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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절망 속에 빛나는 별들

매일 나보다 앞서 출근하던 현관문은 간 곳이 없고 하루의 피곤을 아무 불평 없이 안아주던 소파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깔깔대며 아이들이 밟고 내리던 계단은 손잡이 끝만 남아 그을음을 토합니다. 기억이 많을수록 슬픔도 깊어집니다. 도시라는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쉼터가 되어주던 자리는 이제 주소지만 남은 아픔이 되었습니다.   놀란 가슴은 어찌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허탈한 마음은 분노에 신음합니다. 어둠이 우리를 덮고 절망이 노을빛조차 감추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늘이 어둠에 깊이 물들어 갈수록 별들도 하나 둘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더 깊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별이 반짝이며 버티는 것 같지만 실은 별들 속에서 어둠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별들이 새벽 햇살을 마중 나갑니다. 서쪽 하늘에는 도무지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어둠이 버티고 있었지만, 푸른 하늘과 함께 동은 트고야 맙니다. 절망은 우리를 삼킬 수 없고 소망 앞에 겨우 버틸 뿐입니다. 소망은 절망보다 강하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쓰며, 쥐어짜기도 하고 심심하면 손목을 비틀었던 자연이 실은 얼마나 무서우며 그 앞에 우리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도 다시 생각합니다. 바람 속에 모든 것이 사그라질 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준비하고 살았는지도 묻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소망은 사랑을 먹고 자라며, 위로는 함께 흘리는 눈물과 기댈 곳을 주는 따뜻한 어깨와 말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재난에 온 힘을 다해 맞서주는 소방대원들의 수고와 용기가, 잠시라도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소파가 되어주려고 달려오는 이웃들의 사랑이, 힘든 이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우는 분들과 함께 우는 눈물이 되고, 버텨주는 위로가 됩니다. 그 속에 다시 일어서는 당신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다시 손을 모읍니다. 하나님이시여 그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에게 향하소서. 우리의 힘이시여 우리를 도우소서. 곤고한 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외면하지 않으시니 우리의 곤고와 눈물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 그 고통과 함께하시는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의 구원이시여.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절망 서쪽 하늘 콘크리트 덩어리 자의 고통

2025-01-20

[삶과 믿음] 하늘로 간 기도 동역자

누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12월치고는 따뜻했지만, 잔뜩 흐렸다. 허겁지겁 먼 길을 달려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한 병원 신경과학 중환자실에서 만난 누나는 혼수상태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여러 개의 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누나는 기계에 의지하여 숨을 이어갈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수많은 기계가 시시각각 그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에 산소와 알지 못할 약물들이 희망을 희석하더니 끝내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루를 지나 겨울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매형과 가족들이 모여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동의했다. 산소호흡기가 제거된 후 14분이 지나자, 누나의 상태를 보여주던 모든 그래프가 수평선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낮아지며 애태우던 숫자들이 파르르 떨며 꺼지더니 병실로 어둠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슬픔보다 더 큰 이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고 있었다. 누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 친지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보냈다. 워싱턴에 사는 아들은 고모가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임종하고, 장례식 전에 집에 다녀온다고 갔다가 고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집에서 받았다며 또 통곡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누나는 사십여 년 전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 그리고 부모님을 초청하고, 우리 형제가 다 미국에 자리를 잡는데 넉넉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신앙심이 깊어 이민 초기에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고, 찬양을 좋아하고 잘해서, 집이나 교회에서 찬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성도와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해서 인근에 누나의 밥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누나가 출석하던 교회는 매년 아이티 후원 헌금을 한다. 지난해 가을, 올해에는 예년보다 많은 헌금이 되었다며, 누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이티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새해 1월에 누나의 교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누나는 성탄절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교회 회중 앞에 차갑게 누운 것이다. 장례 예배는 조문객들이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모두 너무 놀라며 한결같이 슬퍼했다. 매형에게도 누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누나의 빈자리는 참 클 것이다. 그러나 누나는 나에게 가장 큰 빈자리를 남기고 갔다.   아이티 사역을 하면서 아내와 어머니와 누나의 기도가 큰 기둥이 되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우리 아이티 사역을 더욱 세세히 묻고 기도했다. 아이티에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서로 기도의 파트너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로에게 기도의 동반자였던 누나를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하늘 찬양대로 부르신 것이다.   아이티가 갱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누나는 텍스트 메시지로 아이티 상황을 물어왔고, 기도했다. 그렇게 가까이서 기도해 주던 기도의 동역자가 너무 서둘러 하늘로 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누나가 천국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티 고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준비 안 된 이별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있어 그분들의 기도로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간 누나를 대신하여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기도의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사역은 기도가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일이므로.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동역자 하늘 기도 동역자 아이티 고아들 하늘 찬양

2025-01-0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허투루 살지 말기

절망이 나락으로 바뀌면 끝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나락은 지옥을 뜻하는 불교식 용어로 밑이 없는 구멍이다. 나락은 산스크리트어인 “나라카(Naraka)”에서 유래했는데 불교의 여러 지옥 중 하나다. 죄를 짓고 심하게 괴로운 세계에 태어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이 사는 곳으로 철위산의 바깥 변두리 어두운 곳에 있다고 한다.   나락은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는 표현은 절망적이고 극한 상황에 처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절망이 생을 나락으로 몰고가도 밧줄을 부둥켜 잡고 있으면 밑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아둥바둥 부대끼며 살아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오늘을 버티면 내일이 올 것이란 믿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고난의 끝이 보인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도 살기로 작정하면 살아남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지푸라기 잡을 힘이 있는 한 어떤 불행과 고통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치 못한다. 체념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 남는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살아 있는 모든 것, 마주하는 사람들의 정겨운 눈망울, 드라이브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치워주는 다정한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순간들은 작은 기적의 징표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크고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살뜰하고 정겨운 만남으로 매일 일어난다.   ‘허투루 살지 않기’가 새해 좌우명이다. 아무렇게나 되는 데로 살지 않기로 한다. 인생 후반부에는 바겐세일을 기다릴 시간 없다. 사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덧셈보다 뺄셈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수월하게 만든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바보짓이다. 서두르지 말고 주저하지 않고 말 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 고백하고, 형편 될 때 가족 친구 이웃들과 밥 한끼 나눠 먹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자식에게 재산 줄 생각 말고, 나를 위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 만들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정답이다.   그동안 잊었거나 미뤄왔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메모지에 적는다. 겨울학기에 컴퓨터 클래스와 영작문법에 수강 신청을 했다. 젊은 애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공부하면 사그러지는 청춘과 열정이 다시 용솟음칠지 모른다.   미국 국민화가 그랜마 모지스는 78세에 그림그리기를 시작해 1600여점을 그리고 250점은 100세가 넘어 완성했다. 내게도 충분히 도전 할 시간이 남아 있다.   외국에 오래 살면 한국어도 아리송하고 영어도 잘 못해 외계인 취급 받는다. 무식이 유식을 이긴다. 세월이 가면 유식도 무식의 반열에 오른다. 모르면 밀린다. 자식에게 밀리고 나이 때문에 밀린다. 미룰 시간의 여유가 없다.   허투루 살면 뒤죽박죽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산다. ‘허투루란 ‘남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으로 꾸미는 겉치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꾸며, 상대를 속이는 뜻으로 사용된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살면서 제일 슬픈 일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은 먹기 싫으면 과감하게 버리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과는 작별하고,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며, 푸른 뱀띠 해를 싱그럽게 시작할 작정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불교식 용어 인생 후반부 눈망울 드라이브

