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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올해는 한국과 미국이 역사성을 지닌 뜻 있는 해다.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윤석열의 대미외교’에 국민 시선이 쏠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유’를 선택한 윤 대통령의 국제외교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당당함이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과 2023년의 윤석열 대통령 연설의 키워드는 ‘자유’였다. 자유란 쉽게 얻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자유에는 피를 먹고 자라는 섬뜩함이 있고, 자유란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 끊임없는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외교(外交)’로 빛나는 시대다. 외교가 전략이라면 국격(國格)에 걸맞은 외교활동은 지도자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1940년대 열악한 국제환경을 딛고 건국한 나라다. 독립에서 건국에 이르는 건국 지도자 이승만 외교는 국제환경에 걸맞은 ‘전략외교’로 점철되어 있다.   “외교정책(外交政策)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생존(生存)과 국가안보(國家安保)다…대표적인 수단이 동맹(同盟)이다!” 신현실주의(New-realism) 이론가인 국제 정치학자인 케네스월츠 박사의 주장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잘 모르고 있다. 건국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왜일까?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하여 아는 게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왕의 나라를 백성에게 돌려준 공(功)이 있다. 더 소중한 일은 그가 공산주의의 대척점에서 자유를 신봉하며 ‘자유민주주의 뿌리’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1954년 미국의 국빈 방문(State Visit) 때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이 워싱턴 정치인들을 향하여 ‘워싱턴 겁쟁이들(Cold feet)’이라며 일갈(一喝)했다. 자유(Freedom)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의 반공주의(反共主義), 멸공(滅共)에의 의지를 미국에 던지는 경구(警句)이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현재도 이승만을 ‘아시아의 반공 지도자’로 인식한다. 1923년 그가 설파한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메시지로 통한다.   이승만 외교의 분수령은 무엇보다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의 변화였다. 문명사적인 대전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동맹문화라는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대미외교는 ‘대등한 외교’가 축(軸)을 이뤘으며, ‘한미동맹’의 주역은 이승만이었다. 약소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미국 측을 설득하며, 움츠러들거나 물러섬 없이 담대한 전략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1953년 휴전 반대를 선언하며 북진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은 자유를 쟁취하려는 몸부림이면서 한미동맹을 견인하는 지렛대로 작용했다. 미국이 ‘눈엣가시’인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계획인 ‘에버레디 플랜(Ever Ready Plan)’을 세웠다 내린 것은 반공 지도자 이승만의 진솔한 움직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1954년 7월 28일 오후 5시 이승만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 나서자 조셉 마틴 주니어 하원의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소개했다. “미국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쟁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때 도와서 함께 싸운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워싱턴 의회 연설에서는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한미 인사들이 함께한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행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눈물로 숙연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전쟁터에서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산화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여과 없이 표시한 것이다. 1954년 7월 28일 미 상하원 양원 합동 회의장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립박수를 포함해 모두 33회의 박수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 성명도 인상적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의 70년 동맹…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동맹을 주도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구상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닌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은 무엇일까? 6·25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한 항구적인 안전핀 구축이면서, 자유를 지키려는 한미 양국의 돈독한 의지의 결집(結集)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승만 지우기가 멈췄다. 좌 편향된 교육에다 보수 정권의 무관심으로 이승만 지우기는 끝 간 데가 없었다. 국민은 권력 이동과 더불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국론분열의 심각함을 체감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자유민주주의 뿌리인 이승만 현상이다. 황일봉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미주총회 사무총장 장로특별기고 한미동맹 이승만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건국 대통령

