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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하늘을 향한 두 팔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이상한 연유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토마토와 양파를 썰어서 프라이팬에 던져 넣었다. 불을 확 올리니 내 불편한 심기처럼 팬이 부글거렸다. 볶는 냄새가 M이 자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요란하게 케일을 씻었다. 시끄럽든지 말든지 M은 잘 것 다 자고 내려왔다. 어젯밤 공항에서 늦게 도착한 M을 기다리느라 나는 잠을 설쳤다. 
 
오랜 세월 동안 M은 몇 년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와 연결되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녀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나 왔어” 하면서 갑자기 공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릴 적 친구는 언제 만나도 반가운데 M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역성들러 온 시누이처럼 행동했다. 나와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도 없고 주로 나의 남편과 떠드는 그녀가 고와 보이지 않았다. 내 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진 그녀가 펼치는 대화에 제대로 응대하지 않는 내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옹졸한 것일까? 친구를 이렇게 보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M에게 전화했다. 심드렁한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지금 어디에 있어?”
 
“민숙이 음대 졸업식 보러 보스턴에 왔어.”
 
“토요일에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묵으면 어때? ”
 
M은 흔쾌하게 대답했다. 졸업한 딸도 데리고 오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희망을 가져 보자. 어쩌면 학창 시절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을지 몰라.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10분쯤 지나서 M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딸의 바이올린 선생님이 마침 뉴욕을 방문 중인데, 그 가족을 일요일 점심에 초대해 달라는 것이다. 남편, 부인, 꼬마 둘 모두 네 명이라고 한다.  
 
“안토닉 가족이 너희 집에 오면 좋아할 거야. 너희 남편이 만든 조형물도 멋있고, 텃밭 야채로 만든 너의 음식도, 허브 가든도… 애들 장난감도 있고, 정말 할렐루야지 뭐!”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친구의 말 폭탄에 나는 멍해졌다. 한마디로 딸의 은사를 우리 집에서 대접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점심에 온다는 안토닌 가족을 맞을 음식 준비가 대충 끝났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앞 정원으로 나갔다.
 
“이 나무를 보니 눈물이 나네. 나무 이름이 뭐야?”
 
핑크 꽃이 만개한 도그 우드 앞에서 M이 중얼거렸다. 하늘을 향해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꽃잎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친구는 선교사 남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았다. 빡빡한 생활 속에서도 딸에게 바이올린을 시키느라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코앞에 닥친 은퇴 문제로 고민하던 중에 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무꽃이라고 했다. 남미 국경 산중에 홀로 서 있던 나무, 꽃잎 넉 장이 굳센 마분지인 줄 알았다고. 위로 네 팔을 벌리고 선 모습이, 하늘을 향해, 하느님 계신 곳만을 보는 이 꽃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고향인지 모르겠단다. 하느님이 인도하신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미국, 한국, 남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기분 알아?”  
 
땅을 상실하고 공중만 쳐다보는 저 나무… 안스러 보였다. 문득 그 꽃이 M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오월이 되자 꽃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친구의 할렐루야를 위해서 반나절 수고쯤이야 나도 훌훌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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