것 같다.”   -모든 장르를 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는데.   “천재 예술가들의 시대인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에 가장 관심이 많고, 현대음악도 굉장히 좋아해서 상반된 두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물론 있는데, 거의 매일 바뀐다. 오늘같은 경우 러시아의 전설적인 소프로니츠키 피아니스트가 좋았다. 많은 사람이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좋을 때도 있고, 모두가 아시는 호로비츠도 좋아한다. 생존한 인물 중엔 예브게니 키신, 그리고 저희 선생님(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을 제가 가장 좋아한다."   -이제 해외투어까지 하려면 체력이 중요할텐데 "예전엔 수영·축구·야구 등 별 걸 다 했고 관심사도 많았는데 중학교 입학 후 신기하게도 피아노만 치게 됐다. 연습할 게 많으면 정말 시간이 없어서 운동은 못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쇼팽 콩쿠르에도 도전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아직 너무 많이 남았고, 어떻게 될 지.”   -한인들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고, 뉴욕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해외공연 스케줄은 7월 중 공개될 예정)    글·사진=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  김은별 기자뉴욕 맨해튼 반클라이번 콩쿠르 콩쿨 피아니스트 임윤찬 임윤찬피아니스트 피아노 한예종 리스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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