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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자폐증, 인식을 넘어 수용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월 2일을 ‘세계 자폐증 수용의 날(World Autism Acceptance Day)’로 선포했다. 자폐증 수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첫 공식 선언이었다. 이는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인식을 넘어 수용’의 단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폐증 수용(Autism Acceptance)’은 ‘자폐인자조네트워크(ASAN·Autistic Self-Advocacy Network)’에서 2011년부터 사용한 표현이다. 그리고 2021년 ‘미국자폐협회(Autism Society of America)’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기대하며  4월을 ‘자폐증 인식의 달’에서 ‘자폐증 수용의 달’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후 지역사회와 여러 단체에서 ‘자폐증 수용’으로 바꿔 사용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마침내 백악관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받아들여 ‘자폐증 수용’을 선언한 것이다.     ‘인식’을 ‘수용’으로 바꾸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자 함이 아니다. 인식이 어떤 것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것이라면, 수용은 그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수용은 인식과 달리 실제적인 행동의 변화를 촉구한다. 수용은 나눔과 공유의 개념이 전제된 표현이기에 지역사회가 자폐증을 수용한다면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 공공 시스템 안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은 그 사회의 자원과 시스템 일부를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부분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한 자리와 공간을 마련하여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 치료, 여가, 취업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폐성 장애인을 수용하고 그들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만 한다. 그 결과로 자폐성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될 것이고 각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용으로 표현을 바꾼다고 해서 인식을 등한시할 수는 없다. 진정한 수용을 위해서는 올바른 인식이 선행돼야 하기에 여전히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 수용과 인식은 비행기의 양 날개와 같으며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수용의 결과로 지역사회 내에 훌륭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이 시스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폐증의 특성과 그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인식 개선의 과정이 지속해서 필요하다. 수용과 인식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2023년 4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자폐성 장애의 유병률은 2.76%로 8세 아동 36명 중 1명이 자폐성 장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폐성 장애의 유병률은 해가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며,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역사회는 이제부터라도 전문가와 함께 좀 더 적극적으로 자폐증 수용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나눌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폐성 장애인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카페나 사업체 등이 좋은 본보기다. 이들은 공간을 내어주는 것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자폐증 수용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 관심, 에너지, 자원, 재정 등 삶의 어떤 부분을 나누며 자폐증 수용에 동참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매년 4월은 ‘자폐증 수용의 달’이며, 특별히 4월 2일은 ‘자폐증 수용의 날’이다.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회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준다면 조금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윤여광 / 한미특수교육센터(KASEC) 프로그램 디렉터발언대 자폐증 인식 자폐증 인식 자폐증 수용 자폐성 장애인

2024-04-23

[발언대] 봉사단체의 존재 목적

한인 사회에도 많은 단체들이 있다. 단체는 목적에 따라 형태나 구성원의 역할, 활동 방향 등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많은 한인 단체에서 잡음이 발생하곤 한다고 생각한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은 소유주가 직원을 채용해 업무를 지시하고 이를 감독한다. 반면, 봉사단체는 구성원들이 대가 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봉사를 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다. 그런데 일부 한인 봉사단체에서는 목적에 대한 고려 없이 기업의 운영 방식을 따르려다 보니 잡음이 생기는 것 같다.      한인회·노인회 같은 단체의 존재 목적도 봉사에 있다. 이런 단체에도 이사회가 있지만 기업의 이사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봉사단체 이사회는 임원진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 등 필요한 후원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반 회원들도 봉사하는 임원진에 고마움을 표하는 게 마땅한 태도인데 오히려 원망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선교’가 목적인 교회는 그 주인이 하나님이요, 성경이라는 절대적 정관에 따라야 하는 특수 조직이다. 그 정관에는 주인인 하나님이 지도자 한 사람을 임명하면 그는 함께 일할 일꾼들을 뽑고, 그들은 그의 인도에 순종하며 따르게 되어있는 구조다. 그런데 지도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등 잘못이 있을 경우 주인은 언젠가는 그를 퇴출할 것이다.     많은 한인 단체들의 문제는 목적의 차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다른 곳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하는 타성적 사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라구나우즈 한인회도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근 많은 토론을 거쳤다. 그리고 봉사단체임을 재확인하며 과거 관행을 과감히 깨고 모든 것을 목적에 맞게 고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회장 등 임원진이 단체의 중심이 되고, 이사들은 감독이 아니라 재정 등 임원진의 활동을 후원하는 봉사자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또한 주요 업무도 과시용 행사 대신 각종 도와야 하는 분들을 돕는 활동에 역점을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요즘 한인 단체들의 내부 갈등 소식을 종종 접한다. 대부분 단체의 존재 목적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구성원들이 목적의식을 공유해야 과감한 개선도 가능하다. 이번 라구나우즈 한인회의 변화가 다른 단체들에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홍식 / 은퇴의사발언대 봉사단체 존재 봉사단체 이사회 반면 봉사단체 한인 단체들

2024-04-18

[발언대] "한미박물관의 주인은 한인 사회"

