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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정체성 교육, 왜 중요한가

요즘 집안에 ‘틀어박혀’ 사는 한인 2세 청소년들이 많다고 하는데 주변에도 꽤 있다. 특히 젊은 한인 남성들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식사와 모든 것을 방에서 해결하면서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 즉, 반년 이상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행위를 칭하는 신조어가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이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고 미주 한인 사회와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최근 방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즉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으로 버튼 한 개만 누르면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집으로 배달되기 때문에 방에서 나갈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기에 방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틀어박혀’ 사는 젊은 남성들의 경우 우선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산다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가족과의 접촉도 피하고 방안에 냉장고, 음료수, 그리고 간단한 다과 등을 쌓아두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고 외톨이로 살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즉 직장에 다닐 수 없고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자칫 정신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매우 높아질 수 있다.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한 가족 내부의 사정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젊은 한인 남성들이 ‘틀어박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정신의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적 측면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만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한인 2세들의 경우는 정신적, 그리고 가족 내의 문제와 더불어 ‘인종’ 문제를 매일 접하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같은 다인종, 다민족 사회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아시안 아메리칸의 경우 정체성 결여는 정신적 질환으로 발전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이 발표되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인 2세들이 주로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인도 아니고 별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목적의식도 없고 의욕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방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는 평소 정체성 강의를 하면서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 확립의 중요성을 매번 강조하고 있다. 정체성의 결여는 “닻을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배와 같다” 또는 “모래 위에 고층 빌딩을 짓고 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정체성 결여는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회 활동을 기피하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자신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면 어떻게 다인종 다민족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인 이민 1세대는 경제 활동에 집착하다가 자녀 교육에 소홀했던 경우가 많다. 교육은 학교에 맡기고 방치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한인 2세들은 학교에서 ‘인종’ 문제를 접하면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럴 때 정체성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당당히 이겨내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반면 정체성이 결여된 학생들은 방에 ‘틀어박혀’ 사는 은둔형 사회 기피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이 나오기 전에 한인 사회는 정체성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리버사이드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미주 한인 정체성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다 함께 참여하고 꿈을 이루어 내면 좋겠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미국 정체성 정체성 결여 평소 정체성 자녀 교육

2024-12-03

[중앙시론] 미국 이민 반세기

개인적으로 이민 50주년을 맞았다. 옛날을 생각하면 참 아득하다. 그 당시 이민 온 많은 한인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걷으라 생각한다.  나의 개인 이민사지만 내용에 공감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1974년 11월의 어느 날 한국, 그해 첫눈이 펑펑 내리는 몹시 추운 날이었다. 포드 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날로 기억한다. 김포 공항에서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과 여동생, 이렇게  4명의 가족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잔뜩 겨울옷으로 무장했는데 하와이는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였다.       하와이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영주권을 받은 후 다시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LA공항에 1년 먼저 이민 온 고모님과 로즈우드 감리교회 이창순 목사님이 마중 나왔고 우리의 이민 생활은 로즈우드 감리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때는 다 그랬다.   원래 나의 계획은 고등학교에 편입해 1년 정도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만 18세였던 나는 성인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편입이 불가능했다. 미국에서 18세는 성인 취급을 하기 때문에 미성년자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법 때문이다.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임시로 LA 서쪽에 있던 이화원이라는 한국 식당에 버스보이로 취직했다. 버스보이란 식당에서 남긴 음식을 치우고 접시 닦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화원은 고급 한식당으로 할리우드 근처에 위치해 영화배우들도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 소유로 알려졌었다. 당시 임금은 시간당 2달러가 안 됐지만 팁으로 하루 5달러 이상 받았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분들은 팁만 하루 20달러 이상 받았는데 당시에는 고소득이었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이 끝났다. 미군에 협조했던 베트남인들은 사이공을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헬기를 타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달 후 나는 미군에 자원입대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G. I. Bill’ 즉, 대학 학자금 보조 프로그램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미군에 입대해 3년간 복무하고 전역하면 4년 동안 대학 학자금을 보조해 주는 제도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미군은 징집에서 지원병 제도로 바꾸었는데 입대를 유도하기 위해 파격적인 혜택을 내놓았다. 덕분에 나는 학자금 걱정 없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입학식 때 서 있는 자세가 삐딱하다는 이유로 군화를 신은 교관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해 주저앉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맞은 부위가 너무 아프고 쓰라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군대 문화의 폭력성을 경험한 것이다. 그 이후 교련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생각하고 군사 문화, 독재, 폭력을 싫어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미군에 입대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입대를 결심한 후 모병소를 찾아가 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 문제는 대부분 기계 용구 사용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뭐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또한 영어 문제지라 읽는 시간에 쫓겨 해독이 불가능한 시험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문제는 4지 선다형이었다. 소위 ‘찍기’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받은 입시 교육 덕분에 4지 선다형 시험에는 익숙했다.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용구 그림을 보아도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감’으로 답을 찍었다.     결과는 우수한 성적의 합격이었다. 그리고 위생병으로 입대했다. 당시 미군은 입대 시험 성적에 따라 병과가 결정되었는데 가령 10 Bravo는 보병 병과이고, 91 Bravo는 위생병 등 입대 시험 점수가 높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병과에 지원이 가능했다. 나는 가장 좋은 점수대에 해당하여 위생병 지원이 가능했다. 당시 위생병을 지원한 이유는 부모님이 전역 후 의대에 진학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제대 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미국 반세기 개인 이민사지 이민 생활 이민 50주년

2024-11-18

[중앙시론] 대한민국의 위상과 한인 차세대

U.S.뉴스가 최근 발표한 세계 10대 강국 리스트에 대한민국이 6위를 차지, 8위에 그친 일본을 앞섰다고 한다.  1위는 미국이 차지했고, 이어 중국 2위, 러시아 3위, 독일 4위, 영국 5위 등 순이었다. 한국에 이어 7위에는 프랑스가 올랐다.   강대국 순위를 정한 기준은 외교 정책의 영향력, 국방 예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지도자, 그리고 강력한 군사 동맹 등이었다. 대한민국은 군사력, 방위 산업, 반도체 중심의 기술력, 미디어 콘텐트 생산 부문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가 인정하는 국가적 위상을 잘 모르는 듯하다. 필자는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데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이 더 심한 것 같았다. 해외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사는 듯하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미주 한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장년층과 노년층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자동차만 해도 일부 한인은 아직도 일본 차 또는 독일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차는 아직 성능 면에서 믿음을 갖지 못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세계 6대 강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실로 놀랍다. 20세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조선은 멸망했고, 1910년부터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문화적 수탈을 당했다. 또 정치적으로 자유가 없는 이등 시민으로 살아야 했다.     이후 해방이 되었지만 강대국들의 정치 논리에 휩싸여 분단국가가 되었으며, 이어 6·25 한국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세계 최빈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원조로 겨우 연명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모든 것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은 이제 영국,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6대 강국으로 발전했다.     그런데도 일부 장년층과 노년층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1970~8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은 절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그만큼 일본과의 격차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 강국 지표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앞선다는 발표도 나왔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는 아직 거리가 있다. 아직도 일본은 과거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극우세력은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일부 학자와 정치인이 일제 강점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힘을 길러 사과를 받으면 된다. 도산 안창호는 모든 분야에서 힘을 길러 일본을 이겨야 한다고 했다. 도산의 그런 바람이 차츰 현실이 되는 것 같다.     필자는 대한민국은 이제 일본과 당당히 경쟁할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만간 일본을 앞서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20-30대의 양국 젊은층은 서로 호감을 가진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앞으로 한·일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과 일본이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은 미국의 한인 차세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들에게 ‘미주 한인’ 또는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을 심어주는데도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감에 넘치는 한인 차세대들이 미주 한인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소장중앙시론 대한민국 차세대 정작 대한민국 국제적 위상 미주 한인들

