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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장 컬렉션은 보물없는 보물 전시”

지난 6월 막을 내린 LA카운티미술관(LACMA) ‘한국의 보물들’ 전시회의 일부 작품이 위작이라는 의혹에 대해 한국 미술계가 입을 열었다. 전시품을 기증한 체스터 장 박사는 현재 작품 수집 경로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본지 10월 17일자 A-1면〉 한 개입 수집가가 작품 거래 과정에서 장 박사가 작품을 강압적으로 가져갔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거래자는 장 박사가 거래 중 ‘장물’이나 ‘위작’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LACMA에 작품을 전시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동국(사진) 경기도 박물관장은 본지가 지난 7월 보도한 LACMA의 위작 논란 부인 기사〈본지 7월 9일자 A-3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관장은 지난 6월 26일 LACMA가 제기된 위작 논란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한 인물 중 한 명이다.       LACMA 측이 수년간 과학적 연구를 마쳤다는 입장에 대해 이 관장은 “과학 감정은 작품 감정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에 하나 과학 감정이 진품으로 판정되더라도, 안목 감정과 프로비넌스(작가의 작업실에서 지금의 소장자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이력을 추적하는 것)가 완벽히 일치해야 진품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 대부분의 작품 수준이 C급, D급”이라며 “보물 전시회라고 하지만 보물급 작품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장은 “LACMA가 추가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연구는 한국과의 공동 연구가 필수적”이라며, “한국 고미술계에서는 이미 체스터 장 컬렉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LACMA 측이 논란이 된 전시회의 도록(catalogue) 발간 계획이 없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 관장은 “지난 6월 연구 토론회에서 마이클 고반 LACMA 관장은 원래 발간하려 했던 도록을 발간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반 관장은 더 많은 연구 후 도록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관장은 미술 전문지 ‘아트인컬처’ 8월호 칼럼에서 전시 큐레이터이자 LACMA 중국 및 동아시아 미술부장인 스티븐 리틀의 기획 방식도 비판했다. 그는 “리틀이 과학 감정을 맹신하고 한국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선적으로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에 위작 논란이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리틀이 과학 감정을 통해 작품이 진품임을 주장하더라도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위작 논란 작품 중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를 예로 들며 과학 감정 결과 진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품 속 인물들의 위치와 모습이 제목과 맞지 않으며 박수근의 기존 대표작들과도 구도가 다르다는 점을 태현선 큐레이터(리움미술관)와 홍선표 교수(이화여대)가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보물과는 관련이 없는 수석 2점과 중국 청나라 시대 벼루와 먹이 전시된 것을 두고, 이 관장은 중국 미술 전문가인 리틀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장은 ‘보물’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 전시회가 한국 미술의 가치에 대한 ‘무지(無知)와 무시(無視)’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위작 논란이 LACMA를 비롯한 서구 미술계에서 여전히 한국 미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한국이 한국 미술의 본질을 서구에 제대로 알리고,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방식과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LACMA 위작 논란 작품, 수집 경로<체스터 장 박사> 의혹 제기 김경준 기자보물 체스터 한국 미술계 작품 감정 이번 전시회

2024-10-20

[아름다운 우리말] 불안과 설렘 사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내 몸의 세포 하나부터 나를 둘러싼 환경 하나하나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말만큼 많은 해석을 낳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변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허무함을 줍니다. 젊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합니다. 언제나 젊고,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습니다.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보고, 세상을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는 변화와 일정하지 않은 세상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도 그런 개념일 겁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 말은 우리에게 불안과 초조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설렘과 기대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같은 사건이라고 하여도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 일을 그만두는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 나의 감정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정과 긍정은 그야말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붙어있는 감정입니다. 부정에서 고개만 돌리면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강화되는 것에는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의 영향도 있습니다. 부정적 경험이 걱정이라는 감정이 되어 나를 함몰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는 여기에 해당하는 아주 적절한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입니다. 자라에게 물린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자라와 비슷한 솥뚜껑에도 놀라는 것입니다. 자라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솥뚜껑이 두려울 리가 없습니다. 자라 생각만 해도 신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솥뚜껑도 반갑고 말입니다. 긍정적인 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불안이 설렘으로 바뀝니다. 또 좋은 일이 있을 거로 기대하는 겁니다.     삶에서 불안은 줄어들고 설렘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면 부정의 기억을 긍정의 기억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습니다. 힘들었던 일도 돌이켜보면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에는 모든 것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긍정적인 일만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도 모두 현재의 내가 되었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건 분명한 진실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고, 이를 되풀이하여 생각하면, 부정적 사고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게 더 무서운 일입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은 좋으나 트라우마를 계속 반복하여 헤집는 것은 더 깊은 수렁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헤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나를 빨아들이는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어둡고 컴컴해져서 무섭고, 불안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하여 더 힘이 듭니다. 부정적 경험보다 무서운 것은 부정의 기억입니다.   긍정심리학에서는 이런 경우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만큼 부정적 감정은 줄어든다고 합니다. 감정의 총량이 있어서 억지로 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즉, 힘들고 불안할 때는 긍정의 표현을 주문처럼 외우는 것입니다. 단지 긍정적 표현을 떠올리고, 입 밖으로 내었을 뿐인데, 부정적 감정은 저만치 달아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였을 겁니다. 신께 의지하고, 부처께 귀의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고, 힘이 났던 겁니다.   새해가 되고, 새 학기가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여행을 떠날 때도 우리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정의 감정에 물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정의 감정에 계속 물을 주면 부정의 꽃이 필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의 감정에 뿌리부터 여러 번 물을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잘 될 거야. 그동안 그랬듯이 힘든 일이 있어도 끝내 모든 것은 다 도움이 되었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좋은 일도 많아.’ 가슴 설레는 오늘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불안 부정적 감정 부정적 경험 부정적 사고