2023-06-26

[특별기고] 한인회 총회가 화합의 장이 되길…

제 38대 뉴욕한인회장선거를 앞두고 한인사회가 심한 갈등으로 요동치고있다.   약 9년 전에 뉴욕한인회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된 일이 있었고 결과는 동포사회가 바라던 대로 판결이 나왔다.   이후 치러진 34대 회장선거에서 김민선회장이 당선되고 연임했다. 36대 찰스 윤 현회장의 4년 임기도 마지막 순간에 있다. 한인 1.5세 변호사로서 이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0여년간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과 봉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줄 안다.   제 38대 회장을 선출하는 금년에는 동포사회가 오랜만에 축제형식의 경선을 통한 뉴욕한인회장 탄생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격심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잠잠하던 동포사회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후보자격을 잃은 김광석후보의 반발과 함께 이에 동의하는 동포들이 선관위 결정을 비판하기 시작하고 여론은 악화일로로 달렸다.   반전이 일어났다. 3월1일 한인회관에서 찰스 윤 회장과 이세목 역대회장단협의회 의장 그리고 심사에서 탈락한 김광석 전 KCS회장과 단독후보로 확정되었던 강진영 전 변호사협회 회장 등이 회동했다. 동포사회의 화합을  위한 충정에서 문제(?)의 회칙조항을 수정한 후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합의했다. 동포사회와 언론, 방송사 등의 전폭적인 호응과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역대한인회장단 회의가 몇차레 열리면서 불협화음이 싹트고 급기야 낯뜨겁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역대회장단 회의에서 결의된 상반되는 두 개 위원회 즉 한인회 정상화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찰스 윤 회장과 이사회는 4월30일 총회개최를 공고했다. 또다른 오해와 반발을 받아야했다. 3월1일의 4자 합의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의제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양이다. 매우 바람직한 일로 여겨진다.   이제 문제의 한인이민사박물관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인이민사박물관은 김민선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의 1호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회장 취임 후부터 열정적으로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단 1년만에 역사적인 뉴욕한인회 이민사박물관을 개관했다. 미주한인의 이민역사를 한 곳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업적을 이룩한 것이다. 뉴욕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다. 김회장은 주위로부터 많은 찬사와 칭송을 받았다.   반면에 내부의 문제 등으로 인해 김회장과 찰스 윤 당시 차기 회장과의 업무 인수인계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지난 25일 강익조 전 회장이 한인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민사박물관을 한인회 산하기구로 편입시켜야한다는 평소 소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자리였다.     김민선회장이 퇴임하는 시기에 박물관의 지위에 대해 역대회장단회의에서 장시간 논의가 있은 일이 있다. 절대다수가 한인회산하애 두어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독립기구로 발족함이 옳다는 주장은 소수에 그쳤다. 압도적으로 결론이 났던  사안이다. 한인회와 회장 이름을 걸고 박물관건립을 추진했던 김민선관장이 독립기구로 이전에 등록을 했다는 사실도 필자는 이번에야 알았다. 한인회 총회에서 충분한 토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인회산하냐? 독립기구냐? 그 장단점을 놓고도 진중한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려야할 때가 됐다. 김관장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운영해야만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성취한 업적을 회장직을 떠날 때는 남기고 가야 옳다는 생각이다. 조병창 / 전 뉴욕한인회장특별기고 한인회 총회 뉴욕한인회장 탄생 역대한인회장단 회의 뉴욕한인회 이민사박물관