2024-10-07

[중앙시론] 교토국제고와 친일 논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일본 전역에 TV로 생중계되면서 난리가 났다. 일본 고교 야구 꿈의 무대로 불리는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일본 공영 방송인 NHK는 ‘동해’를 ‘동쪽 바다’, ‘한국의 학원’을 ‘한일의 학원’으로 표기해 그 의미를 축소했다고 한다.     교토국제고는 왜 ‘동해 바다’가 포함된 교가를 부르는가?  동해 바다 건너 혼슈 땅은 백제인들이 건너와 세운 대화 왜 왕조가 있던 곳이다. 즉, 옛 백제인 조상들이 건네온 땅이라는 의미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 한인들이 교토조선중학교로 설립했다고 한다. 1951년 동방학원으로 개명했다가 1958 교토한국중학으로 변경했고, 2004년 교토국제중고교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1961년 교토한국중학교를 정식으로 인가했다.     교토국제고의 학교 소개 웹사이트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삼중언어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또 한국 지리와 한국사, 그리고 재일 한국인 역사도 가르친다고 한다.  학급당 최대 20명으로 맞춤식 교육을 한다고 자랑한다. 고교 3학년이 되면 학생마다 전담 진로지도 교원을 배정해 담임과 마지막까지 진로 상담을 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2004년 정식 일본학교  인가를 받으면서 한일 양국에서 학력을 인정하는 정규 학교로 성장했다. 교장 인사말에는 지금까지 배출된 2600여 명의 졸업생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한국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고,  한국 프로야구 선수도 배출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10위권 대학과 일본 간사이 지역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야구부는 교토부 내 각종 대회에서 상위권 입상을 거듭하면서 야구 명문교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교토국제고는 오래전부터 재일동포 학생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거듭된 친일 논란으로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교토국제고 학생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김형석 신임 관장이 취임한 독립기념관은 올해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김 관장은 국회에서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멘트 안 하겠다”며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광복을 인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장이 탄생한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일제 치하, 우리 부모님들 국적은 일본” 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한국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조선적’이거나 ‘무국적자’ 였다. 조선적은 일본인과는 차별을 두는 이등 시민을 의미한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한인 이민자들은 ‘무국적자’로 분류되어 대한인국민회의 신원보증을 받은 후에야 미국 입국이 허락된 것 등 역사적 사실들도 부정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는 지역 내 간석오거리역에 ‘독도 테마역’을 조성했는데, 얼마 전 독도 관련 시설물과 ‘독도 포토존’을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재일 한인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 징용 등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거나 가난 때문에  건너간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엄청난 차별을 경험했고 2,3세들은 지금도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재일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당당히 부른 것이다.   재일동포의 용기를 북돋워 주기는커녕 오히려 역사적 사실조차 외면하려는 현 정부의 역행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교토국제고 친일 한국어 교가가 한국어 영어 한국 프로야구

2024-09-11

[중앙시론] ‘모임’과 김민기

1974년 당시 로스앤젤레스 시티칼리지(LACC)에 다니던 이민 초년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 애환을 공유하며 그냥 ‘모임’으로 이름을 정했다. 올해 ‘모임’의 5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민 초년생에서 이제는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미 우리 곁은 떠난 친구도 있고, 한국이나 타 지역으로 이주한 친구도 있다.     1978년 미주 한인사회 최초로 ‘모임’ 극회를 만들어 유랑극단이라는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창립 멤버는 아니다. 1974년 11월 이민 온 나는 그다음 해 5월 말 미군에 입대해 3년 동안 서독에서 복무를 마치고 1978년 5월 명예 제대를 했기 때문에 처음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제대 후 심심하던 차에 여름방학 기간 우연히 ‘모임’의 연극 연습 장소에 가게 되었다.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구경 삼아 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연출을 맡고 있던 김석만(전 한국종합예술원 교수)이 나를 지목하며 잠깐 나오라고 했다. “여기 한번 읽어봐.” 얼떨결에 연극배우로 데뷔하게 된 순간이었다.     유랑극단은 이근삼 희곡으로 해방 전 신파 유랑극장 배우들의 다난한 삶을 통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되물어 보는 작품이다. 당시 나는 이런 배경과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삭’이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랑극단을 이끌던 오소공의 죽음으로 유랑극단을 이끌게 된 만삭과 세실이, 그러나 유랑극단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1979년 여름 장소현 작으로 ‘이철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에서 이철수 역을 맡게 된다. ‘이철수 사건’은 한인 이민사뿐 아니라 소수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철수는 1972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갱 멤버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런데 복역 중 백인 우월주의자인 한 수감자가 이철수를 살해하려다 몸싸움 과정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이철수는 사형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인 언론계의 원로인 이경원 기자가 당시 이 사건에 의문을 갖고 파헤치면서 결국 진실이 밝혀져 이철수는 무죄로 석방됐다. 연극은 이런 내용을 다뤘다.  연극 수익금은 전액 이철수 구명 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연극 배경음악으로 얼마 전 고인이 된 김민기의 노래들이 많이 쓰였다. 그렇게 ‘모임’ 극회와 김민기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석만 교수와 김민기는 서울대학교 연우무대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연극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고 배경 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모임’ 회원들은 1980년대 김민기가 시작한 신정 야학에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김민기를 딱 1번 만난 적이 있다. 대학로 학전에서 성황리에 공연되던 ‘지하철 1호선’을 김석만 교수와 함께 관람한 후 김민기와 인사를 나눈 것이다. 나는 1984년 윌셔연합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고 아내와 함께 ‘상록수’를 불렀다. 그리고 김민기의 ‘친구’는 나의 애창곡 중 하나다.     김민기의 노래들은 1970~80년대 한국의 독재정권 시절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줬다. 특히 ‘아침이슬’은 대표적인 저항 가요로 불렸다.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모임’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한인 사회에서 50년간 지속하는 모임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다툼도 있었지만 다시 화해하고 우정을 나누고 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해 본다. 구본우, 제임스 김, 장사한, 박무영, 박준성, 백광호, 김영수, 노재유,  김교효, 강용석, 이광진, 김정석, 그리고 김석만. 그리운 이름들이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연구소 소장중앙시론 김민기 전액 이철수 한국종합예술원 교수 미주 한인사회

