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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환으로 황제의 기운 팍! 팍!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많아진다. 몸 곳곳이 막혀 순환이 잘 안되기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피로를 달고 살고 기운이 없으니 의욕도 없고 밥맛도 없다. 타고난 체력과 젊음으로 지금껏 건강하게 살았다 해도 이제부터는 빠지는 기력을 채우고 보충해 줘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왕들은 이럴 때 자양강장제로 침향을 처방받았다. 사향, 용연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으로 꼽히는 침향은 찬 기운을 위로 올리고 뜨거운 기운을 아래로 내림으로써 몸 전체의 순환을 원활히 해준다. 또한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동시에 근육을 강화하고 기침이나 가래를 가라앉혀주는 효능도 있다.     '핫딜'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100환)'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중 최고 함량인 인도네시아산 침향 25.5%가 함유돼 있다. 믿을 수 있는 차바이오그룹 CMG 제약회사 제품으로 진귀한 침향과 녹용, 새싹삼(새싹처럼 자란 어린 인삼) 등 21가지 전통 원료를 최적 배합비로 정성껏 담았다. 특히 일반 인삼보다 사포닌이 더욱 풍부한 새싹삼을 통째로 농축해 효능을 집대성했다. 새싹삼은 첨단 기술이 집약된 특허받은 스마트팜에서 깨끗하게 재배해 사용한다.     체력이 급격히 저하됐다면? 기력 보충이 필요하다면? 겨울철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면? 전반적인 건강 증진이 필요하다면? 쌉쌀하면서도 사양벌꿀의 달달한 맛이 스치는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으로 황제의 기운을 충전해 보자.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100환)은 미주 한인 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핫딜'에서 149달러에 무료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핫딜 황제 부모 부모님 선물

2023-10-22

[이 아침에] 1000년 중국 황실 최고의 보물은?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 1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송,원,명,청)의 보물 70만 점 중 사람들이 뽑은 최고 인기 품목이 겨우 요거라고?   육형석과 취옥백채. 어른 손바닥 2/3 크기의 고기 모양 옥돌, 그리고 비취색 옥으로 만든 백채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보물이라고 한다. 이 두 물건이 있는 전시실은 항상 관람객이 빼곡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 마냥.   육형석은 먹음직스러운 동파육처럼 보인다. 송나라 때 문장가 소동파가 만들기 시작했다는 푹 쫄인 돼지고기. 쫀득한 껍질과 밑에 붙은 부드러운 살코기, 대륙의 여유가 느껴지는 요리다. 돌로 돼지 껍질의 질감과 미감까지 만들어 낸 걸작은 걸작이다.     취옥백채. 백채는 배추. 한국에서 보는 통통한 김장용 배추는 아니다. 홀쭉한 복초이 비슷하다. 아래쪽은 하얀색 ,그리고 위쪽은 진초록이다. 하얀 쪽은 줄기, 그리고 초록색 부분은 잎사귀. 잎새에는 여치와 귀뚜라미까지 새겨져 있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 찍어 먹고 싶을 만큼 사실적이다.     육형석은 청나라 황제가 가지고 놀던 물건이라고 한다. 아마도 장난기가 심했던 건륭제가 밤참을 먹고 싶을 때 환관에게 슬쩍 보여주던 것이 아닐까?  중국 시대극을 보면 중국 역사상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명군 강희제나 그의 손자 건륭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취옥백채, 이것은 청나라 말기 슬픈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소품이다. 청나라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 광서제, 그는 황후 이외에 두 명의 비가 있었다. 그 중 한명 근비(瑾妃)가 혼수로 가져온 물건 중의 하나라는 설이 있다. 근비의 역사적 의미는 그것뿐.   광서제가 실제 사랑했던 여인은 진비(珍妃)다. 근비의 배다른 동생이다. 33년을 황제의 자리에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던 광서제는 진비에게 “내가 청나라의 황제인데 너 하나를 못 지키겠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인지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중국의 최고 실권자 서태후는 진비를 우물에 빠뜨려 죽여버린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서태후와 광서제가 베이징을 버리고 서안으로 피난 갈 때 일이다. 광서제를 따라가겠다고 고집하던 진비는 우물 속으로 던져진다. 당시 24살. 지금도 자금성 한 구석에 그 우물과 그 슬픈 기록이 남아있다.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광서제에게는 이모이자, 백모, 그리고 처 고모(광서제가 싫어했던 황후의 고모)도 된다. 서태후는 자기 아들 동치제가 후사가 없이 죽자 자신의 섭정을 연장하기 위해 어린 광서제를 아들로 입양한다. 그리고 광서제의 어머니로서 섭정.  죽을 때까지 50여 년을 중국의 최고 실권자로 군림한다.     서태후 밑에서 광서제는 기를 펴지 못한다. 개화파들과 한 번 중국의 운명을 걸고 서태후에게 대들다가 실패한 후 유폐 생활을 하다가 39세에 독살당한다. 1908년 그가 죽고 이틀 후 서태후도 죽는다. 서태후가 마지막 한 일은 광서제 이복동생의 아들 부의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만든 것이었다. 서태후와 광서가 죽고 3년 만에 청나라가 망한다.   비취백채는 역사의 그 은밀한 현장에 있었다. 그 사연들은 죽은 이의 혼백처럼 다 흩어지고 돌멩이 하나만 후세인들의 호기심대상으로 남아있다. 오늘도 청나라 황실의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를 감상하기 위한 인파가 밀린다. 나도 그중의 하나.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중국 황실 황제 광서제 광서제 이복동생 청나라 황제

2023-10-08

[아메리카 편지] 담나티오 메모리아이

토론토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라이어슨 대학이 지난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는 캐나다의 공립학교 시스템 창립자인 에거튼 라이어슨이 수많은 원주민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사악한 방치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기숙학교’의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어 토론토 시내 동서를 잇는 23㎞ 길이의 주요 도로 던다스 스트리트도 이름 변경이 결정됐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정치인 헨리 던다스가 노예폐지를 지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역사적인 인물들을 오늘날의 반인종차별 관점으로 재검토하는 일은 ‘취소 문화(Cancel Culture)’의 한 형태다. 개명뿐 아니라 기념물이나 동상 허물기 등의 다양한 양상을 띠는 이 현상은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일도 이와 상통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선례는 고대 로마 시대의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 즉 기록말살 형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죄인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우는 이 망각의 형벌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로마인들에게는 특히 극심한 벌이었고, 칼리귤라·네로·도미티아누스·코모두스 등 특별히 악독한 황제들에게 사후 적용되었다. 황제의 얼굴 조각을 다음 황제의 모습으로 재조각하는 관습은 자원을 재활용하는 로마인들의 실용성도 나타내지만, 전 황제를 지웠다는 의도적인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담나티오 메모리아이의 산물이다. 원래 자리 잡았던 네로 황제의 200㏊ 크기 쾌락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을 지은 것이다. 네로의 금빛 거상(Colossus)은 태양신(Sol)으로 변경되어 철거를 모면했다. 한국은 요즘 이와는 반대의 맥락에서 ‘다시 세우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끊임없는 역사의 전변(轉變)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메모리아이 네로 황제 토론토 중심지 토론토 시내

2023-09-01

[신 영웅전] 망국의 황제 니콜라이 2세

1894년 무렵부터 극동의 4개국, 즉 조선(한국)·청나라(중국)·일본·러시아의 국정은 어수선했다. 한반도는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이 잇따라 휩쓸고 가고, 청나라는 배상금에 허덕이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이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1895년 랴오둥반도를 잃자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고, 러시아는 일본을 제압한 호기로움에 허세를 부렸으나 안으로 곪고 있었다.   그 무렵 러시아는 황제 니콜라이 2세가 26세에 등극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크림전쟁(1853~1856) 이후의 부채와 관료 부패, 황후 표도로브나와 요승(妖僧) 라스푸틴의 스캔들로 안팎이 어수선했다.   그러던 차에 청일전쟁 이후 랴오둥반도 상실로 절치부심하던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육전대(해병)가 뤼순(旅順)에서 대패했지만, 니콜라이 2세는 설마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오겠느냐며 무사태평이었다. 결국 러시아 발트 함대와 흑해 함대가 대마도해협에서 일본군에 전멸했다.   시종장이 패배 전문을 들고 황제 집무실로 허둥대며 달려가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했지만, 황제는 “테니스 끝난 다음에 얘기하자”며 별일 아닌 듯 반응했다. 몇 시간 뒤 초주검이 돼 기다리던 수상 코코프체프가 다시 보고하자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더니 궁실로 들어갔다. “주님의 뜻대로 되겠지.”(바바라 터크먼 『8월의 포성(Guns of August)』)   이러고도 전쟁에 이길 수 있을까. 러일전쟁이 러시아 왕조의 몰락과 소비에트 탄생의 신호였다는 해석은 왕조의 부패와 무관하지 않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는 고염무(顧炎武)의 말이 맞을 수 있지만, 군주가 무능하고 경륜이 없으면 국민의 애국심도 소용이 없다. 국민은 그런 왕을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종(高宗)과 니콜라이 2세는 닮았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니콜라이 망국 황제 니콜라이 니콜라이 2세 보고하자 황제

