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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애틀랜타에서 느낀 한인 사회 미래

애틀랜타에 본부가 있는 한미우호협회로부터 올해 평생업적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애틀랜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애틀랜타 방문은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었다.     애틀랜타의 첫인상은 교통 체증 문제였다. LA보다 더 심한 듯했다. 오후 2시 반쯤 공항을 출발해 다운타운까지 30분이면 될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렸다. 급성장하는 도시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한인 거주지는 둘루스, 스와니 그리고 도라빌 등  3곳에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도라빌은 1990년 최초로 한인 상권이 형성된 곳이고, 둘루스는 현재 최대 한인 상권 지역이다.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 최대 도시인데 최근 한인 인구도 급증세를 보인다. 이제 애틀랜타 한인 사회는 LA와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현대, 기아, SK, 등 한국 대기업의 활발한 진출이다. 이들 기업의 투자가 늘면서 한국으로부터의 유입 인구도 많아졌다고 한다. 또 온화한 기후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수준으로 인해 시카고와 동부지역에서 한인 이주가 늘고 있는 것도 한인 인구 급성장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미우호협회의 박선근 회장은 LA 지역에서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고 홍명기 회장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분이다.  특히 그는 2004년 ‘좋은 이웃 되기 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미국 사회의 주역이 되려면 좋은 평판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지론이다.     박 회장이 한미우호협회를 창립한 것은 1996년이다. 한미 우호 협력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매년 한인 '이민자 영웅상'과 '평생업적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 이민자 영웅상 부문은 성김 전 주한대사가 받았다.       한미우호협회 시상식에는 주류 유력 인사들도 대거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시상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로는 네시선 딜 전 조지아 주지사, 리치 맥코믹 연방하원, 마이스 데이브스 판사, 샘 올렌스 전 조지아 검찰총장, 호스트 모터 리치 칼튼 호텔 창업주, 앤드루 영 전 애틀랜타 시장 및 U.N. 대사, 그리고 프랭크 블레이크 델타 항공 회장과 홈 디포 회장 등이 있었다. 참석자 240명 가운데 한인은 4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 한국 대기업의 조지아 주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국과 한인 사회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한다. 주요 정치인들이 한인 사회 행사에 주저 없이 참석하는 것이 이런 이유라는 귀띔이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 한인 사회 행사에 주지사가 참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조지아 주는 다르다는 것이다.     1.5세, 2세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그들은 한인 사회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의 아시안·아메리칸학 중·고교 필수 과목 포함,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 방법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 세계 최대 한인 회관이라는 애틀랜타 한인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동남부연합회 연례회의에 참석해 기조 강연도 했다. ‘한인회의 바람직한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인회가 1세 중심에서 1.5세와 2세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건물 대강당에서는 한인 1.5,2세들과 다른 아시아계 젊은이들이 ‘애틀랜타 총격 참사 3주년 기념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행사가 함께 열렸다면 분명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은 한인 사회 전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1세와 2세가 같은 건물에 있지만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행사를 하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1세와 2세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활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애틀랜타 한인 사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였고 한인 사회의 미래도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애틀랜타 한인 애틀랜타 한인 애틀랜타 방문 한인 인구

2024-04-07

[중앙시론] 대선에서 사라져야 할 백인 우월주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51%의 지지율로 압승했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도 승리하면서 공화당 후보가 거의 확정적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거짓 정보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지속하고 있어 우려된다. 그는 지난달에도 당내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후보가 출마 자격이 없다는 허위 정보를 퍼트렸다.  출생 당시 인도계인 그의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허위 정보다. 헌법에는 35세 이상의 미국 출생 시민권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연방상원의원도 대통령 출마 자격이 없다고 거짓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들은 유색 인종을 겨냥한 것으로 다분히 의도적이다. 헤일리는 인도계, 크루즈는 남미계, 그리고 오바마는 혼혈이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결집과 그들의 지지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이민자와 소수계 때문에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될 경우 백인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민을 금지하고, 소수계 차별 금지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충성도는 매우 강하다. 그들은 트럼프가 각종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됐어도 관계없다는 반응이다. 백인 우월주의는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백인에게는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레드넥’으로 불리는 남부의 저소득층 백인들은 자신들이 유색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희망이자 우상이다.   일부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이 인종 차별 국가였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헤일리 후보도 “미국은 인종차별 국가인 적이 없었다(America has never been a racist country)”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인도계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차별을 경험했다”며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은 인종 차별이 없는 국가이며, 따라서 소수계에 특별 대우를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소수계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고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백인들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보수 세력인 소위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미국 정치에서 인종 문제는 민감한 이슈로 줄곧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런데 트럼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중국 때문이라며 중국 때리기에 앞장섰다. 이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이제 표면으로 나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것과 다름없었다.  트럼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대신 ‘차이나 바이러스’ 또는 ‘쿵 플루’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아시안 대상 증오 범죄가 기승을 부렸고,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 편들기는 급기야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태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백인 우월주의란 백인이 소수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는 악이다. 악은 사라져야 한다. 미국은 모든 인종과 민족이 동등하게 대우 받고 자유와 정의가 보장되는 국가여야 한다. 이런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부 보수 백인 교회들이다. 그런데 일부 한인 교회도 이에 동조하는 듯해 우려된다.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인종 차별적 발언이나 공약은 등장하지 말아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우월주의 대선 백인 우월주의자들 저소득층 백인들 트럼프 지지자들

2024-02-05

[중앙시론] 소수인종학과 미주한인사

2024년을 시작하면서 부끄럽지만 필자의 이야기로 칼럼을 시작하려고 한다. 한인 사회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경사라고 생각해 겸연쩍지만 소개한다. 지난해 5월 학과장으로부터 정교수 스텝(Step) VI로 승진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만장일치의 찬성이었다는 서한도 함께 받았다. UC계열 대학에는 조교수, 부교수, 그리고 정교수 제도가 있는데  Step VI로의 승진은 정교수가 된 이후 또 한 번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Step VI으로의 승진은 UC 교수로는 거의 최고 직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UC 교수가 된 지 31년만의 성과라 스스로 자랑스럽고 이끌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필자는 1970년대 중반 18세에 이민을 왔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고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 후 UC 버클리에서 학사, UCLA에서 석사, 그리고 다시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UC리버사이드에서 종신 교수가 됐고 이번에 Step VI를 취득한 것이다. 아마 UC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한인 이민자 출신으로는 필자가 처음일 듯싶다.       필자는 지난 30여년 학문적으로 외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UC버클리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학문인 아시안 아메리칸학과 소수인종학을 전공했다. 1990년 5월 UC버클리애서 소수인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이민 후 영어와 씨름하면서 힘들게 공부한 지 16년 만이었다. 필자에게는 ‘미국 최초의 소수인종학 박사’, ‘소수인종학 박사 1호’ 등의 칭호가 따라다녔다.     당시 소수인종학은 생소한 학문이었는데 특히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가르치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새로운 학문 세계였다. 소수인종학은 미국 내 인종 문제를 소수계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학문이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국의 학문은 백인 주도로 백인의 시각에서 백인을 위한 것이었으며 소수인종은 배제되었다. 모든 것이 백인을 위한, 백인의 시각과 관점을 반영할 뿐 미국 사회에 대한 소수 인종의 공헌은 무시되었고 인종 차별은 정당화되었다.     필자가 소수인종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4년 미국 이민, 1975년 미군 입대, 1980년 UC버클리 입학의 삼박자가 맞아서 생긴 결과다.     필자가 박사 학위를 받은 지 30년이 된 해인 2020년 캘리포니아 주는 소수인종학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교육국의 ‘교과목 심의 커미션 (Instructional Quality Commission)’은 2020년 11월 19일 오후 2시 22분쯤 미주한인사 7개를 포함, 29개 학습 지도안 (Lesson Plans)을 모두 통과시켰다. 미주한인사는 6개 주제로 7개의 학습 지도안이 포함되어 있는데 필자는 그중 김영옥, 도산 안창호, 그리고 LA 폭동과 인종 문제 등 3개 학습 지도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다른 저자들이 새미 리 박사, 미주 한인 독립운동사에 관한 2개 레슨 플랜과 K-팝 학습 지도안을 작성했다. 이 학습 지도안은 2021년 3월 캘리포니아 주 교육국 이사회에서 최종적 통과됐다. 소수인종학 모델 커리큘럼에 7개의 미주한인사 학습 지도안이 포함된 것은 한인 교육자들이 단합해 이루어낸 쾌거다. 소수인종학 학자로서 매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보람된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를 계기로 미주한인사 학회가 시작되었고 내년에는 UC 리버사이드에서 제3차 미주한인사 학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는 소수인종학과 미주한인사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선생님들은 모르는 주제는 가르칠 수 없다. 현직 선생님들은 소수인종학 또는 미주한인사를 접하고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재교육을 통해 미주한인사 교육이 현장에서 잘 이루어지도록 제도 보완을 해야 할 시점이다.   미주한인사 교육은 차세대 한인 청소년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의 역사의식과 자긍심을 갖게 해주며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또한 미주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타인종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은 다인종, 다민족 사회 공동체 구성에도 기여하는 일이 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소수인종학 미주한인사 소수인종학 박사 당시 소수인종학 22분쯤 미주한인사

