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로 세상읽기] 중독 권하는 사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마약은 성매매와 더불어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로 인식된다. 자신에게 해가 될 뿐,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마리화나도 규제 대상에서 풀어야 한다는 논지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경제적 논리가 도덕적 규범보다 앞선다. 즉 경제적 논리에 근거한 현실론이다. 마리화나 산업은 새로운 세원(稅源)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 이유에서 마리화나 합법화가 불가피하다는 지론을 편 대표적 인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마약 규제가 수요를 전혀 규제하지 못하고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낭비가 심한 정책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여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 효율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현재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의 경우, 의료용 마리화나는 합법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약 2억 5500만여 명이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 지역에 살고 있다. 미국 내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주가 늘어나면서 마리화나 산업은 2024년에 400억 달러 규모로 급등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에서 청소년 대마 흡연자가 늘었고, 청년층 자살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리화나는 더 센 마약의 입문 역할을 하는 ‘게이트웨이 마약’으로 작용한다. 마리화나는 다른 독성 마약인 펜타닐을 가미한(fentanyl-laced) 마리화나의 불법 유통과 소비를 부추기게 하여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를 소위 ‘좀비 랜드’로 만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8~49세 미국인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중독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 이후 미국의 대도시는 몸도 마음도 무너진 마약 중독자들로 인해 급속히 황폐화하고 있다. 미국 내 마리화나 합법화 이후 중독이 증폭되고 그것을 권하는 사회 병리 현상은 심각히 우려할 일이다. 담배보다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 그래도 낫다는 논리가 공론화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무너진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아프다. 마리화나가 헤로인이나 코카인은 물론이고 담배나 술, 심지어 카페인보다도 의존성과 금단성이 낮다는 미국약물중독연구소의 보고서를 들이밀면서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마리화나가 특별히 청소년의 기억력, 운동 능력, 심리적 요인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보고서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마리화나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의 주요 성분인 THC(향정신성 효과를 내는 성분)가 뇌의 수용체에 결합하여 화학작용을 일으켜 일상 시스템의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마리화나를 둘러싼 논쟁의 본질은 이런 의학적 주장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인간 영성에 있다.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인간의 정신과 영성이 문제다. 중독의 기재는 두려움이다. 현대인을 중독에 빠뜨리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알코올, 니코틴, 마약, 향정신성 약물 등을 비롯한 물질 중독과 도박, 성, 인터넷, 게임, 관계, 음식, 쇼핑, 일 등을 포함한 비물질 중독이 그런 것들이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병약해졌다는 방증이다. 중독은 그것을 유발하는 물질의 문제이기 전에 그것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문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체하지 못하여 여러 물질에 의존한다면 인간다움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위해 중독을 권하고 공공연히 합법화하는 사회는 이미 심각히 비인간화된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중독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인식하는 영성 회복밖에 없다. ‘몸-성전(body-temple)’이라는 의식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다움은 사라지고 중독 권하는 사회가 버젓이 자란다. 영성 회복은 중독 권하는 사회에서 종교가 되짚어 보아야 할 가장 본질적인 사역 가운데 하나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읽기 중독 사회 마리화나 합법화 마리화나도 규제 의료용 마리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