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아침에] 늦은 오후의 모놀로그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창밖으로 해가 길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스케줄이 없다. 내친김에 T.J.맥스도 갔고 한인 마켓에 가서 장도 한 보따리 보고 왔는데도 햇빛은 아직도 강렬하다.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TV를 켜니 새로운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고 전에 하던 드라마와 영화를 재방송하고 있다. 그렇다고 심심하다고 바쁜 친구에게 전화하기 망설여지는 오늘.     매일 오는 카톡도 조용해서, 꽃이나 나무 그림, 커피잔을 배경으로 한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니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주로 귓등으로 흘려듣고 보는 문자 메시지조차 그립다.     기온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고 간간이 비도 몇 번 내리더니 집 앞에 있는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봄에 하얀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흡사 지난봄에 미처 개화하지 못한 꽃을 지금 피워대는 것 같았다. 나무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간직했다가 원할 때 꺼내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해결 방법이 없는 사건을 기억에서 꺼내 곱씹으려 했으나,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에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아 아깝다. 차라리 이런 자투리 시간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좋겠다.     짐 크로스가 부른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만약 병 속에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영원함이 지나갈 때까지 하루하루를 저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물처럼 아껴두었다가 당신과 함께 보내는 데 쓰고 싶습니다’. 시간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고 싶다는 소망. 지금 나는 이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세상만사가 내 손아귀에 있는 느낌이 들 때, 구름을 걷는 느낌이 들 때, 장미꽃 위에 맺힌 이슬을 볼 때, 아니면 시험을 볼 때, 마감 시간에 쫓길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 소중히 보관한 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풀어서 쓸 수 있다면.   아니면, 우울할 때, 세상에서 시달릴 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잊히지 않는 상처가 올라올 때, 그런 시간을 꽁꽁 묶어 영원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당신이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곡식이 자랄지, 어떤 곡식이 나지 않을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씨앗이라니. 역시 대가다. 그가 성큼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어느덧 해는 잦아들고 있다. 잠자리가 나비보다 눈에 더 뜨이는 오늘. 나는 돌배나무 꽃잎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모놀로그 자투리 시간 마감 시간 돌배나무 꽃잎

2023-10-03

[살며 생각하며] 하늘을 향한 두 팔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이상한 연유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토마토와 양파를 썰어서 프라이팬에 던져 넣었다. 불을 확 올리니 내 불편한 심기처럼 팬이 부글거렸다. 볶는 냄새가 M이 자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요란하게 케일을 씻었다. 시끄럽든지 말든지 M은 잘 것 다 자고 내려왔다. 어젯밤 공항에서 늦게 도착한 M을 기다리느라 나는 잠을 설쳤다.    오랜 세월 동안 M은 몇 년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와 연결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녀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나 왔어” 하면서 갑자기 공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릴 적 친구는 언제 만나도 반가운데 M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역성들러 온 시누이처럼 행동했다. 나와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도 없고 주로 나의 남편과 떠드는 그녀가 고와 보이지 않았다. 내 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진 그녀가 펼치는 대화에 제대로 응대하지 않는 내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옹졸한 것일까? 친구를 이렇게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M에게 전화했다. 심드렁한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지금 어디에 있어?”   “민숙이 음대 졸업식 보러 보스턴에 왔어.”   “토요일에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묵으면 어때? ”   M은 흔쾌하게 대답했다. 졸업한 딸도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희망을 가져 보자. 어쩌면 학창 시절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을지 몰라.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10분쯤 지나서 M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딸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마침 뉴욕을 방문 중인데, 그 가족을 일요일 점심에 초대해 달라는 것이다. 남편, 부인, 꼬마 둘 모두 네 명이라고 한다.     “안토닉 가족이 너희 집에 오면 좋아할 거야. 너희 남편이 만든 조형물도 멋있고, 텃밭 야채로 만든 너의 음식도, 허브 가든도… 애들 장난감도 있고, 정말 할렐루야지 뭐!”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친구의 말 폭탄에 나는 멍해졌다. 한마디로 딸의 은사를 우리 집에서 대접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점심에 온다는 안토닌 가족을 맞을 음식 준비가 대충 끝났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앞 정원으로 나갔다.   “이 나무를 보니 눈물이 나네. 나무 이름이 뭐야?”   핑크 꽃이 만개한 도그 우드 앞에서 M이 중얼거렸다. 하늘을 향해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꽃잎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친구는 선교사 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았다. 빡빡한 생활 속에서도 딸에게 바이올린을 시키느라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코앞에 닥친 은퇴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무꽃이라고 했다. 남미 국경 산중에 홀로 서 있던 나무, 꽃잎 넉 장이 굳센 마분지인 줄 알았다고. 위로 네 팔을 벌리고 선 모습이, 하늘을 향해, 하느님 계신 곳만을 보는 이 꽃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고향인지 모르겠단다. 하느님이 인도하신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미국, 한국, 남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기분 알아?”     땅을 상실하고 공중만 쳐다보는 저 나무… 안스러 보였다. 문득 그 꽃이 M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오월이 되자 꽃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친구의 할렐루야를 위해서 반나절 수고쯤이야 나도 훌훌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하늘 나무 꽃잎 선교사 남편 일요일 점심

