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시절을 노래하다
사실 저는 서양에서 하이쿠의 위력 또는 매력을 2000년대 초반에 미국의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작은 도서관에서 ‘하이쿠’ 창작 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영어로 하이쿠를 읽고 쓰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무엇이 서양인에게 하이쿠가 매력적으로 다가갔을까요? 하이쿠에 나타나는 선시(禪詩)의 분위기가 작은 깨달음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우리 시조(時調)와 가사, 고려가요, 향가 등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시는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요? 어떤 매력으로 소개되고 있을까요?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대부분의 시조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정몽주)’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김상헌)’ 같은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노래가 많았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정철)’이나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황진이)’ 같은 교훈성이 있는 시조가 많았습니다.
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만 학생들은 시조의 매력에 빠지기 어려웠습니다. 문학 교육이 오히려 문학 향유에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절묘한 가락을 담은 시조를 가르치고 기억하게 한다면 시조를 즐기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겁니다. 여러 작가가 노력하고 있지만, 시조는 우리 문학에서 사라져가는 느낌입니다.
좋은 시조나 가사, 고려가요, 향가를 문학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라 향가가 일본의 만엽집처럼 많이 남아있다면 좋을 텐데요. 현존하지 않는 향가집 삼대목이 발견되기 기대해 봅니다.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향가 14수에서 향가의 매력을 다 찾아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저는 ‘삶과 죽음이 여기에 있음에 나는 간다고 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가(제망매가)’에서 누이를 잃은 깊은 슬픔에 동감합니다.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고려가요는 우리의 감정을 더 깊이 드러냅니다. 민요와 이어지는 깊은 연계도 느낍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가시리)’나 ‘살어리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청산별곡)’의 운율과 솔직함을 만납니다. 시조도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황진이)’ 등의 묘사에서 낭만을 만납니다.
향가에서 고려가요로, 다시 시조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우리 노래들입니다. 시조의 매력을 잘 살피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도 알리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넘어서는 공통의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미처 알리지 못한 매력을 찾아내어 세계 속으로 잘 소개해야겠습니다. 좋은 번역이 필요한 이유도 되겠습니다. 시조(時調)의 시는 때라는 뜻입니다. 한 시절을 노래하는 시(詩)가 시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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