2025-01-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 올려다보고, 가끔 내려 보기도 하면서

1 한없이 가라앉았던 날이 있었네 / 여름이 막 시작되었고 초록의 세상이었지 / 귀 언저리 초록의 작은 기포 떠다니고 / 침잠해 가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네 / 맑은 유리잔에 물 한 잔 건네주었네 / 물 한 모금의 삼킴이 목 너머 흐를 때 / 너는 내게로 와 출렁이는 호수가 되었지     2   꽃이 진 곳에 빨간 열매 맺히고 있었네 / 바람에 꽃잎처럼 떨어지던 가을이 오고 있었고 / 손잡으려다 놓쳐버린 날들도 가고 / 새장을 빠져나온 가슴이 아픈 새들은 / 긴 날개 펼치며 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네 / 내려다보이는 호수 위, 푸른 실핏줄 같은 은하 / 너는 내게로 와 흐르는 푸른 별이 되었지     3   창밖엔 눈 내리고, 찬 바람 불고 / 맑고 향기로운 언덕은 흰 눈을 쓰다듬고 / 손이 얼고 발이 붙어도 파도치는 미시간 호수가 좋았네 / 홀로여도 외롭지 않은 빈 해변 동무 되어 놀다가 / 너를 담고 돌아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 가장자리 / 한 편의 시가 눈처럼 날리며 가슴을 파고들었지 / 너는 내게로 와 선물처럼 흰 눈으로 뿌려졌지     4   봄은 고양이 걸음처럼 살며시 오고 / 뿌리로 자란 만큼 손톱만큼씩 움튼 새싹 / 무채색 세상 속에서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언덕 너머 / 긴 얼굴 목련이 서럽고, 널 향해 살기로 작정한 / 꽃이 피던 그날, 꽃잎 떨어지던 아픈 날도 / 널 가슴에 품고 걸었던 / 나의 숨 쉬는 동안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었지 하늘 향해 뻗은 소나무야, 움츠린 솔잎아 / 그 푸른 정수리, 빨간 열매, 찬 바람 겨울 오면 / 흰 눈 위 각혈처럼 쏟아놓은 후회 같아 / 거울 앞에 서면 나이 먹는 것들의 이유가 서러워 / 그중 깊은 주름 몇 개, 깊은 발자국 따라 / 썰물처럼 눈물 지우며 네게로 간다     또 한 살이라는 명패와 함께 푸른 뱀의 해를 맞은 지도 여러 날이 지나간다. 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바라볼 수는 있었다. 이제는 쉼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좇아 뛰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땀 흘리는 내게 물 한 잔 건네주던 손길이 있었다. 쉬어 가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자유라는 명제를 슬며시 내 손에 쥐여주고 뒤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을 보고 알았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시간을 거슬리는 삶은 바른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시선을 시간에만 집착해 있다면 시간은 우리와 함께 걷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시간을 놓아준다? 그리고 내 삶에 자유 한다? 시간에 얽매이면 마음도 초조해져서 되는 일도 그르칠 때가 많이 있다. 시간을 잃어버릴 때가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난 며칠 써 놓았던 시들을 정리했다. 이곳저곳에서 시를 찾아 모으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저물어왔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귀담아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무료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놓아주어 자유케 하라 그리하면 하루는 내게 기대하지 못한 선물을 준비하고 나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나에게 한송이 꽃으로, 쏟아 내리는 비로, 출렁이는 호수로, 흩날리는 흰 눈으로, 밤하늘 흐르는 푸른 별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질 것이다.    깊은 숲,   작은 집엔   너의 별,   너의 음악,   너의 눈물,   너의 떨림,   너의 웃음 가득하고    나를 비추고,   나를 설레이고,   나를 토닥이고,   나를 재우고,   나를 안아주는,   같은 하루가 아닌   새날을 맞이한다     하얗게 내려지는   기대와 설렘으로 받은 도화지   산을 보다 산이 되고   호수를 보다 호수가 되고   별을 보다 별이 되어지는   도화지 가득 하루가 담겨   깊은 숲,   작은 집에   불이 켜진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미시간 호수 하늘 가장자리 언저리 초록

2025-01-06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온 몸으로 즐기는 그랜드캐년

지구 역사 20억 년의 이야기를 가진 협곡이다. 한때는 바다 밑이었다가 육지가 되었고, 다시 바다 밑으로 변했던 곳이 바로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이다. 협곡의 길이는 277마일(대한민국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더 길다), 평균 너비는 10마일, 평균 깊이는 1마일에 달하는 대협곡이다. 오랜 세월 동안 콜로라도 강의 침식과 부식이 반복되며, 변화무쌍한 날씨와 맞서 인고의 시간을 거쳐 현재와 같은 장엄한 모습이 됐다.   우리가 이곳의 전망대에서 위대한 자연과 마주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말을 잃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것은 단지 드러난 지층의 나이가 20억 년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발 약 2000~2100미터에 위치한 그랜드캐년 남쪽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깊은 협곡 아래로 콜로라도 강이 흐른다. 이곳은 5개의 기후대가 있다. 1919년 2월 26일,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서 연평균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억7000만년 전의 지층에서 바다였음을 증명하는 조개 화석 등 여러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5억년 전의 지층에서도 바다였던 증거가 확인되며, 이 화석들은 이곳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모든 미국인은 꼭 한 번은 보아야 할 곳”이라고 했던 만큼, 그랜드캐년은 누구에게나 깊은 감동을 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관광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기억에 남을 만한 방법으로 그랜드캐년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예를 들어, 기차로 그랜드캐년에 도착해 이곳 호텔에 숙박하면서 일몰과 일출을 감상하거나, 나귀를 타고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Bright Angel Trail)을 통해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다. 협곡 아래 콜로라도 강에 도착하면 최소 3일에서 최대 3주 동안 래프팅으로 그랜드캐년을 탐험하는 여정도 즐길 수 있다.   오래전 동료 가이드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시각장애인 한 분이 그랜드캐년 관광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그는 경비행기 투어를 신청했다고 한다.   “혹시 보이세요?” 동료 가이드가 물었다. 그는 “안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가이드는 “그런데 경비행기를 타시겠다고요?”라고 다시 물었다. 시각장애인은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네, 저는 눈만 안 보이지 다른 곳은 건강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꼭 봐야 한다는 그랜드캐년의 상공을 약 40분간 날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랜드캐년을 찾아오기 위해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분명히 그랜드캐년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그랜드캐년 상공을 날고 있다는 것이 거짓은 아닙니다. 저는 보이지 않더라도, 온몸으로 느낄 겁니다.”   그랜드캐년 전망대에 서면 이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해돋이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오르며 감동을 준다.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그랜드캐년 루스벨트 그랜드캐년 상공 그랜드캐년 관광 그랜드캐년 하늘

