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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4-04-10

[노트북을 열며] 상실의 시대를 건너는 법

잃음과 잊음의 무의미한 반복. 삶은 결국 그것뿐일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계속 잃어가는 것이라고 ‘죽음학(thanatology)’ 전문가인 임병식 한신대 교수는 말했다. 잃는다는 건 고통을 수반한다. 지난해 세밑, 세상을 잃겠다는 선택을 한 고(故) 이선균씨 소식은 고통스러웠다. 마녀사냥으로 얼룩졌던 댓글 창이 경찰과 언론에 대한 비난으로 표변하는 걸 목도하는 과정은 씁쓸했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유서를 남긴 그의 죽음이 불온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건 아닌지. 온당한 애도가 아닌, 산 자들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 감정표출과 ‘정의의 사도’를 표방하는 새된 목소리들이 넘친다. 임 교수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쉽게 정죄하면서 오인한다. 남을 나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판단한다.”   남겨진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아버지의 극단적 선택을 겪었던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문학동네)의 황웃는돌 작가의 말을 감히 위로와 함께 전한다. “삶은 결국 강물이다, 흘러야 하고, 흘러간다.” 슬픔은 분노와 망각이 아닌 슬픔과 애도로 맞아야 한다. 눈물이 날 땐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는 게 맞다고 황 작가는 전한다. “울고 싶은만큼 울어도 돼”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을 독자들이 여럿일 것 같다.   죽음부터 일방적 이별까지, 여러 얼굴을 한 상실은 삶의 일부다. 갓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괜찮은 슬픔(Good Grief)’엔 “슬픔을 회피하는 건 곧 사랑을 회피하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상실로 인한 슬픔을 잊으려 발버둥 치는 건 곧 삶에 대한 사랑에 눈을 감는 것이 된다는 의미 아닐까. 상실과 슬픔을 온전히 느낀 뒤 삶의 다음 장(章)으로 넘어가는 게 순리라고 동서고금 철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상실의 슬픔은 용기 있게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거울을 건네준다”고 했고,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이(1828~1910)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만이 슬픔을 느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남겼다.   지금 한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매운맛’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의 말도 참고할 만하다. “행복은 환상”이라 설파했던 그는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오래 살아봐야 한다”고 했다. 죽음은 그자체로 애도하면서도, 무의미해 보이는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게 우리 시시포스들이 굴려야 하는 돌덩이가 아닐까. 고 이선균 배우의 명복을 빈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팀장노트북을 열며 상실 철학자 아르투어 동서고금 철학자들 이선균 배우

