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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학생, 대학농구 경기서 휘파람 미국 국가…국제 대회 어린이 부문 3등도

한인 소녀가 미국 대학 농구 최대 토너먼트인 Pac-12 NCAA 남자 농구 경기에서 휘파람으로 미국 국가 공연을 선보여 화제다.     주인공은 북가주에 거주하는 김태인(8·루실 닉슨 초등학교)양.   앞서 지난 9월 할리우드에서 열린 국제 ‘휘파람’ 대회에서 어린이 부문 3등을 차지해 본지에 보도된 바 있다. 〈본지 11월 29일자 A-30면〉   김양은 지난달 29일 스탠퍼드와 애리조나가 격돌하는 메이플스 파빌리온 경기장에서 농구 경기 전 휘파람으로 미국가 공연을 펼쳐 관중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날 김양은 앞뒤로 키 큰 농구선수들 사이로 경기장 중앙에서 서서 당돌하게 휘파람을 내뱉었다. 거침없는 고음 처리와 청아한 음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무대에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김양의 공연은 ESPN2에 생중계됐다.       어머니 최정유씨는 “미국의 큰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국적의 아이가 미국 국가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김양은 오는 19일에 같은 경기장에서 열리는 NCAA 여자 농구 경기에서도 공연을 펼친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미국 대학농구 휘파람 국가 어린이 부문 파빌리온 경기장

2024-01-02

80년대 NCAA 전설 이은정을 아시나요

1980년대 대학스포츠협회(NCAA) 농구 코트를 휩쓸었던 전설적인 한인 여성 선수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다.   시카고 지역 드폴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한 제이슨 리 감독이 제작 중인 이 다큐멘터리(제목·EJ Lee: All-American)는 현재 텍사스주 설로스주립대학 감독을 맡은 이은정씨의 농구 여정을 담는다.   제이슨 리 감독은 “‘EJ’로 불리며 한국의 ‘매직 존슨’으로 여겨지던 이은정은 당시 대학 농구 스타로 루이지애나 먼로 대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라며 “제레미 린, 야오 밍 등 아시안 선수들이 있기 전에 미국 농구계에는 바로 이은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농구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이 감독은 숭의여고 졸업 후 실업팀 입단이 예정돼있다가 당시 루이지애나 먼로 대학 린다 하퍼 감독 눈에 띄어 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시안은 농구를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이 감독은 먼로 대학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4시즌 동안 남부 콘퍼런스 ‘올해의 선수’를 매해 차지했다. 1984~1985시즌에는 먼로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학교를 NCAA 4강으로 이끌었다. 재학 기간 통산 2208점을 기록하며 8개 부문에서 먼로 대학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감독이 선수로 활동한 4년간 먼로 대학은 총 102승 15패를 기록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로 인해 이 감독의 등 번호(5번)는 영구결번됐다.   먼로 대학 졸업 후 이 감독은 이탈리아, 스웨덴리그에서 잠시 뛰었다. 여자프로농구(WNBA) 출범(1997년) 당시에는 30대 중반이었던 데다 결혼 후 출산 등으로 현역 복귀의 꿈을 접어야 했다.     현재 이 감독은 미국 대학농구에서 사령탑을 맡은 유일한 한인이다. 지난 2020년에는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 감독에 지원했지만, 한국에서 획득한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무산됐다.   리 감독은 “이은정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스포츠계의 아시안 여성에 대한 여정을 탐구하고자 한다”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은정 선수의 기쁨, 업적, 어려움 등을 솔직하게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이슨 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기부도 요청하고 있다. 기부는 웹사이트(ejleedocumentary.com)를 통해 가능하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대학농구 이은정 이은정 감독 아시안 선수들 먼로 대학

2023-05-16

[시카고 스포츠] 노터데임대 브레이 농구 감독, 시즌 후 떠난다

노터데임대학 남자 농구팀 역사상 최다승 기록을 보유 중인 마이크 브레이(63, 사진) 감독이 2022-2023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난다.     인디애나 주 사우스 벤드 소재 노터데임 대학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브레이 감독이 23년 만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19일 발표했다.     지난 2000년 노터데임대 농구팀 사령탑에 오른 브레이 감독은 현재까지 750경기에서 481승(269패)를 기록 중이다. 13번의 NCAA 토너먼트 대회에 진출해 두 차례 '엘리트 에잇'(Elite Eight, 8강전)까지 진출했다.     브레이 감독은 "20여년 간 정말 훌륭한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어 매우 큰 영광이다. 이젠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시기라고 느꼈다"며 "학생들, 코치진, 스태프, 총장님과 신부님까지,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고, 앞으로도 노터데임에 힘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돕겠다"고 말했다.     브레이 감독은 지난 2011년 AP, USBWA, Basketball Time 등이 선정한 올해의 대학농구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노터데임 대학은 이번 시즌 ACC 컨퍼런스 1승7패, 전체 9승10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Kevin Rho 기자시카고 스포츠 농구 감독 대학농구 감독상 농구팀 사령탑 남자 농구팀