2024-01-03

[중앙시론] 차세대에 미주 한인사 교육 중요하다

재외동포청이 제1차 재외동포 정책 기본계획 공개 토론회를 12월 9일 (한국시간)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했고 필자도 줌으로 참여했다. 앞으로 5년 동안(2024~2028) 재외동포청이 어떤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토론회는 재외동포청과 재외한인학회, 그리고 고려대학교 아세아 문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재외동포청은 지난 6월 출범과 함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지속 가능한 대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재외동포청은 여러 부처로 분산됐던 재외동포 관련 정책과 업무를 통합했다.  이는 예산 절감은 물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에 필요한 반가운 변화다. 또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정책을 모두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지속 가능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겠다는 것도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재외동포 정책의 초점을 지원에만 맞췄다. 즉, 재외동포사회의 특성이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대한민국에 얼마나 충성하고 기여하는가(Loyalty paradigm)’가 정책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새로 발표된 정책 기조는 ‘호혜적인 동반성장’이다. 즉, 재외동포사회 성장은 물론 대한민국 발전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글로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해외 인재 양성의 의지도 담겨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한국 거주 동포도 정책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한인 1세들의 역이주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최근 재외동포도 입국 시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 입국 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필자도 거의 매년 세미나와 특강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외국인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다. 아울러 해외 입양인 권익 향상 계획도 소개됐다.   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주 한인의 정체성 확립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참여 의식의 고취다. 정체성의 확립 없이는 차세대들이 미주 한인 사회는 물론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 즉,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은 뿌리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글학교와 한국어학교 등에서의 뿌리 교육은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 그리고 문화 교육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필자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교육은 미주 한인사와 문화 교육이 핵심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재외동포청은 미주 한인사와 문화를 차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인종학을 고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미주 한인사가 고교 교과 과정에 도입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마련되었다. 애나하임 교육구는 이미 2023년 가을학기에 미국 최초로 미주 한인사 과목을 신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내용은 주류 언론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주 한인사를 가르칠 교사의 부족이다. 다행히 내년에 재외동포 교육문화센터가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센터의 교사 연수 과정에 미주 한인사를 포함해 한국어학교 또는 한글학교 교사들이 미주 한인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차세대들이 모국을 방문해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단순히 관광성 체험이 아니라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센터 프로그램에 미주 한인사를 포함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고 김영옥 대령과 새미 리 박사 등 미주 한인들의 영웅담은 차세대들에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초기 한인 사회의 주축이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파차파 캠프를 건설,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제도화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발표한 민주공화정의 뿌리는 바로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시에 있었던 파차파 캠프였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 즉, 미주 한인 사회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런 사실도 차세대들의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외동포청은 또한 재외동포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인식 변화를 위한 정책도 펼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재외동포는 물론 ‘다문화 사회’도 포용할 수 있는 인식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차세대 ‘코리안 아메리칸’들에게는 모국의 놀라운 발전상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 사회에 대한 역사 교육도 필요하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회와 대한민국은 상생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과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 지향적 재외동포정책 수립과 실행이 중요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차세대 한인사 재외동포청과 재외한인학회 미주 한인 재외동포사회 성장

2023-12-12

[중앙시론] ‘소수 인종학’, UC 입학 필수 과목 채택해야

캘리포니아 주는 2021년 11월 5일 소수 인종학(ethnic studies) 과목을 고교 졸업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어 UC 교수 평의회는 소수 인종학 과목 수강을 입학 조건으로 하는 안건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통과된 안건은 아직 UC BOARS (Board of Admissions and Relations with Schools) 위원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로 인해 소수 인종학의 UC 입학 필수과목 채택이 자칫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OARS는 UC 입학과 관련 전반적인 규정을 만들고 시행하는 중요한 위원회다. 따라서 소수 인종학 관련 안건도 이 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 데 일부 위원의 반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소수 인종학 도입 심사 위원회 회의에 10개 UC 평의회 의장들을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즉, 심사 과정에 교수들은 전부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다분히 정치적인 속셈이 보인다. 이에 UC 소수 인종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소수 인종학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BOARS 위원들 중 소수 인종학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 소수 인종학을 고교 졸업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백인 학생 비율이 높은 일부 교육구에서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가르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일부 한인들도 소수 인종학 필수 과목 지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정치적 이유만으로 반대하고 있는 듯해 우려된다.       그럼 비판적 인종 이론은 무엇이며, 왜 백인 학생이 많은 교육구에서는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비판적 인종 이론의 핵심은 미국 역사, 특히 인종 관련 문제를 백인과 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닌 소수계, 그리고 다문화의 시각으로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미국 고교 과정에서 뉴욕 엘리스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해 가르치며 미국은 이민 국가이며 자유와 평화를 중시하는 기회의 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또 다른 관문인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천사섬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엘리스 섬과 달리 천사섬은 주로 아시안 이민자들을 억압하고 심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역사를 감추기 위해서다.     천사섬 역시 미국의 관문이며 역사이다. 천사섬 입국 심사대는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반아시안 정책을 시행했는지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판적 인종 이론의 핵심이다. 많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유럽 중심의 시각으로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비교육적 처사다.   과거에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다고 가르치면서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비판적 인종 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이미 미국 대륙에는 수백만 명의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미국 대륙 발견과 도착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유럽 중심적 시각으로는 발견이 될 수 있지만 원주민 시각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에 반대하는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거나 이러한 역사를 감추고 싶어서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국 역사의 검증과 재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 역사를 소수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학생들에게 인종 문제의 오해와 진실을 가르쳐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미국의 ‘악’인 인종차별의 역사를 피해자인 소수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설명하기 때문에  ‘백인 우월주의’를 고수하고 백인들이 저지른 인종차별의 역사를 지우고 싶어하는 측에서는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학문적 이론에 대한 찬반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역사를 여러 관점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 방식이다. 사실 이론은 역사적, 그리고 현재의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이를 막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거스르는 것이며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비판 할 수는 있지만 이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관점이 다른  여러 이론을 배우고 생각하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다인종, 다민족 교육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통과된 소수 인종학 과목에는 미주 한인사 레슨 플랜도 7개나 포함돼 있다. UC BOARS는 더는 이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고 신속히 안건을 통과시켜 UC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이 고교에서 소수 인종학 과목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인종학 소수 소수 인종학 입학 필수과목 비판적 인종

