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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황제의 기운으로 우리 가족 '으라차차'

늦더위 후 짧은 가을이 지나가면 언제 더웠냐는 듯 추운 날씨가 찾아온다. 겨울은 온갖 바이러스들과의 싸움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그 핵심은 면역력 증진에 있다. 매 절기마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에 시달린다면?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100환)'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최대 의료 그룹 '차바이오 메디컬 그룹'에서 야심 차게 출시한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에는 최고 품질의 인도네시아 침향이 25.5%나 함유되어 있다. 이 함량은 현재 시중에 나온 침향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침향은 심신을 안정시켜주고 근육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혈액순환, 기침, 가래 완화 등에도 효능이 강력하다. 특히나, 본래원의 침향환은 침향과 궁합이 좋으면서 사포닌이 풍부한 새싹삼, 프리미엄 녹용 등 21가지 전통 원료를 최적의 배합비로 담아내 제품의 퀄리티와 효능을 극대화했다.     또한 고품질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HACCP 인증 제조 시설에서 꼼꼼한 관리를 거쳐 생산되어 믿고 복용할 수 있다.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을 하루 1환만 섭취하면 개운한 아침, 에너지 충전, 면역력 유지, 활성 성분 흡수까지 모두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체력 및 기력 보충, 환절기 건강 관리, 기본적인 건강 증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한편, 미주 중앙일보 50주년을 맞아 '핫딜'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최대의 할인율에 선보이고 있다.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은 오는 9월 22일(일)까지 '1+1' 혜택을 받아 2박스를 159달러 특가에 만나볼 수 있으니 구입을 서두르는 편이 좋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 hotdeal.koreadaily.com핫딜 고귀 황제 우리 가족

2024-09-15

[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황제 폭포를 지나 천사의 빙하로…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

캐나다 록키 마운틴의 크라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제스퍼 국립공원은 밴프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운전거리에 있으며 아름다운 호수와 계곡, 눈 덮인 산맥 등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재스퍼에서 꼭 봐야할 자연 명소 7곳을 알아보자.     1. 아타바스카 폭포(Athabasca Falls) 아타바스카 폭포는 아타바스카 강물이 암반 사이를 요동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로에 인접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폭포는 2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요동치는 급한 물결을 바라보면 저절로 환호성이 터진다.   물 색깔이 여름철에는 흙과 돌가루로 인해 뿌옇지만 겨울에는 연두색 아쿠아마린빛을 발한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따라 약 1시간 정도에 우렁찬 폭포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2. 마운틴 이디스 카벨(Mt. Edith Cavell) 두 번째는 검은 산 전체가 흰 눈으로 빗장 무늬를 머금고 있는 마운틴 이디스 카벨이다. 캐나다 록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마운틴 이디스 카벨은 3368m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만년 빙하를 간직하고 있다.   산 아래까지 도로가 나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주차장에서 약 30분을 올라가면 천사의 빙하(Angel Glacier)로 알려진 빙하계곡과 호수의 멋진 광경을 즐길 수 있다.     원래 이 산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최종적으로 1차 세계대전중 벨기에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하며 연합군 탈출을 도운 영국 간호사 이디스 카벨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그녀는 “구할 수 있는 생명 앞에서 애국심이란 단어는 충분하지 않다”며 전쟁의 참혹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주차장에서 빙하 호수까지는 왕복 5마일이며 경사가 심하지않아 남녀노소가 방문하기에 좋다.     3. 마운틴 롭슨(Mt Robson) 세 번째는 마운틴 롭슨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운틴 롭슨은 재스퍼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여서 재스퍼 방문 중에 하루를 할애해서 산 중턱까지 다녀 올 수 있다.   산 높이가 1만3123피트인 마운틴 롭슨은 절대 쉽게 등반할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정상부근 사진을 보면 히말라야의 최고봉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모습이다.   당일 산행으로는 중간 기착지인 천 개의 폭포 밸리(Valley of the Thousands Falls) 혹은 황제 폭포 (Emperor Fall)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은 산행이다. 촉촉이 젖은 풀숲과 나무숲을 가로 지르는 힐링 트레일을 경험하며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세찬 강물을 건너는 멋진 구름다리도 만나게 된다.   4. 휘슬러 마운틴(Whistler Mountain) 휘슬러 산은 제스퍼 스카이 트램이라고 알려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재스퍼를 둘러선 산봉우리들의 장관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는 곳이다. 아래편으로 우윳빛 아타바스카 강이 흐르고 좌우 측으로 청록색 빛을 발하는 호수들이 곳곳에 박혀있는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휘슬러산은 빼곡한 수림이지만 전망대가 있는 꼭대기는 민둥산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약 1km를 걸어 정상에서면 재스퍼의 비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잊지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5. 밸리 오브 5 레이크스(Valley of 5 Lakes) 밸리 오브 파이브 레이크스는 재스퍼를 통하는 93번 국도변의 다섯 개의 호수를 지칭한다. 호수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할 만큼 진한 에메랄드빛을 발한다. 차디찬 분위기에 속이 훤히 보일 만큼 투명한 물속에 송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오리가 자맥질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특히 3번 호수의 진초록의 물빛을 바라보노라면 보석보다 더욱 화려하고 신비한 빛을 발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5개의 호수를 전부 돌아보는 트레일은 4.5km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적당한 거리에서 되돌아나와도 좋다.   6. 뮬라인 캐년 (Maligne Canyon) 제스퍼에서 동쪽으로 11km거리에 있는 뮬라인 캐년은 인근의 호수에서 지하통로로 흘러온 물이 계곡을 소용돌이치며 적게는 폭 2m에 깊이 50m의 협곡이 형성된 곳이다. 빙하가 녹은 물은 초록색을 띄는데 폭포가 되어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뮬라인(Maligne)이란 프랑스어로 ‘악마’ 혹은 ‘사악한’ 이란 뜻인데 1846년 벨기에 출신 제수잇(Jesuit) 선교사인 피에르 스멧이 이곳 계곡을 고생하며 건넌 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뮬라인 캐년에는 카페테리아 스타일의 식당이 있으며 기념품점에서는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나다산 보석과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놓인 다리 위에서 물길을 보며 상큼한 초록의 나무숲을 돌아 나오는데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뮬라인 캐년은 뮬라인 호수로 가는 길에 방문하면 좋다.   7. 뮬라인 호수 (Maligne Lake) 재스퍼에서 한 시간 운전거리인 뮬라인 호수는 빙하 호수로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총 22km 길이에 평균 수심 35미터를 자랑하는 이 호수를 보는 순간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푸른 호수와 눈 덮인 로키산맥의 조화로운 풍광은 넋을 잃을 정도이다.   뮬라인 호수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호수 중간에 자리한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이다. 조그만 섬에 침엽수들이 빼곡히 서있는 섬을 찍은 사진은 전세계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곳의 섬 사진은 뉴욕 지하철에도 오랫동안 설치되었으며 비싼 보트 요금에도 배를 타고 이곳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스피릿 아일랜드는 이곳에 8000년간 거주했던 스토니 원주민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지금도 원주민들은 매년 이곳에서 그들만의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1908년에 뮬라인 호수를 처음 본 예술가이자 탐험가인 메리 샤퍼는 뮬라인 호수를 루이즈 호수와 비교하면서 루이즈 호수가 진주라면 뮬라인 호수는 진주 목걸이다라고 표현했다.   선착장에는 멋진 식당이 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식사와 음료수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품질 좋은 캐나다 특산물을 파는 기념품점도 있다.     이곳은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이 돋는 때가 많아 여름이라도 옷을 단단히 챙기는 것이 좋다.   이외에 밴프에서 재스퍼 사이를 이동하는 도중 페이토 호수와 보우 호수를 꼭 들러 보면 좋다. 캐나다 록키를 대표하는 호수들로 연초록 물결과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들의 조화가 신비롭다. 두 호수 모두 도로에 인접해 있어서 방문하기에 좋다.   김인호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하였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있다.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국립공원 재스퍼 빙하 호수 재스퍼 방문 황제 폭포

