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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축제, ‘더 CJ컵 바이런 넬슨’, 5월 2일 개최

PGA투어 정규 대회인 '더 CJ컵 바이런 넬슨'이 오는 5월 2일(목)부터 나흘간 텍사스주 댈러스에 위치한 TPC 크레이크 랜치에서 열린다. '더 CJ컵 바이런 넬슨'은 156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총 상금 950만 달러 풀필드 대회로, 우승자에게는 우승 상금 이외에 페덱스컵 포인트 500점과 2년의 투어 시드 그리고 당해 년도 시그니처 대회 출전 자격이 부여된다.   CJ는 ‘더CJ컵 바이런 넬슨’ 개최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대한민국 남자 골프선수들의 글로벌 대회 도전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골프와 골프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CJ는 임성재, 김시우 선수를 비롯하여 PGA, KPGA, LPGA, KLPGA 등 각종 투어에서 활약하는 18명의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CJ 소속 선수들은 CJ와 PGA 투어가 파트너십을 맺은 2016년 이후 PGA 투어 11승, KPGA 12승 등 주요 투어에서 25승 이상을 거두는 성과를 내며 한국 골프 발전을 이끌고 있다.       바이런 넬슨과 파트너십   더 CJ컵은 지난 2017년을 시작으로 3년간 클럽 나인브릿지(제주)에서 개최됐고, 이후 3년간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미국 네바다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열렸다. CJ그룹은 지난해 9월, 2024년부터 10년간 바이런 넬슨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계약을 맺으면서 더 CJ컵은 PGA투어에서도 유서 깊은 대회로 새롭게 태어났다.   ‘더CJ컵 바이런 넬슨’은 1944년 시작된 댈러스 지역의 대표 대회로 1968년부터 PGA 투어 최초로 골프계 레전드 바이런 넬슨의 이름을 딴 대회로 진행되었다. 이 대회는 텍사스주 댈러스 지역의 비영리 단체인 댈러스 세일즈맨십 클럽(Salesmanship Club of Dallas)이 주최하는데, 매년 20만 명이 넘는 관중이 찾으며 지역 축제로도 유명하다. 특히 CJ소속 이경훈 선수는 2021년과 2022년 우승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고, 배상문과 강성훈까지 우승을 기록한 바 있어 국내 골프 팬들에게도 익숙한 대회이다. 이번 시즌에도 디펜딩 챔피언인 제이슨 데이를 비롯한 PGA투어 대표 선수들과 CJ그룹 소속 선수인 임성재, 김시우, 이경훈, 안병훈까지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놓고 선전을 다짐한다.       브릿지 키즈와 ‘더 CJ컵 바이런 넬슨’에 녹여진 더 CJ컵의 유산 먼저, 2017년부터 진행해온 브릿지 키즈 프로그램을 동일하게 운영한다. 브릿지 키즈는 PGA투어 선수들이 골프 꿈나무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원포인트 레슨을 하며 유망주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더 CJ컵만의 CSR 프로그램이다. 이번 시즌도 기존과 동일하게 사전 모집 후 내부 선발과정을 거친다. 브릿지 키즈 참가를 희망하는 골프 꿈나무들은 오는 15일(월)까지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선발된 인원들은 5월 1일(수) 대회장에서 안병훈 선수를 비롯하여 PGA투어 선수들과 유익한 시간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CJ그룹은 브릿지 키즈에 참가하는 꿈나무들에게 ‘더 CJ컵 바이런 넬슨’ 대회의 모든 라운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와 대회 유니폼, 모자 등 기념품을 제공해 골프 꿈나무들의 밝은 미래를 응원할 예정이다. 브릿지 키즈는 아래의 신청하기 버튼을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더불어, 더 CJ컵의 트로피를 ‘더 CJ컵 바이런 넬슨’에도 그대로 사용한다. 직지심체요절과 한글을 모티브로 탄생한 트로피는 모든 출전 선수의 한글 이름을 각인했던 지난 대회와 달리 ‘더 CJ컵 바이런 넬슨'에서는 역대 우승자들의 이름을 새겨 의미를 더한다.     비비고 브랜드의 향연 또한, 현장을 방문하는 전 세계 팬들을 대상으로 한국 음식을 선보이고 맛볼 수 있는 ‘비비고 컨세션’도 운영하며 비비고 주력 제품인 만두를 비롯해 다양한 한식의 맛을 효과적으로 소개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러한 다양한 현장 이벤트를 통해 ‘한식으로 더 맛있는 일상’을 뜻하는 ‘Live Delicious’의 가치를 전달해 비비고 브랜드를 선두로 K-푸드 세계화에 한층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골프 넬슨 대표 대회 시그니처 대회 바이런 넬슨

