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 속으로
세상의 어떤 영웅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나도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 몸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별 잔병치레 없이 살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주신 자연 음식이 몸의 면역력을 키워준 덕분인 것 같다.
다행히 기침은 잡았으나 목이 붓고 열이 나 조금 고생했다. 아파서 누워있다 보니 얼마 전 딸과 함께 갔던 베토벤 음악회가 떠오른다. 음악회가 열린 곳은 샌디에이고만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공원에 세워진 조개 모양의 ‘래디 셸(Rady Shell)’ 음악당이었다. 2021년 여름에 첫 연주를 했지만, 드디어 간 것이다. 샌디에이고 심포니의 스페셜 섬머 나이트 행사 특별무대가 열린 곳이다.
고국으로 역유학을 갔던 딸이 돌아와 정착하면서 다시 우리 집의 문화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제대로 여행 한 번 못 가고 집안일에 묻혀 삭막한 미국생활을 하는 엄마를 측은해 하던 딸이 베토벤의 밤으로 초대해준 선물이었다.
오버튜, 서주가 끝나고 중국 청년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교향곡 4번에 이어 교향곡 3번인 에로이카, ‘영웅’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나도 귓병으로 몇 년째 고생하고 있어서인지 베토벤의 음악이 왜 그리 슬퍼질까.
‘에로이카’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베토벤은 1804년 프랑스 혁명 당시 나폴레옹을 흠모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12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나폴레옹도 독재자에 불과했다며 실망한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영웅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며 작곡 동기를 바꿨다고 한다.
베토벤 초창기의 곡들은 귀족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후 교향곡, 영웅부터는 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었고 10여 년 동안 명작들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는 난청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한 것을 보면 타고난 천재성과 함께 신의 가호도 있었나 보다.
그의 위대한 음악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나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투병 중인 모든 이들에게 베토벤의 음악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베토벤처럼 스스로 의지와 용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화로나마 친한 친구에게 눈물 흘리며 신세타령을 했더니, 그녀의 따듯한 위로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 죽을 끓여 먹게 만들었다.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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