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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관광, 가장 경이로운 3곳 동시 관광 출발

“한인여행사 중 우유니 사막을 가장 잘 아는 동부관광과 함께,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떠날 준비가 되셨죠?”   동부관광(동부투어)이 최고 수준의 여행을 추구하는 고객들을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여행지 세 곳을 동시에 관광하는 프리미엄 여행상품을 선보인다.   동부관광의 ‘리얼 세계여행 시리즈 3탄’으로 진행되는 이번 여행은 2025년 2월 5일 출발해 12박 13일 동안 ▶우유니 사막 ▶파타고니아 ▶이과수 폭포 등 남미의 명소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모집 인원은 25명으로 한정해 단 1회(날씨를 고려한 최적의 시기에 맞춘 일정)만 진행되며, 동부관광 인솔자가 동행한다.   여행객들은 방문 국가로 페루(리마), 볼리비아(우유니 사막·라파즈),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파타고니아), 브라질(이과수 폭포·리우데자네이루)을 돌아보는데, 지난 2023년에 여행을 다녀온 고객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우유니 사막(소금사막) 관광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로 불리는 경이로움 그 자체로,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의 지프 투어와 환상적인 아름다운 은하수가 쏟아지는 우유니 사막의 밤 별빛 투어를 경험할 수 있다.     또 파타고니아는 안데스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은 칠레, 동쪽은 아르헨티나에 걸쳐있는 남극과 가장 가까운 지구의 끝으로, ‘남미의 스위스’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관을 갖고 있다. 특히 파타고니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빙하 중 가장 눈부시고 영롱한 ‘페리토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3개국에 걸쳐 무려 270여 개의 각기 다른 폭포들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 3대 폭포 중의 단연 으뜸으로 그 절대적인 위용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명소다.   한편 동부관광은 이번 여행의 특전 및 특식으로 ▶우유니 사막 선셋 ▶별빛 투어 ▶파타고니아 모레노 빙하 유람선 투어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디너쇼 ▶이과수 폭포 라파인 디너쇼 ▶페루 특식 세비체 ▶우유니 한복판에서 특별 캠핑식 등을 제공한다.   또 이와 함께 여행객들은 ▶파타고니아 양고기 바비큐 ▶세계 유일한 칼라파테 아이스크림 ▶남미 최고의 아르헨티나 레드와인 시음 ▶남미 대표 브라질리언 커피 등 특식을 즐기는 최고의 경험을 가지게 된다.   여행 문의 및 예약: 718-939-1999,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www.dongbutour.com) 참조.  박종원 기자동부관광 동부투어 동부관광 남미 명소 3곳 동시 관광 동부관광 우유니 사막 동부관광 파타고니아 동부관광 이과수폭포 리얼 세계여행 시리즈 3탄 동부관광 남미 여행

2024-11-18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단층집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기에 접어든 시니어들이라면 현재 거주하는 주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자녀 독립 등 복합적인 요인들로 노년기에 접어든 많은 이들이 단층집으로의 이사를 선택한다.   단층집을 추천하는 이유와 장점, 세부적인 리모델링 아이디어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단층집 추천 이유 및  장점   단층집은 시니어들에게 안전성과 접근성을 보장한다. 신체 능력 쇠퇴기에 접어든 시니어들은 주택 내 이동 동선이 분산되지 않을수록 좋다. 단층집은 하나의 층 내 생활환경이 한정돼 있어 이동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체 근력 약화, 시력 저하 등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니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탓에 시니어들은 기존에 거주하던 복층 집에서 단층집으로 이사를 선택한다.     복층 집에 거주하는 시니어의 경우에는 사고 발생을 방지하고자 1층에 침실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외 단층집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마찬가지로 집의 구조가 하나의 층으로 이루어진 탓에 열이 집 전체에 고르게 분산된다는 이점이 있다. 이는 냉·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리모델링 아이디어   연방 센서스국의 조사에 따르면  2050년에 국내  65세 이상 시니어는 전체 인구의 약 25%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대다수의 시니어는 기존에 거주하던 주택에서 머물고 싶어한다는 조사도 있다. 이를 위해선 주택이 시니어들이 생활하기에 안전한 시설과 구조를 갖추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태반인 게 현실이다. 단층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다양한 형태의 리모델링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규모와 디자인에 따라 주택 리모델링에 소요되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먼저 욕실 리모델링 공사가 대표적이다. 노인들의 낙상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욕실 벽에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욕조 턱을 없애 출입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다만 손잡이 설치에만 수백 달러가 들며, 욕실 전체를 리모델링하려면 적게는 수천 달러, 많게는 수만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이외 휠체어 출입 편의성을 위한 입구 확장 공사에 더해, 전기 스위치 높이를 낮추는 공사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격한 신체 움직임이 필요한 욕조보다는 출입이 간편한 샤워시설이 적합하다. 다만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는 손잡이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추천한다.   층간 또는 장소 이동을 수월하게 해주는 리모델링 역시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선 현관을 비롯해 각 방의 출입문의 계단 턱 또는 문지방을 제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외 휠체어 이동을 대비한 복도 너비 확장을 추천하며, 시력 저하를 고려해 실내 밝기를 환하게 유지하는 것을 추천한다.   ▶문의: (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단층집 추천 주택 리모델링 리모델링 아이디어

2024-08-21

[리얼 시니어 스토리] “세계 최고의 시설서 훌륭한 공연 선사해요”

한인 사회보다 홈리스들에게 훨씬 유명한 사람이 울타리 선교회 대표인 나주옥 목사다. 나 목사는 ‘에스더 나’라는 영어 이름보다 홈리스 세계에선 ‘홈리스들의 마마’, ‘도넛 레이디’로 더 알려져 있다. 알게 모르게 LA의 홈리스를 먹여 살리고 있는 나주옥 목사를 만났다. 나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홈리스’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주옥(사진) 목사는 1944년생이고 올해로 팔순이다. 나주옥 목사가 이끌고 있는 울타리선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홈리스 구호사역을 들어보면, 그의 꾸준함과 사고의 전환에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가 미국에 유학온 것이 40세가 훨씬 넘었기에 막상 목사 안수를 받은 나이는 55세나 된다. 한국으로 치면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할 나이라서 그의 표현대로 늦깎이다. 그래서 목사 안수식은 1999년 2월에 열었지만, 그는 교회를 개척하거나 기존 교회에서 들어가 목회를 하지도 않았다.     1999년 7월12일 선교단체로 울타리선교회를 열었다. 다만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선교회가 아니고 불쌍하고 가난한 홈리스를 위해서 시작했다. 울타리 선교회를 시작하고 초점을 두었던 사역은 현실적으로 홈리스를 돕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단체라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배고픈 홈리스의 고통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바로 홈리스들이다. 단어 그대로 홈리스는 집이 없으니 부엌도 없고 냉장고도 없다. 바로 먹을 것만 필요하고 냉장-냉동된 음식 재료는 쓸 데가 없다. 그래서 집이 있는 사람과 달리 그날 먹을 식품을 구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얘기가 있듯이 홈리스는 '하루 얻어 하루 먹는다'. 미국에겐 잉여식품이 많다. 멀쩡한 음식인데도 생산업자가 유통기한에 근접하면 과감하게 폐기한다. 나주옥 목사는 이 점에 착안했다. 잉여 식품을 대신 받아서 배고픈 홈리스들에게 나눠 주고자 했다.     첫 사역은 라면 사역이었다. 나 목사는 농심지사에 찾아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홈리스들에게 사발면(컵라면)을 나눠주고자 부탁했다. 하지만 라면은 워낙 수요가 많은 상품이고 며칠 둔다고 상하는 식품이 아니어서 돈을 주고 샀다. 일부 기부도 해줬지만 농심이 현지 라면 공장의 문을 열 때까지는 현금을 주고 도매가로 구입해서 다운타운 한 구석에서 물을 데워 라면을 나눠줬다. 물론 라면 구입 비용은 후원자들이 도와서 가능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13년간을 하루에 150개씩 사발면을 나눴다.     두번째 사역은 진짜 잉여식품이 필요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넛인 '크리스피 도넛'이 잉여식품이 됐다. 이 도넛은 생산된 날까지만 판매하고 다음날에 모든 도넛을 폐기한다. 그래서 나 목사는 매니저를 설득해서 다음날 새벽에 전날 팔고 남은 도넛을 받아서 홈리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2003년 1월부터 시작된 이 사역은 지금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매일 제공하던 도넛 회사가 다른 구호단체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울타리선교회에게는 주3회로 줄었을 뿐이다. 한번에 150더즌을 받는다.   나 목사는 "처음에는 잉여식품을 받으러 가거나 요청할 때 조금 주눅이 들었다. 돈을 내지 않고 받아 오는 것이 민망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 당당해졌다"고 밝혔다.   "만약에 그들이 주는 많은 도넛을 내가 먹거나 되판다면 주눅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홈리스의 식량 사냥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먹거리인데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먹어봐야 하루에 한 더즌을 먹을 수도 없고 뒀다가 먹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도넛을 받아다가 배달하는 사역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진심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홈리스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해주고 그에게 마더스데이 카드를 전달해 주는 홈리스도 생겨났다. 또한 교회는 개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목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2007년 2월부터 한인타운 애덤스 길의 오래된 교회를 빌려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울타리선교교회'를 시작했다.     나 목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목회는 못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도넛 분배를 계속하면서 홈리스들에게도 그들만의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들이 우리 교회라고 부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예배를 보는 교회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잉여식품을 나눠주기 위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음식을 실어 나르는 와중에도 나 목사는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한 석사 학위를 받은지 20년만인 201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홈리스에 대한 연구'로 박사가 됐다. 이제까지 홈리스를 구호하겠다는 사람이나 단체는 많았지만 그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나주옥 목사는 흔하지 않은 '홈리스' 박사가 된 것이다.   나 주옥 목사가 한인사회에서 유명해진 것은 크리스피 도넛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기금 모금 음악회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울타리선교회가 오는 21일  오후7시 다운타운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제 25회 연례 기금 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 울타리선교회에서 월트디즈니에서 갖는 7번째 음악회로 올해도 지휘자 김용제 씨가 음악 감독을 맡아 한인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사한다.   나주옥 목사는 "홈리스 구호를 위해서 많은 후원과 기부를 받았는데 울타리선교회에서 마땅히 보답할 길이 없었다"면서 "이왕 모금 음악회를 개최한다면 수억 달러를 들여 건축해서 객석 어디에서나 똑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훌륭한 장소에서 공연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이번 음악회 개최에 대한 취지를 설명했다.   나 목사는 "그동안 디즈니홀에서 음악회를 개최할 때마다 한인타운에서 개최하면 대관료가 절약돼서 더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가장 좋은 음악 시설에서 수준 있는 음악을 선사하고 싶었다. 또한 한인타운에서 개최할 때보다 경비가 더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더 많은 기금을 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후원 문의: (213)819-3300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선사 공연 목사 안수식 홈리스 세계 홈리스 구호사역