2023-05-23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하염없이 꽃잎이 떨어지다

자르면 죽는다. 일찍 죽는다. 새 집에 이사 온 기념으로 지난 늦가을 빨간색 튤립 구근 두 봉지를 사다 심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딘 수선화 하야신스 애기똥풀이 목을 내밀자 빨간 튤립이 줄 서서 정원을 붉게 물들인다. 튤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두 송이 꺾어 목이 긴 포도주 잔에 담았는데 금방 시들어 꽃잎이 떨어진다. 앞뜰에 군악대 병정처럼 가지런히 줄 서서 머리 꼿꼿이 들고 있는 튤립 군상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여태 싱싱한 자태를 뽐낸다.   생명 있는 것들은 자르면 목숨줄이 끊어진다. 흙에 뿌리 박고 있어야 오래 살 수 있다. 땅에 발 붙이고 납작 엎드려 살면 오래 견딜 수 있다. 허공에 두발 딛고 살면 언젠가 떨어져 낙화가 된다. 흙으로 돌아가면 영생의 꽃 한송이 피울 수 있을까.     튤립은 이른 봄 여왕처럼 땅을 비집고 솟아난다. 서리가 내리기 전, 11월 초나 중순쯤 구근의 3배 깊이로 땅을 파고 묻으면 흙 속에서 싹을 틔운다. 뿌리를 먼저 내리고 자리를 잡은 구근은 겨울 한파를 견디며 봄을 기다린다. 뿌리가 얼지 않을 정도면 싹을 틔우는데 겨울 동안 땅 위로 싹이 올라 오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추워야 봄꽃을 피운다.   튤립은 자태가 외롭고 고고하다. 한 두개 심으면 처량해 보여 열병식 하듯 여러겹으로 심어야 무리지어 아름답다. 튤립은 서 있는 것이 힘겨워도 드러눕지 않는다.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가지가 부러져도 튤립은 작은 키와 큰 뿌리로 땅을 손잡고 버틴다. 땅을 향해 머리 수그리면 생명을 지키기 쉽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세상의 시작인 카오스에서 태어난 최초의 여신이다. 태초의 혼돈과 무질서인 카오스는 텅 빈 공간이고 정해지거나 구분되지 않는 청정 구역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다. 우주의 시작이며 만물의 근원이다.     가이아는 수많은 자식을 생산하는데 생명체의 폭발적인 증가로 생존과 번식의 세상이 열린다. 대지의 여신은 소멸되지 않는 생명을 품는다. 대지는 찬란한 생명의 빛을 창조하고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잎의 슬픔을 품 속에 묻는다.     장미가 화려한 외출이라면 튤립은 고고한 사랑이다. 어우러져 피지 않고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불타는 왕관을 머리에 이고 흔들리지 않고 품위를 지킨다.     튤립 원줄기는 오직 한송이 꽃만 피운다. 여려 보이지만 곧게 서서 갈라지지 않고 비바람을 견딘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리고 한송이 거룩한 생명을 꽃 피운다. 화사한 화관을 머리에 이고 단장을 막 끝낸 새색시처럼 수줍게 미소 짓는다.     네덜란드의 상징인 튤립은 원산지가 터키다. 16세기 후반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이색적인 모양으로 귀족이나 대상인들 사이에 유행했다. 귀족의 상징이 된 튤립은 신분 상승의 욕구를 지닌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유행 따라 가격이 치솟아 황소 천 마리를 팔아서 살 수 있는 튤립 구근이 겨우 40개 정도였다고 한다. 50불로 튤립구근 100개를 구입해 벼락부자가 될뻔한 중세말기의 환상에서 깨어나 따스한 모닝커피 한잔을 마신다.     사는 게 편안하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행복은 깨질 수도 있는 유리상자다. 편안함은 행복을 구걸하지 않는다. 미련과 기대를 접고 정직하게 땅에 발 붙이고 살며 생명의 꽃나무를 심는다. 꽃이 필 때 사랑을 하고 하염없이 꽃잎이 떨어질 때 그대를 떠나 보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꽃잎 튤립구근 100개 튤립 구근 튤립 원줄기