2023-11-15

[중앙시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시작된 후 일 때문에 상대방 변호사와 통화 하면서 그의 가족 안부를 물었다. 평소 그를 잘 알고 있어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니다. 상대 변호사의 성과 이름이 히브리어라서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물어봤는데 예상이 맞았다. 그는 다행히 아직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피해자는 없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노동법 관련 소송에서 직원을 대변하는 변호사들 가운데 유대계를 포함해 중동계가 많았다. 흔히 법조계에 유대계가 많다고 하는데 이를 실감하고 있다.     유대인이란 뿌리는 같아도 그들 사이에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유대 종교나 문화와는 무관한 세속적 유대인이 있는가 하면 종일 시간에 맞춰 율법에 따라 기도하며 머리에는 항상 뚜껑 모자를 쓰는 전통주의적 유대인 변호사도 있다.       유대계만큼 상대방 변호사로 자주 부딪히는 게 이란계, 아르메니아계, 레바논계 등 중동계 변호사들이다. 중동 지역에서 세계 최초의 법전이라는 함무라비법전이 만들어졌고 구약성경도 사실상 율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등 고대부터 법과 친숙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나름 분석해 보기도 한다.       ‘반유대주의(anti semitism)’는 중동지역 전체 샘족계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반유대주의의 피해자는 유대인이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에 있던 가나안땅을 떠나 유대인들은 다른 중동지역, 북아프리카, 유럽, 심지어 중국으로도 이주했다. 특히 중세 동유럽에 정착한 유대인이 이스라엘 본토 출신 이민자냐 아니면 중앙아시아에 있던 티르키예계 유대 국가의 후손들이냐는 논쟁거리다.     유대인들은 한민족과도 비슷한 면이 많다. 일반적으로 근면성실하고 셈이 빠르다. 그래서 유럽 땅에서 토착민들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해 토착민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 예수도 유대인이었고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는데 예수를 박해하고 죽인 게 유대인이란 억지 논리로 유럽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증오했다.     위정자들은 민중들의 이런 유대인에 대한 시기와 반감, 증오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십자군 전쟁 때 원정 떠나는 십자군이 가장 먼저 유럽에서 학살극을 벌인 상대는 유대인들이었다. 또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도 유대인들에게 원인을 돌렸다. 매번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됐다.  20세기에도 제정러시아의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했고, 아이러니하게 이들을 구제해준 것이 독일제국이었다. 그 이후 히틀러의 나치가 광란의 홀로코스트란 범죄를 저지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역사도 유대인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계 이민자들은 고스란히 모국에서 갖고 있던 나쁜 버릇을 그대로 가져왔고 백인우월주의자(KKK)들의 적은 흑인과 유대인일 정도로 미국의 반유대주의 뿌리도 깊다.  지금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감정은 지하 깊숙이 스며들어 갔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가끔 유대인 대상 혐오범죄가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유대 금융의 세계정부론 같은 음모론도 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라는 TV프로그램에서 ‘엑소더스(Exodus)’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을 한 뒤 유대인은 절대선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자행한 레바논 민간인 학살 뉴스를 접한 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살아가면서 절대악은 있을 수 있어도 절대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누구 편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 없이 이 지역에 평화가 오길 바랄 뿐이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유대인 박해가 세속적 유대인 이스라엘 본토

2023-10-22

[중앙시론] 동포청, 한인 이민사 교육에도 관심을

인천광역시 해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한미동맹 및 인천상륙작전 73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인천광역시를 방문하고 왔다. 인천광역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특히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의 전환점이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를 방문하면서 최근 송도에 설립된 재외동포청(동포청)을 방문했다. 이기철 초대 청장을 만나 재외동포청 출범 100일이 지나며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듣는 기회도 가졌다.   재외동포청의 기본 미션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을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과 인류의 공동번영에 기여한다’로 되어 있다. 특히 재외동포청은 과거 재외동포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 청장은 과거 재외동포재단이 단순히 정부 정책을 추진했던 것과 달리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호혜적인 동반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 수립과 이행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동포정책을 일원화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그동안 국내 거주 재외동포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앞으로는 정책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청장은 여러 부처로 나뉘었던 민원서비스를 통합민원서비스로 통합해 재외 한인들의 편의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해외 거주 재외동포들도 동일한 수준의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특히 동포청은 한글학교 지원 강화 정책으로 운영비를 대폭 증액하고 교사연수 지원을 통해 한글학교 교사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주 지역 한글학교와 한국어 강좌는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필자는 이제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수강생들에게 미주 한인사회 역사와 문화도 함께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들에게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고, 타인종 학생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차세대 동포에게 한국 발전상을 교육해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정체성을 함양시킨다는 계획이다.     차세대들이 모국의 발전상에 대해 알면 분명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주 한인’이라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모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생긴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와 모국의 발전상을 동시에 교육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광역시가 운영하는 재외동포 웰컴센터도 동포청과 같은 빌딩에 입주해 재외동포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포청과 인천광역시가 잘 협조해 성공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별로 크지 않은 캐리온 가방을 들고 송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에  타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이런 가방 들고 타면 안 돼요”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어디에도 캐리온 가방 휴대를 금하는 문구는 없었다. 그 운전기사는 “이번은 봐 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된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진 듯 망신스러웠다. 모처럼의 한국 방문이라 필자가 모르고 한 실수일 수 있지만 운전기사의 반응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억울함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 가운데는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재외동포 민권 서비스 시스템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동포청 이민사 재외동포청 출범 과거 재외동포재단과 미주 한인사회

2023-10-09

[중앙시론]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오해

최근 연방 대법원은 소위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불리는 소수인종 대입 우대 정책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판결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역사적으로 줄곧 정치적 판결을 해왔다는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방대법원은 1978년 바키 (Bakke) 판결을 통해  UC 데이비스 의대 입학 심사에서 ‘인종’은 입학의 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으나 소수인종 입학을 따로 두는 쿼터제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했다. 그런데 2023년 연방대법원은 1978년 판례를 뒤집고 ‘인종’을 대학 입학 평가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결해 어퍼머티브 액션의 원래 취지마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소수인종 학생들의 대학 입학에 큰 타격이 예상되며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 대학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어퍼머티브 액션의 역사적 기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64년 민권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대학, 기업, 공공기관의 주요직은 거의 백인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아시아계 등  소수계들에게는 지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백인 남성들이 사회의 주요 직책을 모두 장악하고 소수계에게는 입학, 고용 그리고 승진 기회를 주지 않는 정책이 미국 건국 이후 거의 200여년 동안 지속하여 왔던 것이다.     1960년대 불기 시작한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소수계 운동으로 인해 소수계에게도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즉, 어퍼머티브 액션의 가장 큰 목적은 소수계에게 입학, 고용, 그리고 승진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주목적이다.     특히 연방정부 기금을 받는 모든 기업, 교육기관 그리고 단체는 반드시 ‘동등한 기회’를 주는 기관임을 명시해야 하는 규정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시행되었다. 그 결과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많은 기업, 대학, 공공 기관들에 여성과 소수계 진출이 늘었다.     UC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초까지 UC는 백인 학생이 주류를 이루었고 아시아계 학생은 극소수였다. 필자가 다녔던 UC버클리도 1980년대 초 한인 학생 숫자가 200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계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주는 입학 정책이 시행된 이후 한인 등 아시아계 학생이 급증했다. 지금은 UC를 비롯해 명문 대학에 재학 중인 아시아계 학생이 많지만 1980년대 초까지 아시아계 학생들도 차별의 대상이었다.     아시아계 학부모들은 어퍼머티브 액션 프로그램으로 아시아계 학생들이 명문대 입학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절대 불리한 ‘레거시’ 입학 정책은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미국 사립대들은 동문 자녀들에게 특례 입학을 허용하는 소위 ‘레거시’ 입학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시아계에게는 가장 불리한 입학 정책이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의 28%가 동문 자녀라는 통계는 그들이 입학은 물론 졸업 후 전문직이나 정관계 진출, 그리고 취업과 승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백인들이다.     그런데 어퍼머티브 액션은 대학 입학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고용과 승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없어지면 아시아계가 고용과 승진에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소수계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형 로펌이 백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소송을 당했는데 만약 이것도 위헌 결정을 받게 되면 모든 분야에서 소수계의 고용과 승진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다.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고학력 집단이다. 그런데도 아시아계의 대기업 임원, 대학 총장 등의 비율은 낮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소수계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인해 졸업 후에도 고용과 승진 기회를 얻었는데 이런 정책이 없어지면 장벽이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가 한인 등 소수계의 취업 및 승진 기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미국에서 명문대 입학이 곧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퍼머티브 액션이 아시아계에게 불리하다는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소수계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정책은 한인을 비롯해 아시아계 차세대들이 미국에서 동등한 기회를 얻고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데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액션 오해 아시아계 학생 입학 정책 소수인종 입학

