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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같은 비극, 다른 반응

뉴저지의 한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공분했고 이어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7월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경찰 총격으로 숨진 빅토리아 이(25)씨 사건 얘기다.     이 사건은 지난 5월 LA에서 발생한 양용씨 사건과 닮은 데가 많다. 이씨도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은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씨가 마주한 건 구급 대원이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이 온다는 소식에 이씨는 칼을 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 사실을 인지한 가족은 경찰이 접근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경관은 현관문을 10여 차례나 두드렸고, 이씨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경관들은 문까지 부수며 진입했다.     이씨는 왼손엔 흉기, 오른손엔 물통을 들고 있었다. 경관은 두려움에 떨던 이씨가 다가오자 가차 없이 발포했다. 이씨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환자였을 뿐이다. 경찰은 그런 이씨를 범죄자 다루듯 했다. 경찰 총탄에 또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졌다.   경찰은 과잉대응 논란에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보디캠을 공개하며 원칙대로 대응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란 말뿐이었다. 과연 뉴저지의 한인들이 경찰의 대응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무고한 시민에게 무분별하게 적용했다는 점에 분개한 것이다.   뉴저지 한인회, KCC, 민권센터 등 수많은 한인 단체 관계자들은 곧바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인 사회가 움직이자 여러 아시아태평양계 단체들과 주류 기관들이 목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건 발생 지역 인근인 포트리 커뮤니티센터 잔디광장에는 한인 단체를 비롯해 여러 소수계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경찰의 정신질환자 대응 절차 검토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빅토리아 이가 양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적이다. 양씨는 영주권자, 이씨는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김의환 뉴욕 총영사는 검찰총장실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포트리시의 마크 소콜리치 시장도 만나 빅토리아 이 사건을 언급하며 시스템 개선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개입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 총영사는 미국 내 한인의 60% 이상이 시민권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국가적 차원을 떠나 인도적 면에서 접근했다. 편지조차 못 보내면 총영사로서 왜 앉아 있겠는가”라며 뉴욕과 뉴저지 지역 한인 사회의 단합된 대응까지 당부했다.   압박 여론이 거세지자 뉴저지 검찰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프로토콜까지 발표했다. 의분이 결국 변화를 끌어낸 셈이다.    LA 한인 사회는 어떤가. 양용 사건 규탄 집회에 한인 단체장이나 정치인은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 국민인 영주권자가 피살됐음에도 영사관 관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거 때만 되면 한인 사회를 찾는 존 이 LA시의원(12지구),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45지구), 영 김 연방하원의원(40지구) 등 현역 정치인은 공식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LA경찰국 임시 책임자가 한인인 도미니크 최 국장인데 그에게 부담을 주면 되겠느냐고 말한 전직 한인 단체장도 있었다.     잘못된 공권력 사용으로 인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가 한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더는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자는 말이다.     17일(내일) LA시의회에서는 양용 씨를 기리는 추모 시간을 갖는다. 유가족은 시의원들과 주민들 앞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발언할 예정이다. 이날 시의회 관람석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한인 사회의 침묵은 멸시를 자초하는 것이고 무관심은 양용에 대한 2차 가해다.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장열 / 사회 부장중앙칼럼 비극 반응 뉴저지 한인회 한인 사회 한인 단체

