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연금술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크레용은 흔했는데 색분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몽당 색연필을 애지중지 보관했다가 방과 후 빈 교실에 몰래 들어가서 칠판에 알록달록 낙서하곤 했다. 한번은 친구가 크레용을 땅에 묻고 매일 소변을 주면 일주일 후에 색분필이 된다고 해서 열심히 따라 했지만 내 최초의 연금술은 소득 없이 끝났다. 하지만 연금술은 과학과 마술의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인류의 과학 발전에 큰 몫을 했다.   연금술이라고 하니까 아주 엉터리 마술 수준인 것으로 선입견을 품는데 놀라지 마시라,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중 평생 연금술에 빠져 살던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의 조폐국장을 역임하고 만유인력을 규명한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은 물리학이나 수학보다도 연금술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인생의 아무런 낙도 취미도 없었던 그는 매일 연구실에서 오로지 연금술에 매달렸다. 그는 돈을 더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존 원소를 인위적으로 다른 원소로 바꿔보려고 애썼다.   연금술은 근대 화학이 자리 잡기 전까지 과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일종의 마술과 같은 분야였다. 나중에 돌턴의 원자설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납 같은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현대 과학 기술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입자가속기에서 납이 금으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구려 금속을 고가의 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설비와 에너지가 필요하여 결국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져서 경제성이 전혀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발품 팔아 금 광산을 찾아서 채굴하는 편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     연금술이란 말은 처음에 이집트에서 생겼다가 나중에 아랍권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흔한 금속으로 값나가는 금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과학이라기보다 주술과 미신으로 흐른 까닭에 14세기 초에는 로마 교황이 연금술을 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화학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영어 단어 화학(chemistry)의 어원은 연금술(alchemy)에서 유래한다.     글 서두에서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었지만 흔하고 가치 없는 금속을 땅속에 오래 묻어두면 나중에 금이 된다는 민간 신앙이 연금술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꼭 값나가는 금을 만든다기보다 쓸모없는 것이 금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정화된다는 일종의 인생 수양이란 점에서 철학과도 연결된다.   얼핏 보아서 아주 비과학적인 연금술이지만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서 고안해 낸 증류 장치 같은 수많은 실험 도구들과 그 부산물로 얻어진 새로운 물질은 나중에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화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중엽 독일의 한 연금술사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소변이 색이 같은 황금과 아무래도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소변을 가열하고 정제하다가 어떤 물질을 발견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원자 번호 15번 인(phosphorus)이었다. 사실 물리학과 천문학이 주류 과학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동안 약학과 화학 등은 겨우 연금술의 형태로 그 명맥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돈이 되는 금을 만들려 하기보다 오히려 불로장생약에 더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연금 과학과 철학 과학 발전 현대 과학

2024-10-2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변하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와 소멸은 모든 만물의 법칙이다. 소멸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을 통해 인류는 진화하고 성장하고 존재한다.   생성(生成, Becoming)은 사물이 생겨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사물을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철학적으로는 새롭게 출현하고 사라진다는 의미의 변화를 의미한다. 생성과 소멸이 거듭되며 변화하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이고 서양 철학의 시작이다.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그것을 ‘물’이라 했고 데모크리스토스는 ‘원자’라고 했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라고 했는데 아이디어(Idea)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한다. 세상 만물을 그것이 그것으로 해주는 본질을 전지전능한 유일신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 교리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어록은 인생의 제한적인 유한성을 의미한다.   그 때 그시절 그 아름답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흐르던 강물에 두 발 담그고 손가락 걸며 사랑을 맹세했던, 새하얀 얼굴의 남학생은 어느 하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 지 알 길이 없다. 다시 만나면 서로 알아볼 수 없다 해도 가슴 속에 담았던 사랑의 언어들은 여전히 따스하고 유효하다.   강물은 평지에서는 천천히 흐르지만 구비를 돌고 돌며 속도를 내고 절벽을 만나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폭포 되어 갈갈이 부서져 흩어진다.   ‘죽어도 못한다’는 사람은 아직 안 죽어봐서 그런 소리를 한다. 죽는 것 빼고는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소멸이 아니라 소멸 뒤에 오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히는 공포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지켜본 플라톤은 육체는 언젠가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었다. 죽으면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다음 세상이 결정되는데 선한 사람은 더 나은 환경에서, 악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육체를 안고 살게 된다. 그는 ‘삶은 육체 안에 갇힌 영혼의 감금 생활이요,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자 분리’라고 설명한다. 금욕과 절제로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면 육체에 감금 되지 않고 행복한 세상으로 옮겨 간다고 설명한다.     죽음을 기억하면,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서 상처와 고뇌를 흘려보낼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가 사는 방법이다. 사는 것이 두렵고 죽음의 공포가 땅거미로 밀려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껴안고 치열하게 살 생각을 한다.   폭풍이 부는 날은 나무들도 가지를 꺾는다. 찬란했던 잎새들이 하나 둘 떠날 무렵 마지말 한 잎이 떨어질 때 나무는 마른 손 비비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뭉크의 ‘절규(The Scream)’처럼 죽음의 환상에 떨지 않고 살아있는 기쁨으로 내일을 다잡을 궁리를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의 꽁무니에서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를 맡는다.   가을이 오면 오색 찬란한 단풍으로 물든 오솔길을 혼자서 걷고, 겨울엔 목화꽃처럼 펑펑 내리는 눈을 쓸어안고 가슴 적시는 시를 쓰리라. 억겁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서양 철학 생성 becoming 감금 생활

