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삶의 뜨락에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페루 여행기 1

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 여행 가방을 풀어헤치니 스카프에서, 양말에서, 입었던 옷가지에서 반짝이는 하얀 모래가 떨어진다. 장엄한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며 사막을 지나 아마존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를 따라 페루를 돌고 온 며칠의 꿈 같이 지나간 날들이 아른거린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울림 깊은 말을 가슴에 안고 떠난 여행, 나는 가보지 못한 그 세계에서 과연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안고 나에게 도착할 것인가.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삶의 보석 같은 숨은 메시지는 과연 또 무엇일까. 자못 궁금해하며 떠난, 페루 여행, 벌써, 기억되어버린 어제를 떠올리며 페루에서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리마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보라색 감자 꽃이 핀 들녘, 낮은 담장, 흙길, 돌담, 데자뷔(언젠가 와 본 듯한 느낌) 마치 강원도 나의 고향에 와 있는 듯, 낯설지 않은 푸근함이 온몸에 감돈다.       알파카 양털을 뽑아내어 선인장이나 검은 옥수수, 온갖 산과 들의 자연을 채취하여 염색으로 곱게 우려낸 빨강, 파랑, 초록, 분홍 색색이 어우러진 망토와 치마를 입고 모자를 쓴 길가의 작은 키의 여인들을 바라본다. 태양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 그들의 순수함에 젖어 들며 푸른 하늘 아래 라마와 알파카를 기르며 소박하게 살았을 고대 잉카인들을 떠올려본다.     켜켜이 바람에 날아간 세월을 더듬으며 잉카의 유적지를 따라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해안, 정글 고산 지대 다양한 기후를 가진 페루의 음식은 어떨까 궁금했던 나에게 붉은 도자기 접시에 담아져 나온 마늘 수프와 새콤매콤한 세비체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손톱만 한 보라색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꽃들의 정원 같은 호텔에서 맛난 식사와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 페루 국토의 60%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정글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놀라며 굽이굽이 흐르는 우루밤바 강물을 바라보며 마추픽추를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산허리를 도는 기차의 꼬리를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나 나 자신에게 지금, 페루의 땅, 이 순간, 아마존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고 스스로 속삭이며 현실감의 설렘을 최고조로 끌고 와 다시 흥분하며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곤 하였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깎아지른 아찔한 절벽 길을 꼬불꼬불 돌아 도착한 마추픽추, 세상에나! 산꼭대기 위에 펼쳐진 잉카문명의 고대 도시 내 눈 앞에 펼쳐진 마추픽추는 아름다운 한 폭의 예술품이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 절벽의 다채로운 색, 수백 개가 넘는 계단식 밭들, 시계, 태양의 신전, 돌로 만들어진 창문과 탑과 안데스 산맥의 빙하를 녹여 수로를 만든 고대 잉카 문명인의 지혜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불가사의한, 신비와 아름다움 앞에 서 있는 나는 그저 경이로움과 놀라움에 압도되어 탄성을 터트렸다.     이 신비의 평화로운 땅도 스페인 침탈의 칼날과 전염병에 스러져 쇠퇴하고 말았다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울하다. 세계는 어디를 가보아도 피의 역사다. 땅따먹기에 굶주린 인간의 야욕과 만행에 환멸과 슬픔이 보인다. 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팬플룻을 부르는 악사들, 이 땅에 도착한 후, 가장 많이 들은 노래, 페루의 민요, 엘 콘도르 파사, 어려서는 그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색과 날아가는 철새의 노스탤지어에 빠져 좋아하던 노래가 피사로의 칼날에 사지가 찢겨 죽어간 잉카 영웅이 죽어 콘도르 새로 부활한다는 뼛속 깊은 슬픔을 안은 페루인의 희망의 노래 노래였다니……. 마추픽추 돌담을 걸어 석문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보니 높은 하늘 위에 독수리 한 마리 빙빙 날고 있다. 전쟁도, 살인도, 희생도 없는 세상은 영원한 꿈일까. 엘 콘도르 파사!, 처연하게 아름다운 가락이 바람에 날려 공중에 흩어진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콘도르 condor 콘도르 파사 페루 여행 노래 페루