2024-08-22

임윤찬, 두다멜과 ‘베토벤’ 협연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년 만에 다시 LA무대로 돌아온다.     임윤찬은 오는 29일 오후 8시 할리우드 보울에서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자가 이끄는 LA필하모닉과 연주한다.     올해는 베토벤의 웅장한 ‘황제’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으로 심오한 음악 세계로 이끌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8월 할리우드 보울에서 성시연 지휘자가 이끄는 LA필하모닉과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노 3번 협연으로 LA청중의 찬사를 받았다.     올해 19세인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후 국제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신작 최고 연주상, 청중상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준결선에서 선보인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과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연주 영상은 1000만 뷰를 훌쩍 넘었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 최고의 클래식 음악 공연 10선 중 하나로 꼽았다.     클라이번에서 우승한 후 링컨 센터에서 뉴욕 필하모닉, 할리우드 보울에서 LA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루체른 심포니 등과 함께 성공적인 오케스트라 데뷔를 했다.     한국 시흥에서 출생한 임윤찬은 7세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이듬해 예술의전당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음악공부에 몰두했다. 13세 국립예술영재교육원 오디션에 합격했고 12세부터 지도해온 스승이며 멘토인 손민수 한예종 교수를 만났다.     1년 후인 2018년 첫 콩쿠르인 클리블랜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와 쇼팽 특별상을 받으며 국제 음악 무대에 진출했다.     현재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스승인 손민수와 공부하고 있다.     티켓은 17~119달러로 할리우드 보울 웹사이트(hollywoodbowl.com)에서 살 수 있다. 이은영 기자 lee.eunyoung6@koreadaily.com베토벤 황제 라흐마니노프 연주 국제 피아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2024-08-11

[신 영웅전] 유엽의 충고

촉한(蜀漢)의 건흥 4년(서기 230년), 전란에 피로해지고 건강마저 잃은 제갈량이 허술한 틈을 보이자 위나라 대장군 조진(曺眞)이 황제 조예(曺叡)에게 촉을 공략할 것을 아뢰었다. 이에 조예가 장사(長史) 유엽(劉曄)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은 계책이라고 대답했다. 조예가 기뻐하며 그러리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유엽이 대궐을 나오자마자 동료 신하들이 황제가 촉을 치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난감한 유엽은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대신들이 황제를 찾아가 “황제는 촉을 공략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고 유엽은 그런 일이 없다 하니 군신 사이에 어찌 이렇게 말이 다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당황한 황제는 유엽을 불러 “방금 촉을 치기로 나와 약조해 놓고 이제 신하들에게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니 어찌 된 일이오”라고 책망했다. 그러자 유엽이 대답하기를 “지금은 촉을 칠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조예는 그 뜻을 알고 신하를 물리친 다음 다시 촉을 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제야 유엽이 대답하기를 “한 나라를 침공하는 일은 국가의 대사인데 알아야 할 사람이 있고, 몰라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그 중차대한 사실을 저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흘리셨습니까. 무릇 병법은 속임수입니다(夫兵者 詭道也). 그러하오니 주군은 마땅히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크게 후회하며 언행을 조심했다. (『삼국지』 99회)   지금 한국 정치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대통령과 야당 당수가 만나 할 말 못할 말을 나눴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나타나 “우리가 그 자리를 주선했다”고 기자 회견을 했다. 인간의 공명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남자는 모름지기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별짓을 다 보겠다. 이후락의 말처럼 밀사는 입이 없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유엽 충고 황제 조예 위나라 대장군 부병자 궤도

2024-05-19

하루 한 환으로 황제의 기운 팍! 팍!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많아진다. 몸 곳곳이 막혀 순환이 잘 안되기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피로를 달고 살고 기운이 없으니 의욕도 없고 밥맛도 없다. 타고난 체력과 젊음으로 지금껏 건강하게 살았다 해도 이제부터는 빠지는 기력을 채우고 보충해 줘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왕들은 이럴 때 자양강장제로 침향을 처방받았다. 사향, 용연향과 함께 세계 3대 향으로 꼽히는 침향은 찬 기운을 위로 올리고 뜨거운 기운을 아래로 내림으로써 몸 전체의 순환을 원활히 해준다. 또한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동시에 근육을 강화하고 기침이나 가래를 가라앉혀주는 효능도 있다.     '핫딜'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100환)'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중 최고 함량인 인도네시아산 침향 25.5%가 함유돼 있다. 믿을 수 있는 차바이오그룹 CMG 제약회사 제품으로 진귀한 침향과 녹용, 새싹삼(새싹처럼 자란 어린 인삼) 등 21가지 전통 원료를 최적 배합비로 정성껏 담았다. 특히 일반 인삼보다 사포닌이 더욱 풍부한 새싹삼을 통째로 농축해 효능을 집대성했다. 새싹삼은 첨단 기술이 집약된 특허받은 스마트팜에서 깨끗하게 재배해 사용한다.     체력이 급격히 저하됐다면? 기력 보충이 필요하다면? 겨울철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면? 전반적인 건강 증진이 필요하다면? 쌉쌀하면서도 사양벌꿀의 달달한 맛이 스치는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으로 황제의 기운을 충전해 보자. 본래원 침향진환 프리미엄(100환)은 미주 한인 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핫딜'에서 149달러에 무료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핫딜 황제 부모 부모님 선물