2023-04-27

[특별기고] 부흥의 기준은 ‘회개’와 ‘결단’으로 인한 삶의 변화

      지난 애즈베리 부흥에 대한 첫영상을 올린 후에 너무나 놀랐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영상을 시청한것도 놀라웠지만, 방송,언론매체에서 부흥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해오고 글을 부탁 받는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다. 한국교회도 한인이민교회도 얼마나 부흥을 사모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일어난 잔잔한 부흥이 한국교회 뿐 아니라 전 세계 열방에 거센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 시대는 부흥을 갈망하며 하나님께서도 이 시대에 부흥의 강물을 흘려보내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2023년 3월 15일 수요일 애즈베리 부흥 현장의 소리를 더 정확하게 전하고자 다시 캔터키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학 캠퍼스는 봄 방학을 맞아 조용했고 수많은 사람이 흔적을 남긴 잔디밭은 따스한 봄을 맞아 잔디는 새롭게 파릇파릇 솟아 올랐다.   공예배가 끝이나고 방학기간이라서 캠퍼스는 고요 했지만 부흥을 담은 열기는 고요한 바람처럼 캠퍼스로 맴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애즈베리의 부흥을 직접경험하신 총장님과 교수님과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더욱 깊이 다가왔다. 애즈베리 부흥의 역사, 그 현장을 다시 보고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그 특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고 이 시대 부흥을 열망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누고자 한다. 첫 째, 부흥은 시작부터 마침까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주도한 하나님의 역사다. 이번에 부흥이 일어난 곳은 신학교 채플이 아니라 대학교 채플 시간이다.   부흥이라 부르지만 사실 시작은 평범한 예배시간에 일어났다.   예배 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이끌려 남아서 기도하기 시작한 19명의 학생들, 그들 가운데는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는 학생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위해 임재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자신들 가운데 일어나는 이 상황을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이 소식이 학교를 넘어 온 세상에 퍼지게 된 것이었다. 특별한 설교자나 찬양인도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교 당국도 이날 특별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이 예배에 주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는 사실이다.   부흥의 시작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는 예배가 마칠 때까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학생들도 교수들도 학교 당국자들도 한결 같이 하는 고백이 이것이다.   “이 일에 우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함께 경이롭게 바라보며 기뻐하며 동참했을 뿐입니다” 둘 째,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지만, 애즈베리 부흥 뒤편에는 부흥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애즈베리 대학은 이미 1900년대 초에 몇 차례, 그리고 1970년과 2016년에 부흥을 경험한 학교다.   이 부흥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랍 림 교수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교수님께 무엇이 이 부흥을 가져오는 원동력인지 물었을 때 자신들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생생하게 간증했다. 학생들만 기도했는지 질문하자 림 교수는 “처음에는 학생들 중심으로 체육관에서 기도하다가 한 친구가 이 학교의 영적 심장부에서 기도하자는 말에 예배당에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목회자들과 교수들도 참여하게 되었다”며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한 가지 열망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셔서, 이전에 일어난 부흥의 샘물이 다시 터지도록 바라는 것이었습니다”고 고백했다.   애즈베리 신학대학원 팀 테넌트 총장도 부흥의 뒷편에 똑같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의 부흥을 위해 많은 한인학생과 말레이시아 목사님의 기도를 잘 알고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늘 보았노라고 간증했다. 기도를 강조하면서 테넌트 총장은 오히려 한국성도들의 기도를 인정하고, 특히 이번 부흥의 배경에 한국학생들의 기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고백했다.   테넌트 총장의 말처럼 부흥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한 한국 목사가 있다.   선교사의 아들로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 김하진 목사이다. 매일 새벽 5시 혹은 5시 30분에 정해진 장소에서 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기도하고 있다. 그를 통해 이번 부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름 없이 기도해 왔는지를 들으면서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애즈베리 부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도의 용사가 있다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홍교수이다. 교수님은 14년 동안 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애즈베리 대학교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2019년부터 이 학교에서 풀 타임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부터는 사인판을 들고 몸 앞뒤로 메고 다니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윌모어, 영적 대각성, 부흥” 이런 사인판을 들고 다니며 매일 기도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샌드위치맨이라 불렀다. 홍교수님과 대화하던중 놀라운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도한 지 2년이 더 지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뉴욕에 가서 홈리스 사역을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하나님, 아직 애즈베리의 부흥을 보지 못했는데요”라고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부흥은 내가 머지 않아 줄 것이니 너는 이곳에서 흔적을 지우라”라는 말씀에 순종해 뉴욕으로 떠났다.   이렇듯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지만 그 부흥을 갈망하는 수 많은 사람의 기도를 보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이 시대 부흥을 갈망하는 한국교회가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엎드리는 것이었다. 셋 째, 애즈베리 부흥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있다면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일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부흥의 역사 이후, 개인과 공동체 가운데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총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이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새로운 삶의 결단을 다짐했다. 특히 애즈베리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 김하진 목사님을 통해 이번 부흥 시기 전반에 걸쳐 엄청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듣게 되었다.   목사님은 선교사님 아들로 오랜 세월 새벽을 깨워 부흥이 오기를 기도한 목사님이다.   회개와 변화의 물결은 교수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났다. 애즈베리 대학교 존슨 교수님은 신학교 교수로서 쉽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변화를 고백했다.   “저는 기도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기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이제는 기도를 갈망합니다”면서 “저에게는 기도가 어려웠던 것처럼 금식도 어려워 기껏해야 낮에 한 끼를 거르고 저녁까지 정도 할 뿐이었지만 쏟아지는 은혜를 체험한 후에 저는 제대로 금식하기로 결단했으며 제 생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특별기고 부흥 기준 애즈베리 부흥 애즈베리 대학교 애즈베리 신학교

