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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진영 MD 연방상원 선거 총력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메릴랜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적극 개입하고 나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인 안젤라 올소브룩스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 군수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히고 민주당이 연방상원의회 다수당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메릴랜드 주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벤 카딘 연방상원의원(민주)가 이번 선거에서불출마하면서 올소브룩스 군수는 래리 호건 전 주지사와 벼랑끝 승부를 펼치고 있다. 메릴랜드는 민주당과 공화당 성향 유권자 비율이 2대1이지만, 호건 전 주지사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 표를 잠식하고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조 맨친 연방상원의원(민주)도 불출마하면서 공화당이 민주당 다수당 지위를 탈환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올소브룩스 군수가 10%포인트 이상 격차로 앞서나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공화당은 올소브룩스 군수의 세금탈루 사건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올소브룩스 군수는 최근 워싱턴DC와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서 불법적인 공제를 통해 재산세를 탈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호건 전 주지사는 공화당 온건파를 대표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메릴랜드 주민들에게 상당히 어필하고 있다.     이런 가엔두 올소브룩스 군수는 이번 오바마 전 대통령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등 유력 민주당 인사들의 지지를 획득했다.  호건 전 주지사도 폴 라이언 연방하원의장과 빌 리 테네시 주지사, 마샤 블랙번 연방상원의원 등 공화당 유력 인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오바마 클린턴 민주당 진영 민주당 다수당 메릴랜드 연방상원의원

2024-10-17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오바마·클린턴 "투표로 승리"…아시안 뜨거운 지지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굵직한 인물들의 연설로 이틀째 열전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크게는 이번 해리스 후보 옹립에 사실상 막후 역할을 해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전 퍼스트레이디가 출격했다. 2008년 일리노이 출신 신출내기 상원의원으로 정권교체를 이끄는 동시에 유색 인종의 지위를 격상했다는 평가를 받는 오바마는 해리스의 당선이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미국의 개혁은 아직 진행 중이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끌어온 역사를 해리스가 이어갈 중요한 전환점에 왔다”며 “끝나지 않은 싸움에서 당원과 깨어있는 미국인들이 투표를 통해 승리로 이끌어 내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셸 오바마는 바이든 교체론이 제기됐을 때 대체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여성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해왔다. 본인은 정작 정치 참여를 거부해왔지만 이날 연설로 막후 또는 향후 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미셸 오바마는 여성의 권리와 지위를 지키려면 이번 선거에는 해리스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이날 연설자로 나섰다. 19일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긴 환호를 받았던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큰 환호 속에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경합주로 구분되는 동남부 주들의 백인과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민주당 정권 유지의 당위성을 설명해 주목받았다.   한인 민주당 관계자들도 전당대회에 참석 중이다.     가주 연방하원 34지구 대의원으로 전당대회에 참석 중인 해나 조(컨설팅)씨는 “특히 대회장 내에 아시안 커뮤니티의 열기가 뜨거워 놀랐다”며 “오바마의 연설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부 모습에 더 큰 신뢰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가주 출신 대의원으로는 조씨를 비롯한 진 김(해리스를 지지하는 한인 모임) 공동대표, 제이슨 박씨 등이 시카고 전당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다.     한편 이번 전당대회에는 일부 공화당 인물들도 연사로 나선다.   민주당 측은 언론의 노출도가 높아지는 3~4일째 일정에 존 가일스 애리조나주 메사 시장, 제프 던컨 조지아주 부지사가 연단에 선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거 초기 해리스 지지를 선언한 공화당 소속 정객들이다. 여기에 트럼프 정권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팀에서 일한 올리비아 트로예도 마이크를 잡고 트럼프 불가론을 역설한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 체니도 지난 의사당 폭동사태 이후 트럼프 진영을 떠났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큰 위협”이라고 공개 발언한 바 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오바마 클린턴 아시안 커뮤니티 민주당 전당대회 시카고 전당대회

2024-08-20

뉴욕시 망명신청자 셸터에 홍역 유행

뉴욕시에서 셸터를 중심으로 홍역이 재유행하고 있다. 홍역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데,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어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염된 것으로 파악된다.     뉴욕시 보건국은 12일 브루클린 클린턴힐에 위치한 망명신청자 셸터에서 성인 2명이 홍역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셸터의 경우 좁고 밀폐된 경우가 많아 호흡기 질환을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홍역은 전염성이 강한 호흡기 질환으로, 사소한 접촉으로도 감염될 위험성이 높다. 약 10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 발진, 눈의 충혈과 콧물,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대부분 백신을 맞아 예방하고 있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의 경우 감염자 주변 10명 중 9명을 감염시킬 정도로 전염성이 높다. 특히 5세 미만 어린이가 걸리면 폐렴과 뇌염과 같은 심각한 건강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2022~2023학년도 어린이의 홍역백신 접종 완료율은 97%로 높은 편이지만, 최근 남부 국경을 넘어온 망명신청자 중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해 홍역 감염자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뉴욕시 데이터에 따르면 12일 현재 뉴욕시에서 홍역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는 총 11건이다. 작년에는 1건, 2020~2022년 사이에는 홍역 환자가 0건인 것과 비하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전국에서는 올해 들어 홍역 환자가 167건 발생했다. 지난해 연간 홍역 환자(58건)보다 급증한 수준이다. CDC는 “지난 3월 시카고 셸터에서 발생한 1명의 홍역 사례가 57명 감염으로 이어졌다”며 “대부분 감염자는 백신 미접종자”라고 전했다. 김은별 기자클린턴 망명신청자 뉴욕시 망명신청자 홍역백신 접종 홍역 감염자

