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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변하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이기희

이기희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와 소멸은 모든 만물의 법칙이다. 소멸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을 통해 인류는 진화하고 성장하고 존재한다.
 
생성(生成, Becoming)은 사물이 생겨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사물을 생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철학적으로는 새롭게 출현하고 사라진다는 의미의 변화를 의미한다. 생성과 소멸이 거듭되며 변화하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이고 서양 철학의 시작이다.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그것을 ‘물’이라 했고 데모크리스토스는 ‘원자’라고 했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라고 했는데 아이디어(Idea)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한다. 세상 만물을 그것이 그것으로 해주는 본질을 전지전능한 유일신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 교리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어록은 인생의 제한적인 유한성을 의미한다.
 
그 때 그시절 그 아름답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흐르던 강물에 두 발 담그고 손가락 걸며 사랑을 맹세했던, 새하얀 얼굴의 남학생은 어느 하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 지 알 길이 없다. 다시 만나면 서로 알아볼 수 없다 해도 가슴 속에 담았던 사랑의 언어들은 여전히 따스하고 유효하다.
 
강물은 평지에서는 천천히 흐르지만 구비를 돌고 돌며 속도를 내고 절벽을 만나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폭포 되어 갈갈이 부서져 흩어진다.
 
‘죽어도 못한다’는 사람은 아직 안 죽어봐서 그런 소리를 한다. 죽는 것 빼고는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소멸이 아니라 소멸 뒤에 오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히는 공포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지켜본 플라톤은 육체는 언젠가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었다. 죽으면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다음 세상이 결정되는데 선한 사람은 더 나은 환경에서, 악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육체를 안고 살게 된다. 그는 ‘삶은 육체 안에 갇힌 영혼의 감금 생활이요,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자 분리’라고 설명한다. 금욕과 절제로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면 육체에 감금 되지 않고 행복한 세상으로 옮겨 간다고 설명한다.  
 
죽음을 기억하면,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서 상처와 고뇌를 흘려보낼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가 사는 방법이다. 사는 것이 두렵고 죽음의 공포가 땅거미로 밀려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껴안고 치열하게 살 생각을 한다.
 
폭풍이 부는 날은 나무들도 가지를 꺾는다. 찬란했던 잎새들이 하나 둘 떠날 무렵 마지말 한 잎이 떨어질 때 나무는 마른 손 비비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뭉크의 ‘절규(The Scream)’처럼 죽음의 환상에 떨지 않고 살아있는 기쁨으로 내일을 다잡을 궁리를 한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의 꽁무니에서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를 맡는다.
 
가을이 오면 오색 찬란한 단풍으로 물든 오솔길을 혼자서 걷고, 겨울엔 목화꽃처럼 펑펑 내리는 눈을 쓸어안고 가슴 적시는 시를 쓰리라. 억겁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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