2024-03-25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의 노래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마지막 작품은 흔히 백조의 노래에 비유되곤 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슈트라우스가 부른 백조의 노래였다. 모두 네 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마지막 곡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에’이다.   “그동안 우리는 슬픔도, 기쁨도 손을 맞잡고 견디어 왔다. 이제 방황을 멈추고 저 높고 고요한 곳에서 안식을 누리리.” 이렇게 시작하는 첫 구절에 노래의 주제가 압축돼 있다. 여기서 ‘잠’은 ‘죽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곧 죽음이 찾아오리니 그리하면 외로움 속에 길 잃을 일이 더 이상 없으리”라는 구절이 암시하는 듯 죽음은 또한 ‘평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후반부에 소프라노가 장대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드높은 목소리로 “오! 장대하고 고요한 평화여! 그토록 심오한 황혼이여!”라고 노래하는데, 이 부분을 들으면 일종의 전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외침이 깊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다가올 죽음을 찬양했다. 지극히 장대하고, 엄숙한 울림으로.   그는 곡을 이렇게 맺는다. “방랑에 지쳐버린 우리. 이것이 혹시 죽음이 아닐까?” 본래 원시에는 “저것이 혹시 죽음이 아닐까?”라고 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슈트라우스가 ‘저것이’를 ‘이것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당시 슈트라우스는 죽음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저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주 근접해 있는 것(이것)으로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생을 마감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아마 자신이 부른 백조의 노래가 먼 후세 사람들에게 이토록 깊은 감동으로 다가가리라는 것을 짐작하지는 못했으리라.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백조 노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당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반주

2024-03-04

"이민자 노래는 갈등·화해·축복"

한인이 리드하는 클래식 보컬 그룹 '미션 아리아(Mission Aria)'가 다음달 3일 벨칸토(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의 이탈리아 가창기법)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물씬 느끼게 해 줄 성악 공연을 연다.   '야생화들 속에서: 노래로 부르는 생의 찬미(Among the Wildflowers: A Celebration of Life Through Song)'를 타이틀로 여는 이번 공연은 2022년 창단된 이 보컬 그룹의 4번째 무대다. 장미 아이젠버그씨가 이끌고 있는 이 보컬 그룹에는 샌디에이고 오페라단의 타샤 쿤츠(Tasha Koontz)를 비롯한 수준급 성악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아이젠버그씨는 "본업은 의사지만 늘 노래에 대한 관심과 선망이 있었다. 샌디에이고 매스터코랄 합창단 활동을 하며 지난 10년 동안은 실력있는 성악가들에게 레슨을 받는 동안 다수의 클래식 보컬 음악가들과 교제하게 됐다"면서 "그들과 함께 클래식 보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서로의 기량을 무대에서 펼치기 위해 결성한 그룹이 바로 미션 아리아"라고 소개했다.     또 "창단 후 3번의 무대를 올렸는데 지역 안팎에서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해 클래식 보컬의 진수를 보여줘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며 "특히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 이민 49년을 자축하며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두 가지 문화의 축복을 경험하는 과정을 공연의 레퍼토리로 담았다. 이민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공연일시:3월 3일(일) 오후 4시     ▶장소: Incarnation Lutheran Church (16779 Espola Road, Poway 92064)   ▶입장료: 25달러 (12세 이하 무료)     ▶티켓 문의:Eventbrite.com이민자 노래 이민자 노래 클래식 보컬 보컬 그룹

2024-02-20

“함께 노래하며 건강해져요”

한국을 빛낸 미성의 테너로 유명한 옥인걸 교수와 미주 한인 1호 음악치료사 최병철 교수가 이끄는 합창단이 창단됐다.   음악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남가주치유합창단’은 현재 창단 멤버 30명을 모집 중이다.   옥 전 교수는 매사추세츠 로웰 대학(UMass Lowell)에서 32년동안 성악과장과 오페라감독으로 재직했으며 은퇴 전까지 한국 외에도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공연을 해왔다. 최 전 교수의 경우 노워크에 있는 메트로 주립병원에서 근무하다 1996년 캔자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숙명여대에서 한국 최초로 음악치료 대학원을 설립해 가르쳐왔다.     최 교수는 “작년에 은퇴한 후 남가주로 이주해 옥인걸 교수에게 개인 성악 레슨을 받으면서 가깝게 지내다 합창을 통해 커뮤니티에 봉사하자는 뜻을 나누게 됐다”며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합창단이 됐으면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음악치료학회장을 맡을 당시 치유합창단을 창단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최 전 교수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은 우리들의 건강과 안녕까지 누릴 수 있게 한다”며 “음악을 통해 이웃에게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합창 연습은 애너하임에 있는 베데스다 대학(730 Euclid St. Anaheim)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9시까지 진행된다. 첫 한 시간 동안은 치유하는 음악을 배우고 부르며, 나머지 한 시간은 전통 클래식 합창곡을 연습할 예정이다.   전공자, 비전공자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나이 제한도 없다.     ▶문의: healingchoir.org, (657) 681-9480 또는 healingchoir@gmail.com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게시판 노래 당시 치유합창단 음악치료 대학원 최병철 교수