2024-04-12

[프리즘] 우주 대항해 시대

22일 우주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의 우주선 ‘오디세우스’가 달에 착륙했다. 미국으로서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2년 만의 달 착륙이고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기업의 우주 탐사는 낯설지 않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은 이미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우주로 진출하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착륙하자 빌 넬슨 연방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오늘은 나사의 상업적 파트너십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날”이라고 자축했다. 새로운 형태의 우주 탐사가 성공 궤도에 올랐다는 선언이다. 나사는 우주선 등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민간 기업에 맡겨 경쟁을 유도해 적은 비용으로 속도를 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수립해 달 탐사 프로젝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오디세우스도 아르테미스와 연계한 ‘민간 달 탑재체 수송 서비스’(CLPS) 계획의 일부였고 나사가 1억1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아르테미스의 목표는 오디세우스의 착륙점에 들어있다. 오디세우스가 내린 곳은 물 공급원이 될 수 있는 지하 얼음이 존재하는 달 남극 근처다. 이번엔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지만 다음 달에는 지하 얼음을 시추할 우주선을 보낸다.     물이 있으면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 또 수소와 산소를 분리해 로켓 연료로 사용하면 다른 행성으로 가는 데 필요한 우주 주유소, 우주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희토류 광물과 헬륨-3 채굴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우주 광산 개발과 식민지 건설 회사인 ‘웨이랜드-우타니’ 같은 기업이 이미 문을 연 겻인지도 모른다.   나사는 2026년에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3단계에 들어가고 궁극적으로는 정기적으로 우주 함대를 보낼 계획이다. 이미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 기업은 우주 배달 서비스를 목표로 나사와 협력해 세 번째 달 탐사선을 발사할 예정이다. 시간이 흐르면 2개월 이상 거주가 가능한 일종의 달 정착촌이나 달 농업, 달 경제 같은 말이 익숙해지는 때가 올 수 있다.   1960년대 달 탐사는 냉전 시기 국가 경쟁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패권 경쟁의 연장이었고 공포에 휩쓸린 측면도 있다. 핵무기가 대기권을 벗어났다 재진입하는 공간인 우주는 공포와 파괴를 연상시켰고 대중문화 속의 외계인은 온통 기괴한 외모에 가늠할 수 없는 파멸적 힘을 가진 존재로 그려졌다. 그 시대 달 착륙은 적국을 압도하는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능력의 과시이기도 했다. 달은 국가의 힘이 뻗어갈 수 있는 최대치인 점이어서 어떤 의미에서 달에 갔다 오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수 있다.   이제 달은 찍고 오는 점이 아니라 활동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당장은 기술과 경제지만 정치와 생활, 문화가 확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달 조각 125개가 오디세우스에 실려 도착함으로써 달 최초의 예술작품이 된 것은 상징적이다.       나사가 민간 기업과 손잡고 우주 진출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것은 왕실이 탐험가를 후원하면서 지리의 발견과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대항해 시대는 결국 유럽의 세계 패권 장악으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론 미국의 개국으로 귀결됐다. 지금이 우주 대항해 시대의 출발점이라면 이 흐름에 올라타느냐 탈락하느냐가 오랜 시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인도와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이 경쟁적으로 달 착륙에 뛰어든 이유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한국 신문의 1면 톱 제목은 '인간 달에 서다'였다. 신문 1면 톱에서 '인간 달에 살다'라는 제목을 보게 될 때가 그리 머지않을 수 있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대항해 우주 우주 탐사가 우주 경쟁 넬슨 연방항공우주국