2023-06-11

오동통 살 오른 ‘보양식 황제’ 장어 ‘힘이 불끈’

보양식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장어다.     팔딱팔딱 힘이 넘치는 장어는 양질의 단백질과 칼슘, EPA, DHA 등의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A, B, E 등이 풍부해 보양식으로서의 기력 회복과 원기 보충, 정력 강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성장발육과 뼈 건강, 기억력 증진, 피로 회복에도 효과적이다. 또 불포화지방산과 토코페롤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있어 나쁜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효과도 있다.     더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6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장어를 맛봐야 할 때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핫딜'에서 선보이는 'LW 민물장어'는 유독 살집이 두툼하고 쫄깃쫄깃해 추천할만하다.       LW 민물장어는 '손질된 장어'부터 '매운맛 양념장어' '데리야끼맛 양념장어' 등 총 3가지 종류로 준비돼 있다. 맛별로 장만해두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장어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손질된 장어는 BBQ처럼 구워서 상추쌈과 생강을 곁들이면 근사한 한 끼가 뚝딱 완성된다. 매운맛과 데리야끼맛 양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어 소스로 찍어 먹거나 함께 구워 먹는 등 장어의 풍미를 보다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LW 민물장어는 '유럽장어(European Eel, 학명 Anguilla Anguilla)'를 수입 판매한다. 장어는 민물장어와 바닷장어가 있는데, 동양에서 건강을 위해 챙기는 건 민물장어 쪽이다. 민물장어는 대부분의 생애를 민물에서 살다가 성어가 되면 산란을 위해 깊은 바다로 간다. 유럽장어의 경우 깊은 대서양에 가서 알을 낳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다시 민물로 돌아온다. 미국 동부와 남부에서 자라는 장어도 대서양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는 민물로 돌아와 성어가 되는 생애를 반복한다.   유럽장어는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CITES'라는 증명서가 없으면 수출입이 안된다. LW 민물장어는 지난 1973년 국제협정된 정식 CITES 서류를 발급받아 미국 세관을 통관한 장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유럽장어를 합법적으로 수입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힘이 불끈 솟아나는 LW 민물장어는 '핫딜'을 통해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다. 특별히 99달러 이상 구입 시 쿨러 가방(16x12x9인치)을 사은품으로 무료 증정하고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핫딜 보양식 황제 보양식 황제

2023-06-04

[아메리카 편지] 캐나다에도 왕이 있다

지난 6일 전 세계가 처음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영국 왕의 대관식을 지켜보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으리으리한 예식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의미 깊은 이벤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캐나다가 여전히 영국의 왕을 국가원수로 두고 있는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이다. 1982년 ‘캐나다법’이 통과되면서 정치적으로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지만 명목상이라 해도 현 국가원수는 여전히 찰스 3세다.       캐나다가 군주국이라는 사실이 평시에는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20달러 화폐를 장식하는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이제 곧 찰스 3세로 바뀐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상징적인 전통의 힘이 새삼 느껴진다. 캐나다 사람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3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021년 카리브해에 있는 영연방 국가 바베이도스가 군주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제로 전환한 뒤로 캐나다에서도 언제 군주제를 벗어버릴 것인지에 관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행 헌법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21세기 최첨단 사회에서 군주제를 고집하고 왕족 세습을 기념하는 어마어마한 대관식을 국민의 세금으로 거행하는 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 먼 옛날 로마시대 황제 계승제도가 훨씬 더 현대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 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는 핏줄과 관계없이 입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하여 스페인 출신인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죽으면서 다음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입양했는데, 동시에 피우스에게 그다음 대 황제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를 입양하도록 명했다. 핏줄 관계로 이어받은 황제보다 입양으로 계승된 황제들이 대체로 더 어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혈통 하나만으로 대관식이 이어지는 21세기의 광경을 아름답게 쳐다봐야만 할까.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캐나다 캐나다 사람들 군주제 지지율 황제 자리

2023-05-18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고 박희민 목사가 남긴 이야기<1>

미주 한인교계의 거목 박희민 목사가 지난달 26일 눈을 감았다. 〈본지 4월27일자 A-1면〉   박 목사는 한인 사회의 산증인이었다. 지난해 3월 본지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터뷰를 위해 박 목사를 만났었다. 인터뷰가 총 3차례 진행됐지만 더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박 목사의 건강 문제로 추가 인터뷰 스케줄 일정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박 목사가 남긴 이야기를 서술 방식으로 기록해뒀다. 못다한 그의 이야기를 종교면에 게재한다.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삶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인다.   여동생의 소개로 영국서 간호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김영자)를 만났다. 1967년이었다.     결혼한 그 해 교단으로부터 월남 선교사로 임명받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비자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 당시 교단 선교위원장으로 있던 한경직 목사가 갑자기 보자고 했다. 선교 때문에 아프리카를 둘러보고 왔던 한 목사가 "에티오피아로 선교지를 변경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교단의 최고 어르신의 권유이니 군말 않고 마음을 바꿨다. 다시 1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공교롭게도 에티오피아 황제의 손녀 소피아 공주가 한국을 방문(1968년 2월)했다. 소피아 공주는 당시 서울영락교회에서 예배도 드렸다.   에티오피아와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해 서울영락교회에서 선교 파송 예배를 드렸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한 살 되던 아들을 안은 채 에티오피아 땅으로 떠났다.     그 당시 한인으로서는 최초의 에티오피아 선교사가 됐다. 막상 가보니 너무나 척박한 땅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고난은 선교사에게 숙명 아닌가. 복음 전파 사역과 구제에만 힘썼다.     에티오피아에서 둘째(딸)를 낳았다.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젖먹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두 아이 모두 풍토병에 걸렸다. 치료약도 없었다. 의료 시설조차 없었다.   두 아이들의 몸에서 자꾸만 진물이 나왔다. 너무 가려우니까 자꾸만 몸을 긁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몸을 긁지 못하도록 아이들의 손을 붕대로 감아 놓았다.   사명이 있었기에 나는 견딜 수 있었지만 젖먹이 아이들은 도저히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형(박희성 목사)이 뉴욕에서 개척 교회를 준비중이었다. 일단 아내가 아이들(1살ㆍ3살)의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971년 6월의 일이다.   일단 나는 에티오피아에 남아 사역을 감당했다. 아내는 형님댁에 머무르며 아이들 치료에만 전념했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느정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잠시 가족을 보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며 전공을 살려 뉴욕 한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했다. 벌이가 생기니 기본적인 생활은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도 풍토병에서 조금씩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미국에 간 김에 놀고 싶지는 않았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그때 에티오피아에서 일이 터졌다. 1974년 공산화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혔다.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국에 눌러앉게 됐다. 다시 한번 삶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은 뒤 하나님이 어떠한 길로 인도하실지 기다리고 있던 중 청빙 제의를 받았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였다.   그 당시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분쟁으로 인해 갈라져나온 교회였다. 아픔을 안고 있던 교회였다. 청빙을 승낙하기에 앞서 고민과 갈등이 이어졌다. 아내가 간호사로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이도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개척교회를 하는 형님을 돕고 있었다. 주변 동료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만류했다.     그 상황에서 거듭된 청빙 제의를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목사는 결국 목회를 해야 한다. 그쪽에서 제시한 사례비는 미국에서 버는 것보다 적었다.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버려야 했지만 결국 소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내가 결정을 하니 아내도 주저하지 않고 병원에 사표를 냈다.   미국에서 자리 좀 잡아가나 싶었는데 하나님은 다시 한번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1974년 7월에 그렇게 토론토로 향했다.   당시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목사 반대파 교인들이 따로 나와 만든 공동체였다. 때문에 목회자에 대한 쓰라린 감정을 갖고 있던 교인이 많았다. 그러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간다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교인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목사에 대해 교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바꾸려고 했다. 교회에서 사택을 마련하라고 준 돈도 받지 않았다. 그 돈을 다 장학금으로 내놨다.     매일 각 가정을 만났다. 그때 이민목회는 이민자의 삶을 공감하고 같이 삶을 걷는 게 전부였다.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들어줬다. 교인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고 함께 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관계가 형성되자 목회자에 대한 이미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교인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   목회자로서 훈련도 많이 받았다. 목회와 학업을 병행하며 토론토대학에서 박사 학위(1982년)도 받고 녹스신학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학생들도 가르쳤다. 잠시 안식년을 이용해 하버드대학에서 '메릴 펠로우(merrill fellow)'로 신학을 연구했다.     나는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서의 사역을 회상하면 늘 '정말 재미나게 목회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즐거웠다.   목회가 즐거워지니까 자연스레 열매가 맺어졌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어느새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이제는 안주할만도 했는데 그 지점에서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나와 교회를 위해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 같았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계획 인생 에티오피아 선교사 에티오피아 황제 그해 서울영락교회