2023-03-28

[특별기고] 대화만이 이해로 가는 유일한 길

필자는 36년 전 퍼시픽 센추리 인스티튜트(PCI) 설립에 참여했다. 광대한 태평양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의 가교’ 역할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다음 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 예상처럼 이제 태평양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태평양 지역 국가·국민 사이에 상호이해의 폭은 넓어졌는가? 아니면 오히려 분노와 공포, 불신으로 인해 위험한 충돌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울러 그동안 PCI가 주도적으로 지원했던 노력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아니면 헛수고였는지도 궁금하다.     지난달 LA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PCI의 연례 ‘빌딩 브리지 어워드(Building Bridges Award)’ 시상식장에서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이다.     ‘빌딩 브리지 어워드’는 태평양 지역 국가를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개인과 단체에 주는 의미 있는 상이다. 올해는 탁월한 학문적 업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가 단체 부문에서, 그리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개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또 전 PCI 의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성대한 식장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이건 그저 쇼에 불과한 것일까? 현실에선 적대적 무시와 종종 오만하기까지 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그동안 이룩한 발전과 성숙을 후퇴시키진 않을까?   식장에서 그레그 전 대사의 수상 소감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의 핵심적인 지론을 다시 떠올렸다.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적대 관계에 빠지면 상대방을 악마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악마화는 충돌의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그런 악마화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대화다.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 무지에서 벗어나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잠재적인 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설령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상대라 생각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대방 역시 당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협력이 가능하다.   현재 태평양 지역 상황을 보면 매우 유동적인 요소들이 많다. 중국의 적극적인 확장 전략, 북한의 핵무기 개발, 북한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우려, 일본의 재무장, 남중국해에서의 갈등, 타이완의 미래, 미국·영국·호주 3국의 군사 및 정보 협력 강화,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ASEAN 국가들의 부상, 기후변화의 충격 등 다양하다.   따라서 지금은 이 지역 모든 국가가 대화 채널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다. 또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쉽게 악마화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서로 얘기한다는 것은 부드럽게만 진행되어야 하는 것도, 항상 합의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화는 원하는 것(want)과 필요한 것(need)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 충돌을 피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PCI 이사들의 모임에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한반도 핵 문제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 등에 관해 미주중앙일보와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핵 문제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로버트 칼린, 로버트 갈루치가 인터뷰에 응했고, 역시 PCI 이사인 글렌 포드는 특별기고를 통해 의견을 전했다. 인터뷰와 기고문은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 게재됐다.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남북 모두 상대방과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의 독자 핵무기 보유에 대한 우려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핵무기 확산 위험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와 국제적 위상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해의 가교’ 역할이라는 PCI의 설립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우리가 서로 외면하고 악마화하는 데 매몰된다면, 위대한 태평양의 세기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줄 해법으로 인도해 주는 게 대화인데, 이를 지속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영어 원본 칼럼 보기   ◇스펜서 H. 김     항공우주 제품 제조판매사 CBOL Corp 대표. PCI 공동창립자이자 미국 외교협회 회원. 2006~08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APEC 기업인자문위 미국대표로 활동. 2012~13년 하버드대 애쉬센터(Ash Center) 레지던트 펠로.   스펜서 H. 김 / PCI 공동창립자특별기고 대화 유일 태평양 지역 핵무기 개발 현재 태평양

2023-03-22

[특별기고] "이제 정치 1막을 내리겠습니다"