2023-09-04

[중앙시론] 노동법·장애인 소송 제어 장치 필요하다

현실에서 숭고한 법의 취지가 망가진 채 적용되는 법 두 가지를 꼽으라면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일 것이다. 노동법은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고용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장애인보호법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 그들이 일반인과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차별받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이 법들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두 법의 공통점은 원고인 노동자나 장애인이 소송에서 이기면  그들이 고용한 변호사 비용까지 패소한 고용주나 사업체, 건물주가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노동법이나 장애인 공익소송에서 원고 승소 비율은 90%에 가깝다. 왜냐하면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고용주나 사업체, 건물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위반 사항이 미미해도 패소 가능성이 높은 게 노동법과 장애인보호법이다. 단돈 1달러라도 임금 체불 사실이 인정되면 이론상 고용주는 노동자 측 변호사 비용으로 수만 달러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장애인보호법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이 부족하면 벌금과 변호사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데 시설 규정 내용은  조금 과장하면 토목이나 건축공학 박사는 돼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노동법 소송을 당한 고용주들을 변호하다 보면 장애인 소송과도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고용주가 소유나 리스 등을 통해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 항시 장애인 공익소송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의 크기와 표지판, 입구 문턱이나 카운터 높이, 화장실 세면대 높이 등등 자질구레한 것들이 소송의 원인이 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장애인 공익소송이 얼마 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송 이유가 억지스러운 경우도 많다.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했던 한 식당 업주는 얼마전 장애인 공익소송을 당했다. 이 테이블이 장애인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주 정부가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소송 자체를 까다롭게 했더니 연방법원에 제소하는 꼼수를 사용하다 최근 다시 주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특징이다.      주 정부가 장애인 공익소송에 약간의 장애물을 설치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피고가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거나  주법에 따라 제대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송을 당하면 10명 중 9명은 협상을 통한 마무리를 원한다. 협상이 비용도 아끼고 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고 측 변호인은 자기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협상 조건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갖고 있는 건물주의 장애인 공익소송 케이스를 맡았다가 독하게 (?) 나오는 원고 측 변호사들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다.     장애인 공익소송은 건물주와 테넌트인 사업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건물주와 사업주를 함께 소송하기 때문에 책임 소재에 대해 교통정리도 해야 한다.     장애인 공익소송은 이제 온라인으로도 번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업체의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다. 사업주들은 이제 업체 웹사이트가 시각장애인 등이 이용하기에도 불편이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소송 남발로 인한 비용의 증가는 결국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스몰비즈니스 업주들은 힘들게 번 수익을 억지 소송의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법과 장애인 공익소송에 대한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노동법 장애인 장애인 공익소송 장애인 소송 노동법 소송

2023-08-20

[중앙시론] 남가주가 부러운 북유럽의 한인

지난달 가족과 함께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은 가이드 안내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매일 짐을 풀고 다시 싸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북유럽의 몰랐던 역사를 배우고 문화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북유럽은 스칸디나비아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등 4개 국가를 포함한다. 최근에는 발틱 국가도 북유럽에 포함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종족도 비슷하고 역사와 문화도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과거 스웨덴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는 등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적대적 관계는 아니다. 다만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다른 국가들과 종족과 언어가 차이가 있지만 북유럽에 편입되어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금이 많아 개인 소득세율이 40-80%에 이른다고 한다. 고소득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사회 민주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루터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출생, 결혼, 사망 신고는 모두 루터 교회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북유럽인이 실제로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동화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핀란드에서 유래 되었다.      최근 유전이 발견되면서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 평균소득은 연 1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물가가 비싸 연 소득 10만 달러라고 해도 실제 구매력은 미국의 5만-6만불 소득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됐다.     북유럽의 여름 날씨는 남가주 겨울 날씨와 비슷했다. 낮 최고 기온이 화씨 70도가 넘지 않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여름은 짧고 겨울이 매우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들은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복장을 했을 뿐이다”라며 힘든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현지 가이드들이 전해준 북유럽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는 생소한 내용도 있었다. 우선 이혼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가이드는 본인 자녀들도 “언제 이혼할 것인가”라는 질문할 한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북유럽 국가 국민은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전부터 줄을 설 때 1.5m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아마 긴 겨울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긴 문화일 수도 있다. 또 집에 손님을 초대해도 음식은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이 없는 사회처럼 보였다.      한인 가이드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 준비를 위해 북유럽인인 남편에게 장을 보러 가자고 말했더니 “음식 준비는 하지 말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럼 손님에게 무엇을 대접하느냐고 물었더니 “물”이라고만 답하더라는 것. 이어 손님들은 본인들이 먹고 마실 것을 준비해 올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일종의 팟락 문화인데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본인이 가져온 것은 먹다 남은 콜라도 다시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인의 정서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문화적 차이를 두고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데 오가는 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척박한 환경 때문에 극단적 개인주의가 발달한 북유럽 사회는 강력하게 사회적 규제를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중에 만난 현지의 한인 가이드들은 LA에 사는 한인들을 부러워했다. 날씨 등 축복받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록 많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이 최고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북유럽 여름 휴가였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남가주 북유럽 북유럽 국가들 북유럽 여행 남가주 겨울