2024-01-10

2023년 베스트셀러…'호모 프롬프트' '도파밍'…알듯 말듯

신년을 맞은지도 며칠 안됐는데 벌써 1주일이 지나갔다.  이제 올해도 51주밖에 남지 않았다. 새해 결심(New Year Resolutions) 중에 책읽기를 골랐는데도 아직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려워 하지 말라. 책 읽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일단 베스트셀러를 읽어볼 만 핟. 2023년 베스트셀러중 시니어들이 읽을 만한 책을 몇 권 꼽아봤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2023)   지난해 한국에서 '쇼펜하우어 신드롬'을 일으킨 화제의 책이다. 마흔의 삶에 지혜를 주는 쇼펜하우어의 30가지 조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특히 2023년 8월 출간됐는데 전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철학 교양서로는 최초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많은 사람이 나이 들며 겪는 환경과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지혜를 책에서 찾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철학과 함께 풀고 있다. 특히 이 책이 일으킨 '쇼펜하우어 신드롬'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생각과 말이라면 시대와 상관없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문학가, 법조인, 음악가, 정치인 등 각 분야에 이론적 토대와 영향을 준 세계 거장들의 철학자다. 프리드리히 니체, 쇠렌 키르케고르,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 카를 융, 바그너,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프란츠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에밀 졸라 등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영감을 받았다. 특히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책 한 권으로 철학자의 길을 걸었으며 바그너는 쇼펜하우어를 평생 찬미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했지만, 그는 인생사를 고통으로만 결론 짓지 않았다.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인생의 무게 중심이 자기 바깥에 있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다른 하나는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자기 밖에서 자기 안으로 옮기는 '진짜 행복'을 위한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에 고난과 괴로움은 어느 정도 필요하며,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서 누가 빼앗을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 자기 긍정, 자부심, 자립심, 당당함, 품격을 얻을 수 있다.   ◆세이노의 가르침(세이노, 2023)   블로그 등으로 유명한 재야의 명저인 '세이노의 가르침'이 2023년 정식으로 출간됐다.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인 필명 '세이노'는 2000년부터 발표된 주옥같은 글들이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의 조언은 매우 실용적이고 심지어는 현실적이다.     정식 출간돼 나왔지만 이 책은 부자 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목차를 훑어보면, 재테크 기법 같은 것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돈이 삶의 우열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대신,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스스로의 인생을 위해 삶의 자세부터 바로잡고 '피보다 진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또한 저자는 돈에 대해서는 물론, 직접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가난과 부의 실체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사회에서 돈은 마치 '피'와 같다. 피가 우리 몸 전체를 순환하며 생명을 유지시키듯,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피가 부족한 이를 위해 피를 나누듯 썼다. 어디의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살아가면서 소중한 걸 포기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설명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 외, 2023)   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태어난다. 첫 출간본부터 대학원 전공자들이 나서서 만든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다. 특히 2023년은 챗GPT의 출현으로 세상이 크게 요동쳤다. 챗GPT만큼 충격을 주는 것은 없었다. 이에 2024년도 다를 바 없다. 모든 학자들이, 모든 책들이 'AI'와 '인공지능', '챗GPT'를 얘기하는 이 시점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4'는 인간의 역할 혹은 역량에 주목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올해 덜 놀랄 것같다.    ▶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 분초사회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이다. 시간이 돈만큼 혹은 돈보다 중요한 자원으로 변모하면서 '시간의 가성비'가 중요해졌다. 단지 바빠서가 아니다. 소유 경제에서 경험 경제로 이행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볼 것, 할 것, 즐길 것이 너무 많아졌다. 초 단위로 움직이는 현대 플랫폼 경제에서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며, 우리는 가속의 시대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Rise of 'Homo Promptus' 호모 프롬프트  프롬프트는 AI에게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 인간이 던지는 질문을 뜻한다. "AI는 프롬프 트만큼 똑똑하다." 인간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 이다. 이 키워드가 '호모', 즉 인간으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AI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화룡점정'의 역량은 사색과 해석력을 겸비한 인간만의 것이다.    ▶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육각형인간  완벽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육각형인간'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강박적인 완벽함의 반향으로 작용한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목표라면, 포기를 즐기는 놀이이자 타인을 줄 세우기 위한 잣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육각형인간 트렌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하나의 놀이다.    ▶Getting the Price Right: Variable Pricing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오늘날 '일물일가'의 법칙은 사라졌다. 소비자의 지불 의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빅데이터의 활용과 실시간으로 모든 변수를 측정해내는 AI의 발달은 시간, 장소, 유통 채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일물N가'의 세상을 열었다. 소비자도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 이제 '최저가'가 아니라 '최적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On Dopamine Farming 도파밍  도파민 도는 일 뭐 없나? 재미는 늘 인간의 화두였지만 요즘만큼 재미를 좇는 일이 일상이 된 적은 없었다. 게이머가 '파밍'하며 아이템을 모으듯, 사람들은 재미를 모은다. 엉뚱하고 기 발하고 지극히 무의미한 일들이 주목을 끌고 '역대급 도파민'이 매번 기록을 경신한다.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도파밍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es 예전 아빠들 같지않은 밀레니얼들 취미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 된 오늘날, 결혼 후 남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전에 없이 달라 졌다. 가사 노동과 육아, 가족 관계의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다. 권위적 가장에서 평등한 동반자로 역할이 바뀌어가는 요즘남편,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6시 신데렐라'를 자처하는 없던아빠들이 가정과 기업, 나아가 소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Expanding Your Horizons: Spin-off Projects 스핀오프 프로젝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쓰이던 스핀오프가 이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비교적 저 예산과 유동적인 전략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해보는 스핀오프는 기업 입장에서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고, 또 성공할 경우 예상 밖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개인들도 커리 개발을 위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변화의 시대, 스핀오프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 디토소비  "나도"라는 의미의 'Ditto'가 소비 현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는 사람, 콘텐츠, 유통 채널의 선택을 따라 하는 디토소비는 구매 의사결정에 따르는 복잡한 과정과 시간을 건너뛰어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FOBO, 즉 실패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손쉬운 방편, 디토소비가 뜬다.    ▶ElastiCity. Liquidpolitan 리퀴드폴리탄 인구는 감소하고 광역 교통은 발달하는 현대사회에서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소 비자가 늘어나며, 지역은 이제 하나의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이동하고 흐르는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정주인구보다 관계인구에 방점을 찍는 유연도시 리퀴드폴리탄이 주목받는다. 불균형 발전과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이 시대에 리퀴드폴리탄은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Supporting One Another: 'Care-based Economy'돌봄경제  인간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초개인화하는 나노사회, 1분 1초가 아쉬운 분초 사회에서, 돌봄의 시스템화가 중요해졌다. 돌봄은 이제 단지 연민이 아닌 경제의 문제다. 나 이와 건강 상태에 따른 사회적 약자들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세상이다. 돌봄경제는 바로 나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 조직과 사회의 경쟁력이다.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정희원, 2023)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이 감속노화 실천법을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노화'라고 하면 주름진 얼굴, 굽은 허리, 느린 걸음걸이 같은 특징적인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노화의 속도나 정도는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70세가 되었을 때 젊은 성인과 비슷하게 활기찬 삶을 영위하느냐, 침상에 누워 시간을 보내느냐의 차이는 지금부터의 내재역량 관리에 달렸다. 실제 미국의 성인 72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신체 활동, 식사, 수면, 사회관계, 스트레스 등의 생활 습관 요인에 따라 40세를 기점으로 남성은 24년, 여성은 21년의 수명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백세 시대,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은 몸과 마음이 젊은 상태, 내재역량이 충만한 상태일 때 가능하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면 단순히 가늘고 길게 사는 게 아니라 활력 넘치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이 책은 생애 주기에 따라 생활의 요소를 조절해 노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내재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양, 운동, 스트레스 및 정신 건강 관리법을 실천하면 누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또래보다 느리게 나이 들 수 있다.   [이외 리스트]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앨런 피즈, 2020): 최신 뇌과학이 밝혀낸 성공의 비밀   ◇인생은 순간이다(김성근, 2023): 82세 현역 야구 감독 김성근 에세이     ◇돈은 모든 것을 바꾼다(김운아,2023): 실제 경험으로 깨달은 부자 되는 법     ◇모순(양귀자, 1998): 양귀자 3번째 장편소설   ◇하나님의 음성(김병삼, 2023): 말씀과 함게 하는 거룩한 습관, 매일만나 365 장병희 기자베스트셀러 프롬프트 쇼펜하우어 신드롬 트렌드코리아 시리즈 철학자 과학자