2024-08-13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4-07-03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4-04-10

[문장으로 읽는 책] 물속의 철학자들

“신은 보이지 않잖아요. 산소도 안 보여요. 그러니까 신은 산소 아닐까요.” 재미있는 의견이었다. 그 학생은 신이 만든 우주에 왜 산소가 없을까 의아한 모양이었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신은 지구에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산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은 산소인 것이다. “그러면 신은 몸속에도 있는 거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학생은 “하지만 토하면 나가버려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나가이 레이 『물속의 철학자들』   학교·기업 등에서 ‘철학 대화’를 이끄는 저자의 책이다. “신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한 여중생이 내놓은 답이다. 저자는 “어째서 엉뚱한 말은 미움을 받을까, 어째서 그런 건 철학이 아니라고 여겨질까”라고 묻는다.   “의외로 아이들은 엉뚱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모범답안, 부모에게서 이어받았을 법한 사상,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을 입에 담는다. 질문에 대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철학자들은 이상한 말, 꽤나 비상식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존재다. 정답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우리 삶 속 철학의 쓰임새를 묻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질문이 있다.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골머리를 앓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질문이. 언제까지 계속 일해야 하는 건가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인가요? 보통이란 뭔가요? 나는 태어나도 괜찮았던 걸까요? 질문 때문에 쓰러질 듯해도 질문과 함께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을 나는 철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자 물속 철학 대화 모범답안 부모 나가이 레이

2023-12-06

[문장으로 읽는 책]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제도권 대학을 떠나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책이다. ‘무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제목의 윗글에 저자는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팡세』의 문장을 달았다. ‘공부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수행자처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부란 “매사에 진짜를 구하는 애씀” 혹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덕으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사는 일”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생활 철학 공부 모임 시인 김영민 무가 번개

2023-11-29

[열린광장]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 가보지 못한 곳에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다가올 미래일 수도 있다. 내가 70대가 되었을 때의 세상은? 100세가 되었을 때 내 건강은 어떨까?     이런 면에서 최근 중앙일보에 개재된 김형석 교수의 글 ‘120세 시대, 장수가 축복이 되려면…’은 고맙고 감사하다. 104세라는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있는 그의 진솔한 고백이어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저서를 읽기 시작했고, 또 그의 강연을 들으며 그의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사랑,역사와 사회에 대한 한결같은 책임의식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려운 유학 생활을 잘 견디고 오늘을 있게 해 준 신에게 감사하며 방학 때는 지방까지 다니며 강연회를 했다. 그는 철학 교수로,베스트 셀러 작가로 인지도가 높아  강연 요청도 많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오래전 한 강연에서 모두 같이 잘살 수 있는 제도와 기독교 윤리에 관해 얘기했다. 요지는 이렇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제도는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공산주의(계획경제)가 있는데 공산주의는 인간이 실현할 능력이 없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폐기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게 된다. 시장경제에서는 자신의 소유물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을 비난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하고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대안이 되는 것이 기독교 윤리다. 여기에는 많이 가진 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강연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공산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자유를 더 억압하고 있고, 또 종교가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세상이 되어 있다.   김 교수는 104세가 된 지금 90세 이후의 생각과 95세부터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90세까지 계획된 삶을 살았고,그후에는 주어지는 대로 충실히 살아왔다고 했다. 또 95세부터는 정신이 약한 육체를 이끌고 있다고 고백한다.     한국보다 100세 이상 인구가 10배나 많은 일본에서 100세 이상 살기 바라는 인구의 비율은 21%에 불과하다고 한다. 100세 이상 시니어의 힘든 삶을 우리보다 더 많이 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체의 한계가 이렇게 뚜렷하다고 해도 육체를 더 강하게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약해진 육체를 이끌어 가야 할 정신을 더 강하게 훈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120까지 사세요”라는 인사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라는 인사를 듣고 싶다는 김 교수님에게 “더 오래 우리 곁에서 좋은 얘기를 해주세요”라고 인사하고 싶어진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광장 감사 철학 교수로베스트 종교가 사회적 김형석 교수