2024-08-05

[중앙시론] ‘파차파 캠프’ 미국 순회 전시회 여는 이유

커뮤니티 활동 지원 단체인 멜론재단의 도움으로 파차파 캠프 미국 순회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회 첫 번째 장소는 샌프란시스코로 지난 6월 29일 개막식에 특강 차 다녀왔다. 요즘 여러 곳에 강연을 많이 다닌다. 지난 5월에는 서울대에서 개최된 다문화 학회에서 기조 강연을 했고,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7월 필라델피아, 10월엔 버지니아·워싱턴 DC를 다녀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전시회는 최근 리모델링 한 샌프란시스코 코리아센터 (전 한인회관)에서 열리는데 개막일부터 성황을 이뤘다. 임정택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부부, 최점균 샌프란시스코 평통 회장 등 약 100여명이 참석했다. 임 총영사는 축사 이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필자의 특강을 끝까지 경청해 인상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초기 한인 독립운동의 성지다. 도산 안창호 선생 부부도 1902년 10월14일 이곳에 도착했으며, 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다. 대한인국민회 본부가 있었으며 하와이에서 본토로 이주한 한인 대부분이 이곳에 정착했다.       특히 대한인국민회 회장을 역임한 이대위 목사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많은 활동을 했다. 이 목사는 1913년 리버사이드 헤멧 지역에서 발생한 ‘헤멧 밸리 사건’때 당시 국무장관이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얀트에게 ‘한국인은 일본 식민 국민이 아니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낸 인물이다. 이를 통해 일본 정부가 미주 한인 사회에 간섭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헤멧 밸리 사건’은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 거주하던 11명의 한인이 근처 헤멧 밸리 복숭아 농장에 취업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이 기차로 헤멧역에 도착하자 당시 아시안 배척이 심했던 분위기에서 백인 노동자 200여명이 “돌아가라고” 위협했고, 한인들은 리버사이드로 쫓겨오게 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측은 이 사건을 핑계 삼아 미국 내 한인들도 ‘일본 식민국민’이라고 주장하며 일본 대사가 미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면서 외교 문제로 번졌다. 브라얀트 국무장관은 사태 파악을 지시하고 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목사의 전보를 받게 됐다. 이에 브라얀트 장관은 “미국 거주 한인은 일본 식민 국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일본 정부에는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로써 미국 거주 한인은 일본 식민국민이 아니라 당당히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한인들은 지속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한인국민회는 한인 대표 단체로 부상했다.     파차파 캠프는 한인 독립운동의 메카 역할을 했던 곳이며,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 본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가 제일 먼저 생긴 곳이 바로 파차파 캠프이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에서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는데, 그 전인 1911년 12월 삼권분립에 의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실험한 곳이 파차파 캠프다. 이는 파차파 캠프가 ‘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역사적 장소’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내용의 특강에 만족스러워하는 참석자들 반응에 필자도 보람을 느꼈다. 다음날 이번 전시회를 총괄한 김한일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7월 말까지로 예정된 전시회를 9월 말까지 연장이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다음 전시회는 10월19일 버지니아·워싱턴DC에서 예정되어 있어 일단 연장이 가능하다고 답을 했다.   전시회는 뉴저지·뉴욕 (2025년 1월 18일), 시카고 (2025년 6월 1일), 그리고 리버사이드(2025년 8월 3일부터 11월 23일까지)로 이어질 예정이다.  미국 내 다른 도시와 한국에서도 전시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전시회는 미주 한인 사회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리버사이드에 추진 중인 도산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차세대들에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미국 전시회 샌프란시스코 전시회 대한인국민회 회장 대한인국민회 본부

2024-07-07

[중앙시론] 보수·진보 공동의 한반도 정책 필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수십 년 동안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사업도 해왔는데, 학계, 기업, 정부에 종사하는 미국인 친구들은 종종 한국과 남북 관계에 대한 내 견해를 물어보곤 했다. 내 견해를 말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 친구나 지인들에게 듣던 내용과 매우 다른 것 같다며 혼란스러워했다.   나도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내 시각이 전혀 이상하거나 치우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점차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한국어를 잘 이해하는 미국인 동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그럴까? 그 답은 놀랍도록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정치 스펙트럼에서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보다 외국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더 잘했기 때문이다. 보수는 몇 세대에 걸쳐 더 많은 부를 누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덕에 전문적 용어 구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를 진보 인사들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중요한 담론과 예리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과 같은 외부 관찰자에게 영어에 능통하고 전문적인 정치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쪽은 보수 진영이었다.   나는 스스로 보수적인 성향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꼭 필요하지 않으면 바꾸지 않는 체질이다. 그것이 내 비즈니스와 개인 생활의 방식이지만, 때로는 현상유지가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지, 그뿐만 아니라 상황을 개선하려면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린 생각과 자세를 지녀야 한다. 비록 그 방법론에 논란과 타협, 그리고 고통스러운 결단이 수반되더라도 말이다.   나는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를 위한 길이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길을 가려면 보수와 진보가 공동으로 장기적 관점의 정책을 수립하는, 근본적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대통령 또는 국회를 장악하더라도 대한민국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따를 수 있어야 한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4년마다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 정책이 뒤바뀌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과거 서독이 바로 그런 모델이다. 그들은 동방정책을 채택한 뒤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해도 기본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약 10년 전 나는 같은 생각을 가진 몇몇 한국인과 진보 진영의 관점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무언가 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공동 설립한 로스앤젤레스의 태평양세기연구소(PCI)는 주로 진보 성향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과 역사, 주요 현안 등을 가르치는 ‘한평 아카데미’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하나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잘 표현할 인재 양성이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정부, 학계, 언론계 등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올해엔 5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다.   앞으로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닥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이미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공식화했다. 또 핵 무장을 국가 정체성의 근본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서방과 러시아의 집단적 대결이 심화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할까.   대한민국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을 넘어서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보수와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진보가 필요하다. 한평 아카데미가 나름 그에 일조하고 있다.   ━       스펜서 김   항공우주 제품 제조판매회사 CBOL Corp 대표. PCI 공동 창립자이자 미국 외교협회 회원. 2006~08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APEC 기업인자문위 미국대표로 활동. 2012~13년 하버드대 애쉬센터 레지던트 펠로.  스펜서 김 / PCI 공동 창립자중앙시론 한반도 보수 진보 진영 보수 진영 진보 성향

2024-05-21

[중앙시론] 5월 ‘아태문화유산의 달’의 의미

미국에서 5월은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아태문화유산의 달)’이다. 아·태계가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것으로 각 시나 주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다인종·다민족 사회인 미국은 2월은 흑인 역사의 달, 4월은 여성의 달, 10월은 라티노 문화유산의 달, 11월은 인디언 문화유산의 달 등 기념하는 것도 많다. 그동안 차별과 억압을 받은 소수계와 여성들의 공헌을 되새기고 훌륭한 스토리를 발굴해 차세대 등에 귀감이 되도록 기념하는 것이다.   올해는 요바린다에 있는 닉슨 라이브러리에서 5월 14일 오후 6시 아태문화유산의 달을 기념하며 필자의 저서 ‘파차파 캠프’ 북토크를 하기로 되어 있다.  한인들도 많이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행사는 타 커뮤니티에 한인 사회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파차파 캠프는 미국 최초의 한인 타운일 뿐 아니라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도 도입한 민주공화정을 제도화하여 정착시킨 곳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장소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알리지 않으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며,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TV 채널 11인 KTTV 방송에서는 아태문화유산의 달에 김영옥 대령을 집중 조명하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UC 리버사이드의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에서 녹화할 예정인데 김영옥 대령 역시 미주 한인 사회는 물론 일본계 미국인,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이자 인도주의자이다. 김영옥 대령은 세계 2차 대전과 6·25 한국전쟁 등에서 엄청난 공을 세워 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곁에서 총상을 입은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전쟁에서 살아남으면 우리 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드는데 평생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영옥 대령은 1972년 명예 제대 후 평생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여성, 그리고 입양아 등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을 몸소 실천했다.     이제는 한인 사회의 대표적 비영리단체로 성장한 한인건강정보센터, 코리아타운 청소년회관, 그리고 한미연합회 등을 공동 설립한 장본인이 바로 김영옥 대령이다. 그는 또한 일미박물관 설립에도 관여했고, 고포 브로크 이사장을 맡는 등 일본계 커뮤니티에서도 존경받는 리더로 활동했다.     최근 주류 사회에서 한인 사회와 한인들의 업적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인다. 32년 전 LA폭동 당시 한인 사회가 배척당했던 것과는 완전히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기억해 차세대에게 전달하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며, 멈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태문화유산의 달’은 우리 것을 지키면서 타인종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아직 발굴하지 못한 인물들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1970년대 본격적인 한인 이민이 시작되면서 1세들은 억척같이 일하고 노력해 지금의 한인 사회 토대를 닦았다. 하지만 한인 차세대는 이런 스토리를 알지 못하고 별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체계적으로 한인 1세들의 스토리를 차세대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연구와 인터뷰가 필요하다. 물론 연구 기금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태문화유산의 달’은 그냥 기념하고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필자는 차세대에게 “자신의 역사를 모르는 것은 닻을 내리지 못한 배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라며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태문화유산의 달’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차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아태문화유산 의미 한인 사회 한인 차세대 한인건강정보센터 코리아타운