2024-02-18

감정근육을 키워야!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란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을 억누른 채 직무에 맞는 감정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 노동자는 감정을 자제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친절한 언행을 유지하는 직종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전체 업무의 40%를 넘는 경우 감정노동자로 분류합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목회자도 감정노동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0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2015년에 담임목사 직에서 은퇴했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목회자는 설교에 대한 비평을 들을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한 집사님은 제가 설교 중에 사투리를 쓴다고 비평을 하셨습니다. 제가 신경을 쓰면서 천천히 설교를 하면 어느 정도 사투리가 줄어들지만 생동감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파라과이에서 선교사역을 마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분이 전화하신 용건은 자기 가족과 친구 가족 7명이 더 이상 교회를 나오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분은 저의 면전에서 교회를 떠난다고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화로 통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분은 자기 가족이 영주권이 없어 너무 힘들다면서 저에게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저와 아내는 몇 년 동안 그 분의 가족들의 신분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그 분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 분에게 영주권에 대해 물어 봤습니다. 그 분은 수년 전에 영주권을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튼 목사도 사람인지라 힘든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감정이 흔들립니다. 제가 힘든 일 앞에서 상심하면 '목사가 믿음이 없다"고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제가 좋은 일 앞에서 기뻐하면 '목사가 교인들 힘든 줄은 모르고 속없이 좋아한다!' 고 흉을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성’은 중요하지만 ‘감정’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서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마치 빙산과 같기 때문입니다. 빙산은 바닷물 위로 나온 부분이 10%이고 바닷물 아래에 잠긴 부분이 90%라고 합니다. 저는 빙산의 윗부분이 이성이고 아래 부분이 감정이라고 비유해 보니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빙산의 움직임은 아래 부분에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생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 감정이 없다면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동등한 처리 시간을 부여할 것입니다. 즉 신뢰할 수 있는(좋아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1000번 중에 999번 믿을 수 있었던 사람과 1000번 중에 1번만 믿을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정보처리의 우선권이 없어, 같은 처리 시간을 할당하게 되고 매우 비효율적으로 살았을 것으로 심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정서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행동경향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은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라고 말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동에만 습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도 습관이 생긴다고 주장합니다. 학자들은 이를 ‘감정 습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누군가 함께 지내게 되면 낯설고 불편하게 느낍니다. 이런 감정들은 뇌가 필사적으로 익숙함을 유지하려고 하기에 느끼게 되는 ‘습관적인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감정도 습관이 된다는 것은 고통인 동시에 희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금연과 금주를 하고 싱겁게 먹는 습관을 새롭게 들일 수 있는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 역시 긍정적인 감정으로 새롭게 습관을 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운전하다 일본에 가면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당황하게 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새롭게 몸에 익히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로 생각하고 더디더라도 계속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로 차근차근 생각하며 신경 써야 합니다. 무척 느리고 답답해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은 '감정근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근육이 없는 사람들은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반면에 감정 근육이 발달된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은 감정근육이 발달된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목회칼럼 / 에콰도르 임동섭 선교사감정근육 에콰도르 감정 습관 감정 근육 감정 노동자

2024-02-16

[이 아침에] 열둘 보다 가벼운 하나

가벼워야 한다. 떠나보낸 열둘, 12월의 숫자에 비하면 해가 바뀌며 찾아온 2024년의 시작인 1월은 기필코 가벼워서 내 가슴을 짓누르면 안 된다. 그러기를 숨죽여 기대하며 새해를 열었다. 얼마나 가슴 떨며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내 소망 만으론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관계의 오프닝(openning) 이다.    인간으로 인간들과 어우러지며 살아야 하는 나날들이, 매끈하게 흐르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생각하는 것, 표현하는 말들의 향연에 자꾸 뾰족하게 날이 선 채로 오고 간다. 함께 어울리는 무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공식 같은 것에 표적을 맞춘다. 듣고 흘려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은 곱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에,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느낌이 그럴진대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토픽에 내가 원하는 억양으로 내가 마음 따스하게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며 내가 듣고 싶은 예쁜 말들만 서로 주고받고 싶다. 아니면 얼굴이 금방 일그러진다. 눈매가 매섭게 변한다. 얼굴을 돌린다. 시선을 돌려 지나가는 강아지를 불러대며 인사를 건네본다. 금방 순화되는 감성으로 행복한 톤이 되어 사랑이 묻어나는 고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다르기에 사람과의 관계는 어렵고 강아지와의 감정 교류는 쉬운 것일까? 조건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예쁘다 말하고 사랑 한 스푼 넉넉히 준다. 그러나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다. 돌아올 메아리가 항상 신경 쓰인다. 신경 안 쓰고 간단하게 듣고 넘기는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때론 날이 선 반응이 즉각 돌아오기도 한다. 말하면서 사는 삶이 새삼 버겁단 생각이 든다.    소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경어가 빠지면 내 기분은 재빨리 움츠러든다. 어렵사리 반말로 대응하는 이유를 묻는다. 대뜸 나이 얘기를 꺼낸다. 결국엔 민증을 까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결과는 대부분 내가 숫자가 높다. 머쓱해 하며 뭔 나이가 그리 많냐고 투덜댄다. 보이긴 그리 안 보여서 아랜 줄 알았다고 설명까지 이어지면 나름대로 훈훈하게 가까워진다. 하나 가끔은 민증을 까고 위아래가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이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나. 기분까지 나쁘다고 농담처럼 던진다. 젊게 봐주는데 슬그머니 지나쳐 볼까. 그렇게 마음 굳히면 애초부터 반말한다고 기분 상하지도 말고 모른 척, 몇 살 어린 입장으로 밀고 나가자. 괜스레 숫자에 예민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새해도 어느새 첫 달을 잃어가고 있다. 매사를 둥글게 둥글게 다듬어 보자. 반말지거리로 내게 접근하는 어린 것들을 곱게 보자. 그냥저냥 섞이면서 다가올 세상을 보내자. 까마득한 옛날 사회 초년생 때부터 어리게 봐 주는 것, 젊게 대해 주는 것에 감사하며 즐겼더라면 지혜로운 인간관계를 쌓았을 텐데, 새로운 해 가볍게 시작하자.  노기제 / 전 통관사이 아침에 나이 얘기 옛날 사회 감정 교류