2024-07-14

[삶과 추억] 한인 정계진출 초석 다진 원로

미주 한인 민주당의 선구자이자 대부였던 박상협(영어명 리처드 박·사진) 한인민주당협회(KADC) 전 고문이 지난 28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주류 정계에 한인사회를 알리고 정치력이 성장할 수 있게 초석을 놓은 원로다. 한미민주당협회 결성에 산파역을 했으며, 주류 정치인들이 한인타운을 찾는 연결고리가 됐다.       고인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평의원으로 시작해 수석당원, 재정위원, 아태자문관 등 40여년 이상 민주당을 후원하고 주류 정치인들과 교류해왔다. 고인이 가깝게 지낸 정치인들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상원의원, 알 고어, 존 케리 상원의원  등 거물급이다. 지난 2020년에는 조 바이든의 대선을 도왔으며, 버락 오바마(2012년) 재선도 지원했다.   고인은 유일하게 이들을 한인타운에 불러 한인사회 영향력을 넓힌 인물이기도 하다.     힐러리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였던 고인이 2007년 한인 타운에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초청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한인후원회’를 설립하고 회장을 맡은 고인은 옥스포드팰리스 호텔에서 100여명의 한인 후원자들이 참석한 기금모금 행사를 주최해 약 35만 달러의 후원금을 걷었다. 당시 모금한 액수는 지금까지 한인타운에서 모금한 정치인 후원금 중 최대 규모다.     이외에도 제리 브라운 가주 주지사, 테리맥컬리프 DNC 회장 등 굵직한 주류 정치인들을 타운에 초대해 한인 커뮤니티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차세대 한인들이 주류 정계와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왔다.     2000년대 들어 한인 1세들이 잇따라 정치에 도전하자 든든한 후원자로 기금모금 등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1938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유학차 도미해 LA 인근 퍼시픽 주립대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한인타운에서 보석상, 총기상을 운영했다. 또한 한국에 커피빈, 명품 브랜드 구찌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다. 1972년 남가주 한인회 이사를 시작으로, 도산기념사업회 위원장, 나우경제인회 회장, 코리아타운번영회 회장, LA시 커미셔너, 민주평통 자문위원, 베벌리힐스 자매도시위원 등을 맡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한인사회에 봉사했다.     장례식은 7월 6일 오후 3시 할리우드 힐스 포리스트론 처치오브더힐(Church of the Hills)에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낸시 박씨와 2남(제임스, 존) 5녀(제니퍼, 앨리스, 제니스, 제인, 지나)가 있다.     ▶연락:(213)255-8887 장연화 기자삶과 추억 클린턴 정계진출 힐러리 한인후원회 한인사회 영향력 한인 후원자들

2023-06-29

[김창준] 도덕성만 공격하다 클린턴에 다시 완패

  ━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15〉밥 돌 돌풍에도 백악관 탈환 실패 뚜렷한 메시지 못 내고 공격 집중도 떨어져 클린턴, 간결하고 힘 있는 ‘경제 이슈’ 성공   1996년 8월.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정치인으로서 내게 뼈아픈 기억이다. 미리 축포를 터트리면 안 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그해 전당대회는 공화당 역사상 처음으로 샌디에이고에서 열렸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여자 문제로 이미지가 많이 구겨졌던 상황이었다. 1992년에 당연히 재선될 줄 알았던 조지 H. W. 부시가 클린턴에게 일격을 당해 충격에 휩싸였던 공화당이었다. 백악관 재점령을 위해 절치부심이었다.     당내 경선에서 상원 원내대표인 밥 돌 의원이 연전연승을 거두며 공화당 대선주자가 됐다. 공화당원들은 결집했다. 클린턴에 대한 복수 일념에 불탔다. 밥 돌은 누가 봐도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클린턴처럼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이라는 메리트까지 있었다.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돌 역시 노동장관과 교통장관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었다.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힐러리 여사보다 여러모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 부부 금실도 좋기로 소문났다.     당내에서는 밥 돌이 클린턴의 재선 가도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적격자라고 판단했다. 부통령으로 지명된 잭 캠프도 정치권에 널리 알려진 거물이었다. 캠프는 프로풋볼(NFL) 쿼터백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당시 클린턴은 복잡한 여자관계를 비롯해 게이와 레즈비언의 입대 허용 뜻을 밝혀 큰 논란이 됐다. 그의 지지율도 흔들렸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당하자 대다수 논객은 클린턴이 단임 대통령으로 끝날 것으로 내다봤다.     폴라 존스가 클린턴에게 성희롱당했다는 주장이 1994년에 수면 위로 오르면서 클린턴 사생활이 본격적으로 타깃이 됐다. 공화당은 ‘도덕적인 후보’와 ‘그렇지 못한 대통령’ 대결 구도를 잡았다.     전당대회장 분위기도 4년 전 텍사스 때보다 뜨거웠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고 샌디에이고 도시 전체도 축제 분위기였다.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아니라 마치 밥 돌 대통령 당선 축하파티를 보는 듯했다. 그만큼 당원들은 자신 있었다.     현직 의원은 언제고 전당대회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들어가서 캘리포니아주 대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식사도 같이했다. 모두가 이념이 같은 공화당이라 무척 친절했다. 당시 한미의원친선협회의 한국 국회의원 대표인 오세웅 의원도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주최 측에 부탁했다.     오 의원은 이런 축제 분위기를 신기해하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국에서는 공화당 전당대회에 초대받았다는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귀국한 다음 한국 신문에도 대서특필되고 국회 안에서 입지도 강해진다고 했다. 앞으로 사흘 동안 무얼 할 것이냐 물었더니 이곳 한인 동창, 친지들과 매일 골프 약속이 있다고 했다.     저녁마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스케줄도 꽉 차 있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식이라면 몰라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공화당 또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빙빙 돌다 한인들과 함께 골프 라운딩이나 하고 간다니. 마음이 좀 그랬다. 쓸데없이 그 많은 공금을 써 가면서 올 필요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전당대회는 화끈하고 좋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자만했다. 전당대회 때 이미 대통령이 된 것처럼 너무 흥분했다. 무엇보다 공화당은 국민을 향한 뚜렷한 메시지가 없었다. 반면 클린턴은 4년 전과 같은 메시지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여러분, 4년 전 부시 행정부 때보다 여러분의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4년간 저와 한 번 더 가겠습니까? 아니면 공화당의 돌 후보를 붙잡고 4년 전 어려웠던 부시 시절로 돌아가겠습니까?” 클린턴의 메시지는 간결하면서 힘이 있었다.     공화당은 오로지 도덕만 내세웠다. 그렇다고 밥 돌 의원이 토론 때 클린턴의 사생활을 공략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클린턴 사생활 문제라면서 언급을 피했다. 특히 클린턴 정부 시절 경제가 호황이었다. 경제만 튼튼하다면 그깟 여자 문제야 대수가 아니지. 대선 때 마치 국민이 우리에게 그렇게 외친 듯했다. 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선거인단 379명을 확보하며 159명에 그친 돌에 압승을 거뒀다.     샌디에이고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지역 출신으로 한때 인기가 대단했던 듀크 커닝햄이 떠오른다. 그는 나와 같은 시기에 연방 하원에 진출했다. 커닝햄은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베트콩의 미그기를 격추한 전쟁 영웅이다. 나와는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 성격도 원만해서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 커닝햄은 자신의 지역구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많은 역할을 떠맡았다. 그중 하나는 캘리포니아 출신 공화당 의원들을 특별 만찬에 초대하는 일이었다. 그는 워싱턴에 있을 때 포토맥 강에 매달아 놓은 집같이 생긴 보트(House Boat)에서 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베트남전 영웅이 2006년 3월 3일, 8년 4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죄목은 최소 240만 달러의 뇌물수수와 탈세 등이었다. 커닝햄은 64세 나이에 8년 형을 선고받아 72살이 되어서야 출옥했다.     샌디에이고는 분명 멋진 도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좋은 추억을 준 곳은 아니다.     전당대회 때 우리(공화당원들)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 결과 민주당 정권을 4년 더 내줬다.       ━   나를 가장 많이 챙겨준 그분이 그립다     밥 돌 의원을 보내며   의원 시절, 연방상원에서 나를 가장 많이 챙겨주셨던 분이 밥 돌 의원님이었습니다.   상원의원 중 제가 가장 많이 만난 분입니다. 저를 특별하게 여겨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를 두고 “공화당에서 유일한 한인이자 아시안 의원”이라고 여기저기 동료 의원들에게 소개해줬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셨던 그분은 이탈리아 전장에서 오른팔을 다치셔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실물로 보면 정말 잘 생겼습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고 농담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했던 분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정치인 중 한 분이고, 1996년에는 정말 밥 돌 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남기고’ 시리즈를 하면서 여러 한국 대통령들께서 돌아가시더니 이번에는 미국 대통령 후보가 눈을 감았다는 소식에 착잡합니다. 세월 무상입니다.     돌 의원님, 1990년대 당시 연방의회에서 부족했던 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돌 의원님의 안식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클린턴 도덕성 공화당 전당대회 전당대회장 분위기 공화당 대선주자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1-12-08