2025-01-0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안개비 호수

호수가 하늘을 안는다 / 수평선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 / 경계에서 사라진 호수 / 안개 자욱한 하늘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걸어온 발자국은 지워져 버렸기에 / 앞에 남겨진 길 하나, 하늘에 오르는 / 너에게 가는 길만 남았다 // 밀려오는, 밀려가기도 하는 우리는 / 숨 막히는 세상을 살다 / 숨이 트이는 이곳에 왔다 / 저녁으로 가는 시간을 지우며 왔다 / 호수 향해 뻗은 나무의 잔가지 틈새로 // 안개비가 내린다 / 하늘은 가늘고 긴팔을 내려 / 호수의 속삭이는 얼굴을 매만진다 / 출렁이는 얼굴 위로 미끄러지는 비의 왈츠 / 수천의 군무 되어 춤추는 호수의 물방울은 / 너의 흐르는 눈물 같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 물결 위로 들려오는 하늘 소리 / 비 오는 호수 위 내려앉은 하늘길 따라 / 나는 네게로 가고, 너는 내게로 온다 / 누구라도 새로운 것에서 설렘을 찾으려 한다면 / 익숙함에서 오는 설레임은 만날 수 없다 / 호수와 하늘의 구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 네게로 향한 설렘은 안개 속으로 / 밀려오는 물방울 속에 가득하다 / 호수가 하늘을 안고 잠들었다     안개비 내리는 호수는 신비하다. 호수의 색마저 옥빛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끼워져 있던 둥글고 도톰한 옥반지를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바로 그 옥색이 되살아난다. 안개 비가 내리는 호수는 몽환적이다. 호수 끝에 맞닿은 하늘마저 옥색으로 바뀌고 있다. 호수는 하늘로 향해 풀어지고. 하늘은 호수를 향해 그 경계를 지우고 있다. 그러니 호수와 하늘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호수가 하늘을 품은 건지, 하늘이 호수를 품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하나가 된 옥색의 호수와 옥색의 하늘이었다.     안개 비 내리는 호수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하늘가에까지 출렁이는 물결을 볼 수 없다. 다만 발밑에 부서지는 흰 파도의 거품만 보였다 사라질 뿐이다. 너와 나의 인생길이 그렇지 않은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 속을 거니는 것처럼 손을 뻗어도 너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가까운 곳 같으나 참으로 먼 곳 같기도 한 그곳.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일생을 걷고 간혹 뒤돌아보기도 하고 오랜 침묵 속에 말을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였는데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길을 잃었다 낙심하였는데. 누군가의 손이 나를 이끌어 선명한 킬 위로 인도 할 때도 있지 않았던가.     안개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걸어온 그 길 뒤로 되돌아 걸으면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네게로 향해 걷고. 너는 내게로 걸어오고 있다. 다만 안개가 그 모습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안개가 걷히면 익숙함에서 오는 설렘은 저 수평선 너머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같이 온몸 속에 스며드는 당신의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떨어져 있는 너를 볼 수 없기에 너의 걸음을 따라갈 수 없었네. 너의 생각을 안다고 위로했지만 그건 흐르는 물같이 붙잡을 수 없었네. 손에 쥔 모래처럼 내 손을 빠져나갔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보네. 발을 적시고 무릎까지 잠겨오는 너를 다시 만나네.    안개 속에서는   너를 볼 수 없네   너에게 다가갈 수 없네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조금 움직여도 괜찮아   짧게 말해도 괜찮아   우리는 흐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먼 곳이어도   가까운 곳이어도   손잡을 수 없는 우리는   감추어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돌아온 걸음만큼   다시 돌아서 걸으면   안개 속에 호수와 하늘이 만나듯   우리도 만날 수 있으니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안개비 안개비 호수 하늘 소리 하늘 계단

2024-12-3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세월이 지나간 풍경

지나간 것들은 그립다. 고향집 마을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초가집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은 텃밭에서 돋아난 버섯처럼 동그라미를 그린다. 먼 산 봉우리에 살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비슬산을 감싸고 지천으로 핀 참꽃(진달래)은 핏빛 사랑을 품고 광활한 참꽃군락지를 이룬다.   삼만이 아재는 땔감을 장만하러 산에 갈 때마다 참꽃 한아름 꺾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옥이 언니는 양지 바른 툇마루에 날 앉히고 ‘꼬마 공주님’ 하며 머리에 참꽃을 매달았다. 왠지 가슴이 떨려 왔다. 하모니카 불듯 꽃잎 따서 입 안에 넣으면 쌉쌀하고 달콤한 향기가 혀 끝을 맴돌았다.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의 추억이 반짝일 때 헤어지는 맛도 있겠다’-황동규 ‘이별 없는 시대’ 중에서.   시인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발렌타인을 좋아한다. 나는 술을 전혀 못 마시지만 서울 갈 때 가끔식 여행 가방 속에 발렌타인21을 챙겨 간다. 선생님은 소중하게(?) 아껴 드시고 반쯤 남으면 뚜껑을 닫아 주머니에 넣으신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건 그냥 수양버들에 묶인 그네가 하늘 높이 나는 신선한 자유로움이다.   ‘이별 없는 시대’의 ‘늙마’는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 마종기다. 마종기 시인은 1965년 군의관으로 군 복무 중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 문인 82인 서명’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미국으로 추방되듯 이민을 간다.   마종기 시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진단방사선과 전문의를 거쳐 톨리도에서 방사선의사로 역임한 후 은퇴했다. 주립대학 시절 타계한 친구 기일이 오면 4시간을 운전해 꽃을 들고 우리 동네에 있는 데이빗 묘지를 찿아왔다.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 주는 친구는 뭐해?/ 내가 사랑하니까. (중략)/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느니까.(중략)/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마종기 ‘대화’ 중에서 아픔과 고통, 사랑과 미움, 이별과 그리움은 살아있는 동안 넘치는 축복이였다. 사라져 별이 되는 순간에도 언약의 말들은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누군가 조용히/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하늘가에 별이 하나 돋는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의 존재론적 의미를 ‘홀로움’이라는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다.   바람이 매섭게 심장을 헤집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그대가 풍경 속에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찬란했던 시절.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걸어가면 눈물이 방울져 내리는 내 손에 안개꽃 한아름을 건네준다.   세월이 지나간 풍경 속에 따스한 햇살로 남은 그대여! 다시 만날 수 없다 해도 작별이 끝이 아닌 것처럼, 사랑이 재가 될 때까지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친구 마종기 마종기 시인 그네가 하늘

