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근대의 번역어 세상
‘암시, 의지, 의식, 인상, 환경, 의무, 역설, 객관, 공황, 공명, 예술, 현상(現像), 권리, 공원, 긍정, 개인, 사회, 자유, 주의(主義), 상식, 상징, 인격, 인생관, 세기(世紀), 절대, 선천, 철학, 배경, 판권, 문화, 이성(理性), 이상(理想)’ 위의 낱말들은 일본의 대중적인 어원사전(소학관 출판)에 실려 있는 ‘메이지 시대의 번역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근대의 번역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어휘가 번역어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번역어는 외래의 말을 자신이 쓰는 말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원사전에서는 위의 어휘를 모두 문화와 관련된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문화 중에서도 주로 철학이나 사회와 관련된 어휘로 보입니다. 저는 위의 단어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음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이 어휘들이 그대로 우리말 속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에서 번역하여 사용하던 말이 특별한 고민 없이 우리말이 된 것입니다. 사실 번역어에는 수많은 고민이 담깁니다. 이 말이 좋을지 저 말이 좋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옛 고전도 수없이 찾아보았겠지요. 비슷한 개념의 어휘를 찾아 번역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위의 어원사전에서 권리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순자’에서 나오는 것으로, 선천은 ‘역경’에 있는 말로, 문화는 옛 중국 서적에 보이는 말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말도 중국의 유학서 ‘근시록’이라는 책에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물론 예전에 중국에 있던 말이라고 해도 현대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개념의 재창조가 이루어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휘로 확정하기까지도 많은 고민이 뒤따릅니다. 개인(個人)의 경우는 일개인(一個人), 각개인(各個人)이라는 말로 사용하다가 개인으로 굳어졌습니다. 상식이라는 말은 상견(相見), 상정(常情), 통감(痛感) 등이 쓰이다가 상식으로 정착됩니다. 환경(環境)이라는 말은 환상(環象)이라고 쓰이기도 했습니다. 패닉을 나타내는 공황(恐慌)이라는 말도 경황(驚慌)이라는 말로 철학에서는 쓰이기도 했습니다. 예술도 초기에는 미술(美術)로 번역하였던 말입니다. 공원(公園)도 유원(遊園), 소요원(逍遙園)이라는 말이 쓰였으나 공유지를 만인이 즐긴다는 의미에서 공원이 정착됩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일본에서 근대 시기에 이루어진 고민입니다. 우리하고는 관계없었던 과정입니다. 저는 번역은 사고를 깊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자신의 말이 아니었던 문장이나 어휘를 자신의 말로 바꾸는 과정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철학이나 종교 등의 인문학 서적의 경우는 그 깨달음의 정도가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대화의 시기에 이런 번역의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일본의 국권 침탈 속에서 자연스레 일본이 만들어 놓은 번역을 받아들이고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철학 용어, 과학 용어, 학문 용어는 그런 기원 속에서 탄생하여 우리 속에서 자라온 것입니다. 저는 새로 번역을 하거나 새로 어휘를 만들어 사용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사회성을 얻은 어휘를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용어가 정확히 개념을 담아내고 있는지 고민하고. 또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치기 바라는 것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어 근대 사실 번역어 번역어 세상 철학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