정치 1막을 끝내며 인사드립니다.   저는 한인 1세로 미국 정치 일선에 뛰어든 지 만 24년 만에 물러납니다. 그동안 제가 치른 13번의 선거에서 후원금으로 격려로, 또 기도로 도와주신 한인 후원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1998년 어바인 교육위원을 시작으로 공백 기간 없이 24년간을 계속 공직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번 주하원의원 4선 도전에서 불행하게도 성공하지 못해 ‘타의’로 물러나게 되는 자체는 기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자연의 원리를 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동안 교육위원, 시의원, 시장, 주하원의원 등 각 단계를 거치면서 각각 고유의 임무와 책임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지난 6년 동안 주 하원의원으로서 새크라멘토주의회에서의 역할은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계시는 한인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입법 활동과 여러 가지 결의문을 채택할 수 있는 기회여서 기뻤습니다. 그중 한인사회의 관심이 높은 결의문 등은 언론에 보도되고 홍보도 되어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것들이 많지만 잘 소개가 되지 않은 일반 입법 내용도 많이 있습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저의 주도로 5개의 법안이 주 상·하원을 통과하고 주지사의 서명까지 마쳐 법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주도한 한인 관련 결의문 중에는 ‘미주 한인의 날’, ‘김치의 날’, ‘태권도의 날’, ‘유관순의 날’, ‘홍명기의 날’, ‘5.18 민주화 운동의 날’, ‘한글의 날’, ‘직지의 날’, ‘아리랑의 날’ 등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또 3·1절, 6·25 한국전쟁, 8·15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 등 한국의 각종 기념일이 올 때마다 캘리포니아주 상, 하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이를 기념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주 전체에 알렸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치의 날’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먼저 채택되어 미주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연방의회 차원에서의 채택도 기대되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김치의 미국시장 수출 규모가 1년 만에 17%나 성장했다는 한국 농수산품 진흥청 김춘진 청장님의 보고도 있습니다.   내년에는 ‘한복의 날’을 제안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선이 안 되더라도 이번에 함께 주 하원 의원 선거에 나섰던 유수연 후보라도 당선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만 한 때 큰 기대감을 줬던 득표율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선거가 이런 결과로 끝나게 되면 캘리포니아 주 하원에는 더 이상 한인 의원이 없게 됩니다. 당연히 주 하원에서 한인사회를 대변할 목소리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에서는 한 표, 한 표가 중요합니다.   저는 입법 활동 외에도 거주 전체에 있는 한인 커뮤니티 리더들을 한 자리에 모아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결속력을 키우는 교량 역할을 해 왔습니다. 즉, 매년 1월 13일 ‘미주 한인의 날’ 결의문을 채택하는 날과 8·15 광복절 기념 결의문을 채택하는 날을 계기로 1년에 두 번에 걸쳐 한인사회 지도자분들을 새크라멘토 주청사로 초청해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의회장 안에서 과시했고, 한인 단체 간 상호 친목의 기회가 되는 장도 만들어 왔었습니다.     저는 1세로서 한인들과 언어, 정서가 잘 상통했기 때문에 한인사회의 호응을 얻어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협력해 주신 북가주와 남가주 전체 한인사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일단 저의 정치 1막을 내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석호 /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제 68 지구특별기고 정치 한인사회 전체 시장 주하원의원 이번 주하원의원

2022-11-20

[특별기고] 고 김용휴 장군님을 추모하며

지난 9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가신 김용휴 장군님을 추모합니다.   김용휴 장군님께서는 1926년 8월 10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명문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재학 중, 전 국무총리를 역임하신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민족청년단(족청)에서 활동하시다가, 스승인 고 김근찬(족청 훈련부장·유도 8단) 선생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 7기로 입교하여(특채 포함) 동기생 1196명 중 단연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된 후, 제주 폭동 사건, 여수 순천 반란사건, 그리고 치열했던 옹진 전투에서 소대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고, 6·25 전쟁 당시 중대장으로, 이후에 연대장 및 25사단장 등, 지휘직책을 모두 마치고 주월한국군 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국방부 차관 등 요직을 거친 후 12·12 신군부 집권 후 총무처 장관, 남해화학 사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쳤습니다. 그 후, 1992년 미국에 오셔서 오랜 기간 고 김세현 제독이 제공한 주택에서 은둔생활을 하시다가 약 12년 전부터 동포사회에 알려져 교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용휴 장군께서는 평시 말씀 중에 북한의 핵 위협과 남한 내 좌파세력의 만행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건국 대통령 고 이승만 박사를 존경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1948년 남한 내 준동하던 공산당을 불법화한 이후, 북한의 6·25 무력 남침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반공주의자이며, 국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무력 남침으로 인해 폐허가 된 한반도, 국민은 굶주림과 가난 속에 고난을 겪던 대한민국, 미국과 소련 양 진영의 냉전 체제에 세계 공산화를 막기 위한 월남전에 미군의 참전과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한국군이 파병된바, 6년간 연인원 32만, 전사자 5009명, 부상자 및 고엽제 환자 1만여 명의 목숨을 바쳐 얻은 값진 대가로 군은 군 장비를 현대화하였고, 당시 36억 달러라는 막대한 외화를 획득,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에 진입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가난을 물리친 주역으로, 당신이 김용휴 장군님을 주월한국군 부사령관에 임명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월남 파병 작전부터 현지 한국군 작전지역 배치 등을 월남군 및 미군 고위층과 협의 결정하시고 파병케 한 후, 3년 6개월간 우리 참전 노병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가난을 물리친 일등공신은 월남 참전 노병들입니다.   장군께서는 지난 9월 22일 97세로 서거하시기 전 저에게 유언하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치러줄 것과 화장해서 수목장하도록 원하셨습니다. 또한 6개월간 병원 응급실 및 요양원에서 의식불명 중 찾아주신 지인들과 월남 참전 노병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저에게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9월 22일 장군님께서 하늘나라로 떠나가신 후, 9월 29일 가족과 측근 몇 사람과 함께 아드님의 집에서 간소하게, 윤명호 동산교회 목사님의 주관하에 장례 예배를 본 바 있고, 10월 7일에는 2차로 동산교회에서 월남참전자회 미주총연합회 홍종태 회장 주관하에 100여 명이 모여 엄숙하고 성대히 추모예배를 드린 바 있습니다.   고 김용휴 장군님께서는 낭만적인 성격에 평시 타인을 배려하시고 베푸는 정신, 이것이 화합과 융화의 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을 군에서는 덕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오랜 군 생활뿐만 아니라 여러 공직생활 중에도 인격자로 존경받는 화합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존경하는 장군님을 만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장군님! 이제 모든 시련과 근심,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서찬국 / 예비역 해병대령·월남참전자회 미주총연합회 고문특별기고 김용휴 장군 김용휴 장군님 이범석 장군 부사령관 육군참모차장

