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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