2024-06-30

[리얼 시니어 스토리] 중소기업 경영합리화 위해 한국 첫 MBA 도입

한인 올드타이머들이 한인타운 건설에 큰 공로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중에 이민와서 이들이 만들어 놓은 타운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터전을 좀 더 서쪽에 했으면 좋았다거나 더 북쪽으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리가 최적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여튼 역사의 한순간에 있었던 한인 올드타이머 중 한 사람인 이재권 미주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장을 만났다.   이재권 회장은 서울대 행정학과 56학번이다. 4.19가 지난 1961년2월에 졸업했다. 운이 좋아서 1년 반 짜리 군대를 다녀왔다. 법관시험도 봤지만 하늘에 뜻에 따라 떨어졌고 이듬해 있었던 공무원 시험에서 공무원이 됐다.   "성적이 좋으면 희망 부서로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상공부를 희망했습니다."   상공부에는 2명이 배정됐고 청년 이재권은 중소기업과로 발령이 났다. 당시 중소기업 육성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품은 중소기업과는 협동조합법을 제정했다. 그 다음 중소기업 경영합리화 작업이 필요했다.   "그 옛날에는 전부 주먹구구로 했잖아요. 첫 데이터도 없고 주먹구구로 했는데 경영 합리화 시켜야 되겠다는 것이 상공부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미국식 MBA(경영학석사)과정에 착안했다. 당시에는 상학과는 있었지만 경영학과, 경영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다. 학부보다는 대학원에서 운영해야 하는데 이 회장이 졸업한 서울대 보다는 당시에 기업경영연구소를 운영하던 고려대가 알맞은 것같았다. 고려대 측은 처음에는 상공부의 권유에도 고사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정부 지원금을 줄이겠다고 으름짱을 놨다. 지원금을 몰아주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설득은 통했고 연구 과정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첫 MBA과정의 시작이다.     "대학 측은 등록학생이 아무도 없어서 망할까봐 두려워했던 겁니다."   이재권은 첫 학생으로 자원했다. 이 회장이 고려대 교우인 이유다. 당시 MBA가 무엇인지 잘 모를 때니 학생 모집이 쉬울 리가 없다고 예상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학교 측에 20명을 보장하고 시작했다. 막상 프로그램을 알리니 학생이 160명이 등록했다. 비록 연구 과정이었지만 5.16이후라서 군대에서 정부로 넘어온 군출신들이 대거 등록했다. 이듬해부터는 서울대, 연세대도 과정이 개설됐다. 어차피 때가 되면 MBA과정이 개설되겠지만 청년 공무원 이재권이 1호 학생이 되면서까지 강권했던 덕분에 그 시기가 당겨졌고 이후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에서 3곳의 '인기 있는 과'가 있었다고 한다. 재무부에서 은행을 관리하던 과, 내무부에서 행정을 관리하던 과, 나머지 하나는 상공부에서 수입을 관장하는 수입과다. 이 회장은 법무관실을 거쳐 수입과에 들어가 과장까지 했다. 외화가 부족하던 시절이니 모든 수입은 상공부 수입과의 승인을 거쳐야 가능했다. 외국산 제품을 수입만 제대로 해도 사업이 되던 시절이므로 수입 승인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었다. 당연히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언제나 공무원들은 부패의 꼬리를 달고 사는데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은 그 것이 또 어려움이다.   한번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중장비 수입과 관련해 몇 달이 걸리는 승인을 하루만에 해결했다. 국가적인 사업이므로 담당자인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앞장서서 처리했던 것, 그런데 수 개월 후 중앙정보부 남산으로 불려갔다. 새벽부터 오후 8시까지 긴 조사 끝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당시 차관, 장관했던 박충훈씨는 이런 청년 공무원 이재권을 눈여겨 봤음은 나중에 알게 됐다.   결국 이민 온 처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많은 사람이 계속 다녔으면 최소한 국장이나 차관보 이상을 했을 터인데 왜 그만뒀냐는 질문을 많이 해온다고 한다.   1970년 수출진흥과에서 오사카 엑스포를 참가해 수출 진흥을 위해서 총력전을 펼 때였다. 여러 유관부처를 팀장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실무 책임자인 청년 공무원 이재권은 행사를 마칠 때까지 묶어두고 엑스포가 끝나서야 한달짜리 휴가를 내줬다. 이민에 앞서 큰 계기는 3개월 짜리 호주 연수 덕이었다. 세상을 크게 보는 큰 시야를 갖게 됐다. 특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아웅다웅 할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의무 근무 연한인 3년을 끝으로 바로 사표를 냈다.   1973년에 미국으로 왔다. 사표 수리가 안됐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다. 마침 무역회사 주재원이 돼 해외 수출을 위해서 일했다. 무역회사가 문을 닫고 부동산 브로커로 변신했다. 거의 50년이 됐기에 같은 시절 부동산 브로커를 했던 사람들이 모두 타계하여 현재 액티브한 한인 최고령 부동산 라이선스 소지자가 됐다.   LA한인사회가 LA한인회관을 구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때 마침 무역협회장이 예전에 상공부 장관으로 모셨던 박충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LA를 방문했다. LA에서 만난 예전의 상사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한인회관 역할론과 중요성에 대해서 듣고 박 대통령의 결심에 힘을 보탰다. 결국 박 대통령이 5만달러, 무역협회가 10만달러를 냈고 그때까지 모았던 일부 자금과 융자로 30만 달러짜리 한인회관을 세울 수 있었다. 청년 공무원 이재권의 청렴결백과 신뢰가 LA한인 회관을 세우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2004년 드디어 은퇴를 했다. 자녀가 어렸을 때 캠핑을 좋아했는데 이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마침 매물로 나온 여행용 RV가 캠핑할 수 있는 RV파크를 샀다.  LA한인타운에서 북쪽으로 1시간 40분거리에 있는 피라미드 레이크 인근이다. 175에이커나 되는 곳에 121곳의 사이트를 갖고 있다. 클럽하우스와 수영장, 배구장, 농구장, 세탁 시설 등이 완비돼 있다. 일종의 리조트 성격으로 캐빈도 있다. 팬데믹 전에는 윤동주 문학의 밤 행사를 17년간 개최했다.   이 회장은 또한 한국과 협력해 미국에서 탈북자 난민신청법 캠페인을 펼쳐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북한 탈북자를 말만이 아닌 실제로 도운 인물이다.   2017년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을 맞아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 사업회를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5천년의 가난을 벗게 해준 대통령입니다. 기념 우표를 비롯해 기념 사업이 많았는데 마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취소했죠. 그래서 민간 차원에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뜻이 맞는 몇 사람과 시작했지만 해마다 5.16과 11.14(박대통령 생일)를 기본으로 2번의 행사를 개최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 전역의 한인 인사들이 참가해 '박정희 역사 탐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박 대통령과 관련된 생가, 묘지, 기념관 등 18곳을 방문하는 행사를 6일에 걸쳐서 갖기도 했다. 그는 온갖 이권을 놓고 다툼했던 정치권을 바로 앞에서 봤기 때문에 더욱 청렴하고 사심이  없었던 박 대통령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북한 경영합리화 청년 공무원 청년 이재권 이재권 회장

