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있다는 기적
요즘 좋은 일보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더 많이 듣는 것이 슬프다. 부모님들이 연로하셔서 유명을 달리하시거나 건강하게 잘 살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듣는다.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던 친구가 심정지로 쓰러져 투병하다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은 믿기 어렵다. 황망한 소식 접할까 봐 걱정돼서 선배나 작가, 은사님들의 존함을 검색하지 않는다.
‘굿모닝’은 ‘좋은 아침’이라기보다는 ‘밤새 안녕하세요?’를 묻는 인사다.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계시라는 염원을 담은 따뜻한 인사다.
나이 들면 살아가는 모든 방식에서 평준화가 시작된다. 행복과 불행,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차이가 없어지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의 키재기가 비슷해진다. 화려한 직함은 명함에 새겨진 글자고 저택이나 은행 잔고는 숫자일 뿐 나이 들면 효용가치가 줄어든다.
평준화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외모다. 내가 가장 즐겨 보는 것은 유명 연애인들의 젊을 때 사진과 나이 든 얼굴을 비교하는 ‘Before and Now’다.
시대를 향유하던 미녀들과 세기의 꽃미남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폭삭 망가진 걸 보며 위로(?)로 삼는다. 너무 튀나게 안 예쁘면 천천히 늙는구나!
기대효과(期待效果)는 어떤 일의 결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적게 이루어도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외모가 준수하지 못해도 자존감 상처 안 받는 수준에서 현실로 받아들이면 허리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
각자가 가진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 높고 낮음, 고통과 환희, 육신과 영혼의 무게를 달면 인생은 ‘희로애락 용량?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략)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아가씨가 물었다, 연애을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중략) 왜 나는 너에게 그 사이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중략)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 허수경의 ‘빙하기의 역’ 중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은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방인으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디며 모국어로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절절하게 담았다. 시인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54세로 별세해 수목장으로 뮌스터 흙에 묻혔다.
참혹한 전쟁과 파괴, 파리 목숨보다 더 잔인한 살상과 학살에 세상의 끝을 본다. 해괴망측한 사건들을 죄의식과 반성없이 조장하고 퍼트리는 소식 듣기가 두렵다. 갑자기 무당이나 점사에 기웃거리며 운수를 살피는 지경이 됐다. 사는 것이 어지럽고 흉훙하면 민초들은 미신과 헛소문에 귀가 쏠린다.
이웃과 친구, 내가 살아있다는 기적에 몸을 떤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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