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늦은 오후의 모놀로그
매일 오는 카톡도 조용해서, 꽃이나 나무 그림, 커피잔을 배경으로 한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니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주로 귓등으로 흘려듣고 보는 문자 메시지조차 그립다.
기온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고 간간이 비도 몇 번 내리더니 집 앞에 있는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봄에 하얀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흡사 지난봄에 미처 개화하지 못한 꽃을 지금 피워대는 것 같았다. 나무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간직했다가 원할 때 꺼내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해결 방법이 없는 사건을 기억에서 꺼내 곱씹으려 했으나,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에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아 아깝다. 차라리 이런 자투리 시간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좋겠다.
짐 크로스가 부른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만약 병 속에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영원함이 지나갈 때까지 하루하루를 저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물처럼 아껴두었다가 당신과 함께 보내는 데 쓰고 싶습니다’. 시간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고 싶다는 소망. 지금 나는 이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세상만사가 내 손아귀에 있는 느낌이 들 때, 구름을 걷는 느낌이 들 때, 장미꽃 위에 맺힌 이슬을 볼 때, 아니면 시험을 볼 때, 마감 시간에 쫓길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 소중히 보관한 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풀어서 쓸 수 있다면.
아니면, 우울할 때, 세상에서 시달릴 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잊히지 않는 상처가 올라올 때, 그런 시간을 꽁꽁 묶어 영원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당신이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곡식이 자랄지, 어떤 곡식이 나지 않을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씨앗이라니. 역시 대가다. 그가 성큼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어느덧 해는 잦아들고 있다. 잠자리가 나비보다 눈에 더 뜨이는 오늘. 나는 돌배나무 꽃잎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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