2024-09-15

[삶과 믿음] 무관심의 비극, 무관심의 죄

1994년 전 세계는 르완다 대학살을 마주했다. 불과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투치족이 학살을 당한 사건은, 당시 학살을 멈추게 할 의지가 없었던 전 세계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개입해서 멈추게 할 수 있었던 학살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도 인류는 르완다에 빚을 졌다는 탄식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이티는 어떨까?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지금 갱단 때문에 지옥과 같은 형편이다. 갱들이 선량한 시민의 거주지를 약탈하고 폭력을 일삼아 올해에만 58만 명이 집을 떠나 뜨거운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올해 6개월 동안 갱단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납치된 사람의 숫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전 국민 1100만 명 중 절반이 식량부족에 시달려 영양실조에 이르고 있고, 전기, 식수, 휘발유 등 기초적인 생필품의 공급 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정체되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비극의 땅이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있지만, 국제 사회는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이 암살된 3년 전부터, 갱단이 폭발적으로 그 세력을 키우며 납치와 폭력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갈 때도, 선교사나 국제기구 봉사자들조차 납치를 두려워하고 갱단의 폭력을 피해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어느 나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티에 갱단이 준동하고 온 국민이 신음하는 중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고,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국제 뉴스를 덮었다.   아이티의 비극은 무관심이다. 아이티는 아주 간간이, 그것도 감옥이 습격을 당해 수천 명의 죄수가 탈옥했다거나, 미국인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납치되거나, 젊은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살해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뉴스에 단편으로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백성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손 벌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아이티는 갱단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나라가 완전히 고립되기도 했었다. 이 비극의 땅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르완다의 대학살과 비교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뉴욕에서 불과 네 시간이면 닿는 땅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은 혹시 먼 훗날 우리의 수치가 되지는 않을까?     모든 이들의 무관심 속에 당하는 비극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절망이다. 수렁에 빠져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응답하는 이 없는 그 좌절 속에 다들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을 때, 가족도 없는 고아들은 외롭고 두려운 세상의 비극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부족한 아이티에서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은 높은 파도를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배고픈 군중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곤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인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는데, 아이티를 향한 우리의 무관심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오래도록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을 하다 보니 무관심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우리는 먼 훗날 역사 속에서, 먼 훗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무관심 비극 비극 무관심 아이티 고아 르완다 대학살

2024-06-27

정신질환 한인 또 비극…다섯명이 짓눌러 죽였다

카지노 보안 요원들이 정신질환을 앓던 비무장 상태의 한인 남성을 주차장 구석으로 몰아간 뒤 넘어뜨리고 수갑까지 채운 후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동영상 참조〉   4년 전 전국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닮은 비극이 한인사회에서 벌어졌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숨진 남성의 여동생은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고, 유가족은 현재 해당 카지노를 상대로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    LA카운티수피리어법원에 따르면 부모인 정정식, 정인순, 사위 필립 터먼씨는 벨가든 지역 바이시클 호텔&카지노를 상대로 ▶불법 행위에 의한 사망(wrongful death) ▶위협(assault) ▶폭행(battery) ▶태만적 고용, 감독 및 훈련 부족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인디라 캐머런 뱅크스ㆍ테렌스 존스)은 지난 1월29일 세 번째 수정된 소장을 정식으로 접수했다. 법원은 배심원 선정 절차를 끝내고 내주 내로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특히 이 카지노는 지난 2023년 한인 기업인 파크웨스트 카지노(대표 존 박)가 1억3000만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본지 2023년 2월21일자 A-1면〉    사건은 지난 2021년 7월24일 오후 3시57분쯤 바이시클 카지노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원고측 변호인단이 본지에 공개한 CCTV 영상에 따르면 카지노 보안 요원 다섯 명이 조나단 정(당시 45세ㆍ한국명 동인)씨를 주차장에서 넘어뜨리고 엎드려 있는 상태의 정씨를 무릎으로 짓누른다. 이후 정씨의 다리를 뒤로 젖힌 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양손에 수갑까지 채운다.   보안 요원들이 정씨를 짓누른 시간은 약 3분이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호흡 곤란 등으로 구토까지 한 뒤 정신을 잃고 곧 사망했다.      원고측은 소장에서 “보안요원들의 과도하고 불필요한 폭행, 억류 등의 결과로 정씨는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며 “정씨는 카지노 측의 퇴장 요청을 제대로 준수했지만 보안 요원들은 그를 계속 쫓아가며 건물 밖에서까지 위협하고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에는 보안 요원 다섯 명이 마치 사냥감을 몰아가듯 정씨를 약 5분간 서서히 뒤쫓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양극성 장애를 앓던 정씨는 카지노를 나왔음에도 보안 요원들이 계속해서 뒤쫓아오자 수차례나 뒤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심지어 위협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지자 정씨는 겁에 질린 상태에서 한 운전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차량에 탑승하려는 모습까지 영상에 담겨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정씨는 당시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며 ‘언어(verbal)’ 문제만 보였을 뿐 다른 고객이나 직원 등 그 누구에게도 폭행 등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카지노 측의 요구대로 이미 건물 밖으로 나온 상태였고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던 정씨를 쫓을 이유가 더는 없었는데도 덫에 빠뜨리듯 그를 추격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결국 철조망으로 사방이 막힌 카지노 주차장 구석으로 몰렸다.   동영상을 보면 도망가려는 정씨를 한 보안요원이 밀치며 넘어뜨렸고, 다섯 명이 동시에 정씨를 덮친다. 보안요원들은 정씨를 짓누른 지 약 3분 후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그제야 정씨의 몸을 제대로 뒤집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원고측 변호인단은 “카지노 측은 고객에 대한 법적 주의 의무가 있음에도 정씨와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법집행기관이나 정신건강 부서 등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며 “보안요원에 대한 교육,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정씨를 더 큰 위험과 공포, 덫에 걸리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전했다.   숨진 정씨는 우크라이나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인 정정식 씨의 아들이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정씨의 여동생(바네사 정ㆍ당시 44세)이 지난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모인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화했다.   숨진 여동생의 남편인 필립 터먼 박사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지난해 9월 바이시클 카지노를 상대로 아내의 죽음의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터먼 박사는 현재 의사로 활동 중이며, 숨진 아내 바네사 정씨는 심리학자였다.   현재 LA카운티검찰 산하 아시아태평양 자문 위원회(AAPIAB)는 이번 재판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AAPIAB 에스더 임 자문위원장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며 “한인 사회가 이 사건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정의를 위해서라도 이토록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함께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관련기사 40년 역사 LA 카지노 한인이 1억불에 인수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정신질환 한인 카지노 보안요원 바이시클 카지노 장열 로스앤젤레스 LA 미주중앙일보 비극 조지 플로이드