2024-01-30

[열린광장] 반이민 주의 극복하자

미국 내  반이민 정서가 심상치 않게 번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인권 평등을 지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색인종 차별 의식이 남아있다. 다른 인종에 비해 백인이 우월하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까마득한 옛날부터 미국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 인디언들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 건국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했다. 물론 주류 세력은 꾸준히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었다. 미국은 값싼 노동력과 풍족한 자원을 활용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미국의 국토 개발이 안정 상태에 이르렀고, 미국 내 인구증가로 인력 수요에 대한 내부 조달이 가능해졌다. 자연히 이민자의 값싼 노동력이 더는 필수적이지 않게 됐다. 해외로부터의 인력 공급 필요성이 줄고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인력 과잉 현상이 생기면서 반이민 정서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쟁이 생기면서 해외 이민자들에 대한 배척 분위기가 형성되고 확대되는 상황이 생기게 된 것이다.     2024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이민자에 대한 감정이 우호적일지, 아니면 반이민 감정이 심해져 합법 이민자들까지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정책이 우세할지 추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최근  수 많은 미국 이민 희망자들이 목숨을 걸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거나, 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불법 입국자 증가가 이슈화되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자연히 반이민 정서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그런데 발 빠른 일부 정치인은 이런 분위기를 악용하고 있다. 이들은 반이민 감정을 담은 구호를 만들어 각종 매체를 통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혈통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민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몰려오고 있으며, 미국의 기본적인 틀을 파괴하고 있다.”  “학교에서 영어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추방해야 한다.” 반이민주의자들이 하는 주장들이다. 이들은 이민자가 미국에 이익이 되기보다 손해를 끼치는 그룹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 우선’ 구호를 내세우는 그룹들은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반이민 운동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반이민 운동이 인종차별이라는 ‘어글리한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이민 온 아시아계 가운데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많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의 위상을 높여주는 기둥 역할을 한다. 아시아계도 미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이민자 커뮤니티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것이 반이민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김순진 / 교육학박사열린광장 반이민 극복 반이민 감정 반이민 정서 해외 이민자들

2024-01-10

[부동산 이야기] 부동산 감정이 필요한 이유

부동산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면, 투자용이던지 직접 살기 위한 주거용이던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구매를 원하는 부동산의 주위 환경, 즉 로케이션이다. 그리고 현재나 앞으로 예상되는 수입을 감안하여 자신의 재정상태에 맞는 집을 정하는 것이다. 이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융자의 가능 여부와 얼마까지 대출이 가능한지도 미리 알아보기 위하여 앞으로 사게 될 부동산의 가격을 알아볼 수 있다.   준비된 바이어가 원하는 매물을 찾아 에스크로를 열게 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융자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이다. 은행이 융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주택 감정이다. 바이어 쪽에서 보면 경쟁자들을 제치고 오퍼가 수락되어 에스크로를 열었으나 급격히 오른 가격 때문에 감정가격이 매매가보다 낮아 융자가 나오지 않아 에스크로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감정은 구매할 때나 이미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담보로 재융자를 할 때도 필요한 것으로 부동산의 현재 시장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셀러가 주택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을 때 정확한 판매 가격을 알기 위해 감정을 하기도 하고 카운티 정부에서 재산세를 산정하기 위해 감정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감정을 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주거용 부동산에서 쓰이는 것은 주위에서 이미 팔린 주택들의 가격을 비교하는 방식(Sales Approach)을 쓴다. 즉 해당 주택 인근에서 최근에 팔린 매물들과 비교 분석하여 감정 가격을 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었을 때의 비용을 계산하는 방식(Cost Approach)을 쓰기도 하는데 해당 부동산을 다시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산정하여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수익이 생기는 투자용 부동산의 감정 방법(Income Approach)은 보통 아파트나 상가, 또는 오피스 빌딩 등의 부동산을 감정할 때 쓰이는 것으로 해당 부동산에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얼마 정도 되는지를 산정해서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주택의 감정가격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질로우 등 부동산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면 주택에 대한 정보나 감정 가격에 대해 나온다. 단점은 감정가격이 정확하지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데이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감정사나 에이전트 같은 전문가와 확인을 하고 인터넷 정보는 참고 자료로만 쓰는 것이 좋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전문 감정사를 고용하여 감정하는 이유는 융자를 받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므로 비용은 보통 바이어가 내며 가격은 방 3개짜리 중소형 주택의 경우 500여 달러 정도이고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규모에 따라 수천 달러 이상이 되기도 한다. 감정한 후에 결과는 보통 일주일 정도면 나온다. 콘도나 타운홈, 단독주택이라도 게이트 안에 있는 부동산들은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셀러는 주택의 이를 대비하여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미리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문의: (818)497-8949 미셸 원 / BEE부동산 부사장부동산 이야기 부동산 감정 부동산 감정 투자용 부동산 부동산 구매