2023-05-08

[열린광장]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정의로움을 한 해의 봄날처럼,  하루의 아침처럼 하늘에서 하신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룩하시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이름난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이 읊은 ‘3월 찬가’ 의 한 구절이다. 3월은 한 해의 세 번 째 달이지만 첫 번째 계절인 봄의 첫 번 째 달이다.   3월은 로마 달력으로는 ‘마르티우스’라고 불렸으며 달력의 첫 번째 달이었다. 그런데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B.C. 46 년에 로마의 신을 뜻하는 야누스라고 부르는 달을 한 해의 첫 번째 달로 삼으면서 3월은 세 번째 달이 되고 말았지만 이 3월은 ‘로마 전쟁의 신’ 으로 추앙받는 그런 이름이었다.   3월에 연방 공휴일은 없지만 주마다 특별한 기념일이 있다. 네브래스카 주민들은 3월 1일을 주 승인 축하 일로 기념하고 있고, 텍사스주는 3월 2일을 멕시코로부터의 독립 축하 날로 삼고 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주민들은 1681년에 대헌장을 받은 ‘윌리엄 펜’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월과 관련된 미신 같은 통설이다. 즉, ‘3월은 사자처럼 다가와 어린양처럼 사라진다(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와 같은 것이다. 초기엔 춥지만 나중엔 따뜻해지는 3월의 특성을 말한 것이다.     이제  3월에 태어나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살펴보자. 미국인 조각가 에이 세인트 가우던스가 1848년 3월 1일에 태어났다. 세인트 가우던스는 여러 장군들의 동상을 조각했는데 그 가운데 현재 뉴욕시 센트럴 공원 입구에 있는 윌리엄 테쿰셔 숼만 장군 동상은 미국이 자랑하는 조각품이다.   미술가 미켈란젤로는 1475 년 3월 6일에 이탈리아에서 출생했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가 바티칸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틴 성당의 천정에 색칠하는 일을 맡기면서 유명 화가가 됐다. 그의 작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에타(예수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다.      프랑스 음악가 마우리스 라벨은 1875 년 3월 7일 태어났다. 라벨은 다양한 음률과 정확한 음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프랑스 작곡가인 드비시와 함께 인상파 예술가로 불린다. 라벨이 세계 1차대전 뒤에 작곡한 교향악곡 ‘라 발스’ 와 ‘볼레로’ 는 매우 이름난 곡이다.       그리고 물리학자 게오르그 시몬 오움이 1787 년 3얼 16일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오움은 ‘기전력’과 전류와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설정한 ‘오움 법칙’의 물리학자다.  전기학자들은 오움의 법칙을 이용하여 전기회로를 측정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가 페이츠릭 헨리가 1736 년 3월 23일 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이름난 연설가로 알려진 그가 버지니아주 의사당에서 외친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이란 연설이 아주 유명하다. 헨리는 미국 독립 전쟁때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었으며 나중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추천으로 주의회 회원으로 출마하면서 “뭉치면 살지만,  헤어지면 우린 망합니다(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라는 멋진 연설을 하기도 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계절 시작 로마 달력 미술가 미켈란젤로 로마 황제

2023-03-03

마켓에서 판매하지 않는 삼겹살의 황제 '버크셔' 돼지고기

한국인과 삼겹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삼겹살과 소주 없는 대한민국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삼겹살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토종 음식이다. 퇴근길 골목을 장식하는 구운 삼겹살이 내뿜는 연기와 냄새는 하루 동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주는 어퍼컷이다.     삼겹살은 요란한  갖은 양념도 필요 없다. 소금만 있으면 된다. 소주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술이라도 삼겹살은 거부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삼겹살은 더 댕긴다. 비좁은 사이사이 원형 드럼통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음을 듣노라면 어느 새 세상만사는 잊혀진다. 삼겹살은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굽기 편하고 먹기가 쉽다. 가성비 갑의 품질은 이 세상에서 따라올 음식이 없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어차피 국내산 돼지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 영국산 돼지 버크셔는 육즙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구는 흑돼지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붉은 색을 나타내며 달큰한 맛을 낸다. 피부와 털이 검은 것이 특징이며 코끝,다리끝,꼬리끝은 흰색을 지니고 있다. 생긴 것이 요크셔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이 조금 낮게 치켜올려져 있다. 뭐니뭐니해도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게다가 마블링이 적절히 붙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버크셔 돼지고기가 비싼 이유는 한 배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일반농장에서는 키우지 않는 특별한 돼지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황제 '버크셔 삼겹살'로 오늘은 통구이와 수육에 빠져보면 어떨까? 버크셔 흑돼지 2파운드는 $34.99이며 미 전국 배송으로 타주에서도 맛 볼 수 있다.   ▶문의: (213)368-2611   hotdeal.koreadaily.com 돼지고기 삼겹살 버크셔 돼지고기 황제 버크셔 버크셔 흑돼지

2022-12-25

마켓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삼겹살의 황제 '버크셔' 돼지고기

   한국인과 삼겹살은 뗄 내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삼겹살과 소주 없는 대한민국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삼겹살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토종 음식이다.    퇴근길 골목을 장식하는 구운 삼겹살이 내뿜는 연기와 냄새는 하루 동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주는 어퍼컷이다. 삼겹살은 요란한  갖은 양념도 필요 없다. 소금만 있으면 된다.    소주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술이라도 삼겹살은 거부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삼겹살은 더 댕긴다. 비좁은 사이사이 원형 드럼통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음을 듣노라면 어느 새 세상만사는 잊혀진다. 삼겹살은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굽기 편하고 먹기가 쉽다. 가성비 갑의 품질은 이 세상에서 따라올 음식이 없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어차피 국내산 돼지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 영국산 돼지 버크셔는 육즙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구는 흑돼지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붉은 색을 나타내며 달큰한 맛을 낸다.    피부와 털이 검은 것이 특징이며 코끝,다리끝,꼬리끝은 흰색을 지니고 있다. 생긴 것이 요크셔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이 조금 낮게 치켜올려져 있다. 뭐니뭐니해도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게다가 마블링이 적절히 붙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버크셔 돼지고기가 비싼 이유는 한 배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일반농장에서는 키우지 않는 특별한 돼지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황제 ‘버크셔 삼겹살’로 오늘은 통구이와 수육에 빠져보면 어떨까? 버크셔 흑돼지 2파운드는 $34.99이며 미 전국 배송으로 타주에서도 맛 볼 수 있다. 핫딜에서 결제한 후 영수증을 지참하고  LA한인타운 웨스턴과 베벌리의 김선영 미용실 몰 내 오모나 BBQ 매장에서 직접 픽업할 수도 있다.     ▶버크셔 흑돼지 삼겹살 구매 바로하기 ▶문의 : 213)368-2611 hotdeal.koreadily.com      돼지고기 버크셔 버크셔 돼지고기 버크셔 삼겹살 황제 버크셔