2023-08-13

[중앙시론] ‘K컬처’의 한쪽 빈자리가 크다

‘K컬처’ 한류의 위세는 여전하다. 국내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해외를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상상 이상으로 높아져 있음을 실감하면서, 자랑스러움을 넘어 우리가 이렇게까지 대접받아도 되는가 하는 놀라움을 말하고 있다.   한류는 ‘K팝’에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BTS, 블랙핑크 등의 빌보드 차트 진입은 이제 특파원들의 기삿거리도 되지 못한다. 유튜브를 통해 이들 이외의 아이돌 그룹, 또는 대중음악에 전통장단을 접목한 악단광칠이 세계를 누비는 모습이나, 유럽·남미의 도시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무작위로 틀어주는 ‘K팝’ 음악에 맞춰 ‘커버 댄스’를 추는 랜덤 플레이 댄스(random play dance)를 보고 있자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대중예술을 거쳐 음식 등 생활문화로 뻗어 나가더니 문학, 미술 등 고급문화까지 확대되고 있다.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서가 K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K아트’도 목하 뜨거운 열기로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록펠러센터가 주최한 ‘한국문화예술 기념주간’에는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 ‘기원, 출현, 귀환’이라는 주제 하에 단색화 거장 박서보를 비롯하여 한국계 작가 진 마이어슨, 독일에서 활동하는 윤종숙 등의 작품 70여 점이 전시됐다. 이와 동시에 록펠러센터가 있는 뉴욕 맨해튼 심장부 채널가든 광장에는 ‘숯의 작가’ 이배(67)의 높이 6.5m에 달하는 대형 숯덩이 조각이 세워졌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서울전시회를 마치고, 오는 9월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에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또 내년 10월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이 미술관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여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전’(가칭)에 서도호·함경아·신미경 등 33인의 한국 작가 작품들이 전시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오는 9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화랑협회 주최 제22회 키아프(Kiaf)에는 작년에 이어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프리즈(Frieze)가 동참하여 30여 개국의 200여 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한류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 동경에 이르고 있다. 지난여름 파리에 학술강연 차 갔다가 만난 현지 한글학교 교장들은 프랑스에서는 한국어가 중국어, 일본어를 제치고 제2외국어로 부상해 있다고 전한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이달 8일 서울에서는 전 세계 240여 곳에서 운영되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원들이 모이는 ‘세계 한국어 교육자대회’가 열린다.   이러한 ‘K컬처’ 한류의 흐름은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자연히 한국실로 옮기게 한다. 그러나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파리 기메 뮤지엄의 한국실을 다녀간 관람객들은 한국 전통미술에 대한 감동은커녕 오히려 큰 실망을 안고 간다. 바로 곁에 있는 중국관, 일본관보다 형편없이 작은 규모에, 전시 유물도 빈약한 것에 의아해한다.   작년 10월, 세계 최대 공예박물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에서는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영국에 있는 지인이 이 전시회를 보고 “지금 우리는 한류 팬덤을 자랑하는 전시보다 한류의 뿌리를 보여주는 기획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친한파 미술사가인 클리블랜드 뮤지엄의 전 학예실장인 마이클 커닝엄은 1979년부터 3년간 미국 7대 도시를 순회한 ‘한국미술 5000년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서구의 동양미술사 전공자들도 한국 미술사의 전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커닝엄의 고백은 미술품이란 그 나라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는 구체적인 ‘물질문화의 외교관’ 역할도 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한국 미술사의 진수로 ‘한국미술 5000년전’을 꾸며 파리, 런던, 뉴욕 등을 순회하며 ‘K컬처’의 근저에는 오랜 문화적 전통이 있었음을 자랑하고 확인시켜 주면서, 한류가 오래도록 도도히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유홍준 /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중앙시론 컬처 한쪽 한국문화예술 기념주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2023-08-06

[중앙시론] 연방대법원의 문화전쟁

흔히 미국을 청교도가 세운 기독교 국가라고 한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초기 이민자들이 전부 영국 출신도 아니었고 많은 사람이 청교도 이외의 다른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특히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정치인들은 청교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계몽철학이었다. 계몽철학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로 들어가는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파고든 인본주의 사상을 뿌리로 한다.     개인적으로 계몽철학은 기독교 신앙과 조화되는 면도 있지만 충돌하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독립전쟁 때 만들어진 모든 정치 및 법률 서류들은 계몽철학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이다. 연방헌법에선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정교분리에 따른 신앙의 자유를 못 박았음으로써 기독교 신정 국가 체제를 거부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못하게 한 것은 인본주의 계몽철학의 핵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계몽철학자였고 헌법이 계몽철학에 근거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건국 시기부터 미국인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청교도가 건국한 기독교 국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19세기 중반부터 개신교 복음주의가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라 오히려 건국 초기보다 더 기독교적인 나라로 변했다.  건국 초기 대통령들은 겉으론 기독교 신자고 정신세계는 계몽철학자였다면 19세기 중반부터는 신앙심이 깊은 대통령들이 배출됐다.     다양성이 제한되던 20세기까지만 해도 개신교 복음주의에서 많은 표가 나오니 정치인들은 신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인 개신교 복음주의는 미국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하나의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같은 기독교지만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나 주지사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혼을 하면 대통령이 되거나 정계 입문조차 어려웠던 것을 보면 그 벽이 얼마나 두꺼웠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벽도 점차 흔들리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내려앉기 시작한다. 역작용으로 양 진영의 ‘문화전쟁(culture war)’이 거세게 진행된다.  한쪽은 다양성을 앞세워 기존의 문화를 부숴버리려고 하고 다른 쪽은 과거로의 회기를 시도한다.     현재 문화전쟁의 뜨거운 이슈가 종교의 자유다.  이 와중에  종교와 관련된 두 건의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나왔다. 하나는 직장 내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거다. 종교적 이유로 일요일 근무를 거부한 직원에 대한 해고는 부당해고이고 고용주는 직원의  이런 요구에 대해 무리가 없다면 맞춰져야 한다는 판결이다.  진보 보수가 3대6으로 나뉜 대법원에서 만장일치로 직원 편을 들어준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선 해석이 틀려도 작업장에서의 개별 직원의 신앙 보호가 고용주의 권리에 앞선다는 데는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다른 케이스는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동성애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한 한 웹디자이너의 차별금지법 위반 문제였다.  종교의 자유란 같은 이슈를 놓고 이번엔 보수와 진보 판사가 각각의 색채를 명확히 드러냈다. 결과는 6대 3으로 동성애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한 웹디자이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판결이었지만 보수 판사들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근거해 판결을 내렸다.  동성애자에게 서비스 금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표현의 자유에 위반한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낙태권 판결에 이어 이번 판결까지 앞으로도 대법원은 문화전쟁의 최전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론 연방대법원 문화전쟁 기독교 신앙 현재 문화전쟁 건국 초기

2023-07-16

[중앙시론] ‘명예의 전당’에 간 고 김영옥 대령

지난 5월 16일 필자는 캔자스시티의 포트 레번워스(Fort Leavenworth)에서 열린 고 김영옥 대령의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다녀왔다. 미 육군의 공식 초청을 받은 자리였다. 이에 앞서 김 대령은 지난 4월 그가 장교 훈련을 받았던 조지아주 포트 무어(Fort Moore)의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명예의 전당은 특정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존경받는 인물을 기념하는 곳이다. 김 대령이 두 곳의 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은 한인사회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고 김영옥 대령’은 더 친숙한 이름이 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부에나파크 근처의 5번 프리웨이 구간을 ‘김영옥 메모리얼 하이웨이’로 명명했고, 평택의 미군 기지내 예비군 훈련 빌딩도 ‘김영옥 빌딩’이 됐다. 2009년 LA통합교육구는 한인타운 6가와 버몬트에 신설된 중학교를 ‘김영옥 중학교’로 명명하기도 했다.     필자는 2010년 UC 리버사이드에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를 정식 개소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강제노역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위해 미국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정에 제출할 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USC에서 연구 기금을 신청키로 했는데  친일 교수들의 방해로 무산이 됐다고 한다. 그때 김 대령이 필자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관계자들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필자가 앞장서 기금 신청을 했고 이때 장기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소 설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캔자스시티 공항에 도착하니 포트 레번워스 관계자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헌액식은 다음날 ‘루이스 앤 클라크 센터’라는 곳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행사는 포트 레번워스의 사령관인 밀포드 H. 비클 주니어 중장이 직접 주관했다. 비글 중장은 흑인이다. 아마 그가 흑인이기에 김영옥 대령이 아시아계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사장엔 군인과 가족 약 100여명으로 꽉찼다. 비글 사령관의 인사말과 함께 헌액식이 시작됐다. 사회자가 김 대령의 업적과 일생을 소개했다. 이어 필자의 5분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준비했던 내용은 이미 비글 사령관과 사회자가 다 소개한 터라 즉흥 연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필자의 미군 경험담으로 시작했다. 예전에는 위생병 Medic이 91B이었는데 지금은 68W로 바뀐 걸 구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참석자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1979년 김 대령과의 첫 만남, 그리고 그의 임종 2일 전 병실 방문 얘기를 들려줬다. 이어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책 출판과 영문 번역 관련 내용, 김 대령이 은퇴후 평생을 약자와 소수계, 그리고 한인 사회와 일본인 사회를 위해 봉사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포트 레번워스’는 단순한 미군 기지가 아니라 미 육군의 중요한 교육시설(Army Intellectual Center)이다.  특히 매년 소령으로 진급하는 1100명이 이곳에서 11개월 동안 재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미군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곳인 셈이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장교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김 대령이 헌액된 장소에서 미군의 한인 소령, 한국군 소령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 헌액 작업을 주도한 피터 임 교관은 필자가 번역한 ‘Unsung Hero: Col. Young Oak Kim Story’를 읽고 김영옥 대령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의 노력 덕에 김 대령의 헌액이 가능했다.     필자는 1978년 5월 미군 제대 후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 ‘United Way’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김 대령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서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일본계 커뮤니티에서 더 유명했다. 그는 일미박물관 건립을 주도했고 바로 옆에 세워진 ‘Go For Broke Monument’ 건립도 주도했다. 또한 일본계 미국인 재향군인회인 ‘Go For Broke Educational Foundation’ 회장을 역임했다. 일본계 미군 전역자들이 김 대령을 리더로 인정하고 따른 것이다.     포트 레번워스의 명예의 전당은 미군의 전설인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장군도 있는 곳이다. 한인사회의 자랑인 고 김영옥 대령을 2세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김영옥 명예 김영옥 대령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김영옥 중학교