2024-12-2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까불지 마라 다친다

‘까불지 마라. 다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이다. 촐랑대고 까불면 종국에는 사고 친다. 어릴 적부터 할 일 없이 생각에 골몰해 멍 때리며 길 가다가 넘어져 무릎 성한 날이 없었다. 그 뿐이랴! 좋은 일 궂은 일, 안 가리고 앞장서 설치다가 반 대표로 나 홀로 벌 서고 사고뭉치로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어릴 적 촐랑대며 벌인 사고는 철 들면 좋아질 확률이 있지만 나이 먹고 까불면 정말 꼴블견이다. 나이 들면 처신을 바르게 잘 해야 어른 대접 받는다.   처신(處身)은 세상 살아가는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이다. 처신을 잘못하면 망신살이 붙거나 패가망신 한다.   처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드리는 위기 상황에 바르게 대처하는 자세인데 비해 처세는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유리함과 생존을 꾀하는 수단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도 걱정은 태산이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에는 관심 없고 모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졸개들의 신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가 도래했다.   후한 말 정치는 암흑기에 접어들고 황제는 허약하고 무력한 허수아비에 불과해 조정은 환관세력인 십상시가 권력을 휘둘렀다. 이 틈을 타 지방 호족세력들은 온갖 수탈로 농민과 백성들을 핍박하고 천재와 전염병 창궐하면서 황건의 난이 일어난다. 강력해진 세력의 지방 호족들은 황건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더 큰 힘을 갖게 된 동탁, 공손찬, 원소, 원술, 유표 등의 쟁쟁한 군웅들과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을 이어간다.     결국 조조, 손권, 유비의 각축전으로 좁혀지면서 군웅할거의 국면은 마무리 된다. 군웅할거는 여러 강한 자들의 권력 다툼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영웅들의 전쟁을 뜻한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며 추앙 받던 인물이 단 한 번의 말실수와 잘못된 행동으로 최후를 맞기도 한다. 뛰어나 보이지 않던 인물이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조조에게 ‘나의 장자방’이라는 헌사를 들으며 그의 대업 달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순욱은 단 한 번의 말실수로 죽음에 내몰렸다.   반면에 조조를 죽음의 위기로 내몰았던 가후는 조조에게 중용되었고 그의 아들 조비와 조예 때까지 중책을 맡으며 80세까지 장수했다.   작금에 벌어지는 국가 위기를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영웅들의 군웅할거가 아니라 졸개들의 난동으로 보인다.   ‘난세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라는 말도 힘이 없어 보인다. 처신을 잘 못 하면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힌다. 몸 둘 곳을 잘 알아야 살 길을 찿는다. 함부도 단정 짓고 자신의 우월함과 능력을 과신하면 나락에 빠진다.   좋은 말하는 입보다는 바른 말 듣는 귀를 가진 사람, 잘난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뛰어난 능력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 사람, 타인을 얕보고 무시하지 않는 품성을 가진 사람, 멀리 바라보고 현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처신을 바르게 잘 하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사람 사는 건 매 한가지다. 분수에 맞지 않게 까불고 설치면 다치고 몰락한다. 중책을 맡은 자들이 중심을 못 잡으면 나라가 거덜난다.   법보다 정치보다 사람이 먼저다. 국민을 존중하고, 나라를 바로 잡는, 심성이 올곧은 지도자가 이 풍진 세월 속에 혜성처럼 나타나기 바란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지방 호족세력들 사람 처신 국가 위기

2024-12-1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있다는 기적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눈꼽 만한 기대도 안 했던,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지기도 하고 준비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펑크가 난다. 세상만사 마음 먹은대로 굴러간다면 안달할 일이 없다.   요즘 좋은 일보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더 많이 듣는 것이 슬프다. 부모님들이 연로하셔서 유명을 달리하시거나 건강하게 잘 살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듣는다.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던 친구가 심정지로 쓰러져 투병하다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은 믿기 어렵다. 황망한 소식 접할까 봐 걱정돼서 선배나 작가, 은사님들의 존함을 검색하지 않는다.   ‘굿모닝’은 ‘좋은 아침’이라기보다는 ‘밤새 안녕하세요?’를 묻는 인사다.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계시라는 염원을 담은 따뜻한 인사다.   나이 들면 살아가는 모든 방식에서 평준화가 시작된다. 행복과 불행,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차이가 없어지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의 키재기가 비슷해진다. 화려한 직함은 명함에 새겨진 글자고 저택이나 은행 잔고는 숫자일 뿐 나이 들면 효용가치가 줄어든다.   평준화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외모다. 내가 가장 즐겨 보는 것은 유명 연애인들의 젊을 때 사진과 나이 든 얼굴을 비교하는 ‘Before and Now’다.   시대를 향유하던 미녀들과 세기의 꽃미남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폭삭 망가진 걸 보며 위로(?)로 삼는다. 너무 튀나게 안 예쁘면 천천히 늙는구나!   기대효과(期待效果)는 어떤 일의 결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적게 이루어도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외모가 준수하지 못해도 자존감 상처 안 받는 수준에서 현실로 받아들이면 허리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   각자가 가진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 높고 낮음, 고통과 환희, 육신과 영혼의 무게를 달면 인생은 ‘희로애락 용량?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략)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아가씨가 물었다, 연애을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중략) 왜 나는 너에게 그 사이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중략)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 허수경의 ‘빙하기의 역’ 중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은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방인으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며 모국어로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절절하게 담았다. 시인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54세로 별세해 수목장으로 뮌스터 흙에 묻혔다.   참혹한 전쟁과 파괴, 파리 목숨보다 더 잔인한 살상과 학살에 세상의 끝을 본다. 해괴망측한 사건들을 죄의식과 반성없이 조장하고 퍼트리는 소식 듣기가 두렵다. 갑자기 무당이나 점사에 기웃거리며 운수를 살피는 지경이 됐다. 사는 것이 어지럽고 흉훙하면 민초들은 미신과 헛소문에 귀가 쏠린다.   이웃과 친구, 내가 살아있다는 기적에 몸을 떤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기적 소식 듣기 독일 뮌스터대학교 고고학적 상상력