2022-12-20

[삶의 뜨락에서] 대리만족

우리는 우리의 울분과 우울함을 대리만족으로 보상받곤 합니다. 수퍼맨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세상의 악한들을 물리쳐 줄 때 우리는 마음이 시원해지고 영화에서 힘없는 사람을 학대하던 악한의 무리를 물리치고 응징해주는 정의한을 보고 우리는 손뼉을 칩니다. 황야의 7인에서 연약하고 순박한 농민들을 학대하는 마적단의 무리를 물리치고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손뼉을 치고 동네의 사람을 못살게 굴며 약탈하던 악한들을 물리치고 석양의 해를 등에 지고 떠나는 셰인의 앨런 래드를 보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의 영화는 권선징악의 영화였습니다. 가난한 어린 소녀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생하면서 공부하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고 온갖 고난을 물리치며 재벌의 아들과 결혼한다는 신데렐라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쌓인 우울함을 달래줍니다.   우리는 유영철 같은 살인마가 경찰에 잡혀 재판받고 무기징역이라는 형이 내렸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며 사회의 권선징악의 정의를 보며 시원해합니다. 우리는 국제 축구대회에서 손흥민이 볼을 몰고 가다가 골문 안에 공을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십년 묵은 체증이 확 풀려나갔다고 합니다. 야구장에서 점수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 타자가 친 흰 공이 푸른 하늘에 날아가 담장을 넘을 때 우리는 손뼉을 칩니다. 우리는 신문에 실린 논설이나 칼럼을 보면서 우리가 정부나 사회에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주는 글을 읽으면서 “어 시원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대리만족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런 대리만족을 누리는 것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독재국가에서는 마음대로 영화를 볼 수도 없고 마음대로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으며 마음대로 정부에서 금하는 금서를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정부의 시책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복종하고 지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리만족은 보편 타당성이 있는 즉, 누가 어디에서 보나 한결같이 공감하는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300명의 국회의원을 위하여 우리의 세금을 수천억을 쓴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비싼 세금을 쓰면서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을 알리고 정부의 횡포를 견제하고 우리가 못하는 일들, 우리가 못하는 말들을 하라는 대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갑질을 하고 국민에게 오만하게 군림하고 몰려다니면서 패싸움을 하라고 뽑아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이런 대리만족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문은 우리가 알고 싶은 이야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권력에 추종하는 기사만을 내보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진군하자 파리의 신문들이 처음에는 ‘살인귀 엘바 섬을 탈출하다’라고 했다가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까이 오자 ‘나폴레옹 장군 파리로 진격하다’라고 하고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나폴레옹 황제, 파리에 입성하시라’고 하여 신문이 카멜레온처럼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느 정권에나 신문은 정부 편이었습니다.     성경에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길가에 갖다 버린 바 되리라고 한 것처럼 고추가 매운맛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올바른 비판 올바른 충고를 하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우리에게 시원한 대리만족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대리만족 나폴레옹 황제 나폴레옹 장군 자유민주주의 국가

2022-10-14

장엄하여라 우국의 황혼이여

장엄하여라 우국의 황혼이여 /  김건흡 MDC시니어센터회원 / 8월이 가고 있다. 15일은 광복절이다. 무엇으로부터 광복인가. 일본 압제로부터 해방이다. 8월 29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국치일이다. 8월이 오면, 광복절은 생각하지만, 국치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부끄럽기 때문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지를 털고 국치일을 역사의 창고에서 불러내야 한다. 와신상담. 1년에 한 번이라도 쓰디쓴 쓸개를 꺼내어 핥아 보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된 도리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정미 7조약으로 내정감독권을 뺏은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치밀하게 추진했다. 1910년 7월 23일 신임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총리대신 이완용은 한일합방에 관한 협의를 시작했다. 8월 16일 데라우치 통감은 이완용에게 합방조약안을 내밀고 수락을 독촉했다. 이틀 후 각의가 열리고 22일에는 어전회의가 열렸다. 그날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합방조약에 조인했다. 일주일 후 마지막 황제 순종은 대한제국과 일본의 합방조약을 발표했다. 그날 한국 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양여할 것을 규정한 합방조약에 따라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한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때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1910년 8월 22일) “오후 4시, 한국 합병의 조약을 통감 관저에서 조인하여 마쳤다. 합병문제는 이와 같이 용이하게 조인을 끝냈다. 하하하!”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작성해온 을사늑약은 4개조 뿐이었다. 조약안을 내밀자 고종은 대신들에게 떠넘겼고, 대신들은 황실의 안녕을 보장하는 조항을 넣자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제 5조에 “일본은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 유지를 보증한다”는 내용을 써넣었다. 주권을 빼앗겨도 황실만 보호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병합조약도 마찬가지다. 8개 조 중 제1조와 2조는 한국 황제는 한국에 관한 통치권을 양여한다는 것과 일본 황제는 양여를 수락한다는 내용이고, 제 8조는 공포일로부터 시행된다는 조항이다. 나머지 5개 조항은 무엇 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즉, 황제 태황제 황태자를 비롯한 황실과 황족, 그리고 공훈이 있는 자 등에게 그 직위에 맞는 대우와 세비 및 은사금 지급 등을 약속한 내용이다. 일제는 약속을 지켰다. 순종 황제는 왕으로, 고종은 이태왕(李太王)으로 봉해졌고, 황실을 비롯하여 전현직 대신들 76명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은사금도 지급했다. 이들 중 2명만 작위를 거부했고, 6명은 후에 반납했다. 나머지는 귀족 신분으로 살았다. 또 나라가 망하기 3일 전인 1910년 8월 26일, 순종 황제는 이완용과 궁내부대신 민병석에게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수여했다. 또 황후 윤 씨는 황실 및 종친, 이완용의 부인 등 40여명에게 서봉훈장을 수여했다. 500년 사직이 망하는 마지막 순간, 군주와 대신들은 나라를 넘겨준 공로로 훈장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날 이후 망국의 치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적지 않았다. 죽음은 흔히 치열한 절망 쯤으로 치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오히려 목숨과 자기표현을 맞바꾼 장엄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항거든 분노든 그것은 영혼을 위해 육체를 버리는 일인 까닭이다. “나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다만 국가나 선비를 기른지 500년이 되어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난국에 죽지 않는다면 오히려 애통하지 않겠는가.”9월 10일 전남 구례에서 망국의 소식을 접한 한 유생이 유서와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아편덩이를 삼켜 목숨을 끊었다. 한말의 대시인 매천(梅天) 황현(黃玹)이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기 전에 성찰한 것은 지식인의 삶이었다. 절명시는 모든 글 중에서 가장 비장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라고 말할 만하다. “이 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되기는 어렵기만 하다”는 마지막 구절은 나라가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에 부딪친 지식인의 아픔과 고뇌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실존적 결단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하지만, 그 행위의 결과가 특정한 성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불분명한 결과를 위해 존재의 전부를 버리는 고독한 선택이다. 따라서 자정(自靖)이란 그 방식이 어떠하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독을 삼키든 곡기를 끊든 어떤 방법도 더 가볍거나 수월하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지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려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바쳐 싸운 이들도 있었다. 일반 백성이었다. 이들은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항전했다. 무기는 기껏해야 화승총이나 사냥총이었다. 이들은 근대식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싸워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일제와 싸웠고, 수만 명이 죽었다. 조선이, 아니 대한제국이 왕의 나라라면 마땅히 임금과 그 일가가 망국의 책임과 죄업을 져야 할 것이로되 이 씨 성의 왕족 중에 스스로 책임을 다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을사년(1905) 이래 경술년을 지나면서 선비 등 많은 분들이 스스로 왕토에 사는 신민의 도리를 다했다.   “아! 이제 조선은 명실상부하게 멸망했다. 다시는 문자가 없고, 다시는 군주가 없고, 다시는 정부가 없고, 다시는 민족이 없고 거꾸러진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만 남게 되었다.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눈물의 주인공은 조선 백성이 아니다. 눈물은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파의 지도자였던 량치차오(梁啓超)의 뺨에 흘렀다. 량치차오는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로서 무술변법운동을 주도했으며, 신해혁명과 5·4운동 등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신채호 박은식 등 조선의 애국계몽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왜 남의 나라 일에 눈물까지 흘리며 애통해했을까. 이 눈물은 순수한 의미의 동정이 아니다. 실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일본에 빼앗긴 데 대한 상실감이 더 짙게 배어있다. 량치차오에게 조선은 서구와의 대비 속에서 중국을 비춰볼 수 있는 특별한 타자로서 미래 중국의 모습일 수도 있는 존재였다. 당시 중국이 위기를 겪으면서 자칫 조선과 같은 비극적인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인식하에 조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는 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망국 보고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괴롭다. 조선에 대한 청나라 최고 지식인의 비뚤어진 인식을 대하는 것이 분통하고, 일제 제국주의의 호구(虎口)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우리 선조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는 것이 화가 난다. 량치차오는 조선이 안으로부터 무너져내려 망했다고 진단한다.   조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 가던 그가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인물은 독립운동가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1910년 한일합방 때 국치의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금산군수 홍범식에 대해서는 긍정을 넘어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무릇 조선 사람 1000만 명 중에서 안중근 같은 이가 또한 한둘쯤 없지는 않았다. 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유의 사람은 본래 1억 명 중에서 한둘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한두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사회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결하고 자애하는 자는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고 말한다.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인은 위기에 뭉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 하지만 구한말 위기에서는 뭉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라를 잃었다. 당파적 분열이 임계점을 넘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조선의 멸망으로부터 고작 1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이 과오를 반복하려 드는 것일까. 우리 시대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8월이 지나간다. 광복절 다음에 국치일이 온다. 금년 8월은 광복절과 국치일을 한 번씩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김지민 기자우국 황혼 한국 황제 한국 황실 데라우치 통감