2023-04-2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잎은 네 장. 노랗고 가느다란 수술, 암술에 작은 벌들이 바쁘게 날개를 움직인다. 활짝 피면 엄지 마디보다 조금 크게 핀다. 높이는 15인치 안팎으로 함께 기대어 피면 노란 벨벳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다. 새끼 손가락만큼의 잎사귀 뒷면은 작은 솜털 같은 돌기가 있고 줄기에는 눈에 보일만큼 하얀 솜털이 무성하다. 꽃 대궁에는 다섯, 여섯의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색갈이 붉어 혹 빨간 꽃봉오리가 올라오려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한달 남짓 피었다가 저버리는 짧은 기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이 가히 환상적이다. 한낮엔 태양빛 같이 강렬하고 한밤은 달빛처럼 그윽하다. 해가 지면 꽃잎이 오무라지고 햇볕이 나면 다시 활짝 피어난다. 왜 해맞이꽃이라 안하고 달맞이꽃이라 명했을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밤하늘 달을 향해 꽃잎을 접어서일까?   지인의 집에서 한 부삽 분양 받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잘 자라주어 이젠 뒤란의 구석구석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을 맞이하는 꽃, 달맞이꽃. 달빛을 받아 진한 황금 노랑으로 꽃피게 해달라고 밤하늘 달을 향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꽃. 그 기도가 효험이 되어 새날이 밝으면 밤새 오무렸던 꽃잎을 활짝 펴 다시 새날을 맞으며 환하게 얼굴을 드는 꽃. 꽃말 그대로 그리움의 한 밤을 달빛 아래 머물다 행복해지고 잠든 뒤란에 고요하게 내리는 달빛을 머금고 더 밝게 주위를 비추어 주는 꽃. 짧게 허락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짧은 그 시간동안 밝고 빛나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는데 순간순간 그 시간을 얼마나 내 삶에 적용했던가? 계절이 지나가듯, 밤이 오고 아침이 오듯, 직선적이고 객관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고 채워나가는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도에 담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꽃. 우린 달맞이꽃처럼 살았던가? 누구도 흐르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붙잡아둘 수는 없다. 다만 강물처럼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삶에 꽃을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날은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올해 네 분의 지인들에게 달맞이 꽃을 분양했다. 몇 주가 지났는데 벌써 꽃이 피었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다. 심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꽃은 피었다 시들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강렬한 태양빛과 깊은 달빛에 숙성해 가는 중이다. (시인, 화가)     달맞이꽃     이른 봄 피어나던 꽃들이 다 시들고 / 활짝 핀 이 꽃도 시들어 가겠지 / 노란 꽃잎이 말리고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 눈물처럼 뚝 떨어져 버리고 말겠지 / 이내 마르고 부서져 흩어져 버리겠지 / 발 길 끊어진 그곳엔 바람 불고 고요할거야 // 썩어진다는 것과 숙성해진다는 것의 차이/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다시 잉태된다는 / 썩지 않고 발효되고 있다는 반가운 바람의 소식 / 수 백 수 천의 꿈이 까맣게 익어가는 중 이라는// 부패는 썩는 것이고 발효는 익는 것 / 발효의 과정으로 나도 익어가는 중 / 구름을 담고, 바람을 숨쉬며 / 시가 영글어가는 시간 / 창틀에 앉은 바람도 쉬어가는 시간 / 강렬한 태양빛, 그리운 달빛을 담아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 / 기도하는 달맞이꽃의 시간 /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달의 시간 / 땅도 하늘도 달맞이꽃도 쪼그려 앉은 나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달구어지고 / 사람이 가는 길 알 수 없지만 / 노오란 달맞이꽃의 기도 하늘에 닿았다 / 우리 모두는 익어가는 중이다 / 노랗게 여물어가는 중이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카이로스 지면 꽃잎 달빛 아래