한미박물관(KAMA)의 신속한 건립을 바라는 주민공청회가 지난달 21일 열렸다. 공청회에는 한인 1세는 물론 1.5세와 2세, 그리고 전문가들과 타 커뮤니티 관계자들도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공청회는 현 한미박물관 이사진과의 의사소통, 운영의 투명성 등을 요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지만 한미박물관 측에선 관계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 실망스러웠다.     최근 한미박물관 이사회 측은 4번째 디자인을 공개하며 1991년 시작된 ‘한미박물관’ 프로젝트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IRS(국세청) 자료를 보면 현 한미박물관은 당시 사용하던 식별 번호(EIN)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주장은 역사를 보존하겠다는 한미박물관이 오히려 역사를 삭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지우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한인 사회는 한미박물관의 재정 상황이나 이사회의 운영 현황 등을 알 권리가 있다. 한미박물관이 한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 후세 교육, 지역 발전 등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4월4일 LA시가 LA 한인타운 버몬트와 6가의 부지를 기증하면서 한미박물관 건립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더구나 시의회, LA시 검찰 등과 조율해야 할 사안까지 생겼다고 한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동안 조감도만 수차례 바뀌면서 마치 풍선처럼 터질 것만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타운을 대표한다는 한인 단체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을 꼭 다물고 방관만 하는 실정이다. 아마 이들도 박물관이 건립되면 VIP 대접을 받으려 할 것이다. 이런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한미박물관 건립 사업은 33년간이나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미박물관은 1991년 시작하여 1995년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됐다.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역할을 정확히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한인들은 산책하듯 박물관 소장품을 감상하며 사회·문화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현재의 한미박물관 이사진은 전시물을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고,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박물관은 지역 사회의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소통하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한인 이민 역사를 기록하는 한미박물관의 주인은 한인 모두다.   한미박물관이 건립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건립 시기를 앞당기려면 우선 한인 사회가 한마음으로 통합되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 박물관 건립 프로젝트가 실질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사하려면 사심을 버리고 봉사해야 한다. 무엇을 얻으려고 봉사하려면 그만둬야 한다.” 생전에 ‘기부왕’으로 유명했으며 한미박물관 이사회에도 참여했던 고 홍명기 회장이 한미박물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다.     우리가 공청회를 연 목적은 단합에 있다. 서로 의견을 듣고 표현하며, 소통하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공유하자는 의도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열고 건설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달에 두 번째 공청회의 개최를 예정하고 있다. 이번 공청회에는 한미박물관 이사 등 관계자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간절히 부탁한다. 크리스토퍼 이 / 건축가·다큐영화감독발언대 한미박물관 한인 한미박물관 이사회 한미박물관 건립 한미박물관 이사진

2024-04-09

[발언대] 정체성 교육의 시작

3·1 독립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이던 1919년 3월1일 애국 열사 33인이 대한민국은 자주독립 국가임을 선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의 일이다.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에 항거해 일어난 전국적인 독립운동이었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조선 왕조는 내분만 일삼다 어이없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로 인해 한민족 모두가 일제의 강압에 신음했다. 다행히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학교를 건립하고, 당시 85%에 달했던 문맹률 퇴치에 앞장섰다. 이는 우리 민족정신이 살아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독립을 되찾았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으로 남한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눈부신 발전을 이어온 한국은 이제 K팝,  K 드라마, K 푸드 등으로 세계 문화 발전에도 공헌하고 있다.     단기간에 6·25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도 갖고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누구나 배우기 쉬운 글이라고 한다. 그만큼 창조성이 뛰어난 문자라는 의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다. 한반도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세력과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전체주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칼 마르크스라는 공산주의 사상가와 소련의 레닌, 스탈린이란 독재자를 존재하게 했고, 북한의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되게 했을까? 하나님은 왜 작은 반도 국가에 휴전선을 그어 남북으로 갈라놓아 비극을 만들었는가? 왜 하나님은 경제, 문화 , 종교, 예술, 첨단 과학 및 각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을 파괴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용인하는가?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을 더 단단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시험대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2세, 3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남북통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도 한인 후세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교육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종근 / 목사·남가주 5도민회 총회장발언대 정체성 교육 정체성 교육 교육 방법 자유 민주주의

2024-03-25

[발언대] “의대 정원 대폭 확대는 교육 질 저하 우려”

한국이 의료 대란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신입생 숫자를 3000명에서 5000명으로 늘리려 하자 의사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의사들의 반대 이유가 경제적 기득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의사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결코 그것만은 아니다.     의학교육은 거의 실습과 실험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이 환자를 직접 치료하며 선배와 교수 밑에서 시술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의대 2학년 2학기 부터 강의는 별로 없고 주로 7~8명으로 짜여진 팀안에서 각자 공부한 후 발표하고 토론한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직접 환자를 치료하며 배우게 된다. 물론 선배 수련의들과 교수들의 감독아래서 말이다. 즉, 의과대학 진학 후 2년이 채 못되어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병동으로 투입되는 셈이다.     환자를 배당 받아 직접 시술을 해보고, 선배 수련의들 밑에서 치료하는 소위 ‘hands on experience’를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학생들도 의료 사고에 대비한 보험(malpractice insurance)을 제공된다. 그래서 의대 4학년을 마치고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갈 때면, 본인 전공과는 별개로 산부인과에서 아이도 몇 번 받아보고 소아과에서 정신과까지 수개월씩 선배나 교수들의 감독아래 직접 치료 경험을 쌓게 된다.   한국의 의대 교육도 미국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필자는 수십년전 미국에서 의사 수련을 시작했을 당시 내과적 시술을 배울 수 있는 차례가 잘 오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즉, 환자 케이스가 부족하기도 하고,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시술도 경쟁이 심했다. 그래서 미국도 의과대학 확대는 조심스럽다.     한국의 의대 입학생을 한꺼번에 2000명이나 늘리면 교육의 질 저하는 뻔해 보인다. 직접 환자를 치료해보면서 수련을 마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의사들이 많이 배출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수요와 공급의 개념만으로 의사 증원을 강행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 그저 의사 숫자를 늘리면  의료 불평등이 해소되고 지방의 의사 부족 상황이 해결될 것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방 의대를 확충되려면 대도시 인구 집중,  미래 인구 절벽  문제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이공계 기피 심화와 회사원들까지 의대에 지원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의학교육은 거의 대부분 처음부터 수련이다. 원래 서양의 외과의사 교육은 이발사의 도제교육(apprenticeship, 경험많은 기술인의 발 밑에서 하나하나 배움) 과정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 책을 읽고 시험을 통과하면 반쪽짜리 밖에 안된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실제 경험이 많지 않을 경우 항생제 처방도 두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미 훈련을 끝낸 의사의 진료도 ‘연습’, 즉 ‘프랙티스(practice)’ 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의료 대란이 오래가지 않길 바란다. 의학교육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 관여해서 깊이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말아야한다.   지방의 의사 및 시설 부족을 심도있게 연구, 토론하고 일선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책상과 교실이 있다고 의학교육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박성은 / 신경내과 전문의발언대 의대 정원 의대 교육 의대 입학생 의대 신입생