2023-10-22

[이 아침에] 1000년 중국 황실 최고의 보물은?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 1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송,원,명,청)의 보물 70만 점 중 사람들이 뽑은 최고 인기 품목이 겨우 요거라고?   육형석과 취옥백채. 어른 손바닥 2/3 크기의 고기 모양 옥돌, 그리고 비취색 옥으로 만든 백채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보물이라고 한다. 이 두 물건이 있는 전시실은 항상 관람객이 빼곡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 마냥.   육형석은 먹음직스러운 동파육처럼 보인다. 송나라 때 문장가 소동파가 만들기 시작했다는 푹 쫄인 돼지고기. 쫀득한 껍질과 밑에 붙은 부드러운 살코기, 대륙의 여유가 느껴지는 요리다. 돌로 돼지 껍질의 질감과 미감까지 만들어 낸 걸작은 걸작이다.     취옥백채. 백채는 배추. 한국에서 보는 통통한 김장용 배추는 아니다. 홀쭉한 복초이 비슷하다. 아래쪽은 하얀색 ,그리고 위쪽은 진초록이다. 하얀 쪽은 줄기, 그리고 초록색 부분은 잎사귀. 잎새에는 여치와 귀뚜라미까지 새겨져 있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 찍어 먹고 싶을 만큼 사실적이다.     육형석은 청나라 황제가 가지고 놀던 물건이라고 한다. 아마도 장난기가 심했던 건륭제가 밤참을 먹고 싶을 때 환관에게 슬쩍 보여주던 것이 아닐까?  중국 시대극을 보면 중국 역사상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명군 강희제나 그의 손자 건륭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취옥백채, 이것은 청나라 말기 슬픈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소품이다. 청나라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 광서제, 그는 황후 이외에 두 명의 비가 있었다. 그 중 한명 근비(瑾妃)가 혼수로 가져온 물건 중의 하나라는 설이 있다. 근비의 역사적 의미는 그것뿐.   광서제가 실제 사랑했던 여인은 진비(珍妃)다. 근비의 배다른 동생이다. 33년을 황제의 자리에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던 광서제는 진비에게 “내가 청나라의 황제인데 너 하나를 못 지키겠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인지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중국의 최고 실권자 서태후는 진비를 우물에 빠뜨려 죽여버린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서태후와 광서제가 베이징을 버리고 서안으로 피난 갈 때 일이다. 광서제를 따라가겠다고 고집하던 진비는 우물 속으로 던져진다. 당시 24살. 지금도 자금성 한 구석에 그 우물과 그 슬픈 기록이 남아있다.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광서제에게는 이모이자, 백모, 그리고 처 고모(광서제가 싫어했던 황후의 고모)도 된다. 서태후는 자기 아들 동치제가 후사가 없이 죽자 자신의 섭정을 연장하기 위해 어린 광서제를 아들로 입양한다. 그리고 광서제의 어머니로서 섭정.  죽을 때까지 50여 년을 중국의 최고 실권자로 군림한다.     서태후 밑에서 광서제는 기를 펴지 못한다. 개화파들과 한 번 중국의 운명을 걸고 서태후에게 대들다가 실패한 후 유폐 생활을 하다가 39세에 독살당한다. 1908년 그가 죽고 이틀 후 서태후도 죽는다. 서태후가 마지막 한 일은 광서제 이복동생의 아들 부의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만든 것이었다. 서태후와 광서가 죽고 3년 만에 청나라가 망한다.   비취백채는 역사의 그 은밀한 현장에 있었다. 그 사연들은 죽은 이의 혼백처럼 다 흩어지고 돌멩이 하나만 후세인들의 호기심대상으로 남아있다. 오늘도 청나라 황실의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를 감상하기 위한 인파가 밀린다. 나도 그중의 하나.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중국 황실 황제 광서제 광서제 이복동생 청나라 황제

2023-10-08

[아메리카 편지] 담나티오 메모리아이

토론토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라이어슨 대학이 지난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는 캐나다의 공립학교 시스템 창립자인 에거튼 라이어슨이 수많은 원주민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사악한 방치로 죽음에 이르게 했던 ‘기숙학교’의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어 토론토 시내 동서를 잇는 23㎞ 길이의 주요 도로 던다스 스트리트도 이름 변경이 결정됐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정치인 헨리 던다스가 노예폐지를 지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역사적인 인물들을 오늘날의 반인종차별 관점으로 재검토하는 일은 ‘취소 문화(Cancel Culture)’의 한 형태다. 개명뿐 아니라 기념물이나 동상 허물기 등의 다양한 양상을 띠는 이 현상은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일도 이와 상통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선례는 고대 로마 시대의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 즉 기록말살 형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죄인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우는 이 망각의 형벌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로마인들에게는 특히 극심한 벌이었고, 칼리귤라·네로·도미티아누스·코모두스 등 특별히 악독한 황제들에게 사후 적용되었다. 황제의 얼굴 조각을 다음 황제의 모습으로 재조각하는 관습은 자원을 재활용하는 로마인들의 실용성도 나타내지만, 전 황제를 지웠다는 의도적인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담나티오 메모리아이의 산물이다. 원래 자리 잡았던 네로 황제의 200㏊ 크기 쾌락궁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을 지은 것이다. 네로의 금빛 거상(Colossus)은 태양신(Sol)으로 변경되어 철거를 모면했다. 한국은 요즘 이와는 반대의 맥락에서 ‘다시 세우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끊임없는 역사의 전변(轉變)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메모리아이 네로 황제 토론토 중심지 토론토 시내

2023-09-01

[신 영웅전] 망국의 황제 니콜라이 2세

1894년 무렵부터 극동의 4개국, 즉 조선(한국)·청나라(중국)·일본·러시아의 국정은 어수선했다. 한반도는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이 잇따라 휩쓸고 가고, 청나라는 배상금에 허덕이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이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1895년 랴오둥반도를 잃자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고, 러시아는 일본을 제압한 호기로움에 허세를 부렸으나 안으로 곪고 있었다.   그 무렵 러시아는 황제 니콜라이 2세가 26세에 등극하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크림전쟁(1853~1856) 이후의 부채와 관료 부패, 황후 표도로브나와 요승(妖僧) 라스푸틴의 스캔들로 안팎이 어수선했다.   그러던 차에 청일전쟁 이후 랴오둥반도 상실로 절치부심하던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육전대(해병)가 뤼순(旅順)에서 대패했지만, 니콜라이 2세는 설마 모스크바까지 쳐들어오겠느냐며 무사태평이었다. 결국 러시아 발트 함대와 흑해 함대가 대마도해협에서 일본군에 전멸했다.   시종장이 패배 전문을 들고 황제 집무실로 허둥대며 달려가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했지만, 황제는 “테니스 끝난 다음에 얘기하자”며 별일 아닌 듯 반응했다. 몇 시간 뒤 초주검이 돼 기다리던 수상 코코프체프가 다시 보고하자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더니 궁실로 들어갔다. “주님의 뜻대로 되겠지.”(바바라 터크먼 『8월의 포성(Guns of August)』)   이러고도 전쟁에 이길 수 있을까. 러일전쟁이 러시아 왕조의 몰락과 소비에트 탄생의 신호였다는 해석은 왕조의 부패와 무관하지 않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는 고염무(顧炎武)의 말이 맞을 수 있지만, 군주가 무능하고 경륜이 없으면 국민의 애국심도 소용이 없다. 국민은 그런 왕을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종(高宗)과 니콜라이 2세는 닮았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니콜라이 망국 황제 니콜라이 니콜라이 2세 보고하자 황제

2023-06-11

오동통 살 오른 ‘보양식 황제’ 장어 ‘힘이 불끈’