2024-06-02

[리얼 시니어 스토리] ‘은퇴는 남얘기’ 무주에 연수원 짓고 희망 나눠

시니어라는 나이대는 대부분 은퇴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스티브 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 시니어가 돼서야 훌륭한 업적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비즈니스를 일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젊은 시절 성공한 사람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스티브 김 이사장은 젊은 시절 사업도 성공하고 시니어가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성공이 결코 행운이나 누군가의 큰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그의 실력과 능력이 원동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인사회에서 유명한 골프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데 이어 가족을 위한 패밀리 리조트, 이번에는 한국에서 주목을 끌만한 일을 벌였다. 혹시라도 지루하게 살고 있을 지 모를 시니어 동료 시민들의 영감을 일깨우고 있다.   '아시아의 빌 게이츠'로 불렸던 벤처기업가 스티브 김(74·사진)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이 골프장 사업에 이어 호텔사업에 뛰어든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한국 무주에서 또다른 프로젝트로 주목을 끌고 있다.     1990년대 벤처기업 자일랜사를 프랑스 기업에 매각하고 2007년 한국으로 돌아갔던 김 이사장이 샌타클라리타 지역의 36홀 골프장을 인수한 것은 2017년이다. 공동 투자자들이 사업성이 없다고 물러나면서 홀로 경영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물부족으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우물을 파고 36홀에서 9개홀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며 경영에 나섰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폐쇄한 9홀 자리에 호텔을 짓는 아이디어를 실행한 것. 이는 벤처기업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스티브 김 이사장의 저변에 깔려 있던 혁신의 혼이 일깨워진 결과였다.     김 이사장은 호텔 건축을 벤처기업처럼 시작했다. 우선 건축설계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윌셔에 '원스톱디자인'이라는 또 다른 벤처기업을 세웠다. 컴퓨터 디자인에 능한 고수를 영입해 '명소 만들기' 작업에 나섰다. 그가 한국과 미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기에 남들과는 다른 설계가 가능했다. 그가 의사결정에 직접 나서 복도의 높이, 문짝의 길이와 모양, 온갖 가구들을 정했고 이는 3D그림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호텔은 380개의 객실과 이중 50~60개는 빌라를 갖춘 곳이다. 호텔방이지만 카지노를 위한 라스베이거스식의 한 칸짜리 방이 아니고 가족 휴식이 가능한, 리조트에 맞는 450스퀘어피트 정도 되는 규모다. 하지만 알려졌다시피 샌타클라리타 시정부가 그의 계획안을 거부했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는데도 막았다. 자기 땅에 정식 허가를 내서 제대로 짓겠다는데 시정부가 막아선 것이다. 당시 시정부를 상대로 2억5000만 달러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큰 장애물을 만났지만 베테랑 벤처기업가인 스티브 김 이사장은 달랐다. 그가 벤처기업가로 많은 칭송을 받았던 점은 첫번째 벤처와 두번째 벤처를 경영하면서 총 15년 60분기 동안 항상 이익을 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다른 대안을 찾았다. 건축 팀원들과 미팅에서 나온 아이디어, 즉, 기존 설계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 짓는 것을 고려했다. 마침 와이너리로 유명한 테미큘라 지역에 좋은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역 정부와 접촉해 그들이 원하는 사양을 기존 계획에 맞췄다. 샌타클라리타 1호점은 소송까지 가고 있지만 테미큘라 2호점은 2024년 5월 청문회를 거쳐 곧 삽을 뜰 계획이다.     2호점 착공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사이 김 이사장은 의료 검진을 받으러 한국에 갔다가 자신이 세운 꿈희망드림재단을 위한 연수원을 짓기로 결정했다. 팬데믹으로 한국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왔던 것이 아쉬웠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을 바로 쓸 수 있게 됐다. 자신이 세운 건축설계 사무소의 3번째 작품으로 연수원을 짓게 된 것.     "서울에 마땅한 땅이 없어서 전국의 폐교를 조사했더니 37곳이 나왔습니다. 무주에 3천평짜리 폐교터가 있어서 허가를 받아 지난 1월부터 짓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폐교의 현황을 파악하던 중 마침 전북 무주군에 10년 전에 폐교됐고 현재는 무주군에서 소유하고 있던 부지를 발견했다. 2023년 6월, 군수와의 면담을 통해 계획을 전달하자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구체적인 설계와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무주군에 제출했다. 무주는 처음 가본 곳이지만 재단이 찾은 부지는 고속도로에서 내리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무주 구천동으로 유명한 무주는 산과 강이 어울어진 곳으로 해마다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임도 새롭게 알았다.     덕유산에 이미 조성된 무주스키장은 오래 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매년 9월에 열리는 반딧불 축제에는 4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전국에서 몰려온다. 가을 단풍을 보기위한 등산객들을 포함해서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테미큘라 리조트와 같은 160개의 객실과 큰 부페 레스토랑, 10개의 교실, 큰 행사장을 갖춘 지상 4층 규모의 연면적 4000평에 달하는 연수원이 들어선다.     청소년들이 리더십 교육을 받고 호텔 수준의 시설에서 머물며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사, 공무원, 중소기업 등의 직원들이 워크샵을 위해 머물며 휴식과 재생산을 통한 좋은 추억을 남길 것을 기대한다. 대규모 행사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초대한 음악회, 공연 및 강연 등을 수시로 개최할 수 있다. 1호점이나 2호점은 건축이 끝나는 대로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겨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3호점인 무주 연수원은 재단이 직접 나서서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하고 구체적인 부분에 참여함으로써 훨씬 의미있고 좋은 사업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주 드림센터는 수익창출이 우선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비용대비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다시 찾고 싶은 명소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전에는 재단의 교육프로그램을 위해서 강사들이 전국 이곳 저곳을 다녀야 했지만 연수원이 완성되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2박3일간 숙식을 같이 하면서 꿈과 희망, 미래를 함께 그리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1000만달러가 훨씬 넘게 들어간다. 이전에 재단에 출연해 놓은 자산의 투자 이익이 건설비용을 상당수 충당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서 매년 200만달러씩을 사용했는데 연수원에서 손익분기점만 맞추면 현상유지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재단이나 갖고 있는 자산을 죽기전에 좋은 곳에 쓰게 됐다"면서 "많은 사람이 싸고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수원 건축은 10월말에 완공될 것으로 보이지만 테미큘라 2호점, 샌타클라리다 1호점도 포기하지 않았다. 원래 벤처기업들이 기존의 법제와 관습, 관행을 뚫고 극복해서 이뤄내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뼈속까지 벤처기업가인 스티브 김 이사장은 꼭 이뤄낼 것을 자신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남얘기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베테랑 벤처기업가인 벤처기업가로 명성

2024-05-05

[부동산 이야기] 부동산 리얼 워치

얼마 전 고객과 나눈 이야기다. 고객은 월급쟁이의 삶을 지속하면 경제적 자유는 먼 반복된 페이첵 투 페이첵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경제적 자유를 가지고 싶어졌다고 한다. 패시브 인컴을 하나라도 만들어야 아이 대학도 보내고, 은퇴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즈음에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FIRE)라는 말들이 생각났고, 나도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여행도 많이 가고, 마트와 식당에서 계산기 꺼내 들지 않고 사 먹고 싶은 것들을 사 먹으며, 아이 학비를 매년 빚내지 않고 내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분이 부동산이 답이라는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분은 과연, 이방인인 내가 미국에서 부동산을 한다는 것, 그것도 투자 부동산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반문했고, 부동산은 안정된 투자라 테넌트 상대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그런대로 패시브 인컴을 이룰 수도 있을거라 스스로 결정했다.     이제 투자 집을 사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싱글홈을 살지, 멀티홈을 살지, 어디에 살지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했다. 15년 전 돈이 별로 없던 시절 FHA론으로 3.5% 다운해서 다운페이에 에스크로 비용 등 총 2만 달러로 거주하기 위한 조그만 첫 집을 장만했다. 그때 2만 달러는 한국에서 국민연금을 해약해 마련한 돈이었다.     그러다가 9년 전쯤 회사 스톡옵션으로 약간의 캐시가 생겼을 때, 그걸로 다운페이해서 조그만 집 하나를 더 사서 렌트를 줬다.     그리고 그동안 오랜 세월 꾸준히 저축해서 모은 세이빙을 털어서, 401K 계좌에서 론을 맥스로 받아 얼마 전 20% 다운하고 새로 집을 사서 이사했다. 처음에 구입해 살던 집은 렌트를 줬다. 이제 사는 집 외에 렌탈 프라퍼티가 3개가 된 것이다.     부동산은 나중에 값 올라서 파는 것도 돈이 되지만, 가진 동안에도 계속해서 상당한 렌트 수입이 들어온다.   부동산을 사서 팔지 않고 계속 렌트 수입을 내겠다고 생각하면, 부동산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현재 시장이 어떻든 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초기 투자비(다운페이+에스크로 비용) 대비 렌트 수익만 따지면 된다. 집값이 아무리 내려가도 렌트만 잘 들어오면 되고, 그 렌트비가 비용을 다 빼고도 남으면, 아무리 지금 집값이 고공행진 혹은 폭락하네 해도 여전히 집을 살 만하다.     그렇다. 미국 부자들은 끊임없이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똑같은 투자를 하더라도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합법적으로 부를 늘려온 그들의 비밀은 미국 부동산이 답이다. 현재 6% 후반도 높은 금리인데, 주택 매수세는 멀티플 오퍼들이 들어오고 OC 지역은 10만 달러 이상 올려 써야 하는 거래가 수두룩하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멀티 오퍼가 들어오려면 그러니까 부동산 구입은 좋은 동네에서 해야 한다.     ▶문의: (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이야기 부동산 리얼 부동산 리얼 투자 부동산 부동산 구입