2023-10-10

[삶의 향기] 과학의 한계

"종교와 철학, 과학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종교학 개론 첫 시간 교수님의 질문이다. 워낙 추상적인 단어들이라, 각각의 개념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합의 없이는 생산적인 논의가 어려운 질문이다. 각각의 개념과 인문학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 교수님의 의도였을 것이다.   종교와 철학, 과학은 '진리 탐구'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협력도 하지만, 방법이 다르다 보니 주로는 대립과 갈등이 부각된다. 스님과 하버드 대학교 뇌 과학자가 '명상의 효과'를 언급했다고 가정해 보자. 대중들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까.   불가에서 인과는 결정론이 아니라고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는 인과의 사전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현재 나의 모습은 1초 전의 모습과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를 계속 뒤로 미루면, 여러분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이 시간에 이 글을 읽을 것이 정해진다는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불교의 인과론은 이론적으로는 결정론에 가깝다고 했던 불자이면서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명예교수였던 고(故) 소광섭님이나 불교의 진리와 과학이 충돌한다면 과학을 따르겠다는 달라이라마의 입장은 과학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불교인들에게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을 부정하거나 도외시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오늘은 과학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과신하는 과학적 결론들은 '관측'에서 시작한다. 일단 관측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주 작거나(소립자) 큰 것(은하수),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것(전자기장), 갈 수 없는 곳(지구 핵심), 고고학, 우주론, 자연사, 진화론 등에서 다루는 과거사건 등은 관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관측 자체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으로 코를 주시하면 코가 보인다. 안경 쓰신 분들은 안경테를 의식하는 순간 평소 보이지 않던 안경테가 보인다. 물리적으로 늘 시야에 있던 코와 안경테이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측은 관찰자의 의식(경험 또는 지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의 이론 적재성(의존성)'의 전형적 예다. 부처님께서 경계하신 분별과 주착은 과학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의 태도 역시 지적한다. 과학자들 역시 그들이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비난하는 종교인들 못지않게 독선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종교인들이 창조론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지만, 진화론자들 역시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물리학계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인정 안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과학 이론과 방법론은 진리 공부에 크게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하늘에 있는 비행기를 보고 비를 내려달라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 만능주의 역시 인류가 경계해야할 또 다른 미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과학 한계 과학 이론 철학 과학 과학 만능주의

2023-08-14

철학자 김상일 박사 "탈락…지나고 보니 천만다행"

"하루 하루가 아깝고 조급한 마음마저 있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은퇴한 시니어지만 저술작업으로 매우 분주한 철학자 김상일 박사가 최근 저서 하나를 출간해 인터뷰 했다. 그가 출간한 책은 '오징어게임과 라캉의 욕망이론(한국의 놀이문화와 정신분석의 세계)'(도서출판  동연)이다. 1941년생인 김 박사의 이번 저서는 26번째다. 그는 평생을 일제 식민사관과 서양 학문에 대한 사대주의 극복을 위한 연구와 저술 작업을 해왔다. 2006년 한신대 철학과 교수직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와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번 저서도 서양학문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고유사상 수립을 위해 쓴 책이다. 그는 "이제 팔순을 넘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시간이 아까워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면서 "시간이 무척 아깝고 심지어는 조바심마저 난다. 시간을 쪼개 저술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저서는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는 한민족의 고유 사상을 철학자 라깡(Jaques Lacan)의 욕망 이론으로 접근한다. 3월말에 출간했다.     현재 저술 중인 '한철학 단신학'도 홍산문화를 배경으로한 초고대문명을 다루고 있다. 또 그는 역시 2006년 이대 교수를 은퇴한 부인 이성은 박사와 함께 지난 13일부터 25일까지 이스라엘, 중동,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을 여행하며 홍산문화와 이스라엘 문화, 수메르와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등 기독교 신학의 뿌리를 구석구석 살피고 왔다.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 꼭 1시간씩 걷고 있고 식사 후에 15분씩 걷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책 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체력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지구 온난화와 전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해 또 다른 거대한 재난을 우려하고 있으며 종국에 균형이 이뤄져 전쟁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AI의 발전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언급했던 '무생물이 모여 생물이 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일 박사는 1980년대 중반 감신대 종교철학과에서 1학기 만에 재임용에 탈락했던 일을 회상하며 당시에는 무척 섭섭하고 억울했지만 지나고 보니 '천만다행'이었다고 회상했다. 왜냐하면 그 일로 인해 기독교 울타리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 자유로워진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출간과 관련해 LA한인타운에서 기념회 및 '오징어게임 원방각과 라캉의 욕망이론'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다. 일시는 오는 6일(토) 오후 6시, 장소는 USA KOK사무실(3550 Wilshire Blvd. #708 LA)이다. 참가비는 30달러(책값, 간식)다. 문의 전화는 (213)308-8139, (213)335-0369다. 장병희 기자천만다행 철학자 철학자 김상일 철학 박사학위 이번 저서도