2022-08-17

[이경제 황제 침향단] 왕들의 자양강장제 '황제 침향단' '침향진액' 출시

'향 중의 왕'이 침향(枕香)이다. 침향은 침향나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천연으로 분비된 수지(진액)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덩어리다. 열대지역에서 주로 자라는데 한 그루당 5~7Kg 정도의 소량만 채취가 가능한 귀한 원료이며 공진단을 만들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주요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침향은 혈액순환 개선 신장 기능 개선 체력 회복 및 피로 개선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조선 왕실에서도 왕의 기력을 회복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약에 침향을 썼다.     이 가운데 ''ALB(All Live Best)''에서는 침향(10%)과 녹용(10%) 홍삼(7%) 당귀(6.9%) 산수유(7%) 자연산 아카시아 벌꿀 등 20가지 전통 원료를 황금 배합한 ''이경제 황제 침향단''을 출시해 화제다.       이경제 황제 침향단은 왕이 사랑한 고품격 보약 침향과 더불어 귀한 자양강장제인 녹용과 홍삼이 신경세포 분화 촉진 면역력 강화 근력과 관절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한 갱년기 퇴치에 좋은 산수유가 신장 기능 향상 소변 전립선 장애 개선을 당귀 성분이 심혈관 수족 저림 냉증 혈액순환을 개선해 준다. 그 외 치매 예방 신경세포 감소 억제 혈관 내피 보호 체내 혈당 수치 감소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   ALB 이경훈 이사는 "황제 침향단은 공진단보다 훨씬 효능이 뛰어난 건강 보조제로 예방을 넘어 증상의 치유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하루에 침향단 한 개와 침향진액 한 포를 한 달만 복용해도 확실한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손발이 저리신 분 전립선 장애 및 생리가 불순한 분 평소 온몸에 쥐가 자주 나는 분 치매가 걱정인 분 면역력 강화를 필요로 하는 분 만성피로로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분들께 황제 침향단을 강력 추천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황제 침향단과 함께 선보이는 ''이경제 황제 침향신로진액''은 개선 예방 차원의 제품으로 녹용단과 함께 복용하면 녹용과 홍삼의 피로개선 체력 회복 면역력 증강 효과에 혈액순환 개선 효과까지 더해 손발의 저림이나 마비 현상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단 침향은 10% 이상 복용 시 체질에 따라 장의 손상이나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 이사는 "시중에 녹용 홍삼 함유량이 거의 없이 침향 15%~20%가 넘는 제품들을 저가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경제 황제 침향단과 침향신로진액은 FDA USDA USID의 승인을 받아 더욱 믿을 수 있다.     ▶문의: (213)666-2211(LA)             (714)676-5558(부에나파크)   ▶웹사이트: www.alllivebest.com업계 이경제 침향단 이경제 황제

2022-07-07

[살며 생각하며] 바람의 황제 알바트로스

나, 동식물에 완전 약하다. 자연 시간에 잤다. 어려선 모든 과일과 채소는 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줄 알았었다. 고등학교 때, 한 번은 생물 시간에 열심히 시를 쓰다, 선생님이 내 옆에 와 보고 계시는 줄도 몰랐다. 그 결과 남은 시간 서서 수업을 받았어야 했는데,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지금은 뉴저지 살고 계시는 내 칼럼 왕팬이시다, 훗훗. 북클럽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자연을 묘사하는 부분만 나오면 나의 설명이 엄청 엄벙덤벙해지고 잽싸게 지나가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설교 시간에 본,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영상은 이런 나의 머리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알바트로스는 활짝 펴면 2~3미터 되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날 수 있는 새 중 가장 큰 새이다. 물갈퀴 달린 작은 발 때문에 뒤뚱뒤뚱 걷고 손쉽게 잡히기도 해 바보새라고도 불리는 이 알바트로스가 사실은 활공의 명수다. 두 달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우리 알바트로스씨, 하루에 거의 1000km까지도 날 수 있다니! 이건 서울-부산 왕복하고 다시 부산 가는 거리다. 심지어 오륙년, 혹은 십년까지도 땅을 밟지 않고 날 수 있다는 놀라운 비행의 황제다.     새 중에 가장 무겁고 덩치 큰 알바트로스가 이렇게 오래 멀리 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려면 아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수시로 멈춰서 고등어를 몇 마리씩 잡아먹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자연 시간에 잔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안하고도 바람을 이용하여 난다. 폭풍이 와, 모든 새가 바람을 피해 숨을 때, 알바트로스의 활공이 시작된다. 알바트로스는 이 때, 날기 위해 바람에 맞서 절벽에 선다. 날개를 펼치고 바람에 몸을 던진다. 이 때야말로 유일하게 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다루는 능력으로, 이렇게 날개를 펼치기만 한 채로 기류를 타는 알바트로스, 6일까지도 날갯짓 하나 없이 쭈욱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수시로 변하는 기류의 부양력이 떨어지면, 고도(위치 에너지)를 낮추어 운동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 이유는 물리 시간에도 자서 이해 못함 - 다음 상승 기류를 기다린다. 해수면에서는 풍속이 느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빠른 것과, 바람층의 두께까지 잘 알고 있는 그는, 하강기류를 이용하여 다시 상승기류를 타는 바람의 황제다.   바람도 싫고, 절벽도 싫고, 산도 무서운 - 뱀과 송충이와 지렁이 때문에 - 도시의 여자인 내게도 바람은 불었고 때때로 절벽도 마주해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아직 불지도 않는 미래의 바람까지 예상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다 알게 된, 바람을 오히려 이용해 의연히 날아오르는 이 분, 기류가 약해져도 겁먹지 않고 하강/상승 기류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이 분, 어떤 기류를 타도 기초 심박수가 일정하다는 이 분, 바람이 안 부는 동안에는 육지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이 멋진 알바트로스씨를 아주 많이 닮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살아갈수록 모든 크고 작은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절실함을 느낀다. 에고, 바람이 안 부는 동안도 쉴 줄 몰라 헉헉 대고, 바람이 불면 피하기 급급해 퍼덕퍼덕 날갯짓을 하는 이 새 가슴의 소유자인 나, 언젠가 갈라파고스에 가서 바람의 황제 알바트로스를 만나보는 꿈을 꾸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알바트로스 황제 황제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 6일 상승 기류