보양식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장어다.     팔딱팔딱 힘이 넘치는 장어는 양질의 단백질과 칼슘, EPA, DHA 등의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A, B, E 등이 풍부해 보양식으로서의 기력 회복과 원기 보충, 정력 강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성장발육과 뼈 건강, 기억력 증진, 피로 회복에도 효과적이다. 또 불포화지방산과 토코페롤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있어 나쁜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효과도 있다.     더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6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장어를 맛봐야 할 때다. 미주 한인 커뮤니티 최대 온라인 쇼핑몰 '핫딜'에서 선보이는 'LW 민물장어'는 유독 살집이 두툼하고 쫄깃쫄깃해 추천할만하다.       LW 민물장어는 '손질된 장어'부터 '매운맛 양념장어' '데리야끼맛 양념장어' 등 총 3가지 종류로 준비돼 있다. 맛별로 장만해두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장어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손질된 장어는 BBQ처럼 구워서 상추쌈과 생강을 곁들이면 근사한 한 끼가 뚝딱 완성된다. 매운맛과 데리야끼맛 양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어 소스로 찍어 먹거나 함께 구워 먹는 등 장어의 풍미를 보다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LW 민물장어는 '유럽장어(European Eel, 학명 Anguilla Anguilla)'를 수입 판매한다. 장어는 민물장어와 바닷장어가 있는데, 동양에서 건강을 위해 챙기는 건 민물장어 쪽이다. 민물장어는 대부분의 생애를 민물에서 살다가 성어가 되면 산란을 위해 깊은 바다로 간다. 유럽장어의 경우 깊은 대서양에 가서 알을 낳고,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다시 민물로 돌아온다. 미국 동부와 남부에서 자라는 장어도 대서양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는 민물로 돌아와 성어가 되는 생애를 반복한다.   유럽장어는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CITES'라는 증명서가 없으면 수출입이 안된다. LW 민물장어는 지난 1973년 국제협정된 정식 CITES 서류를 발급받아 미국 세관을 통관한 장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유럽장어를 합법적으로 수입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힘이 불끈 솟아나는 LW 민물장어는 '핫딜'을 통해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다. 특별히 99달러 이상 구입 시 쿨러 가방(16x12x9인치)을 사은품으로 무료 증정하고 있다.     ▶문의:(213)368-2611 ▶상품 살펴보기:hotdeal.koreadaily.com핫딜 보양식 황제 보양식 황제

2023-06-04

[아메리카 편지] 캐나다에도 왕이 있다

지난 6일 전 세계가 처음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영국 왕의 대관식을 지켜보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으리으리한 예식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의미 깊은 이벤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캐나다가 여전히 영국의 왕을 국가원수로 두고 있는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이다. 1982년 ‘캐나다법’이 통과되면서 정치적으로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지만 명목상이라 해도 현 국가원수는 여전히 찰스 3세다.       캐나다가 군주국이라는 사실이 평시에는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20달러 화폐를 장식하는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이제 곧 찰스 3세로 바뀐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상징적인 전통의 힘이 새삼 느껴진다. 캐나다 사람들의 군주제 지지율은 3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021년 카리브해에 있는 영연방 국가 바베이도스가 군주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제로 전환한 뒤로 캐나다에서도 언제 군주제를 벗어버릴 것인지에 관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행 헌법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21세기 최첨단 사회에서 군주제를 고집하고 왕족 세습을 기념하는 어마어마한 대관식을 국민의 세금으로 거행하는 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 먼 옛날 로마시대 황제 계승제도가 훨씬 더 현대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 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는 핏줄과 관계없이 입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리하여 스페인 출신인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죽으면서 다음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입양했는데, 동시에 피우스에게 그다음 대 황제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를 입양하도록 명했다. 핏줄 관계로 이어받은 황제보다 입양으로 계승된 황제들이 대체로 더 어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혈통 하나만으로 대관식이 이어지는 21세기의 광경을 아름답게 쳐다봐야만 할까.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캐나다 캐나다 사람들 군주제 지지율 황제 자리

2023-05-18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고 박희민 목사가 남긴 이야기<1>

미주 한인교계의 거목 박희민 목사가 지난달 26일 눈을 감았다. 〈본지 4월27일자 A-1면〉   박 목사는 한인 사회의 산증인이었다. 지난해 3월 본지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터뷰를 위해 박 목사를 만났었다. 인터뷰가 총 3차례 진행됐지만 더는 진행할 수가 없었다. 박 목사의 건강 문제로 추가 인터뷰 스케줄 일정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박 목사가 남긴 이야기를 서술 방식으로 기록해뒀다. 못다한 그의 이야기를 종교면에 게재한다.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삶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인다.   여동생의 소개로 영국서 간호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김영자)를 만났다. 1967년이었다.     결혼한 그 해 교단으로부터 월남 선교사로 임명받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비자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 당시 교단 선교위원장으로 있던 한경직 목사가 갑자기 보자고 했다. 선교 때문에 아프리카를 둘러보고 왔던 한 목사가 "에티오피아로 선교지를 변경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교단의 최고 어르신의 권유이니 군말 않고 마음을 바꿨다. 다시 1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공교롭게도 에티오피아 황제의 손녀 소피아 공주가 한국을 방문(1968년 2월)했다. 소피아 공주는 당시 서울영락교회에서 예배도 드렸다.   에티오피아와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해 서울영락교회에서 선교 파송 예배를 드렸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한 살 되던 아들을 안은 채 에티오피아 땅으로 떠났다.     그 당시 한인으로서는 최초의 에티오피아 선교사가 됐다. 막상 가보니 너무나 척박한 땅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고난은 선교사에게 숙명 아닌가. 복음 전파 사역과 구제에만 힘썼다.     에티오피아에서 둘째(딸)를 낳았다.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젖먹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두 아이 모두 풍토병에 걸렸다. 치료약도 없었다. 의료 시설조차 없었다.   두 아이들의 몸에서 자꾸만 진물이 나왔다. 너무 가려우니까 자꾸만 몸을 긁었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몸을 긁지 못하도록 아이들의 손을 붕대로 감아 놓았다.   사명이 있었기에 나는 견딜 수 있었지만 젖먹이 아이들은 도저히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형(박희성 목사)이 뉴욕에서 개척 교회를 준비중이었다. 일단 아내가 아이들(1살ㆍ3살)의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971년 6월의 일이다.   일단 나는 에티오피아에 남아 사역을 감당했다. 아내는 형님댁에 머무르며 아이들 치료에만 전념했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느정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잠시 가족을 보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사이 아내는 아이들을 키우며 전공을 살려 뉴욕 한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했다. 벌이가 생기니 기본적인 생활은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들도 풍토병에서 조금씩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미국에 간 김에 놀고 싶지는 않았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그때 에티오피아에서 일이 터졌다. 1974년 공산화로 인해 선교의 문이 닫혔다.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국에 눌러앉게 됐다. 다시 한번 삶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은 뒤 하나님이 어떠한 길로 인도하실지 기다리고 있던 중 청빙 제의를 받았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였다.   그 당시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분쟁으로 인해 갈라져나온 교회였다. 아픔을 안고 있던 교회였다. 청빙을 승낙하기에 앞서 고민과 갈등이 이어졌다. 아내가 간호사로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이도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개척교회를 하는 형님을 돕고 있었다. 주변 동료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만류했다.     그 상황에서 거듭된 청빙 제의를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목사는 결국 목회를 해야 한다. 그쪽에서 제시한 사례비는 미국에서 버는 것보다 적었다.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버려야 했지만 결국 소명이라고 받아들였다. 내가 결정을 하니 아내도 주저하지 않고 병원에 사표를 냈다.   미국에서 자리 좀 잡아가나 싶었는데 하나님은 다시 한번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하셨다. 1974년 7월에 그렇게 토론토로 향했다.   당시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목사 반대파 교인들이 따로 나와 만든 공동체였다. 때문에 목회자에 대한 쓰라린 감정을 갖고 있던 교인이 많았다. 그러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간다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교인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목사에 대해 교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바꾸려고 했다. 교회에서 사택을 마련하라고 준 돈도 받지 않았다. 그 돈을 다 장학금으로 내놨다.     매일 각 가정을 만났다. 그때 이민목회는 이민자의 삶을 공감하고 같이 삶을 걷는 게 전부였다.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들어줬다. 교인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고 함께 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관계가 형성되자 목회자에 대한 이미지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교인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   목회자로서 훈련도 많이 받았다. 목회와 학업을 병행하며 토론토대학에서 박사 학위(1982년)도 받고 녹스신학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학생들도 가르쳤다. 잠시 안식년을 이용해 하버드대학에서 '메릴 펠로우(merrill fellow)'로 신학을 연구했다.     나는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서의 사역을 회상하면 늘 '정말 재미나게 목회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즐거웠다.   목회가 즐거워지니까 자연스레 열매가 맺어졌다. 토론토한인장로교회는 어느새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이제는 안주할만도 했는데 그 지점에서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나와 교회를 위해 변화를 요구하시는 것 같았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계획 인생 에티오피아 선교사 에티오피아 황제 그해 서울영락교회