2023-04-30

[문장으로 읽는 책] 부디 아프지 마라

늙은 사람이 된 것은 저절로, 거저 된 일은 아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을 살았고 또 견뎠기에 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 나는 내가 늙은 사람이 된 것을 불평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원하는 나의 삶은 지금 이대로 사는 삶이다. 더 많은 것을 원하지도 꿈꾸지도 않는다. 아무런 일도 없는 그날이 그날인 무사안일 그것이다. 늙어서 좋다. 늙은 사람인 것이 다행이다.   나태주 『부디 아프지 마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산문집이다. 그의 시처럼 쉽고 평범하지만 곱씹을만한 인생 철학을 꾹꾹 눌러 담았다. 시인은 이렇게도 썼다. “나는 이제 늙었다. 될수록 조그맣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나의 시도 늙었다. 될수록 작고 단순하고 쉬운 시를 쓰고 싶다.…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어서 이내 알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스스로 늙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만큼 늙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을까. 늙어서 좋은 사람은 젊어서도 좋았고, ‘지금 이대로’를 충실히 살아낼 것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잘해주면 좋아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기쁨과 즐거움이 결국은 나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마음을 비우며 사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사람은 마음을 비우면 죽는다고, 그 대신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삶의 태도를 건질 수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나태주 시인 대신 마음 인생 철학

2023-04-19

“홍익인간 철학에 기반 둔 교사 되길”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 (회장 김선화)가 지난 25일 2023 봄학기 교사연수회를 개최했다.   메릴랜드 실버스프링 소재 지구촌교회에서 팬데믹 이후 3년 반만에 대면으로 이뤄진 이번 교사연수회는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워싱턴 42개 학교에서 참여한 총 223여명의 교사와 어린이프로그램(워싱턴 종이문화원) 참가자(19명), 보조교사(3명)등 총 254명이 참석해 “워크숍을 통한 한국어 교육효과 높이기”란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온라인으로도 동시 진행된 워크숍에는 한국, 웨스트버지니아, 리치먼드 등 다양한 지역의 참가자들도 함께 했다.     김선화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며 계속 발전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연 중 교사연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수요공급 매치 교사연수, 한국문화 역사 수업 공모전에 도전하고, 모든 교사가 서로 수업자료와 방법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청용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사람이 가져야 할 5가지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담고있는 홍익인간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힘쓰는 교사가 되어달라”고 전했다.   이어 강경탁 교육원장은 격려사에서 "워싱턴지역은 코로나 이전으로 학교, 학생 수가 거의 회복되었고, 교육원에서는 한국어 실력 인증 제도, 공립학교에서 한국어 학점 인증 제도 등에 대해 연구하여 한국학교 , 학부모님들께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매 주 차세대 교육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께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달 말 3년 임기를 마치는 한상신 교육관에게는 감사패가 전달되기도 했다. 한 교육관은 “코비드와 함께 한 재임기간이었지만 미국 근무하는 동안 늘 행복했고, 워싱턴기념탑을 소재로 한 감사패를 보며 워싱턴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워싱턴기념탑을 생각하며 차세대 교육에 힘쓰시는 한국학교 교사들을 늘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홍익인간 철학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 봄학기 교사연수회 이번 교사연수회

2023-03-01

[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으로 휴식하라

유치원생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높고 표정도 밝다. 저마다 칭찬받을 거리가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며 낯빛도 어두워진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길이 돈과 명예, 권력 등 몇 개로 단순화되는 탓이다. 월저는 ‘다원적 평등’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명예롭게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안광복 『철학으로 휴식하라』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에게도 인정받을 무엇인가가 있다면 상 받는 이에 대한 질투심도 수그러든다. 내가 속한 집단은 과연 구성원 하나하나의 노력을 보듬을 만큼 다양한 평가 잣대를 갖고 있을까?” 실제 그렇다. 많은 사회적 갈등과 개인적 불행이 질시와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존재가 고루 다양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인용문 속 월저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 마이클 월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일하는 저자는 철학에서 일상의 지혜를 찾는 ‘임상철학자’를 표방한다. 책 제목은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따왔다. “좋은 인생을 사는 이들은 쾌락을 좇지 않고 겪어야 할 감정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50대는 박수받는 나이가 아니라 박수 치는 나이여야 한다” 등의 구절이 눈길을 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 휴식 정치 철학자 사회적 갈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2023-01-11