2024-06-13

[프리즘] 마우이의 비극, 우리의 미래

하와이주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 지역을 통째로 삼킨 산불은 비극이지만 기후변화가 몰고 올 미래가 어떤 형상일지 보여줬다는 면에서 더 비극적이다. 마우이의 비극이 우리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불은 라하이나를 삼켰지만 피해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조시 그린 하와이 주지사는 14일 “수색대원들이 하루에 (시신을) 10∼20명씩 발견할 수 있어 사망자 수 파악에 10일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연락이 두절된 주민이 1300여명에 이르고 피해 주택을 일일이 수색해야 사망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현실은 불이 얼마나 빨리 한 마을을 덮쳤는지 보여준다.   라하이나의 비극적 피해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와이는 1950년보다 평균 기온이 2도 더 상승했고 라하이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건조한 곳이었다. 800마일 떨어진 곳에 형성된 허리케인 도라는 시속 45~67마일의 바람을 라하이나를 향해 부채질했다. 마우이에는 기온 상승으로 역전층이라 불리는 따뜻한 공기층이 다른 때보다 낮게 형성돼 있었다. 화산섬인 마우이의 서쪽 해안가 평지에 위치한 라하이나 마을로 불어온 바람은 산으로 몰려가다 역전층에 막혀 갇혀있다 라하이나의 평지를 향해 가속도가 붙어 밀려왔다.     이런 요인들이 더 나빠진 배경에는 모두 기후변화가 있었다. 작은 불꽃 하나면 대참사가 일어날 조건이 하나로 모여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경보 시스템과 소화전 미작동, 산불 발생 뒤 예방적 전력 차단 부재 등 인재도 가세했다. 15일에는 강풍에 끊긴 송전선이 산불의 원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최근 100년 내 미국에서 발생한 최대 참사가 된 마우이 산불은 기후변화 시대에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의 규모와 강도를 보여준다.     기후변화는 직접적으로 산불과 홍수, 가뭄 등을 몰고 오지만 조건을 악화해 복합요인 재해 가능성을 파괴적으로 높일 수 있다. 재해 시스템이 갖춰진 곳도 악화한 조건에 대처하기 어렵고 시스템이 부족한 곳은 더 파괴적인 재해를 맞을 수밖에 없다. 올해 발생한 중국 등 아시아의 홍수와 유럽의 폭염 등을 보면 거의 모든 국가가 재해의 속도와 규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난 6월 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지구 표면의 대기 온도가 사상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올랐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이 뚫린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27일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한 것이나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짐 스키 의장이 “기후변화는 우리 행성의 존망을 가를 위협”이라고 한 발언도 1.5도 붕괴가 불러올 비극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일 것이다.   물론 스키 의장은 한마디를 더 했다.  “지구의 온도가 파리협정에 따른 목표인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더 올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끝나지 않겠지만 당장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생태계는 지금까지 인간이 살던 세상과는 사뭇 다를 것이고 인간에게 더 적대적으로 변할 듯하다. 수온 상승으로 플로리다의 산호초가 흰색으로 죽어가고 애팔래치아 산맥의 소나무를 파괴했던 딱정벌레가 따뜻한 날씨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하고 인도의 밀이 화씨 100도의 고온에 죽어가는 것은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생태계는 이미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적응을 시작했지만,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인간은 아직 적응을 시작도 안 했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마우이 비극 마우이 산불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 비극적 피해