2024-05-12

[중앙시론] 애틀랜타에서 느낀 한인 사회 미래

애틀랜타에 본부가 있는 한미우호협회로부터 올해 평생업적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애틀랜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애틀랜타 방문은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었다.     애틀랜타의 첫인상은 교통 체증 문제였다. LA보다 더 심한 듯했다. 오후 2시 반쯤 공항을 출발해 다운타운까지 30분이면 될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렸다. 급성장하는 도시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한인 거주지는 둘루스, 스와니 그리고 도라빌 등  3곳에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도라빌은 1990년 최초로 한인 상권이 형성된 곳이고, 둘루스는 현재 최대 한인 상권 지역이다.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 최대 도시인데 최근 한인 인구도 급증세를 보인다. 이제 애틀랜타 한인 사회는 LA와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현대, 기아, SK, 등 한국 대기업의 활발한 진출이다. 이들 기업의 투자가 늘면서 한국으로부터의 유입 인구도 많아졌다고 한다. 또 온화한 기후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수준으로 인해 시카고와 동부지역에서 한인 이주가 늘고 있는 것도 한인 인구 급성장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미우호협회의 박선근 회장은 LA 지역에서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고 홍명기 회장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분이다.  특히 그는 2004년 ‘좋은 이웃 되기 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미국 사회의 주역이 되려면 좋은 평판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지론이다.     박 회장이 한미우호협회를 창립한 것은 1996년이다. 한미 우호 협력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매년 한인 '이민자 영웅상'과 '평생업적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 이민자 영웅상 부문은 성김 전 주한대사가 받았다.       한미우호협회 시상식에는 주류 유력 인사들도 대거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시상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로는 네시선 딜 전 조지아 주지사, 리치 맥코믹 연방하원, 마이스 데이브스 판사, 샘 올렌스 전 조지아 검찰총장, 호스트 모터 리치 칼튼 호텔 창업주, 앤드루 영 전 애틀랜타 시장 및 U.N. 대사, 그리고 프랭크 블레이크 델타 항공 회장과 홈 디포 회장 등이 있었다. 참석자 240명 가운데 한인은 4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 한국 대기업의 조지아 주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국과 한인 사회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한다. 주요 정치인들이 한인 사회 행사에 주저 없이 참석하는 것이 이런 이유라는 귀띔이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한인 사회 행사에 주지사가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조지아 주는 다르다는 것이다.     1.5세, 2세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그들은 한인 사회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의 아시안·아메리칸학 중·고교 필수 과목 포함,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 방법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세계 최대 한인 회관이라는 애틀랜타 한인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동남부연합회 연례회의에 참석해 기조 강연도 했다. ‘한인회의 바람직한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인회가 1세 중심에서 1.5세와 2세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건물 대강당에서는 한인 1.5,2세들과 다른 아시아계 젊은이들이 ‘애틀랜타 총격 참사 3주년 기념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행사가 함께 열렸다면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은 한인 사회 전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1세와 2세가 같은 건물에 있지만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행사를 하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1세와 2세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활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애틀랜타 한인 사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였고 한인 사회의 미래도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애틀랜타 한인 애틀랜타 한인 애틀랜타 방문 한인 인구

2024-04-07

[중앙시론] 대선에서 사라져야 할 백인 우월주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51%의 지지율로 압승했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도 승리하면서 공화당 후보가 거의 확정적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거짓 정보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지속하고 있어 우려된다. 그는 지난달에도 당내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후보가 출마 자격이 없다는 허위 정보를 퍼트렸다.  출생 당시 인도계인 그의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허위 정보다. 헌법에는 35세 이상의 미국 출생 시민권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연방상원의원도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다고 거짓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들은 유색 인종을 겨냥한 것으로 다분히 의도적이다. 헤일리는 인도계, 크루즈는 남미계, 그리고 오바마는 혼혈이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결집과 그들의 지지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이민자와 소수계 때문에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될 경우 백인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민을 금지하고, 소수계 차별 금지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매우 강하다. 그들은 트럼프가 각종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됐어도 관계없다는 반응이다. 백인 우월주의는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백인에게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레드넥’으로 불리는 남부의 저소득층 백인들은 자신들이 유색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희망이자 우상이다.   일부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이 인종 차별 국가였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헤일리 후보도 “미국은 인종차별 국가인 적이 없었다(America has never been a racist country)”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인도계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차별을 경험했다”며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은 인종 차별이 없는 국가이며, 따라서 소수계에 특별 대우를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소수계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고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백인들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보수 세력인 소위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미국 정치에서 인종 문제는 민감한 이슈로 줄곧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런데 트럼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중국 때문이라며 중국 때리기에 앞장섰다. 이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이제 표면으로 나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것과 다름없었다.  트럼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대신 ‘차이나 바이러스’ 또는 ‘쿵 플루’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아시안 대상 증오 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 편들기는 급기야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태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백인 우월주의란 백인이 소수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는 악이다. 악은 사라져야 한다. 미국은 모든 인종과 민족이 동등하게 대우 받고 자유와 정의가 보장되는 국가여야 한다. 이런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부 보수 백인 교회들이다. 그런데 일부 한인 교회도 이에 동조하는 듯해 우려된다.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인종 차별적 발언이나 공약은 등장하지 말아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우월주의 대선 백인 우월주의자들 저소득층 백인들 트럼프 지지자들