2024-02-25

[노트북을 열며] 죽은 나발니가 산 푸틴을 잡는 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장 위협적인 정적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결국 숨졌다. 충격적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어쩌면 독살 시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뒤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택하지 않고 러시아에 돌아간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귀국했을까.   “하도 물어봐서 짜증났던 질문이다. 교도관들마저 녹음기를 끈 채로, 투옥이 확실하고 죽을 수도 있는데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조국도, 신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치 있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희생을 하더라도 기꺼이 지켜내야 한다.”   생전 나발니를 여러 차례 취재했다는 전 뉴욕타임스(NYT) 모스크바지국장 닐 맥파쿼가 전한 나발니의 답이다. 그는 나발니의 귀국을 그리스 고전에도 비유했다. “영웅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맥파쿼는 나발니가 ‘푸틴 정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고, 오히려 망명으로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분석도 전했다. 그에게 정치란 곧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기에, 귀국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나발니는 정말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수감 중 화상으로 법정에 출석할 때마다, 또 SNS를 통해 푸틴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사망 전날만 해도 판사를 향해 “당신 연봉으로 내 (영치금) 계좌를 보충해 달라”는 냉소적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푸틴이 나발니의 사망에 관여한 게 맞다면, 이런 나발니의 의연한 태도가 푸틴의 무언가를 자극한 게 틀림없다. 수십 년간 투옥으로 영웅이 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사례를 푸틴이 걱정했다는 맥파쿼의 언급처럼 말이다. 공포를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폭군이 아무리 억압해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쪽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는 게 푸틴의 의도였다면, 빗나갔다. 사망했기에 나발니는 만델라, 마틴 루서 킹의 반열에 올랐다. 벌써 ‘포스트 나발니’로 여러 인물이 거론된다.   나발니는 용기의 상징으로 남았고, 푸틴의 두려움은 세상에 드러났다. 그가 생전 보여준 용기와 당당함으로 추측하건대 ‘죽어서도 살아 있는 푸틴을 잡을 수 있다’고, 눈감는 순간에도 나발니는 생각했으리라. 유지혜 / 한국 외교안보부장노트북을 열며 푸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러시아 넬슨 만델라

2024-02-21

[오늘의 생활영어] Can you handle it?; 잘 처리할 수 있겠어?

Diana is talking to her younger brother Nelson.     (다이애나가 남동생 넬슨과 이야기하고 있다.)   Diana: So can you do it?   다이애나: 그래 할 수 있겠어?   Nelson: Yes. I'm free on Saturday night.   넬슨: 응. 토요일 밤에는 시간이 나거든.   Diana: Thanks. It's so hard to get a babysitter at the last minute.   다이애나: 고맙다. 막판에 애 봐줄 사람 구하는 게 너무 힘들다.   Nelson: I'll babysit for your kids.   넬슨: 내가 애들 봐줄게.   Diana: Eric and I haven't had time alone in a such a long time. We're going to a movie and then have dinner.     다이애나: 네 자형이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낸 게 언제인가 싶다.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으려고.     Nelson: It's important to be alone with each other and without the kids.   넬슨: 애들 없이 누나랑 자형 둘만 시간을 보내는 거 중요해.     Diana: That's so true. Oh, all the food is in the refrigerator and it's all labeled.   다이애나: 정말 그래. 아 음식은 냉장고에 다 있어. 무슨 음식인지 다 써서 붙여놨고.   Nelson: Do I have to cook anything?   넬슨: 요리를 해야 되는 거 있어?   Diana: No. And the kids have their computer games to play with. Can you handle it?   다이애나: 없어. 그리고 애들은 컴퓨터 게임하고 놀 거야. 잘 할 수 있겠어?     ━   기억할만한 표현     *at the last minute: 마지막 순간에. 막판에.     "We were going to stay home but at the last minute we decided to go to a movie."     (집에 있기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영화 보러 가기로 했어.)   *time alone: 혼자 혹은 누군가와 따로 보낸 시간.     "I'm going to spend some time alone this weekend and go camping by myself."     (이번 주말엔 나 홀로 시간을 좀 보내려고 혼자 캠핑을 갈 거야.)오늘의 생활영어 handle brother nelson 남동생 넬슨 long time