2023-08-15

[독자 마당] 청소년의 비극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줄지 않고 있어 가정은 물론 사회,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생명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나 가족, 그리고 본인이 속한 공동체와도 관계가 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면 창조주의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생명 존속의 천륜에 반하는 것이다. 또 가족과 주변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다면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지적되는 것이 교육의 문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전인적 교육을 받기보다 성적에만 관심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거나 사회에 진출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본인을 경쟁에서 낙오된 실패자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절망에 빠져 꿈을 접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학자는 미국에서 창조적 기업가가 많이 배출되는 것은 초·중등학교에서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잘못 가르쳐서라고 주장한다. 시험성적만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기업가에게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표는 기존의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통해 경쟁하는 생존게임이 아니라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기존의 가치 기준에 몰입하지 않고, 각기 다른 성향에 따라 방향을 잡고 자기계발을 한다면 과잉경쟁 대신 마음의 여유로움과 삶의 보람을 갖게 될 것이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 마당 청소년 비극 사회국가적 문제 창조적 기업가 전인적 교육

2023-05-07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4-03

[열린광장] 비극 이후

지난 금요일 교회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J전도사의 추모 모임이 있었다. 예전 그가 담당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 서로 연락해 100여 명이 모여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음을 실천한 젊은이들이 대견했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 몸을 사리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용기가 있어 좋았다.   그가 맡아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네분의 전문 상담자를 모시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모두 악몽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주변 사람이었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의 뇌도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 방법으로 삶을 끝내는 게 옳으니 그르니, 하나님 뜻이니 아니니, 평소에 금실이 좋았느니, 본디 이상 성격이었다니 등등 그야말로 뒤늦은 평판이 난무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억울한 인격모독과 세평의 심판을 다시 한번 당하는 셈이다.   이런 비극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지 참 아픈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한편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대처도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큰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젠 모교의 교수가 된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지만,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성장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외상 후 성장의 방법론으로 의도적 반추, 정서적 노출, 타인과의 연대 등을 제시했다. 다 중요하긴 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자꾸 표현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마음의 표현, 내가 얼마나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힘들었는지 말로 잘 설명하라는 것이다. 글로 해도 좋다. 9·11 테러 이후 조사를 해보니 마음이 잘 회복된 사람들은 감정을 잘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고통이길 멈춘다” 고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순간, 더는 슬픔과 두려움은 그 효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한국 문화에서 특히나 남성들은 속 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감정을 돌아보는 걸 해보지 않았고 교육도 받지 않았다. 안으로 삭이는 것이 체면 유지에 좋다고 배워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이다. 감추는 게 미덕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며 비극에 맞서야 한다.   가장이기를,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J전도사와 같은 불행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아 / 수필가열린광장 비극 비극 이후 감정 상태 중고등부 학생들

2023-03-27

학교폭력이 낳는 비극, 막을 방법은 없을까?

학교폭력은 예전에 비해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드라마 영화에 소재로 많이 쓰이며 뉴스에도 학교폭력 사건이 연일 보도되며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학교폭력이 이처럼 큰 이슈가 된 것은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학교를 졸업한 뒤 수십 년이 지나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 가족들까지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 학교폭력이 낳는 비극을 막을 방법이 없을까?   학교폭력으로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리면 가해 학생은 많은 처분을 받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출석정지를 받는다. 학폭위에서 사건에 대한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 정도, 화해 정도, 선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한다(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19조 참조).   학폭위에서 나온 처분은 오로지 가해자에 대한 처분으로 자신이 받을 조치만 생각하거나 처분을 가볍게 생각해 제대로 된 사죄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자는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도 고통에 시달려 피해자가 나중에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거나 가해자의 학교폭력을 대중이나 사회에 폭로해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와 그 가족들의 앞날을 막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한 방법은 가해자가 사건이 일어난 때에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죄를 하고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피해자에게 남은 깊은 상처가 조금이라도 회복되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기고 : 법무법인 프런티어 파트너 변호사 신정우]   박원중 기자 (park.wonjun.ja@gmail.com)학교폭력 비극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학교폭력 사건