2024-04-17

[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란 환상 깨야

지난 1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4에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이 참가해 화제가 됐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열기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중요한 자원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많지 않은 한국이지만 인적 자원이 풍부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타트업 세상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주에 거주하는 한국계 인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 전역 곳곳에서 스타트업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 이들을 돕는 유명한 멘토가 한기용(UpZen 대표ㆍ55)씨다. 그가 최근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스타트업을 2개나 성공시킨 그의 스토리는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막 시니어가 돼 은퇴는 이르지만 2모작에 나선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며 주류 사회에서 스타트업 멘토로 활약하고 있는 커리어 코칭 기업인 업젠의 한기용 대표가 지난 2월 '실패는 나침반이다'(부제 50대 개발자의 실리콘밸리 회고록)라는 책을 한국에서 출간했다. 지난 30년 간 스타트업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했다. 멘토가 많지 않은 한국 스타트업 분야에서 많이 읽히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까지 겸비한 잘 알려진 멘토다. 그에게 멘토링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굳이 IT업계가 아니어도 매우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SNS인 링크드인(linkedin.com/in/keeyonghan/)에서 '멘토링 이야기'라는 100회짜리 연재 글을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 멘토로 멘티그룹을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전공을 살려 데이터 엔지니어링 라이브 강의도 했다.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90년대 초반 한국의 IT업계는 물론 이후 미국의 IT업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해가 된다. 또한 그의 데이타베이스 하둡에 관한 책은 대학 전공 교과서가 될 정도였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한기용 대표가 서울대에 입학한 해는 1989년이다. 당시에는 의예과, 물리학과, 컴퓨터공학과 등 세 학과가 이과계열에서 톱을 다투던 시절이다. 의대에 가라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며 재수 끝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관심도 없는 의대를 가지 않은 것이 개인적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사실 학교보다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다른 분야도 모두 그렇습니다."   오히려 2학년에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실에 드나들면서 업계에서 실무 경험을 갖고 학위를 위해서 돌아온 선배들과 컴퓨터 바이오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 선배들의 박사 논문 주제인 인공신경망을 익혔고 영문 윈도에서 구동되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에도 참여했다. 결국 이것이 인연이 돼 서울대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거기서 윈도 프로그래밍을 개발하다가 삼성전자까지 취직해 5년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병역도 특례로 마쳤다.   지금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대기업을 다닌다면 1등 신랑감이라서 주위의 부러움을 살만한 데도 그는 꼭 좋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간다면 7년을 낭비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면서 "미국에 빨리 왔거나 중소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멘티들과 나누는 조언은 이런 경험에서 나온다.     '대기업이 네 커리어를 완성시켜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그의 조언은 계속된다. '네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묻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안전한 선택을 강요 받는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필요하지도 않은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차세대에게 시키는데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공부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든다는 것이다. 무언가 막히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멘토링을 하면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을 공부하면 미래가 준비가 되냐고 물어옵니다. 그런데 세상이 항상 공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수능이나 학력고사처럼 주제와 과정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험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죠. 또한 성공한다고 해서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시험 공부하듯이 몇 년간 취업 준비해서 네이버나 삼성전자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커리어가 완성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기성세대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한 단계 더 나가면 결국 의사가 되면 된다고 결론 짓기 쉽다"며 "간혹 40대 중반인 똑똑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 멘토링 신청을 받는다. 자신들이 해보니까 재미가 없고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어서 크게 방황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현장 교육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한 대표도 31세에 미국에 왔는데 처음에는 이런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다양성이 있고 질문을 장려한다는 것은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 작은 회사 중심으로 '남의 행복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일했고 2곳의 스타트업 성공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곳은 폴리보어(Polyvore)로 야후에 M&A로 팔렸고 다른 한 곳은 온라인 강의 사이트인 유데미(udemy)로 나스닥에 상장됐다. 물론 그 전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3곳은 망했는데 그래서 안목도 생기고 결국은 확률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5곳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계속해서 도전하는 게 중요하고,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과 문화가 좋은 회사를 골라야 됩니다." 덕분에 40대 후반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가진 경험을 후배들하고 공유해야겠다고 싶었고 특히 한인계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지역 한인 과학기술창업자 모임인 베이에어리어K그룹에 참여해 이사장까지 맡았다.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그는 이제 다른 의미의 2모작을 통해 또 다른 모멘텀을 보며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기업인 업젠을 창업했고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 고민 중이다. 그의 커리어가 첫 10년은 윈도 프로그래밍, 다음 10년은 검색, 최근 10년은 데이터 일에 몰두했기에 이제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해 볼 생각이다.  "사실 저는 꿈이 없던 사람입니다. 50세가 넘어서 생긴 꿈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일단은 누가 됐건 만난다. 그가 얻을 게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대학생이 와서 만나자고 해도 응한다. 사람이 괜찮고 이야기했을 때 무엇인가 배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계속 만난다.     한 대표는 이미 IT분야에서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컴퓨터공학과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이미  비트교육센터에서 강의했는데 소프트웨어 지식을 쉽게 설명해 풀어가는 스킬이 이때부터 시작돼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비주얼 C++'과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집필했다. 당시 방대한 윈도 프로그래밍 방법을 쉽고 간단하게 풀어쓴 덕분에 많은 컴퓨터 공학 관련 학부의 대표적인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외 저서로 '한번 더 생각한 비주얼 C++와 MFC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한번 더 생각한 윈도우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클릭하세요 닷넷 API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프로그래머 그들만의 이야기 집필 (영진)', 'Do it! 직접 해보는 하둡 프로그래밍(이지스퍼블리싱)' 등이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 환상 한국 스타트업 스타트업 멘토 윈도 프로그래밍

2024-03-03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지난 수년 동안 미국 부동산 시장은 ‘예측불허’ 그 자체였다. 몇 년 전에는 낮은 모기지 금리로 인해 시장이 매우 뜨거웠지만 2021년 8월부터 2023년 8월 사이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가 지속해서 상승해 현재 20년래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도 절대적인 매물 부족으로 주택가격의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향후 5년간 주택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망해 본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서 지난해 12월 12일에 2024년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이한 점은 내년 재택근무자들이 줄어들어 도시 지역 주택들의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주요 전망은 ▶올해 주택 매매 건수 회복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 6.3% ▶모기지 금리 0.2%씩 하락할 때마다 약 95만 가구 주택시장 재진입 ▶예상 이자율 도달 약 450만 예비 주택구매자 증가 ▶이로 인해 부동산 가치 지난해 4.8% 혹은 그 이상 상승 등이다.     올해는 몇 년간의 불확실성 이후 주택시장이 더욱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모기지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함에 따라 주택가격은 올해 대부분 보합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시장 진입을 위해 잠시 방관하고 기다려온 구매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향후 1년 동안 집값이 10% 정도 오르거나 내릴 수도 있다고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캘리포니아는 모기지 금리에 따라 주택가격이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5년 동안 캘리포니아주 주택가격은 15~25%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비록 고정 모기지 금리가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주택가격은 거의 꿈쩍도 않고 있다.     올해 일부 예비 주택구입자는 주택 구매에 더 좋은 해가 될 수 있다.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시장에서는 상승할 가능성도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억눌린 수요와 낮은 재고는 일반적으로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   그러면 이제 주택 구입 준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이다. 지난해 퓨 리서치센터가 직장을 바꾼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0%는 직장을 옮긴 후 봉급이 인상됐다고 밝혔다. 셀러와 바이어 모두 완벽한 타이밍을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문의:(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가구 주택시장 부동산 시장 모기지 금리

2024-01-17

[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성공 교훈 친지·후배에 알리려 자서전

"무엇을 해서 성공했다고? 이런 질문에 10분 이상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자서전을 하나 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남가주에서 고속필름처리 기계 제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명선 '휴스터 피어리스76' 이사장이 지난 10월 자신의 자서전 '성실: 아메리칸 드림의 여정(Sincerity)'을 출간하게 된 이유다. 현재 이 자서전은 한국의 유명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서전 출간은 그의 성공에 대한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다.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지인들과 후배들에게 남기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동문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성공 비결로 독자들에게 '성실'과 '진실'을 전달한다. 그는 "미국에선 특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며 "적당히 하려 하기보단, 진실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은퇴 후 서울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고교 동기나 지인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등 떠밀려 시작한 일이지만 무사히 마무리돼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모교 행사인 '서울고 졸업 65주년' 모임에 배포하기 위해서 4월 말부터 시작해 서너달이 걸렸다. 지난 10월 150여명의 동기들에게 나눠줬다. 평소에 틈틈이 정리했던 것을 소개하니 고교 동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심지어 밤을 새워서 읽었다는 친구도 나왔다.     이런 호응은 사실 예상됐는지도 모른다. 당초 '자비 출판'으로 출간을 맡은 출판사에서 대표가 직접 전화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원래 친구들과 친지, 후배들에게 전달할 요량으로 시작한 출간에 뜻밖에도 출판사가 일반 출판을 하자는 것이다. 책 편집을 맡은 편집자가 작업을 하다가 감동했고 이런 훌륭한 내용은 일반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책이 생각보다 두꺼워요. 진실과 진심을 담다가 보니 길어져서 출판사에서 나중에 80페이지를 줄였을 정도"라며 "어린 시절 연애 얘기도 들어 있는 등 세세하게 진짜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던 것이 이런 반응을 얻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유학 초기 가난을 버텼던 시절부터 34년간 회사를 경영하던 시기에 걸쳐  기록된 에피소드들도 수록됐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을 회사에 고용해 그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챙겨준 일화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물론 책을 쓰는 것이 전문이 아니므로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협업한 것이 주효했다. 작가는 그의 정리 안된 글을 줄기부터 정리해 줬고 문법, 맞춤법까지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39년생인 이 이사장은 이미 은퇴한 상태다. 회사에는 한달에 한 두번 방문하고 있다. 골프는 진심이어서 매주 3~4번 라운딩하며 피트니스에서 땀도 흘려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의 버켓리스트는 구체적이다. 골프 성지로 발상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코스에서 라운딩했고 남극, 크루즈로 104일간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 3대 폭포인 이과수(남미), 나이애가라(미국), 빅토리아(아프리카)를 모두 방문했다. 애리조나 세도나에서 1만피트까지 올라가는 풍선 여행도 했다. 그는 "젊어서 10대 버켓리스트를 설정했는데 모두 완수했다"고 말했다. 부인 헬렌(1941년생)과 2남(제임스, 에드워드) 1녀(모니카)를 뒀다. 자녀들에게 그는 "공부도 잘했고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며 "비즈니스의 성공도 좋지만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 년전 그가 80세가 넘어서 매각 오퍼를 많이 받은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당시 젊은 CEO를 영입할지, 매각할지 고민했었는데 큰 아들 제임스가 승계하기로 스스로 결심해 기뻤다고 말했다.     한편 이제까지 3명의 보스를 만났고 매 순간 그들의 장점만을 배워 발전했다. 그 3명의 보스가 항상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3번째 보스는 나중에 회사가 성장했을 때 은퇴한 그를 초빙해 프레지던트로 3년간 모셨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중2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는데 그것들 모두를 실현시켰다"며 "앞만 보고 뛰었지만 크게 후회하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는 "큰 세계관을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상대 상학과 58학번으로 1966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USC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MBA 취득 후 공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석사를 받은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특수 마이크로 필름과 고속현상기계 제조에 특화돼 있는 기계 제작 회사 '휴스턴 피어리스'를 인수해 '휴스턴 피어리스 76'를 설립했다. 원래 이 회사는 1930년대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설립했으나 1970년대 부실화돼 매물로 나온 것을 이 이사장이 근무하다가 소액 투자로 인수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편 그의 자서전 '성실'은 한인타운 반디서점(213-739-8107)에서 구입할 수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미국 자서전 자서전 성실 친지 후배들 성공 비결