2023-04-25

[오늘의 생활영어] have some time; 시간이 좀 나다, 비다

Roger is talking to his brother Nelson on the telephone.     (로저가 동생 넬슨과 전화통화를 한다.)   Roger: So how is Florida?   로저: 그래 플로리다는 어때?   Nelson: Florida is fine. Oh, I'm going to New York in July to see Alice and Diana.   넬슨: 플로리다 좋아. 아 참 7월에 앨리스하고 다이애나 보러 뉴욕에 가.   Roger: Really? It would be great to get the family together.     로저: 진짜? 가족이 다 모이면 좋겠다.     Nelson: Yes. Are you free in July?   넬슨: 맞아. 7월에 시간 괜찮아?   Roger: Yes. I have some time the first week of July.   로저: 응. 7월 첫째 주에 시간이 좀 나.   Nelson: Great! Do you know what the dates are in July?   넬슨: 잘됐다. 7월 언제가 괜찮은지 알아?   Roger: Not right now but I'll get back to you.   로저: 지금은 몰라. 하지만 나중에 알려줄게.   Nelson: Let me know as soon as you can and I'll book a flight.   넬슨: 최대한 빨리 알려줘. 비행기 표 예약하게.   Roger: All right! This is going to be fun.   로저: 알았어! 다 모이면 신날 거야.   Nelson: Yes it is.   넬슨: 맞아. 진짜로.   기억할만한 표현   *Are you free…?: 시간 괜찮아?     "I'm having a party at my house next Saturday. Are you free?"     (다음주 토요일에 우리 집에서 파티 여는데. 시간 괜찮아?)   *I'll get back to you: 나중에 연락할게.   "I don't remember how many people are coming to the meeting but I'll get back to you."     (모임에 몇 명이 오는지 지금 기억이 안 나지만 나중에 알려줄게.)   *book a (or my) flight: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다.   "I booked my flight to New York today."     (뉴욕 가는 비행기 오늘 예약했어.)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time 시간 동생 넬슨 비행기 좌석 ill book

2023-02-13

[기자의 눈] 만델라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넬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병원의 출입문 밖에서는 대형버스를 타고 도착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 젊은이 수천명이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를 외치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만델라는 1918년 7월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 음베조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흑인이 다닐 수 있는 포트헤어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1940년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주동해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그러다 ANC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 1943년부터 ANC 활동에 참여해 1950년에는 청년동맹 의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1960년 샤프빌 흑인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뒤 그는 무장투쟁 게릴라 노선을 걸었다. 1962년 체포당해 2년 뒤 내란음모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훗날 그를 계속 괴롭힌 폐감염증도 교도소 내 채석장에서 일하다 얻은 지병이었다. 앞서 1963년 케이프타운 항구 인근에 있는 로벤 섬 교도소에 수감돼 19년간 복역했다. 1982년 케이프타운 교외의 폴스무어 교도소로 이감돼 다시 8년간 수감생활. 교도소 생활만 27년이다. 1990년 2월에야 비로소 출감됐다. 전 세계적으로 만델라 석방운동이 전개된 덕이다. 만델라는 1993년 F. W. 데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백인 정부와 협상해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였다. 이듬해 열린 총선거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승리하면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340여년간 이어진 백인 통치의 종지부였다. 그는 달랐다. 백인들을 내각에서 모조리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거셌음에도 대거 등용했다. 또 측근들로부터 '종신 대통령직'을 제안받았지만 1999년 6월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는 20세기 민주화와 인권의 '3대 영웅'으로 불린다. 나머지 두 명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 또 한 명은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1936~2011)이다. 만델라는 백인 제국주의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을 철폐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의 종식을 통한 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벨은 독재의 붕괴를 가져온 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만델라 사망의 그림자는 어둡기만 하다. 그가 남긴 업적들과 달리 남아공은 정치인들의 이권다툼과 스캔들 속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만델라가 이끌던 ANC는 장기집권으로 인해 썩어들어가고 있다. 흑백논란 갈등은 더욱 격렬해졌다. 역차별로 지난 10년간 남아공을 떠난 백인이 100만명 이상이다. 평등을 주창하며 제정한 흑인경제 육성정책이 되려 인종,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흑백분노의 전쟁터로 변모할 무렵에 만델라가 사망하며 남아공이 다시 숙연해졌다. 만델라의 사망은 그가 남아공 국민에게 던진 마지막 메시지로 보인다. 그의 격언이 떠오른다.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자신이 독배를 마시면서 적(敵)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13-12-09