2023-11-29

[아름다운 우리말] 감정 공유에 대하여

요즘 저는 감정과 언어에 대한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어학을 학문으로 공부할 때는 왠지 감정에 대한 부분을 빼고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감정은 이성과 달리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감정적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입니다.     그런데 감정과 언어를 깊게 다루고 있는 책이 있어서 제자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 주제가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 감정의 공유에 대한 내용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을 누구와 공유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면 혼자서 되짚고, 삭히고, 삼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글에서는 8세 이하의 아이들은 가장 감정의 공유를 많이 하는 대상은 부모라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에게 그날 있었던 일은 재잘대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문득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답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말로 공유해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겁니다. 생각해 보면 서로 어린 처지에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8세가 넘어가면 친구와 감정을 나누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보다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질 겁니다. 이른바 성장하는 것이고, 부모의 곁을 떠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부모는 중요한 감정 공유의 대상입니다. 서로 관계가 잘 유지된다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은 역시 부모님인 겁니다. 친구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가 중요한 감정 공유의 대상이 됩니다. 삶에서 심각한 문제가 다가오는 것은 부부간의 감정 공유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꼭 좋은 일은 아닙니다. 서로를 위하는 일일 수는 있으나 편하게 서로 감정을 나누는 일이 외로움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오는 일일 겁니다. 배우자에게도 말을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 삶은 고통이 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늘 우리의 가장 든든한 감정의 공유자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부모보다 배우자와 감정 공유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는데 그 중요한 원인은 부모님이 더는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장수하시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자식에게 행복한 일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종종은 오랫동안 병상에 있는 부모님도 내 감정 공유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효도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약간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나이 든 부부도 아내의 경우는 감정 공유의 대상이 남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친구나 동네 사람들이 여전히 중요한 감정 공유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남편의 경우는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 공유의 대상이 거의 아내로 한정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고 금방 공감이 가서, 재미있기도 슬프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어떤 대상은 사람이 아니거나 살아있지 않아도 감정 공유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 친구의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내 말을 알아듣지 않아도 우리는 동물 친구와 감정을 공유합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꽃과 나무와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이는 바위와 대화를 나누고, 산과 대화를 나누고, 바다와 감정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기도도 중요한 감정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을 찾는 겁니다. 고통스러움에 새벽에 깨었을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 앞에서 스르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감정 공유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감정 공유 감정 공유 동물 친구 초등학교 저학년

2023-11-05

[부동산 가이드] 바이어의 보호막, 컨틴전시

요즘 LA 인근은 주택 매물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부동산 매물들이 마켓에 올라오면 6개월 안에 거래가 완료된다. 거래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들도 있다. 잘 안 팔리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 가격이 시세보다 높은 경우다. 둘, 집에 크고 작은 하자가 있는 경우 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고집한다면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셋, 바이어가 적절한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협의가 안 되는 경우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잘 종합해 보면, 가격이 제일 큰 문제다. 가격이 적당하면 대부분의 거래가 잘 진행된다. 매우 좋은 조건의 부동산이 있다면 많은 바이어가 관심을 가지고 오퍼를 쓰게 된다. 부동산 매입을 원하는 바이어가 많아지면 셀러는 한 명의 바이어를 선택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조건들을 제시한다. 어떤 경우 모든 컨틴전시를 없애는 조건으로 오퍼를 쓰라고 하는 것이다. 컨틴전시란 부동산을 살 때 조건을 첨부하는 것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하나, 인스펙션 컨틴전시다. 집의 상태가 좋은지, 안 좋은지를 인스펙션을 하거나 조사를 해보는 시간이다. 오퍼가 승인되고 정해진 시간 내에 전문인을 불러 집에 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부동산 에이전트는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의견의 나눌 수는 있지만, 지붕이나 바닥, 파운데이션, 플러밍, 전기 등에 관해서는 전문 인스펙터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만약 수리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셀러에게 고쳐 달라고 하거나 그에 필요한 크레딧을 받는 등 합의가 필요하다.     둘, 감정 컨틴젼시가 있다. 융자하거나, 융자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를 통해 집의 감정이 얼마 정도인지, 매매 가격이 합당한지를 알아보는 조건이다. 융자를 통해서 집을 사는 경우 은행에서 감정사를 보내고 그 집의 감정가격을 뽑게 된다. 이는 융자를 받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융자를 통해 부동산을 구매하는 경우 예를 들어 100만 달러의 부동산을 20%를 다운페이하고 80%를 융자한다고 가정해 보자. 80%의 융자는 오퍼 가격의 80%가 아니다. 감정 가격의 80%를 융자받게 된다. 감정가격이 95만 달러에 나온다면 은행은 80만 달러의 융자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가 95만 달러의 80%인 76만 달러를 융자해 주게 된다. 이런 경우 바이어가 다운페이를 더 하고 살 수도 있고, 셀러에게 새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감정 컨틴전시가 남아있기 때문에 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다.     셋, 은행에서 감정을 마친 후 정해진 기한 내에 융자에 대한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융자가 거절되면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조건이 론 컨틴전시이다. 컨틴전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넣을 수 있다. 가끔 셀러들이 모든 컨틴전시 없이 오퍼를 보내라고 제시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리 맘에 드는 매물이 있더라도 컨틴전시는 바이어를 보호하고 문제들을 잘 짚어가면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무조건 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부동산 거래에 순간순간마다 시간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부동산 에이전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의:(213)500-8954   미셀 정 / 뉴스타부동산 LA 명예부사장부동산 가이드 컨틴전시 바이어 보호막 컨틴전시 감정 컨틴전시 부동산 거래