2024-01-07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3-12-06

[신 영웅전] 존 스튜어트 밀

세계적 명저로 꼽히는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생애는 고독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3세 때부터 라틴어를 가르치고 그리스 고전을 읽도록 했다. 밀은 8세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논박하는 글을 썼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당대의 대학자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밀은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릴 만큼 삶이 힘들었다. 그는 “나에게는 소년 시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같은 또래들보다 25년 조숙한 사람이었다. 그의 『자서전』에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거의 없다. “엄마는 차가운 대리석 같았다”는 한 구절만 생각난다. 젊은 시절 한때 돈이 안 드는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는데, 하느님도 그런 선거에서는 낙선했을 것이다.   밀은 애 딸린 유부녀를 사랑했다. 해리엇 테일러라는 그 여인은 교양과 지성과 미모를 두루 갖췄다. 밀은 “내 생애에 여인을 사랑한 추억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죽자 45세에 테일러와 결혼했다.   테일러는 밀에게 친구이자 동료 학자이자 어머니였다. 부부는 남부 프랑스 명승지인 아비뇽을 여행하며 『자유론』 탈고를 준비하다가 1858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자유론』의 서문은 ‘아내에게 바치는 글’이 됐다. 밀은 아내를 아비뇽에 묻고 그 무덤 옆에서 15년을 더 살다가 영면했다.   밀은 늘 아내의 무덤 주위를 산책했는데, 그럴 때면 한 청년이 무덤 곁에서 땅을 파며 무엇을 찾고 있었다. 아비뇽 중학교의 물리 담당 교사로 벌레를 공부한다고 했다. 형편이 넉넉한 것 같지 않았다. 밀은 그의 탐구심을 기특하게 여겨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그가 뒷날 저 유명한 『곤충기』를 남긴 앙리 파브르(1823~1915)였다. 천재는 그렇게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갔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스튜어트 아비뇽 중학교 그리스 철학자 해리엇 테일러

2023-07-23

[문장으로 읽는 책]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잘 사는 사람들, 즉 삶에 탁월한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가졌다. 이 사람들의 성격과 덕성은 모두 즐거움과 고통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성격과 도덕적 덕성은 행동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행동적이라는 것은 이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성격과 덕성이 감정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대부분 감정의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진우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얼핏 도덕과 감정을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용문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은 감정교육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교수가 ‘철학이 곧 삶’이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삶의 지침을 찾은 책이다. “중도보다는 극단이 훨씬 더 매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가? 특정한 정치 이념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물음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삶을 보지 못하는 이념은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삶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사느냐가 성격을 결정짓는다.” “균형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묘한 거리다.” “미덕도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면 악덕이 된다.” 등에 밑줄 쳤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균형 기술 철학자 이진우 도덕적 덕성 대부분 감정

2023-05-17

철학자 김상일 박사 "탈락…지나고 보니 천만다행"

"하루 하루가 아깝고 조급한 마음마저 있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은퇴한 시니어지만 저술작업으로 매우 분주한 철학자 김상일 박사가 최근 저서 하나를 출간해 인터뷰 했다. 그가 출간한 책은 '오징어게임과 라캉의 욕망이론(한국의 놀이문화와 정신분석의 세계)'(도서출판  동연)이다. 1941년생인 김 박사의 이번 저서는 26번째다. 그는 평생을 일제 식민사관과 서양 학문에 대한 사대주의 극복을 위한 연구와 저술 작업을 해왔다. 2006년 한신대 철학과 교수직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와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번 저서도 서양학문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고유사상 수립을 위해 쓴 책이다. 그는 "이제 팔순을 넘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시간이 아까워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면서 "시간이 무척 아깝고 심지어는 조바심마저 난다. 시간을 쪼개 저술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저서는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는 한민족의 고유 사상을 철학자 라깡(Jaques Lacan)의 욕망 이론으로 접근한다. 3월말에 출간했다.     현재 저술 중인 '한철학 단신학'도 홍산문화를 배경으로한 초고대문명을 다루고 있다. 또 그는 역시 2006년 이대 교수를 은퇴한 부인 이성은 박사와 함께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이스라엘, 중동,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을 여행하며 홍산문화와 이스라엘 문화, 수메르와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등 기독교 신학의 뿌리를 구석구석 살피고 왔다.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 꼭 1시간씩 걷고 있고 식사 후에 15분씩 걷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책 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체력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지구 온난화와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해 또 다른 거대한 재난을 우려하고 있으며 종국에 균형이 이뤄져 전쟁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AI의 발전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언급했던 '무생물이 모여 생물이 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일 박사는 1980년대 중반 감신대 종교철학과에서 1학기 만에 재임용에 탈락했던 일을 회상하며 당시에는 무척 섭섭하고 억울했지만 지나고 보니 '천만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왜냐하면 그 일로 인해 기독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 자유로워진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출간과 관련해 LA한인타운에서 기념회 및 '오징어게임 원방각과 라캉의 욕망이론'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다. 일시는 오는 6일(토) 오후 6시, 장소는 USA KOK사무실(3550 Wilshire Blvd. #708 LA)이다. 참가비는 30달러(책값, 간식)다. 문의 전화는 (213)308-8139, (213)335-0369다. 장병희 기자천만다행 철학자 철학자 김상일 철학 박사학위 이번 저서도