마디바 (만델라의 존칭) 가는 길…미국 전현직 대통령도 총출동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9일 남아공 국민은 슬픔 속에서 그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오늘(10일) 공식 추도식을 앞두고 철저한 준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FNB(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추도식이 근래 보기 드문 세계적 행사가 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가 참석을 확인했다. 살아 있는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5명 중 건강이 나쁜 아버지 부시를 빼고 전원이 출동한 것이다. 세계 91개국 정상과 10명의 전직 국가수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하며 9만4000명이 현장에서 추모식을 지켜본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까지 참석을 확인하면서 이 행사가 세계 평화를 되새기는 장으로 기록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남아공 정부가 요인 경호와 안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요하네스버그 일대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 통제되고 있으며 군 병력 1만1000명이 동원됐다. 클레이슨 몬옐라 남아공 외교부 대변인은 "전 세계가 요하네스버그로 모이고 있다"며 국민에겐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지 말고 각 지역에서 마디바를 추모해 달라"고 당부했다. 추도식 프로그램은 비밀리에 조율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반기문 총장 등이 헌사를 할 예정이다. 공식 추도식은 올랜도·도브손빌·엘리스파크 등 축구경기장 세 곳에서 생중계된다. 요하네스버그 하우턴가에 위치한 만델라 자택엔 추모 인파가 몰리고 있다. 8일에도 수백 명이 담장을 에워싸고 밤을 지새웠다. 흑인과 백인, 남녀노소,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구분은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마디바의 업적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함께 나왔다"는 부모가 많았다. 이들은 함께 남아공 국가를 부르기도 했으며 서로 부여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프라카 전통음악 장단에 맞춰 춤으로 애도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켜켜이 쌓인 꽃다발 더미 속엔 만델라의 인생을 상징하는 물건과 국민의 이별 메시지가 빼곡했다. 만델라의 청년 시절 권투선수 생활을 상징하는 글러브, 1995년 남아공 럭비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순간을 상기케 하는 럭비공도 빠지지 않았다. 수백 개의 촛불 속에서 만델라의 자택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이 지역 주민이라고 밝힌 한 백인 여성은 "그의 마지막 업적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남아공 전역의 성당과 교회에선 만델라를 위한 '기도의 날'이 선포돼 수백만 명이 고인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현지 언론은 특보체제를 유지하며 만델라의 마지막 모습과 장례 일정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임종은 부인 그라사 마셸과 전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위니 만델라가 함께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만델라 추모행사는 16일까지 계속된다. 11~13일 국제사절단이 프리토리아 대통령 관저(유니언 빌딩)에 안치된 만델라를 조문한다. 추모기간 중 오전마다 프리토리아 영안실에서 시청까지 만델라의 유해를 실은 운구 행렬이 지나갈 예정이다. 당국은 시민들에게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달라고 당부했다. 15일 만델라의 고향인 쿠누에서 아프리카 전통방식으로 진행되는 입관식엔 가족과 소수 지인만 참석할 예정이다. 남아공 정부는 "사적인 행사로 치르길 바라는 가족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화해의 날'로 지정된 16일엔 대통령 관저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동상 개막식이 거행된다. 이상언 특파원

2013-12-09

만델라 자서전 타계 후에 더 인기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1918-2013) 타계 후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사진)이 서점가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1995년 미국의 리틀 브라운 앤 컴퍼니 출판사(Little Brown & Co.)에서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한국어판은 고 김대중 대통령 번역으로 아태평화출판사와 두레 출판사에서 출간, 꾸준하게 인기를 얻어 왔다. 출간후 '앨런 페이튼 어워드'(Alan Paton Award) 등 출판계의 권위있는 상을 다수 수상한 이 책은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웠던 넬슨 만델라 타계 후 전세계 서점가에서 베스트 셀러로 등극하기 시작, 각 출판사에서 급히 재판에 돌입했다. 또한 이 자서전 외에도 넬슨 만델라의 어록이 담긴 책 '자신이 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By Himself: The Authorised Quotations Book) 등 만델라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이 판매에 호조를 띄고 있으며 할러데이를 맞은 서점가의 선물용 베스트 셀러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별히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넬슨 만델라 기념 센터가 펴낸 '자신이 본 넬슨 만델라'는 60여년에 걸쳐 만델라가 쓴 일기, 편지,연설문 등에서 발췌한 그의 명언 2000여개가 담겨있어 자서전 다음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의 한인서점들 역시 만델라 사후 그의 책 구입과 문의가 급증, 만델라에 관한 다양한 책자를 구비하며 전인류 희망의 상징이었던 만델라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 유이나 기자