2023-10-18

청소년기에는 자기 제어 능력 부족해…감정 해소 도와줘야 학습 능률도 올라

그동안 착하기만 하던 아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뭐든 잘못되면 엄마 탓으로 돌리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착했던 내 아이는 어디 가고 이제 수시로 부모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당혹스럽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아이는 왜 그러는 것일까?     ▶적극적 공격 반항   사춘기 아이들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부모에게 트집을 잡거나 탓을 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공격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래에게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신체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내부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나오고 감정적으로 불편함이 강력하게 발생하는데 이를 제어할 힘은 아직 부족한 상태기 때문에 반항으로 표출된다.  또한 이 시기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한 투쟁의 시기로 나만의 가치관과 습관을 세워야 하는데 나를 통제하고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주는 부모로부터 떨어지려 하는  자율권과 독립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분출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말과 행동으로 공격을 하여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고 한다.     ▶소극적 공격성     모두가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부모가 엄격하고 통제가 강한 경우는 조용한 형식의 반항을 하는데 이것은 눈치 채기 어렵게 뒤에서 일어난다.  또래 사이에서 험담을 하거나 소문을 내는 경우도 있고  따돌림을 조장하거나 친구를 조정하려고 드는 등 뒤에서 몸짓이나 언어로 관계를 이용해 친구를 공격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리고 더 소극적인 경우는 자신을 향해 공격을 하는 경우다.  자신을 공격하는 아이들은 ‘나는 못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비하하는  언어적 행동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수동적 공격성은 반항까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자신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스타일의 공격성 자신에게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자기 살 파먹기식' 공격을 하며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여다 봐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기 자신은 안된다고 주문을 걸며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속마음과 해소   아이의 이유 없는 짜증, 삐딱하고 반항적인 태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부모 든 화가 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의 이런 태도들이 사실은 자신감 없고, 스스로가 약하다고 느껴질 때 불안해 지면서 나타나는 행동이고 자신의 두려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자신의 불안을 감춘다.  자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부모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과 화를 느끼기 쉽다.  하지만 공격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아이의 공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이 느끼는 경쟁심, 질투, 분노 등은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인정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수 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태도에 감정이 격해 있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면  잠시 시간을 두고 안정을 찾는 것이 좋다.  아이가 흥분해 있을 때는 부모가 먼저 참고 물러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무조건 져주라는 게 아니다. 물러나서 아이가 그 상황에서 진정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폭발시키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공격성이 부모에게 이해 받을 때 아이의 내면이 건강해질 수 있다.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이 학업이나 진로에 방해받지 않도록 그 마음 속에 분노와 슬픔을 잘 해소 시키는 것이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잘 해소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해야 학습 능률도 더 올라갈 수 있다.   ▶문의:(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청소년기 제어 감정 해소 소극적 공격성 수동적 공격성