2023-05-08

[열린광장]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3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정의로움을 한 해의 봄날처럼,  하루의 아침처럼 하늘에서 하신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룩하시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 이름난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이 읊은 ‘3월 찬가’ 의 한 구절이다. 3월은 한 해의 세 번 째 달이지만 첫 번째 계절인 봄의 첫 번 째 달이다.   3월은 로마 달력으로는 ‘마르티우스’라고 불렸으며 달력의 첫 번째 달이었다. 그런데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B.C. 46 년에 로마의 신을 뜻하는 야누스라고 부르는 달을 한 해의 첫 번째 달로 삼으면서 3월은 세 번째 달이 되고 말았지만 이 3월은 ‘로마 전쟁의 신’ 으로 추앙받는 그런 이름이었다.   3월에 연방 공휴일은 없지만 주마다 특별한 기념일이 있다. 네브래스카 주민들은 3월 1일을 주 승인 축하 일로 기념하고 있고, 텍사스주는 3월 2일을 멕시코로부터의 독립 축하 날로 삼고 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주민들은 1681년에 대헌장을 받은 ‘윌리엄 펜’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월과 관련된 미신 같은 통설이다. 즉, ‘3월은 사자처럼 다가와 어린양처럼 사라진다(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와 같은 것이다. 초기엔 춥지만 나중엔 따뜻해지는 3월의 특성을 말한 것이다.     이제  3월에 태어나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살펴보자. 미국인 조각가 에이 세인트 가우던스가 1848년 3월 1일에 태어났다. 세인트 가우던스는 여러 장군들의 동상을 조각했는데 그 가운데 현재 뉴욕시 센트럴 공원 입구에 있는 윌리엄 테쿰셔 숼만 장군 동상은 미국이 자랑하는 조각품이다.   미술가 미켈란젤로는 1475 년 3월 6일에 이탈리아에서 출생했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가 바티칸 궁전 안에 있는 시스틴 성당의 천정에 색칠하는 일을 맡기면서 유명 화가가 됐다. 그의 작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피에타(예수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다.      프랑스 음악가 마우리스 라벨은 1875 년 3월 7일 태어났다. 라벨은 다양한 음률과 정확한 음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프랑스 작곡가인 드비시와 함께 인상파 예술가로 불린다. 라벨이 세계 1차대전 뒤에 작곡한 교향악곡 ‘라 발스’ 와 ‘볼레로’ 는 매우 이름난 곡이다.       그리고 물리학자 게오르그 시몬 오움이 1787 년 3얼 16일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오움은 ‘기전력’과 전류와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설정한 ‘오움 법칙’의 물리학자다.  전기학자들은 오움의 법칙을 이용하여 전기회로를 측정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가 페이츠릭 헨리가 1736 년 3월 23일 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이름난 연설가로 알려진 그가 버지니아주 의사당에서 외친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이란 연설이 아주 유명하다. 헨리는 미국 독립 전쟁때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었으며 나중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추천으로 주의회 회원으로 출마하면서 “뭉치면 살지만,  헤어지면 우린 망합니다(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라는 멋진 연설을 하기도 했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계절 시작 로마 달력 미술가 미켈란젤로 로마 황제

2023-03-03

마켓에서 판매하지 않는 삼겹살의 황제 '버크셔' 돼지고기

한국인과 삼겹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삼겹살과 소주 없는 대한민국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삼겹살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토종 음식이다. 퇴근길 골목을 장식하는 구운 삼겹살이 내뿜는 연기와 냄새는 하루 동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주는 어퍼컷이다.     삼겹살은 요란한  갖은 양념도 필요 없다. 소금만 있으면 된다. 소주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술이라도 삼겹살은 거부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삼겹살은 더 댕긴다. 비좁은 사이사이 원형 드럼통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음을 듣노라면 어느 새 세상만사는 잊혀진다. 삼겹살은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굽기 편하고 먹기가 쉽다. 가성비 갑의 품질은 이 세상에서 따라올 음식이 없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어차피 국내산 돼지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 영국산 돼지 버크셔는 육즙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구는 흑돼지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붉은 색을 나타내며 달큰한 맛을 낸다. 피부와 털이 검은 것이 특징이며 코끝,다리끝,꼬리끝은 흰색을 지니고 있다. 생긴 것이 요크셔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이 조금 낮게 치켜올려져 있다. 뭐니뭐니해도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게다가 마블링이 적절히 붙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버크셔 돼지고기가 비싼 이유는 한 배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일반농장에서는 키우지 않는 특별한 돼지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황제 '버크셔 삼겹살'로 오늘은 통구이와 수육에 빠져보면 어떨까? 버크셔 흑돼지 2파운드는 $34.99이며 미 전국 배송으로 타주에서도 맛 볼 수 있다.   ▶문의: (213)368-2611   hotdeal.koreadaily.com 돼지고기 삼겹살 버크셔 돼지고기 황제 버크셔 버크셔 흑돼지

2022-12-25

마켓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삼겹살의 황제 '버크셔' 돼지고기

   한국인과 삼겹살은 뗄 내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삼겹살과 소주 없는 대한민국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삼겹살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토종 음식이다.    퇴근길 골목을 장식하는 구운 삼겹살이 내뿜는 연기와 냄새는 하루 동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주는 어퍼컷이다. 삼겹살은 요란한  갖은 양념도 필요 없다. 소금만 있으면 된다.    소주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술이라도 삼겹살은 거부한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삼겹살은 더 댕긴다. 비좁은 사이사이 원형 드럼통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지글지글 굽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음을 듣노라면 어느 새 세상만사는 잊혀진다. 삼겹살은 계절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굽기 편하고 먹기가 쉽다. 가성비 갑의 품질은 이 세상에서 따라올 음식이 없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어차피 국내산 돼지 삼겹살을 먹을 수 없다. 영국산 돼지 버크셔는 육즙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구는 흑돼지다. 일반 돼지고기보다 붉은 색을 나타내며 달큰한 맛을 낸다.    피부와 털이 검은 것이 특징이며 코끝,다리끝,꼬리끝은 흰색을 지니고 있다. 생긴 것이 요크셔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이 조금 낮게 치켜올려져 있다. 뭐니뭐니해도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게다가 마블링이 적절히 붙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버크셔 돼지고기가 비싼 이유는 한 배에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일반농장에서는 키우지 않는 특별한 돼지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의 황제 ‘버크셔 삼겹살’로 오늘은 통구이와 수육에 빠져보면 어떨까? 버크셔 흑돼지 2파운드는 $34.99이며 미 전국 배송으로 타주에서도 맛 볼 수 있다. 핫딜에서 결제한 후 영수증을 지참하고  LA한인타운 웨스턴과 베벌리의 김선영 미용실 몰 내 오모나 BBQ 매장에서 직접 픽업할 수도 있다.     ▶버크셔 흑돼지 삼겹살 구매 바로하기 ▶문의 : 213)368-2611 hotdeal.koreadily.com      돼지고기 버크셔 버크셔 돼지고기 버크셔 삼겹살 황제 버크셔