2024-02-05

[중앙시론] 소수인종학과 미주한인사

2024년을 시작하면서 부끄럽지만 필자의 이야기로 칼럼을 시작하려고 한다. 한인 사회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사라고 생각해 겸연쩍지만 소개한다. 지난해 5월 학과장으로부터 정교수 스텝(Step) VI로 승진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만장일치의 찬성이었다는 서한도 함께 받았다. UC계열 대학에는 조교수, 부교수, 그리고 정교수 제도가 있는데  Step VI로의 승진은 정교수가 된 이후 또 한 번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Step VI으로의 승진은 UC 교수로는 거의 최고 직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UC 교수가 된 지 31년만의 성과라 스스로 자랑스럽고 이끌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필자는 1970년대 중반 18세에 이민을 왔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고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 후 UC 버클리에서 학사, UCLA에서 석사, 그리고 다시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UC리버사이드에서 종신 교수가 됐고 이번에 Step VI를 취득한 것이다. 아마 UC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한인 이민자 출신으로는 필자가 처음일 듯싶다.       필자는 지난 30여년 학문적으로 외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UC버클리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학문인 아시안 아메리칸학과 소수인종학을 전공했다. 1990년 5월 UC버클리애서 소수인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이민 후 영어와 씨름하면서 힘들게 공부한 지 16년 만이었다. 필자에게는 ‘미국 최초의 소수인종학 박사’, ‘소수인종학 박사 1호’ 등의 칭호가 따라다녔다.     당시 소수인종학은 생소한 학문이었는데 특히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가르치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새로운 학문 세계였다. 소수인종학은 미국 내 인종 문제를 소수계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학문이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학문은 백인 주도로 백인의 시각에서 백인을 위한 것이었으며 소수인종은 배제되었다. 모든 것이 백인을 위한, 백인의 시각과 관점을 반영할 뿐 미국 사회에 대한 소수 인종의 공헌은 무시되었고 인종 차별은 정당화되었다.     필자가 소수인종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4년 미국 이민, 1975년 미군 입대, 1980년 UC버클리 입학의 삼박자가 맞아서 생긴 결과다.     필자가 박사 학위를 받은 지 30년이 된 해인 2020년 캘리포니아 주는 소수인종학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교육국의 ‘교과목 심의 커미션 (Instructional Quality Commission)’은 2020년 11월 19일 오후 2시 22분쯤 미주한인사 7개를 포함, 29개 학습 지도안 (Lesson Plans)을 모두 통과시켰다. 미주한인사는 6개 주제로 7개의 학습 지도안이 포함되어 있는데 필자는 그중 김영옥, 도산 안창호, 그리고 LA 폭동과 인종 문제 등 3개 학습 지도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다른 저자들이 새미 리 박사,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에 관한 2개 레슨 플랜과 K-팝 학습 지도안을 작성했다. 이 학습 지도안은 2021년 3월 캘리포니아 주 교육국 이사회에서 최종적 통과됐다. 소수인종학 모델 커리큘럼에 7개의 미주한인사 학습 지도안이 포함된 것은 한인 교육자들이 단합해 이루어낸 쾌거다. 소수인종학 학자로서 매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보람된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를 계기로 미주한인사 학회가 시작되었고 내년에는 UC 리버사이드에서 제3차 미주한인사 학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는 소수인종학과 미주한인사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선생님들은 모르는 주제는 가르칠 수 없다. 현직 선생님들은 소수인종학 또는 미주한인사를 접하고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재교육을 통해 미주한인사 교육이 현장에서 잘 이루어지도록 제도 보완을 해야 할 시점이다.   미주한인사 교육은 차세대 한인 청소년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의 역사의식과 자긍심을 갖게 해주며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또한 미주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타인종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은 다인종, 다민족 사회 공동체 구성에도 기여하는 일이 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소수인종학 미주한인사 소수인종학 박사 당시 소수인종학 22분쯤 미주한인사

2024-01-03

[중앙시론] 차세대에 미주 한인사 교육 중요하다

재외동포청이 제1차 재외동포 정책 기본계획 공개 토론회를 12월 9일 (한국시간)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했고 필자도 줌으로 참여했다. 앞으로 5년 동안(2024~2028) 재외동포청이 어떤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토론회는 재외동포청과 재외한인학회, 그리고 고려대학교 아세아 문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재외동포청은 지난 6월 출범과 함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지속 가능한 대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재외동포청은 여러 부처로 분산됐던 재외동포 관련 정책과 업무를 통합했다.  이는 예산 절감은 물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에 필요한 반가운 변화다. 또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정책을 모두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지속 가능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겠다는 것도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재외동포 정책의 초점을 지원에만 맞췄다. 즉, 재외동포사회의 특성이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대한민국에 얼마나 충성하고 기여하는가(Loyalty paradigm)’가 정책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새로 발표된 정책 기조는 ‘호혜적인 동반성장’이다. 즉, 재외동포사회 성장은 물론 대한민국 발전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글로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해외 인재 양성의 의지도 담겨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한국 거주 동포도 정책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한인 1세들의 역이주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최근 재외동포도 입국 시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 입국 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필자도 거의 매년 세미나와 특강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외국인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다. 아울러 해외 입양인 권익 향상 계획도 소개됐다.   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주 한인의 정체성 확립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참여 의식의 고취다. 정체성의 확립 없이는 차세대들이 미주 한인 사회는 물론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 즉,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은 뿌리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글학교와 한국어학교 등에서의 뿌리 교육은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 그리고 문화 교육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필자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교육은 미주 한인사와 문화 교육이 핵심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재외동포청은 미주 한인사와 문화를 차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인종학을 고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미주 한인사가 고교 교과 과정에 도입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마련되었다. 애나하임 교육구는 이미 2023년 가을학기에 미국 최초로 미주 한인사 과목을 신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내용은 주류 언론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주 한인사를 가르칠 교사의 부족이다. 다행히 내년에 재외동포 교육문화센터가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센터의 교사 연수 과정에 미주 한인사를 포함해 한국어학교 또는 한글학교 교사들이 미주 한인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차세대들이 모국을 방문해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단순히 관광성 체험이 아니라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센터 프로그램에 미주 한인사를 포함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고 김영옥 대령과 새미 리 박사 등 미주 한인들의 영웅담은 차세대들에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초기 한인 사회의 주축이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파차파 캠프를 건설,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제도화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발표한 민주공화정의 뿌리는 바로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시에 있었던 파차파 캠프였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즉, 미주 한인 사회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런 사실도 차세대들의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외동포청은 또한 재외동포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도 펼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재외동포는 물론 ‘다문화 사회’도 포용할 수 있는 인식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차세대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는 모국의 놀라운 발전상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 사회에 대한 역사 교육도 필요하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회와 대한민국은 상생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과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 지향적 재외동포정책 수립과 실행이 중요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차세대 한인사 재외동포청과 재외한인학회 미주 한인 재외동포사회 성장

