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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신호철

신호철

꽃잎은 네 장. 노랗고 가느다란 수술, 암술에 작은 벌들이 바쁘게 날개를 움직인다. 활짝 피면 엄지 마디보다 조금 크게 핀다. 높이는 15인치 안팎으로 함께 기대어 피면 노란 벨벳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다. 새끼 손가락만큼의 잎사귀 뒷면은 작은 솜털 같은 돌기가 있고 줄기에는 눈에 보일만큼 하얀 솜털이 무성하다. 꽃 대궁에는 다섯, 여섯의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색갈이 붉어 혹 빨간 꽃봉오리가 올라오려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한달 남짓 피었다가 저버리는 짧은 기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이 가히 환상적이다. 한낮엔 태양빛 같이 강렬하고 한밤은 달빛처럼 그윽하다. 해가 지면 꽃잎이 오무라지고 햇볕이 나면 다시 활짝 피어난다. 왜 해맞이꽃이라 안하고 달맞이꽃이라 명했을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밤하늘 달을 향해 꽃잎을 접어서일까?
 
지인의 집에서 한 부삽 분양 받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잘 자라주어 이젠 뒤란의 구석구석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을 맞이하는 꽃, 달맞이꽃. 달빛을 받아 진한 황금 노랑으로 꽃피게 해달라고 밤하늘 달을 향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꽃. 그 기도가 효험이 되어 새날이 밝으면 밤새 오무렸던 꽃잎을 활짝 펴 다시 새날을 맞으며 환하게 얼굴을 드는 꽃. 꽃말 그대로 그리움의 한 밤을 달빛 아래 머물다 행복해지고 잠든 뒤란에 고요하게 내리는 달빛을 머금고 더 밝게 주위를 비추어 주는 꽃. 짧게 허락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짧은 그 시간동안 밝고 빛나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는데 순간순간 그 시간을 얼마나 내 삶에 적용했던가? 계절이 지나가듯, 밤이 오고 아침이 오듯, 직선적이고 객관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고 채워나가는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도에 담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꽃. 우린 달맞이꽃처럼 살았던가? 누구도 흐르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붙잡아둘 수는 없다. 다만 강물처럼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삶에 꽃을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날은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올해 네 분의 지인들에게 달맞이 꽃을 분양했다. 몇 주가 지났는데 벌써 꽃이 피었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다. 심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꽃은 피었다 시들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강렬한 태양빛과 깊은 달빛에 숙성해 가는 중이다. (시인, 화가)
 


 
달맞이꽃
 
 
이른 봄 피어나던 꽃들이 다 시들고 / 활짝 핀 이 꽃도 시들어 가겠지 / 노란 꽃잎이 말리고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 눈물처럼 뚝 떨어져 버리고 말겠지 / 이내 마르고 부서져 흩어져 버리겠지 / 발 길 끊어진 그곳엔 바람 불고 고요할거야 // 썩어진다는 것과 숙성해진다는 것의 차이/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다시 잉태된다는 / 썩지 않고 발효되고 있다는 반가운 바람의 소식 / 수 백 수 천의 꿈이 까맣게 익어가는 중 이라는// 부패는 썩는 것이고 발효는 익는 것 / 발효의 과정으로 나도 익어가는 중 / 구름을 담고, 바람을 숨쉬며 / 시가 영글어가는 시간 / 창틀에 앉은 바람도 쉬어가는 시간 / 강렬한 태양빛, 그리운 달빛을 담아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 / 기도하는 달맞이꽃의 시간 /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달의 시간 / 땅도 하늘도 달맞이꽃도 쪼그려 앉은 나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달구어지고 / 사람이 가는 길 알 수 없지만 / 노오란 달맞이꽃의 기도 하늘에 닿았다 / 우리 모두는 익어가는 중이다 / 노랗게 여물어가는 중이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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