2023-07-09

[중앙시론]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타이르는 말을 기꺼이 듣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자이나,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고대 지혜문학 중 하나인 ‘솔로몬의 잠언’ 중 한 구절(12:1)이다. 영문을 찾아보니 타이르는 말(라틴어 disciplina)은 규율(discipline)이나 훈육(instruction)으로, 책망(라틴어 Increpatio)은 질책(reproof) 또는 교정(correction)으로 씌어 있다. 우리말과 영문 번역본을 여럿 비교한 끝에 ‘타이르는 말을 귀담아듣고 그것이 옳다면 싫더라도 따르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에게 장량이 공자의 말씀을 빌려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耳利於行),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습니다(毒藥苦口利於病).”     꽤 오래전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길 가던 여고생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 “잔소리와 충고가 어떻게 다르지요?”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충고는 기분 나쁜 말이에요.” 몇 해 전 같은 질문에 두 초등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뒤이어 이런 자막이 등장했다. ‘노터치, 난 나야, 넌 너고….’   으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듣는 이 입장에서 타이름은 잔소리이고 충고는 참견이고 조언은 오지랖이다. 좋은 얘기도, 재미있는 얘기도, 무엇보다도 별 도움 되는 얘기도 아니면서 내 의지에 반하는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듣고 기분 좋을 리 없다.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의 시선은 불편하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언은 거북하고 우월한 지위나 우월감에 근거한 충고는 자존감에 생채기를 낸다. 무엇보다도, 결정에 대한 궁극적 책임의 주체는 ‘나’이니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게 듣는 이의 솔직한 심정이다.   잔소리와 충고를 기분 나쁘다고 했던 그 초등학생들이 사춘기 소녀가 되어 다시 등장했다.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당찬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요?” 덧붙여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된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그야말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모든 간섭을 거부한다는 선전포고다.   경험이 곧 삶의 지혜였던 시절, 세태의 변화가 한가한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하던 시절, 어른의 말씀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고 마을이나 집안의 뜻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던 시절과 달리, 오늘의 어른은 온갖 자동화기기 앞에서 절절매고 말 한마디 하기에 앞서 그것이 ‘라떼’(나 때)나 ‘꼰대’ 소리 들을 이야기는 아닌지 눈치를 살핀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이 경험과 연륜에 의한 지식과 생각을 경직된 가치관과 아집으로 격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 세월이여, 아! 세태여’(O, tempora! O, mores!)라는 키케로(BC 106~BC 43)의 탄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늘 있었던 말이지만, 이 세상은 늘 더 나은 곳으로 변해 왔으니 그 말은 언제나 구세대의 푸념이었을 뿐이라며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으로서, 아니 이 사회 구성원으로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보기에 불편한 것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고, 염려하는 것은 세상사의 흐름을 미처 좇지 못하기 때문이고, 언짢은 것은 내 뜻과 저들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해야 마땅하다.   성공한 30대 여성 사업가 줄스와 퇴직 후 회사를 다시 찾은 70대 시니어 인턴 벤의 이야기 ‘인턴’(2015).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주지 않으니 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친근함과 배려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고 경험과 연륜으로 그들의 온갖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며 어느새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토라는 남자’(2022)의 오토는 퇴직 후 아내를 따라 세상을 뜨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이웃을 돕느라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운전이 서툰 이를 대신해 주차하느라고, 이웃의 난방시설을 수리하느라고, 이웃의 아이를 대신 보고 얼어 죽을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돌보느라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려다 말고 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하느라고…. 이렇게 급한 일(?)부터 처리하느라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다가 어느새 그는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어버렸다. “이게 사는 거지….”라는 그의 독백이 귓가에 맴돈다. 그리고 “심장이 너무 크다”라는 의사의 말이 그의 사인(死因)이 아니라 그의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행실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전상직 / 서울대 음대 교수중앙시론 잔소리 충고 고대 지혜문학 시니어 인턴 시절 어른

2023-07-09

[중앙시론] ‘구룡치수’가 ‘이전투구’ 되어서야

구룡치수(九龍治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옛 선인들은 정월 초하루 그해의 농사를 예측하곤 했다. 책력을 펴 놓고 십간십이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 가운데 득신(得辛)과 치수(治水)를 가장 많이 활용했다.     음력 정월의 첫 신일(辛日)이 초하루에 들면 일일 득신, 열흘에 들면 십일 득신이라 하여 그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 또한 십이지 가운데 용날이 언제 들었는지를 보고 치수를 붙였다. 용이 많을수록 비 오는 날이 많고, 적을수록 비 내리는 날이 적다는 예보이다.   용이 많아도 화합이 되지 않아 서로 미루다가 비를 적게 내릴 수 있다. 따라서 구룡치수란 아홉 마리의 용이 서로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가뭄이 든다는 게 숨은 교훈이다.     이 고사성어가 한때 여의도 정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난 1997년,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던 고건 총리는 한 국회상임위원장초청 만찬에서 대권 도전 의사를 묻는 말에 이를 인용, 뜻이 없음을 에둘러 말했다. 당시 대권 주자들이 어지럽게 설치는 정치권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인구에 회자했다. 이후 언론에서는 대선 때 후보난립 상황에서 이 고사성어를 어김없이 인용한다.   미국도 대선 때가 되면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후보출마 선언을 한다. 그만큼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대권후보 주자들은 전국을 순회하는 예비경선을 통해 유권자로부터 최종주자로 낙점을 받게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 선거의 핵심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구룡치수가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싸우거나, 체면을 돌보지 않고 이익을 다투는 것으로 변질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시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구촌 한인사회에서는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지역협의회장 선정이 초미의 관심사다. 미주지역의 경우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실제 애틀랜타 지역은 7명의 후보가 난립해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든 조직의 책임자에 도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조직 차원에서도 잘 이끌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아닌 게 아니라 지역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갈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도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평통의 앞날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지망자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적합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하는 것이다.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 최근 SNS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면서도 서로 간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과거 행적 비난과 끌어내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만약 경쟁 관계인 후보가 회장이 되면 협조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을 주저한다고 토로했다.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숟가락부터 먼저 든다는 의미다. 보수진영의 치명적 약점인 것은 당연하다.     민주평통은 대통령자문기관이다. 자문위원들은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조국의 발전과 통일을 위해 힘을 쏟아야 마땅하다. 나아가 각 지역 한인조직과 함께 한민족 글로벌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도 해야 한다.     협의회장에 뜻을 둔 자문위원들은 자신의 역량이 현 정부 통일정책의 성공을 위해, 또한 시대의 사명에 적합한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을 보여서는 모두에게 누가 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대 간 단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좌우 이념 대립과 일부 인사들의 감투 욕심 등으로 분열된 미주 한인사회이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워 논설위원중앙시론 구룡치수 이전투구 지역 한인사회 지역협의회장 선정 대권후보 주자들