2024-03-19

[발언대] “진료 현장 떠나는 것은 의료인의 본분 망각”

현대 사회과학계의 태두 막스 베버는 명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1.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열정 2. 책임의식 3. 자신을 통제하며 갖는 균형감각 등을 정치 지도자의 요건으로 강조했다. 개인의 영달이나 이기주의가 발붙일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종이니 정치인 못지않게 높은 수준의 직업의식이 강하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제네바 선서까지 맹약하고 의사의 길을 걷는 전문인이니 소명감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의 의료계가 요즈음 자신들의 이해에 매몰돼 환자들을 등지고 집단 이기주의 행태를 보인다. 이런 중차대한 사태에 환자는 물론 많은 국민들도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의사들은 사회의 상위 계층에 속한다. 그런데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자기들의 성역인 병원을 뛰쳐나가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다. 이런 행태는 환자의 생명을 ‘나 몰라라’ 하는 속 좁은 오만이며, 의술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를 스스로 내팽개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의료 수요 증가에 대처하려는 정책을 ILO(국제노동기구)에 제소까지 함으로써 스스로 전문인에서 노동자로 계층 변환을 자처하는가 하면, 국제적으로 신망이 높던 한국 의료를 문제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현실적으로 의사들도 격무에 시달리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또한 의사 전체가 의대생 증원에 반대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의료계와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유 불문하고 의사들이 진료 현장을 떠나는 과격한 행보는 의사의 본분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가족이 환자라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이런 행동은 결코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일부 강경한 분위기에 휘둘려 사태가 더 악화하거나 장기화한다면 환자들의 고통은 물론, 사회 시스템에 상처를 주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 국민의 일부인 의사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무조건 철회하라는 요구는 행정 행위의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의료 수요 증가에 맞춰 의대 신입생 숫자를 늘리려는 정부의 주요 정책이 의료계의 반발로 후퇴한다면 다른 이해 집단들도 나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 전체가 카오스 상태에 접어들 우려도 있다. 사회의 가치 체계가 혼미한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하면서 수수방관 대신, 사태의 조기 수습과 한국 의료의 선진화를 위한 전향적인 비전 마련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발언대 의료인 진료 한국 의료 현대 사회과학계 진료 현장

2024-03-19

[발언대] OC 한인회에 바란다

OC한인회가 비공개로 한인회관을 매각하려다 여론에 밀려 취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인회의 주인은 지역 한인들이고 한인회장은 봉사자일 뿐이다. 봉사자가 주인 허락 없이 집을 팔 수는 없다.      2019년 구입한 현 OC한인회관은 지역 한인들이 40여년 노력 끝에 어렵게 마련한 건물이다. 한인회관 구입은 역대 한인회와 향우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협력, 한인들의 성금과 30만 달러 가까운 한국 정부 지원금 등이 있어 가능했다. 지역 한인들의 피와 땀이 묻어있는 곳이다.   처음 한인회관의 위치를 가든그로브로 정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우선, 가든그로브는 오렌지카운티 한인타운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50여 년 전 황량하던 이곳에 한인들이 하나둘 정착하며 OC 한인타운이 시작된 곳이다. 둘째, 가든그로브는 오렌지카운티의 중심에 위치한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북쪽의 부에나파크, 풀러턴, 동쪽의 어바인, 남쪽의 파운틴벨리나 헌팅턴비치 등 어디에서도 쉽게 올 수 있는 장소다.   한인 인구 숫자를 이유로 회관을 이전하려는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현재 카운티 북부지역에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건 사실이지만 동부의 어바인도 한인이 늘고 있는 지역이다. 한인회관은 이민 1세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현재의 장소가 합당하다.   다만 기존의 한인회관 운영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오픈 당시 한인회관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각종 모임 장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서비스도 다양해지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회관 이용료가 만만치 않다. 지금의 넓은 공간에 칸막이를 설치해 작은 행사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한다. 이용료 부담이 줄면 사용자가 늘 것이고, 한인회의 수익도 늘어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인회 재정에 관해서도 한마디 보탠다. 회관을 유지하고 한인회 활동이 활성화되려면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 골프대회 등 기존의 모금 활동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지원금을 확보해 활동 재원으로 활용하는 다른 한인 단체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고용개발국(EDD)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LA 한인회, 정부 지원으로 시니어 아파트를 건축한 민족학교 등이 좋은 예다.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봉사 기록이 있어야 한다. 지역 한인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그  내용을 차근차근 기록해 가면 것이 필요하다. 주 정부나 연방 정부의 지원금 심사 기준이기 때문이다. 현 회장 임기 안에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고 시스템을 정착시켜 놓으면 다음 회장부터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리더의 안목이 관건이다.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다.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듣고, 사람을 모으고 지혜를 구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리라 믿는다. 한인회장은 무보수 봉사직이다. 긴 안목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해 주길 부탁드린다. 정찬열 / 시인발언대 한인회 한인회관 구입 한인회관 운영 한인회 활동