2023-04-30

[이 아침에] 짧은 인생 쫄깃하게 살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도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익사한다.     어릴 적 냇가에서 놀 때는 얕은 곳에서 물개 헤엄치며 퍼덕거렸다. 한여름 땡볕에 발바닥이 따끔거려도 모래사장에 집을 만들고 붉은 해가 하늘을 통째로 삼킬 무렵 ‘밥 묵어라’ 큰 소리로 부를 때까지 놀았다. 어둑어둑 해가 지는 길을 따라 엄마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약간 슬펐다. 내일 다시 동무들이랑 모래성 쌓을 생각을 하면 풍선껌을 씹을 때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재미있다’는 감정은 즐거운 상태를 말한다. 무슨 일을 할 때 편안함, 기쁨, 만족, 짜릿함이 솟구치고 흐뭇하면 행복해진다.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감정이 무디게 되고 욕망과 탐욕, 물질과 권력의 늪에 빠져 뒤죽박죽 헝클어진 일상을 반복한다. 탐욕을 버리면 사는 게 가벼워진다. 어깨가 덜 무겁다. 짧은 인생을 짜릿하게, 쫄깃하고 맛있게 사는 건 선택이다.   자고 나면 치솟는 먹거리 물가로 한숨이 깊은데도 올겨울 가장 많이 찾는 간식으로 붕어빵이 등극했다. 따끈따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먹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바삭하고 쫄깃쫄깃한 붕어 배 속에 들어있던, 달짝지근하게 입안을 감돌던 앙꼬맛! 앙꼬는 외래어로 우리말로는 ‘팟소’라 부르는데 나는 여태 ‘앙꼬’라는 추억의 단어에 애착이 간다. 고향 떠나 멀리 타국을 헤매도 붕어빵의 쫄깃하고 달콤한 추억은 세월을 거슬러 흐른다.       가장 좋아하는 것,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면 사는 게 행복해진다. 소소한 작은 일도 부단히 노력하면 생의 방향이 바뀐다. 씨앗 뿌리지 않고 거두는 수확은 없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자.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이 태어났다. 목표는 수정하고 다시 세우면 된다. 죽는 날까지 지우고 반복하다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자. 너무 크지도, 화려하지 않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넘어올 수 있게 담장은 낮게 만들자. 달콤한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랑 말고, 소소한 말에 귀 기울이고 미소 짓는 사람 몇 명만 있으면 쫄깃하고 단맛 나게 살 수 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마라. 지금 당신이 가진 것 역시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인생의 열쇠를 찾으란 뜻이다.     자신에게 ‘올인’하라.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지구가 공전을 멈춘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외롭다는 것은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다. 가슴이 외로움으로 흔들릴 때는 일기를 쓰면 된다. 미사여구가 아닌 가슴이 흘리는 눈물 몇 방울 적으면 된다. 태양도 바람도 눈물 흘린다. 불타올라도 언젠가는 지고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외롭다. 기뻤던 날들, 아름답고 사랑한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의 강에 배를 띄운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인생 철학자 에피쿠로스 탐욕 물질 한여름 땡볕

2023-02-1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짧은 인생 쫄깃하게 살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도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익사한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바다!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빠지면 익사할 확률이 높다. 어릴 적 냇가에서 놀 때는 얕은 곳에서 물개 헤엄치며 퍼득거렸다. 한여름 땡볕에 발바닥이 따끔거려도 모래사장에 집을 만들고 붉은 해가 하늘을 통째로 삼킬 무렵 ‘밥 묵어라’ 큰소리로 부를 때까지 놀았다. 매일 같은 동무들과 똑같은 소꿉놀이를 반복해도 재미있고 신이 났다. 어둑어둑 해가 지는 길을 따라 엄마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약간 슬펐다. 내일 다시 동무들이랑 모래성 쌓을 생각을 하면 풍선껌을 씹을 때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재미 있다’는 감정이 즐거운 상태를 말한다. 무슨 일을 할 때 편안함, 기쁨, 만족, 짜릿함이 솟구치고 흐뭇하면 행복해진다.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감정이 무디게 되고 욕망과 탐욕, 물질과 권력의 늪에 빠져 뒤죽박죽 헝클어진 일상을 반복한다. 탐욕을 버리면 사는 게 가벼워진다. 어깨가 덜 무겁다. 짧은 인생을 짜릿하게, 쫄깃하고 맛있게 사는 건 선택이다.   자고 나면 치솟는 먹거리 물가로 한숨이 깊은데도 올 겨울 가장 많이 찾는 간식으로 붕어빵이 등극했다. 어묵과 호떡, 군고구마가 그 다음 순위다.     붕어빵도 진화를 거듭, 치즈붕어방, 흑임자크림빵, 대왕붕어빵, 황금잉어빵, 곰곰단팥붕어방 등 가지가지다. 따근따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먹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바싹하고 쫄깃쫄깃한 붕어 배속에 들어 있던, 달짝지근하게 입안을 감돌던 앙꼬맛! 앙꼬는 외래어로 우리말로는 ‘팟소’라 부르는데 나는 여태 ‘앙꼬’라는 추억의 단어에 애착이 간다. 고향 떠나 멀리 타국을 헤매여도 붕어빵의 쫄깃하고 달콤한 추억은 세월을 거슬러 흐른다.       가장 좋아하는 것,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면 사는 게 행복해진다. 소소한 작은 일도 부단히 노력하면 생의 방향이 바뀐다. 씨앗 뿌리지 않고 거두는 수확은 없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자.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이 태어났다. 목표는 수정하고 다시 세우면 된다. 죽는 날까지 지우고 반복하다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자. 너무 크지도, 화려하지 않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넘어올 수 있게 담장은 낮게 만들자. 달콤한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랑 말고, 소소한 말에 귀 기울이고 미소 짓는 사람 몇 명만 있으면 쫄깃하고 단맛 나게 살 수 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마라. 지금 당신이 가진 것 역시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인생의 열쇠를 찾으란 뜻이다. 자신에게 ‘올인’하라.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지구가 공전을 멈춘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외롭다는 것은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다. 가슴이 외로움으로 흔들릴 때는 일기를 쓰면 된다. 미사여구가 아닌 가슴이 흘리는 눈물 몇 방울 적으면 된다.     태양도 바람도 눈물 흘린다. 불타올라도 언젠가는 지고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외롭다. 기뻤던 날들, 아름답고 사랑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의 강에 배를 띄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인생 치즈붕어방 흑임자크림빵 철학자 에피쿠로스 탐욕 물질