2023-12-12

[중앙시론] ‘소수 인종학’, UC 입학 필수 과목 채택해야

캘리포니아 주는 2021년 11월 5일 소수 인종학(ethnic studies) 과목을 고교 졸업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어 UC 교수 평의회는 소수 인종학 과목 수강을 입학 조건으로 하는 안건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통과된 안건은 아직 UC BOARS (Board of Admissions and Relations with Schools) 위원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로 인해 소수 인종학의 UC 입학 필수과목 채택이 자칫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OARS는 UC 입학과 관련 전반적인 규정을 만들고 시행하는 중요한 위원회다. 따라서 소수 인종학 관련 안건도 이 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 데 일부 위원의 반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수 인종학 도입 심사 위원회 회의에 10개 UC 평의회 의장들을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즉, 심사 과정에 교수들은 전부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다분히 정치적인 속셈이 보인다. 이에 UC 소수 인종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소수 인종학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BOARS 위원들 중 소수 인종학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 소수 인종학을 고교 졸업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백인 학생 비율이 높은 일부 교육구에서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가르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일부 한인들도 소수 인종학 필수 과목 지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정치적 이유만으로 반대하고 있는 듯해 우려된다.       그럼 비판적 인종 이론은 무엇이며, 왜 백인 학생이 많은 교육구에서는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비판적 인종 이론의 핵심은 미국 역사, 특히 인종 관련 문제를 백인과 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닌 소수계, 그리고 다문화의 시각으로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미국 고교 과정에서 뉴욕 엘리스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해 가르치며 미국은 이민 국가이며 자유와 평화를 중시하는 기회의 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또 다른 관문인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천사섬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엘리스 섬과 달리 천사섬은 주로 아시안 이민자들을 억압하고 심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역사를 감추기 위해서다.     천사섬 역시 미국의 관문이며 역사이다. 천사섬 입국 심사대는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반아시안 정책을 시행했는지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판적 인종 이론의 핵심이다. 많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유럽 중심의 시각으로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비교육적 처사다.   과거에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다고 가르치면서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비판적 인종 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이미 미국 대륙에는 수백만 명의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미국 대륙 발견과 도착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유럽 중심적 시각으로는 발견이 될 수 있지만 원주민 시각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에 반대하는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거나 이러한 역사를 감추고 싶어서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국 역사의 검증과 재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 역사를 소수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학생들에게 인종 문제의 오해와 진실을 가르쳐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국의 ‘악’인 인종차별의 역사를 피해자인 소수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백인 우월주의’를 고수하고 백인들이 저지른 인종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싶어하는 측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학문적 이론에 대한 찬반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역사를 여러 관점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 방식이다. 사실 이론은 역사적, 그리고 현재의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이를 막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거스르는 것이며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비판 할 수는 있지만 이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관점이 다른  여러 이론을 배우고 생각하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다인종, 다민족 교육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통과된 소수 인종학 과목에는 미주 한인사 레슨 플랜도 7개나 포함돼 있다. UC BOARS는 더는 이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고 신속히 안건을 통과시켜 UC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이 고교에서 소수 인종학 과목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인종학 소수 소수 인종학 입학 필수과목 비판적 인종

2023-11-15

[중앙시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시작된 후 일 때문에 상대방 변호사와 통화 하면서 그의 가족 안부를 물었다. 평소 그를 잘 알고 있어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니다. 상대 변호사의 성과 이름이 히브리어라서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물어봤는데 예상이 맞았다. 그는 다행히 아직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피해자는 없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노동법 관련 소송에서 직원을 대변하는 변호사들 가운데 유대계를 포함해 중동계가 많았다. 흔히 법조계에 유대계가 많다고 하는데 이를 실감하고 있다.     유대인이란 뿌리는 같아도 그들 사이에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유대 종교나 문화와는 무관한 세속적 유대인이 있는가 하면 종일 시간에 맞춰 율법에 따라 기도하며 머리에는 항상 뚜껑 모자를 쓰는 전통주의적 유대인 변호사도 있다.       유대계만큼 상대방 변호사로 자주 부딪히는 게 이란계, 아르메니아계, 레바논계 등 중동계 변호사들이다. 중동 지역에서 세계 최초의 법전이라는 함무라비법전이 만들어졌고 구약성경도 사실상 율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등 고대부터 법과 친숙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나름 분석해 보기도 한다.       ‘반유대주의(anti semitism)’는 중동지역 전체 샘족계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반유대주의의 피해자는 유대인이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에 있던 가나안땅을 떠나 유대인들은 다른 중동지역, 북아프리카, 유럽, 심지어 중국으로도 이주했다. 특히 중세 동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이 이스라엘 본토 출신 이민자냐 아니면 중앙아시아에 있던 티르키예계 유대 국가의 후손들이냐는 논쟁거리다.     유대인들은 한민족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 일반적으로 근면성실하고 셈이 빠르다. 그래서 유럽 땅에서 토착민들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해 토착민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 예수도 유대인이었고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는데 예수를 박해하고 죽인 게 유대인이란 억지 논리로 유럽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증오했다.     위정자들은 민중들의 이런 유대인에 대한 시기와 반감, 증오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십자군 전쟁 때 원정 떠나는 십자군이 가장 먼저 유럽에서 학살극을 벌인 상대는 유대인들이었다. 또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도 유대인들에게 원인을 돌렸다. 매번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  20세기에도 제정러시아의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했고, 아이러니하게 이들을 구제해준 것이 독일제국이었다. 그 이후 히틀러의 나치가 광란의 홀로코스트란 범죄를 저지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역사도 유대인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계 이민자들은 고스란히 모국에서 갖고 있던 나쁜 버릇을 그대로 가져왔고 백인우월주의자(KKK)들의 적은 흑인과 유대인일 정도로 미국의 반유대주의 뿌리도 깊다.  지금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감정은 지하 깊숙이 스며들어 갔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가끔 유대인 대상 혐오범죄가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유대 금융의 세계정부론 같은 음모론도 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라는 TV프로그램에서 ‘엑소더스(Exodus)’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을 한 뒤 유대인은 절대선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레바논 민간인 학살 뉴스를 접한 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살아가면서 절대악은 있을 수 있어도 절대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누구 편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 없이 이 지역에 평화가 오길 바랄 뿐이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유대인 박해가 세속적 유대인 이스라엘 본토

2023-10-22

[중앙시론] 동포청, 한인 이민사 교육에도 관심을

인천광역시 해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한미동맹 및 인천상륙작전 73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인천광역시를 방문하고 왔다. 인천광역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특히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의 전환점이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를 방문하면서 최근 송도에 설립된 재외동포청(동포청)을 방문했다. 이기철 초대 청장을 만나 재외동포청 출범 100일이 지나며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듣는 기회도 가졌다.   재외동포청의 기본 미션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을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과 인류의 공동번영에 기여한다’로 되어 있다. 특히 재외동포청은 과거 재외동포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 청장은 과거 재외동포재단이 단순히 정부 정책을 추진했던 것과 달리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호혜적인 동반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 수립과 이행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동포정책을 일원화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그동안 국내 거주 재외동포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앞으로는 정책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청장은 여러 부처로 나뉘었던 민원서비스를 통합민원서비스로 통합해 재외 한인들의 편의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해외 거주 재외동포들도 동일한 수준의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특히 동포청은 한글학교 지원 강화 정책으로 운영비를 대폭 증액하고 교사연수 지원을 통해 한글학교 교사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주 지역 한글학교와 한국어 강좌는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필자는 이제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수강생들에게 미주 한인사회 역사와 문화도 함께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들에게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고, 타인종 학생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차세대 동포에게 한국 발전상을 교육해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정체성을 함양시킨다는 계획이다.     차세대들이 모국의 발전상에 대해 알면 분명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주 한인’이라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모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생긴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와 모국의 발전상을 동시에 교육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광역시가 운영하는 재외동포 웰컴센터도 동포청과 같은 빌딩에 입주해 재외동포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포청과 인천광역시가 잘 협조해 성공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별로 크지 않은 캐리온 가방을 들고 송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에  타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이런 가방 들고 타면 안 돼요”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어디에도 캐리온 가방 휴대를 금하는 문구는 없었다. 그 운전기사는 “이번은 봐 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된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진 듯 망신스러웠다. 모처럼의 한국 방문이라 필자가 모르고 한 실수일 수 있지만 운전기사의 반응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억울함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 가운데는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재외동포 민권 서비스 시스템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동포청 이민사 재외동포청 출범 과거 재외동포재단과 미주 한인사회