2023-07-03

[중앙시론] 미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아버지날(Father’s day)과 준틴스 데이(Juneteenth: 흑인 노예해방 기념일) 연휴를 맞아 플로리다를 방문했다. 바다 낚시를 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붉은 돔(Red snapper)이 제철이다.  밤새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더니 당초 계획되었던 오전 예약이 취소됐다. 결국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려 오후에 겨우 배를 구해 멕시코만으로 나갔다.   첫 번째 어로에서 낚시를 드리우는 순간, 한 일행이 갑자기 “물렸다!” 소리쳤다.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한참을 씨름하다 건져 올린 것은 1.5피트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방어다. 회를 치면 찰진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와!” 일제히 함성을 질렀으나, 선원은 기대와는 달리 인증샷만 찍고 애써 잡은 방어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맛있는 생선을 왜 …?’ 이 어종은 지금 금어기라 잡을 수 없단다. 만약 이를 어기고 반출하면 라이선스가 취소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플로리다 주 당국은 낚시 금지 어종과 어획량, 일정을 세세하게 명문화했다. 어류를 보호하고 배양할 목적이다. 실제 어류 및 야생생물 보호 위원회(Florida Fish and Wildlife Conservation Commission)는 해마다 낚시 시즌을 앞두고 관련 규제사항을 발표한다. 단순히 물고기 크기로 한도를 설정하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철저하다. 심지어 까다롭지는 않지만 낚싯배 탐승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잡을 수 있는 참돔의 양도 제한된다. 1인당 2마리. 길이가 16인치 넘지 않는 물고기도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 식감이 좋은 쥐치도 몇 마리 잡았으나 규정에 따라 바로 방생을 했다.     주 정부는 낚시를 끝내고 돌아온 모든 선박을 대상으로 잡은 마릿수와 무게를 보고하도록 한다. 일정량이 채워지면 낚시 시즌도 마무리한다. 실제 하선하자 관계자들이 잡은 물고기 마릿수와 크기를 일일이 검사하고, 설문조사도 했다.     앨라배마, 버지니아, 뉴욕 등 관련 주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적용된다. 이 가운데는 강태공들에게 다소 과도한, 그리고 불필요한 조항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은 대부분 이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어떤 규정이 부당할 경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개정되기 전까지는 준수하는 것이 이들의 생활양식이다.     회를 좋아하는 일부 아시아계는 허용되지 않은 어종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먹거나, 필레(filet) 형식으로 주머니에 넣고 단속을 피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국자들이 때때로 배 위로 올라와 수색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법망은 어찌 보면 그물코가 넓고 엉성해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서 오는 해프닝이리라. 사고 환경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다. 다시 말해 자연을 보호하려는 현지당국의 사고 구조와 맛있는 회를 먹고 싶은 마니아들의 욕망 구조 사이의 갈등이다.     올해로 이민 120주년을 맞은 한인사회는 미국사회 적응이 더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곧 현지인의 생활과 문화에 동화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을 준수하는 것도 마땅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생활습관과 문화환경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서로 간 믿음이 생긴다. 사회의 발전이 구성원들의 신뢰 확산에서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우리 사이좋게 살아요.”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중앙시론 미국 방법 낚시 시즌 낚시 금지 프랑스 구조주의

2023-06-25

[중앙시론] AI시대, 새 일자리는 계속 창출된다

챗GPT 출현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최근 부쩍 높아졌다. 시나브로 4차 혁명시대에 접어든 것을 실감하게 한다. AI가 보편화된 사회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세상만사 모든 것이 그러하듯 새 문명의 이기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끈다. 주된 요인은 AI가 일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최근 정리해고를 단행한 직후 “(빈자리가) 앞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어두운 이면이다.     비관론이 팽배한 만큼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일자리 잠식보다 창출이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인 AI와 일자리에 관련한 백서(Preparing for AI)를 발간했다. AI가 기존 단순반복적 업무를 대체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 창출이 그 감소를 대폭 상쇄할 것이라는 게 골자이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생성 AI가 3억 개의 일자리에 영향을 끼치지만, 지구촌의 GDP를 7% 성장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80년 동안 늘어난 일자리의 85% 이상이 신기술 중심의 새로운 직종에서 나왔다.     지식인들은 수십 년 전 인터넷이 등장할 때도 비슷한 우려를 했다. 하지만 인터넷 기술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현재 미국 GDP의 10%를 차지한다.     AI는 세 가지 채널에서 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직접 효과로 AI 기술을 개발, 유지 및 개선하기 위해서다. 또한 AI 기술 도입을 지원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도 있다. 이는 과거 신기술의 물결에서도 나타났다. 실제 자동차의 도입으로 1910~1950년 사이 미국에서는 69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다.     궁극적으로 소득증대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소비자는 더 저렴하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 결과, 소비자의 소비력과 상품 수요는 증가하고, 기업은 추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연관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파괴해서 실업이 증가하리라는 것은 기우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 파괴 우려는 기술이 자동화의 위력을 보여줄 때마다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을 주장하는 시각도 있지만 영리에 이용하려는 공포 마케팅일 가능성이 높다.   ‘AI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은 상품과 서비스가 유한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생산물(Output)이 한정된 상황에서는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기업들은 끊임없는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낸다.     실례로 한때 휴대 전화기가 부의 상징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용하고 있고, 심지어 상당수는 첨단 스마트폰을 거의 해마다 새로 구입한다.   일부에서는 이와 함께 AI가 인간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기술은 말이 쉽지 실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일정한도까지는 가능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최종 상품과 서비스는 결국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가치는 고객이 만족하는 조합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 덕택에 인류는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욱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무엇보다 미래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줄이기 위해 직업 전환에 대비한 재교육은 필요하다.   AI가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일과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일자리도 계속 창출할 것이 분명하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중앙시론 ai시대 일자리 일자리 창출 일자리 파괴 일자리 잠식

