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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2)

지난겨울 모로코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나귀가 짐을 나르는 좁은 골목 안의 작은 가게들은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붐볐다. 멜랑꼴리하고 구슬픈 노랫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루에 다섯번 간격으로 들리는 이 노래는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장사하던 사람들은 물건 파는 것도 잠시 중단한 채, 자기가 있던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깊은 절을 올렸다. 나는 단순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남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는 그들에게서 가슴 뜨거워지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왔다. “신앙이란 자기 자신의 유한하고 불확실한 지식을 초월하려는 정신의 개방이다.”라고 한 에디트 슈타인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갖기 이전에, 무엇을 갖느냐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여유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은퇴하고 난 뒤의 나의 생활도 더 바빠지고 있다.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책 ‘월든’에서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차분히 인생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성조 아브라함, 야곱, 요셉, 이집트 탈출, 바빌론 유배에서 예루살렘의 귀환, 로마제국의 기독교 탄압,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십자가로 이어지는 2000년 전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요한 8, 24-25)  
 
수녀님의 지도, 그리고 필요한 것을 미리미리 알아 챙겨주는 이해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길잡이님의 사랑과 함께 12명의 자매님이 하느님 앞에서 가슴 졸이고, 망설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수줍어하면서 지냈던 그 많은 시간은 밤하늘의 샛별처럼 빛나는 순간들로 남아있을 것이다.    
 
10월도 중반에 들어선 가을의 끝이다. 온통 붉게 물들어가는 숲속을 걸으며 3년 전 가을, 백주 간 성경 통독을 위해 퀸즈의 베이사이드 성당으로 찾아갔던 그 첫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너도 떠나고 싶으냐?”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에게도 들려온다. 주님 제가 당신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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