2024-02-05

“함께 노래하며 봉사해요”…샬롬합창단 단원 배가 운동

오렌지카운티 한인 사회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합창단 중의 하나인 ‘샬롬합창단(단장 조영원, 지휘 강미영)’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단원 배가 운동에 나섰다.   창단 34년째인 샬롬합창단의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지난 수년 동안 유지해 온 혼성 합창단을 여성 합창단으로 되돌린 것이다. 올해부터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조영원 단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등 여러 상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남성 단원이 줄었다. 이후 신규 가입도 드물어 단원들과 함께 논의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조 단장은 “여성 합창단으로 돌아가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단원 배가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함께 즐겁게 노래하며 친목을 다지고 뜻 깊은 봉사 활동에 동참할 이는 누구나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샬롬합창단 단원은 50~70대 20여 명이다. 조 단장은 “노래를 부르면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샬롬합창단이 다시 도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샬롬합창단은 오는 11~12월 중 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 단장은 최근 새 임원진 구성을 마쳤다. 임원은 리사 권 부단장, 최재원 서기, 송성신 재무, 구경주 봉사부장 등이다. 합창단은 1일부터 정기 연습 시간과 장소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30분까지 가든그로브의 OC한인회관(9876 Garden Grove Blvd)에서 연습한다.   회원 가입 문의는 조영원 단장(714-351-4499)에게 하면 된다. 글·사진=임상환 기자노래 봉사 현재 샬롬합창단 여성 합창단 봉사 활동

2024-02-01

[이 아침에] 노래가 흐르는 길

색은 빛이 만들어낸 신비스러움이요, 노래는 소리가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새벽 햇살이 어둠을 몰아내고 새들의 노랫소리에 산과 들이 꿈에서 깨어나는 아침, 새날은 기지개 켜고 일어나 새로운 전설을 꾸미기 시작한다. 아기가 자라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사랑에 행복해 즐거운 듯 노래하고 춤을 추어 보인다. 이 땅 위에 사람도 말을 하기 이전부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으리라.   아기가 태어나 자라는 과정은 우리 생명의 지난날들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아기의 잉태 과정부터 정자가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는 생존경쟁이다. 이후 어머니 뱃속에서 성장하며 많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마치 인류가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탯줄이 끊기고 소리 내어 우는 때까지 인류의 창조는 진화의 순서이었음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모두 한 우물에서 왔다. 뿌리를 찾아가면 모두 한곳에 모이고 뿌리가 있기 전에 씨앗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노래, 창은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어 문자가 있기 이전부터 노래에서 노래로 전해져 민요, 설화, 무가, 판소리들로 오랜 옛날의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졌다고 한다. 노래는 언어로 발달하고 언어는 문자를 만들고 문자는 문학을 탄생시켜 우리가 즐겨 쓰는 시는 문학의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까.   시를 쓰는 시간이면 즐겁기만 하다. 모든 잡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각과 느낌을 마음에 담아 상상의 날개는 한없는 공간을 오르내리며 온 우주를 누빈다. 창작의 희열에 취했다가 깨어나 가끔은 독자가 되어 나를 돌이켜 보며 현실을 관조하기도 한다. 오감을 동원하여 감각적으로 그려 보이면 묘사를 하고 은유적으로 암시하면 독자도 나름대로 전율을 느껴 작가의 느낌을 상상 속에 더욱 선명하게 공명하여 시의 주제는 더욱 깊은 감동으로 전해진다.   달 밝은 밤 둘이서 언덕 위에 앉아 손잡고 부른 노래는 가슴을 울려 새로운 인생길이 열린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가족을 꾸려가는 삶은 한없는 기쁨과 어려움을 겪고 하늘이 모든 목숨에 내려준 임무였음을 지나고 난 세월을 돌이켜 본다. 이제 내 한평생 노래하고 말하고 글을 쓰게 되어 이 땅 위에 자국을 남기었다.   사랑이 있었기에 종교가 있고, 노래와 춤이 있었기에 예술이 있고, 이성이 있었기에 과학이 있어 우리는 영성, 감성, 이성의 세 다리를 짚고 고구려의 삼족오(다리 셋의 까마귀)처럼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의 막내는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낳고 키울 우주세대는 성스러운 믿음, 고귀한 예술, 우주를 나르는 과학으로 인류의 황금기를 맞을 것이다. 막내가 길러낸 우주세대는 인공지능을 가진 죽지 않는 기계 인간으로 우주 안에 보금자리를 찾아 별나라에서 노래 부르며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최용완 / 건축가·시인·수필가이 아침에 노래 예술 우주 잉태 과정 이후 어머니