2023-05-21

[중앙시론] 5월 ‘아태계 문화유산의 달’에 담긴 의미

5월은 연방정부가 지정한 아시아·태평양계 유산의 달(아태문화유산의 달)이다. 아태계가 미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고 기념하는 행사들이 각 지역에서 열린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는 증오범죄의 대상이 됐다. 특히 아시아계 시니어와 여성들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지난 2021년 3월 16일 애틀랜타 지역 스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8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희생자 가운데 6명이 아시안이었고, 그중 4명이 한인이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충격과 분노에 빠졌으며 동시에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류 언론도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전국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연방상원에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 방지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 후 필자는 한인 언론은 물론 미 공영방송과 LA타임스 등 주류 언론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특히 각 교육구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시안 아메리칸 역사 특강도 여러 번 했다. 당시 아시아계 학생들이 증오범죄를 우려해 등교까지 꺼리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최근 급증한 것일까? 절대 아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아시아계 차별의 진원지였다. 과거 많은 중국인 차별법들이 만들어졌고 1850년대부터는 반아시안 법들도 제정됐다.         최근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가 급증하게 된 직접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2월부터 공식 명칭인 ‘코로나19 바이러스’대신 ‘콩 플루 (Kung-flu)’ 또는 ‘차이나 바이러스’로 불렀다. 중국 때리기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불똥은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로 튀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폭력도 괜찮다는 시그널을 보냈고 그 결과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소수계 차별 분위기 조성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지역 경찰국장은 백인인 범인에 대해  “오늘 나쁜 일이 있었다”며 그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극우 보수주의자 등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고 지원하는 세력들이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를 조장하고 방치하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확산하면서 인종 차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의사당 난입 사건으로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우려와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이 증가했다. 의사당 난입 사건의 주범들이 유죄 평결을 받고 장기간 감옥 생활을 하게 될 전망이다.     둘째, 아시안 커뮤니티가 자체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Stop Asian Hate’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 신고를 접수했다.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에 주류 언론도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셋째, 정치권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방하원에서 30년 만에 아시안 아메리칸 청문회가 열려 증오범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연방상원에서는 아시안 증오범죄 방지법이 통과됐다.  넷째, 아시아계 지식인들과 유명인들이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증오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시안 증오범죄와 인종 차별은 백인우월주의의 산물이며 ‘사회악’으로 규정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세우는 미국식 민주주의에서 인종 차별은 ‘악’이며 배제의 대상이다. 특히 백인우월주의는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백인이 만든 ‘인종’ 개념에 근거해서 백인들이 자행하고 있다는 인종차별에 대한 ‘백인 책임론’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의 근본적 원인 역시 백인우월주의이다.     5월 아태계 문화의 달에 문화행사나 기념식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단순히 기념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보존하고, 불의에 대응하면서 당당히 주인 의식을 갖고 다인종·다문화 사회에 기여하라는 의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문화유산 아태계 아시아계 차별 아시아계 커뮤니티 주류 언론들

2023-05-10

[중앙시론]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준 ‘4·29 LA폭동’

지난해 4월은 사이구(4·29) 폭동 30주년으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CNN, LA타임스, NPR, AFN 등을 비롯해 한인 언론들, 그리고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다. 특히 CNN은 2시간짜리 사이구 30주년 특집 다큐를 제작했는데 1시간은 한인 사회를 집중 조명했다. 폭동 이후 3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한인 사회 모습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 한·흑 갈등에 질문의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작년에는 한인 사회의 변화와 위상에 대한 궁금증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아시안 아메리칸, 특히 한인 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는 사이구 폭동 30주년을 맞이해 한인 기자들의 시각으로 본 특집 편저 책을 준비했는데 필자에게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써 달라는 부탁이 와 몇 번의 수정 작업을 한 후 최근 출판이 되었다. 이 책의 앞뒷면은 퓰리처상을 2번이나 수상한 강형원 전 LA타임스 기자의 사진으로 꾸몄다. 폭동 당시 한인들이 합심해 한인 상가의 불을 끄는 모습이다.  당시 한인 타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 한인들 스스로 화재 진압에 나서야 했다. 이 사진은 당시 한인 사회의 피해에 대한 관계 기관의  무관심과 방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논문을 통해 사이구는 흑·백의 문제를 넘어 한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교훈을 던져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31주년이라 별다른 행사가 없었다.  그런데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이구를 역사적으로 되새기며 차세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사이구 폭동은 미주 한인 사회 100년사에서 가장 큰 상처와 교훈을 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기억하며, 차세대들에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될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한미박물관은 1990년대 이후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 LA시로부터 한인타운 6가와 버몬트의 시 소유 주차장 부지를 1년 1달러의 임대료로 50년간 장기임대를 받았다. 한미박물관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이어 본격적인 기금 모금이 시작되었고 한인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 듯했으나 설계가 4번이나 바뀌는 등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커뮤니티 사업으로 진행되며 성공적인 기금 모금 활동 등을 통해 완공한 일미박물관, 아르메니아박물관과 대조된다.     일미박물관은 일본계 커뮤니티, 정치권,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합심해서 이루어낸 훌륭한 역사적 업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0대대 출신으로 일본계 미국인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던 고 김영옥 대령도 일미박물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고, 그는 한미박물관 설립 사업 초기 배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안 박물관은 사업 시작 7년 만에 문을 열어 한인 사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성공적인 기금 모금과 정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밑바탕이 됐다.     한미박물관이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사이구 관련 각종 행사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사는 물론 폭동 관련 전시물과 강연,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한인 사회가 경험한 아픔을 차세대와 타 커뮤니티와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차세대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이구 폭동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차세대들에 올바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미박물관은 일부 이사들이 아니라 한인 사회가 주인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기금 모금 등에 차세대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한미박물관등의 건립과 운영은 차세대들이 주도하고, 1세대들은 기금 모금과 정부 등의 매칭 펀드 확보에 주력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구 폭동 3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제 우리의 숙원인 미주한인사 정립 및 보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배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게 된다.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던져준 사이구의 역사적 의미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역사의식에서 출발하고 가능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la폭동 상처 한인 사회 사이구 폭동 한인 언론들

2023-05-01

[중앙시론] 미국 식탁에 오른 한국 라면

한류 열풍을 타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K-푸드가 인기몰이 중이다. 한국 라면도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다. 최근 한국 라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2년 처음으로 수출 2억 달러를 돌파한 후, 2016년부터 연평균 30%씩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7억 달러 선을 가볍게 돌파했다. 미증유의 코로나19팬데믹이 아이러니하게도 효자 역할을 했다. 지구촌이 ‘집콕(집에서만 머무름)’ 생활에 갇힌 것이 라면 수출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끼 식사이자 비상식량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이 같은 K-라면 열풍은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라면 수출은 올해 1분기 2억 달러를 넘어섰다. 1분기 수출액이 2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심 등 일부 라면 제조업체들은 해외공장을 두고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어, 판매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 라면의 인기몰이에는 요즘 더욱 확산되고 있는 한류 영향이 크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 영화와 드라마 등에 라면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 +너구리)’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오징어 게임도 한몫을 했다. 주인공이 매콤한 국물에 꼬들꼬들한 면을 먹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경제 전문가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저서 ‘식탁 밑의 경제학’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문화와 관련, 음식을 ‘자원’으로 간주하는 나라와 ‘문화’로 보는 나라로 분류했다.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음식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반면,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은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 말 미국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쥐면서, 패스트푸드 열풍이 전 세계에 불었다.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 패스트푸드는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이유로 세계인이 즐겨 찾는다.     라면도 일종의 패스트푸드 군에 속한다.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대에, 끓는 물을 붓고 몇 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다. 간편하고 시간 절약을 필요로 하는 앵글로색슨 문화와 궁합이 맞는다. 게다가 햄버거와는 다른 독특한 맛까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시장은 세계 인스턴트 라면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바야흐로 한국산이 세계인의 입맛을 점령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아직은 원조인 일본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산 제품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제품과 차별화한 K-라면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까지 관련 기업들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월마트나 코스트코, 크로거 등 매장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 대표 한류 식품이 됐다.   내친김에 삼성과 LG의 가전제품들이 소니를 추월했듯이 라면도 부동의 1위인 도요스이산을 따라잡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아직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선 패스트푸드가 비만 등 여러 가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보고서들이 말해주듯이 미국인들도 요즘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라면도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업체들은 라면이 건강을 생각하는 식품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편리성과 함께 맛의 다양화를 추구하면서 웰빙식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소비자 트렌드에 부응하는 길이다.     아울러 즉석조리식품과 경쟁하려면 제품의 고급화도 필요하다. 일본 라면 전문점인 큐라멘이 다양한 메뉴와 고급화로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중앙시론 미국 식탁 한국산 제품들 패스트푸드 열풍 한국 예능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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