2023-10-09

[중앙시론]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오해

최근 연방 대법원은 소위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불리는 소수인종 대입 우대 정책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판결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역사적으로 줄곧 정치적 판결을 해왔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방대법원은 1978년 바키 (Bakke) 판결을 통해  UC 데이비스 의대 입학 심사에서 ‘인종’은 입학의 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으나 소수인종 입학을 따로 두는 쿼터제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2023년 연방대법원은 1978년 판례를 뒤집고 ‘인종’을 대학 입학 평가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해 어퍼머티브 액션의 원래 취지마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소수인종 학생들의 대학 입학에 큰 타격이 예상되며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 대학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어퍼머티브 액션의 역사적 기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64년 민권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대학, 기업, 공공기관의 주요직은 거의 백인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아시아계 등  소수계들에게는 지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백인 남성들이 사회의 주요 직책을 모두 장악하고 소수계에게는 입학, 고용 그리고 승진 기회를 주지 않는 정책이 미국 건국 이후 거의 200여년 동안 지속하여 왔던 것이다.     1960년대 불기 시작한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소수계 운동으로 인해 소수계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즉, 어퍼머티브 액션의 가장 큰 목적은 소수계에게 입학, 고용, 그리고 승진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주목적이다.     특히 연방정부 기금을 받는 모든 기업, 교육기관 그리고 단체는 반드시 ‘동등한 기회’를 주는 기관임을 명시해야 하는 규정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시행되었다. 그 결과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많은 기업, 대학, 공공 기관들에 여성과 소수계 진출이 늘었다.     UC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초까지 UC는 백인 학생이 주류를 이루었고 아시아계 학생은 극소수였다. 필자가 다녔던 UC버클리도 1980년대 초 한인 학생 숫자가 200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계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주는 입학 정책이 시행된 이후 한인 등 아시아계 학생이 급증했다. 지금은 UC를 비롯해 명문 대학에 재학 중인 아시아계 학생이 많지만 1980년대 초까지 아시아계 학생들도 차별의 대상이었다.     아시아계 학부모들은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으로 아시아계 학생들이 명문대 입학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절대 불리한 ‘레거시’ 입학 정책은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미국 사립대들은 동문 자녀들에게 특례 입학을 허용하는 소위 ‘레거시’ 입학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시아계에게는 가장 불리한 입학 정책이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의 28%가 동문 자녀라는 통계는 그들이 입학은 물론 졸업 후 전문직이나 정관계 진출, 그리고 취업과 승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백인들이다.     그런데 어퍼머티브 액션은 대학 입학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고용과 승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없어지면 아시아계가 고용과 승진에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소수계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형 로펌이 백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소송을 당했는데 만약 이것도 위헌 결정을 받게 되면 모든 분야에서 소수계의 고용과 승진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다.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고학력 집단이다. 그런데도 아시아계의 대기업 임원, 대학 총장 등의 비율은 낮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소수계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인해 졸업 후에도 고용과 승진 기회를 얻었는데 이런 정책이 없어지면 장벽이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가 한인 등 소수계의 취업 및 승진 기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미국에서 명문대 입학이 곧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아시아계에게 불리하다는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소수계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정책은 한인을 비롯해 아시아계 차세대들이 미국에서 동등한 기회를 얻고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데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액션 오해 아시아계 학생 입학 정책 소수인종 입학

2023-09-04

[중앙시론] 노동법·장애인 소송 제어 장치 필요하다

현실에서 숭고한 법의 취지가 망가진 채 적용되는 법 두 가지를 꼽으라면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일 것이다. 노동법은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고용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장애인보호법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 그들이 일반인과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차별받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이 법들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두 법의 공통점은 원고인 노동자나 장애인이 소송에서 이기면  그들이 고용한 변호사 비용까지 패소한 고용주나 사업체, 건물주가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노동법이나 장애인 공익소송에서 원고 승소 비율은 90%에 가깝다. 왜냐하면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고용주나 사업체, 건물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위반 사항이 미미해도 패소 가능성이 높은 게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이다. 단돈 1달러라도 임금 체불 사실이 인정되면 이론상 고용주는 노동자 측 변호사 비용으로 수만 달러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장애인보호법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이 부족하면 벌금과 변호사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데 시설 규정 내용은  조금 과장하면 토목이나 건축공학 박사는 돼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노동법 소송을 당한 고용주들을 변호하다 보면 장애인 소송과도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고용주가 소유나 리스 등을 통해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 항시 장애인 공익소송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의 크기와 표지판, 입구 문턱이나 카운터 높이, 화장실 세면대 높이 등등 자질구레한 것들이 소송의 원인이 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장애인 공익소송이 얼마 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송 이유가 억지스러운 경우도 많다.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했던 한 식당 업주는 얼마전 장애인 공익소송을 당했다. 이 테이블이 장애인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주 정부가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소송 자체를 까다롭게 했더니 연방법원에 제소하는 꼼수를 사용하다 최근 다시 주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특징이다.      주 정부가 장애인 공익소송에 약간의 장애물을 설치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피고가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거나  주법에 따라 제대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송을 당하면 10명 중 9명은 협상을 통한 마무리를 원한다. 협상이 비용도 아끼고 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고 측 변호인은 자기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협상 조건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갖고 있는 건물주의 장애인 공익소송 케이스를 맡았다가 독하게 (?) 나오는 원고 측 변호사들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다.     장애인 공익소송은 건물주와 테넌트인 사업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건물주와 사업주를 함께 소송하기 때문에 책임 소재에 대해 교통정리도 해야 한다.     장애인 공익소송은 이제 온라인으로도 번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업체의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다. 사업주들은 이제 업체 웹사이트가 시각장애인 등이 이용하기에도 불편이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소송 남발로 인한 비용의 증가는 결국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스몰비즈니스 업주들은 힘들게 번 수익을 억지 소송의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법과 장애인 공익소송에 대한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노동법 장애인 장애인 공익소송 장애인 소송 노동법 소송

2023-08-20

[중앙시론] 남가주가 부러운 북유럽의 한인

지난달 가족과 함께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은 가이드 안내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매일 짐을 풀고 다시 싸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북유럽의 몰랐던 역사를 배우고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북유럽은 스칸디나비아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등 4개 국가를 포함한다. 최근에는 발틱 국가도 북유럽에 포함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종족도 비슷하고 역사와 문화도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과거 스웨덴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는 등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적대적 관계는 아니다. 다만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다른 국가들과 종족과 언어가 차이가 있지만 북유럽에 편입되어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금이 많아 개인 소득세율이 40-80%에 이른다고 한다. 고소득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사회 민주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루터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출생, 결혼, 사망 신고는 모두 루터 교회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북유럽인이 실제로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동화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핀란드에서 유래 되었다.      최근 유전이 발견되면서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 평균소득은 연 1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물가가 비싸 연 소득 10만 달러라고 해도 실제 구매력은 미국의 5만-6만불 소득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됐다.     북유럽의 여름 날씨는 남가주 겨울 날씨와 비슷했다. 낮 최고 기온이 화씨 70도가 넘지 않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여름은 짧고 겨울이 매우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들은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복장을 했을 뿐이다”라며 힘든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현지 가이드들이 전해준 북유럽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는 생소한 내용도 있었다. 우선 이혼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가이드는 본인 자녀들도 “언제 이혼할 것인가”라는 질문할 한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북유럽 국가 국민은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줄을 설 때 1.5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아마 긴 겨울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긴 문화일 수도 있다. 또 집에 손님을 초대해도 음식은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이 없는 사회처럼 보였다.      한인 가이드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 준비를 위해 북유럽인인 남편에게 장을 보러 가자고 말했더니 “음식 준비는 하지 말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럼 손님에게 무엇을 대접하느냐고 물었더니 “물”이라고만 답하더라는 것. 이어 손님들은 본인들이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올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일종의 팟락 문화인데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본인이 가져온 것은 먹다 남은 콜라도 다시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인의 정서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문화적 차이를 두고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데 오가는 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척박한 환경 때문에 극단적 개인주의가 발달한 북유럽 사회는 강력하게 사회적 규제를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중에 만난 현지의 한인 가이드들은 LA에 사는 한인들을 부러워했다. 날씨 등 축복받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록 많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이 최고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북유럽 여름 휴가였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남가주 북유럽 북유럽 국가들 북유럽 여행 남가주 겨울