2024-01-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감미로운 낭만을 위하여

눈이 온다 또 온다. 얼마나 오래 올 건지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창 밖을 바라본다. 눈이 오면 제 꼬랑지에 떨어지는 눈송이를 잡으려고 마루는 앞마당을 뛰어다녔다. 삼만이 아재는 마당에 수북한 눈을 모아 동네에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든다. 옥이언니는 당근으로 코를 만들고 숯덩이로 눈을 그렸다. 손재주가 좋은 아재가 사랑채에 엮어 매단 강냉이를 낫으로 다듬어 입을 만들면 눈사람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강냉이 낱알들이 눈사람의 이빨처럼 햇볕에 반짝였다.   리사는 눈만 오면 윈트 원더랜드(Winter Wonderland)라고 좋아한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담장 아래 쌓여 수정처럼 반짝이는 눈을 보며 손뼉을 친다. 겨울왕국에 나오는 공주가 되어 꿈과 환상의 나라로 빠져든다. 기분 좋은 날은 종이 왕관을 쓰고 엘사가 부른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를 흥얼거린다. 동생 안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마법을 감추며 숨어살던 엘사가 지난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표방하는 노래다.     ‘Let it go, let it go / Can’t hold it back anymore (중략) / Turn away and slam the door(떨쳐버릴 거야, 떨쳐버릴 거야. 더 이상 감추고 살 순 없어 / (당당하게) 돌아서서 문을 닫아버릴 거야)’ 마법에 걸려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을 향해 부르는 엘사의 노래는 콤플렉스를 감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면 미래로 갈 수 없다.     온종일 두 뺨이 빨개져서 주먹만 한 눈뭉치로 눈사람 만드는 리사를 보며 오늘 하루 온갖 시름 눈 속에 묻고 나 홀로 낭만(浪漫)에 젖기로 한다.     ‘굿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중략) /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중략) /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을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중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콧등이 빨게 지도록 하루 종일 함께 걸은 남학생 생각이 난다. 연모를 눈치챈 친구가 첫눈 오는 날 견우직녀가 만날 까치다리를 놓았다. ‘첫눈 오는 날 경북대 뒷산, 가 보면 누군지 안다.’ 이 쪽지를 가슴에 품고 눈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실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검정색 교모 쓴 얼굴 하얀 그 남학생을 만나러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쏜살 같이 달려갔다. 그 때는 핸드폰도 없어 연락 불통, 어른들 눈에 띄면 “어린 것들이 공부나 하지”라는 훈계 받는 시절. 뒷산은 황무지처럼 넓었다. 얼굴은 아리송한데 저 멀리 눈밭을 헤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얼굴. 할 말도 없고 물을 말도 없어 그냥 하루 종일 걷기만 했다. 도시의 끝에서 수성못 끝까지 수십 번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헤어질 시간!  집까지 오자 돌연 물었다. “의대에 합격했는데 해양선을 타고 싶어. 네가 원하면 해양선 안 타고 의대에 갈 거야’라고 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눈치 없는 내 대답! 첫눈 오는 날의 내 첫사랑은 그 길로 파토가 났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남학생은 마도로스가 됐다.   겨울왕국의 안나의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라는 말에 울라프는 “괜찮아, 내가 아니까, 사랑은 누군가를 너보다 먼저 두는 거야.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네가 원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 멋진 대답을 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몰라서 걸어온 그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 아파도 너무나 아파/ 사랑은 또 무슨 사랑’ 윤수현의 노래 ‘꽃길’을 시로 읊으며 눈 내리는 날의 감미로운 낭만을 접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낭만 아재가 사랑채 남학생 생각 엘사의 노래

2024-01-16

[열린광장] 감성과 정치

감성이란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성질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일한 자극도 사람에 따라 느낌과 반응이 다르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감수성이 풍부해 자극을 잘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극과 이에 대한 반응은 우리 인체에서도 일어난다.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면 방광과 요도가 연결된 신경이 뇌와 척추에 있는 배뇨 중추에 신호를 보내 배뇨감을 느끼게 해 소변을 보게 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또 눈물샘에서 나오는 눈물은 안구 건조를 방지하고 노폐물이나 이물질을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슬픈 일을 당하거나 서글픈 노래를 들을 때도 눈물이 난다. 이는 다른 형태의 자극과 반응이다. 가수 이미자씨의 오래된 노래 가운데 ‘모정’이란 곡이 있다. 옛날에는 그 노래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11살밖에 안 된 빈예서라는 소녀 가수가 부르는 ‘모정’을 우연히 듣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대중가요를 듣고 눈물짓는 내 모습이 스스로 민망하기까지 했다. ‘낯선 타국 바다 건너 열세살 어린 네가 오직 한번 꿈에 본 듯 다녀간 이 날까지….’ 어리고 가냘픈 목소리로  부르는 그 소녀의 노래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시니어가 되다 보니 내 마음도 약해졌나 보다. 소녀의 노래를 듣고 혼자 눈물을 닦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 속에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놀라운 감성으로 자극을 받게 되면 눈물은 나오게 마련이고,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해의 시작과 함께 추운 겨울도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주변 곳곳에는 소외 계층도 늘고 있다.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아마 이들 소외된 이웃들의 마음은 겨울바람처럼 스산할 것이다. 올해에는 하루속히 경제가 호전되어 이들에게도 관심과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큰 선거가 있다. 선거는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벤트다. 양국의 유권자들은 본인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올해는 모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녀 가수가 노래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자극을 주듯이 말이다. 소녀의 노래가 가슴 속에 무엇인가 치밀어오르는 듯한 자극을 주었듯이 선거가 거짓과 위선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감성의 힘으로 무장하면 정치권을 바로 세우는 것은 물론 우리 삶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백인호 / 송강문화선양회 미주회장열린광장 감성 정치 소녀 가수 자극도 사람 노래 가운데