2022-10-19

[특별기고 (3)] 투표는 ‘맨입’으로 권리 찾는 것

얼마 전 고등학교 학생들과 한인 마켓 앞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마켓으로 들어가는 한인 여성 3명에게 투표를 부탁하자 대뜸 한 분이 “그게 맨입으로 되나?”라는 말을 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세상에(Oh my gosh!)”라는 말이 나왔고, 순간 어린 학생들 앞에서 당황스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상황이었다.      선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많은 한인이 본인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한인 후보가 출마한 곳에서 조차  한인들의 선거 참여가 낮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조국을 버리는 것 같아 시민권 취득을 망설이고, 유권자 등록을 하면 영어도 잘 못 하는데 배심원에 선정될까 걱정돼 꺼리는 한인도 많다. 또 정치 참여란 이리저리 복잡하고, 막상 이익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치 참여율이 낮은 것은 비단 한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류사회에서도 20~30대 젊은 층의 선거 참여율은 매우 낮다. 너무 바쁘다 보니 선거에 관심을 가질 시간도, 또 관심이 없으니 투표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런 잠자는 표를 끌어내는 것은 정치 후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인사회의 경우 한인 후보끼리 쓸데없이 반목하거나, 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 등도 한인들의 선거 참여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인 후보들은 더 겸손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렌지카운티에서 한인보다 유권자 수가 많은 베트남 커뮤니티는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높은 정치 참여율을 자랑한다. 베트남 커뮤니티에 유권자가 많은 것은 본국이 아직 공산주의 국가라 상대적으로 시민권 취득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칫 추방 등의 사태를 막기 위해 자격이 되면 무조건 시민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또 베트남계 주민들은 시민권 선서와 동시에 유권자 등록을 하고, 선거 때에는 무조건 투표를 하는 분위기여서 막강한 커뮤니티 정치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계 정치 후보는 아시아계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왜 한인들은 선거에 참여해야 할까?     선거는 돈도 들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다. 투표 방식이 개선돼 이제는 집에 온 투표용지를 기재해 우표를 붙일 필요도 없이 보내기만 하면 된다. 정말 시간이 없으면, 그냥 원하는 후보만이라도 찍어서 보내면 된다. 백만장자나 서민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한표를 그냥 버리기보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찍고, 그 후보가 선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통쾌한 대리만족이 어디 있을까?     좋은 후보가 당선되면 많은 것들이 혜택으로 돌아온다. 시니어 및 저소득층 아파트와 의료 복지 시설 확대, 공원 및 녹지시설 확장,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안전한 커뮤니티 등 한인은 물론 전체 주민의 생활과 관련 있는 정책들이 시행 가능하다.  내게 주어진 한표를 행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소수계가 정치참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유사시 나를 보호해줄 대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은 모른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가 주류사회 곳곳에 깔려 있어야 한인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빠르게 대응하여 우리 커뮤니티를 보호해 줄 수 있다.    2022년은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의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해이다. 아시아계 유권자들은 미국식 보수, 진보를 떠나 공통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이민역사를 가지고 있고, 조용하지만 경제력을 갖춘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유권자 블록이다. 이는 주류 정치인들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다.     ‘집에서 정치와 밥상은 안주인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올해 선거는 여성 유권자들의 힘이 결집 될 전망이다.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위해 많은 어머니 그룹들이 움직이고 있고,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는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10월9일 쯤이면 집에 도착할 투표용지를 잘 확인하고 꼭 투표에 참여하시길 바란다.   써니 박 / 부에나파크 시장·OC 4지구 수퍼바이저 후보자특별기고 (3) 투표 맨입 한인 후보들 선거 참여율 커뮤니티 정치력