[아름다운 우리말] 근대의 번역어 세상

‘암시, 의지, 의식, 인상, 환경, 의무, 역설, 객관, 공황, 공명, 예술, 현상(現像), 권리, 공원, 긍정, 개인, 사회, 자유, 주의(主義), 상식, 상징, 인격, 인생관, 세기(世紀), 절대, 선천, 철학, 배경, 판권, 문화, 이성(理性), 이상(理想)’    위의 낱말들은 일본의 대중적인 어원사전(소학관 출판)에 실려 있는 ‘메이지 시대의 번역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근대의 번역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어휘가 번역어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번역어는 외래의 말을 자신이 쓰는 말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원사전에서는 위의 어휘를 모두 문화와 관련된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문화 중에서도 주로 철학이나 사회와 관련된 어휘로 보입니다.    저는 위의 단어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음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이 어휘들이 그대로 우리말 속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에서 번역하여 사용하던 말이 특별한 고민 없이 우리말이 된 것입니다. 사실 번역어에는 수많은 고민이 담깁니다. 이 말이 좋을지 저 말이 좋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옛 고전도 수없이 찾아보았겠지요. 비슷한 개념의 어휘를 찾아 번역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위의 어원사전에서 권리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순자’에서 나오는 것으로, 선천은 ‘역경’에 있는 말로, 문화는 옛 중국 서적에 보이는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말도 중국의 유학서 ‘근시록’이라는 책에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예전에 중국에 있던 말이라고 해도 현대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개념의 재창조가 이루어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휘로 확정하기까지도 많은 고민이 뒤따릅니다. 개인(個人)의 경우는 일개인(一個人), 각개인(各個人)이라는 말로 사용하다가 개인으로 굳어졌습니다. 상식이라는 말은 상견(相見), 상정(常情), 통감(痛感) 등이 쓰이다가 상식으로 정착됩니다. 환경(環境)이라는 말은 환상(環象)이라고 쓰이기도 했습니다. 패닉을 나타내는 공황(恐慌)이라는 말도 경황(驚慌)이라는 말로 철학에서는 쓰이기도 했습니다. 예술도 초기에는 미술(美術)로 번역하였던 말입니다. 공원(公園)도 유원(遊園), 소요원(逍遙園)이라는 말이 쓰였으나 공유지를 만인이 즐긴다는 의미에서 공원이 정착됩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일본에서 근대 시기에 이루어진 고민입니다. 우리하고는 관계없었던 과정입니다.    저는 번역은 사고를 깊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자신의 말이 아니었던 문장이나 어휘를 자신의 말로 바꾸는 과정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철학이나 종교 등의 인문학 서적의 경우는 그 깨달음의 정도가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대화의 시기에 이런 번역의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일본의 국권 침탈 속에서 자연스레 일본이 만들어 놓은 번역을 받아들이고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철학 용어, 과학 용어, 학문 용어는 그런 기원 속에서 탄생하여 우리 속에서 자라온 것입니다.   저는 새로 번역을 하거나 새로 어휘를 만들어 사용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사회성을 얻은 어휘를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용어가 정확히 개념을 담아내고 있는지 고민하고. 또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치기 바라는 것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어 근대 사실 번역어 번역어 세상 철학 용어