성범죄자 엡스타인 전세기 명단에 클린턴·트럼프·앤드루 왕자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에 세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탑승했었다는 증언이 미국 법정에서 나왔다.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 조종사로 25년간 일한 로렌스 비소스키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연방지법에서 증언자로 나서 당시 항공기의 탑승자 중 일부를 공개했다.   그가 밝힌 탑승자 중에는 빌 클린턴·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영국의 앤드루 왕자 등이 포함됐다. 특히 앤드루 왕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온 여성 버지니아 주프레도 제트기에 탑승했다고 비소스키는 증언했다. 앤드루 왕자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또한 이 비행기에는 할리우드 배우 케빈 스페이시, 명 바이올린 연주자 이츠하크 펄먼, 미 상원의 조지 미첼, 존 글렌 의원 등도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비소스키는 이들이 엡스타인의 성범죄와 어떤 형태로든 연관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비행 중에는 조종실의 문이 항상 닫혀 있었으며, 성적인 행위를 목격한 적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비소스키는 당시 비행기에 '로리타 특급'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로리타는 여성 아동에 대한 변태성욕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날 비소스키의 법정 증언은 엡스타인의 전 여자친구이자 성범죄 공모 혐의를 받는 길레인 맥스웰의 재판에서 이뤄졌다.   영국 태생으로 미국·프랑스 시민권을 보유한 맥스웰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성년자를 모집해 소개하는 등 엡스타인의 아동 성범죄를 도운 혐의를 받는다.   비소스키는 맥스웰과 엡스타인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관계였지만, 로맨틱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며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장면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재판에는 엡스타인의 범죄 피해자가 '제인'이라는 가명으로 증언대에 나서기도 했다. 이 여성은 14살 때 엡스타인에게 학대를 당하던 당시 맥스웰이 여러 차례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제인은 1994년 여름 캠프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는 부유한 독지가'로 엡스타인을 소개받았으나, 학자금을 약속한 그가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밝혔다.   맥스웰은 지난해 7월 체포돼 브루클린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해 왔다. 그의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최고 80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BBC는 전망했다. 엡스타인 본인은 지난해 8월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합뉴스〉  클린턴 성범죄자 앤드루 왕자 엡스타인 본인 도널드 트럼프