2023-08-27

[이 아침에]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2

[오픈 업] 한국 교정행정에도 정신과 진단 도입을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상기에서 33세 조 모 씨가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조사 과정에서 “제 모든 게 예전부터 안 좋았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등 낮은 자존감을 보였다고 한다. 그가 소년 시절에만 14번이나 체포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보면 그는 잘못된 행동에서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가 끊임없는 문제 행동으로 인해 삶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배우지 못했다면 성인이 된 후의 삶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극에 이르면 술이나 마약에 취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문제를 외부의 잘못으로 생각해 남을 해치기도 한다. 또 무의식적인 경우가 많지만 타인에 의해 숨지는 방법을 찾는 부류도 있다.   참전 경험이 있는 정신과 의사 메닝거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세 가지 욕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죽고 싶은 욕망이고 두 번째는 죽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세 번째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살인자 조 모 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주위 분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반응은 ‘인간말종( bad seed)’, ‘사이코패스’, ‘사회의 쓰레기’ 등 다양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나에게 이런 진단(?)은 별 의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과거력을 가진 사람 중에 미리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 예방이 가능하니 말이다.   1920년대 미국 사회는 큰 진통을 겪고 있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거리에 버려진 청소년이 넘쳐났고, 여성 행방 운동과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들이 통과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청소년 법원 판사의 주장이 관심을 모았다. 이 판사는 범죄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은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무관심, 혹은 가정 파괴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니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정신과적 치료를 받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판사는 법원 옆에 ‘청소년 정신과 치료 클리닉’을 세웠다. 형벌보다는 원인을 규명해 치료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 최초의 이 소아 정신과 치료소 이름은 판사의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주요 도시 의과 대학 내 정신과에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가 생겼다.   조 모 씨의 경우, 열네 번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누구라도 그의 의학적 또는 정신과적 감정을 의뢰했었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진단은 주의산만 및 행동 항진증이다. 이는 부모나 조부모의 유전 인자의 영향이 큰 것으로  한국인의 13%에서 발견되는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한국 의료공단 자료에 따르면 진단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를 받지 못한 90%는 문제아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을 미워하고, 서툰 인간관계로 인해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또 어린 나이에 발발하는 정서불안장애( 우울증이나 조울증)문제다. 청소년기의 우울 장애는 ‘가면우울증(masked depression)’ 이라는 말처럼 어른들의 증상과는 나타나는 모습이 딴판이다. 이들은 “지루하다”, 귀찮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많이 먹고, 많이 자며 부모와 언쟁을 하려 든다. 이들은 전두엽의 성슥이 늦어서인지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고민을 말로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 감정이 앞서니 문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능 발달 정도나 주의산만증, 정서와 행동 조절 장애  등 몸과 마음의 문제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면 진단이 가능했을 터이고, 치료에 합당한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끼?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제 문제 청소년들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도움을 줘야 한다. 그 길만이 이들의 범죄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교정 행정 개선을 위해 한국정부에 범죄자의 심리적·사회적·정신적 검사를 하고, 진단에 적합한 조기 치료를 권장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교정행정 정신과 청소년 정신과 정신과적 치료 정신과적 감정

2023-08-21

[기자의 눈] 불쾌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지난 2015년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이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의인화해 캐릭터로 표현한 영화다. 기쁨이와 슬픔이, 소심, 까칠, 버럭이까지 5가지 감정들이 나온다. 마음속에 ‘기쁨이’ 하나만 남겨놓고 싶은 게 우리의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 모든 감정이 하나의 구슬 안에 융합되는 모습은 큰 감동을 자아낸다. 나쁘다고 치부하며 애써 지워버리려고 했던 그 감정이 결국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이며,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한인들에게 좀 더 와 닿지 않았을까 싶다. ‘참는 게 미덕’이라는 오랜 한국적 사고로 한인들은 내면에 있는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기보단,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급급했다.     실망과 걱정,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이 생겼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정신력이 약할까’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또는 가짜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불안은 약한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되레 화를 내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혼자가 편하다’라는 생각으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BBC 뉴스는 이처럼 불쾌한 감정을 외면하고 자신을 단속하는 성향을 ‘무드 쉐임(Mood Shame)’이라고 정의한다고 전했다. 이런 성향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실패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만성적인 감정 장애 치료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매체는 강조했다.     우리는 이같은 ‘무드 쉐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UC버클리 연구팀 아이리스 마우스 심리학 교수는 1000명의 참가자에게 3가지 질문을 주며 점수를 1~7까지 매기도록 했다.  질문은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한다 ▶비이성적이거나 부적절한 감정을 가진 스스로 비판적이다 ▶나쁘거나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서는 안 된다 등이다.   그 결과, 높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들이 더 쉽게 우울증과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반적으로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도 낮았다. 반면, 불편한 감정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훨씬 더 건강했다고 전했다.       감정을 받아들이란 것이 감정에 압도되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냐가 차이를 만든다. 잘 걸러진 감정은 성장을 위한 연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려면 먼저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 이 감정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수치스러움인지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다. 감정을 파악했다면 그다음은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런 용기는 ‘성취로부터 오는 자만심’, ‘다른 이의 성공에서 비롯된 질투심’ 등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감정들도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기에 건강하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면의 용량을 키울 수 있는 잠재적 도구로서의 역할 등이다.     한국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감정을 뜻하는 ‘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움직이다’라는 뜻의 ‘movere’다”라며 “ 모든 감정은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왜곡되지 않은 감정은 언제나 옳은 길을 알려주며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정에도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스러울 수 있다. 회복을 위해 희망과 긍정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저 나쁜 감정이니 덮어두거나 단번에 털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본인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감정도 소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감정들을 파악하고 인정하며 긍정적으로 풀어나갈 때, 우리의 내면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수아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감정 방법 감정 장애 가짜 감정 걱정 분노