2022-07-06

[이 아침에] 달마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한 사내가 이국 땅 낯선 산 바위 앞에 앉아 있다. ‘바위를 등지고’가 아니고 ‘바위를 바라보며.’ 햇빛, 달빛, 먹구름, 흰구름, 봄 바람, 여름 폭풍, 소나기, 눈보라… 대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9년 세월을 보낸다.     달마 대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기 500년 무렵 중국에 왔다.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셋째 왕자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타밀 나두의 칸치 출신. 인도양을 건너 말라카 해협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광조우에 상륙한다.     달마는 불교에 출가한 스님, 올바른 불법을 중국에 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나온 길이다. 당시 불교는 이미 중국에 번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유목민 중심의 북조와 그들에게 밀려 내려온 한족 중심의 남조로 나뉘어져 여러 왕조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달마가 도착한 광조우는 남조 양나라의 국제 무역항.   이때 양나라의 황제 무제는 ‘보살 황제’로 불릴 만큼 독실한 불자였다. 불사를 크게 일으켜 많은 절을 지었고, 자신이 세운 동태사의 노비가 되어, 나라로 하여금 비싼 시주를 하고 황제를 다시 찾아오게 하는 식으로 재물 보시를 많이 했다. 서기 527년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다. 황제는 자신의 불사 공덕의 가치를 묻는다. 달마는 “무(無),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머쓱해진 양무제가 달마 대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의 대답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질문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달마가 답한다. “불식(不識), 모르겠소.”   중국 최초의 선문답이다. 달마는 그 길로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서, 낙양 근처의 숭산에 자리를 잡고 면벽 9년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일대조가 된다. 육대조 혜능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법맥을 이은 역대 조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 월남에 새로운 불교 선의 바람을 크게 일으킨다.     달마는 또한 소림사 권법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오뚝이 다루마 인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녹차의 원조라는 전설도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 눈꺼풀. 달마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뜯어 던지니 그 자리에서 차 나무가 자랐다고.     향수는 떠나온 그 곳, 지나간 그 일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출가를 하고 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달마 대사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달마는 생전에 추앙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스님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죽어 묻혔다. 그런데 그 달마가 지팡이 끝에 짚신 한 짝을 달아매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달마의 몸은 없고 짚신 한 짝만 덜렁 남아 있더란다.     “내가 중국에 남겨 놓은 역사적 업적은 딱 짚신 한 짝.” 달마다운 무언의 설법. 조사는 향수마저 버려야 된다는 생각도 버린 대 자유인 달마의 귀향.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달마 고향 달마 대사 자유인 달마 황제 무제

2022-06-26

[이 아침에] 달마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한 사내가 이국 땅 낯선 산 바위 앞에 앉아 있다. ‘바위를 등지고’가 아니고 ‘바위를 바라보며.’ 햇빛, 달빛, 먹구름, 흰구름, 봄 바람, 여름 폭풍, 소나기, 눈보라… 대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9년 세월을 보낸다.     달마 대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기 500년 무렵 중국에 왔다.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셋째 왕자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타밀 나두의 칸치 출신. 인도양을 건너 말라카 해협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광조우에 상륙한다.     달마는 불교에 출가한 스님, 올바른 불법을 중국에 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나온 길이다. 당시 불교는 이미 중국에 번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유목민 중심의 북조와 그들에게 밀려 내려온 한족 중심의 남조로 나뉘어져 여러 왕조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달마가 도착한 광조우는 남조 양나라의 국제 무역항.   이때 양나라의 황제 무제는 ‘보살 황제’로 불릴 만큼 독실한 불자였다. 불사를 크게 일으켜 많은 절을 지었고, 자신이 세운 동태사의 노비가 되어, 나라로 하여금 비싼 시주를 하고 황제를 다시 찾아오게 하는 식으로 재물 보시를 많이 했다. 서기 527년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다. 황제는 자신의 불사 공덕의 가치를 묻는다. 달마는 “무(無),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머쓱해진 양무제가 달마 대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의 대답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질문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달마가 답한다. “불식(不識), 모르겠소.”   중국 최초의 선문답이다. 달마는 그 길로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서, 낙양 근처의 숭산에 자리를 잡고 면벽 9년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일대조가 된다. 육대조 혜능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법맥을 이은 역대 조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 월남에 새로운 불교 선의 바람을 크게 일으킨다.     달마는 또한 소림사 권법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오뚝이 다루마 인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녹차의 원조라는 전설도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 눈꺼풀. 달마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뜯어 던지니 그 자리에서 차 나무가 자랐다고.     향수는 떠나온 그 곳, 지나간 그 일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출가를 하고 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달마 대사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달마는 생전에 추앙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스님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죽어 묻혔다. 그런데 그 달마가 지팡이 끝에 짚신 한 짝을 달아매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달마의 몸은 없고 짚신 한 짝만 덜렁 남아 있더란다.     “내가 중국에 남겨 놓은 역사적 업적은 딱 짚신 한 짝.” 달마다운 무언의 설법. 조사는 향수마저 버려야 된다는 생각도 버린 대 자유인 달마의 귀향.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달마 고향 달마 대사 자유인 달마 황제 무제