2023-12-24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주택 거래 감소세가 지속하면서 기존 주택 거래 지수가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올해 초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던 미국기업연구소는 올해 6% 상승한 데 이어 2024년에는 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여전히 투자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자산을 취득하고 싶어한다. 언론 보도가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매자들은 해당 주식에 매수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내년에 자산 가치가 하락해 투자 수익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바로 이 시점이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기대치를 재조정하는 휴식 시간이 될 수 있다. 이유는 판매자는 아직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해 기대치 조정을 못하고 있고 반면에 구매자는 가격이 어디에서 안정될지 확신을 더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자본 시장은 약세지만 조심스럽게 낙관론도 기대되는 이유는 부동산 시장이 상당한 시장 혼란과 경제 불확실성에도 놀라울 정도로  탄력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동산 소유주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핵심적인 문제는 자본이다. 자본 집약적 성격을 갖는 상업용 부동산은 자금줄인 수도꼭지가 잠기면 곧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가주부동산협회(CAR) 예측은 2024년에 모기지 금리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주 주택 시장의 셀러와 바이어 모두에게 더 나은 해가 되리라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낮아져서 페이먼트 부담이 줄어 판매 주택이 증가하는 시장이 될 것이다. 여전히 ‘좋은 물건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매수자들의 심리가 더욱 강하게 시장과 거래에 반영되고 있다. 금리인하는 양면성이 있다. 금리가 인하되면 주택가격은 지금보다는 더 오를 것이고, 첫 주택구입자들은 더 오른 가격에 주택을 구입해야 한다.   또한 요즘 들어 한국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을 구입하는 조건과 만약 구입한다면 외국환은행 관련해서 신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다. 외국인에게 부동산 구입을 돕는 외국인 담보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자녀가 유학 중인 경우에는 비싼 렌트비를 내기보다는 미국에 집을 구입해서 렌트비로 나갈 돈을 절약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집값 상승에  따른 수익도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주새 나타난 주택담보대출 금리 내림세는 주택 수요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면서도 제한된 주택 재고 수준이 구매 수요 충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해결책은 결국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연준이 금리를 22년 만에 최고치로 인상했음에도 미국 경제는 건재하다. 인플레이션법을 활용해 전 세계에서 신산업 우량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어 소비, 고용, 경제성장률 등 주요 지표가 양호하다.이제부터는 중립 금리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중립 금리는 지금 같은 고금리도 아니고 몇 년 전의 저금리도 아니다.   또한 부동산 시장도 내년 상반기 말부터 금리 인하를 기대하면서 장기적으로 중립 금리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금리 상승이 멈추거나 잠재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신호는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고 재융자를 촉진하며, 잠재적으로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문의:(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부동산 시장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동산 자본

2023-12-06

100% 리얼 탄소실로 만든 4세대 탄소사 매트!

온열 매트의 역사는 1세대 전기 매트, 2세대 온수 매트, 3세대 탄소 매트로 정의된다. 그런데 3세대 탄소 매트를 진정한 탄소 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1세대 전기매트에 들어가는 구리열선에 탄소 피봇을 입힌 열선을 업계에서 탄소 매트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진정으로 '탄소 매트'라 부를 만한 제품이 나타났다. 의료기기 전문 업체 '닥터스 서플라이'가 선보이는 '탄소사 매트'가 그 주인공이다.     탄소사 매트는 열선 없이 100% 리얼 탄소섬유를 사용한다. 매트에 총 15줄의 탄소섬유가 들어가 있는데 1줄당 약 3000가닥, 즉 총 4만 5000가닥의 탄소섬유가 포함돼 있다. 매트에 열선이 없기 때문에 자면서 몸에 배기는 현상도 없다.   또 매트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안 좋다는 것은 온열 매트를 사용해 본 사용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제품은 특허받은 더블 커버링으로 1mm 두께의 초경량 및 초슬림 디자인을 자랑한다. 이를 통해 매트리스의 고유한 쿠션감을 전혀 해치지 않는 상태에서 탄소사의 온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원적외선 방출량 또한 국내 최고 기록인 90.3%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른 온열 매트에서 느낄 수 없는 개운함을 선사하지만 전기 요금 폭탄에서는 자유롭다. 매일 8시간씩 사용했을 때 월 전기 요금은 한국전력공사 전기 요금 계산기 기준 1130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의 닥터스 서플라이 탄소사 매트는 미국 헬스케어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전망이다.     구매는 미주 한인 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중앙일보 핫딜에서 가능하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 hotdeal.koreadaily.com핫딜 탄소실 탄소사 탄소사 매트 리얼 탄소실

2023-11-12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지난 주말에 오픈 하우스를 열었다. 의자에 앉아있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바이어가 왔고 젊은층 바이어들이 유난히 많았다.     해마다 렌트비가 계속 오르면서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바이어들이 많다. 최근에는 젊은 층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집을 사려고 한다.     현재 이자율이 높지만 집을 산 후 기회가 되면 재융자를 할 것이고, 혹시 이자율이 낮아지면 기다리던 바이어들이 활발하게 움직여서 집값이 올라갈 거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현명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룸메이트와 함께 거주한 밀레니얼 세대들 사이 주택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주택담보 대출 이자율이 7%가 넘는데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금리 속에서도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층의 강한 수요를 지목했다. 특히 20대 초반에서 30대 밀레니얼 세대가 주택을 사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30세 미만 주택구매자의 38%는 다운페이먼트를 지급하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현금선물을 받거나 상속재산을 사용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주택구매를 미루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등락은 있지만, 주택가격은 장기적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공급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도 매물 공급이 심각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주택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수요 감소 못지않은 심각한 매물 부족으로 주택 건설업체들은 최근 들어 주택 공급을 늘릴 움직임을 보인다.     2024년 부동산 이자율이 낮아져서 동결될 경우 거주용 부동산은 호황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은 월급만 가지고는 노후의 삶이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월급을 수십 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지만, 이자 부담이 가능한 수준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시세 차익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층이 실수요와 투자 수단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고, 대출이 가능할 때 조금 가격이 올랐더라도 추가 상승 여력이 있는 매물 위주로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부동산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어느 나라이든 하방 및 상방 압력이 있는 시장이다. 만약에 저렴한 주택을 구입하면 처음에는 몇천 달러씩 수리비로 지출될 수도 있지만, 수리가 마무리되고  세입자들로 인해 렌트비가 인컴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노후의 삶에 대해 더는 불안해할 염려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금리 상승에 따른 알맞은 투자 전략을 구사한다면, 안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모기지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위치, 가격, 미래 가치를 고려한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꼭 부동산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투자 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   ▶문의:(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기준금리 인상 부동산 이자율 거주용 부동산

2023-11-08

[리얼 시니어 스토리] "제 삶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은퇴한 내과 전문의이며 가톨릭 종신 부제인 김재동씨에게 올해는 특별하다. 지난 1943년 2월 16일 전북 순창, 지리산 입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만으로 80세가 됐고 1972년 뜻하지 않게 미국으로 와서 정착한 지도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의 세 자녀가 마련한 '팔순 잔치'는 8명의 손주를 포함해 전 가족 16명이 함께 고국을 방문해  지난 4월 9일 54주년 결혼기념일에 서울 강남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그는 이제 80세인 시니어로, 은퇴한 의사, 또한 수필가, 가톨릭 교회 종신 부제(성직자)다.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1학년인 7살때 일어난 한국 동란으로 재산을 모두 잃고 인근 광주로 피난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5.16 장학생으로 학비 걱정 없이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됐으며 미국까지 와서 40년간 위장 내과 개업의로 아픈 환자를 돌본 후 75세에 명예롭게 은퇴한 삶은 순전히 기적 같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선배의 소개로 이화여대 미대 출신 부인 김수현씨는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은 은총 중의 은총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 과학을 공부한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외골수 삶 속에서도 폭넓은 예술과 감성의 인문학이 접목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자연, 문학과 인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폭넓은 삶의 깨달음은 좋은 인생 반려자를 통해 주어진 축복이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그는 바쁜 의사로 살면서도 문학에 열중해 책도 4권이나 출간했고 "하느님이 좋아" 가톨릭 부제로 살아온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이런 복된 결혼생활을 이웃에 전파하기 위해 최근 10여 년간 40대의 젊은 청춘을 ME(부부 사랑 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고 후속 프로그램으로 결혼 적령기 자녀를 위한 배우자 찾기 캠페인 '청실홍실운동'도 정찬열(시인)씨와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게 인생이다. 이민자로 바쁘게 살다 보니 큰 아픔도 있다.     "이민자의 첫 자녀로 태어난 큰 아들이 긴 세월 동안 남모르게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창 부모의 관심을 먹고 자라야 할 나이인 사춘기에 접한 약물로 수 년간 고생만 하다가 결국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최근 나이 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이민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다. 다행히 큰 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떠났기에 영혼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 하나가 큰 위안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남은 둘째 아들과 두 딸은 큰 아들과의 '시행착오'를 통해 다행히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랐다. 둘째 아들은 내과의사가 돼 약사 배우자를 만나 두 자녀의 아빠가 됐다. 각각 카운셀러와 약사인 두 딸은 모두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 배우자들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부부의 일상은 5년전 은퇴 후 팔로스버디스로 이주하여 틈만 나면 바닷가를 거닐고 가끔 골프를 치며 건강에 힘쓰고 있다. 남은 인생을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고 있다. 은퇴 전에 비해서 시간이 많은 편이어서 읽지 못했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세상과는 유튜브나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다.     버켓 리스트는 아니지만 그의 관심사는 큰 아들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주위의 약물 중독자와 정신 질환을 겪고 있는 이웃과 함께 하기 위해 김영철 목사가 주도하는 '가족 정신 건강 센터'를 지원하는 일이다. 직접 겪은 아픔이기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돕고 있다.   그는 사후에 맞이할 하늘나라의 영원한 '천상영복'에 마음을 두고 있다. 신앙은 그에게 단 하나의  꿈이며 생명이고 가슴 설레이는 희망이다. 그런 꿈이 있기에 노년 생활이 더 아름답게 여겨져 오늘도 행복하다.     "꿈과 비전이 있는 한 인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하느님 은총 인간 하느님 가톨릭 부제 가톨릭 종신