2022-12-04

[문화산책] 올해 떠난 사람들

부고 기사에 유달리 눈길이 머무는 것은 나이 탓이려니 싶다. 남의 일 같지 않기도 하다. 최근 몇 해 동안의 부고를 보면, 단순히 개인적 슬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실감이 강하다. 그래서 더 유심히 보게 된다.   2022년 올해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때문에 별세한 분도 꽤 있어서 안타깝다.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 시무라 켄 등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몇 분 있다.   시대정신이 변하고 있다는 실감을 주는 별세도 적지 않았다. 영국 여왕의 별세,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 등은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상징으로 읽힌다.   한국의 경우를 정리하면,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 박사와 김동길 교수의 타계가 국민의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든든한 어른이 간절한, 이 어지러운 시대에 큰 스승들이 떠났으니, 그 빈자리가 클 수밖에 없다. 떠난 이들이 남긴 시대정신을 어떻게 이어받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큰 숙제다.   문화 예술계에서도 큰 별이 많이 졌다. 문학계에서는 ‘오적’의 김지하 시인, 소설가 이외수,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미술계에서는 10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던 원로 김병기 화백, 뉴욕에서 오래 활동해온 김차섭 화백, 단색화 2세대 화가로 각광 받던 김태호, 독일에서 활동해온 노은님 작가, 민중미술의 대표적 이론가로 활약한 미술평론가 성완경 교수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대표적 극작가이며 연극연출가로 꼽히던 오태석씨도 별세했고, 연예계에서는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 강수연, 명사회자 허참,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 송해, 성우 김성원, 인기 드라마 ‘달동네’ ‘보통사람들’을 쓴 극작가 나연숙, 가수 오기택 등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시대정신이나 철학, 가치관이 변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세대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 꼭 지켜야 할 전통적 정신세계 같은 것도 있는 법이다. 그런 소중한 가치관들이 기준 없이 무너질 때 우리는 중심을 잃고 당황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이 큰 문제다. 인간관계, 인정, 살아가는 도리, 사람냄새, 마음 움직임, 사랑….   특히, 최근의 혁명적인 변화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나 같은 꼴통 아날로그 꼰대는 적응하기 벅차다. 낭패다. 생활방식의 변화는 곧바로 정신세계의 변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변하고 있고, 변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은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어 알아듣기 어렵고, 말과 글은 짧아져서 긴 글은 아예 읽지를 않는다고 한다. 글이 짧다는 것은 생각이 얄팍하다는 뜻이고, 세상이 가벼워진다는 말이다. 그 결과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모두가 감각적이고 달콤하고 예쁘장한 것에 치우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깊이 곰삭은 철학이나 짙고 진득한 정서적 교감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화학조미료 범벅의 인스턴트식품인 셈이다.   별세한 선배들이 남긴 정신적 가치를 소중하게 갈무리하는 마음가짐이 우리 문화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지난 것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 돌아가신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는 자식의 마음으로 살펴보면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 소중하게 챙길 물건과 쓰레기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을까. 이어받을 것은 고맙게 이어받고, 지킬 것은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별세한 이의 추모기사를 눈여겨 읽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철학 가치관 별세 아베 문화 예술계

2022-12-01

“실패 권장하는 철학 바탕으로 도전”

     “15~20년 전엔 크고 무겁던 이 모터들이 이제 전력 사용량을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크기가 아주 작아졌습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한 호기심이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맘스베리에 있는 다이슨 본사. 지난 1993년 이 회사를 설립한 제임스 다이슨(75) 창업자 겸 수석 엔지니어가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한쪽에 전시된 모터 10여 개를 모두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다이슨은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유명한 건 ‘계속해서 실패하라(Against the Odds)’는 경영 철학이다. 진공청소기만 해도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개발됐다. 지난 2019년 방한 이후 3년 만에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다이슨은 “실패를 장려하는 철학은 바뀌지 않는다”며 “이를 바탕으로 ‘뷰티 시장’에 본격 도전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다이슨의 헤어케어 제품인 슈퍼소닉, 에어랩 등은 한국에서도 인기다. 향후 계획은. “뷰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관련 연구와 기술 개발을 위해 앞으로 4년간 5억 파운드(약 5억7012만4200달러)를 투입한다. 이 기간에 뷰티 신제품 20개를 새로 선보이는 게 목표다.” -이런 투자 결정을 한 계기는. “헤어스타일이나 모발 관리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이 부분에서 혁신을 가져오고 싶다. 다이슨은 헤어드라이어 출시 전부터 모발과 모발과학을 연구하는데 수년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왔다.” 어떤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냐는 질문에 다이슨은 “기밀”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모발 손상을 최소화하며 머리를 말릴 수 있는 특별한 전기모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이슨은 자신을 ‘수석 엔지니어’라고 소개할 만큼 기술 개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17년엔 맘스베리 본사 안에 아예 다이슨기술공과대학을 세우고 후학을 키우고 있다. 다이슨 취업과 연계되는 4년제 학위 과정으로 등록금은 전액 무료다. 다이슨은 “매년 신입생 40여 명을 선발하는데 이들이 다이슨의 미래”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어떤 교육을 받나. “공학과 과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다. 구체적으론 배터리와 전기모터 기술을 주로 배운다. 일주일 중 사흘은 과학자들과 기술 개발을 하고, 이틀은 학문적인 이론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메시지는. “지난 1일(현지시간) 2기 졸업식이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와 러시아 전쟁 등 세계적인 혼란을 겪은 첫 번째 졸업생이다. ‘여러분에겐 조언이 필요 없다. 최악의 세계 혼란을 경험했고, 견뎌냈고, 극복했다’고 격려했다.” 다이슨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의 평균 나이는 26세라고 한다. ‘젊은’ 엔지니어는 그의 자산이기도 하다. 다이슨은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경력자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해보지 않은 사람’이 더 과감하게 도전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혁신 과제는. “배터리를 더 개선하려고 한다. 배터리는 여전히 위험하고 유지력이 낮은 등 부족한 점이 많다. 다이슨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배터리를 개발하는 로드맵을 준비했다. 또 공기청정 기능을 탑재한 헤드폰인 ‘존’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다이슨은 “전기차 상업화처럼 (다이슨은)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6년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던 다이슨은 3년 만인 2019년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그는 “다이슨이 만드는 제품은 투자와 위험 감수를 거쳐 만들어진다”며 “앞으로도 과감히 투자하고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기술·제품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국 맘스베리=채혜선 기자     ---- 사설 1. 글로벌 기술 기업 ‘다이슨’의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인 제임스 다이슨. 2. 제임스 다이슨 사무실에 있는 과거 그가 개발했던 모터들과 청소기들. [사진 다이슨]   권장 철학 기술 개발 전기모터 기술 수석 엔지니어