2022-06-21

[이 아침에]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요즘 남가주 주택가나 거리에는 보라색 자카란다꽃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늦은 봄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뽐내는 자카란다는 멀리서 보면 비밀의 성처럼 신비한 모습을 연출한다. 미국에 와서 마주한 자카란다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다 이름도 어려워 외우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20여년을 보다 보니 이제 무심코 길을 지나다가 자카란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보면 ‘아. 벌써 5월이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봄이 끝나가나 싶어질 때쯤 주택가나 거리 골목 어귀에서 보라색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자카란다는 왠지 우리나라의 철쭉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봄꽃은 남쪽의 매화나 샛노란 산수유부터 시작돼 북상하며 진달래 개나리가 만개하고 벚꽃이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며 마무리된다. 여름이 시작되나 싶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철쭉꽃이 뒤늦은 향연을 펼친다. 조금 높은 산의 산철쭉은 6월경 절정을 이루며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어렸을 때는 이른 봄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놀기도 했던 터라 좀 늦은 봄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꽃을 따 먹었다가 배가 아파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참꽃이라 불리지만 철쭉 꽃잎에는 독성이 있어 개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같이 조금 일찍 피어나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들과 달리 뒤늦은 시기에 홀로 피어 묵묵히 빛을 발하는 철쭉은 파피꽃이나 유채꽃이 지고 나서 보라색 향연을 펼치는 자카란다와 겹친다. ‘봄꽃’의 화려한 영광은 다른 꽃들에 내어주고 사람들에게 잊혀 갈 때쯤 피어나 은은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런 점이 서로 닮았다.    사람들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이나 조직 사회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승승장구하며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이른 나이에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빛나지도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오래도록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는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늦게까지 빛나지 않아도 자기 몫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주위에 많은 이들이 따르는 걸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인 이민사회의 교회나 조직에서도 화려한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조직이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감투싸움이나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민사회의 부끄러운 모습과는 다르다. 말은 쉽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나의 노년의 삶을 그려본다. 화려한 영광도 없었던 젊은 시절의 삶이었지만 이제 늙어서라도 자카란다처럼 철쭉꽃처럼 은은하고 묵묵하게 빛을 발하는 그런 남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진달래 개나리 진달래 꽃잎 보라색 향연

2022-05-19

[삶의 뜨락에서] 꽃피는 계절에

꽃밭 여기저기 숨어있던 꽃들이 좋은 계절을 맞아 감추었던 꽃잎을 보기 좋게 드러내며 웃고 있다. 화가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색채의 잔치가 열리고 있다. 소박한 하얀색에서부터 눈부신 붉은 광채까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색깔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세상을 향한다. 작은 제비꽃의 보라색을 어떻게 함부로 평할 수 있을까. 그곳에 싹튼 땅과 하늘의 놀라운 생명과 순환을 읽어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북쪽 하늘을 향한 붉은 목련의 전설을 담은 손짓은 날리는 꽃잎에 실어보는 꽃피는 계절의 화려한 음악이다.      하나의 생명이 꽃을 피우는 행위는 놀라운 자연의 섭리로 읽힌다. 북구의 짧은 봄날 사이에 솜털을 가득 담은 줄기 끝에 피어난 작고 노란 꽃들은 찬바람 속에서도 얼어붙었던 땅 위에 치열하게 맞이하는 봄 풍경을 완성한다. 산과 들판에 그려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낸 대단한 풍경화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발길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그곳에 있음이다. 꽃을 피우는 순간은 최고의 시간이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세상을 향한 몸짓이 뿌리를 내리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줄기를 세우고 잎을 내어 자기 세계를 열고 그 속에서 하나의 바램을 실어 꽃잎을 열고 또 다른 세계를 담아낸다. 꽃을 피워냄은 최고의 시간 속에 최고의 소망을 개화시키는 아름다움이다.     “좋은 때다”라는 감탄의 말을 가끔 듣는다. 철없는 것들이 철없는 짓을 한다고 웃는 시선을 넘어 그때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또 언제나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삶의 숨결을 실은 저절로 나오는 부러움의 언어다. 살아가면서 가장 보기 좋게 보이는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언제 그렇게 빛이 났던가 하는 때가 있고 그 사람의 움직임이 언제 그렇게 향기가 났던가 하는 때가 있다. 어느 나이 많은 학자가 친구들 다 먼저 보내고 그러나 ‘지금부터는 진짜 아름다운 삶을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그때는 훨씬 나중에 피워내는 ‘좋은 때’가 된다. 민들레는 봄날에 좋은 때를 만들고 매화는 눈 내리는 겨울 끝에 좋은 때를 열어가고 낙엽 지는 가을에 가서야 좋은 때를 만드는 향기 높은 국화도 있다. 꽃피는 계절은 늘 열려있다. 좋은 때를 만나면.    개화기라 말해지는 시절이 있다.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밑거름 삼아 키워내던 꽃망울이 빛이 가득한 시간을 맞아 마구 꽃잎을 피워내듯 온갖 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력 넘치는 세월이다. 때를 기다리던 손길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청사진을 들고 새 세상을 만들어내는 기운찬 시절이다. 개화기를 맞으면 젊음의 기운이 마구 넘쳐난다. 살아온세월의 숫자를 넘어 새 세상을 마주하는 싱싱한 마음들이 살아나는 보기 좋은 계절이다. 꽃피는 계절이다.    세상 소식을 열어본다. 이상한 질병이 이제는 익숙해져 마스크 벗고 다시 모여 떼창하는 모습이 보인다.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 앞에 다시 공이 솟구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힘센 나라와 작은 나라는 힘겨루기 하며 내일 꿈꾸고 있다. 한 나라의 앞날을 걸고 대장들의 팔씨름이 한창이다. 도시마다 아픈 손가락을 만지며 통증을 달래고 있다. 봄을 맞은 정원에는 만개의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렇게 세상 소식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마음으로.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계절 실어 꽃잎 북쪽 하늘 자기 세계