2022-12-20

[삶의 뜨락에서] 대리만족

우리는 우리의 울분과 우울함을 대리만족으로 보상받곤 합니다. 수퍼맨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세상의 악한들을 물리쳐 줄 때 우리는 마음이 시원해지고 영화에서 힘없는 사람을 학대하던 악한의 무리를 물리치고 응징해주는 정의한을 보고 우리는 손뼉을 칩니다. 황야의 7인에서 연약하고 순박한 농민들을 학대하는 마적단의 무리를 물리치고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손뼉을 치고 동네의 사람을 못살게 굴며 약탈하던 악한들을 물리치고 석양의 해를 등에 지고 떠나는 셰인의 앨런 래드를 보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의 영화는 권선징악의 영화였습니다. 가난한 어린 소녀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생하면서 공부하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고 온갖 고난을 물리치며 재벌의 아들과 결혼한다는 신데렐라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쌓인 우울함을 달래줍니다.   우리는 유영철 같은 살인마가 경찰에 잡혀 재판받고 무기징역이라는 형이 내렸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며 사회의 권선징악의 정의를 보며 시원해합니다. 우리는 국제 축구대회에서 손흥민이 볼을 몰고 가다가 골문 안에 공을 꽂아 넣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십년 묵은 체증이 확 풀려나갔다고 합니다. 야구장에서 점수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 타자가 친 흰 공이 푸른 하늘에 날아가 담장을 넘을 때 우리는 손뼉을 칩니다. 우리는 신문에 실린 논설이나 칼럼을 보면서 우리가 정부나 사회에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주는 글을 읽으면서 “어 시원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대리만족이라고 합니다. 아마 이런 대리만족을 누리는 것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독재국가에서는 마음대로 영화를 볼 수도 없고 마음대로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으며 마음대로 정부에서 금하는 금서를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정부의 시책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복종하고 지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리만족은 보편 타당성이 있는 즉, 누가 어디에서 보나 한결같이 공감하는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300명의 국회의원을 위하여 우리의 세금을 수천억을 쓴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비싼 세금을 쓰면서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을 알리고 정부의 횡포를 견제하고 우리가 못하는 일들, 우리가 못하는 말들을 하라는 대리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갑질을 하고 국민에게 오만하게 군림하고 몰려다니면서 패싸움을 하라고 뽑아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이런 대리만족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문은 우리가 알고 싶은 이야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권력에 추종하는 기사만을 내보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진군하자 파리의 신문들이 처음에는 ‘살인귀 엘바 섬을 탈출하다’라고 했다가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까이 오자 ‘나폴레옹 장군 파리로 진격하다’라고 하고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나폴레옹 황제, 파리에 입성하시라’고 하여 신문이 카멜레온처럼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느 정권에나 신문은 정부 편이었습니다.     성경에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길가에 갖다 버린 바 되리라고 한 것처럼 고추가 매운맛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올바른 비판 올바른 충고를 하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우리에게 시원한 대리만족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대리만족 나폴레옹 황제 나폴레옹 장군 자유민주주의 국가

2022-10-14

장엄하여라 우국의 황혼이여

장엄하여라 우국의 황혼이여 /  김건흡 MDC시니어센터회원 / 8월이 가고 있다. 15일은 광복절이다. 무엇으로부터 광복인가. 일본 압제로부터 해방이다. 8월 29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국치일이다. 8월이 오면, 광복절은 생각하지만, 국치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부끄럽기 때문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먼지를 털고 국치일을 역사의 창고에서 불러내야 한다. 와신상담. 1년에 한 번이라도 쓰디쓴 쓸개를 꺼내어 핥아 보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된 도리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정미 7조약으로 내정감독권을 뺏은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계획을 치밀하게 추진했다. 1910년 7월 23일 신임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총리대신 이완용은 한일합방에 관한 협의를 시작했다. 8월 16일 데라우치 통감은 이완용에게 합방조약안을 내밀고 수락을 독촉했다. 이틀 후 각의가 열리고 22일에는 어전회의가 열렸다. 그날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합방조약에 조인했다. 일주일 후 마지막 황제 순종은 대한제국과 일본의 합방조약을 발표했다. 그날 한국 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양여할 것을 규정한 합방조약에 따라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한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때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1910년 8월 22일) “오후 4시, 한국 합병의 조약을 통감 관저에서 조인하여 마쳤다. 합병문제는 이와 같이 용이하게 조인을 끝냈다. 하하하!”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작성해온 을사늑약은 4개조 뿐이었다. 조약안을 내밀자 고종은 대신들에게 떠넘겼고, 대신들은 황실의 안녕을 보장하는 조항을 넣자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리에서 제 5조에 “일본은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 유지를 보증한다”는 내용을 써넣었다. 주권을 빼앗겨도 황실만 보호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병합조약도 마찬가지다. 8개 조 중 제1조와 2조는 한국 황제는 한국에 관한 통치권을 양여한다는 것과 일본 황제는 양여를 수락한다는 내용이고, 제 8조는 공포일로부터 시행된다는 조항이다. 나머지 5개 조항은 무엇 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즉, 황제 태황제 황태자를 비롯한 황실과 황족, 그리고 공훈이 있는 자 등에게 그 직위에 맞는 대우와 세비 및 은사금 지급 등을 약속한 내용이다. 일제는 약속을 지켰다. 순종 황제는 왕으로, 고종은 이태왕(李太王)으로 봉해졌고, 황실을 비롯하여 전현직 대신들 76명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은사금도 지급했다. 이들 중 2명만 작위를 거부했고, 6명은 후에 반납했다. 나머지는 귀족 신분으로 살았다. 또 나라가 망하기 3일 전인 1910년 8월 26일, 순종 황제는 이완용과 궁내부대신 민병석에게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수여했다. 또 황후 윤 씨는 황실 및 종친, 이완용의 부인 등 40여명에게 서봉훈장을 수여했다. 500년 사직이 망하는 마지막 순간, 군주와 대신들은 나라를 넘겨준 공로로 훈장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날 이후 망국의 치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적지 않았다. 죽음은 흔히 치열한 절망 쯤으로 치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오히려 목숨과 자기표현을 맞바꾼 장엄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항거든 분노든 그것은 영혼을 위해 육체를 버리는 일인 까닭이다. “나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다만 국가나 선비를 기른지 500년이 되어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난국에 죽지 않는다면 오히려 애통하지 않겠는가.”9월 10일 전남 구례에서 망국의 소식을 접한 한 유생이 유서와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아편덩이를 삼켜 목숨을 끊었다. 한말의 대시인 매천(梅天) 황현(黃玹)이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기 전에 성찰한 것은 지식인의 삶이었다. 절명시는 모든 글 중에서 가장 비장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라고 말할 만하다. “이 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되기는 어렵기만 하다”는 마지막 구절은 나라가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에 부딪친 지식인의 아픔과 고뇌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실존적 결단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확신을 전제로 하지만, 그 행위의 결과가 특정한 성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불분명한 결과를 위해 존재의 전부를 버리는 고독한 선택이다. 따라서 자정(自靖)이란 그 방식이 어떠하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독을 삼키든 곡기를 끊든 어떤 방법도 더 가볍거나 수월하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지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려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 바쳐 싸운 이들도 있었다. 일반 백성이었다. 이들은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항전했다. 무기는 기껏해야 화승총이나 사냥총이었다. 이들은 근대식 무기를 가진 일본군과 싸워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일제와 싸웠고, 수만 명이 죽었다. 조선이, 아니 대한제국이 왕의 나라라면 마땅히 임금과 그 일가가 망국의 책임과 죄업을 져야 할 것이로되 이 씨 성의 왕족 중에 스스로 책임을 다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을사년(1905) 이래 경술년을 지나면서 선비 등 많은 분들이 스스로 왕토에 사는 신민의 도리를 다했다.   “아! 이제 조선은 명실상부하게 멸망했다. 다시는 문자가 없고, 다시는 군주가 없고, 다시는 정부가 없고, 다시는 민족이 없고 거꾸러진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만 남게 되었다.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눈물의 주인공은 조선 백성이 아니다. 눈물은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파의 지도자였던 량치차오(梁啓超)의 뺨에 흘렀다. 량치차오는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로서 무술변법운동을 주도했으며, 신해혁명과 5·4운동 등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신채호 박은식 등 조선의 애국계몽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왜 남의 나라 일에 눈물까지 흘리며 애통해했을까. 이 눈물은 순수한 의미의 동정이 아니다. 실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을 일본에 빼앗긴 데 대한 상실감이 더 짙게 배어있다. 량치차오에게 조선은 서구와의 대비 속에서 중국을 비춰볼 수 있는 특별한 타자로서 미래 중국의 모습일 수도 있는 존재였다. 당시 중국이 위기를 겪으면서 자칫 조선과 같은 비극적인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인식하에 조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는 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망국 보고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괴롭다. 조선에 대한 청나라 최고 지식인의 비뚤어진 인식을 대하는 것이 분통하고, 일제 제국주의의 호구(虎口)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우리 선조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는 것이 화가 난다. 량치차오는 조선이 안으로부터 무너져내려 망했다고 진단한다.   조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 가던 그가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인물은 독립운동가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1910년 한일합방 때 국치의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금산군수 홍범식에 대해서는 긍정을 넘어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무릇 조선 사람 1000만 명 중에서 안중근 같은 이가 또한 한둘쯤 없지는 않았다. 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유의 사람은 본래 1억 명 중에서 한둘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한두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사회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대체로 조선 사회에서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결하고 자애하는 자는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고 말한다.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인은 위기에 뭉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렇다. 하지만 구한말 위기에서는 뭉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라를 잃었다. 당파적 분열이 임계점을 넘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조선의 멸망으로부터 고작 1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이 과오를 반복하려 드는 것일까. 우리 시대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8월이 지나간다. 광복절 다음에 국치일이 온다. 금년 8월은 광복절과 국치일을 한 번씩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김지민 기자우국 황혼 한국 황제 한국 황실 데라우치 통감