2024-12-1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콜라보다 진한 유전자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은쟁반에 구르는 포도알처럼 달콤하다. 깨 볶는 듯 고소한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다. 낄낄 깔깔 까르르 히득히득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이 모이면 행복한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추수감사절 연휴를 앞두고 약 8000만명이 대이동을 시작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 추수감사절은 내가 사는 오하이오 주에서 열기로 했다. 딸네는 동쪽 끝인 뉴저지에 살고 아들은 서부 끝 샌디에이고에 둥지를 틀어 다함께 모이려면 미대륙을 횡단하는 대장정 이동이다. 날짜 조정 및 비행기 예약은 숫자와 액수에 밝은 며느리가, 앤터테인먼트와 먹거리는 푸드네트워크와 레이쳘레이쇼에서 활약한 딸이 총대를 맨다. 별 다섯짜리 레스트랑 버금가는 메뉴로 화끈하게 해결하는데 내 몫은 때 맞춰 눈치껏 크레딧카드를 공수하는 일이다.     피는 콜라보다 진하다. 만인의 칭송(?) 받으며 남 일 내 일 안 가리고 해결사 노릇하는 딸은 건장하고 믿음직한 사위 만나 손녀 손주 낳고 고분고분 잘 산다. 늦둥이로 이기적이고 욕심 많던 아들은 사리에 밝고 젊잖은 며느리 덕분에 딸 둘 양육에 매진하고 살림을 잘 해서 사랑받는 남편으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산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수많은 생물들의 생존을 위한 행동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주요 내용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기존의 진화론들이 주장하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를 강조한다.     일개미가 자신을 희생하여 여왕개미의 번식을 돕는 것이나 말벌이 내장이 뽑혀 죽을 위기를 감수하면서도 독침을 쏘며 적을 막는 것도 사실 자신과 가까운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이기적인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수많은 경쟁과 생존을 위한 행위는 결국 유전자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본능이라는 논리다.     이 학설은 인간도 유전자의 이기적인 본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름 점은 이기적인 행동을 억제할만한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문화와 진화를 이끈 또 하나의 복제자 ‘밈(MEME)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밈은 지식, 언어, 습관과 같은 인간의 문화 전파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인간의 뇌에서 다른 인간의 뇌로 복제된다. 인간은 그 종만이 가지고 있는 모방능력으로 인해 밈의 숙주가 된다. 뇌에 있는 생각들은 다른 뇌에 복제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스트레스 해소하며 수다를 떠는 동안 수많은 밈들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상대방에게 복제된다.     다행히 자식들이 두 명씩 자녀를 생산한 덕분에 내 유전자는 두배 증식에 성공했다. 손주들이 각양 각색의 성격으로 하는 짓이 천차만별이라서 이기적인 유전자 복제를 의심한다. 호떡집 불난 것보다 더 난리법석을 부리며 혼을 빼서 자식들 휴식하라고 그림을 가르친다. 얼마나 제멋대로 그리는지 혀를 내 두른다. 모방과 창조는 한 끗 차이다. 손녀 둘이 화가가 되겠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유전자 법칙이 여기서 적용되나! 선배 한 분이 ‘충동적이고(impolsive) 예측할 수 없는(unprditable) 유일한(one of kind). 절망을 극복하는(endures despair)’ 내 모습이 스칼렛 오하라와 흡사하다고 했다. 애들이 절망할 때면 “꼭 이겨 낼 거야. 넌 엄마 DNA를 갖고 있으니까.” 내가 하는 위로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유전자 콜라 유전자 복제 유전자 법칙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2024-12-03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슴새벽

첫눈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 / 나무에 기대어 사는것도 숨이 차올 때 / 촛불 하나 불 밝히면 그게 온 세상 다인 / 당신이라는 호주머니 속에 살고 싶었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픔으로 눈길을 걷네 / 낯선 어둠이 길을 막고 서 있네 / 내안에 흔들리는건 내가 아니었네 // 얼어붙은 단풍잎 하나 집어들다가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꿈에서 깨었네 / 맞은편 하늘도 내려앉아 새벽이 아파 오네 / 손에서 바스러지는 낙엽의 마지막 숨 / 하늘이 발밑에 무너져 내린 것이네 // 막다른 길위에도 바람이 스쳐 오네 //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맞이한 별빛도 / 하늘을 나르는 새의 깃털같은 자유도 / 뒹그는 붉은 나뭇잎 하나만도 못해 / 새벽길을 더듬으며 너의 흔적을 찿네 // 빛처럼 내리는 고요의 숲길을 걸으며 // 마지막 길을 함께 못한 회한이 나무처럼 서있네 / 창가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아침은 오는데 / 먼발치로 바라 보는, 가지 못한 길이 서럽네 // 별빛 영롱해지고 파도 잔잔한 날 / 지나온 시간과 함께 다가올 시간도 꼭꼭 싸매 / 당신 바라보는 별빛아래 놓아두기로 했네 / 안녕, 그 고통의 아름다움을 껴안네 // 내려오는 발길에 선물처럼 먼동이 트는데       설명하는 지인의 눈은 밝고 빛이 났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그의 말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 보았음직한 단어이었음에도 한 번도 내 입을 통해 말해 본 적 없는 정겨운 단어였다. “맞아, 걷기 좋은 날이면 맞은편 언덕으로 달려 갔던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이 *어슴새벽이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길은 하루를 여는 가슴뛰는 시간이었다. 기대 하지 못한 풍경을 만나고 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마지막 한 생명의 호흡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는 바람에 떨고 있었지만 기꺼이 가지로부터 떨어져 봄에 피어날 새싹을 위해 썩어질 준비를 마친 후 같이 비장해 보였다.     빈들이 되어버린 언덕에 첫눈이 내렸다. 순식간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보이는 풍경이 하나로 되어 세상의 불협화음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나도 소리없이 입을 막고 눈길을 걸었다. 발밑에 뽀득이는 소리가 좋아 일부러 눈길을 찿아 걸었다. 고요가 맞은 편 숲길에서 걸어 나왔다. 이 고요는 벌거벗은 나무를 껴안고, 까만 씨앗을 품은 들꽃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 중 어슴새벽은 늘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깨어나는 시간이고, 품어주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시간이고 용서하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을 거슬릴 수 없다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주어 나도 하얀 풍경으로 남아 이시간에 머무르고 싶었다.       창가에   목련노을이 지면   하루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숨쉬듯 반짝이는   별이 뜨고   내 마음 가득 담은   널 닮은 달도 오르고 말지   빈들엔 고요의 축제   하얀 풍경의 시간이   거기 멈추어 섰네 (시인, 화가)     *어스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남아 이시간 맞은편 하늘 맞은편 언덕