2022-05-16

[수필] 양란이 봉오리를 맺다

꽃이 졌다. 야들한 꽃잎이 모두 떠나간 가지는 메마른 몸을 겨우 지탱하고 서 있다. 작년에 나는 골반 골절수술을 받았다. 그때 지인이 보내준 양란(Orchid)은 홀로 누운 나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였다. 연분홍, 진분홍, 하양, 노랑의 조화가 아프고 지친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희망을 좇는 나비 떼를 연상케 했다. 환한 에너지가 햇살과 어우러져 방안을 채웠다. 침대에 누워서 바라볼 때마다 고마운 분의 기도가 마음에 와닿은 것일까 치료의 효력이 생겼다.   병상에 누운 지 넉 달 만에 일어나 워커를 짚고 걷기 시작했다. 내 몸은 회복되었는데 마음을 만져주던 화분 속의 꽃잎은 시들기 시작했다. 화려한 영화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잔해지는 것처럼 어느 날 양란은 고개를 떨구고 흙 위에 주저앉았다.     꽃이 없는 나뭇가지는 앙상했다. 막대에 불과한 볼품없는 모습에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다른 화분 틈에 두었다. ‘꽃 역시 영원할 수 없겠지.’ 혼자 중얼거리며 창가에 놓아두고 물을 주었다.   이민 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았다. 건강을 잃고 모든 생활이 정지되고 보니 고향을 떠난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여고 시절엔 문학소녀의 꿈을 품은 작은 봉오리를 맺고 있었는데…. 잊었던 그 꽃봉오리가 병상에서 겨울을 보내는 가슴에 움을 틔웠다. 먼지 묻은 일기장을 찾아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상일기를 쓰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골반 골절수술과 팬데믹으로 갇힌 세상에서 글쓰기에 매진했다. 사람의 만남과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어 왔는데, 소통이 끊긴 적막을 이겨내기 위해 육체의 아픔을 견디며 가슴속에 맺힌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글이 그 작업의 매체가 된 셈이다. 깊은 생각과 성찰로 이끄는 기도가 되었다고 할까.   1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이 지나간다. 추운 바람이 떠나간 하늘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죽음을 거쳐 생명을 생성하는 계절의 순환이다. 햇빛이 내리비치며 창 안 깊숙이 자리 잡는다. 커튼을 걷으며 작은 양란에 눈길을 준다. 다시 움이 돋고 연한 가지가 나온다. 초록 기운이 꿈틀거린다. 햇살 아래 물 기운만 있으면 다시 싹을 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놀랍게도 마른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히는 게 아닌가. 새 생명이 움트는 신비한 힘을 느낀다. 봉오리가 꽃잎을 터뜨릴 때마다 살아있다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내는 열정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가리라. 무언가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도전하고 싶은 다음 푯대는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긍정적인 스트레스는 발전을 가져온다는 대답을 얻었다. 수필 등단으로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4년째,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겸손히 밤을 지새우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알았다. 숨 죽이고 가라앉았던 깊은 곳에 불씨를 던진다. 설레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필집을 준비한다. 양란에 물을 준다. 봉오리가 꽃을 피우듯 내 무늬로 책이 엮어질 것이다. 이희숙 / 수필가수필 봉오리 양란 봉오리가 꽃잎 골반 골절수술 초록 기운

2022-04-2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