2023-01-20

[카운터어택] 더 퀸 오브 바스켓볼

 루시아 해리스. 영화 팬에겐 낯선 이름 하나가 지난달 27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낯설 수밖에 없는 게, 그는 1970년대 활약했던 미국 농구선수, 그것도 흑인 여자 선수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Queen of Basketball)’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인터뷰 형식인 다큐는 해리스가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속팀인 미시시피주 델타주립대는 여자 대학농구팀인데도 전국적 인기와 관심의 주인공이 된다. 지역 리그에서도 보잘것없던 팀이었는데, 그가 2학년이던 1975년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여자 대학농구 최초로 메이저 방송사가 미국 전역에 중계했다. 델타주립대는 우승했고, 그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3학년인 1976년에도, 4학년인 1977년에도 팀은 우승했고, 그는 MVP가 됐다. 특히 1977년 결승전은 여자 농구경기로는 처음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렸다. 당연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여자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대회다. 해리스가 활약한 미국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해리스 농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1977년 미국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다. 뉴올리언스 재즈(현 유타)가 7라운드(전체 137순위)에서 그를 뽑았다. 해리스는 NBA 구단이 뽑고 사무국이 승인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해리스는 NBA 코트를 밟지는 못했다. 여자 선수는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결혼을 선택했고 임신 중이었다. 그는 모교 농구팀 코치를 거쳐 고교 체육교사로 평생 살았다. 다큐에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수많은 여자 스포츠 선수들이 빼어난 실력에도 더는 뛸 곳이 없어 운동을 그만두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올림픽이 혼성 종목을 늘리고 각종 대회가 남녀 상금 차를 없애는 등 성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아카데미가 이 다큐에 상을 준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노력에 대한 평가일 거라 생각한다. 뒷얘기가 좀 있다. 이 다큐는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섹션(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NYT는 자신들의 첫 아카데미상이라고 환호했다. 신문사도 아카데미상을 받는 시대다. 또 NBA 전·현직 스타인 샤킬 오닐과 스태픈 커리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두 사람에게도 첫 아카데미상이다. 해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두 달 전인 올해 1월 6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바스켓볼 여자 대학농구 오브 바스켓볼 여자 선수

2022-04-06

[J네트워크] '더 퀸 오브 바스켓볼'

루시아 해리스. 영화 팬에겐 낯선 이름 하나가 지난달 27일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낯설 수밖에 없는 게, 그는 1970년대 활약했던 미국 농구선수, 그것도 흑인 여자 선수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퀸 오브 바스켓볼(The Queen of Basketball)’이 아카데미 단편 다큐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인터뷰 형식인 다큐는 해리스가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속팀인 미시시피주 델타주립대는 여자 대학농구팀인데도 전국적 인기와 관심의 주인공이 된다. 지역 리그에서도 보잘것없던 팀이었는데, 그가 2학년이던 1975년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여자 대학농구 최초로 메이저 방송사가 미국 전역에 중계했다. 델타주립대는 우승했고, 그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3학년인 1976년에도, 4학년인 1977년에도 팀은 우승했고, 그는 MVP가 됐다.     특히 1977년 결승전은 여자 농구경기로는 처음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렸다. 당연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여자농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대회다. 해리스가 활약한 미국은 은메달을 차지했다.   해리스 농구 인생 하이라이트는 1977년 미국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다. 뉴올리언스 재즈(현 유타)가 7라운드(전체 137순위)에서 그를 뽑았다. 그보다 8년 전인 1969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현 골든스테이트)가 데니스 롱이라는 여자 선수를 지명한 적이 있다. 이때는 관심을 끌기 위한 지명이라는 평가였고, NBA 사무국도 승인하지 않았다.     해리스는 NBA 구단이 뽑고 사무국이 승인한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해리스는 NBA 코트를 밟지는 못했다. 여자 선수는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결혼을 선택했고 임신 중이었다. 그는 모교 농구팀 코치를 거쳐 고교 체육교사로 평생 살았다. 다큐에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수많은 여자 스포츠 선수들이 빼어난 실력에도 더는 뛸 곳이 없어 운동을 그만두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올림픽이 혼성 종목을 늘리고 각종 대회가 남녀 상금 차를 없애는 등 성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아카데미가 이 다큐에 상을 준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노력에 대한 평가일 거라 생각한다.     뒷얘기가 좀 있다. 이 다큐는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섹션(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됐다. NYT는 자신들의 첫 아카데미상이라고 환호했다. 신문사도 아카데미상을 받는 시대다. 또 NBA 전·현직 스타인 샤킬 오닐과 스태픈 커리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두 사람에게도 첫 아카데미상이다. 해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두 달 전인 올해 1월 6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바스켓볼 여자 대학농구 여자 선수 오브 바스켓볼