2024-03-13

[발언대] 독립문 앞 3·1절 행사 합당한가

LA 한인회 및 한인 단체들이 3·1절 105주년 기념행사를 미주 한인 독립운동 요람지로 꼽히는, 중가주 리들리시(Reedley)에 세워진 독립문 앞에서 개최했다. 독립문 양옆에는 안창호, 이승만 등 10인의 애국지사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이 독립문은 서울 서대문에 있는 원형을 4분의 1 정도 크기로 줄여(높이 14피트)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독립문은 언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세운 것인가. 독립문은 미국에 있던 서재필 박사가 1896년 귀국해 ‘독립협회’를 세우고, 그 협회의 발의로 1897년 11월 20일 완공했다. 서재필 박사가 스케치한 설계도를 기초로 당시 서울주재 독일공사관원이 프랑스의 개선문을 참고해 만들었다.     독립문을 세운 목적과 배경은 무엇일까? 독립문은 조선이 중국(청나라)으로부터 독립한 자주 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다는 의미로 세워졌다. 사실 조선은 그때 중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왕도 중국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아야 오를 수 있었다. 독립문이 세워진 곳은 영은문(황제의 은혜를 받는 문)이 있던 곳이다. 중국 황제가 보내는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영은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사신이 체류하는 ‘모화관(중국을 사모한다는 뜻)’이 세워졌다.     그러나 1896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후, 강화도 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을 독립국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때까지 조선은 독립 국가 개념도 없었고, 스스로 중국의 ‘속국’을 자처했었다. 강화도 조약 제1조에는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재필과 독립협회가 주동이 되어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된 것이다. 서재필은 당시 발행하던 독립신문에 ‘조선은 이제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다’는 것을 천명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독립문을 일제 강점기에 독립 혹은 독립운동의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한 여론조사 기관이 중고생을 대상으로 독립문이 세워진 배경을 물었더니 약 70%가 일제 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며 세운 것이라고 답을 했을 정도다. 독립문은 일제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건축물이다. 독립문이 세워진 시기는 일제의 강점 훨씬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1924년 7월15일 발행된 동아일보를 보면 독립문에 관해 설명한 기사가 있다. 내용을 보면 ‘…진정한 외세로부터의 독립이 아니고,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상징물이오. 나라 팔아먹은 우두머리 이완용이 독립문 편액 글씨를 썼소. 독립문은 청국은 가고 일본은 오라는 개선문인 셈이요.“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도 있으나, 이완용은 당대의 명필로 독립협회 회장도 했다. 독립문 현판의 글씨체도 이완용의 것이 맞는다는 주장이 더 강하다.)   만일 독립문이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의미로 세워졌다면 일제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 독립문을 철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강점 36년 동안 독립문을 철거하지 않고 오히려 낡은 부분은 보수를 하는 등 유지를 했다.     그렇다면, 미주 한인들이 비록 축소 모형이긴 하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독립문 앞에서 3·1절 기념 행사를 갖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 아닐까? 다만 이미 세워진 건축물인 까닭에 그곳에 3·1절 관련 기념 조형물을 추가로 세우고, 그 앞에서 3·1절이나 광복절 기념행사를 갖는 것이 합당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는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택규 / 트루쓰역사연구회 대표·전 서울감신대 객원교수발언대 독립문 행사 독립문 현판 독립문 양옆 만일 독립문

2024-03-04

[발언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에 사는 사람치고 이 말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특히 조국을 뒤로하고 삶의 둥지를 미국으로 옮긴 이민자들에게 이 구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는 매력적인 구호다.       이는 올해 치러지는 미국 46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의 구호다. 그는 44대 대선 때 처음으로 이 구호를 사용해 당선됐다. 이후 재선에 도전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의 임기 4년 동안 미국은 ‘다시 위대하게’ 되었나?  국내에선 분열이 조장됐고, 국제적으로는 국가 위신이 추락한 어두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퇴임 후에도 온갖 법적 문제로 법정을 들락거리고 있다.  이런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대선에 나섰다.     목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법이다. 목표는 좋지만, 어떤 방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미국은 지금도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다고 볼 수 있다. 위대하게 되기 위해서는 과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한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국토의 크기와 위치, 자원이고, 또 하나는 건국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국토의 크기나 자원보다는 국가에 뿌리를 내린 건국 정신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은 자유를 신봉하고 타락과 부패를 멀리하는 청교도 정신, 개방과 포용, 그리고 민주적 절차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봉사 정신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건국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을 때 미국은 위대한 국가로서 인정받으며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44대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건국 정신 실현 노력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본인 이익을 위한 허위 주장들로 신의를 저버렸고 개방과 포용 대신 폐쇄와 배척으로 국제적 고립을 불러왔다. 국내적으로도 이해 집단 간 분열이 심화했으며, 그는 민주적이기보다는 권위적인 리더십을 행사했다. 또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함으로써 의사당 폭도 난입 사태를 불러왔다는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트럼프는 퇴임 후 여러 민형사상 문제에 휘말리며 구치소에서 머그샷까지 찍는 불명예도 경험했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구호는 말뿐이었다.   갑진년인 올해는 세계 76개국에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지는 소위 ‘슈퍼 정치의 해’라고 한다. 유능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 전 세계 유권자 40억 명이 귀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해다.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말’ 보다 그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유권자들이 말보다는 마음이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해 올해가 세계 평화와 번영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권영무 / 샌디에이고 에이스 대표발언대 미국 건국 정신 대통령 선거 청교도 정신