2024-01-11

[열린광장] 지상의 예루살렘이 사라질 것인가?

“나 어젯밤 잠잘 때 한 꿈을 꾸었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의 곁에 섰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처음 부르는 노래. 마치 저 하늘에서 천사들이 화답하는 소리 같네.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문을 열고 노래하세.  호산나!  호산나! 부르세.”           에스 애덤스 곡 ’거룩한 성 (The Holy City)‘의 앞부분 가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젊었을 때 교회 행사와 다른 종교의 모임이 있을 때 초청받아 부르던 노래다. 어린아이들이 예루살렘 성 곁에 있는 교회에서 불렀기 때문에 천사의 노래처럼 들린 다는 뜻이다. 이 노래의 앞부분은 지상의 예루살렘이고, 뒷부분은 낮과 밤이 없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헌법상 수도다. 그런데 거룩한 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이 전쟁 국가가 되어가는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할 수 있을까?     애덤스가 꿈속에서 본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의 이미지가 이젠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한 예가 1980년대 초반 레바논과의 전쟁이다.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파였던 PLO의 도발이 이어지자 메나헴 베긴의 이스라엘 리쿠드 정부는 8만 명의 병력과 1200대의 탱크를 앞세워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 전쟁으로 레바논에서 사망자 1만7000명, 부상자 3만여 명이 발생했다. 승리한 이스라엘에도 큰 화를 불러 왔다.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가 난민 캠프를 습격, 어린이와 노인, 여성 등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하루에도 수 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에는 3만~ 4만 명의 하마스 대원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200만 명의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 있다. 날마다 쏟아지는 포탄에 애꿎은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지금 가자 주민 200만 명은 식료품과 식수, 연료 공급이 끊긴 상태다.     다시 예루살렘 노래를 살펴보자. 애덤스가 다시 꾼 꿈속의 새 예루살렘은 낮과 밤이 없는 천국이었다. 이는 천국을 말한 것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다. 이런 탓인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는 예루살렘 도시의 명성과는 아랑곳없이 가자지구에 포탄을 퍼부었다.   기독교인의 성지는 이스라엘이요, 그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이라고 믿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으니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에 포탄을 퍼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초등학생 수준의 생각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다.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여기고 이를 통해 휴전의 실마리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부른 노래처럼 거룩한 예루살렘을 부르게 될 때 이 노랫소리가 천사의 노래가 되어 이스라엘에 평화의 왕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만이 전쟁을 끝내는  길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예루살렘 예루살렘 노래 예루살렘 도시 옛날 예루살렘

2023-11-24

"즐겁게 노래하며 지역사회 기여해요"

아리랑합창단(이하 합창단, 단장 김경자)이 한인 단체와 교회 등에 후원금 5000달러를 전달한다.   합창단은 내달 4일(월) 오전 10시30분 부에나파크의 로스코요테스 컨트리클럽 연회실에서 송년 모임을 겸한 기금 전달식을 갖는다.   합창단은 이날 효사랑선교회(대표 김영찬 목사),  오렌지카운티 장로협의회(회장 김용진), 싱글맘 지원 단체를 이끄는 이선자 목사, 일본계 교회 굿셰퍼드 교회의 박용수 목사 등에 각 1000달러를 전달한다고 밝혔다. 또 이태희 목사(주심교회), 데이비드 김 목사(텍사스 교회)에게 각 500달러의 후원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합창단은 지난 9월 30일 성공회 가든그로브 교회에서 개최한 제10회 정기 연주회 수익으로 후원금을 마련했다. 지난 2019년 이후 4년 만에 열린 연주회는 약 300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김경자 단장은 “단원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모은 후원금이 단체, 교회의 활동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라며 “즐겁게 노래하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길 원하는 이의 가입을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송년 모임과 단원 가입 관련 문의는 김경자 단장(714-915-2399) 또는 차귀옥 총무(714-222-8381)에게 하면 된다. 글·사진=임상환 기자지역사회 노래 이태희 목사 이선자 목사 박용수 목사