2022-11-09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롱한 별을 볼 수 있다. 햇볕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곡식은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고난 속에서 강해지고, 고난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행을 겪게 되면 주저앉거나 무너지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 인생을 자신있게 사는 사람음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며 한계를 규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은 평생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중심을 지키며 후회없는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삶의 모든 여정에서 절망에 맞닫뜨린 다산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다산에게 절망은 매가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삶을 포기할 이유는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실시구시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혁명가였고,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등 500여권의 책을 남긴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혼란한 해(1762년)에 태어났고, 벼슬에 올라 나랏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서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유배인이 되었고,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쓴 〈황사영 백서〉에 연루되어 오랜 생활을 강진에서 묶여 지냈다. 그후 18년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났으나 그의 부활을 저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벼슬하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며 여생을 보냈다. 공적인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험난한 다산의 삶은 사적인 기록을 보태면 더욱 처절해진다. 다산은 부인 홍씨와 6남매를 낳았지만, 4남2녀를 가슴에 묻었고, 함께 수학하던 동료들과 형 정약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또한 우애를 나누던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상황도 견뎌야 했다. 이렇듯 탄생부터 죽음까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다산을 둘러싼 세상은 무척 소란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이 '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어떤 상황에서든 세상에 휩쓸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산에게 신념을 지키는 방법은 신념을 가지고 현실을 살며, 생각을 크게 가지고, 생각에 그치지 말고 행동하며, 주변을 신경쓰는 일이었다. 다산은 요즘말로 하면 '엄친아'였다. 가문으로 보나 개인으로 보나, 그는 상당히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정약용의 집안은 이른바 '8대 옥당'이라 불린 명문가였다. 학문이 높은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옥당 관리, 즉 홍문관 관리를 8대 연속으로 배출했다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이 가문은 양반 중에서도 양반이었다. 정약용은 스물두 살에 소과시험인 생원시에 합격, 스물여덟에는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병조참의(국방부 국장), 황해도 곡산부사, 부승지(대통령 비서)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정조 임금의 신임까지 얻었으니 그의 앞날은 푸른 하늘처럼 높고 맑기만 했다.   그런데 서른아홉살 때부터 정약용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주군이 정조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 그 시초였다. 정조의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는 손자가 죽은 뒤 심환지를 비롯한 보수파와 손잡고 정조시대의 개혁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정조의 측근들은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정약용도 그런 표적이었다. 정조의 시신이 땅에 묻히고 얼마 뒤 정약용은 자택에서 의금부 관리들에게 체포되었다. 죄목은 '서학쟁이'였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였다. 오래 전에 천주교를 떠난 사람에게 이런 죄목을 뒤집어씌운 것은 정약용 체포의 본질이 정치탄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정약용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가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했다. 둘째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고, 셋째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했다. 이외에도 고초를 겪은 집안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약용의 수난은 무려 18년간이나 계속됐다. 구속된 이후에 그는 경상도 장기현(포항시)과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렇게 새장에 갇힌 새가 되어 그는 18년을 견뎌야 했다. 18년의 수난생활에 대해 정약용은 독특한 대처법을 취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승리를 위한 날개짓이었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패배를 만회하고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고자 그는 유배지에서 18년간 그렇게 날개짓을 했다. 특이한 것은 정약용의 날개짓이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중앙정계에 복귀하거나 반정부운동을 벌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완성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런 철학적인 방법으로 그는 승리를 이룩하고자 했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의 하나는 유배지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가 유배지에서 당한 설움을 감안하면, 이런 태도는 따스한 가슴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기현 유배 당시, 정약용은 죽림서원이란 곳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현지 선비들의 저지로 문앞에서 쫓겨난 것이다. 정조가 살았을 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번째 유배지인 강진군에서는 한동안 숙소를 구하지 못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정약용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집이 없었던 것이다. 장례문제에 관한 서적인 〈상례사전〉 서문에서 그는 “강진 백성들은 귀양온 사람 보기를 큰 해독처럼 여겼다.”고 했다. 다행히 주막집 여주인의 도움으로 숙소 문제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여주인이 그에게 객실 하나를 선뜻 내어준 것이다. 세상이 다들 기피하는 인물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보면 마음도 좋고 배짱도 좋은 술집마담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정약용은 유배지 주민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베풀었다. 대표적 증거중 하나가 〈촌병흑치〉라는 저서다. 이 책은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저술한 의료지침서다.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뱀을 잡아먹을 정도로 의료사각지대였던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이 책을 지었던 것이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투적 글쓰기였다. 그가 남긴 저서는 약 500권이다. 저술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기간은 18년간의 유배생활중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검찰청)의 보고서나 재판서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죄인이 되었지만, 역사의 재평가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생각이았다.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쓴다면 후세 사람들이 자기를 올바로 평가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자기에 대한 현실권력의 법적 평가를 무력화시키고 미래권력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자 그토록 치열하게 글을 썼던 것이다. 죽어서 승리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얼마든지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글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다. 오랜 유배 생활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500권의 책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쓴 500권의 책은 승전비나 마찬가지다. 젊은 나이에 주군도 잃고 가문도 망한 정약용은 길고도 지루한 유배생활 중에도 스스로를 혁명하기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 못다 한 일들을 죽어서라도 달성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역전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면 쓰러진 채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그는 불굴의 날개짓을 했다. 결국 그는 새장을 뚫고 날아올랐고, 적들보다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정약용은 그렇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김지민 기자소란 철학 다산 정약용 정약용 체포 유배지 주민들

