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올해는 한국과 미국이 역사성을 지닌 뜻 있는 해다.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윤석열의 대미외교’에 국민 시선이 쏠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유’를 선택한 윤 대통령의 국제외교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당당함이다.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과 2023년의 윤석열 대통령 연설의 키워드는 ‘자유’였다. 자유란 쉽게 얻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자유에는 피를 먹고 자라는 섬뜩함이 있고, 자유란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 끊임없는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외교(外交)’로 빛나는 시대다. 외교가 전략이라면 국격(國格)에 걸맞은 외교활동은 지도자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1940년대 열악한 국제환경을 딛고 건국한 나라다. 독립에서 건국에 이르는 건국 지도자 이승만 외교는 국제환경에 걸맞은 ‘전략외교’로 점철되어 있다.
“외교정책(外交政策)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생존(生存)과 국가안보(國家安保)다…대표적인 수단이 동맹(同盟)이다!” 신현실주의(New-realism) 이론가인 국제 정치학자인 케네스월츠 박사의 주장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잘 모르고 있다. 건국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왜일까?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하여 아는 게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왕의 나라를 백성에게 돌려준 공(功)이 있다. 더 소중한 일은 그가 공산주의의 대척점에서 자유를 신봉하며 ‘자유민주주의 뿌리’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1954년 미국의 국빈 방문(State Visit) 때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이 워싱턴 정치인들을 향하여 ‘워싱턴 겁쟁이들(Cold feet)’이라며 일갈(一喝)했다. 자유(Freedom)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의 반공주의(反共主義), 멸공(滅共)에의 의지를 미국에 던지는 경구(警句)이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현재도 이승만을 ‘아시아의 반공 지도자’로 인식한다. 1923년 그가 설파한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메시지로 통한다.
이승만 외교의 분수령은 무엇보다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의 변화였다. 문명사적인 대전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동맹문화라는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대미외교는 ‘대등한 외교’가 축(軸)을 이뤘으며, ‘한미동맹’의 주역은 이승만이었다. 약소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미국 측을 설득하며, 움츠러들거나 물러섬 없이 담대한 전략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1953년 휴전 반대를 선언하며 북진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은 자유를 쟁취하려는 몸부림이면서 한미동맹을 견인하는 지렛대로 작용했다. 미국이 ‘눈엣가시’인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계획인 ‘에버레디 플랜(Ever Ready Plan)’을 세웠다 내린 것은 반공 지도자 이승만의 진솔한 움직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1954년 7월 28일 오후 5시 이승만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 나서자 조셉 마틴 주니어 하원의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소개했다. “미국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쟁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때 도와서 함께 싸운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워싱턴 의회 연설에서는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한미 인사들이 함께한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행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눈물로 숙연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전쟁터에서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산화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여과 없이 표시한 것이다. 1954년 7월 28일 미 상하원 양원 합동 회의장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립박수를 포함해 모두 33회의 박수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 성명도 인상적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의 70년 동맹…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동맹을 주도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구상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닌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은 무엇일까? 6·25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한 항구적인 안전핀 구축이면서, 자유를 지키려는 한미 양국의 돈독한 의지의 결집(結集)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승만 지우기가 멈췄다. 좌 편향된 교육에다 보수 정권의 무관심으로 이승만 지우기는 끝 간 데가 없었다. 국민은 권력 이동과 더불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국론분열의 심각함을 체감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자유민주주의 뿌리인 이승만 현상이다.
황일봉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미주총회 사무총장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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