2023-08-20

[이 아침에]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웨애앵~ 로봇 청소기가 동그란 몸에 달린 빗자루를 마구 흔들며 내 책상 쪽으로 오고 있다. 에구. 방문을 안 닫았구나. 안방에서 탈출했나보다. 온몸을 신나게 나부대며 복도를 지나 내 방까지 왔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다. 요~ 귀여운 것. 톡톡 등을 두드려주며 덥석 안아 들고 도로 안방에 갖다 넣는다.     나랑 교감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예뻐하는 줄 알 텐데. 얘도 나를 무척 따르겠지. 아니, 어쩌면 얘는 나를 미워할지도 몰라. 안방에만 가둬놓고 하루도 안 거르고 부려먹는다고. 그래도 말없이 순종만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좌회전하세요”라고 안내를 해 줘도 이 길은 내가 더 잘 알아 하며 직진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유턴하세요. 유턴하세요.” 또 애타게 운전대에 매달리는 목소리. 기다려. 조금 더 가서 좌회전해도 돼. 내 고집에 그 야들한 목소리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할 수 없다 포기한 듯, “조금만 더 직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한다. 열 번을 무시해도 스무 번을 무시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다. 얘가 만일 사람이라면 “나, 안 해” 하며 뛰쳐나갈지도 모른다며 웃은 적이 있다. 앙탈을 부릴 만도 하건만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Her’가 생각난다. 빅데이터 기반의 음성인식 로봇인 사만다는 인간의 형태도 갖추지 못했고 생각도 없다. 아내를 잃고 외로움과 삶의 무의미함에 우울하던 테오도르는 그의 질문에 변함없는 톤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와 그가 조용할 때면 함께 침묵해 주는 그녀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사랑하게 된다.     말이란 것이. 표현을 안 할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누구든지 제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면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친구 중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감정 표현을 안 하니 무미건조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십의 대상이 되는 적도 없다. 간혹 어중간한 상황일 때는 어부지리로 좋은 역할이 맡겨지기도 한다. 팬(fan)은 없는 반면 안티(anti)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다. 한국서 온 문학평론가가 세미나를 마친 후 “이상하게 성 선생님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더군요. 왜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존재감 없이 지내잖아요. 갈등을 만들 계기가 없었어요. 몇 년이 지나 나름대로 문단 활동을 한 지금은 내게도 많은 안티가 생겼다. 의견을 말하고 감정을 쏟아내고. 말, 말, 말을 할 기회가 많아진 탓이다.     고대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말했다. ‘모임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강한 사람이다. 그는 말이 많으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아침 말없이 다시 안방에 갇히는 로봇 청소기를 보면서 침묵의 미덕을 생각한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침묵 미덕 감정 표현 도로 안방 빅데이터 기반

2023-08-20

[문장으로 읽는 책]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그 노래는 자신의 깊은 감정을 토로하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 막노동꾼의 거친 목소리로 불립니다. 그리고 노래의 중간쯤 가수가 우리에게 자신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하는 순간이 나옵니다. 그 감정 자체와,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몹시 애쓰지만 결국 굴복하고 마는 저항 사이의 긴장 때문에 그 순간은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톰 웨이츠는 그 소절을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중함으로 노래하고, 듣는 사람은 평생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거친 사내의 얼굴이 격한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걸 느낍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전환점들〉     톰 웨이츠의 ‘루비즈 암즈’를 들으며 가즈오 이시구로는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뒷부분을 수정한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 끝까지 감정적 방어를 유지하던 주인공에게 일순간 얼핏 일별할 수 있는 크고 비극적 갈망을 드러내게 하는 식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이다. 목소리에서 영감을 받는 등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노래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헤아릴 길 없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표현합니다.  내 글쓰기는 여러 가수들, 특히 밥 딜런, 니나 시몬, 에밀루 해리스, 레이 찰스 …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포착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그 장면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거야.’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수의 목소리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전환점 저녁 가즈오 이시구로 감정적 방어 평생 감정

2023-07-26

[문장으로 읽는 책]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잘 사는 사람들, 즉 삶에 탁월한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가졌다. 이 사람들의 성격과 덕성은 모두 즐거움과 고통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성격과 도덕적 덕성은 행동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행동적이라는 것은 이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성격과 덕성이 감정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대부분 감정의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진우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얼핏 도덕과 감정을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용문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은 감정교육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교수가 ‘철학이 곧 삶’이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삶의 지침을 찾은 책이다. “중도보다는 극단이 훨씬 더 매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가? 특정한 정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물음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삶을 보지 못하는 이념은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삶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사느냐가 성격을 결정짓는다.” “균형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묘한 거리다.” “미덕도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면 악덕이 된다.” 등에 밑줄 쳤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균형 기술 철학자 이진우 도덕적 덕성 대부분 감정

2023-05-17

[삶의 뜨락에서] 순수한 열정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을 읽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연하의 유부남과 폭풍보다 심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 남자만을 생각하며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내고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일 이외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상, 몸,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도 잊게 하는 열정으로 그에게 깊게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명품이나 저택 혹은 지적인 삶이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랑에 끌리는 정신적 교감이나 지적인 대화가 배제된 단순한 욕망만 드러내고 나열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전개해가는 형식에 있어서 그녀는 감정 상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평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사실만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독자는 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며 긴장감을 즐기는 대중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제목을 ‘Passion Simple’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생생하고 강렬하게 거의 광적으로 묘사하여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충격, 당혹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날마다 애타게 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황홀한 섹스를 한다. 그 이후로는 그와의 정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1년 2개월 후 그는 본국으로 떠난다. 1년 후 꿈속에서처럼 다시 한번 만난 후 그녀는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별의 괴로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은 풍화되기 때문에 어쩌면 단어들로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혹시 그가 에이즈라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해보고 싶었을까. 작가에게 그는 그녀의 상대로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재고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그녀를 남들과 구분시켜주는 어느 한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온몸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책도, 그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그녀에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열광과 악평으로 나뉘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다. 칼날 같은 글쓰기의 작가로서 그 용기와 단호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적으로 충만한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준 다리 역할을 해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적은 개성적인 글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학교에서 사회 계층을 알게 되면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총명한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된다. 바흐를 듣고 책을 쓴다.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고 그런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수치심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을 낳아준 계층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펜의 힘은 칼보다 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순수 열정 passion simple 노벨 문학상 감정 상태

2023-04-07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4-03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3-27