2023-11-21

[열린광장] 10월을 노래한다

나팔꽃처럼 아름다운 9월이 지나가고 관상용 급송화가 피는 10월이 찾아왔다. 10월을 뜻하는 영어 ‘옥토버(October)’는 라틴어로 여덟 번째를 의미한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가 10개월로 나눴던 1년을 12개월로 바꾸면서 8번째 달이었던 옥토버가 열 번째 달이 된 것이다. 이는 수학에서 8각형을 옥타콘(octagon), 음악의 8도 음정을 옥타브(octave)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0월은 매우 특이한 달이다. 10월엔 미국 대통령이 6명이나 태어났고, 백악관의 초석이 놓인 달이며, 미국을 발견한 콜럼버스 기념일도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가 1924년 10월 첫날에 태어났다. 이에 앞서 1735년 10월 30일에는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1822년 10월 2일에는 19대 루터퍼드헤이스, 1829년 10월 5일엔 21대 체스터 아터, 1858년 10월 27일에는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태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890년 10월14일은제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들이 출생한 날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과 관련 10월은 비극적인 달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의 총탄에 숨진 10·26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 하나는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을 대표하는 백악관의 초석이 1792년 10월 13일 놓였다는 것이다. 초석의 길이는 175피트, 높이는 85피트에 달한다. 그리고 탐험가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에  도착한 것이 1492년 10월12일이다.     10월은 한국에도 기쁜 날이 많다. 1일은 국군의 날이고, 3일은 개천절, 그리고 9일은 한글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10월에는 세계적으로 많은 유명인이 출생하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 달이다. 1813년 10월 10일에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쥬세퍼 배르디가 태어났고, 1859년 10월 20일엔 미국의 철학자 존 드위가 출생했다. 또 1881년 10월 25일엔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1885년 10월11일엔 프랑스의 노밸상 수상자 프랑수아 모리악이, 1888년 10월16일은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유진 오닐이 태어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10월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1867년 10월18일은 알래스카에서 미국 국기가 공식으로 게양된 날이다.  둘째, 1879년 10월19일엔 토머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전구 실험에 성공했다. 셋째, 1886년 10월 28일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설치됐다.     15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의 정문에 그 유명한 95개 조의 격문을 붙인 날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열린광장 노래 대통령 시어도어 박정희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2023-10-01

[필향만리] 盡美盡善(진미진선)

공자는 순임금 시대의 음악인 ‘소(韶)’에 대해서는 “지극히 아름다우면서 지극히 선하기도 하다(盡美矣又盡善, 矣 어조사 의, 又 또 우)”고 평하였다. 그러나 주나라 무왕 때의 음악인 ‘무(武)’에 대해서는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선하지는 않다”고 평하였다. 순임금의 음악은 평화로운 시대에 순후한 본성에 바탕을 두고서 발생한 음악이지만, 무왕의 음악은 정벌과 징계로써 천하를 얻는 무력 시대의 음악이기 때문에 소리는 아름답지만 내용이 선하지는 않다고 평가한 것이다.   음악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는 망국의 한을 담은 “울밑에선 봉선화야…”가 유행했고, 새마을운동 때에는 ‘건설의 의지’에 반한다고 판정받은 음악은 금지곡이 되기 일쑤였으며, 5·18 당시에는 분노가 서린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류의 운동권 노래가 유행하였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이 왜 K팝에 열광하는지를 안다면 그들이 갈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세계의 음악이 된 K팝이 훗날 ‘진미진선(盡美盡善)’, 즉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지극히 선한 음악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진미진선하게 살면 그런 소망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주나라 무왕 정벌과 징계 운동권 노래