2024-02-11

[발언대] 부모님께 신문 구독 선물을

저는 45년 전 가주로 이사 와 유대인이 운영하던 병원을 인수해 운영했습니다. 그 후 혼자 살던 그 의사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지 1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됐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홀로 사는 분들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0년 전 은퇴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로 혼자 생활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며 그때 일이 떠올라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홀로 사는 분들에게는 외로움도 문제지만 급작스럽게 문제가 생길 경우 옆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시니어가 심장병·당뇨병 등 기저질환들을 갖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등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혼자 생활하는 분들은 기억력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마을에서는 서로의 안전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도록 모든 주민을 교회나 동창회, 향우회 등의 조직을 통해 연락망을 만들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안녕 팀’ 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아무리 가까운 이웃집이라고 해도 각자의 사생활이 있기에 불쑥 찾아가 확인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떠오른 방법의 하나가 신문 구독하기 캠페인입니다. 신문 구독은 고독한 노인들에게는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 고리 역할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 날치 신문이 문 앞에 있는 집을 보게 되면 무슨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의심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문 구독은 꼭 사고 대비용이 아니더라도 평소 대화 상대조차 없는 외로운 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됩니다. 매일 전해지는 외부 소식은 이들에게 활력과 생동감을 줄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 등에 밀려 종이 신문의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시니어들에는 종이신문이 더 편하고 향수를 느끼게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도 책을 펴 놓고 읽는 것이 기계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에 다들 공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은퇴마을 주민들이 신문 구독을 많이 하지 않는 데는 경제적 이유보다 구독신청의 번거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또는 이웃들끼리도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자는 것입니다. 신문 구독권은 명절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내가 사는 은퇴마을부터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곳 한인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을 도서관에 한국 신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지역 한인회 같은 단체가 앞장서 그 지역 도서관이나 양로시설 등에 한국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홍식 / 은퇴의사발언대 부모 신문 신문 구독권 한국 신문 종이 신문

2024-01-17

[발언대] ‘천사의 도시’ LA가 어쩌다

나는 LA 한인타운에 산다. 매주 산행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유니온에서 하바드 길 사이를 걷기도 한다. 그런데 아침마다 타운 거리를 걸으면서 실망과 함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지저분한 거리 모습 때문이다.     40년 전 LA에 처음 왔을 때는 그야말로 천사의 도시였다. 한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도 이렇게 좋은 곳에 살게 되다니, 정말 미국 오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가난했던 한국에 비해 그야말로 천당에 온 느낌이었다.   물가도 저렴해 그때 오렌지 한 자루 가격이 겨우 99센트였고, 마켓에서 50달러어치 장을 보면 고기와 생선을 포함해 자동차 트렁크로 한 가득이었다. 당시 막노동하는 사람의 일당이 20달러 정도였고, 도로에는 휴지나 쓰레기 하나 없었다. 물론 노숙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주변 생활환경은 너무나 열악해졌다. 한인타운에서 다운타운 쪽으로 길을 걷다 보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와 오물이 나뒹굴고 있다. 노숙자 숫자가 늘면서 그들의 배설물과 생활 쓰레기, 토악질해 놓은 것들로 인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역겹다.   불안한 치안 상황도 문제다.  LA는 저녁이 되면 집밖 출입을 꺼릴 정도로 위험한 도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누구도 LA를 천사의 도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LA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의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나부터도 이대로는 도저히 더는 LA에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자유가 좋고 노숙자의 인권이 중요하다 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소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다수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LA시 당국은 주민들의 고충을 헤아려 어떠한 방법으로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어디든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 ‘천사의 도시’라는 명예를 되찾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중식 / 수요자연산악회 회장발언대 천사 도시 생활 쓰레기 노숙자 숫자 la 한인타운

2023-12-12

[발언대]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한국인의 성숙

어린 시절 방학 때 시골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면 “많이 성숙해졌다” 는 칭찬을 듣곤 했다.  ‘성장’이란 몸무게가 늘고 키가 크는 체세포 활동을 말하지만, ‘성숙’이라는 말에는 남을 이해할 줄 알고, 자립심도 있는 등 ‘어른스럽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은 자신의 눈과 귀, 코는 의지대로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입은 의지에 따라 좋은 말도 할 수 있고 듣기 싫은 말도 할 수 있다. 또 손과 발을 이용해서도 가고 싶은데도 가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다. 인간이란 목표와 기준을 잃어버리면 방황하게 되고 성장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성숙은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한국은 양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휴대전화, 반도체, 자동차, 화학, 철강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문화 콘텐트도 한국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한국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말 그대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경제 규모는 커졌으나 많은 시니어는 곤궁한 삶을 살고 있고, OECD회원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국가 의식과 가치는 점점 희박해지고 유대 관계 또한 느슨해지고 있다. 갈등 상황이 벌어졌을 때 타협과 조정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바람직한  정치인을 육성하는 정당 정치와 정치 도덕도 무너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 간에 극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어 다수의 국민은 피곤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어찌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들과 인사를 하며 야당 의원들에게도 손을 내밀었지만 이를 거절하며 고개를 돌리는 의원도 있었다. 어찌 이런 모습을 성숙한 정치라 할 수 있겠는가. 태평양 바다 건너에서 봐도 볼썽 사나운 장면이다.       법치국가에서 정치인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독재가 아닌 이상 정치인은 서로 협력하여 국민을 위해 입과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연구하고 검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선과 악을 구별 못 하고 무조건 자기주장만 옳다고 우겨대며 진흙탕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공정과 상식을 구현하여 성숙해지면 민생도 안정되고 국민은 감동과 기쁨을 느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다 보니 성장만 있을 뿐 성숙은 뒷전으로 밀려난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 성장도 필요하지만 균형 있는 성숙도 필요하다. 산은 올라가 봐야 힘든 줄을 알게 되고 사람은 겪어봐야 그 사람의 인성을 안다고 하였다. 국가도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지 않은가. 한국은 경제적 성장 못지않게 정치인과 국민의 성숙한 자세도 요구되는 시기다.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발언대 한국인 한국 경제적 성장 한국 사회 무한 성장