2021-12-01

[김창준] 클린턴 탄핵, 개인적 친분-당론 사이서 고심 거듭

'왜 무기명 투표 안하나' 생각했을 정도 대배심 위증·공무집행 방해에 찬성표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 이슈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나도 이 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클린턴을 좋아했다.     탄핵 표결을 앞두고 ‘왜 미국 의회에는 무기명 투표가 없나’하고 원망했다. 여자 문제로 한 국가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계속 자문했다. 물론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분명 위증 행위다. 그런데 대통령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짓말이었다. 이를 놓고 그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논란이 거셌다.   무엇보다 나는 클린턴이 자수성가 대통령이라 존경했다.     1946년 8월 19일생인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난폭한 술주정뱅이 의붓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1963년 청소년 대표로 백악관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국제정치 학사 학위를 받았고, 로즈 장학생으로 1968년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1년을 보냈다.   이듬해 육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을 받았지만, 영국으로 돌아가 그곳 미국대사관 앞에서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벌였다. 나중에 귀국해 예일대학 법과대학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힐러리와 운명의 만남을 가졌다. 힐러리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후 아칸소 주 검찰총장을 거쳐 36세로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에 당선됐다.   클린턴 대통령을 여러 번 만났다. 내가 공화당 출신임에도 그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맞이했다. 내 가족 이름까지 기억하는 그에게 호감이 갔다. 사실 클린턴 주위에 미녀가 즐비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백악관에 미녀가 유독 많았다는 말도 워싱턴 정가에서 나돌았다.     또 클린턴과 실제로 내연의 관계를 가진 미녀도 한둘이 아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어린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당시 22세)와의 오럴 섹스가 국가적인 문제가 될 정도였다. 그의 오래된 바람둥이 기질이 결국 백악관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클린턴은 민주당 출신으로는 루즈벨트 이후 처음으로 8년을 재임한 대통령이다. 그런데 재선 도전을 선언했을 당시 그는 성 추문으로 위신이 만신창이가 된 처지였다.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당했다고 나섰다.   폴라 존스가 성희롱 당했다고 캐서린 와일리는 클린턴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클린턴에게 성희롱·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만 족히 10명은 나왔다. 이중 엘리자베스 그레이슨이라는 여성은 힐러리 여사에게 클린턴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도 했다.   이때 힐러리의 역할이 빛났다. 그가 훗날 연방상원의원, 국무장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데 있어 당시 그의 행동이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이가 많다. 힐러리는 많은 여성이 앞다퉈 클린턴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혔음에도 끝까지 남편 곁을 지켰다. 그는 “나는 내 남편을 믿고 사랑한다”고 두둔하면서 “이 모든 스캔들은 남편을 끌어내리려는 우파 진영의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섹스 스캔들이 줄줄이 나오자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역대 대통령의 명예를 더럽히고 성스러운 백악관에서 대통령 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사실상의 탄핵 이유였다. 드디어 1998년 12월 19일 연방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 네 가지 죄목 중 두 개는 부결됐고, 나머지 두 개(대배심 위증, 공무집행 방해)는 통과됐다. 나 역시 고심 끝에 당론에 따라 클린턴의 대배심 위증과 공무집행 방해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나만 통과돼도 탄핵이 가능했다. 통과된 두 가지 탄핵 조건을 연방상원에 통보했다. 마지막 결정권을 가진 상원에서 클린턴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전체 의석 중 3분의 2인 67표의 찬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원에서 통과된 두 죄목이 상원에서 모두 부결됐다. 클린턴은 그렇게 탄핵을 모면했다. 하지만 위증을 했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증은 박탈됐다.   정치적 위기와 달리 그의 국민적 인기는 대단했다. 지지율이 70%에 육박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동안 미국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 탄핵안이 나왔지만, 모조리 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모두 상원 부결로 끝났다. 이 말은 하고 싶다. 트럼프 탄핵안을 지켜보면서 민주당이 정말 더티한 정치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민주당은 내 의원 시절 민주당과 너무 차이가 크다.     그들은 트럼프-러시아 내통 스캔들을 사실상 조작했음에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트럼프를 탄핵하려 했다. 현재 존 듀럼 특검이 트럼프-러시아 내통 스캔들 조작에 누가 가담했는지 수사하고 있는데 정의가 반드시 구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를 포함해 보수진영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게 바로 듀럼 특검의 공명정대한 수사다.     어쨌든 당시 공화당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도 불륜 스캔들에 휘말리는 아이러니함을 보였다. 그는 스태프였던 20대 젊은 여성 칼리스타 바이셀과 불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를 깅그리치의 부인이 알아채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깅그리치의 부인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남편을 비난했다. 깅그리치에게 여러모로 망신이었다. 그녀는 법원에 이혼을 신청했다.     힐러리 여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정치적 야망이 있었던 힐러리는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남편을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의 용서로 남편을 살리면서 자신의 선출직 꿈을 펼칠 수 있는 교두보까지 마련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봤다. 힐러리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반면 수십년 만에 하원 다수당을 만든 대단한 치적을 세운 공화당의 영웅 깅그리치가 오히려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탄핵 실패 역풍과 불륜 스캔들에 따른 이혼으로 체면을 구겼다.     깅그리치는 칼리스타와 6년간 불륜 관계를 가진 뒤 결국 결혼을 했다. 그의 세 번째 부인이다.     원용석 기자김창준 클린턴 사이서 대통령 탄핵 탄핵 표결 자수성가 대통령 남기고 싶은 이야기

2021-10-20

'입원' 클린턴 전 대통령 상태 호전…"머지않아 퇴원할 것"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비뇨기 질환으로 입원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예후가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측근은 15일(현지시간) 클린턴이 혈류까지 번진 비뇨기 관련 염증이 있지만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인 패혈성 쇼크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책을 읽거나 자신의 입원 소식을 다루는 TV 뉴스를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병원에 함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입원 사실은 전날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전해졌다. 금주 초 비영리 기구인 클린턴 재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를 찾았는데, 피로감을 느껴 검사를 받은 결과 요도 감염 등 증상이 나타나 지난 12일 입원했다는 것이다. 중환자실 입원이어서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를 자아냈지만 사생활 보호와 안전 차원에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는 것이 병원 측 설명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과 통화하고 쾌유를 기원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부대변인은 통화 사실을 전하며 "두 사람은 조만간 다시 보길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잘 지내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전했다. 또 "그는 머지않아 퇴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내일일지 그다음 날일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75세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1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뒤 2004년 심혈관 바이패스(관상동맥우회술) 수술, 2005년 폐 질환 수술, 2010년 관상동맥 확장을 위한 스텐트 수술을 받았다. 고지방 식품을 즐겼던 그는 잦은 병치레 끝에 2010년부터 채식주의자로 식단을 바꿨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10-15