2023-01-31

[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으로 휴식하라

유치원생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높고 표정도 밝다. 저마다 칭찬받을 거리가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며 낯빛도 어두워진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길이 돈과 명예, 권력 등 몇 개로 단순화되는 탓이다. 월저는 ‘다원적 평등’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명예롭게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안광복 『철학으로 휴식하라』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에게도 인정받을 무엇인가가 있다면 상 받는 이에 대한 질투심도 수그러든다. 내가 속한 집단은 과연 구성원 하나하나의 노력을 보듬을 만큼 다양한 평가 잣대를 갖고 있을까?” 실제 그렇다. 많은 사회적 갈등과 개인적 불행이 질시와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존재가 고루 다양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인용문 속 월저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 마이클 월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일하는 저자는 철학에서 일상의 지혜를 찾는 ‘임상철학자’를 표방한다. 책 제목은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따왔다. “좋은 인생을 사는 이들은 쾌락을 좇지 않고 겪어야 할 감정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50대는 박수받는 나이가 아니라 박수 치는 나이여야 한다” 등의 구절이 눈길을 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 휴식 정치 철학자 사회적 갈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2023-01-11

[김형석의 100년 산책]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중학생 때 ‘인간 문제와 그 해결’ 같은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문학·종교·철학책을 많이 읽은 것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철학과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인문학적으로 융합된 사고나 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철학은 독립된 학문이었다. 우선 서양 철학자 중에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개인들에 관한 강의와 연구가 중요했다. 그때는 칸트와 헤겔은 누구나 한번은 연구해야 하는 철학자로 꼽혔다.   학위논문을 쓰는 사람은 한 개인 중에서도 한 가지 주제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본의 철학교수 대부분이 그랬다. 어떤 교수는 헤겔을 연구하다가 헤겔의 우물에 빠져나오지 못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독일에서도 헤겔학파가 생겼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칸트·헤겔·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하는 학자가 있다. 그러는 중에 영국·프랑스·독일철학사를 비교하게 되면서 개인 연구 영역에서 탈피하여 우리 사회와 시대에 어떤 철학이 요청되는가를 문제 삼게 되었다.       나는 왜 철학을 전공하게 됐나   그뿐만 아니라 철학은 상아탑의 고립된 학문이 아니고 사회와 역사를 포괄하는 성격의 학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하다가 역사철학의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철학과 관련이 없이 출발한 법학은 연구가 깊어질수록 법철학의 문제에 직면한다. 법철학 기반 위에 법학이 존재한다는 견해에 이르기도 한다. 법과 선악의 문제는 불가분리의 관련성을 가지며 그 배후에는 윤리문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 출발한 철학이 사회철학으로 발전하면서 정치 사회문제에까지 관여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철학보다 철학적 사유와 해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철학적 사유가 있는 학문은 뿌리를 갖춘 학문이 될 수 있으나, 철학적 사유가 없는 학문은 기반이 없는 시대적 건축물 같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 역사철학의 필연성을 암시해 준다. 마르크스 유물사관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적 사유란 어떤 것인가. 두 가지 성격은 뚜렷하다. 모든 사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하는 자세이며, 어떤 현실에 접하든지 근원적인 실체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특정 사회나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던 학자가 세계사 전체를 탐구하게 되면 자연히 과학적 관찰에서 철학적 사유로 옮아가게 된다. 영국의 A 토인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문학·회화·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던 예술가가 예술세계 전체를 문제 삼게 되면 예술철학, 즉 미학에 관심을 갖는다.       철학 없으면 지도자 될 수 없어   각자의 인생관이 자라 가치관이나 세계관으로 발전하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철학은 세계관 추구의 학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당신이 가진 정치관·사회관·역사관을 포함한 세계관은 무엇인가와 맥을 같이한다. 철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그의 주변에서는 물론 생각 있는 국민은 대통령의 철학 운운한다. 철학을 갖춘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있으나 아무런 이념, 즉 철학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철학도 없는 지도자는 목표가 없는 운전자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사물의 근원을 찾는 철학자는 ‘존재’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존재는 논리의 대상이 아니고 팩트(Fact), 사물과 사건에 관한 연구로 바뀌고 있다. 그러는 동안 철학의 초창기부터의 과제였던 형이상학(Metaphysics)은 점차 철학 무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현실성과 삶의 실용성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또 과학이 계속 진화하면서 철학의 무대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철학은 “집을 하늘에서 지어 내려온다”고 비판한다. 그래도 철학자는 “과학자는 집을 어디에 왜 지어야 할지 모른다”고 반론하는 상황이 되었다. 철학이 리어왕으로 있을 과거에는, 과학의 딸들이 부왕의 뜻을 따랐으나 노쇠한 후에는 부왕이 딸들의 집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현대인은 생각한다.   나도 70여 년 동안 철학계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철학이 학문계에서 밀려났거나 역사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내가 겪어 온 과정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해결은 철학에 주어진 과제이며 책임이다. 철학과 내 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위기는 ‘가치관의 상실’이라고 걱정한다. 정치, 경제, 과학문명, 기계과학의 미래 등 문제는 산적해 오는데 건설적이고 영구한 가치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다.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 부재에서 오는 결과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고딕 처리)   과거에는 종교적 가치관이 있었고, 동양에는 인간존중의 윤리관이 있었다. 과학만능 사회가 되면서 인간 스스로가 인간의 가치를 소외시키거나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시대가 끝났다는 탄식이다. 나도 70여년 철학과 더불어 살아왔으나 아직도 ‘인간 문제와 그 해결’은 새로운 과제로 남아있다. 지금과 같은 역사와 사회의 현실 속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3000년의 철학적 사유와 가치관은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것은 휴머니즘(인간애)의 정신이다. 선으로 향하는 자유의 창조력이며 인간성 회복과 주어진 목적을 채워가는 사랑의 구현이다. 모든 문화의 출발과 목표도 거기에 있었고, 철학은 그 중추세력이 되어 왔다. 그것이 역사의 희망과 생명력이 되어야 한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철학과 희망 동안 철학계 철학과 관련 서양 철학자

