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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내가 노래하는 국가<國歌>

수필

 
‘숙녀, 신사 여러분! 모두 모자를 벗으시고, 기립해 주십시오. 오늘은 OOO-미준-류-OO 양이 국가를 부를 것입니다.’
 
지난 5월 초 LA를 떠나, 뉴멕시코로 이사 간 손주들을 만나러 갔을 때 마침 ‘아시안·태평양 문화유산의 달’을 기념하는 야구 경기가 아이소토프 (동위원소라는 뜻) 경기장에서 열렸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기보다는 손녀가 미국 국가를 독창하는 모습을 관람하기 위한 참석이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운동 경기를 직접 관람한 경험이 많지 않고, 관심도 없었던 편이다. 그렇기는 해도 선수들이 온 힘을 다해서 팀을 위해 뛰는 모습은 그들이 하늘로 쏘아 올리는 정열의 함성과 함께 희망을 약속하는 것 같아 흥분된다. 그뿐 아니라 관중석에 앉아서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간에 선수들을 응원해 주는 정서가 부럽고, 아름답다.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아시안·태평양 문화유산의 달’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태평양계 여성들이 빨간 꽃으로 머리단장을 하고, 하와이안 훌라 춤을 추었다.  
 
5월이 아태 문화유산의 달이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인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것이 5월(1843년)이었고,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져 있던 대륙횡단철도가 연결되어 완성된 것이 5월(1869년)이었는데, 이 공사에 중국인 노동자들이 투입되어 7년에 걸쳐 일 한 것을 기리는 의미도 있다. 1978년 카터 대통령 때 일주일 동안 축하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것이 1992년에 한 달로 연장되었다. 아태계는 아시아, 폴리네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한다.  
 
경기가 시작된다고 방송이 울리자, 아이는 투수판에 섰다. 가족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서서, 손 키스를 날린 후, 제가 선 자리에서 400피트는 족히 넘을 듯한 경기장 다른 쪽 끄트머리에서 늠름하게 휘날리는 미국 국기, 뉴멕시코 주기를 향해 반듯하게 차렷 자세로 섰다. 두 옥타브를 아우르는 미국 국가가 아이의 약간 굵고 부드럽지만, 확신에 찬 음성을 타고 편안하게 마이크를 통해서 야구장과 객석을 넘어 세상으로 퍼졌다.  
 
우리 가족을 비롯한 남녀노소 관중들, 자리를 찾아 이동 중이던 사람들, 솜사탕과 초록색 드링크를 팔러 다니던 상인들도 모두 멈추어 섰다. 객석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기장 잔디 위 곳곳에는 팀별로 모여 선 선수들이 우리처럼 차렷 자세로 펄럭이는 국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은 심장 위에 손을 얹고 국기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의, 국가를 부를 때의 경건함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켜지는 에티켓이다. 공식적인 자국 행사나 국제 행사 때에 관련 나라의 국기를 게양하고, 해당 국가의 국가를 제창한다. 이 때, 남자는 모자를 벗어서 오른손으로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모자와 오른손을 얹는다. 제복을 입은 경우, 거수경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여자는 모자를 벗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린 시설을 서울 용산구에서 보냈는데, 근방에 미군 부대가 있었다. 오후 5시, 혹은 6시쯤에는 미국 국가와 애국가가 들렸다. 어린이들도 놀이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는 어른들을 본떠 엄숙하게 차렷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런데, 만약, 국가를 합창으로 무대에서 부른다면  이때도 관객은 기립해야 할까? 실제로 합창단이 무대에서 국가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관객의 절반 정도는 기립했고, 나머지는 어정쩡하게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객석에 있던 우리 가족의 의견도 갈렸다. 애국이라는 의미를 갖고 부른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음악 작품의 하나로 불렀던 4부 합창곡이었다. 기립해서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강세였다.
 
야구장이 있는 공원에 아이소토프라는 이름이 붙여진 내막은 TV 시리즈 ‘심프슨 가족’시즌 2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역사적, 정치적으로 그 지역에는 핵 연구소가 있기에, 아이소토프라는 이름을 밑받침하기도 한다. 아이소토프는 과학과 의학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번 방문으로 ‘핵’, ‘과학’, ‘실험’이라는 말들은 서로 줄 긋기를 하면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종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모든 치료의 공정성, 전쟁 방어의 정당성, 그 외에도 전쟁 종결을 유도하는 역사적 타당성도 보여 주었다.  
 
나의 전공인 종양 방사선학은 ‘동위원소’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이다. 그래서 암을 완치할 수 있는 동위원소를 발견했던 과학자들에게 감사하다. 핵 때문에 인류가 고통을 당했다는 말도지만, 반대로 핵 때문에, 집단적인 고통이 종결된 예도 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가사키,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조선인, 중국인들의 고통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속하였을 것인가?  
 
아이소토프 공원, 국기와 국가에 관한 이야기가 나의 숨겨진 세상에서 잠자고 있다가 안개를 걷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위원소들과 에너지, 핵, 암 치료 기계들을 세상 밖으로 초대해 주지 않았던 과거 수십 년 동안, 우리 대중은 파편적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손녀는 별들이 장식된 국기를 칭송하는 국가를 부르고, 나는 내 아버지의 나라, 내 모국의 애국가를 손녀의 국가에 덧붙여 부른다. 그리고 더는 새로운 전쟁이 없기를, 지금 진행 중인 전쟁들이 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한다.  

류 모니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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