2022-08-17

[이경제 황제 침향단] 왕들의 자양강장제 '황제 침향단' '침향진액' 출시

'향 중의 왕'이 침향(枕香)이다. 침향은 침향나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천연으로 분비된 수지(진액)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덩어리다. 열대지역에서 주로 자라는데 한 그루당 5~7Kg 정도의 소량만 채취가 가능한 귀한 원료이며 공진단을 만들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주요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침향은 혈액순환 개선 신장 기능 개선 체력 회복 및 피로 개선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조선 왕실에서도 왕의 기력을 회복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약에 침향을 썼다.     이 가운데 ''ALB(All Live Best)''에서는 침향(10%)과 녹용(10%) 홍삼(7%) 당귀(6.9%) 산수유(7%) 자연산 아카시아 벌꿀 등 20가지 전통 원료를 황금 배합한 ''이경제 황제 침향단''을 출시해 화제다.       이경제 황제 침향단은 왕이 사랑한 고품격 보약 침향과 더불어 귀한 자양강장제인 녹용과 홍삼이 신경세포 분화 촉진 면역력 강화 근력과 관절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한 갱년기 퇴치에 좋은 산수유가 신장 기능 향상 소변 전립선 장애 개선을 당귀 성분이 심혈관 수족 저림 냉증 혈액순환을 개선해 준다. 그 외 치매 예방 신경세포 감소 억제 혈관 내피 보호 체내 혈당 수치 감소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   ALB 이경훈 이사는 "황제 침향단은 공진단보다 훨씬 효능이 뛰어난 건강 보조제로 예방을 넘어 증상의 치유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제품이다. 하루에 침향단 한 개와 침향진액 한 포를 한 달만 복용해도 확실한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손발이 저리신 분 전립선 장애 및 생리가 불순한 분 평소 온몸에 쥐가 자주 나는 분 치매가 걱정인 분 면역력 강화를 필요로 하는 분 만성피로로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분들께 황제 침향단을 강력 추천한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황제 침향단과 함께 선보이는 ''이경제 황제 침향신로진액''은 개선 예방 차원의 제품으로 녹용단과 함께 복용하면 녹용과 홍삼의 피로개선 체력 회복 면역력 증강 효과에 혈액순환 개선 효과까지 더해 손발의 저림이나 마비 현상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단 침향은 10% 이상 복용 시 체질에 따라 장의 손상이나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 이사는 "시중에 녹용 홍삼 함유량이 거의 없이 침향 15%~20%가 넘는 제품들을 저가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 경우 건강을 해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경제 황제 침향단과 침향신로진액은 FDA USDA USID의 승인을 받아 더욱 믿을 수 있다.     ▶문의: (213)666-2211(LA)             (714)676-5558(부에나파크)   ▶웹사이트: www.alllivebest.com업계 이경제 침향단 이경제 황제