2023-03-13

[사설] 또 다른 ‘비극적 선택’ 막아야 한다

50대 한인이 부인과 딸을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그는 한인교회에서 20년 넘게 전도사로 일한 것으로 밝혀져 교계는 물론 한인사회의 놀라움은 더 크다. 경찰은 주변 수사 등을 통해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동기로 보고 있다. 부부관계도 좋았고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평소 이 가족이 문제가 없는 가정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주변에 따르면 부부는 고민이나 걱정을 내색하지도 않았다. 아마 전도사 가정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속내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직업 없이 많지 않은 전도사 수입이 소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생활고가 심하다 보니 부부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고 가장으로서의 스트레스는 임계점에 도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고 끔찍한 방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더구나 이제 여덟살인 딸아이는 무슨 죄가 있는가.     한인들의 ‘가족 살해’ 사건이 끊이지 않아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지난달 뉴욕에서 20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했고, 3년 전 LA한인타운에서는 가정불화로 60대 남성이 처제에게 총격을 가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범죄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욱’ 하는 순간의 분노나 절망감을 참지 못해 끔찍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에서 이런 불행한 일들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주변에 남몰래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먼저 손을 내미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종교계나 관련 봉사단체들은 상담 프로그램 활성화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사설 비극 선택 비극적 선택 극단적 선택 전도사 수입

2023-03-08

[독자 마당] 단장가(斷腸歌)

  ━   단장가(斷腸歌)     -왕방연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 청구영언(靑丘永言)       세상에 이렇게 슬픈 노래가 또 있을까?   숙부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노산군은 유배지 영월에서 사약을 받는다. 그때 집행의 책임을 진 이가 금부도사 왕방연이다. 그는 고을에 도착했으나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마침내 입시(入侍)하자 열일곱 살의 어린 상왕이 관복을 차려입고 나와 그가 온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단종이 승하함으로써 김종서와 사육신, 금성대군 등의 죽음, 생육신의 저항을 남긴 조선 초기 최대의 비극 계유정난은 막을 내렸다. 그 절정의 순간을 집행하고 돌아오던 왕방연은 자신의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밤에 냇가에 주저앉아 흐느껴 운다. 물소리도 그의 마음과 같다. 울며 흐른다.   이 일이 있었던 후 왕방연은 관직을 그만두고 중랑천가에서 배나무를 키우며 살았다. 단종의 제삿날이면 수확한 배를 올리고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유배 시 목말라했던 단종에 대한 애모(哀慕)였다. 이것이 먹골배의 기원이다, 왕방연의 생몰 연도는 전해지지 않고, 그가 남긴 노래만 민중에 의해 전승되었다. 유자효 / 시인독자 마당 단장가 유배지 영월 사육신 금성대군 비극 계유정난

2022-12-15

[시론] 6·25 비극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김일성 정권이 6·25전쟁을 일으킨 지 올해로 72주년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넉 달째 전쟁의 포화 속에 갇힌 우크라이나 국민의 참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든 전쟁의 비극을 새삼 상기하게 해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사 항전을 외치며 군과 민간의 항전 의지를 고양하고 있다. 서방 20여 개국은 무기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돈바스 점령 지역을 확대해 가고, 수도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강화할 태세다. 러시아 전쟁 지도부는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핵 금기 원칙을 허물고 있다.   전쟁은 참혹하다. 우크라이나 인구(약 4400만명) 중 약 700만 명이 조국을 떠났다. 러시아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30%가 황폐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은 광범위하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미사일은 단번에 ‘신냉전’의 서막을 열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중국과 러시아는 보란 듯이 무력화하며 ‘깐부 연대’를 과시했다.   북한은 7차 핵실험 감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러시아 흑해 함대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려온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업 지대를 통제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저개발 국가의 식량 안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영향으로 올 겨울 유럽연합(EU)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에너지 대란 가능성이 우려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경제는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공급망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한국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국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공유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발전시켰고, 마침내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건설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침탈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나토에 가입하면 확장억제력을 제공받고, 낙후한 국방력을 속도감 있게 현대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은 혹독하면서 명료하다. 한·미 군사동맹의 결속력 강화와 독자적 국방력 발전이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서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작전계획 수정, 부대 구조 및 무기 체계 최적화를 위한 다양한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장병의 정신적 대비 태세 강화 조치도 필요하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압박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참석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나토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Linchpin)인 한·미 동맹을 활용하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본격화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만큼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공고한 자리매김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안보 협력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사고와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기다. 두진호 /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시론 우크라이나 비극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인구