2022-08-03

[열린 광장] 한 해를 돌아보는 숲속 산책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하던 일들을 모두 정리해 보기 때문이다.     간단한 차림으로 숲속을 걷기 위해 혼자 산으로 갔다. 혼자 숲속을 걷는 시간이 삶을 깊이 생각하고 지난날을 조용히 통찰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숲길에는 낙엽이 되어 걷는 이의 발걸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잎들이 있다.     푸른 잎들 사이에서 홍조를 띠며 색채를 바꾸어 가는 작은 잎들도 있다. 큰 나무를 덮고 있는 저 무수한 작은 잎들도 앞서고 뒤서며 결국은 모두 쇠락해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속절 없이 달려가는 세월을 본다. 이런 자연의 변화는 우리 사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 준다.     혼자 숲길을 걷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다.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고 내면 깊숙이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정복 당해 가는 시대를 사는 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볼 수도 있다. 삶을 조용히 관조하는 일은 자신을 더 성숙하게 한다.     살면서 자주 멈칫하게 하는 일들 때문에 생각까지 멈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걸으면 생각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혼자 걷는 길을 예찬하고, 걸으며 사유하며 글을 쓴 작가·사상가·철학자들을 소개한 책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 교수 프레데리크 그로의 저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 젊은 니체는 걸으면서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모아 놀라운 책들을 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그의 여러 저서들이 그렇게 나왔다. 하루에 5~7시간 걸을 때도 있었다 하니 걷기가 작가의 생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사회 계약론’ 등 다양한 저서   를 남긴 장자크 루소도 매일 오랫동안 걸으며 책을 쓴 사람이다. 그는 “걸어야만 명상을 할 수가 있다.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함께 중단된다. 내 생각은 반드시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라고 썼다.     미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년여를 동부의 콩코드에 있는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자연 속에서 살았다. 검소한 생활의 기쁨을 예찬하고,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윌든’ ‘시민 불복종’ 등 여러 저서로 간디, 톨스토이 등 많은 후대의 작가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그도 “홀로 떠나는 도보 여행이 최고의 여행이다”라고 했다.     이들과 같은 사유를 통해 세상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겪는 번민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코로나 변이 때문에 생기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주는 기쁨과 함께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다면 옛 조선의 선비처럼 ‘초가삼간 지어 내어 반간은 바람으로 채우고, 반간은 달빛으로 채우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라는 경지에 조금은 다가 설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의 끝에서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숲속의 산책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열린 광장 숲속 산책 숲속 산책 프랑스 대혁명 철학 교수

2021-12-2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