2022-11-11

[문장으로 읽는 책] 인생론-삶에 관하여

삶이라는 생존의 번잡함을 보면서 이 무의미한 혼란이 바로 인생이라고 확신하며 인생의 문 앞에서 서성이다 떠나는 것이다. 마치, 평생 모임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모임의 입구에서 밀치며 떠드는 흥분한 군중을 보고는 이것이 바로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근처만 서성이다가 스스로 모임에 참가했다고 확신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산속에 터널을 뚫는 것,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전기, 현미경, 전화기, 전쟁, 의회, 박애, 정당 간 경쟁, 대학, 학회, 박물관 …. 인생이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들일까?   레프 톨스토이 ‘인생론-삶에 관하여’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잘 몰랐던 작가, 톨스토이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50대 후반 정신적 변화를 겪으며 쓴 ‘인생론’은 철학자, 사상가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원제가 ‘삶과 죽음에 관하여’였으나 집필하면서 변화만이 있을 뿐 죽음이란 없고, 죽음도 일종의 삶이라는 확신을 갖게 돼 ‘삶에 관하여’로 바꿨다. 그러나 이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인간이란 ‘신성모독’ 논란을 낳았으며, 책은 출판이 금지되고 그는 러시아정교회로부터 파문됐다. 다분히 불교적 사유를 펼치는 그는 실증주의·경험주의. 유물론 등 당대 서구의 지적 흐름과도 거리를 둔다. “왜 사는지 이유를 모르는 채, 남들이 사는 대로 그저 살아야 하는가?”라고 끊임없이 묻는 그는 “진정한 인생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인생은 만인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양성희 / 논설위원문장으로 읽는 책 인생론 철학자 사상가 작가 톨스토이 전기 현미경

2022-09-19

[이 아침에] 갈대는 흔들리며 어울려 산다

갈대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한 해만 자랐다가 죽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목을꺾고 칼로 베고 갈아엎어도 봄이 오면 다시 자란다. 연못 가장자리, 도랑, 하천가, 강가 등 습하며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데 뿌리줄기로 뻗어가며 큰 군락을 이룬다. 자주색 꽃이삭이 9월이면 줄기 끝에 원뿔 모양의 꽃차례를 만든다.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바람 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 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 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마종기 ‘밤노래4’ 중에서   오하이오주 톨리도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마종기 시인은 외롭게 죽은 친구의 기일이 오면 4시간을 운전해 내가 사는 도시 공원묘지를 다녀가셨다.     근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철학자, 계산기의 발명자인 파스칼은 그의 유고집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긴다. 브레즈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수학의 신동으로 불리며 특출한 재능을 드러냈다. 기하학을 배우지 못했지만 12살 때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자력으로 발견하고 13살 때 파스칼의 ‘삼각형 원리’를 정립한다.  39세에 요절할 때까지 그때그때 기억하는 사건과 연관되는 단상들을 기록한 ‘팡세’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7년 만에 발간되는데 인간 이성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지적한다.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그것을 넘어서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를 깨닫지 못하면 저급하다고 설명한다.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진실이지만 일단 이 사실이 승인되면 최선의 정치를 향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압제를 향해서 개방된다고 설파한다.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하고많은 일 중에 왜 하필이면 곱하기 더하기 빼기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수학이 돈이 된다고 가르쳤으면 정신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미술을 공부하고 화랑을 경영하며 황금비율과 원근법, 소실점과 구도의 공간개념을 공부하며 수학에 대한 경외감이 생겨났다. 무용지물이던 ‘숫자’는 사업을 하면서 ‘돈’이 된다는 실용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 분야에 뛰어난 위대한 사람은 인간의 삶을 고찰하는 철학자의 고뇌를 지니게 된다. 자신이 추구한 학문이나 성취를 바탕으로 독단과 편견을 넘어 인간성의 보편타당한 이성을 구축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가방끈이 긴 사람, 아는 것이 많은 사람보다는 못 배워도 한 곳에 몰입해 골몰하는 사람은 인생의 깊은 굴곡을 관통하는 생의 의미를 깨닫는다. 갈대처럼 흔들려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철학자다.     ‘철학’(philosophy)은 고대 그리스어 필레인(사랑하다)과 소피아(지혜)가 합쳐서 된 단어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파스칼이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로 인식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상통한다.   사는 것이 부대끼고 갈대처럼 속이 비고 흔들려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어울려 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 작가이 아침에 갈대 물리학자 철학자 삼각형 원리 삼각형 내각