2024-12-0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무엇을 남길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빈 말이다.     옛날 조상들은 호랑이는 죽은 후에도 가죽을 남겨 물질적 가치가 있다는 말인데 요즘 호랑이 가죽을 귀중한 자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죽은 후 명예나 업적을 칭송 받는다는 뜻이다. 속담의 본 뜻은 삶의 가치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명예와 업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남긴 행위와 업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추억으로 남는다. 세월이 흐르고 생의 굴레를 벗어나도 기억의 문턱을 너머 서면 작은 파도의 진동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꽃이 피는 날에는 찬란한 빛깔의 호랑나비로 동그라미 그리며 코발트 빛 하늘을 맴돌고 꽃잎 지는 때에는 고추잠자리 되어 억새풀에 지친 몸을 기댄다.     만나고 나눠지는 것이 생명과 소멸의 법칙을 따른다 해도 가슴 속 이끼처럼 남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구는 얼마나 많은 공전을 지속해야 하나.     공룡은 2억 5천만 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등장해 6천 6백만년 전 멸종했지만 거대한 뼈의 흔적으로 남아 죽음의 위용을 자랑한다. 알타미라 동굴 유적에는 구석기 시대의 거대한 들소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동굴을 뛰쳐나올 것만 같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역사의 등불을 밝힌다.   인간은 위대한 업적으로 이름을 남긴다. 부서진 뼈 조각이나 화석, 부패되지 않는 미라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 번영과 발전을 위한 노력과 공적으로 칭송받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 속에 중요한 획을 긋는다.   바르셀로나를 빛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로 꼽힌다. 가우디는 건조한 기하학식 고전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 속 사물들을 건축에 투영해 자연이 주는 곡선과 아름다운 빛이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건축물을 창조한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최고의 걸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미완성으로 현재진행중이다. 다채로운 빛깔의 바다를 헤엄치듯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로 가우디가 그의 남은 생애를 바친 대표작이다.     1926년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다 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당했는데 노숙자로 여겨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여러날 방치된다.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이 치료 받기를  닦달한지만 가우디는 “옷차림만 보고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걸 보여주게 해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며 치료를 거부한 후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다.   가우디가 건축학교를 졸업할 당시 학장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에게 주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다.     예술가는 죽지 않는다. 죽어도 살아 숨쉬며 작품 속을 걸어나와 시대를 앞서 간다. 살아있는 것들의 축복을 작품 속에 담고 미래의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지 말고, 한송이 선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있기를.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천재 건축가 나무 하늘 건축가 안토니

2024-11-2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빌려온 시간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잘못된 시간이 사라지고 있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는 일이란   내 마음의 잡초를 걷어낸 후에라도   서로의 발자국을 확인해야만 했네       꽃향을 따라 나비가 길을 내듯   불 밝힌 오두막을 향해 길을 내어야했네   머물 수 없는 어둠의 울타리를 넘어야 했네       “괜찮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네   비장한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한 걸음 발을 뗄때마다 이명은 사라지지 않네       내게는 빌려온 시간이 있네   그 시간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네   지나 보니 내 것이 아니었네       내가 어둠의 청색이 가라앉는 동안 길을 내었네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오는 언덕에 서네   바람은 지나온 시간을 밀어내고 있네         창밖을 봅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립니다. 먼 나라, 꿈도 꿀 수 없는 하늘에서 빈들로 여린 동작으로 눈이 내립니다. 시야에 꽉 찬 풍경은 하얀 눈의 여백으로 일상의 풍경을 한 폭의 동양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눈입니다. 밖으로 나가 눈 내리는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목적도 없이 발끝이 닿는 곳으로 갑니다. 발자국이 찍힌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았습니다. 이 발로 그 긴 시간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제자리인데 나는 눈길을 걸으며 다시 태어납니다. 내 볼을 만지는 눈은 어느새 녹아 눈물이 됩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시간이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담을 쌓고 작은 창문을 내고 그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던 바깥세상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을 잊어 버리고 살아왔던 시간이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 그 말은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함께였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차마 그 손을 놓아줄 수 없을 겁니다. 눈길을 걸으며 지나온 나의 시간으로 눈을 돌립니다. 나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살아온 날들이 보입니다. 그 시간이 낯설어집니다. 꼭 빌려온 시간같이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과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함께 뜨거운 커피를 나누고 싶습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짙은 회색의 하늘을 보고, 서로의 걸어온 길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이 번쩍 뜨이는 반가운 사진을 찍고, 아쉬워 돌아오는 밤길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런날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좋아요” 활짝 웃는 그리운 얼굴이 차창을 따라옵니다. 다시 아침은 오고 또 날이 저물어 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신기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잠든 나를 비추는 그 별은 아침이 되면 하얗게 부서져 무너집니다.     이별이란 단어와 이별하는 날을 꿈꾸어봅니다. 어느 날 함께였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새하얀 눈이 내리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밤이 지나고 나면 동쪽 하늘 언저리에 당신의 아픔을 덮어줄 푸른 새벽이 올 것임을 압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동쪽 하늘 가을 하늘 위로 바람

2024-11-2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건너지 못하는 강 건너

생의 주사위는 던져진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운명이건 숙명이건, 피할 수 있거나 피할 수 없거나 인생의 주사위는 던져진다.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행복과 불행, 욕망과 좌절, 희망과 절망, 사랑과 이별, 축복과 저주,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인생의 길고도 짧은 희로애락의 강을 번갈아가며 건너간다.   순간의 차이로 명운이 갈라지고 운명의 수레바퀴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이 아니라 각본 없이 짜여인 원고지의 빈 칸을 채운다.   생명과 죽음을 판정하는 주사위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한 알이 칠흙의 어둠으로 생명을 삼킬 때까지 눈 뜬 장님처럼 살아간다.   주사위 어원은 ‘제비뽑기’다. 영어로는 ‘Dice’인데 작은 상자 모양의 각면에 여섯가지의 점이 새겨져 있는데 바닥에 던져 윗면에 나온 수로 승부를 겨룬다. 인생의 패는 낙장불입(落張不入), 한 번 바닥에 놓아버린 패는 다시 무를 수 없다.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갈리아 원정을 함께 했던 군사들과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한다. 로마 공화국은 도시국가를 복속시킨 뒤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집정관이 해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자신이 이끌던 군단들을 루비콘 강에서 해산시키고 단신으로 로마로 돌아오게 했다.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면 반란을 의미한다.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루비콘 강에서 군대를 해산하고 단신으로 올 것을 요구했지만 그럴 경우 원로원에게 암살 당할 것임을 직시한 카이사르는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공화정을 종식시킨다.   라틴어 ‘rubico’는 형용사 ‘rubeus(붉다)에서 기원했는데 진흙 침전물에 의해 강물이 붉은 빛깔을 띠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루비콘강을 건너다.’라는 표현은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봉착했을 때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의 뜻으로 쓰인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루비콘 강을 건는다. 건너지 말아야 하고, 건너서는 안 되는 경계를 넘나든다. 넘어서는 안 되는 산도 목숨 걸고 정복하고, 건너지 못하는 강, 건너서는 안 되는 위험한 강을 겁도 없이 건넌다.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해도 순간의 유혹과 탐욕을 참지 못해 나락의 길로 들어선다. 조금만 견디면 해결될 일을 그 시간을 못 참아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넌다.   죽기 살기로 사랑을 맹세했던 사람과 결별하고 도원결의로 우정을 다짐하던 친구와 등을 돌린다. 동지가 황야의 무법자로 변해 서로 총을 겨누며 루비콘 강을 혼자 건너간다. 루비콘 강은 먼저 건너는 사람이 자살골을 넣는다. 죽고 사는 일 빼고는 생의 주사위는 언제든지 다시 던질 수 있다.   연어는 산란을 위해 귀향한다. 바위나 돌, 거센 물살에 찢겨 온몸엔 벌건 상처가 가득해도 거센 강물을 거슬러 목적지에 다다른 연어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오직 번식을 위한 힘겨운 여정의 막바지 임무를 완성한 연어들은 사체가 되어 자연으로 회귀한다.   그대여, 사는 것이 모질고 견디기 힘들어도 루비콘 강은 건너지 마요. 대신 강물에 헛된 부귀영화와 좌절, 고통과 슬픔을 떠나 보내세요. 루비콘 강은 죽음의 강입니다, 강 건너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사는 날까지 버티며 살아 주세요.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주사위 어원 율리우스 카이사르 운명이건 숙명이건