2023-11-27

[발언대] 고향을 묻지 마세요

며칠 전 어느 그룹 카톡을 열었다가 질겁을 한 적이 있다. 그 그룹 카톡은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모임에서 회원들 간 화합과 신속한 정보전달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 그룹 카톡에 버선발처럼 생긴 한반도 지도가 칼러로 예쁘게 모습을 드러냈다. 단체 회원 가운데 누군가가 올린 것이었다.     지도는 우리가 늘 보듯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파란색, 북쪽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 지도는 전라남북도를 북한과 똑같이 빨갛게 칠해 놓고 ‘전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이라 써놓고 있었다. 나는 지역적 편견은 물론 한국 정치에 별 식견도, 관심도 없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의도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승만 대통령, 윤보선 대통령, 장면 정권 때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정적 제거를 위해 반공을 앞세웠다. 당시 민주주의를 외쳤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처벌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적 치적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권력욕으로 인해 나라는 부패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퇴보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지도, 바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놓은 그 기막힌 지도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취지로 발족한 단체의 그룹 카톡에 버젓이 올라온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면적으로만 보면 지금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주에 비해서도 훨씬 작은 나라다. 그런데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마저 동서로 나누자는 것인가. 다시 신라·백제·고구려로 나뉘었던 삼국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인지. 도대체 스스로 극우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치 전라도에 콤플렉스라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같은 단체 회원으로 그 지도를 그룹 카톡에 올린 분의 인성이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그런 지도를 단체의 공식 카톡방에 올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 누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미국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고 묘지까지 사 뒀으니 말이다. 진짜 고향은 저승에나 가서야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고향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임지나 / 수필가발언대 고향 한반도 지도 진짜 고향 그룹 카톡

2023-10-09

[발언대] 꿈인가, 환상인가, 아니면 망상인가

 지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 행위의 전면 중지에 합의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라는 희망을 갖고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꿈과 비전은 우리에게 분명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꿈과 비전이 있다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오직  환상일 뿐이요, 더 나아가 망상일 뿐이다.   누구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버릴 꿈이 있고 붙들어야 할 꿈이 있다. 꿈을 이루기 위래서는 현명한 지혜와 예리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투옥했던 당시 조선 집권 세력과 같은 판단력으로는 희망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평화의 꿈, 통일의 꿈…. 말만 들어도 마음에 평화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국제사회에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의 9.19 남북 군사합의가 군사적 긴장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9.19 군사합의로 모두가 평화의 꿈을 갖게 된다면  모두가 환영할 만 일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북한의 도발 행위 등 합의 위반 사례를 볼 때 상호 간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겠다는 합의 이행은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평화의 꿈은 애석하게도 환상으로  바뀌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9·19 합의 당시 비행금지 구역 설정 문제 등 북한의 얄팍한 속임수도 문제였다.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했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은 여러 차례의 도발 행위로 약속을 어겼고 희망의 꿈은 망상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이행되지 않는 군사합의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아직도 한국의 9·19 군사합의를 두고 ‘희망의 꿈’이니 ‘환상’이니 갑론을박을 하는 모양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대방을 알 만큼 알았건만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이제 정답을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현명한 정치인들이라면 여·야를 초월하여  정상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모아보자.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백인호 / ROTC 1기 예비역 소위발언대 환상 망상 북핵 문제 남북 군사합의 합의 이행

2023-10-02

[발언대] 영감님들의 말싸움

‘영감님’은 남성 시니어에 대한 존칭어다. ‘영감’이란 말은 조선시대에는 종2품과 정3품 사이의 고위직을 칭하는 말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차관급의 고위직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법관, 고위 공무원 등 직위가 높은 사람을 칭하는 말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국회의원들도 당연히 ‘영감님’ 소리를 들을만 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젊었을 때 경찰들이 젊은 검사를 “영감님, 영감님”하며 불렀던 기억이 난다.   국회의원 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도 있지만 거의 젊은 영감님들이다. 이 영감님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데 언론 매체나 유튜브 등에 소개되는 그들의 활동 모습을 보면  허구한 날 말싸움이다. 질문하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얼굴에 미소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미움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도전적인  말투로 대화가 오고 간다. 저래서 어떻게 정답을 찾을 수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그러다가 때로는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국민을 위한 정답이 아니고 서로 이기려고만 할 뿐 양보하는 모습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급급하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내 의견을 살펴보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을 높여 주는 자세는 커녕 깎아내리려고만 한다. 품격 있는 토론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는 의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모든 정책의 결론은 국민을 위한 관점에서 찾아야 하는데 편견과 선입견, 주관적인 판단으로 예단하며, 감정적인 자기주장이 강하다 보니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열린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 판단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안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논리적 과정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면 영감님들의 말싸움을 누가 탓하겠는가.   1965년 6월 한일협정이 체결됐다. 청구권 자금으로 1970년 포항종합제철이 착공되었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어 5년 후엔 현대의 포니가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지 않았던가.   오늘의 한국은 많은 의견과 반대를 통해 정답을 찾으면서 이뤄졌다. 말싸움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위정자들은 미래를 보고 판단하고 가야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말싸움으로 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실이 아니다. 지도층 영감님들은 웃는 모습으로 질문하고 오가는 대화에서 진실을 찾고 허위와 부정을 가려내야 한다. 편안한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편안한 삶의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발언대 말싸움 영감 지도층 영감님들 영감님 영감님 한국 국회의원들