2022-08-03

[이 아침에] 돌아갈 수 없는 새들

운명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다. 유리알을 꿰맞추고 줄을 터트리기를 반복한다. 유리알이 땅에 떨어져도 주워 끼우면 새 목걸이가 된다. 똑같은 반복은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동작으로, 작고 일상적이지만 삶에 대한 절실한 태도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디자이너가 출시하는 신상품처럼 단 하나뿐인 내 이름으로 창작한 고유한 작품이 나의 운명이다.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다. 숙명에 순응하면 고삐 묶인 소처럼 끌려다닌다. 피할 수 없다. 숙명은 래디매이드 기성복이라서 누구나 입고 다닌다. 숙명은 수동적이고 집착이다. 지루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어릴적 시골집 대청마루 한가운데 이 글이 적힌 액자가 먼지를 뒤짚어 쓰고 걸려있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뜻을 새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황토로 잘 다진 마당 깊은 초가집에서 누렁이 꼬리 잡기하던 시절은 행복했다. 우울하지도 슬퍼할 일도 없었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제는 슬픈 것’이란 끝맺음은 쓸쓸했다.     독립기념일 온 동네가 축제판이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건너 불 보듯 축제를 즐긴다. 남의 잔치에 숫가락 얹는 수준으로 그릴에 햄버그와 핫도그를 굽는다. 경기 시작할 때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광복절기념 한인피크닉에서 태극기 걸고 애국가를 합창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나라 모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때 천국인 줄 알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나뒹굴며 천국 속에 지옥을 경험했다. 점쟁이는 안 믿어도 운명을 믿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는 새 동앗줄을 움켜잡았다.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 처럼 지옥을 거쳐 연옥에 이르면 종국에 천국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끝맺을 수 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찾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을 극복한 사람은 운명의 법칙를 안다.     ‘아모르 파티(라틴어: Amor Fati)’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에 대한 사랑(Love of Fate)‘을 말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함으로서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개척하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깊고 푸른 태평양 건너 구비구비 세월의 모퉁이 돌고돌아 파도타듯 여기까지 왔다.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았다. 사는 것이 숙명같은 운명이라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슬프고 아파도 날개짓 멈추지 않는다. ’파테마타 마테마타‘ 사람은 고통에서 배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광복절기념 한인피크닉 철학자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르 푸시킨

2022-07-0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새들

운명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다. 유리알을 꿰맞추고 줄을 터트리기를 반복한다. 유리알이 땅에 떨어져도 주워 끼우면 새 목걸이가 된다. 똑같은 반복은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동작으로, 작고 일상적이지만 삶에 대한 절실한 태도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디자이너가 출시하는 신상품처럼 단 하나뿐인 내 이름으로 창작한 고유한 작품이 나의 운명이다.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다. 숙명에 순응하면 고삐 묶인 소처럼 끌려다닌다. 피할 수 없다. 숙명은 래디매이드 기성복이라서 누구나 입고 다닌다. 숙명은 수동적이고 집착이다. 지루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어릴 적 시골집 대청마루 한가운데 이 글이 적힌 액자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걸려있었다. 친구네 집에도 있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뜻을 새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황토로 잘 다진 마당 깊은 초가집에서 누렁이 꼬리 잡기하던 시절은 행복했다. 우울하지도 슬퍼할 일도 없었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이란 끝맺음은 쓸쓸했다.   독립기념일로 온 동네가 축제판이다. 현란한 불꽃놀이와 폭죽 터지는 소리, 매케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들과 딸은 손주들과 찍은 피크닉 사진을 실시간 전송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 건너 불 보듯 축제를 즐긴다. 남의 잔치에 숟가락 얹는 수준으로 그릴에 햄버그와 핫도그를 굽는다. 경기 시작할 때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광복절 기념 한인피크닉에서 태극기 걸고 애국가를 합창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나라 모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천국인 줄 알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나뒹굴며 천국 속에 지옥을 경험했다. 점쟁이는 안 믿어도 운명을 믿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는 새 동앗줄을 움켜잡았다.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처럼 지옥을 거쳐 연옥에 이르면 종국에 천국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끝맺을 수 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찿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을 극복한 사람은 운명의 법칙을 안다.   ‘아모르 파티(라틴어 : Amor Fati)’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에 대한 사랑(Love of Fate)’을 말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함으로서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개척하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깊고 푸른 태평양 건너 구비구비 세월의 모퉁이 돌고 돌아 파도 타듯 여기까지 왔다.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았다. 사는 것이 숙명 같은 운명이라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슬프고 아파도 날갯짓 멈추지 않는다. ‘파테마타 마테마타’ 사람은 고통에서 배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철학자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골집 대청마루