2022-06-24

총기사고 비극 막아야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9일 텍사스주 유밸디 총격 참사의 현장을 찾아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참사 5일 만인 이날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현장인 롭초등학교를 방문, 유족들을 위로하고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     18세의 총격범은 지난 24일 초등학교에 난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모두 21명이 희생됐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초등학교 앞에 마련된 임시 추모 공간에 꽃다발을 놓고 두고 머리를 숙였다. 이과정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후 추모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올 때 누군가가 “뭐라도 하라(Do something!)”고 소리치자 바이든 대통령은 전용차에 오르기 전 “그렇게 할 것(We Will)”이라고 답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현장에서 공식 연설을 하거나 공개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경찰이 학교에 진입한 뒤에도 즉각 총격범을 제지하지 않은 등 공권력의 부실 대응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한편, 법무부는 경찰 부실 대응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언론들은 범인이 무차별 총격을 하는 동안 19명이나 되는 경찰관이 교실 밖 복도에서 한 시간가량 대기하며 사건을 사실상 방치해 학생들의 추가 희생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경찰 당국도 이를 시인했다.   엔서니 콜리 법무부 대변인은 이날 유밸디 시장의 요청에 따라 법 집행기관의 대응에 대한 ‘중대 사건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이 평가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독립적일 것”이라며 “검토가 끝나면 조사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당시 총격범이 대량 살상극을 벌일 때 19명이나 되는 경찰관은 교실 밖 복도에서 48분간 대기하며 사건을 방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름 간격으로 뉴욕주와 텍사스주에서 총기로 인한 대량 살상극이 벌어지자 총기 규제가 미국 정치 쟁점으로 다시 떠올랐다.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은 참사를 총기 규제 계기로 삼으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총기 소지를 외려 옹호하고 있다. 상원에 계류 중인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개혁 법안은 소지 권리를 주장하는 공화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전미총기협회(NRA) 연례 총회에서 학교에 입구를 하나만 설치하고 화재 탈출용 전용 출구만 추가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무장 경비원을 상주시키며, 일부 교사의 학교 내 총기 소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종민 기자총기사 비극 대통령 부부 총기 규제 당시 총격범

2022-05-30

[독자 마당] 전쟁의 비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서방 세계와 러시아와의 대립에서 비롯된 전쟁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두 국가간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 확장주의와 이에 맞서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있다.     지구촌에 전쟁이 없어야 하는데 결국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에만도 동부와 북부, 남부를 겨냥한 동시다발 공격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군사 시설을 표적으로 해서 다수의 건물이 파괴됐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의 희생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전쟁 세대다. 어릴 때 전쟁을 겪었다. 오래전 경험이라 또렷하지는 않지만 부모 세대의 피란 행렬은 생생히 기억한다. 또한 길거리에서 폭격 등으로 다친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어린 눈에도 끔찍하고 잔혹한 광경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나라에 러시아 같은 큰 나라가 압도적인 무기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했다. 마치 아무런 준비 없이 6.25전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나라가 생각나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구촌에 여러 국가가 존재하면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전쟁으로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는 것은 안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 관련 국가들은 모두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크라니아가 겪는 고통이 가장 클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도 다시 세워야 하고 경제도 재건해야 한다. 우리가 6.25 이후 겪었던 과정이다.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인명이 숨지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은 막아야 한다. 우크라니아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김학도·LA독자 마당 전쟁 비극 우크라이나 사태 러시아 확장주의 유럽 국가들