[열린광장] 반일 감정과 일본인의 친절

일본을 두번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 1998년 초가을 미국인 친구 로버트와 3박 4일 일정으로 오사카를 관광했다. 첫째날은 호텔에서 투숙했지만 교토로 이동한 둘째날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로버트가 경비를 아끼자며 싸구려 여관을 예약했기 때문이었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 잠을 자야 했고 목욕탕은 공용이었다.     여독 탓에 일찍 잠을 청했는데 온 몸이 가려워 불을 켜보니 새까만 빈대떼가 다다미 속으로 숨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인을 불러 항의해도 영어를 못하는 주인은 알아 듣지 못하였다. 나 역시 일본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지라 하는 수 없이 백지에다 벌레를 그려 놓고 빈대에 물린 자국을 보여주었더니 “미안하다”면서 곰비임비 꾸벅이며 살충제를 뿌려주었다.     술 생각이 간절해 여관을 나와 돌아 다니다 간이 주점을 찾았다. 그 곳에는 노동차 차림의 6~7명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옆테이블의 일본인들이 시시덕거리고 있었는데 주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그 테이블로 가 그들을 혼내며 나가라고 역정을 내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그 일본인들이 “일본말 못하는 조센징”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인이 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인은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을 부르더니 “아무것도 하지말고 이 손님 시중만들라”고 했다. 그 학생에게 팁을 후하게 주고 주점을 나왔는데 아뿔싸, 방향감각을 잃어 여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캄캄한 밤에 일본어도 못하는데… 국제 미아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고생을 만났다.  “파출소를 찾는다”고 도움을 청했더니 앞장섰다. 10분쯤 걸어가니 파출소가 나타났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고생에게 “이제는 집에 가 보라”고 했더니 “경찰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다”고 한다. 5분 정도가 지나자 경찰 두 명이 돌아왔다. 영어를 못하는 그들은 경시청에 까지 전화를 했고 잠시 후 영어가 유창한 직원이 내게 인적사항을 물었다. 잠시 후 내 숙소를 알아냈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파출소 직원은 나를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다음 날 교토 관광에 나섰는데 몸살기운으로 포기해야 했다. 로버트에게는 숙소에 가서 좀 쉬었다 먼저 오사카 공항에 가 있겠다고 했다. 짐을 챙겨 전철을 탔다. 열차안에서 여대생에게 “오사카 공항행 열차가 맞냐?”고 물었더니 “잘못탔다”고 한다. 그러더니 여대생의 일행 3명 모두 다음 역에서 나와 함께 내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오사카 공항행 열차가 왔고 학생들은 “이 열차의 종점이 공항”이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많은 한국인이 반일 감정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명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을 학살했던가?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목표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인 힘을 키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한테 배워야 할 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낯선 사람이나 외국인에게 친절한 것 같다. 또 타인을 배려하고 돕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경제 대국 일본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일본 반일 오사카 공항행 반일 감정 인의 친절

2023-03-24

[중국읽기] 욕만 하면 중국 넘나

지난주 중앙일보의 온라인 중국전문 페이지 ‘더 차이나’에 글 하나가 실렸다. “젊은 중국 박사들, 빅테크 기업 아닌 ‘여기’서 가능성 봤다”는 제목이 붙었다. ‘여기’가 어딘가 보니 ‘농업’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는 순간 댓글이 보인다. “미세먼지나 해결해라. 지구 최대의 민폐국.” 확깬다. 중국 기사 말미마다 붙는 반중(反中) 내지 혐중(嫌中)의 글이다.   누구는 댓글을 무시하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목소리 중 하나다. 아쉬운 건 그저 중국 욕하는 데 그친다는 점이다. 감정 배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이후 보이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 청년 세대의 반중 감정은 유난히 높다. 일각에선 언론탓을 한다. 우리 언론이 부추긴 결과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우리 청년 세대는 공정과 상식에 민감하다. 한국의 많은 청춘이 중국에 반감을 갖는다는 건 중국이 현재 보여주는 모습이 공정과 상식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걸 뜻한다. 중국발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는 걸 듣지 못했다. 홍콩 시위는 중국의 무자비한 단속으로 사그라졌다. 지난 3년간 지구촌을 쑥대밭으로 만든 코로나19의 경우 적어도 그게 어디서 시작됐는가 하는 기원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폭발적으로 발생한 건 우한이 맞는데도 이에 대해 어떤 미안하다는 말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   여기에 한복과 김치의 원조까지 중국이라는 주장엔 말문마저 막힌다. 한국에서 반중 정서가 팽배하게된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매력 상실’에 있다. 10여 년 전 후진타오 집권 시기만 해도 중국 하면 ‘발전’ ‘평화’ ‘부상’ 등의 수식어가 따랐다. 한데 이젠 거칠고 공격적이며 이기적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느 사이 긍정이 아닌 부정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중국은 다시 오랜 전통의 미덕을 회복할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자세다. 중국이 싫다고 담만 쌓아선 안 된다. 그럴수록 더욱 중국을 살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실패하기엔 또는 몰락하기엔 너무 큰 나라가 됐다. 중국이 가라앉으면 한국도 딸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마침 그제부터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인대와 정협 회의)가 시작됐다. 총리 등 중국 지도부 개편이 예정돼 있다.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분석하며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욕만 하는 것으로 중국을 넘어설 수는 없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중국 양회 전인대 감정 배설 후진타오 집권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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