2023-11-05

[리얼 시니어 스토리] "오를 산이 있어서 항상 행복했네"

50년이 넘는 한인타운 역사에는 다양한 업종과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있다. 비단 경제계나 정치계  인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취미나 여가 선용 분야에서 김평식(1940년생) 에버그린 클럽 초대 회장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아마도 전무후무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남가주 한인사회에는 거의 20여개의 등산 클럽이 있었다. 한국에서 산마다 등산하는 인구가 넘쳤 듯이 남가주에도 등산 인구는 많았다. 다만 한국의 산과 달라서 어디를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누구를 믿고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기에 한인들이 주축이 된 등산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것이다.     이들 등산클럽의 고조선 같은 역할을 에버그린 클럽이 맡았다. '클럽주' 김 회장이 산을 좋아했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했기에 가능했다. 결국 한인들의 등산 문화를 세운 셈이다. 토요클럽, 일요클럽, 화요클럽이 구성돼 50인승 버스가 1주에 3번씩 출발했다. 매주 150명이 산을 찾았는데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선발 인원만 그런 것이지 실제 등록 회원은 500명이 훨씬 넘었다. 그래서 15인승 밴이 항상 필요할 만큼 차고 넘쳤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소송이 '잘 되던 비영리단체 등산클럽'의 발목을 잡았다. 결과는 좋게 끝났지만 상처는 컸다. 더 이상 행복하기가 어려웠던 김 회장이 물러나고 구심점을 잃은 클럽은 자연스럽게 1년만에 소유하고 있던 버스와 밴을 팔았고 수 년간 은행에 모아뒀던 회비도 조용히 사라졌다. '에버그린 클럽' 이후 여러 등산 클럽이 세워졌지만 대개 수 십명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바이칼호부터 한반도까지 펼쳐졌던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반도의 삼한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김 회장은 현재 에버그린 클럽 때와는 다른 등산과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회원들이 모두 움직일 수 있는 목적지일 필요가 없으므로 소규모로 '반갑다 친구야'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한번 출발은 13명 정도로, 매주 3번 출발도 아니고 부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김 회장'이 가고 싶은 곳을 간다. 에버그린클럽이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하게 했다면 자연은 특히 산은 항상 믿을 수 있기에 마음껏 찾는다. 최근엔 충청노인회 회원 60명과 가까운 샌타바버러를 인솔해 다녀오기도 했다.     등산 전문가로 '미국 50개 주 최고봉'을 방문하고 책까지 낸 바 있는 김 회장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우선 대륙 횡단이다. LA에서 출발해 플로리다 키웨스트를 찾았다. 25일 코스로 미국 자연을 한껏 즐겼다. 종단도  LA를 출발해 시애틀을 15일만에 갔다 왔다. 보스턴으로 날아가 메인주 대서양에서 랍스터를 즐겼다. 조지아주로 가서 테네시 멤피스를 거쳐 블루리지 파크웨이를 돌아봤다. LA에서 회원들과 버스로 갈 수 없었던 곳이다. 멤피스에서는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는 돼지갈비도 맛봤다.   그의 일상은 여느 팔순 시니어와 다르지 않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7시쯤 운동을 한다. 에코파크 주위를 2바퀴 돈다. 유튜브에서 여행과 음악 동영상을 열심히 본다.     김 회장은 건설업, 제너럴 컨스트럭션(종합건설업)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나오는 비소를 취급할 수 있는 라이선스까지 갖고 있었다. 20년간 많은 돈을 벌었고 부동산 투자도 많이 했다.     '여행의 달인' 김평식 회장도 여행에 관한 버켓 리스트가 있다. 미국의 수많은 도시를 방문하면서 나중에 꼭 다시 와야지 했던 곳을 혼자 가볼 생각이다. 60년 넘게 지하 탄광이 불타고 있는 펜실베이니아의 '센트레일리아'도 다시 가볼 계획이다.   최근 아들이 큰 금융회사의 사장에서 회장이 됐다. 딸도 변호사로 크게 성공했다. 자녀들에 대한 큰 바람은 없고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고마웠던 순간은 바로 에버그린 클럽 버스를 살 때다. 매번 대여를 하느니 버스를 사는게 낫다고 해서 30만달러에 달하는 새 버스 비용을 내부에서 모았다. 6명이 5만달러를 내면 2년 후 원금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정말 6명이 돈을 모아왔다. 김 회장을 믿고 여행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막상 30만불을 받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며 "각 5000불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주고 중고버스를 샀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니 자신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실감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 바로 부동산 폭락 전, 1990년대 초반 가졌던 부동산이다.   "중앙일보 건물 옆 7가일대 땅이 모두 내 소유였죠. 그런데 내 재물이 아니라는 걸 내 손에서 떠나고 난 뒤에 알았고, 이제는 아깝거나 아쉽다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그동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는데, 그냥 나를 지나간 것이지."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행복 에버그린클럽 비영리단체 등산클럽 에버그린클럽 초대 이들 등산클럽

2023-10-29

[리얼 시니어 스토리] 팬데믹…비즈니스 닫았지만 봉사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비즈니스를 닫을 수 밖에 없었지만 계기가 돼 봉사 활동에 더 진심인  사람이 바로 정종오 관장이다. 그는 1949년생이다. 두 아들을 함께 키운 부인은 지난 2010년에 별세했지만 그의 삶은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와 같은 태권도인을 걷고 있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LA에서 충효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운영했다. 큰 아들 민규는 한인타운에서 엘리트태권도센터로, 둘째 형수는 라팔마 충효태권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 관장은 이제 도장은 포기했지만 장소를 렌트해서 태권도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월수금 오후 5시부터 1시간씩 태권도를 가르치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원래 그는 태권도 사범으로 태권도를 통한 선교 활동을 원해서 1984년도에 충효태권도를 세우고 동시에 세계 선교 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이 협회를 통해 39년간 어려운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각종 선교단체에 선교 헌금을 전달했다.     또 다른 직업은 한의사다. 1986년 가주 한의사자격증을 따고 '약손한의원'을 개원해 어려운 한인 시니어들에게는 무료로 인술을 펼쳐왔다. 1991년 한의사협회 부회장 시절엔 가주 한의사 25명을 이끌고 중국 장춘 중의 대학에서 임상 실습을 다녀오기도 했다. 2021-2022년엔 가주 한인 한의사협회장을 맡기도 했고 이어서 미주 기독한의사 협회장으로도 봉사했다. 또 이민 오기 전에 일했던 대한항공 보안승무원 동료를 모아 1983년엔 모임도 만들어 역시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하루 일과는 주3회 새벽 그리피스 천문대로 올라가 정상 밟기를 한다. 1시간 걸리고 8000보쯤 걷는다. 이외 시간은 한인 사회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봉사도 하고 봉사할 일을 찾기도 한다. 정 관장은 "할 일이 있는 것은 건강과 직결된다고 믿고 있다"며 "건강을 위해서 3개월마다 보약을 먹고 있는데 벌써 30번째 먹고 있어 보약의 힘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버켓리스트가 아쉽다.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경제적인 한계 등으로 여행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회를 만들어 캐나다와 미국 대륙 횡단, 남미 선교 여행을 마칠 계획이다. 건강하니 문제가 없다.     지난 4월 중순 기독한의사협회 회원 20여 명과 함께 키르키스탄을 방문해 3박 4일간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귀국 길에 3박 4일간 튀르키에 성지순례도 가졌다. 튀르키에 선교사에게 지진 성금 5000달러도 전달했다. 앞으로 나바호 인디언 의료 선교를 계획 중이다.     도장을 운영하면 아무래도 매달 렌트 비용이 부담인데 클래스만 열고 있어 큰 부담이 없다. 그래서 10월부터 수요일 그룹 레슨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는 "오랜 기간 운영하던 도장을 코로나로 인해 닫아서 매우 섭섭했다"며 "하지만 지금 오히려 홀가분하고 좀 가볍게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은 인생도 봉사하며 남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믿고 있다.   두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님 믿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 항상 기도하고 있다.   한편 정 관장은 "우연히 제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을 직접 들었다"며 "아마도 학부모나 여성 환자로부터 감사의 점심 대접을 받을 때가 있다. 사양하기 어려워 응하는데 자주 상대가 바뀌므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마웠던 분도 몇 분 꼽았다. 한국에서 주공 주택에 당첨돼 계약금이 필요했는데 월급의 30배나 되는 통장을 주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던 숭일중학교 교감선생님이 한 분이고 다른 한 분은  LA에서 충효태권도를 시작할 때 디파짓 2000달러를 내주신 당시 우일여행사 강우봉 사장이다. 이외 행사 때마다 도와준 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아쉬운 일도 있다. 충효태권도장이 잘 될 때에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선교 장학금, 선교 헌금 등으로 많이 나눴는데 지난 2010년 작고한 부인이 당시에 "그 중에 조금이라도 가족을 위해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또한 한인 사회 행사에는 발 벗고 나서서 참가했지만 두 아들의 학교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해서 두 아들이 서운해 한 점이다.     정 관장은 앞으로 못 다한 교회 봉사, 선교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비즈니스 봉사 봉사 활동 한인 한의사협회장 라팔마 충효태권도