2023-08-25

[문화산책] 오문강 시인의 '사람사랑' 노래

오문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선생님 꽃 속에 드시다’를 가슴으로 읽었다. 말과 글이 터무니없이 짧게 토막 나는 ‘외마디’시대에 온돌방 아랫목처럼 넉넉하고 푸근한 시를 읽으니 마음이 온통 따스해졌다. 신작 시 39편과 1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 이 시집은 제28회 ‘미주문학상’ 수상을 자축하는 의미도 담고 있어 각별하다.   오문강 시의 바탕은 진득한 ‘사람사랑’이다. 작품마다 구석구석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 있다. 사랑의 대상은 아버지, 손자 손녀 같은 가족부터 오랜 친구, 국어 선생님, 문단의 어른들, 글 벗 등 다양하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인간이 아니라, 시인의 삶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구체적 인물들이다. 시인은 이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옷깃을 여민다. 사실 시의 본질은 그렇게 맺어진 관계를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일의 진솔하고 정직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오문강 시의 또 다른 미덕은 식물성 사유가 빚어내는 담백하고 깊은 맛이다. 아버지께서 “나 본 듯이 보거라”며 심어주신 향나무처럼 질박하다. 조미료를 치지 않은 음식의 참맛 같다. 그의 시에 나무나 꽃이 유달리 많이 나오는 것은 그 투명하고 겸손한 생명력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친구에게 말한다, “그 속에 우리들이/한 그루 정직한 나무로 서있구나”라고. 시인은 ‘정직한 나무’로 늘 건강하고 향기롭기를 바라는 것이다.   식물성 사유의 정점은 떨어진 꽃잎을 제자리에 붙이려 애쓰는 손녀의 모습에서 아름답게 드러난다.   “허리 굽혀 자세히 살펴보니/ 왼손엔 떨어진 꽃잎이 한장 들려 있고,/ 오른손으로 옮겨 쥔 꽃잎 한장을/ 제 자리에 갖다 붙여주려고 애를 쓰는데 안 붙는다/ 안 붙는다!”-〈안 붙는다〉 부분   이 시집의 마지막 묶음인 3부와 4부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상 떠난 문단 어른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친하게 사귄 글 벗들에 대한 신뢰, 나성(LA) 한인 글동네 사람들의 훈훈한 풍경, ‘미주한국문인협회’ 탄생 무렵의 낭만과 열정 등으로 가득 찬 시들과 산문은 ‘오문강 식 사람사랑’이면서 동시에 소중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그립고 반가운 이름들이다. 우리 미주한인문학의 기초를 다진 고마운 분들이다. 특히 이미 세상 떠난 분을 그리는 시를 읽노라면 자연스레 눈길이 하늘을 향한다. 결국 이런 글들이 모이고 쌓여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 시집은 오문강 시인의 시론(詩論)과 철학을 정리한 책으로도 읽힌다. 시에 등장하는 문단 어른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시 정신을 요약하는데, 하나같이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이다.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오문강 시인의 가장 큰 덕목은 아주 편안하고 쉬운 말로 핵심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힘이다. 잔재주를 부리거나 지나치게 꾸미지 않는다.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교수(서울대 국문과)의 평은 정확하다. “오문강 시인의 작품들은 일견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을 그려놓은 것 같지만 마치 물 한 방울에 세계를 담듯이 삶이라는 문제를 숙고하게 한다. 평이한 듯한 진술 속에 시인의 비범한 성찰적 시선과 태도가 돋보인다.”   오문강의 시는 요새 젊은 시인들의 ‘현대시’처럼 어려운 시어(詩語) 범벅으로 난해한 시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려운 낱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글이라기보다 말에 가깝다. 그래서 편안하다. 그냥 평소에 쓰는 편안한 입말로 툭 툭 던지는 언어 안에 깊은 뜻과 울림이 담겨있다. 마치 씹을수록 맛깔 나는 어머니의 말씀처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사람사랑 시인 사람사랑 노래 식물성 사유 역사 기록

2023-08-17

[문화산책] 내 마음을 울리는 노래들

세상에 수많은 음악과 노래가 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축축하고 뻐근해지는 노래가 있다. 어떤 때, 가령 깊은 밤중에 들으면 울컥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각별한 노래가 있겠지만, 내게는 아르헨티나의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하며’,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 미국의 흑인 가수 마리안 앤더슨이 부른 ‘깊은 강’, 일본 엔카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의 마지막 노래 ‘강물의 흐름처럼’, 사다 마사시가 원자폭탄의 잔인함을 노래한 ‘히로시마의 하늘’ 같은 명곡들이 그런 노래들이다.   한국노래 중에는? 글쎄?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 ‘금관의 예수’, ‘친구’, 조용필의 명곡 ‘꿈’, 그리고 나애심의 ‘미사의 종’, 재즈가수 박성연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른 ‘바람이 부네요’ 등등….노래 잘하기로 이름난 패티 김, 이미자, 나훈아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기 때문일까?   음악은 즐겁고 흥겨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청승맞고 구슬픈 노래들이다. 무슨 노래가 이렇게 궁상맞고 처량하냐고 투덜거린다. 이런 노래가 내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래의 비밀은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지닌 진동과 듣는 사람의 마음의 떨림 사이에서 발견된다.”-칼릴 지브란   “가장 달콤한 노래는 가장 슬픈 생각을 담은 노래이다.”-퍼시 비쉬 셸리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이 노래들은 가수의 목소리에 타고난 애수가 깔렸고, 노래 내용에 삶의 짙은 냄새가 배어 있다. 잔재주 부리지 않고, 가슴에서 우러나 치고 올라오는 소리다.   노래를 부른 이의 인생 자체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길고 험난한 망명생활도 그렇고, 사다 마사시의 인생 굴곡도 그렇고….     아말리아의 일화도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999년 10월 6일,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인 ‘파두(fado)’를 세계 정상의 음악으로 끌어 올린 국민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세상을 떠나자, 포르투갈 정부는 사흘 동안의 조의 기간을 공포했고, 조기를 달았다.   아말리아의 장례식은 리스본 대성당에서 생중계되는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신부님의 미사 집전이 끝나고, 아말리아의 관을 여섯 명의 운구위원이 어깨에 메고, 성당 정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대성당 안에 있던 모든 조문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아말리아의 관을 향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운구위원들이 성당의 긴 복도를 걸어서 나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박수소리가 계속 성당을 가득 채웠다.   성당 정문이 열리고, 아말리아의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모든 시민도 똑같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전통 복장을 한 기마병의 호위 속에 장지로 가는 길 양쪽에 끝없이 줄을 지어 인산인해를 이룬 리스본 시민도 모두 박수를 보냈다.   “워낙 포르투갈 국민이 아말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살아온 인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 약속 없이 다 박수를 쳤다”고 포르투갈 사람들은 말했다.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마지막 길을 간다. 이런 감동적 대접을 받을 가수가 우리에게도 있을까?   내 식으로 표현하면, 이들은 빼어난 광대다. 광대라니? 예술가를 우습게 보는 거냐? 천만의 말씀. 광대를 낮춤말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본디는 그렇지 않다. 광대(廣大)는 글자 그대로 ‘넓고 큰’ 사람이다. 자신을 한껏 낮출 줄 아는 예인(藝人)이다. 그렇게 보면,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K-팝 스타들도 멋지고 아름다운 광대들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마음 노래 음악과 노래 국민가수 아말리아 포르투갈 전통음악