클린턴 요도감염 증상…UC어바인 응급실 입원

  비뇨기 관련 질환으로 입원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5일 나흘째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금주 초 비영리 기구인 클린턴 재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주를 찾은 75세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피로감을 느껴 검사를 받은 결과 요도 감염 등 증상이 나타나 지난 12일 UC어바인 메디컬센터 응급실에 입원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4년 일부 혈관이 막혀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았다. 6개월 후에는 왼쪽 흉강에서 체액과 일부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한 체중 변동을 겪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10년 관상동맥을 넓혀주는 스텐트까지 이식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감자튀김 등 고지방성 음식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퇴임 후 잇단 질환에 시달리자 2010년 식단에서 육류와 생선, 유제품을 제외하는 채식주의자로 변모했다. 실제로 2013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식단을 전한 한 기사를 보면 육류를 모두 뺀 채 채소와 견과류, 과일로 점심을 먹는 모습이 소개돼 있다. 이 기사에는 채식으로 바꾼 뒤 몸무게가 30파운드 이상 줄었지만 20~30년 젊은 직원들보다 더 활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클린턴 전 대통령 측은 병상에서 일어서 걸어 다니는가 하면, 병원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라고 전했다. 폭스뉴스는 2~3일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

2021-10-15

[김창준] 대통령의 단독면담 요구, 바뀐 위상 실감

    반대 부딪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찬성 부탁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놀라운 친화력에 감동  1993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의회 사무실에서 지역구로부터 올라온 여론조사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서가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누구길래 저렇게 호들갑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백악관에서 온 전화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오후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자는 초청이었다.   백악관에서 보낸 리무진을 타고 대통령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경호원들의 절도 있는 경례와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갔다. 머릿속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이민생활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30여 년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가난한 나라에서 단돈 500달러를 들고 혈혈단신 이역만리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을 밟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일본 제국주의에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동족상잔의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와 겪은 온갖 고난을 뒤로하고 당당히 세계 최강국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이 된 나를 돌아봤다.     내 인생이 미국에 와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긴 이뤘구나.’ 새삼 자부심과 긍지도 느꼈다.   미국은 세계 제1의 정치, 경제, 군사 강국이다.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인물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반갑게 맞이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전에도 클린턴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독대는 처음이었다.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이라 다소 긴장됐다. 클린턴은 그런 나를 배려한 듯,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골프와 내 가족 얘기부터 했다.     자신과 반대 정당 초선 의원인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또 이미 나에 대한 중요 정보는 다 파악한 모습이었다. 내 골프 핸디가 ‘20’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내 샷 비거리가 좀 짧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줬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아, 이게 빌 클린턴의 매력이구나. 괜히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아니구나.’     내 아이들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족 안부를 물었다. 대통령이 처음 마주 앉은 초선 하원의원 자녀들 이름까지 외워 언급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어젠다를 위해 내 표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내 마음부터 잡아야 했다. 하지만 경위야 어쨌든 그 성의와 기억력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은 집무실에 장식해 놓은 각종 그림과 조각에 관해 설명해 나갔다.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도 섞어가면서. 나를 보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한 한인 의원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연거푸 칭찬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화술이 대단했다.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를 집무실까지 부른 이유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안 때문이었다.     취임 첫해를 맞은 클린턴에게 NAFTA는 그의 정치운명을 건 이슈였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조 편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각종 노조 힘은 어마어마했다. 이들은 NAFTA가 통과되면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이 밀려들어와 미국인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이유로 협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노조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많은 민주당 의원이 줄줄이 NAFTA 반대 성명을 내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소속의 클린턴 대통령이 앞장서 NAFTA 지지를 선언하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황했다. 클린턴은 급진 정치인이 결코 아니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이 적절하게 섞인 중도파 정치인이었다. 경제정책에서는 보수에 가까웠다. NAFTA를 보면 오히려 그는 표밭인 노조에 타격을 준 셈이었다.     물론 이러한 클린턴의 결정이 먼 훗날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됐다. NAFTA로 직격탄을 맞은 러스트벨트와 다수의 노조가 훗날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정치다.     당시에는 클린턴이 전통적 민주당 이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지금도 NAFTA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제학자가 많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철저하게 민주당 이념에 충실하면서도, 경제와 국방에서는 공화당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용주의 정책을 추구한 클린턴 인기는 대단했다.     NAFTA는 민주당 지도자들과 의원들,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조 등의 맹렬한 반대와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음에도 클린턴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만큼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NAFTA에 전반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클린턴이 속한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거꾸로 야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보기 드문 정치풍경이 연출됐다.     사실 NAFTA에 필요한 모든 기초공사는 전임인 조지 H. 부시 대통령 때 마련됐다. 따지고 보면 클린턴은 부시 전 대통령이 다져 놓은 국가적 중대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NAFTA를 통과시킨 주인공은 클린턴 대통령이었기에 지금은 NAFTA 하면 클린턴 얼굴부터 떠오른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클린턴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전 NAFTA 비준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의원들 설득에 ‘올인’하고 있었다.   나는 NAFTA 비준 표결이 임박한 시점에 찬반 입장을 확실히 내놓지 않았다. 지역구가 멕시코 국경에서 멀지 않은 탓에 지역 구민 반응을 좀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만큼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나를 백악관에 초청한 것은 내가 NAFTA 비준안에 관해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30명 정도에 달하는 미결정 의원들 선택이 비준안 통과에 결정적이라고 본 클린턴은 나를 초청해 단독 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결국 나는 찬성표를 던졌다. 클린턴과 전임인 부시가 모두 그토록 원했던 NAFTA는 통과됐고 수십 년 동안 협정이 유지됐다. NAFTA가 논란이 많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도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기업들은 큰 이익을 봤지만 우려했던 대로 미국 제조업과 러스트벨트 상권이 무너졌다. 트럼프는 대선 캠프 때 줄기차게 NAFTA를 비난하며 즉각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26년 만에 NAFTA는 트럼프 손에 의해 폐지됐다. 트럼프는 무역수지에 있어 미국에 여러모로 더 유리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진 내용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통과시켰다. USMCA가 지난해 7월 1일 발효되면서 NAFTA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용석 기자