2022-06-22

정조를 버리고 제국을 지켜낸 효장문황후

정조를 버리고 제국을 지켜낸 효장문황후   김건흡 MDC 시니어센터 회원    효장문황후는 청나라 2대 황제 태종 홍타이지(皇太極)의 비(妃)이며, 3대 순치제의 모후다. 그녀는 청나라 초기의 네 왕조를 경험했고, 그 가운데 두 명의 어린 황제를 보필했다. 대청제국 초기의 치열하고 참혹한 권력투쟁 속에서 효장문황후는 중대한 고비마다 기민하고 과감한 결단으로 제국을 단결과 발전의 길로 이끌었다. 만주족 최고의 미녀'란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여인이자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였던 효장문황후는 제국의 권력이 빛바랜 순간 자신만의 위엄으로 제국을 지켜낸 수호자였다. 75세의 생애 동안 여섯 살 아들 순치제가 황제가 되고 여덟 살 손자 강희제가 뒤를 이을 때마다 이들의 최고 수호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효장문황후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여인이다. 하늘은 그녀에게 봉건시대의 여인답지 않은 재능과 포부를 안겨줬다. 그리고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운명도 함께 부여했다. 이토록 영웅적인 인생의 대가로 그녀는 여성으로서 정조를 버렸다는 후손들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유교적 가치를 중시했던 중국에서 그녀는 황후의 신분을 갖고 두 남자의 아내가 되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든든한 보살핌을 받은 황제들은 제위를 굳건히 한 후 나라의 강토를 만주에서 중국 대륙, 서역으로 넓혀나갔다. 효장의 남편 홍타이지는 우리 한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1636년 친히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와 삼전도에서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 청 태종이다. 다음해인 1637년, 효장은 아들 복림을 출산했다. 그러나 1643년, 홍타이지가 뇌출혈로 급서했다. 갑작스런 죽음이어서 후사에 대한 한마디 언질도 남기지 못했다. 효장과 복림의 인생은 이때부터 급격히 물줄기를 틀게 된다. 후계를 놓고 홍타이지의 이복동생 황숙 도르곤과 홍타이지의 장자 호격이 정면 대립했다. 다른 황숙 황자들까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들은 모두 최정예 팔기군을 나눠 거느리고 있다. 실력으로 후계를 뽑는다면 엄청난 살육이 불가피했다.   이 때, 만주족 특유의 의정제도가 놀라운 정치적 해결을 이끌어냈다. 의정회의에서 결정된 후계 황제는 뜻밖에도 효장의 아들 복림이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복림이다. 어린 꼬마가 놀랍도록 총명해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다. 도르곤도, 호격도 상대가 즉위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도출된 고육책이었다. 청나라 황실은 17년 전에도 비슷한 파동을 겪었다. 홍타이지가 즉위할 때다. 개국 황제인 누르하치는 명나라와의 전투 도중 부상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유언을 문서로 남기지 못해 병석을 지킨 아들 홍타이지에게 몇 마디만을 전했다고 한다. 누르하치가 죽은 후, 홍타이지가 전한 유언은 모든 사람의 예상과 너무도 달랐다. ‘오랍나랍씨를 순장하라.’   누르하치가 가장 아끼던 여인이다. 도르곤의 생모이기도 하다. 이 여인을 너무나 사랑해 그녀 소생 세 아들도 누르하치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12황자 아지거, 14황자 도르곤, 15황자 도도는 한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한때는 누르하치의 후계자가 셋 가운데 하나일 것이란 소문도 무성했다. 뜻밖에도 새 황제가 된 홍타이지가 누르하치 못지않게 도르곤을 아꼈다. 차곡차곡 군 경력을 쌓아 도르곤이 아시아 최고의 명장으로 성장하도록 온갖 후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홍타이지는 자신은 황제가 되고 저 어린 것들은 엄마도 잃은 것이 불쌍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죽여서 후환을 없애버리기엔 도르곤이 너무나 아까운 인재임을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홍타이지 없는 세상에서 도르곤은 최고 실력자가 됐다. 그의 눈에 홍타이지의 여인 효장이 들어왔다. 미모도 출중하지만 정국을 보는 데 있어서 비범한 재능을 가진 매우 걸출한 여인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도르곤은 홍타이지의 여인 효장을 차지했다. 도르곤과 효장  사이에 누가 먼저 복림을 황제로 만드는 협력을 제안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당시의 상식에 비추어 도르곤이 먼저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피바람이 몰아치는 황궁에서 당장의 목숨도 보장하기 힘든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된다니, 효장으로서는, 한 어미로서, 절대 물리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 대신, 효장은 이제 정조를 버려야 한다.   효장이 새 남편 도르곤의 여인이 된지 7년. 복림이 장성해 친정을 하기 시작했다. 섭정 권력을 내놓은 도르곤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곧 이어 도르곤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수치가 복림의 원한으로 이어진 양상이었다. 도르곤은 사후에 성종 의황제로까지 추존됐지만 곧 이은 격하 움직임으로 시신을 훼손하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여인의 자존심을 내던지고 황제로 만든 아들이 순치제 복림이다. 순치제는 어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외면하듯 스물세 살 나이에 세상을 버린다. 일설에는 애인의 죽음을 슬퍼해 여덟살 아들 현엽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스님이 됐다고 한다. 효장은 엄마 고생 몰라주는 아들을 슬퍼할 겨를도 없게 됐다. 이제 혼신을 기울여 손자 현엽(강희제)을 지켜야 했다. 현엽을 둘러싼 조정에는 호랑이 같은 권신들이 보정대신의 탈을 쓰고 제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4대 황제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순탄한 적 없는 권력이양 과정을 겪었다. 어린 아이를 보위에 두고 벌이는 군신들의 승냥이 같은 속마음은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듯 훤한 효장이다. 만약 효장이 강희27년까지 76세의 장수를 누리지 않았다면 중국 역사상 최고의 60년 태평성대를 이끈 강희제 치세는 일찌감치 끝장났을지도 모른다. 미약했던 황권을 굳건히 하고 오삼계 등 삼번의 난도 평정한 강희제가 30대 장년으로 성장한 어느 날 효장은 유언을 남겼다. “마땅히 태종 폐하 계신 곳에 가야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소란 떨기 미안하구나. 우리 손자 있을 곳에 나도 함께 묻어주면 좋겠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만주에 묻힌 태종의 능묘에 합장하지 말고 황실의 묘역으로 새로 조성한 준화에 묻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멀어서,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서 남편 찾아가기 미안하다는 것만이 그녀의 본심은 아니었을 듯하다.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를 두고 떠나버린 아들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살아온 날들의 허탈함에 그저 번거로움을 떨쳐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효장문황후는 평생 3대의 황제를 지켰으며 특히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온 여인으로서 후세인들은 그녀를 ‘청나라의 국모’라 부르기도 한다.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묵묵히 무명공신의 역할을 담당해 역사적 위인으로 불리는 그녀, 오늘에도 중국인들은 그녀의 선량함과 영명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요즘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이야기로 시끄럽다. 최근 한 시민단체는 의상 구입과 관련 김정숙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대통령 부인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는 못할망정 ‘옷사치’ 때문에 ‘김멜다’라고 조롱 받는 모습이 민망하다. 그녀의 옷값 논란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영부인의 옷차림도 외교이고 국격”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소위 ‘패션 외교’는 여성이 외모로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더구나 지금은 3년째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전쟁까지 겹쳐 세계가 원자재와 식량 부족으로 신음하는 때다. 여성의 본분은 일하는 남편의 곁을 꽃처럼 장식하는 것인가. 남편의 지위로 얻은 재물로 치장하는 게 무슨 본보기라도 되나. 국격을 옷으로 높이나. 너무도 비현실적인 일화들이 전해질 때마다 청와대 저 깊은 속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의아할 뿐이다. 왜 청와대를 탈출하려고 하는지, 문재인의 청와대가 말해주고 있다.         김지민 기자효장문황후 제국 황제 태종 후계 황제 대청제국 초기