2023-09-13

[발언대] 오펜하이머의 심적 고통과 핵무장론

‘오펜하이머’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는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핵무기 사용 후 그가 겪는 심적인 고통, 그리고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인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며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3시간 동안 깊이있게 다루었다.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1922년 하버드대에서 학사과정을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재학 중 그 극심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 1926년 그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옮김 후 양자역학을 공부해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미국 정부는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사람이 사망한 것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훗날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수소폭탄 제조는 강력히 반대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를 매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전에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가 미국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그의 첫사랑인 진 태트록도 공산주의에 공감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관계로 그는 여러 해 동안 공산주의 관련 단체들의 모임에 참석하며 기부를 했다.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후 수소폭탄 개발에도 성공하자,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자 및 소련의 스파이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며 한탄했다.     그 당시, 아인슈타인 박사는 인류공존의 문제에 대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 “국가를 무장시킴으로써 안보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현재의 군사기술 상태로 볼 때 비참한 결과를 초래시키는 환상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같은 환상은 미국이 최초로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는 사실 때문에 조장되어온 것이며, 이러한 개발의 무시무시한 특성은 그 개발이 분명히 자제할 수 없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국가들의 평화스러운 공존을 위해 첫 번째, 상호간의 두려움과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대량 파괴 수단을 포기할 것, 두 번째, 초국가적인 사법 및 행정기구를 설립하여 각국 안보에 관한 당면 문제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 세 번째, 모든 형태의 평화적인 협력은 우선 상호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둘 것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한반도에는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인해 여전히 핵무기가 공포스러운 현실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은 보수적 여론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제기하며 핵무장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가 독자적 핵기술을 개발하려면 북한처럼 핵확산방지조약(NPT)부터 탈퇴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과 등질 각오도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도 한국의 핵무장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즉각적인 무역보복에 나설 것이다.     그렇다. 핵무장론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매우 복잡한 국제정치적 사안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펜하이머 박사가 겪었던 크나큰 심적 고통과 아인슈타인 박사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평화스러운 공존을 위한 제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발언대 오펜하이머 핵무장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이때 오펜하이머 심적인 고통

2023-08-27

[발언대] 통한(痛恨)의 휴전, 왜 7·27인가?

전투는 그쳤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은 같은 편에서도 저마다 입장이 달랐다. 북한과 중공, 소련의 입장이 달랐고, UN군 사이에서도 입장이 달랐다. 지면 관계상 긴 이야기는 쓸 수 없지만 결국 휴전은 미국 측의 주장대로 끝이 나고 말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3년하고 한 달 동안 온 국토가 파괴되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된 채 한반도를 양분하는 휴전안은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온 국민이 휴전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북한은 소총과 기관총, 그리고 박격포 등 보병 화기 정도는 자체 생산이 가능할 정도였으나 한국은 총알 하나, 수류탄 하나 만들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자 전쟁 지속을 주장할 수 없었다.     중공의 참전으로 전선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만주 폭격 주장은 당연할 수도 있으나, 미국은 처음부터 3차 대전을 우려해 6·25를 ‘제한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군 장성들과 일선 지휘관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이 아닌, 유럽 전선에서 싸운 지휘관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로 인한 정치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매일 일개 중대 병력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전쟁 혐오 여론을 잠재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한반도 방어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캔자스(Kansas)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판문점 일대의 서부 전선을 고착화했다. 휴전 회담 장소라는 핑계 하에 서부 전선에서의 북진을 포기하고, 중동부와 동부 전선에서도 대대급 이상의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국전의 승리는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욱이 영국 입장에서는 6·25를 소련의 유럽 침공을 위한 양동 작전으로 보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6·25를 끝내고 유럽 방어에 진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UN군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휴전을 바랐으나, 오히려 칼자루를 쥔 공산군은 느긋하게 2년여를 더 버티다가 휴전에 서명했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정각, 효력이 발생하는 휴전 협정문서는 영문, 한글, 중국어 세 가지 문자로 작성됐다. 연합군사령관인 미 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등 3인의 서명이 있고, 그 외에 연합군 수석 대표인 미 육군 중장 윌리엄 K. 해리슨과 북한군 대장 남일, 두 사람이 배석자 자격으로 도합 5명의 서명이 있다. 하지만 한국 측에서는 서명에 참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배석자로도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종전(終戰) 운운할 자격 조차  없는 셈이다.   곡절 많은 이 휴전 회담을 왜 1953년 7월27일에 마치게 되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공산 국가의 보급 능력으로는 더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북한군이나 중공군의 무기가 충분했다면 전쟁은 지속했을 것이다. 당시 공산군의 보급과 운송 능력은 지상 공세를 3일 이상 버텨낼 수가 없어서, 공산군은 일찌감치 한강 이남으로의 진출을 포기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은 UN군 측도 이미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북한은 휴전 후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회만 있으면 도발을 하고 불리하면 민족애를 앞세운 평화공세로 펼치고 있다. 지금의 남북 대치 상황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종전 아닌, 휴전 상태다. 휴전 70년이 지났지만 이산 가족 간에 편지 한장도 오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직도 우리는 한반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영세 / 은퇴 목사·ROTC 1기발언대 휴전 휴전 회담 휴전 반대 유럽 전선