2021-10-13

베를린 → 서울 → 도쿄 → 워싱턴…힐러리의 '2박3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16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13~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무장관 회담을 마치고 이날 오후 서울공항으로 입국한 클린턴 장관은 1박2일 모두 16시간을 체류한 뒤 17일 정오께 일본으로 떠난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16일 저녁 한남동 외교통상부장관 공관에서 김성환 장관과 회담을 하며 17일 오전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강연한 뒤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이다. 17일 정오께 일본에 도착한 뒤에는 4시간 정도 체류하다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클린턴 장관의 체류시간은 한ㆍ일 외교가의 적지 않은 관심을 끌어왔다. 2009년 2월 아시아 순방 당시엔 한국 체류시간이 만 하루도 안되는 데 비해 일본에는 2박3일간 머무르자 '한국 홀대'라는 지적이 제기됐으며 일본에서는 지난해 5월 클린턴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일본에 4시간만 체류하자 미ㆍ일간 냉기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클린턴 장관의 이번 한국방문의 목적과 관련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과 여진 피해를 우려한 '숙박용 방한'이란 설도 제기됐다. 국내 한 언론은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 말을 빌려 "클린턴 장관은 베를린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담 참석 후 일본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막판에 한국 방문 일정이 추가된 것으로 안다"면서 "일본에서 자면 방사능 오염과 여진 피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잠은 한국에서 자고 다음 날 당일치기로 최대한 짧게 일본을 방문한 뒤 바로 미국으로 귀국하려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 언론은 또한 "지진이 난 일본에 더 일이 많은데 일본에서 하루도 묵지 않는 것은 안전 문제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신복례 기자