2022-04-04

NCAA 버틀러-코네티컷 결승 진출…오늘 오후 6시 Ch 2 중계

버틀러대와 코네티컷대가 '3월의 광란(March madness)'으로 불리는 NCAA의 남자농구 디비전1 우승 트로피를 놓고 4일 맞붙는다.(오후 6시 Ch2 중계) 버틀러대는 2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릴라이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24점을 꽂은 셸빈 맥의 활약을 앞세워 버지니아 커먼웰스대를 70-62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64강 토너먼트에서 1 2번 시드를 받지 않고도 2년 연속 4강에 올랐던 버틀러대(8번 시드)는 이날 승리로 2년 연속 결승까지 진출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이로써 버틀러대는 연이어 열린 4강전에서 켄터키대를 56-55로 물리친 코네티컷대와 4일 릴라이언트 스타디움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버틀러대는 전반 중반까지 15-20으로 끌려가다 셸빈 맥의 연속 3점슛과 자유투 득점을 앞세워 27-24로 경기를 뒤집었고 매트 하워드의 자유투 득점이 이어지며 34-28로 전반을 끝냈다. 버틀러대는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61-57까지 턱밑 추격을 허용했지만 하워드가 자유투로 귀중한 4점을 뽑으며 8점차 승리를 마무리했다. 한편 16강에서 지난해 챔피언 듀크대를 꺾었던 코네티컷대(3번 시드)는 4강전에서 켄터키대(4번 시드)를 상대로 56-55 1점차 승리를 따내고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합류했다. 켄터키대는 종료 1초를 남기고 코네티컷대의 샤바즈 내피어에게 반칙을 범해 자유투 2개를 내준 뒤 곧바로 브랜던 나이츠의 3점슛이 터졌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이승권 기자 sgl@koreadaily.com