2013-12-09

만델라 15일 장례식…오바마, 남아공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5일 타계한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을 애도하기 위해 남아공을 방문한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6일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추도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남아공을 방문하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만델라를 직접 만난 것은 한 차례로, 2005년 고인이 워싱턴DC를 찾았을 때 초선 연방 상원의원 자격으로 호텔에서 면담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서거에 "만델라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 만델라라는 스승이 없었던 내 인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내가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애도했다. 만델라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진다. 만델라는 생전 간소한 장례식을 원하면서 간단한 비석만 세워달라고 말했으나 그의 장례식에는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장례식에 필적할 만큼 각국 지도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상들, 만델라와 친분이 두터웠던 오프라 윈프라, 그룹 U2의 보노 등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6일 추도식은 10일 2010년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요하네스버그 스타디움에서 열리며 장례식은 15일 그의 고향이자 말년의 안식처였던 이스턴케이프주 쿠누 마을에서 거행된다고 밝혔다. 만델라의 타계소식이 전해진 후 세계 전역에서는 "위대한 빛이 사라졌다"며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2013-12-06

[기고] 넬슨 만델라의 '희생적 용기'

남아공화국의 아버지, 아프리카의 영웅, 인류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지난 5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는 그의 작고를 애도하고 그의 생애를 회고하고 있다. 그는 남아공을 지배하던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키고 흑인 원주민들의 시민권을 회복시켜 자유민주주의로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과정에서 로빈 섬에서 27년간 정치범으로 형을 살았고 1990년에 석방된 후 1994년에 남아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내가 만델라를 존경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더 그의 '희생적인 용기'때문이다. 희생적 용기란 본인에게 돌아올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고 진실된 길을 택하는 용기를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억압받는 동족의 해방을 위해 비폭력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비폭력이 비현실적임을 느낀 그는 무력으로 정권을 붕괴시킬 계획으로 외유하면서 무기원조를 청했다. 곧 그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됐고 리보니아시에서 국가전복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인종차별 정권하에 국가전복 시도는 사형이다. 만델라는 수감된 동료들과 함께 국가전복 시도를 인정하고 어떠한 형도 상소하지 않을 것을 결정한다. 일반적 변호 전략은 고소를 부인하고 국가로 하여금 '죄'를 증명하게 하는 것이다. 판사는 만델라에게 "무력으로 국가 전복을 음모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당하게 "그렇다" 라고 대답한 후 "그러나 진짜 죄인은 바로 인종차별 정권이다"라고 항의했다. 그리고 혁명 동기를 3시간에 걸쳐 상세히, 솔직하게 진술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나는 평생을 백인 정권이든 흑인 정권이든 상관없이 인종차별 정권과 싸워왔다. 나의 이상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사회에서 평등한 권리로 평화스럽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이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국제 여론을 감지한 남아공 정권은 만델라와 그의 동료들에게 사형 대신 무기징역 선고를 내리고 케이프타운에서 4.5 마일 떨어진 로빈 섬의 형무소로 이송했다. 이후 만델라의 꿈과 정의를 위한 희생적 용기는 남아공 흑인 남녀노소 모두의 피가 되고 영혼이 되었다. 끊임없는 항거와 국제여론에 디 클럭 대통령은 1990년 만델라와 동료들을 은밀하게 사면하고 타협을 제안했다. 만델라는 차별정권의 종식과 자유선거를 요구했고 디 클럭은 소수(백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민주 헌법을 요구했다. 1996년 노벨 위원회는 그들의 건설적인 타협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만델라는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행'을 이렇게 끝맺는다. "지금까지의 우리 여정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유-즉, 억압 받지 않고 살 권리를 찾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험난한 여정은 아직 남아 있다. 이것은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들의 자유를 향상시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 모두가 걸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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