2011-04-15

[한인언론 첫 인터뷰-유나 리, 북한 억류 그후] "나중에 꼭 웃자" 남편이 보낸 소포가 희망의 끈

석방 이후 1년여 칩거 생활…많은 분께 걱정 끼쳐서 죄송 국경부근 독방감옥서 4일…땔감 냄새가 유일한 위안 지금은 쉬지만 다큐멘터리 사랑…아이들 삶에 대한 제작 맡을 것 지난해 8월5일 140여일간의 북한 억류 생활에서 벗어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LA인근 버뱅크 공항에 내렸던 TV 방송 프로듀서 유나 리씨. 14개월이 지났다. 오프라 윈프리쇼 등에 출연했지만 당시엔 표정이 밝지도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4일 한인 언론과는 첫 인터뷰를 위해 기자를 만난 이씨는 경직됐던 예전보다 훨씬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잘 웃고 농담도 잘했다. -그동안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좁은 곳에 혼자 있으면 좀 이상해지고… 갇혀 있던 곳이 생각났어요. 많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돌아온지 한 1년쯤 지나 올해 9월 정도부터 많이 괜찮아졌어요. 원래 다른 사람들과 아주 잘 어울린다든지 나선다든지 하는 성격은 못돼요." -한인 미디어엔 모습을 안 보이고 미국 방송에만 출연한 게 좀 의아했는데. "출연을 안 하고 싶었는데… 회사(커런트 TV)에 소속돼 있었고 회사가 석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줬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직원이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희망하기에 출연을 하게 됐습니다." -좀 내성적인 성격 같은데요. "맞습니다.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줄 욕심은 많은데 제가 중심에 서는 건 부끄럽습니다(웃음). 심지어 마켓이나 찜찔방 같은 데서 '유나 리 기자 아니세요?'하고 누가 알은체하면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반갑게 '아 안녕하세요?' 이래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더라구요. 너무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접 보니 가냘픈 체구인데 어떻게 대담하게 북한 국경까지 갈 생각을 했습니까? "2004년 나온 '서울 트레인'이라는 탈북자 관련 다큐가 있었어요. 그 걸 방송용으로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상세히 보게 됐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나는 뭘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필드 프로듀서로 나서 첫 작품 제작을 위해 북한 국경으로 간 거였어요." -결국 프로그램화 되지는 못했죠? "네. 붙잡혀 끌려가는 과정에서 이미 찍었던 테이프를 일부러 손상시켜 못 쓰게 만들었는데 일부는 뺐겼어요. 그래도 메모들과 제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억류 돼 있는 동안에 일기도 썼구요. 다큐멘터리를 제작 못한 것을 책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쓰면서 마음의 정리가 많이 됐습니다."(유나 리씨는 취재 과정과 억류 당시의 경험을 담은 책을 지난 9월 출간했다.) -북한군에 잡힐 때 상황과 억류 생활은. "이젠 '다 지난 일이다'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 북한 사이 두만강 국경이었어요. 촬영 일정 9일 중에 8일째였습니다. 저와 로라 링 기자 그리고 남자 프로듀서 안내원 이렇게 4명이었습니다. 3월 17일이었는데 두만강은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안내원이 강변에서 미리 연락해둔 북한 경비원에게 신호를 보낸다며 부엉이 소리를 냈는데 답이 없었죠. 그런데도 안내원은 인신매매 경로를 보여 주겠다며 계속 북한 쪽으로 안내했습니다. 결국 북한 강둑을 밟게 됐는데 안내원은 탈북자들이 탈출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거주지를 손으로 가리키는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왔습니다. 강 중간 쯤 왔을 때 뒤에서 소리가 나서 보니 총을 든 북한군 두 명이 쫓아 오고 있었어요. 달아나서 중국 강변으로 나왔는데 로라가 다리를 다쳐서 못 움직이는 겁니다. 그냥 체포당했습니다. 분명히 중국 국경 안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북한군은 우리를 끌고 갔습니다. 풀이나 흙을 잡히는 대로 붙들며 저항했는데 결국 끌려 갔습니다." -엄청난 공포를 느꼈겠습니다. "국경 부근의 독방 감옥에서 4일 정도 있었는데…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춥기는 또 엄청나게 추웠고 추위 때문에 감옥에서 장작 나무를 땠는데 예전 할머니가 장작을 때실 때 맡던 그 냄새가 나는 거예요. 많이 울었지만 그 냄새가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들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도 못잤습니다. 평양으로 압송해 갈 때는 그들이 산기슭에 자동차를 세우고 '내려서 공기를 좀 쐬라'고 했는데 그 때는 '내리면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리지도 못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나요. "재판 받고 나면 무죄가 되면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12년 노동교화형이 나왔죠. 그 기간을 탄광 같은 데 가서 일해야 하는건데… 항소하려 했는데 재판 한번으로 끝이더라구요. 그때는 정말 절망이었습니다.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죽을 결심을 하셨어요? "… 제가 잠을 잘 못자니까 수면제를 줬는데 그걸 모았어요. 어느날 '내가 죽어버리면 가족들은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바로 30분 뒤쯤 미국에서 남편이 보낸 소포가 온 거예요. 안에는 제가 필요한 물건들과 노트가 있었는데 '이 노트에 지금 일을 잘 기록해서 나중에 꼭 웃으면서 회상하자'는 뭐 그런 내용의 편지가 있었어요. 다시 살아갈 힘도 그 소포에서 얻었어요. 12년형 판결이 6월8일에 나왔으니 귀환할 때까지 두달은 아직도 생각하기 싫은 순간입니다." -LA 버뱅크 공항에 내릴 때 기억도 나죠? "원래 로라가 먼저 내리기로 했어요. 비행기가 착륙해서 가족들이 보이자 클린턴 대통령이 저희를 조종석으로 데리고 가서 밖을 보게 했습니다. 딸과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제가 엉엉 울었어요. 로라가 '언니가 먼저 내려라'고 해서 제가 먼저 내렸고 그냥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오신 건가요? "1년 정도는 정말 어디 말도 못하고 힘들었어요. 이젠 좋습니다. 회사는 당분간 그만 두고 딸 야단도 치고 남편한테 적당히 바가지도 긁는 평범한 주부로 돌아왔습니다.(웃음)." -어려운 일을 경험했는데 앞으로는 어떤 삶이 펼쳐질 것 같습니까? "가족의 중요함을 절절히 느꼈어요. 북한 감옥에 있을 때 꿈을 꿨는데 제가 노래자랑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간에 가사를 새까맣게 까먹었어요. 망신스러워 죽겠는데 딸이 무대로 뛰어 올라 오더니 같이 불러주는 거예요. 둘이 손잡고 끝까지 신나게 불렀어요. 남편은 아래서 박수치고 있고. 꿈에서 깨어나 희망을 보았죠. 지금도 그 마음입니다." -가족 말고 세상 일은요? "전 다큐멘터리를 사랑합니다. 아이들의 삶에 관한 제작을 계속 할려구요. 특히나 요즘 공립학교 시스템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아이들의 윤택한 생활과 환경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유나 리는 유나 리(Euna Lee)씨는 한인 시민권자 저널리스트다. 1996년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로 유학와서 영화와 방송을 전공했고 2005년부터 올해초까지 커런트TV(Current TV)에서 일했다. 2009년 3월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 ‘비상구로의 탈출(가제)’ 제작 차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를 취재하다 동료 로라 링과 북한에 억류돼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석방 협상을 위해 북한을 전격적으로 방문해 김정일과 회담했고 두 사람은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왔다. 천문권.부소현 기자 cmkn@koreadaily.com

2010-11-04

"북한 감옥서 자살도 생각…버티게 한 건 가족이었다"

지난해 8월 북한과 중국 국경 지대에서 탈북자 실태 다큐멘터리를 취재하다 북한군에 피랍돼 140여일간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유나 리씨가 처음으로 한인 언론과 만났다. LA에 거주하고 있는 이씨는 4일 중앙일보.중앙방송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피랍 당시 상황과 그동안의 정서적 회복 과정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이씨는 "북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잠을 못잔다고 받은 수면제를 모아 자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면서 "그러나 남편이 희망을 북돋워주는 내용의 편지와 소포를 보내줘 다시 삶의 끈을 붙잡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피랍 순간에 대해 "일행 4명이 안내원을 따라 가다가 북한쪽 강둑을 밟게 됐는데 위험한 생각이 들어 중국 땅으로 돌아왔으나 로라 링 기자가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북한 군인이 중국 땅까지 들어와 우리를 끌고 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특사로 갔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났던 순간에 대해 "큰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머리가 하얀 키 큰 아저씨가 서 있는데 뒤에서 광채가 나더라"며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격을 떠올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이씨와 로라 링 기자를 안아주며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고 말해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억류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중국계인 로라와 달리 저는 한국 출신이라 북한 조사원들이 더 미워하는 것 같았다. 같은 민족으로 미국인이 돼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반역자로 몰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1년 여의 생활에 대해 "좁은 곳에 혼자 있으면 겁도 나고 우울증에 시달렸다"면서 "이제는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을 찾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한 억류 생활을 솔직히 담은 책 '이제 세상은 더 커졌다(The World is Bigger Now)'를 지난 9월 영문판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천문권.부소현 기자