2022-09-11

[특별기고 (2)] 연방, 주 정부와 지방 정부의 관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주 정부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데,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썼던 기억 때문인지 마스크 착용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마찰을 빚나 정말 의아했다. 그리고 상급 정부인 주 정부 방침에 카운티 정부가 무조건 따르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부에나파크 시는 아주 신속하게 오렌지카운티 정부의 방침과 관계없이 필수업종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아니 우리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시 조례를 만들었다. 오렌지카운티의 다른 지역 주민이 부에나파크 시에 올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생긴 것이다.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을 두고 혼선이 오가는 상태에서 오렌지카운티 보건국장이 일부의 협박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며 사퇴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기간은 미국이라는 시스템 안에 있는 많은 정부기관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한인은 시의원보다 카운티 수퍼바이저가 높고, 수퍼바이저 보다 주 상·하원 의원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도전하고 있는 카운티 수퍼바이저 자리는 7개 도시에 걸쳐 60여만 명의 주민, 그중 유권자만 32만5000명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코리아타운이 포함된  연방하원 지역구와 사이즈가 비슷하고, 부에나파크 시가 포함된 주 하원의원 지역구보다는 훨씬 크고 인구수도 많다. 그런데 아직  많은 한인은 수퍼바이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지를 부탁하며 이런 내용을 알려주면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또 민생 문제를 다루는 시장인 나에게 와 공립학교의 성교육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자리가 높고 낮은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모든 지역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은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참 중요한 일이다.     미국의 정부기관들은 큰 그림 안에서 움직이며 서로 협력, 보완하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입법 활동을 통해 예산 책정 등 큰 그림을 그려주는 곳이라면, 큰 그림 안에서 실제로 지역의 특수상황을 고려해 행정을 담당하는 것은 지역 정부와 지역 정치인이다.     이런 기능적인 관계 때문에, 하급 정부기관이 상급 정부기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상급 정부기관보다 더 강력한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다. 상급 정부기관이 세운 정책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집행 상황을 확인하는 경찰력도 지역 정부 관할이다. 상급 정부기관에서 법을 만들어도 지역 정부에서 규제하지 않으면 ‘죽은 법’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예를 보면, 주 정부에서 “필수업종 종사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하면 카운티, 시 정부에서는 어떻게 마스크 착용을 구체화할 수 있는지 검토해 조례 제정을 통해 실행해 나간다.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경찰력을 동원해서 티켓을 주고 법이 실행되도록 하는 것도 지역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정부 간 유기적인 관계가 잘 돌아가야 지역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고 혼선이 없다.     내가 시장으로 있는 부에나파크 시에서 새로 비즈니스를 창업하는 분들의 가장 큰 불만은 허가 과정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이는 시청과 카운티 소방국간의 연결이 잘 안 되어서다. 사업장 공사를 하고 시에서는 허가를 받았지만 카운티 소방당국이 화재 안전 점검 절차를 빨리 해결해 주지 않아 몇 개월 동안 렌트비만 내고 있다는 호소도 많이 들었다. 내가 수퍼바이저가 되면 소상공인을 위해 꼭 개선하고 싶은 일이다.     각 지방정부의 협력 관계가 잘 이루어졌을 때 주 정부 및 연방정부로부터 많은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마스크 문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오렌지카운티 주민들의 정치 성향은 민주당 중심의 현 주 정부나 주의회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래서 예산을 가져오는 문제에 있어 오렌지카운티는 다른 진보 성향의 카운티에 비해 불리한 것 같다. 가장 좋은 예가 팬데믹 동안 LA카운티는 이미 ‘프로젝트 룸 키(Project Room Key)’ 라는 홈리스 문제 해결 예산을 주 정부로 부터 받아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오렌지카운티는 최근에야 예산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렌지카운티가 홈리스 문제 프로젝트 진행에 한발 늦은 이유이다. 이렇게 다른 정부기관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팀플레이가 가능한 정치인이 지역 정부에서 활동해야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   박영선 / 부에나파크 시장, OC 4지구 수퍼바이저 후보특별기고 (2) 정부 지방 오렌지카운티 정부 상급 정부기관 하급 정부기관