2022-02-25

"더 이상 비극 없어야"…'유나 이 피살사건' 규탄 집회

"더 이상 이같은 범죄를 용납할 수 없다. 이 비극이 우리의 딸에게 가족에게 바로 나에게도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전철을 타거나 장을 보러갈 때 거리를 걸을 때 집에 들어갈 때 두려워해야 하느냐. 우리는 안전할 권리가 있다."     “이같은 증오의 반복은 팬데믹 이후 모든 안전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홈리스와 정신이상자 대처 등 완전히 망가져버린 시스템을 복구해야 한다.”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뉴욕시 전체가 13일 발생한 한인 여성 크리스티나 유나 이씨 피살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전철역에서 정신이상자에게 밀쳐져 사망한 미셸 고,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얼굴을 가격당한 한국 외교관에 이은 사건이라 충격이 더 크다. 택시에서 내려 대로변에 위치한 아파트로 들어가는 피해자를 미행해 범죄를 저지른 잔인함에 커뮤니티 전체가 울분을 나타내고 있다.     15일 뉴욕한인회(회장 찰스 윤)와 한인단체들이 피해자를 애도하고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다는 뜻을 모아 피해자의 아파트 건너편 사라 디 루스벨트공원에 모였다.     뉴욕한인회가 주도한 이 집회에는 흑인 시민단체와 유대계 시민단체들도 합류해 증오에 저항하는 데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알 샤프턴 목사가 주도하는 전국행동네트워크(NAN)와 흑인단체 101수츠, 유대계 단체인 JCRC 등이 함께했다.     브래드 랜더 뉴욕시 감사원장은 집회에 참석해 “모두에게 가슴 아픈 비극이자 악몽”이라면서 피해자를 애도했다.     이외에도 에이드리언 아담스(민주·28선거구) 뉴욕시의장과 존 리우(민주·11선거구) 뉴욕주상원의원이 별도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정치인들도 뜻을 전했다.     린다 이(민주·23선거구), 샌드라 황(민주·20선거구), 줄리 원(민주·26선거구) 뉴욕시의원도 참석해,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는다”, “피해자의 부모님과 가족에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 “왜 약한 아시안 여성과 노인이 범죄의 타겟이 되는가”라면서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다프나 요란 맨해튼 검사에 따르면, 피해자 이씨는 무려 40여곳을 칼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의자 내쉬는 2012년부터 뉴욕과 뉴저지에서 10여회 이상 체포됐으며 올해 1월 6일에도 체포된 후 감독 조건으로 석방됐다. 장은주 기자피살사건 비극 피살사건 규탄 유대계 시민단체들 이상 비극