2010-11-04

첼시 결혼비용 '500만불'…식장 주변 비행금지 지정

베일에 싸인 채 세계인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는 첼시 클린턴(30)의 결혼식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29일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31일 유대인 마크 메즈빈스키와 화촉을 밝히는 무남독녀 첼시의 결혼식에 500만달러 이상을 쓸 것으로 보인다. 영화배우 탐 크루즈-케이티 홈스 부부가 결혼식 비용으로 겨우(?) 200만달러를 썼던 것과 비교하면 웬만한 할리우드 배우 커플도 놀랄만한 거액이다. 뉴욕주 라인벡의 개인저택에서 열릴 예정인 이번 결혼식은 언론 노출을 막기 위한 캐노피 설치에만 20만달러가 들었다. 꽃 장식과 첼시가 두를 보석 청첩장과 식순 인쇄 경비원 고용 비용도 엄청나다. 음식값만 15만달러 음식을 담을 그릇과 테이블에도 5만달러가 들어가고 결혼식 케이크는 5000달러짜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웨딩 드레스는 베라 왕이나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작품으로 비교적 저렴한 1만달러 수준이다. 이밖에 하객들은 첼시와 친분이 있는 사람 중 400~500명 정도가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가수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CNN 창업자 테드 터너 등이 결혼식에 초대됐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지만 이같은 하객 명단 자체가 모두 루머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연방항공청(FAA)는 "결혼식이 열리는 31일 오후 3시부터 8월1일 새벽 3시30분까지 뉴욕 허드슨 강을 따라 비행하는 상공을 비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 파파라치들의 항공 촬영을 원천적으로 금지시켰다. 봉화식 기자 bong@koreadaily.com

2010-07-29

31일 첼시 클린턴 결혼식, 또다른 신부엔 '악몽'

당신이 2년동안 준비해 온 결혼식 날 가까운 곳에서 첼시 클린턴(사진)의 결혼식이 열린다면 어떨까. 첼시의 결혼식으로 거리에는 파파라치가 붐비고 하늘에는 군용 헬리콥터가 등장하며 도로가 차단되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게 돼 울상이 된 불운의 예비부부가 있다고 ABC방송이 보도했다. 28세의 엠 하다드-프리드먼과 알렉스 베로 커플은 첼시 클린턴의 결혼식이 열릴 뉴욕주 라인벡 인근의 허드슨밸리를 자신들의 결혼식 장소로 2년 전 예약했다. 10년 전 미국 뉴욕 바드대학에서 만나 그 대학 캠퍼스 예배당 계단에서 결혼을 약속한 이들에게 허드슨밸리는 결혼식 장소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 하지만 첼시의 결혼식으로 인근 도로가 차단되기 때문에 베로 부부의 하객들은 라인벡 남부지역에서 열릴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타고 2.5마일 이상을 더 달려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베로 부부의 피로연 음식을 맡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첼시 클린턴 결혼식의 리허설디너(결혼식 전에 열리는 저녁식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이들 예비부부의 결혼식은 '악몽'으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고 ABC는 보도했다. 하다드-프리드먼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첼시가 나에게 특별해야 할 날을 끔찍하게 만들었다"고 한탄했으나 "다행히도 2년전 미리 호텔을 예약한 덕분에 베로 부부의 결혼식 하객들은 첼시 클린턴의 결혼식에 참석할 세계 유명인사들을 제치고 호텔에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며 안도했다.

2010-07-27

클린턴 부부 외딸 첼시, 31일 뉴욕 북부서 결혼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부부의 외동딸 첼시 클린턴이 31일 뉴욕주 라인벡 외곽의 개인 저택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익명을 요청한 이 지역 주민은 “지역 출장연회 업체가 음식을 담당하며 식장 정비를 위해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고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클린턴 집안의 대변인은 2일 이에 대한 확인과 언급을 거부했다. 무남독녀 외딸인 첼시는 유대계 남성과 오랫동안 교제해 왔으며 결혼식도 유대교 스타일로 치를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칸소 주지사 시절 아들을 원하던 빌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제발 아이 하나만 더 낳자”고 부탁하자 힐러리는 “전문 변호사로 바쁜데 무슨 둘째타령이냐. 나는 집에서 쿠키나 굽는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매몰차게 거절, 남편의 분노를 사며 결국 서먹서먹한 부부관계는 나중에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든 첼시는 백악관에서 잦은 부부싸움을 목격하며 즐겁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출입기자단으로부터 ‘백악관의 미운 오리새끼’란 별명으로 통하기도 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부친이 “백악관에서 가까운 워싱턴DC의 가톨릭 사립명문 조지타운대에 입학하라”는 요청에 “동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북가주 스탠포드로 간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봉화식 기자 bong@koreadaily.com

2010-07-02

클린턴 전 대통령 퇴원…15일쯤 업무 복귀

빌 클린턴(63) 전 대통령이 심장수술 후 12일 퇴원 뉴욕시 외곽 차파쿠아 자택으로 돌아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보좌관인 더글러스 밴드는 성명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이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뉴욕 장로병원을 떠났다"며 "며칠내 재단업무와 아이티 구호 및 복구 활동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은 11일 이 병원에 입원해 심장관련 수술을 받았다. 테리 매컬리프 전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내가 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곧바로 전화통을 붙잡고 사람들에게 아이티에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병원 심장전문의인 엘런 슈워츠 박사는 클린턴이 빠르면 15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클린턴이 며칠간 가슴에 통증이 있었다고 호소해 검사해보니 이전에 수술한 바이패스(심장 측관형성) 중 하나가 막혀 있었다며 막힌 바이패스를 여는 대신 원래 막혀 있던 동맥 중 하나를 다시 열어 2개의 스텐트를 삽입했다고 말했다. 수술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클린턴은 2시간 후에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심장수술을 한 적 있는 로버트 미흘러 박사는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이 그의 심장질환 치료의 마지막 해답이 아니라며 클린턴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뉴욕 몬테피오레-아인슈타인 심장센터 원장인 미흘러 박사는 CBS방송 '얼리 쇼"에서 심장실환은 재발할 수 있다며 스텐트가 1년안에 제기능을 못하게 될 확률도 10~30%라고 설명했다.

20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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