2022-09-05

[특별기고] 한인 네일업계를 위한 제언

현재 미국의 구인난 문제는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한인 네일업계도 과거의 여름철과 비교해  더 심각한 구인난을 맞고 있다. 구인난을 타개하기 위해 미 정부는 이민법을 바꾸려 하고 있고, 물적인 지원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인 네일업계의 구조를 보면 이같은 움직임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인 네일업계의 구조는 박리다매로, 고급 인력보다는 많은 값싼 인력, 법을 벗어난 사업 관행(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이어왔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고, AI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점점 이러한 사업방식은 계속 이어갈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있다.     지난 3년간 뉴저지네일협회는 노동법과 미용법, 구인 방법, 사업 운영 등을 주제로 많은 세미나를 열어 왔다. 세미나에서는 여러 해결 방법들을 주제 별로 연구하고 검색해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세미나를 통해 걱정한 사항들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인 네일업주들은 “일당 얼마씩 준다고 직원을 빼간다”, “직원이 갑질한다”는 등의 문제와 해결책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지않은 네일업주들이 생각에 그치고, 아이디어에 머물러 실제로 현실로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뉴욕에서는 한 건의 신문 기사 내용으로 인해 한인 네일업계 전체가 큰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이는 하나의 법을 해결하면 또다른 법이 만들어지는 악순환으로, 아직까지도 이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뉴저지 또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직도 일당제를 택하는 분들이 대다수고,  라이선스 문제와 함께 서류미비자가 적지 않다. 뉴저지네일협회는 언제까지 이 문제로 계속해서 세미나를 하고, 자료를 계속해서 보내야 하는가.   직원 라이선스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는 서류미비자도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게 법을 바꿨으나 아직도  불법을 행하는 업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뉴저지네일협회는 이제 주정부 미용국 보드 멤버(이사진)에 한인 이사를 넣기 위해 마지막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법을 잘 준수하면 더 손쉽게 이루어 질 것으로 본다. 여기에는  한인 네일업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뉴저지에서는 하루 8시간 근무시 직원이 가져가야 할  최소 급여는 104달러다. 8시간을 넘을 때는 오버타임 급여를 적용해 1.5배를 줘야 한다. 또한 1년에 40시간의 병가는 법적으로 필수다. 여기에 네일 라이선스가 없으면 고객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다. 또 업소에서 직원 출퇴근시 라이드는  보험과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필수적인 사항마저도 잘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다.             현재 미국내 뷰티 숍들은 팬데믹 이후에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원의 정예화, 숍 업그레이드, 서비스 질을 향상시키며 전문화를 택하고 있다. 이는 지난 1980년대와 비슷하다. 하지만 한인 네일업계는 점점 대형화되고, 가격은 낮아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한인 네일업계는 어떤 준비와 계획을 하고 있는가?     지금 한인 네일업계의 흐름을 보면 돈을 더준다며 직원을 빼가고, 또 갑질하는 직원들 때문에 올해를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다. 눈을 들어 좀 더 넓은 시야로 업계를 바라보고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한인의 특별한 손 기술과 미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네일업은 앞으로 100년, 아니 여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사업이다. 높은 명성을 쌓은 ‘한인 네일’의 존재를 이어가는 한인 네일업계가 되기를 바란다. 손종만 / 뉴저지네일협회 회장특별기고 네일업계 한인 한인 네일업계 한인 네일업주들 한인 이사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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