2022-02-15

[살며 생각하며] 수황정의 비극

명나라는 말기에 이르면서 환관들의 발호와 부정부패로 사방에서 도적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원숭환(袁崇煥)은 명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다. 원숭환은 사르후 전투 이후 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던 누르하치를 영원성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의 공격마저 막아내는 등 무너져 가던 명나라를 지탱하고 있었다.    원숭환은 후금의 홍타이지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었다. 홍타이지는 1629년 10월, 영원성과 산해관을 우회하여 베이징으로 침입했다. 원숭환의 허를 찌르고 곧바로 황성을 노린 기습작전이었다. 황성 포위 소식에 경악한 원숭환은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달려와 베이징 부근에서 악전고투 끝에 후금군을 격퇴했다.   그러나 원숭환에게 반감을 품은 환관들이 황제에게 무고했다. 대학사 온체인은 “원숭환이 홍타이지와 내통하여 후금군을 끌어들였다”며 목을 치라고 상주했다. 평소 의심이 많고 대국을 볼 줄 올랐던 숭정제는 결국 홍타이지가 꾸민 반간계(反間計)를 덥석 물고 만다. 홍타이지는 황성에서 물러나면서 환관 두 명을 사로잡았는데 “원숭환이 베이징을 탈취하기로 후금과 밀약했다”는 소문을 흘린 뒤 이들을 풀어준다.    돌아온 환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숭정제는 대노했다. 원숭환은 베이징의 저잣거리에서 책형(磔刑)을 당했다. 기둥에 묶어 놓고 온몸의 살점을 발라내는 잔혹한 처형이었다. 〈명사(明史)〉의 사관은 이 대목에서 “숭정제는 스스로 장성을 허물어 나라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적었다.     숭정 17년(1644)은 중국 역사상 중요한 해였다. 3월 15일 숭정제의 집무실에 이자성으로부터 통첩이 날아들었다. “18일에 유주(幽州)에 이를 것임.” 유주란 베이징을 뜻하는 말이다. 이자성이 3일 후에 베이징을 유린하겠다는 협박장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일밖에 없었다. 이자성의 반란군은 예정보다 빠른 3월 17일 베이징성 밑에 도착했다. 베이징성은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15만 명의 군사가 있었으나 그나마 노약자‧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성벽 곳곳에 배치할 병력도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반란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숭정제에게 가장 신임받던 조화순이 창의문을 열어젖히고 반란군을 맞아들였다. 밖에는 이자성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자성에게 항복한 환관 두훈이 조화순을 설득하여 성문을 열게 한 것이다. 반란군은 노도처럼 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성 안으로 들어간 이자성의 반란군은 다른 성문을 열어젖히고 반란군을 맞아들였다. 반란군은 외성에서 내성을 무찌르고 다시 자금성에 육박했다. 반란군은 노도처럼 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명 왕조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와 같았다. 반란군이 성내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숭정제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환관 왕승은을 데리고 자금성을 나와 만수산에 올라가 멀리서 베이징 시내를 살펴보았다. 베이징 내성의 9개 문밖 여러 곳에서 반란군들의 횃불이 붉게 타올랐고 우렁찬 환호 소리가 베이징 하늘 아래 메아리쳤다. 숭정제는 혼잣말로 뇌까렸다. “베이징이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숭정제는 중대결심을 했다. 자금성으로 돌아간 숭정제는 술을 가져오라 하여 한 잔, 두 잔… 연거푸 마셔댔다. 그는 이미 죽을 각오를 했으나 명나라의 황통이 끊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황태자와 영왕 정왕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평민 차림으로 변장시켜 각각 그들의 외가인 주 씨와 전 씨 집에 피난시켰다.    세 황자들은 모두 나이가 어렸다. 이들 네 부자는 헤어질 때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세 아들을 궁 밖으로 피난시킨 숭정제는 황후와 후비들에게 자결하도록 명했다. 황후 주 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후비 가운데서도 자결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숭정제는 할 일이 남아있었다. 황자들은 피난시켰으나 황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그대로 살려두면 반란군에게 욕을 당할 염려가 있었다. 장평공주는 15세의 아리따운 소녀였다. 그녀는 수령궁에 있었다.     숭정제는 칼을 빼 든 채 수령궁으로 들어갔다. “너는 무슨 죄로 짐의 딸로 태어나 꽃다운 나이에 이 같은 비운을 맞게 되었단 말이냐!” 탄식하면서 장평공주의 왼팔을 칼로 내리쳤다. 그리고 겨우 여섯 살 난 소인공주가 있는 소인전으로 들어가 딸을 칼로 찔렀다.    어린 소인공주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으나 장평공주는 상처를 입고 유혈이 낭자한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시녀들이 그녀를 부추겨 도망할 것을 권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부황께서 내게 죽음을 내리셨으니 내 어찌 감히 살기를 바라겠느냐. 또 도적들이 들어오면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니 나는 숨을 곳이 없느니라.” 시녀들이 억지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악몽 같은 18일이 지나고 19일 아침이 되자 숭정제는 친히 경종을 울려 중신들을 불렀으나 중신들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이제는 측근들로부터도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숭정제는 왕승은을 데리고 다시 만수산으로 올라갔다. 만수산에는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수황정(壽皇亭)이 있었다. 숭정제는 이곳을 죽음의 장소로 택했다.    숭정제는 소복 차림에 왼발은 맨발, 오른발에는 붉은 신을 신었다. 관은 벗겨졌고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죽어 있었다. 그의 흰 옷깃에는 다음과 같은 유조가 씌어 있었다. “짐은 죽어 지하에 돌아간들 선제를 뵐 면목이 없다. 그래서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고 죽는다. 도적들은 짐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고 문관들을 모두 죽여도 좋지만, 다만 능침만은 허물지 말라. 백성들 한 사람이라도 상하지 말라.”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세운 수황정에서 34세의 젊은 나이인 숭정제가 자결했다는 것은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 비극의 수황정. 황제 곁에서 순사한 것은 오직 왕승은 한 사람뿐이었다. 명나라는 16대 277년 만에 역사의 막을 내렸다. 숭정제의 최후는 처절했다. 하지만 그가 망국과 죽음을 앞두고 보였던 비장한 태도를 평소 정치를 할 때 발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 신료들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숭정제의 최후를 기록한 〈명사〉 사관의 평가는 흥미롭다. “황제는 재위 17년 동안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고심하면서 국사에 힘쓰고 정치에 마음을 다했다. 조정에 나아가 크게 탄식하며 비상한 인재를 얻고 싶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인재를 쓰지 못해 정사는 더욱 망가졌다. 이에 다시 간사한 환관들을 신임하여 요직에 배치함으로써 행동과 조치가 마땅함을 잃고 어그러졌다. 복이 다하고 운이 옮겨가 몸이 화변(禍變)에 휘말렸으니 어찌 시운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흥망은 제대로 된 지도자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죽어나는 것은 백성이다. 숭정제의 비극적인 최후를 보면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두 전직(前職)이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뜨면서 문 대통령 전임자는 감옥 속 두 전임자만 남았다.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12명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내각책임제 속 대통령과 ‘징검다리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모두 불행했다. 살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본인과 자식들·형·동생·처남·동서까지 감옥에 갔다.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에도 없는 대통령 역사다.    이번에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감옥에 가지 않을 후보’가 누군가를 제1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대통령을 뽑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정직성을 꼽는다. 정직성은 단순히 거짓이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비극 베이징성은 무방비 대통령 전임자 베이징 내성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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