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새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디자이너가 출시하는 신상품처럼 단 하나뿐인 내 이름으로 창작한 고유한 작품이 나의 운명이다.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다. 숙명에 순응하면 고삐 묶인 소처럼 끌려다닌다. 피할 수 없다. 숙명은 래디매이드 기성복이라서 누구나 입고 다닌다. 숙명은 수동적이고 집착이다. 지루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어릴 적 시골집 대청마루 한가운데 이 글이 적힌 액자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걸려있었다. 친구네 집에도 있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뜻을 새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황토로 잘 다진 마당 깊은 초가집에서 누렁이 꼬리 잡기하던 시절은 행복했다. 우울하지도 슬퍼할 일도 없었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이란 끝맺음은 쓸쓸했다.
독립기념일로 온 동네가 축제판이다. 현란한 불꽃놀이와 폭죽 터지는 소리, 매케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들과 딸은 손주들과 찍은 피크닉 사진을 실시간 전송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 건너 불 보듯 축제를 즐긴다. 남의 잔치에 숟가락 얹는 수준으로 그릴에 햄버그와 핫도그를 굽는다. 경기 시작할 때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광복절 기념 한인피크닉에서 태극기 걸고 애국가를 합창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나라 모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천국인 줄 알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나뒹굴며 천국 속에 지옥을 경험했다. 점쟁이는 안 믿어도 운명을 믿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는 새 동앗줄을 움켜잡았다.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처럼 지옥을 거쳐 연옥에 이르면 종국에 천국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끝맺을 수 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찿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을 극복한 사람은 운명의 법칙을 안다.
‘아모르 파티(라틴어 : Amor Fati)’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에 대한 사랑(Love of Fate)’을 말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함으로서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개척하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깊고 푸른 태평양 건너 구비구비 세월의 모퉁이 돌고 돌아 파도 타듯 여기까지 왔다.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았다. 사는 것이 숙명 같은 운명이라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슬프고 아파도 날갯짓 멈추지 않는다. ‘파테마타 마테마타’ 사람은 고통에서 배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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