2024-11-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껴안고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날밤 새는 줄 모르고 설쳐댄다. 요즘 눈만 뜨면 아들이 사 준 트레드밀에서 다람쥐처럼 뜀박질을 한다. 장가 가서 집에 다니러 온 아들이 다짜고짜로 끌고가 트레드밀을 구입했다.   물론 구입대금은 내 크레딧 카드로 긁었다. 그리곤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운동을 시킨다. 지들 어릴 때 숙제 조사하듯 매일 체크를 해대니 안하고는 못배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자식이다. 범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자식하고 맺은 약속이다.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해야 돼요. 엄마 일찍 죽으면 나 슬퍼해.” 아들의 이 한마디에 40년 동안 ‘운동 안 하고도 스트레스 안 받기 작전’으로 버티던 내 지조(?)가 와르르 무너졌다. 성가시게 보채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하게 저려온다.   몸으로 떼우는 모든 것에 나는 젬병이다. 특히 운동에는 취미도 관심도 없다. 미식 축구 게임조차 잘 이해를 못하니 무식 정도가 아니라 푼수에 속한다.   친구들에게 등 떠밀려 산 골프채는 레슨만 두 번 받고 차고에서 휴식 중이다. 그래도 주눅 안들고 “난 운동 싫어서 안한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오히려 큰소리치며 산다. 포기각서 쓰면 맨날 마음만 먹고 실천 못해 안달하는 사람보단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모를 때는 몰랐는데 해보니 진짜 운동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저 혼자 놀아도 즐겁고 봐주는 사람 없어도 신나는 게 운동이다.   신나면 재미있다. 신은 열정을 유발시킨다. 열정이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생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면 자신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열정이 생긴다. 마음은 콩밭에 있는데 보리밭에 가면 물에 물탄 듯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열정은 겉으로 들어난 것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 떠벌리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열정이라 할 수 없다. 떠벌리기는 겉으로 뿜어내는 거품이기 때문에 잘 사그러든다.   드러나지 않지만 차분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작은 물방울로 바윗돌을 뚫는다. 열정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용솟음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영혼을 붙태우는 화염이고 생을 끌고가는 수레바퀴다. 찬물을 끼얹으면 의기소침해지고 풀이 죽어 마음에 병이 생긴다. 열정은 드릴 속의 배터리와 같다. 열정은 드릴처럼 삶에 구멍을 뚫어 신선한 바람이 불게 한다. 드릴을 사용할 때는 배터리 점검도 중요하지만 용도에 맞는 드릴척(drillbit)을 잘 골라야 된다.   분별 없는 열정은 에너지만 소진시킬 뿐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 열정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타협해서 무너지면 열정이 아니라 오기였을 뿐이다. 오기는 벽에 부딫치면 부서지지만 열정은 벽을 넘고 산을 넘어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인생이라는 동력선을 이끌게 한다.   왠지 의기소침하고 사는 게 시시하고 삶에 열정이 없다고요? 마음의 상자를 열어보고 제일 하고 싶은 것부터 순서대로 줄을 세우세요. 눈을 감고 한 손으로 맥을 짚고 다른 한 손을 심장에 얹어보세요. 살아있다는 이 작은 충만함으로도 당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활화산처럼 불태울 열정이 다시금 용솟음치고 있지 않나요?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활화산 열정 맨날 마음 진짜 운동 배터리 점검

2024-11-12

[실학산책] “성<性>만으로는 덕<德>이 될 수 없다”