2023-07-26

[발언대] 휴전 70주년…한미동맹 더 굳건해져야

한미 정상은 지난 4월26일 발표한 공동합의문과 워싱턴 선언을 통해 양국은 더욱 강화된 상호방위 관계를 발전시키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연합방위 태세의 유지를 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확장억제가 항구적이며, 북한의 한국에 대한 핵 공격은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을 재확인했다.     올해 7월27일은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8월 구소련은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 평양에 먼저 들어와 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소련 군정은 10월 평양에서 군중대회를 열어 김일성을 북조선 공산당 책임 비서로 임명했다. 이후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그리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쟁으로 확대됐고 상호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6·25 한국전쟁 초기 한국군은 열세를 보였다. 하지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역전됐다. 특히 미 공군은 세계 항공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104만여 회의 출격을 통해 북한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한국 공군도 미군의 전투기 지원으로 1만4000여회 출격하며, 북한 전지역의  기간 시설물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으며 이는 전세 역전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     남북은 막대한 피해를 남긴 채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합의했다. 이후 한국은 미국에 북한의 재침략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동맹을 요구하였고 양국은 마침내 1953년 10월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방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전쟁 억지, 평화와 안정 유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약 3년간 지속한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은 70년 전 끝났지만 지금도 북한의 남침이 우려되는 불안정한 휴전 상태다. 북한은 그동안 1·21사태,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과 KAL기 테러, 천안한 폭침 ,연평도 공격 등 수 많은 도발을 했으며 지금도 사이버 공격, 핵실험 등으로 위협하고 있다.     한미동맹재단 자료에 의하면 1953년 휴전 후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미군은 350만 명이 넘고, 1950년대에는 서부 전선을 한국군이 아닌 미군이 주로 지켰다고 한다. 한국 근무 중 순직한 미군은 92명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순직한 미군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국제관계는 종종 상식과 합리성이 벗어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힘에 의한 평화의 구현이 요구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군사 강국이 되었지만 주한미군과 함께 늘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하는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 휴전 후 70년간 한미안보동맹은 굳건히 유지됐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을 한층 강화해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 안보의 균형 유지, 자유민주 체제와 자유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길 소원한다.     심인태 / 대한민국 공군전우회 LA지회장발언대 한미동맹 휴전 한국전쟁 휴전 한국전쟁 초기 한국 공군도

2023-07-13

[발언대]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죽음이란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인생길 마지막의 필수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막상 닥쳐왔을 때 자신뿐 아니라 가족까지도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치료 자체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현재 받고 있는 치료라는 것이 ‘수명 연장인지, 아니면 오히려 고통 연장인지’ 애매한 경우 치료 중단 여부의 결정에 관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이 닥치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어려움이 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런 상황이 오면 당사자인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또 가족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미리 생각해 두기를 권하기 위함입니다. 우선 이런 경우에 대비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결정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미리 자기 생각을 서류나 구두로 분명히 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환자의 고통을 지켜본 가족들은 환자의 바람대로 고통 없이 빨리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을 수도 있고, 반면 정을 끊기 힘들어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평소 부모를 자주 찾아보지 않았던 자녀들이 수명 연장을 고집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불효의 죄책감을 경감하려는 심리입니다. 반대로 유산에 욕심을 내 치료 중단을 원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요. 남겨진 가족 간 분쟁의 소지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생각을 미리 알도록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이 간병을 하게 되는데 피차 고령인 처지라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간병인을 고용한다고 해도 적당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고 비용 문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호스피스(Hospice)’ 제도가 있어 메디케어나 보험을 통해 집에 머물면서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청을 주저되는 것은 그동안 해 오던 치료, 예를 들어 투석이나 음식 투입 같은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은 본인에게는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결정입니다. 또 가족 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인의 의사를 미리 알려 두는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기독교 문화권의 미국인들 사례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그렇게 하리라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물론 연명 치료는 하지 말라는 의향서는 이미 작성해 두었습니다.   우선 중병 진단을 받을 경우 고통 경감 이외의 복잡한 치료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치료하든 안 하든 수명은 길어야 500일 정도의 차이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례식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화장 후 바다에 뿌린 후 가족과 친지들은 평상복 입고 호텔 같은 곳에 모여 왁자지껄 웃으면서 천국입성 축하 파티를 하며 찬송가나 많이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미 갈 곳이 확실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조하는 것은 ‘hospice=구원 영접 및 확인의 최적기’라는 등식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선교’는 어떤 선교 활동보다도 가장급하고,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출할 수 있는 그 황금 기회를 혼신을 다해 최대한 활용하자는 간절한 권면 드립니다.   김홍식발언대 치료 중단 연명 치료 치료 자체

2023-07-07

[발언대] 한미박물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잊을 만 하면 보도되는 게 한미박물관 설립 관련 기사다. 그런데 한미박물관 설립 얘기는 지난 1991년부터 나온 것이라 이제는 ‘한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하는 의구심부터 생긴다. 아마 한미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나는 한미박물관 이야기가 나오면 과거의 일로 인해 화가 난다. 1.5세인 나는 대학 졸업 후 건축가로 활동하며 항상 정체성에 대해 궁금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박물관 설립 소식은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부 갈등과 알맹이 없는 기획안은 실망감만 줬다. 그래서 당시 테마파크 전문 건축가였던 나는 뜻이 통하는 1.5세와 2세들, 그리고 타민족 및 주류사회 전문가들과 함께 문화원 설립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한인사회 일부 인사들은 칭찬은 커녕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고 이런 세대 간 갈등은 일부 성과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과연 1세대들은 누구를 위한 박물관을 만들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박물관은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 우리의 유산을 교육하고 연구하며, 여러 공연과 전시를 통해 한인은 물론 타민족과도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박물관 설립을 주도하는 측에서는 한인 예술인들과 음악인들을 만난 적이라도 있나? 한미박물관은 누가 주인인가? 무엇을 전시하려고 하는가?  박물관이지만 어둡고 조용한 공간보다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기능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계속 설계도가 변경되는 것을 보면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완공 후 로비에 이름이나 새기려는 그런 마인드로 이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90년대에 미주한인역사박물관 설립한다며 많은 유물을 모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소중한 유물들을 지금 누가 관리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미박물관은 한인사회의 집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한미박물관 설립과 관련된 최신 정보와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미박물관 건립 웹사이트에 소개된 내용도 고작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박물관 건립을 위해 어떤 기획안을 가지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많은 분이 한미박물관 건립 필요성을 공감하고 많은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정 상황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한 한인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조차 없다.     한미박물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크리스터퍼 리 / 다큐멘터리 감독발언대 한미박물관 한미박물관 설립 한미박물관 건립 한미박물관 이야기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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