2023-10-15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지난 8월 중순쯤 세기의 천재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주택 건설주의 주식을 풀 매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대부분 뉴스는 투자 거물이 주택 시장 호황에 베팅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잘 알다시피 2022년 초부터 연준이 시행한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영향은 모기지 금리의 급격한 인상이다.     2022년 초에 3%에 불과했던 부동산 대출 금리가 7%까지 치솟았다. 금리가 급등하니 주택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부동산에는 끔찍한 침체가 올 것이라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했다. 지난해부터 폭락론이 줄줄이 나왔지만, 부동산 가격은 아직 급락하지 않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주택 가격의 꾸준한 상승을 예견하고 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렌스 윤은 “앞으로 더는 큰 폭의 주택가격 하락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며 “주택시장은 내년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에도 이미 부동산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필자는 현재 시장의 흐름을 고객들과 나누곤 한다. 특히 주택 구입시기를 문의하는 고객들이 많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월 페이먼트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면 적기라는 것이다.     일반들은 가격의 오름세가 시작되는 시기와 최상의 가격이 어디인지 그 타이밍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자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미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부동산 마켓은 11월, 12월에는 약간 주춤한다. 2010년 LA지역에 새로 지은 침실 2개, 욕실 2개가 30만 달러에 분양됐다. 만약 그 당시에 이자율 0.5% 높다고 사지 않았었다면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있을까.     주택 가격 하락은 모든 바이어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높은 집값에 모기지 금리 마저 올라 내 집 마련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바이어가 많다.     이들 바이어의 바람과 달리 올해 안에 주택 가격이 내려가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값이 지금보다 더 오르지 않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지역이 많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거래를 성사시킨 집들의 경우 리스팅이 올라가고 펜딩까지 걸린 평균 일수는 7일 정도이며, 3일 만에 풀 캐시로 계약되는 집들도 꽤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저금리 시대에 주택을 구매한 이들이 주택 판매를 꺼리고 있어 매물 부족 현상은 지속할 것 같다.   이자율이 7%에 육박하면서 주택소유주들에게 낮은 이자율로 보유할 수 있는 내 집이 더 소중해졌다. OECD 통계를 보니 2015년 집값을 ‘100’으로 봤을 때, 2023년 집값은 ‘182’다. 금리가 무섭게 올랐지만, 집을 사려는 수요는 생각보다 탄탄했다. 하지만 불황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다. 경기가 주저앉는데 집값만 오를 수는 없다는 주장은 그래서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문의:(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부동산 마켓 부동산 대출 부동산 가격

2023-10-11

[리얼 시니어 스토리] "50세가 넘어 민간 군목으로 갔던 이유는"

  "지금은 한인타운이 LA의 손꼽히는 명소 지역이 됐지만 45년 전에는 정말 볼품 없는 거리였습니다. 차이나타운에 비교하기 부끄러운 그렇고 그런 거리였죠.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은 한국정부도 미국 정부도 아닌 한인들의 힘이었습니다."   한인으로 구성된 경제 단체중에서 가장 오랜 된 곳 중 하나가 바로 '봉제협회'다. 그 중요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한때 한인타운.한인사회로 들어오는 2가지 큰 '돈줄'을 시니어들의 웰페어(SSI)와 봉제분야서 벌어오는 자금으로 인정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집도 팔고 투자도 받고 해서 한인사회에서 한인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가 가능하지만 초창기 한인타운, 올드타이머들은 맨손으로 주류사회에서 돈을 벌어와 한인타운을 먹여 살렸다.   초창기 봉제협회를 이끈 인물중 한 사람이 바로 박철웅 일사회장이다.     1949년생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올드타이머가 된 덕분에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1985년 봉제협회장을 맡았다. 한인 여성들이 '밟아라 삼천리'라는 유행어가 있었듯이 누구나 이민 초기에는 봉제공장에서 포장, 실밥 뜯기 등 뒷일로 시작해 싱글 재봉틀, 오버로크, 커버 스티치까지 배워 돈을 벌었다. 다른 일에 비해서 돈벌이가 나았던 덕분에 한인들은 대졸자도 재봉틀 앞에 앉았다. 원래 손재주가 좋았기에 돈이 몰리자, 시샘하는 정부를 등에 업은 타인종들의 견제가 들어오고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서 권익단체를 만든게 '봉제협회'다.   박 회장은 그래서 돈도 벌고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협회를 만들었다. 그는 "30대 중반인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면서 "다운타운 라이온스클럽 회장, 평통위원 등 여러가지 기회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했다. 상훈도 따라왔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 공로상(1982), LA톰 브래들리 시장 공로상(1985)을 받았다. 협회와 한인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인들을 후원했던 덕분이다.   하지만 한인사회와 한인타운은 지켰는데 자신의 비즈니스는 그렇지 못했다.   1994년 대구에서 목사 안수(대한 예수교 장로회 경북노회)를 받았다. 1996년 남가주한인교회 담임 목사가 됐다. 2002년엔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앙 간증집도 냈다.   200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민간 군목이 됐다. 통일전망대교회와 22사단 새생명교회 담임 목사로 봉사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2011년부터 봉제 및 의류업 사업자들을 돕는 '파커 비즈니스 컨설팅'을 운영했고 2020년 팬데믹을 계기로 은퇴했다.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3마일을 걷는다. 신문을 보고 아침을 먹고 성경을 1시간 읽는다. 기도하고 평통 출신들을 모아서 만든 일사회 모임을 준비한다. 캠핑에도 진심이어서 계절마다 캘리포니아 구석구석을 누볐다.     부인(1956년생)과 1남 2녀들을 뒀다. 자녀들에게는 신앙생활을 권면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지속적으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어 교육을 강조한다. 한글과 한국어를 잘해야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진다고 믿고 있다.     1987년 제 4기 평통위원을 역임했고 2009년엔 LA평통 부회장을 맡았던 박 회장이라 세상에 바라는 것은 역시 한국의 미래다. 예전에 비해서 너무 좌우가 분열돼 있고 심지어는 좌우 모두 속에서 또 분열돼 있는 양상이어서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해야 하는데 그저 말뿐인 것같다"면서 "상대의 생각을 듣고 대화로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공통 분모는 조국에 대한 사랑인데 지켜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통합의 정신을 기조로 노력하면 결국엔 북한도 변화하고 평화통일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통일교재도 집필했다)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고 있어도 이끌어 줄 사람, 멘토가 없습니다. 이제 한인사회를 위해서 성공한 선배들이 더 많이 멘토가 되야 합니다."   막상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순간도 있게 마련. 박 회장은 "너무 일찍 성공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면서 "젊어서 또 어려서 그랬지만 너무 일찍 성공에 취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또 "인생을 길게 보고 큰 뜻을 품고 탄탄하게 세워 부를 쌓아서 도모했어야 했다"며 "세상을 너무 좋아했고 세상을 즐긴 것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후배들을 만나면 뜻을 세우고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나가라는 조언을 한다.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민간 군목으로 갔던 이유를 들었다.     "한국이 선교사를 해외로 많이 파송하는 나라중 하나인데 막상 한국의 농어촌에는 빈 교회가 많습니다. 미자립교회다 보니 목사가 없어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편 박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한 중앙일보 오피니언 지면에 연재중인 칼럼 등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해 출간할 예정이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민간 군목 초창기 한인타운 민간 군목 한때 한인타운