2023-08-13

[중앙시론] ‘K컬처’의 한쪽 빈자리가 크다

‘K컬처’ 한류의 위세는 여전하다. 국내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해외를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상상 이상으로 높아져 있음을 실감하면서, 자랑스러움을 넘어 우리가 이렇게까지 대접받아도 되는가 하는 놀라움을 말하고 있다.   한류는 ‘K팝’에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BTS, 블랙핑크 등의 빌보드 차트 진입은 이제 특파원들의 기삿거리도 되지 못한다. 유튜브를 통해 이들 이외의 아이돌 그룹, 또는 대중음악에 전통장단을 접목한 악단광칠이 세계를 누비는 모습이나, 유럽·남미의 도시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무작위로 틀어주는 ‘K팝’ 음악에 맞춰 ‘커버 댄스’를 추는 랜덤 플레이 댄스(random play dance)를 보고 있자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대중예술을 거쳐 음식 등 생활문화로 뻗어 나가더니 문학, 미술 등 고급문화까지 확대되고 있다.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서가 K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K아트’도 목하 뜨거운 열기로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록펠러센터가 주최한 ‘한국문화예술 기념주간’에는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 ‘기원, 출현, 귀환’이라는 주제 하에 단색화 거장 박서보를 비롯하여 한국계 작가 진 마이어슨, 독일에서 활동하는 윤종숙 등의 작품 70여 점이 전시됐다. 이와 동시에 록펠러센터가 있는 뉴욕 맨해튼 심장부 채널가든 광장에는 ‘숯의 작가’ 이배(67)의 높이 6.5m에 달하는 대형 숯덩이 조각이 세워졌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서울전시회를 마치고, 오는 9월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에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또 내년 10월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이 미술관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여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전’(가칭)에 서도호·함경아·신미경 등 33인의 한국 작가 작품들이 전시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오는 9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화랑협회 주최 제22회 키아프(Kiaf)에는 작년에 이어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프리즈(Frieze)가 동참하여 30여 개국의 200여 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한류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 동경에 이르고 있다. 지난여름 파리에 학술강연 차 갔다가 만난 현지 한글학교 교장들은 프랑스에서는 한국어가 중국어, 일본어를 제치고 제2외국어로 부상해 있다고 전한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이달 8일 서울에서는 전 세계 240여 곳에서 운영되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원들이 모이는 ‘세계 한국어 교육자대회’가 열린다.   이러한 ‘K컬처’ 한류의 흐름은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자연히 한국실로 옮기게 한다. 그러나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파리 기메 뮤지엄의 한국실을 다녀간 관람객들은 한국 전통미술에 대한 감동은커녕 오히려 큰 실망을 안고 간다. 바로 곁에 있는 중국관, 일본관보다 형편없이 작은 규모에, 전시 유물도 빈약한 것에 의아해한다.   작년 10월, 세계 최대 공예박물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에서는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영국에 있는 지인이 이 전시회를 보고 “지금 우리는 한류 팬덤을 자랑하는 전시보다 한류의 뿌리를 보여주는 기획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친한파 미술사가인 클리블랜드 뮤지엄의 전 학예실장인 마이클 커닝엄은 1979년부터 3년간 미국 7대 도시를 순회한 ‘한국미술 5000년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서구의 동양미술사 전공자들도 한국 미술사의 전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커닝엄의 고백은 미술품이란 그 나라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는 구체적인 ‘물질문화의 외교관’ 역할도 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한국 미술사의 진수로 ‘한국미술 5000년전’을 꾸며 파리, 런던, 뉴욕 등을 순회하며 ‘K컬처’의 근저에는 오랜 문화적 전통이 있었음을 자랑하고 확인시켜 주면서, 한류가 오래도록 도도히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유홍준 /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중앙시론 컬처 한쪽 한국문화예술 기념주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2023-08-06

[중앙시론] 연방대법원의 문화전쟁

흔히 미국을 청교도가 세운 기독교 국가라고 한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초기 이민자들이 전부 영국 출신도 아니었고 많은 사람이 청교도 이외의 다른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특히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은 청교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계몽철학이었다. 계몽철학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로 들어가는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파고든 인본주의 사상을 뿌리로 한다.     개인적으로 계몽철학은 기독교 신앙과 조화되는 면도 있지만 충돌하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독립전쟁 때 만들어진 모든 정치 및 법률 서류들은 계몽철학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이다. 연방헌법에선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정교분리에 따른 신앙의 자유를 못 박았음으로써 기독교 신정 국가 체제를 거부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못하게 한 것은 인본주의 계몽철학의 핵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계몽철학자였고 헌법이 계몽철학에 근거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건국 시기부터 미국인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청교도가 건국한 기독교 국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19세기 중반부터 개신교 복음주의가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라 오히려 건국 초기보다 더 기독교적인 나라로 변했다.  건국 초기 대통령들은 겉으론 기독교 신자고 정신세계는 계몽철학자였다면 19세기 중반부터는 신앙심이 깊은 대통령들이 배출됐다.     다양성이 제한되던 20세기까지만 해도 개신교 복음주의에서 많은 표가 나오니 정치인들은 신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는 미국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하나의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같은 기독교지만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나 주지사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혼을 하면 대통령이 되거나 정계 입문조차 어려웠던 것을 보면 그 벽이 얼마나 두꺼웠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벽도 점차 흔들리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려앉기 시작한다. 역작용으로 양 진영의 ‘문화전쟁(culture war)’이 거세게 진행된다.  한쪽은 다양성을 앞세워 기존의 문화를 부숴버리려고 하고 다른 쪽은 과거로의 회기를 시도한다.     현재 문화전쟁의 뜨거운 이슈가 종교의 자유다.  이 와중에  종교와 관련된 두 건의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나왔다. 하나는 직장 내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거다. 종교적 이유로 일요일 근무를 거부한 직원에 대한 해고는 부당해고이고 고용주는 직원의  이런 요구에 대해 무리가 없다면 맞춰져야 한다는 판결이다.  진보 보수가 3대6으로 나뉜 대법원에서 만장일치로 직원 편을 들어준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선 해석이 틀려도 작업장에서의 개별 직원의 신앙 보호가 고용주의 권리에 앞선다는 데는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다른 케이스는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동성애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한 한 웹디자이너의 차별금지법 위반 문제였다.  종교의 자유란 같은 이슈를 놓고 이번엔 보수와 진보 판사가 각각의 색채를 명확히 드러냈다. 결과는 6대 3으로 동성애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한 웹디자이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판결이었지만 보수 판사들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근거해 판결을 내렸다.  동성애자에게 서비스 금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표현의 자유에 위반한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낙태권 판결에 이어 이번 판결까지 앞으로도 대법원은 문화전쟁의 최전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연방대법원 문화전쟁 기독교 신앙 현재 문화전쟁 건국 초기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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