2022-07-05

[독자 마당] 물처럼 흐르는 시간

새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여섯 달이 지나가고 있다. 6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의 6월이 옛날 로마 달력에서는 넷째 달이었고 날수도 29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날수도 30일로 만들었고 달도 지금처럼 6번째로 고쳤다.   우리는 달을 숫자로 부르기 때문에 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속성을 인지하기기 편하다. 6월이 되면 12개 달 중 6번째를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영어의 ‘준(June)’은 숫자와는 상관없는 이름이어서 시간의 흐름을 쉽게 느낄 수 없다.     이름이 고대 로마 결혼의 여신 ‘유노’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로맨틱한 이름이기도 하다.   문득 세월이란 낱말이 더 새삼스러워진다.     세월과 더불어 ‘때’라든가 ‘시간’이란 낱말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때와 시간이란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과의 운행 관계를 재는 단위이다.     철학적으로는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머물지 않고 같은 빠르기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인식의 기본 형식이다. 이는 삶의 길이를 재는 단위임과 아울러 사물이 일어남을 아는 기준이다.   그래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란 사물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기본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유명 시인 제임스 휘트컴 라일리의 6월 관련 시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이 아침에 6월이 내 곁에 다가오고 햇빛은 뜨겁게 빛나누나. 이 날의 기쁨을 우리 가슴 속에 가득 채우고 온갖 의심과 근심과 슬픔을 모두 날려 보내세.” 윤경중·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독자 마당 시간 철학자 이마누엘 율리우스 카이사르 옛날 로마

2022-06-21

[뉴욕의 맛과 멋] 너무 움직이지 마라

지병 때문에 일 년에 서너번씩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아닌 시술을 하는 나는 할 때마다 체력이 떨어진다. 워낙 오래 투병생활을 하는지라 시술받고 나서도 혼자 해 먹는 게 귀찮을 뿐만 아니라 첫째는 힘에 부쳐서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연초에 막상 한번 또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세상에 좋은 게 너무 많은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좀 더 살기로 작정하고 식생활 개선부터 시작했다. 아침 공복에 레몬과 올리브 오일 한 스푼씩 마시는 이탈리안 보톡스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그것을 실천한다.     아침 식사는 요거트다. 혈압과 콜레스테롤에 좋다는 청국장 가루를 크게 두 스푼 넣고, 잣과 호두, 아몬드, 해아라기 씨, 바나나와 사과 반 개씩, 키위 하나, 블루베리 한 스푼을 넣으면 한 사발 가득하다. 그 거대한 요거트 볼을 조금씩 먹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요거트가 맛이 없어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다. 비록 냄새는 없다지만, 청국장으로 도배한 요거트가 맛이 있으면 이상한 거지. 그래도 상큼한 사과가 씹히는 맛에 커피를 반주 삼아 의무로 먹는다. 그렇게 먹어서인지 평생 동반자였던 만성피로와 변비가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몸의 컨디션이 많이 정상적으로 환원되고 있다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 같다.   문제는 기력 쇠퇴. 기력이 없다는 게 부엌에서 음식 한 가지만 만들어도 허리가 아프고 주저앉고 싶다. 김치만 담가도, 나물 하나 볶아도, 된장국 하나 끓여도 몇 번씩 부엌과 침대를 오락가락해야 한다. 외출은 더더욱 문제다. 하루에 한 가지만 해야지 두 가지만 해도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한다. 마음은 아직도 창공을 훨훨 나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다.     얼마 전, 친구가 ‘너무 움직이지 마라’라는 책이 작년에 자기가 읽은 책 중에 최고라며 그 책 얘기를 해줬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을 자기 식대로 재해석한 책이라고 한다. 나는 너무 움직이지 말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 친구의 얘기를 흥미있게  들었다.     사실 우리는 ‘더 성공하기 위해 트렌디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더 ‘건강히’ 잘 살기 위해 요가와 명상과 운동을 하고, 더 좋은 인맥, 더 좋은 모임, 더 좋은 맛, 더 좋은 곳, 더 좋은 정보, 더 좋은 변화, 더 좋은 그 무엇을 탐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삶’인가 싶어 불안해진다. 이것은 ‘근면한 일벌레가 언제나 옳다’는 그릇된 기독교의 근면 주의에 깔려 짓눌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강요에 갇혀 있지 말고 ‘쓸모없어 보이면서도, 무용한 유희, 무용한 산책, 무용한 대화, 무용한 놀이, 무용한 유유자적이 우리 삶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친구는 굉장히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쉽게 말하면 성공하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때로는 너무 움직이지 말고 관조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학자들은 쉬운 말도 어렵게 한다.     처음에 병 자랑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장황하게 얘기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를 그 책에 이입해서 마치 내가 그렇게 너무 움직이지 않고 살고 있음에 슬그머니 어깨가 올라갔다면 망상일까, 착각일까. 이영주 / 수필가뉴욕의 맛과 멋 천일 철학자 지바 천일 동안 청국장 가루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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