2023-08-03

[하루를 열며] 민족의 노래 음악회

엊그제 6월의 따뜻한 주말, 북부 뉴저지의 한인 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된 나눔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우리의 조국과 민족’이라는 주제로 음악회를 열었다. 내가 나가는 교회의 지휘자이기도 한 나눔하모니를 이끄시는 단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음악회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 청중들과 같이 불렀던 곡들은 우리가 학교의 기념식 때마다 늘 부르던 곡들이라 몇십년이 지났으나 그냥 술술 불렸다. 애국가부터, 삼일절 노래, 유관순 누나의 노래, 광복절 노래, 6·25 노래 등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흙 다시 만져보자!‘로 시작되는 광복절 노래와, 6·25 전쟁의 참혹함이 노랫말에 들어 있는 ‘전우야 잘 자라’는 지금도 내 가슴 한쪽 언저리에 얹혀있다. 솔리스트들이 부른 고향 생각, 비목, 가고파 등의 가곡들도 고국의 산천을 그려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세대는 나라 잃은 아픔을 잘 알지 못하고 살다가 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지만 ‘흙 다시 만져보자’라는 노랫말 속엔 나라를 빼앗기고 뿔뿔이 여기저기 떠돌며 내 나라를 찾아 내조국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피 같은 한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를 찾아 고국의 땅을 밟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그 노랫말 속에 다 들어있음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저 한인 2세들도 우리의 어릴 때처럼 연주하고 있는 그 노래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하는 어른들의 설명으로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불렀던 몇십년 전의 노래가 언젠가는 가슴으로 절절히 와 닿는 날도 있으리라. 한 번, 두 번, 기회가 닿는 대로 부르고 또 부르면 그들의 머릿속에도 자동으로 입력되고 어디서부터였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한국 사람의 피가 시작된 조국, 대한민국을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황이 여러 나라를 순방할 때,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서는 그 방문국의 땅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상징적이지만 방문하는 나라를 축복하며 사랑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조국의 흙 속에는 우리의 DNA도 섞이어 있을 것이며, 그 땅엔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사는 둥글고 넓은 따뜻한 모성이 있어, 길은 멀어도 바다를 향하여 기어가는 거북이처럼 늘 내 조국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진중 가요인 ‘전우야 잘 자라’라는 이 노래도 우리 어릴 때는 씩씩하고 명쾌한 행진곡처럼 신나게 불렀으나 오늘 다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의 목으로 차오른다. 죽은 전우의 시체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급박하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나라의 존폐를 어깨에 짊어진 그들의 아픈 심정이 만져지는 시간이었다.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4절) 터지는 포탄을 몸으로 막으며 전진해야 하는 그 젊은이들의 목숨값이 아니었다면 선진국 반열에 선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내 앞줄에 앉아 있는 연주하는 학생들의 학부모인듯한 젊은 부부를 자꾸 훔쳐보게 된다. 그 노래들을 아나, 모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 따라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아이들 또래인 그들을 보며 내 아이들도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긴 이런 노래들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을 전혀 모르는 손자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쳐 줄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음악회 민족 광복절 노래 삼일절 노래 우리 민족

2023-07-03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