조선의 실학사상을 연구하다 보면 의외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초정 박제가 등 셀 수 없이 많은 실학자들…. 어느 누구 한 분 뛰어난 사상과 철학을 지닌 학자들이 아닌 분이 없지만,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다산 정약용에 이르면 그 사상의 혁신성 때문에 더 많은 느낌을 갖게 해준다. 1797년은 다산의 나이 36세였고 지금으로부터 227년 전의 일이다. 이 해에 다산은 황해도 곡산도호부사에 임명되어 최초로 목민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목민관은 삼권(三權)을 행사하는 권력자로 수사와 재판도 담당하던 때였다.   민란 주동자를 무죄 판결한 다산   기록을 보면 다산이 곡산 땅에 부임하여 첫 번째로 처리한 재판이 바로 이계심(李啓心) 사건이었다. 농민 1000여 명을 이끌고 관아에 쳐들어온 민란의 주동자가 이계심이었다. 판결의 주문은 무죄.   “목민관이 밝은 정치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백성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느라 꾀가 많아 관의 잘못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계심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관에 항의하는 일을 했으니,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지 벌을 줄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너를 오늘 무죄 석방한다.”   전제군주 국가의 재판관으로 관아에 침범한 민란의 수괴를 무죄 석방한 다산, 230여 년 전의 재판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국민의 저항권을 확실하게 인정한 다산, 얼마나 위대한 선각자이자 진보적인 학자인가.   관의 탐학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위해 관아에 쳐들어가 항의하는 일은 무죄라는 다산의 법의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주자학’과 분명한 차이를 지닌 ‘다산학’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주자는 성(性)은 이(理)라고 해석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은 성이란 기호(嗜好), 즉 어떤 일에 즐기려는 ‘경향’으로 해석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주자는 이(理)라는 관념의 논리를 구축했으나, 다산은 기호라는 행위를 전제한 경험의 논리를 세웠다. 그래서 유학의 최상가치인 덕(德)의 해석에서 주자와 다산은 판이한 사유체계로 갈라진다. 주자는 덕이란 ‘구중리(具衆理)’ 즉 온갖 이치를 갖춘 이의 개념으로 여겼지만, 다산은 덕이란 ‘효제자(孝弟慈)’라는 행하고 실천하는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다산학의 핵심인 ‘원덕(原德)’이라는 짤막한 논문 한 편은 바로 현실에 가장 절실한 글임을 알게 된다. “하늘이 명(命)한 것이 성(性)이요,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다”라는 『중용』의 철학에 따라 다산 자신의 철학이 나왔다. “명(命)과 도(道) 때문에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자기와 남이 있기 때문에 행(行)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그 성과 행 때문에 덕(德)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만 가지고는 덕이 될 수가 없다”라는 세기적인 발언이다. 아무리 착한 성품이지만 그 착한 성품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어지는 일이 없다면서 그런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성(性)+행(行)=덕(德)이라는 영원한 진리가 다산학에 담겨 있다.   유학사상의 주류는 당연히 성선설이다. 인간은 본디 착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이론에 근거해서 다산은 성을 양심(良心)과 함께 설명한다. 하늘에서 받은 착한 성품, 하늘에서 받은 선량한 성품, 이런 성품을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덕이 되므로, 성품과 양심을 몸속에 담아두고서는 세상과 역사는 제대로 가지 못함을 밝혀낸 사람이 다산이었다. 우리 시대의 정치가(政治家) 김대중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고난의 일생을 행동으로 투쟁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했던 역사적 경험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기고, 양심을 실천할 때에만 바르게 갔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3·1혁명,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항쟁, 모두 정의로운 성품과 양심을 잠자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이 나라에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었다.   지도자는 국민 뜻에 따라 정치해야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들이 돌을 던지면 왜 돌을 던지는가를 알아내서 돌을 던지지 않을 정치로 국정의 기조를 바꿔 국민들의 뜻에 따라야지,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하면 국민들의 뜻이야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이니, 그런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과 희생으로 이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오르도록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시켰던가. 그러나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겨우 2년 반 사이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망가지고 파괴되었는가. 이 나라 민족정기와는 역행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이 국가의 요직을 점령하였고 친일매국 세력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이제는 바른 성품과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자. 박석무 /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실학산책 저항권 주자학 성품 하늘 학자 다산 다산 기록

2024-11-11

[문예마당] 인간의 잔인함·뻔뻔함은 어디까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늦더위에, 가을장마까지 겹쳐 푹푹 찌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화창한 날씨로 변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러 눈이 시릴 정도다. 무겁고 우울했던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쾌청한 하늘을 보던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세상이 날로 더 악해지고 있다. 한국이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살기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각종 재해와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도 사악하게 흘러간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한국 사회가 총체적 난국처럼 느껴졌다. ‘마약 청정국’도 옛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약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묻지마 살인’ 등 끔찍한 뉴스가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밝혀졌다. 이 사건은 여고 시절 공포에 떨며 읽었던 애드거 앨란포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소환하게 했다.     ‘검은 고양이’는 단순한 공포 소설을 넘어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인 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다 아내까지 살해하고 발각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그 경험들이 ‘검은 고양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약하자면, 온화한 성격에 동물을 아주 좋아하던 평범한 남자가 술에 중독되면서 점점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로 변한다. 술에 취해 자신이 기르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나중에는 풀로토를 나무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그 후, 그는 술집에서 플루토와 닮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그 고양이를 데려와 또 기르기 시작한다. 이 고양이 역시 그의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한다. 결국 이 남자는 두 번째 고양이도 도끼로 죽이려다 실수로 아내까지 죽이게 된다.     아내의 시신을 지하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감추고 벽을 새로 발라서 범행을 숨긴다. 아내가 죽자 기르던 고양이도 자취를 감춘다. 아내가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경찰이 집을 방문한다. 경관들이 집을 훑어보고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그는 자신이 완전범죄를 저질렀다는 교만한 마음에 벽을 두드린다. 그 순간 벽 뒤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수상히 여긴 경관들이 벽을 허물게 되고 그 안에서 아내의 처참한 시신이 발견되고, 아내의 시신과 함께 산 채로 묻힌 두 번째 검은 고양이도 발견된다. 결국 그는 체포되고 만다.     공포와 긴장 속에서 읽었던 소름 끼치는 ‘검은 고양이’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지난 9월 하순 경남 거제의 한 주거지에서 16년 만에 발견된 시신 때문이다. 한 남성이 말다툼 중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넣어 유기한 사건이다. 그는 동거녀와  살던 옥탑방 바로 옆 베란다에 가로 39cm, 세로 70cm, 높이 29cm 크기로 벽돌을 쌓은 다음 시신이 담긴 가방을 넣고 10㎝ 두께의 시멘트를 부어 범죄를 은닉했다.     그 후 그는 그곳에서 무려 8년이나 더 살았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범행은 16년간 아무도 몰랐다. 10㎝ 두께의 시멘트로 은닉한 탓에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존엄을 훼손하는 장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의 범행은 옥상 누수공사를 하던 중 드러났다. 작업자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파쇄하다 시신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발견하면서다. 시신은 백골 상태가 아닌 미라처럼 된 상태였다. 다행히 지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     ‘완전범죄는 없다’, ‘반드시 잡힌다’는 말이 있다. 특히 과학의 발달로 범인 체포에 지문 감식과 DNA 분석이 큰 역할을 한다. 과학수사팀 사무실에는 ‘모든 시신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다고 한다. 과학 수사 요원들은 ‘스치기만 해도 흔적이 남는다’고 말한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또는 해서는 안 될 고약한 짓을 했을 때 하는 말이다. 천인공노(天人共怒)라는 말도 있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할 일이나 인간을 두고 쓰이는 낱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있는데 앞의 사례도 그런 경우다. 사람을, 그것도 한때는 사랑해서 함께 살았던 동거녀를 잔인하게 살해해서 암매장한 집에서 태연하게 8년씩이나 일상생활을 했다는 게 소름 끼친다. 인간의 잔인함과 뻔뻔함은 어디까지인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관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가 아니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으로 기우는 경향을 지닌다”라는 의미이다.     순자는 예의 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노력으로 도덕적으로 교정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규범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말한 암매장 사건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명과 법을 경시하는 풍조와 개인의 분노가 사회 전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더욱 강력한 법 집행과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하다. 위의 사건을 통해 사회 안전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의 한 소절이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티 없이 맑고 쾌청한데 세상은 왜 이리 혼탁하기만 할까?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잔인함 수필 한국 사회 가을 하늘 다음 시신

202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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