2011-04-03

대학농구 명장, 잔 우든(1910-2010) 잠들다

농구뿐 아니라 스포츠계 최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잔 우든이 4일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6일 탈수증세로 UCLA 로널드 레이건 메디컬센터에 입원했던 전 UCLA 감독 우든이 자연사로 사망했다고 병원측이 밝혔다. 우든은 UCLA 브루인스를 10차례 우승으로 이끌며 대학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너스티를 구축해 유명세를 얻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는 7년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도 남겼다. 27년 동안 UCLA 지휘봉을 잡으며 통산 620승을 쌓아올렸고 이동안 88연승도 작성했다. 빌 월튼 커림 압둘 자바 모두 그의 손에서 배출된 수퍼스타들이다. 우든은 농구감독에 앞서 교육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가 쓴 저서 '성공의 피라미드'는 스포츠뿐 아니라 비즈니스 업계의 교과서로도 통한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됐다. 지난 2008년 인터뷰 때 그는 장수의 비결에 대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인생에는 당연히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점에 이르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최저점에 있다고 우울해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세상을 떠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나'는 질문에 "잘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스포츠계의 대스타였음에도 근면하고 겸손한 생활을 유지했다. 나이키가 거액계약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에게 솔직한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남을 도와라. 하루하루 매스터피스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우애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라. 좋은 책에 파묻혀라. 특히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한다. 삶을 살면서 복받은 것에 매일 감사하고 기도하라"라고 말했다. 본지에서는 박병기 전 중앙일보 기자가 1995년 한인언론으로 유일하게 그의 집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박 기자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에도 너무나 소박하게 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우든은 1910년 10월14일 인디애나주 마틴스빌에서 태어났다. 농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한 우든이었지만 집 근처에 농구 림이 있어 농구에 푹 빠지게 됐다. 현역선수 시절에도 그는 최고였다. 1927년 마틴스 고교를 인디애나주 우승으로 이끌었고 퍼듀 대학에서 1930년부터 32년까지 올아메리칸에 선정됐다. 4학년 때는 퍼듀의 전국 우승을 이끌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우든은 UCLA 지휘봉을 잡으며 3만5천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우든의 제자들은 그가 무엇보다 기초와 기본을 중시한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선수들에게 양말 신는 법부터 운동화 신는 법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가르쳤고 이를 실행하게 만들었다. 또 히피문화가 대학가를 몰아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선수들에게 머리를 항상 단정히 하고 수염을 깎게 했다. 그는 "평판보다는 자신의 캐릭터를 쌓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라"고 가르쳤다. 압둘자바는 "그는 감독보다는 부모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타적이었지만 규율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선수나 상대감독에게 한 번도 욕설을 한 적이 없었으나 심판을 향해서는 불만을 여러차례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든은 켄터키를 92-85로 꺾고 통산 10번째 우승을 거머쥔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우승 직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기자 200명이 그에게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던 일화도 있다. 우든은 자서전에서 198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해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원래 고등학교 교사였던 우든은 우연찮게 UCLA 감독으로 임명됐다. 미네소타 대학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으나 학교 측에서 이후 연락이 없었다. 결국 UCLA에서 연락이 왔고 LA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미네소타 관계자들이 "눈보라가 몰아쳐 전화선에 이상이 있었다"고 해명했고 우든도 미네소타에 가고 싶어했으나 UCLA에 이미 언약을 했다며 거절했다. 우든이 이끈 UCLA는 파죽지세를 달렸다. 당시 서부 팀들은 느리고 셋업 공격을 좋아했지만 우든은 속공 위주의 빠른 팀을 만들었다. 또 풀코트 프레스를 선보여 대학농구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가 첫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16시즌이 걸렸다. 그가 가르친 선수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프로농구에 진출하지 않은 이들도 변호사 의사 목사 공무원 등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원이 됐다. 그는 농구감독으로 쌓은 기록보다 이 점이 더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원용석 기자

2010-06-04

시라큐스, ‘스윗트 16’ 진출…웨스트버지니아도 워싱턴 꺾고 합류

하위 시드 팀들이 상위 팀들을 꺾는 신델레라 스토리가 계속되고 있는 ‘3월의 광란’, 란미대학체육협회(NCAA) 전국 토너먼트 16강이 확정됐다. 달콤한 꿈을 이뤘다는 뜻으로 ‘스윗트 16’이라 불리는 NCAA 16강은 1번 시드를 받은 팀 4개 중 시라큐스, 켄터키, 듀크 등 3개팀이 올랐다. 1번 시드 중에서도 가장 강팀으로 평가받았던 캔자스는 20일 경기에서 9번 시드인 노던 아이오와(UNI)에 67-69로 일격을 당해 거꾸러졌다. 대학 리그들 중 가장 많은 8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한 동부의 ‘빅이스트’는 1라운드에서 4승4패로 4개 팀(마큇트·노틀담·조지타운·루이빌)이 떨어져 나간데 이어 20일 빌라노바가 세인트 메리스(68-75)에 패해 탈락했다. 또 피츠버그가 제비어(68-71)에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1번 시드 시라큐스와 2번 시드 웨스트 버지니아는 만만치 않은 상대 곤자가(87-65)와 미주리(68-59)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16강에 합류했다. 올해 16강 진출 팀 중 9번 시드 이하가 4팀이나 되는 등 중위권 팀들의 반란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1번 시드 켄터키는 1·2라운드에서 폭발적인 경기력을 보여, 캔자스를 대신해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켄터키는 1라운드에서 16번 시드 이스트테네시 스테이트를 100-71로 꺾었고, 2라운드에서는 웨이크포레스트를 90-60으로 눌렀다. 김종훈 기자 kapsong@koreadaily.com