2022-07-07

[살며 생각하며] 바람의 황제 알바트로스

나, 동식물에 완전 약하다. 자연 시간에 잤다. 어려선 모든 과일과 채소는 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줄 알았었다. 고등학교 때, 한 번은 생물 시간에 열심히 시를 쓰다, 선생님이 내 옆에 와 보고 계시는 줄도 몰랐다. 그 결과 남은 시간 서서 수업을 받았어야 했는데,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지금은 뉴저지 살고 계시는 내 칼럼 왕팬이시다, 훗훗. 북클럽에서 책을 읽을 때도, 자연을 묘사하는 부분만 나오면 나의 설명이 엄청 엄벙덤벙해지고 잽싸게 지나가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설교 시간에 본,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영상은 이런 나의 머리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알바트로스는 활짝 펴면 2~3미터 되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날 수 있는 새 중 가장 큰 새이다. 물갈퀴 달린 작은 발 때문에 뒤뚱뒤뚱 걷고 손쉽게 잡히기도 해 바보새라고도 불리는 이 알바트로스가 사실은 활공의 명수다. 두 달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세계 일주를 하는 우리 알바트로스씨, 하루에 거의 1000km까지도 날 수 있다니! 이건 서울-부산 왕복하고 다시 부산 가는 거리다. 심지어 오륙년, 혹은 십년까지도 땅을 밟지 않고 날 수 있다는 놀라운 비행의 황제다.     새 중에 가장 무겁고 덩치 큰 알바트로스가 이렇게 오래 멀리 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려면 아마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수시로 멈춰서 고등어를 몇 마리씩 잡아먹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자연 시간에 잔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안하고도 바람을 이용하여 난다. 폭풍이 와, 모든 새가 바람을 피해 숨을 때, 알바트로스의 활공이 시작된다. 알바트로스는 이 때, 날기 위해 바람에 맞서 절벽에 선다. 날개를 펼치고 바람에 몸을 던진다. 이 때야말로 유일하게 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다루는 능력으로, 이렇게 날개를 펼치기만 한 채로 기류를 타는 알바트로스, 6일까지도 날갯짓 하나 없이 쭈욱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수시로 변하는 기류의 부양력이 떨어지면, 고도(위치 에너지)를 낮추어 운동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 이유는 물리 시간에도 자서 이해 못함 - 다음 상승 기류를 기다린다. 해수면에서는 풍속이 느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빠른 것과, 바람층의 두께까지 잘 알고 있는 그는, 하강기류를 이용하여 다시 상승기류를 타는 바람의 황제다.   바람도 싫고, 절벽도 싫고, 산도 무서운 - 뱀과 송충이와 지렁이 때문에 - 도시의 여자인 내게도 바람은 불었고 때때로 절벽도 마주해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아직 불지도 않는 미래의 바람까지 예상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다 알게 된, 바람을 오히려 이용해 의연히 날아오르는 이 분, 기류가 약해져도 겁먹지 않고 하강/상승 기류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이 분, 어떤 기류를 타도 기초 심박수가 일정하다는 이 분, 바람이 안 부는 동안에는 육지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줄 아는, 이 멋진 알바트로스씨를 아주 많이 닮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살아갈수록 모든 크고 작은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절실함을 느낀다. 에고, 바람이 안 부는 동안도 쉴 줄 몰라 헉헉 대고, 바람이 불면 피하기 급급해 퍼덕퍼덕 날갯짓을 하는 이 새 가슴의 소유자인 나, 언젠가 갈라파고스에 가서 바람의 황제 알바트로스를 만나보는 꿈을 꾸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알바트로스 황제 황제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 6일 상승 기류

2022-07-06

[이 아침에] 달마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한 사내가 이국 땅 낯선 산 바위 앞에 앉아 있다. ‘바위를 등지고’가 아니고 ‘바위를 바라보며.’ 햇빛, 달빛, 먹구름, 흰구름, 봄 바람, 여름 폭풍, 소나기, 눈보라… 대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9년 세월을 보낸다.     달마 대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기 500년 무렵 중국에 왔다.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셋째 왕자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타밀 나두의 칸치 출신. 인도양을 건너 말라카 해협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광조우에 상륙한다.     달마는 불교에 출가한 스님, 올바른 불법을 중국에 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나온 길이다. 당시 불교는 이미 중국에 번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유목민 중심의 북조와 그들에게 밀려 내려온 한족 중심의 남조로 나뉘어져 여러 왕조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달마가 도착한 광조우는 남조 양나라의 국제 무역항.   이때 양나라의 황제 무제는 ‘보살 황제’로 불릴 만큼 독실한 불자였다. 불사를 크게 일으켜 많은 절을 지었고, 자신이 세운 동태사의 노비가 되어, 나라로 하여금 비싼 시주를 하고 황제를 다시 찾아오게 하는 식으로 재물 보시를 많이 했다. 서기 527년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다. 황제는 자신의 불사 공덕의 가치를 묻는다. 달마는 “무(無),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머쓱해진 양무제가 달마 대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의 대답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질문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달마가 답한다. “불식(不識), 모르겠소.”   중국 최초의 선문답이다. 달마는 그 길로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서, 낙양 근처의 숭산에 자리를 잡고 면벽 9년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일대조가 된다. 육대조 혜능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법맥을 이은 역대 조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 월남에 새로운 불교 선의 바람을 크게 일으킨다.     달마는 또한 소림사 권법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오뚝이 다루마 인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녹차의 원조라는 전설도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 눈꺼풀. 달마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뜯어 던지니 그 자리에서 차 나무가 자랐다고.     향수는 떠나온 그 곳, 지나간 그 일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출가를 하고 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달마 대사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달마는 생전에 추앙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스님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죽어 묻혔다. 그런데 그 달마가 지팡이 끝에 짚신 한 짝을 달아매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달마의 몸은 없고 짚신 한 짝만 덜렁 남아 있더란다.     “내가 중국에 남겨 놓은 역사적 업적은 딱 짚신 한 짝.” 달마다운 무언의 설법. 조사는 향수마저 버려야 된다는 생각도 버린 대 자유인 달마의 귀향.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달마 고향 달마 대사 자유인 달마 황제 무제

2022-06-26

[이 아침에] 달마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한 사내가 이국 땅 낯선 산 바위 앞에 앉아 있다. ‘바위를 등지고’가 아니고 ‘바위를 바라보며.’ 햇빛, 달빛, 먹구름, 흰구름, 봄 바람, 여름 폭풍, 소나기, 눈보라… 대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그냥 그를 스쳐 지나간다. 가끔씩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9년 세월을 보낸다.     달마 대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기 500년 무렵 중국에 왔다.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셋째 왕자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타밀 나두의 칸치 출신. 인도양을 건너 말라카 해협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광조우에 상륙한다.     달마는 불교에 출가한 스님, 올바른 불법을 중국에 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나온 길이다. 당시 불교는 이미 중국에 번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유목민 중심의 북조와 그들에게 밀려 내려온 한족 중심의 남조로 나뉘어져 여러 왕조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달마가 도착한 광조우는 남조 양나라의 국제 무역항.   이때 양나라의 황제 무제는 ‘보살 황제’로 불릴 만큼 독실한 불자였다. 불사를 크게 일으켜 많은 절을 지었고, 자신이 세운 동태사의 노비가 되어, 나라로 하여금 비싼 시주를 하고 황제를 다시 찾아오게 하는 식으로 재물 보시를 많이 했다. 서기 527년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다. 황제는 자신의 불사 공덕의 가치를 묻는다. 달마는 “무(無),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머쓱해진 양무제가 달마 대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의 대답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황제의 마지막 질문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는 누구냐?” 달마가 답한다. “불식(不識), 모르겠소.”   중국 최초의 선문답이다. 달마는 그 길로 갈대 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서, 낙양 근처의 숭산에 자리를 잡고 면벽 9년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 달마는 그렇게 중국 선종의 일대조가 된다. 육대조 혜능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법맥을 이은 역대 조사들이 중국, 한국, 일본, 월남에 새로운 불교 선의 바람을 크게 일으킨다.     달마는 또한 소림사 권법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오뚝이 다루마 인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녹차의 원조라는 전설도 있다. 세상에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 눈꺼풀. 달마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뜯어 던지니 그 자리에서 차 나무가 자랐다고.     향수는 떠나온 그 곳, 지나간 그 일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지금 여기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출가를 하고 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달마 대사도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달마는 생전에 추앙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가 다른 스님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그렇게 중국에서 죽어 묻혔다. 그런데 그 달마가 지팡이 끝에 짚신 한 짝을 달아매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달마의 몸은 없고 짚신 한 짝만 덜렁 남아 있더란다.     “내가 중국에 남겨 놓은 역사적 업적은 딱 짚신 한 짝.” 달마다운 무언의 설법. 조사는 향수마저 버려야 된다는 생각도 버린 대 자유인 달마의 귀향.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이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달마 고향 달마 대사 자유인 달마 황제 무제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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