2022-04-06

[살며 생각하며]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성 비탈레 성당 제단을 둘러싼 세 벽면은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중앙 벽에는 천구 위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 양편에 각각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그의 부인인 황후 테오도라가 있다.    이 셋은 모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었다. 자색은 예수와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던 황제에게만 허락된 색이었다. 시종들을 거느린 테오도라가 입고 있는 자색 망토는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한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서로마제국 멸망 후 동로마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황제다. 비잔틴제국으로도 불리는 동로마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다. 그는 분열된 동서교회를 통합시키고 이탈리아 본토 회복과 지중해 세계의 통일로 옛 로마제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다.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대제국의 이루려고 한 그는 대제의 칭호를 받았다. 이 황제 뒤에는 현명하고 강단 있는 한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테오도라 황후였다.     원래 그녀는 검투사들이 피를 튀기며 싸우는 경기장에서 춤을 추며 연기하는 배우였는데, 재능이 출중했다고 한다. 당시 춤꾼이나 여배우는 매춘부와 동급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그녀를 악의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녀가 아무에게나 몸을 파는 천한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16살이 되자 그녀는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 세상 경험을 좀 더 쌓은 뒤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돌아와 궁전 근처에서 양모를 짜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를 만나게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녀의 미모와 재능과  삶에 대한 열정에 홀딱 반했다.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당시 귀족이었던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존의 법체계를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여배우 출신도 로마 귀족과 결혼할 수 있다는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이처럼 비잔틴 제국 귀족사회를 뒤흔든 엄청난 스캔들을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 그녀는 527년 남편과 함께 공동대관한 뒤 아우구스타[女帝]의 칭호를 받아 제국 통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총명하고 지혜로운데다가 뛰어난 정치감각을 갖고 있었던 테오도라는 제국의 거의 모든 법령을 만드는데 관여했고, 남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재위 초창기에 일어난 ‘니카 반란사건’이었다. 로마 제국 후기에는 전차경기단체이면서 헬레니즘 도시의 행정구획에 기원을 둔 데모이라고 불리는 정치적 사회적 성격을 가진 당파가 있었다.     옛 로마제국에서부터 로마의 전차경기장은 국가가 공인한 시민들의 휴식처였고, 동로마에서는 '히포드롬'이라고 불렀다. 히포드롬은 마차경기를 주로 하는 경기장으로 터키어로는 '말의 광장' 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400개의 계단에 20 여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요즘의 야구장과 같이 편안하게 볼거리를 즐기는 곳이었다.    히포드롬은 그 모든 재미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었다. 전차경기를 주로 했지만, 검투사들의 생사를 건 싸움에 돈을 걸기도 했고, 맹수들의 싸움을 볼 수도 있었다. 또 무희나 여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욕을 하거나 먹을 것을 던질 수도 있었고, 서커스를 보면서 빵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정치적인 변화에 민감한 시민들을 공짜표를 줘서 경기장에 묶어두고 공짜 음식을 주면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갈 수 있었다. 이것을 '빵과 서커스 정책'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전차경기나 검투사 싸움이 계속되면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편이 갈렸다. 요즘도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가면 각 팀의 팬들이 팀의 색깔을 상징하는 유니폼이나 응원 막대, 등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 시민들도 전차경주의 기수가 입는 옷 색깔에 따라 백색파, 적색파, 청색파, 녹색파 등 4가지 파가 생겼다.    이 중 청색파와 녹색파는 계급도 다르고 진보, 보수적인 성향도 달라서 축구장의 훌리건처럼 툭하면 난동을 부리고 심지어 폭동을 일으키곤 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 이전 정치적 종교적 정책을 지지하는 청색파를 비호하고 반대파인 녹색파와 대립했는데, 제위에 오르자 소동의 원인이 되고 민중적 정치적 압력단체가 되기 쉬운 당파들을 탄압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청. 녹 양파가 532년 1월 ‘니카!’를 외치면서 폭동을 일으켰다. ‘니카’란 ‘이겨라!’라는 뜻으로 경기장에서 외치는 일종의 구호 같은 것이다. 히포드롬은 전차경기를 주로 했지만, 검투사들의 생사를 건 싸움에 돈을 걸기도 했고, 맹수들의 싸움을 볼 수도 있었다. 또 무희나 여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욕을 하거나 먹을 것을 던질 수도 있었고, 서커스를 보면서 빵을 먹을 수도 있었다.    특히 정치적인 변화에 민감한 시민들에게 공짜표를 줘서 경기장에 묶어두고 공짜 음식을 주면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차경기나 검투사 싸움이 계속되면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도 편이 갈렸다. 전차 경주의 기수가 입는 옷 색깔에 따라 백색파, 적색파, 청색파, 녹색파 등 4파가 생겼다.    이중 청색파와 녹색파는 계급도 다르고 진보, 보수적인 성향도 달라서 축구장의 훌리건처럼 툭하면 난동을 부리고 심지어 폭동까지 일으키곤 했다. 유스티니아누스 는 처음에 청색파와 손을 잡고 진보적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개혁이 너무 과격했고, 황후마저 비천하다 보니 청색파와 녹색파 모두 황제의 개혁을 의심하고 반대했다.     그 결과 이 두 파는 '니카! 니카!(이겨라, 이겨라)'를 외치면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을 이용해 반황제파 원로들은 아나스타시우스 황제의 조카 히파티우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폭도들은 새로운 황제를 앞세워 궁문을 부수고 왕궁으로 거세게 밀려들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군대가 그를 지지할 것인지 불확실한 가운데 궁정 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대책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궁정회의에서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테오도라가 결연히 나섰다.     “황제가 되어본 사람에게 도망치는 일은 견딜 수 없는 수치입니다. 나는 도저히 이 자주빛 어의(御衣)를 벗어던지지 못하겠습니다. 또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황후로 받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황제시여, 지금 생명에 연연하여 떨고 계시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치욕적인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지금 살아남길 바란다면 우리는 돈이 많고, 바다가 있고, 배가 있으니 도망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황제의 자리란 영광스러운 무덤입니다. 저는 어의가 곧 훌륭한 수의라는 옛말을 따르고자 합니다.”이에 힘을 얻은 황제는 벨리사리우스 장군에게 결사대를  이끌고 나가 폭도들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폭동은 곧 진압되었다. 1주일간 계속된 폭동으로 약 3만 명이 학살됐다. 테오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지켜주었다. 제국을 수호했다. 그녀의 결기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휘하 장수들에게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니카 반란을 진압한 후 황제는 난동자들이 불태운 소피아성당을 그의 구상에 따라 웅장한 규모로 재건했다.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아야 소피아 대성당의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대성당의 웅장함에 감동한 황제는 아야 소피아가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성전을 능가한다고 생각해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외쳤다.    테오도라는 황제가 로마제국의 옛 영토를 되찾는 정복사업을 벌여 동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도록 보좌했다. 황제의 주요정책 결정에 조언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녀를 공동황제로 대우했다. 이 놀라운 여성은 남녀평등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고, 특히 여성의 인권 신장에 주력했다. 이런 여러 업적 때문에 동방정교회에서는 그녀를 성녀로 추앙하고 있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2022-01-11

[알뜰정보] '음식의 황제’ 가을 송이 판매 외'

'음식의 황제’ 가을 송이 판매   ‘심마니 장석훈의 천종산삼’에서는 2021년산 송이버섯을 판매하고 있다. 콜로라도 청정지역에서 채취해 소나무 정기와 향이 가득한 100% 자연산 송이버섯이다. 무르익은 짙은 향과 맛도 훌륭하지만 건강에는 더 좋다. 송이버섯에 든 글루칸 성분은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그 외에도 비타민 B 군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체력과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취 시기와 판매 기간이 짧아 더욱 귀한 송이버섯은 LA 코리아타운 갤러리아 2층과 부에나파크 비치와 맬번 홈쇼핑 월드 안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의: (213)388-1234, (562)902-1235     순백자 생활 자기 특선   ‘김스전기’에서는 단아하고 정갈한 한식 상차림을 완성해 줄 순백자 생활 자기 특선을 펼쳐 화제다. 사이즈별 반찬 그릇부터 접시, 서빙 접시, 우동그릇, 수저받침, 젓가락 수저받침, 종지, 초장기 등 다양한 종류가 준비되어 있다. 특히 6.7인치 보쌈김치 그릇, 7.9인치 비빔밥/냉면기, 3.5인치 원형 초장기, 젓가락 수저받침 등 우리만의 식문화가 반영되어 더욱 실용적인 백자 도자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스전기는 LA 올림픽과 마리포사에 위치한다. 영업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의: (213)386-4882, 4883   토닝 패키지 외 연말 세일   ‘클레오파트라’에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연말 특별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맑고 깨끗한 피부를 위한 3000달러 상당의 토닝 패키지를 999달러에 세일한다. 피코 토닝 레이저 1회와 토닝 레이저 4회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또한 피부 겉과 속을 치료해 모공과 흉터를 개선해 주는 2000달러 상당의 픽셀 8 레이저ㆍ아그네스 레이저는 1회 999달러, 3회 2699달러에 만나볼 수 있다. 그 외 화이트닝 패키지와 목주름 치료도 각각 2999달러와 999달러에 세일한다. LA와 롤랜드하이츠에 위치한다. ▶문의: (213)487-5000, (909)595-5005   “면역력을 선물하세요~” 효소가 살아있는 천연꿀만을 제공해온 ‘허니웨이(HONEYWAY)’에서는 오는 30일까지 추수감사절 감사 이벤트를 전개한다. 다양한 선물세트를 도매가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감사 사은품을 증정하며, 100달러 이상 구입 시 미국 무료 배송을 지원한다. 천연생꿀, 생로얄제리, 그린 프로폴리스 등 대표 제품들로 선물세트를 다채롭게 마련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또한 생로얄제리, 그린 프로폴리스, 천연생꿀, 약용생꿀을 각각 3병씩 구입하면 동일한 제품 1병을 추가 증정한다. 웹사이트는 www.honeywayusa.com   ▶문의: (847)668-9700   밀폐용기ㆍ접시 세트 최대 70%   ‘젠(ZEN) 한국 친환경도자기’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60~70% 특별 세일에 돌입했다. 영국의 친환경 디자이너 레이첼 바커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한 메도우플라워 접시 세트, 밀폐용기 세트, 생생용기 세트 등 다양한 제품을 파격가에 제공한다. 211달러 상당의 메도우플라워 2인 홈세트(10피스)는 63.30달러로 언더그레이지 공법이 적용돼 독특한 핸드페인팅 느낌을 선사하다. 또한 젠 한국은 정제된 흙, 불, 물의 원료 배합에 100% 무연유약을 사용해 중금속이나 납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문의: (626)581-0580 17405 East Gale Ave, City of Industry     ‘쏘팔 코사놀’ 1+1 증정   ‘마이코백화점’은 199달러짜리 쏘팔 코사놀 1000mg을 149.99달러에 할인 판매하며 1박스 구입 시 1박스를 공짜로 선물한다. 쏘팔메토 115mg과 옥타코사놀 40mg이 함유되어 있어 식약처 고시 1일 최대 섭취량을 충족해 주는 제품이다. 쏘팔메토는 대서양 해안에서 자생하는 톱 야자수의 열매로 전립선 건강에 도움을 준다. 옥타코사놀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수천 km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에너지원이다. 소맥, 쌀, 사탕수수 등의 배아에서 발견되는 포화 고급 지방족 알코올의 일종으로 건강 증진 및 지구력 증진에 효과가 좋다.   ▶문의: (323)734-1234(LA점), (714)690-1234(부에나파크점) 알뜰정보 음식 황제 판매 기간 토닝 레이저 우동그릇 수저받침

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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