2023-10-08

[리얼 시니어 스토리] 후배 기업가 돕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AI공부

"항상 마음에 뒀던 AI공부 시작했는데 잘 익혀서 마음 맞는 후배에게 도움 주고 싶습니다."   UCLA석좌교수 출신 한홍택(1942년생) 박사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에 주식시장과 함께 시작된다. 투자한 주식과 시장의 변동을 주시하며 부인 백훈(1942년생) 여사와 1시간 정도 집 주위를 산책한다. 사는 곳이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로로는 제법 경관이 좋다. 오후 1시  주식시장이 끝나면 관리하는 웹사이트를 정리하고, AI를 인터넷으로 공부한다. 마당 손질 등 잡일을 하며 오후를 보낸다. 또 한 달에 4번 줌으로 진행하는 세미나 포럼, 과학기술 포럼, 기업 라운드테이블, 경험을 공유하며 배우는 해피아워(Happy Hour) 등에 참석할 준비를 한다.   한 박사는 "UCLA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도 계속 공부했는데 지금도 공부한다"면서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 발달돼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60학번) 졸업 후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57년 전의 일이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21년 후인 1992년 남가주로 오는 동안 직장을 6번이나 옮겼다. 한 박사의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이동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2번이나 집을 떠나 임시였긴 하지만 타향살이를 했다. 소위 미국에서 말하는 7년의 근지러움(Seven Year Itch)이 민망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의 변명은 가능하면 여러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또 경력과 가족에게 더 맞는 직장과 도시에서 살려고 했던 것이다.   남가주로 이사 온 후에는 UCLA 기계항공과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2009년 그동안의 미국 경험을 살려 공헌할 기회가 생겨, 갑자기 한국에 나갔다가 4년 후에 돌아와 2013년 전문직에서 완전히 은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UCLA에서는 별 준비할 새 없이 조기 은퇴한 셈이다.   "은퇴를 하니 가장 좋은 것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남의 간섭 없이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국립연구소와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다가 은퇴하니 그동안 꽁꽁 묻혀 두었던 사업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직접 발휘하기에는 다소 늦었고, 그 대신 간접적으로 마음에 맞는 회사의 주식을 사서 그 회사의 경영을 엿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아울러 항상 흥미는 있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던 AI도 인터넷으로 배우기로 결정했고, 비영리 단체를 위해서 웹사이트와 줌을 이용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주식 투자는 앞으로 10년 후의 목표액을 세워 놓고, 얼마 전 시작한 모교와 동창회의 장학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며 "앞으로도 힘이 있는 한, 집에서 할 수 있다면,  좀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AI 공부도 마음에 맞는 후배 기업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고, 웹관리는 계속할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건강해야 하니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세자녀(혜련, 혜진, 진이)들에게는 자기대로의 꿈을 마음껏 펼치며 남을 배려하고 남과 나누는 삶을 살기 바란다고 전한다. 세상에 대해서는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연속인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독재하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속히 인류 모두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마웠던 사람 일, 순간에 대한 질문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다섯분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줘서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유학을 오게 해 준 이해 박사, 학위를 받도록 도와주신 버논 뉴버트(Vernon Neubert), 월터 존제미스(Walter Jaunzemis) 지도교수, 전문 분야에서 꿈을 펼치게 해 준 스티븐 차이(Stephen Tsai) 박사, 호암상을 추천해 준 한창대 교수를 꼽았다.     한 박사는 "평범하게 산 인생이라 별로 후회되는 일은 없다"며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었을 때에도 그 때문에 배운 것이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지 자녀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한국을 나갔던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홍택 박사의 약력=경기도 광주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1964), 펜스테이트 석박사(1971, 공업역학), 미공군항공재료연구소(1972~1978), 워싱턴대 교수(1979~1986), 펜스테이트 석좌교수(1986~1992), UCLA석좌교수(1992~2009), 삼성호암상 공학부문 수상(1999).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기업가 ai공부 후배 기업가 ucla석좌교수 출신 박사 호암상

2023-09-24

[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워치

주택 모기지 이자율이 7%가 넘는데 집값이 오르고 있고 현금이 충분한 바이어들이 매물을 다 가져가고 있다고 고객들의 불평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고금리 속에도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 중 하나로 젊은층의 강한 수요를 지목했다.     주 바이어층은 20대 초반에서 30대 밀레니얼 세대다. 부모와 함께 살거나 룸메이트와 함께 거주한 밀레니얼 세대 사이 자신의 주택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주택과 자동차 가격이 자녀 혼자 힘으로 구입하기 힘들 정도로 고공 행진하면서 자녀 주택 구입을 돕는 부모가 늘고 있다.     다운페이먼트 지원, 증여, 코사인 등으로 자녀 주택 구입을 도와준다. 전문가들은 자녀 모기지 대출 코사인으로 공동 책임을 지는 것보다는 다운페이먼트를 증여로 주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현실은 연준 기준금리 인상이 공급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공급은 현저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어 주택 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어바인 지역 마켓에 나와 있는 매물수는 180개 정도다. 이는 보통 이맘때면 1000개까지 마켓에 리스팅으로 나왔지만, 예년보다 20% 정도의 매물이 마켓에 나와 있다.   팬데믹 이후의 재택근무도 주택 소유를 늘리려고 하는 주요 요인이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자신만의 공간인 집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택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이 줄고 있다.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심각한 매물 부족으로 인해 주택 건설업체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주택 공급을 늘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2024년 부동산 이자율이 낮아져서 동결될 경우 거주용 부동산 시장은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젊은층이 월급만 가지고는 노후의 삶이 불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월급을 수십 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지만, 이자 부담이 가능한 수준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시세 차익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층이 실수요와 투자 수단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고, 대출이 가능할 때 조금 가격이 올랐더라도 추가 상승 여력이 있는 매물 위주로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부동산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어느 나라이든 하방 및 상방 압력이 있는 시장이다. 만약에 저렴한 주택을 사면 처음에는 몇천 달러씩 수리비로 지출될 수도 있지만, 수리가 마무리되고 세입자들로 인해 렌트비가 인컴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노후의 삶에 대해 더는 불안할 염려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문의:(949)873-1380 써니 김 / 뉴스타부동산 어바인 명예 부사장부동산 가이드 부동산 리얼 기준금리 인상 부동산 리얼 부동산 이자율

2023-09-13

[리얼 시니어 스토리] "100년 넘는 노하우로 '은퇴자 봉사' 돕고 있어요"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성인 봉사단체인 라이온스클럽에는 윌리엄 윤 총재가 있다. 한인 클럽 행사에는 어디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다. 지구 총재를 했던 것도 15년이 지났고 팔순도 넘었지만 클럽을 돕느라고 지치지 않는다고 한다. 팔순이지만 청년 같이 젊은이가 윌리엄 윤 총재다.     한인 사회에는 12개의 한인 라이온스 클럽이 있다. 라이온스 클럽은 국제적인 비영리 봉사단체로 기본 최소 단위는 수십명으로 이뤄진 '클럽'이다. 40년이 넘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라이온스에 헌신한 인물이 바로 윌리엄 윤 총재다. 1942년생인 윤 총재는 2008년 4L3지구(district)의 총재(governor)를 역임해 '윤 총재'로 불린다.   그는 원래 비즈니스를 사고 파는 일을 했지만 이제는 은퇴한 상태로 본업이 라이온스 클럽이 됐다. 그를 소개하는데 라이온스의 조직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4~5클럽이 모여 존(zone)을 이룬다. 이어서 리전(region)이 20개 정도의 클럽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윤 총재가 이끌었던 4L3지구는 62개의 클럽이 소속돼 있다. 이런 지구가 남가주에 15개가 있다. 1976년 입문 이래 이제까지 윤 총재가 관여했던 클럽은 대략 1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LA올림픽 라이온스 클럽 소속인 그는 로버트 이(타계)씨를 비롯해 서영석, 이응목, 이용기, 추부원 씨 등을 추천했다.   "이렇게 반세기 가깝게 라이온스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즈니스로 인간관계를 하지 않고 만남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인간 관계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를 즐겁게 살 수 있는 모임은 라이온스 클럽만 한 것이 없습니다."   한편 비즈니스를 은퇴하면서 달라진 것이 일상이다.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는 심지어 다리를 다쳐서 골프를 그만둔 것도 전화위복이라고 말했다. 등산가 김평식씨를 따라서 트레일을 제대로 배운 덕분에 이제는 부인 리나(1944년생)씨와 시간이 날 때마다 샌게이브리얼 마운틴을 오른다고 한다.   하루 일과도 매우 단순해졌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운동은 스트레칭과 하루 3마일을 걷는다. 근육 운동은 이제는 무리다. 저녁에는 역시 라이온스 클럽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한다. 부르는 곳도 많고 갈 곳도 많다.   윤 총재의 버켓리스트는 역시 라이온스 클럽이다. 그는 "라이온스 활동을 미친 사람처럼 너무 열심히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좋아서 한다"고 말했다. 그가 버켓리스트로 올린 라이온스는 무엇일까.     미국에서 한인으로 구성된 디스트릭트(지구)를 만드는 것이다. 지구는 클럽 갯수가 아니고 인원이 중요하다. 대략 1250명 쯤이면 지구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현실은 가주에서 1000명의 한인을 라이온스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북가주와 남가주의 현재 인원 200명 보다 4배가 더 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 같아 보인다. 비영리 봉사단체가 라이온스 클럽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총재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시작하고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2019년 국제클럽 회장이었던 최중열 회장과도 공감했던 일이다.   윤 총재는 "지미 카터 대통령도 라이온스 총재 출신으로 대통령도 됐고 임기 후에도 봉사에 큰 힘을 보탰다"며 " 라이온스 클럽도 한인 사회의 성장과 위상 만큼의 규모가 돼야 한다"고 한인 지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재는 젊은 라이온스 회원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쯤 되면 라이온스 클럽에서 봉사를 제대로 익힌 한인 청년이 정계에도 입문하여 정치인도 되고 빅테크 같은 비즈니스도 일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나고 보니 220국 140만명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적인 교류와 정보 교환이 가능하고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3만~4만명이 모인다"며 "미국에서의 사회생활이나 인생살이에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윤 총재는 또한 국제클럽의 스페셜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일반 단체나 취미 동호회를 상대로 이들에게 라이온스 클럽의 프로그램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00년이 훨씬 넘는 동안 비영리단체로 꾸준히 발전해온 라이온스클럽의 장학생 선발, 불우이웃돕기 같은 봉사활동이 효과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좋게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은퇴자들의 노하우를 활용해 사회 환원 봉사활동을 위한 은퇴자 클럽을 만들면 은퇴를 즐기며 동시에 봉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자녀 1남1녀에게도 같은 바람이다. 돈이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데 사람들은 너무 집착한다며 자녀들은 즐기면서 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세상에 바라는 것은 바로 '주는 마음을 갖고 살자'다. 크고 작건 간에 관계없이 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흔히 '자기 앞가림을 하고 남으면 준다'는 것보다는 작은 것부터 나누는 열정이 나중에 큰 것도 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윤 총재는 2021년 국제라이온스클럽으로부터 '앰배서더오브굿윌' 상을 수상했다. 그는 "은퇴자는 뜻깊은 사회 환원이 필요한데 그 방법으로 지역사회 봉사가 알맞다"면서 "100년 넘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라이온스 클럽 시스템은 이를 도울 수 있다. 내가 돕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메일 주소([email protected])를 남겼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노하우 은퇴자 라이온스 클럽 라이온스 총재 한인 라이온스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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