2010-03-21

BYU 2차 연장서 플로리다에 99-92 신승

브리검영(BYU) 쿠거스가 두 번의 연장전 접전 끝에 플로리다 게이터스를 99-92로 물리치고 32강에 올랐다. 서부 7번 시드인 BYU는 대학농구 64강 토너먼트 첫날인 18일 오클라호마 포드센터에서 열린 경기에서 가드 지머 프리뎃이 37점을 몰아 넣은 맹활약을 펼친 덕에 서부 10번 시드의 플로리다를 간신히 따돌렸다. 무려 17년 만에 토너먼트 2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쁨을 누린 BYU는 20일 서부 2번 시드인 캔자스 St.와 16강 진출을 다툰다. 캔자스 St.는 이날 15번 시드의 노스 텍사스에 82-62 큰 점수차로 이겼다. BYU-플로리다전은 치열했다. BYU는 후반 종료 6분을 남겨놓고 61-54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플로리다의 케니 보인튼에게 3점슛 4개를 얻어맞고 75-75 동점을 내주며 연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양 팀은 1차 연장전에서도 똑같이 6점씩을 주고 받으며 81-81로 비겨 2차 연장에 돌입했다. BYU는 프리뎃이 2차 연장에서만 연속 3점슛 포함 10점을 몰아치는 활약을 펼친 덕에 11점만 만회한 플로리다를 7점차로 따돌릴 수 있었다. 총 37점을 몰아친 프리뎃은 "나도 이렇게 슛이 잘 들어갈 줄은 몰랐다. 어차피 그 상황에서 슛을 안 던져도 지기 때문에 부담 없이 던졌다"고 말했다. 한편 캔자스 St.는 전반을 41-25로 앞서는 등 시종 여유있는 경기를 펼쳤다. 데니 클레멘테(17점 6어시스트) 커티스 켈리(15점 4블록슛) 제이콥 폴린(15점 3스틸) 등 주전들이 고른 활약을 펼쳤다. 캔자스 St.는 빅12에서 캔자스에 밀려 2위를 기록했고 서부조에서도 빅 이스트 챔피언인 시라큐스에 밀려 2번 시드를 받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꼽은 파이널 4(캔자스 캔자스 St. 켄터키 빌라노바)'중 한 팀다운 실력을 보여줬다. 김문호 기자

2010-03-18

'광란의 시작인가!' 대학농구 64강전 첫날 이변 속출

'광란의 시작인가!' 남자 대학농구 64강 토너먼트가 시작된 18일 하위 시드팀들이 상위권을 잡는 이변이 잇달아 펼쳐졌다. 서부 13번 시드인 머레이 St.가 '역전 버저비터'로 4번 시드의 밴더빌트를 66-65로 물리치고 22년 만에 32강에 진출했는가 하면 중서부조에서는 14번 시드의 오하이오가 3번 시드의 조지타운을 97-83으로 따돌리고 27년 만에 토너먼트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또 남부조에서도 6번 시드의 노터 데임이 11번 시드 올드 도미니언에 50-51로 져 탈락하는 등 파란이 일었다. 머레이의 승리는 한편의 기적같은 드라마였다. 머레이는 경기종료 12초를 남겨 놓고 64-63으로 앞선 상황에서 저메인 빌에게 파울을 범하며 자유투를 내줬다. 빌이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바람에 머레이는 64-65로 역전을 허용했다. 머레이는 종료 7초전 B.J. 젠킨스가 던진 3점슛마저 불발되면서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머레이는 천금 같은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곧바로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마지막 공격에서 다니로 토마스가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쏜 점프슛은 종료버저가 울림과 동시에 극적으로 림에 빨려 들어갔다. 오하이오의 반란도 예상 밖이었다. 미드-아메리칸컨퍼런스에서도 막판 상승세로 간신히 우승하며 64강전에 합류한 오하이오였기에 조지타운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하이오는 전반전을 시작하자마자 타미 프리먼이 3점슛을 성공시킨 후로 단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고 승리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가드 아몬 바셋은 32점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노터 데임을 따돌린 올드 도미니언도 15년 만의 토너먼트 첫 승이었다. 노터 데임의 올아메리칸 포워드 루크 하랑거디는 종료 13초를 남겨놓고 48-49로 추격하는 슛을 성공시켰다. 올드 도미니언은 키온 카터가 자유투 2개를 모두 넣으며 여전히 3점차를 유지했다. 노터 데임은 마지막 공격에서 카레톤 스캇이 3점슛을 놓쳤고 하랑거디가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 골밑슛을 넣었지만 1점차 간격까지는 좁힐 수 없었다. 한편 이변의 와중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꼽은 '파이널 4'는 무사했다. 남부 2번 빌라노바는 로버트 모리스를 73-70으로 물리쳤고 동부 1번 켄터키도 E.테네시 St.를 100-71로 물리쳤다. 서부 2번 캔자스 St.는 N.텍사스에 82-62 중서부 1번 캔자스도 레하이를 90-74로 꺾고 2라운드에 올랐다. 김문호 기자

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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